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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저승에서도 독립운동 하리라... T2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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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보남북통일 2026. 9. 2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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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저승에서도 독립운동 하리라...

순국 91년 만에야 겨우 동상 세워진 조명하 의사의 비극

 

의견;;

청문회에서

자격미달로 불합격 된 정치인 색기들 위해 독립운동을 한게 아니다.

정치인들은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 되거라.
배가 부르니 나태한 관료들이 된 정치인 색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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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왜 이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지 모르겠습니다..."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대만에서 일왕의 장이자 육군 대장이었던 구니요시를 단도로 공격하고 당당히 순국했던 조명하 의사.

 

 

"저승에 가서도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리라"며 미소를 지은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전설적인 독립운동가였습니다.

 

당시 그에게는 갓난아기였던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평생 아버지의 숭고한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고,

세월이 흘러 1988년 아들 조혁래 씨와 손자 조경환 씨는 서울대공원에 조명하 의사의 동상을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의 동상을 세우는 일은 잔혹하리만큼 차가웠습니다.

 

정부의 지원은커녕 동상 제작비와 설치비 전부를 후손들이 직접 부담해야 했고,

손자 조경환 씨의 증언에 따르면 동상을 세우는 관공서 절차 과정에서 사례금까지 건네야만 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할아버지의 동상 하나 세우는데 당해야 했던 수치스러움과 멸시.

그 광경을 곁에서 지켜본 손자는 깊은 자괴감과 상처를 입고 울부짖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무슨 죄인입니까? 할아버지가 대체 왜 이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결국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상처가 되어버린 손자는

한국을 떠나 멀리 호주로 이민을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순국 91년 만인 2019년에야 대만에 처음으로 나랏돈이 들어간 조명하 의사의 동상이 들어섰습니다.

나라를 되찾아준 영웅을 잊고, 그 후손들에게 가슴 깊은 상처를 안겨 타국으로 떠나게 만들었던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

 

조명하 의사와 그 후손들이 겪어야 했던 눈물겨운 인생이 우리 모두에게 참된 국가의 존재 이유와 국가유공자 예우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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