장모와 사위를 잡아 놓고 옷을 벗긴채 공개 성행위를 시키고, 죄없는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죽인후 애인이나 부인을 강간하거나 첩으로 삼고, 아편먹은 환각상태에서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1946년부터 1949년 12월까지 서북청년단들의 모습이었다.
반공이라는 이념적 광기와 사적폭력이 난무하던 이 시절. 적어도 이 시기에 극우의 기독교에는 하나님은 없었다.
서북청년단은 평안도 일대 지주의 자식들이 해방후 김일성의 친일파숙청을 피해 남으로 피신해와서 한경직목사 등의 도움으로 만든 반 군사조직이다.
군인도 아니고 경찰도 아닌 앞잡이 노릇을 하던 사람 잡는 인간백정들이었다.
돈달라고 해서 안주면 죽이고, 시계달라고 해서 안주면 죽이고, 이승만사진이나 태극기를 강매하다가 안사면 빨갱이로 몰아 죽이고, 예쁜 여자를 보면 남편이나 애인을 빨갱이로 몰아 죽인 후 차지하곤 했다. 김구주석을 암살하고, 제주 4.3학살에서는 9만명을 빨갱이로 몰아 죽였다.
당시 제주도 총 인구가 30만명이 채 안됐다. 죽창을 들고 경찰과 군인들을 따라 다니며 빨갱이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살인를 밥먹는 듯이 했는데, 이는 빨갱이 색출 성과급으로 많은 숫자의 빨갱이를 색출해서 공과를 올리고, 양민들과 좌익들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심어주려 한 이유에서였다.
이들의 배후에는 이승만과 친일 세력들이 있었고, 미군정이 있었다.
이들의 자금줄은 친일세력의 후원금과 미국 KKK세력인 극우 감리교 재단의 후원금과 미군정 원조물자를 유출해서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3년.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대였다.
남한의 양민 30만명을 학살하였다. 경찰이나 군대가 못하는 범죄는 모두 이들의 몫이었다. 모두 하나님과 국가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저지른 살인들이다.
신학은 폭력이었고, 종교는 집단살해였다. 그리고 서북청년단이 해체되면서 이들은 목회자가 되거나, 경찰이되거나, 정치깡패가 되어 이승만 정권의 파수꾼이 되었다.
이들의.80~90%는 친일파였다. 해방정국 당시 천주교는 좌우합작노선이었고, 불교와 천도교는 좌측이 강한 중도파였지만 기독교는 극우성향을 보이면서, 별종악마들을 만들어 냈고. 이들이 기독교와 경찰로 흘러 들어가 기득권층을 형성하였다.
5.16 구테타이후 이들은 박정희정권의 비호아래 빨갱이 때려잡은 구국의 영웅으로 미화되었다. 이들의 더러운 피가 계속 이어져 오면서 5.18광주학살 세월호학살 등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014년 9월28일 세월호 화형식과 서북청년단 재건위는 우연히 돌출된 사건이 아니다.
유가족에게 교묘히 경기침체의 굴레를 씌우고 사건의 진실을 왜곡시키려는 박그네정권.
뉴라이트로 이어져 내려오는 광기와 폭력의 신학을 섬기는 인간백정들이 다시 피에 굶주려 손을 잡은 것이다.
역사는 징그럽게 반복된다. 피에 굶주린 악마들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광기를 드러낸다.
--------------
미제첩자 이승만 장로가 키운
기독교 서북청년단 제주4.3 사태
조선민족간 이간질
양민학살 빨갱이 몰이로 시작
(김구 선생은 팔십 노구를 이끌고 소파협정
반대로 당시 함께 독립운동한 김일성장군에게 갔죠
조선민족은 하나다라고 여그 백성을
위한 단호한 결의로 명분을 지키심)
(현재도 대형교회로 성업중)
친일 극우 일본 유신군부 국보법 으로
가짜 해방후 팔십해 여기 슽한 민생학살
최근에 세월호 고의수장 이태원참사 등
신실한 믿음으로 계신분껜 죄송합니다
하지만 박근혜 시계표 들에 만행은
제2경술국치로 여길 전범국 일본 아시아전장 기지국으로 우리 민생 미일 총알받이로 쑥대밭 만들고
지난 2003년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발간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는 “서북청년회는 4.3사건 발발 전부터 도민들과 갈등을 빚어 사건 발생의 한 원인으로까지 지목받아왔는데, 이승만과 미군은 강경작전을 앞두고 서북청년회를 아예 군경에 편입시켰다.
이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대량 주민 희생을 초래하는 결과를 빚었다. 서북청년회 위주로 경찰이 재편됐고, 군대에는 ‘서청중대’가 따로 편성됐다”며 “이승만과 미군의 후원 아래 제주 사태의 최일선에 서게 된 서북청년회는 군 경 모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고 밝히고 있다.
서청은 공산주의자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증오감을 가진 반공 단체였다. 이승만과 미군정은 제주 4·3 사건 전후로 제주도를 '붉은 섬'이라고 표현하며 대다수 도민을 빨갱이로 규정했다.
서청을 파견한 후 이들에게 무기를 쥐어 주고 진압을 명령했을 때부터, 참극은 예견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