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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힌일수교와 박정희 색기 굴욕의 3억달러, T1569

정치 politics

by 진보남북통일 2026. 1. 10.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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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힌일수교와  박정희 색기 굴욕의 3억달러,

 

이승만은 일본에게 35억달러를 요구했고

장면 정부에서는 30억달러를 요구했다.

그런데  일본명  "다카기 마사오" (박정희)는 3억달러 받았다.

 

조선땅에서 36년동안 일본으로 가져간 쌀과 지하자원만 계산한다해도 어림없는 액수다.

 

박정희가 3억 달러에 합의한 주요 이유

박정희 정부는 식민 지배에 대한 '완벽한 배상'이라는 명분을 중시 했다.

 

*미국의 압력과 냉전 체제

​냉전 상황 속에서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반공 진영의 결속과 재정적 부담 완화를 위해

한일 국교 정상화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막대한 경제·군사 원조(당시 매년 3억 달러 이상) 부담을 일본과 나누기를 원했다.

 

*안보 문제

한일 국교 정상화는 미국 주도의 한·미·일 삼각 안보 체제를 공고히 하는 핵심 과제였다.

박정희 정부는 정권는 쿠테타로 만든 정부였기에  정통성 확보와 안보 강화를 위해 미국의 지지(승인 및 지원)가 필요했다.

 

​*협상력의 한계와 일본의 태도

​오랜 기간 끌어온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협상력은 한계에 부딪혔다.

 

​*일본의 비협조

 일본은  박정희 정부의 약점을 파고 들었다.

그래서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賠償)'이 아닌 '경제 협력 자금(無償)' 명목을 고수하며,

배상 책임과 전쟁 책임을 회피했다.

협상 초기에는 오히려 '역청구론'을 주장하는 등 과거사 청산 의지가  없었다.

 

​*개인 청구권 문제 외면

 그래서 박정희 정부는 국가 대 국가의 청구권 문제 타결에 집중하면서, 강제 징용 피해자 등 개인 청구권 문제를 소홀히 취급하거나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다.

이는 이후 한일 관계에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결론

쿠테타라는 정통성없이 태어난 박정희 정부는 '빈곤 탈출'과 '급속한 근대화'라는 실리적 목표를 위해 3억 달러 무상 자금을 포함한 총 6억 달러 이상의 자금 수령에 합의 함으로써,

과거사 청산의 명분과 개인 배상 문제를 희생 시켰다.

 

그래서 지금도 위안부.징용문재등 개인 배상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사진) 1965년 박정희 대통령 한일협정 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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