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면충돌로 미국의 중동 정책이 큰 패착에 직면하자 조 바이든 행정부의 ‘빅딜’ 집착이 상황을 꼬이게 만들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미국이 2023 10월 8일(현지시각)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항공모함 전단을 이스라엘 근해로 보낸 가운데, 미국 유력 언론은 이란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움직였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이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사태 확산을 원치 않는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9일 한 행사 연설에서 “중동은 지난 20년간 어느 때보다도 조용하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정책이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로부터 불과 8일 뒤 이스라엘에서 반세기 전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 이후 최악의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이 금세 ‘허언’이 되는 동시에 미국의 중동 정책이 큰 위기에 놓였음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하마스의 이번 공격으로 미국이 ‘빅딜’이나 ‘메가딜’로 부르며 공을 들여온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 협상이 좌초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
미국은 사우디를 설득하기 위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1953년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뒤 처음 민주화되지 않은 국가와 안전보장조약 체결까지 추진했다.
미국이 이렇게까지 사우디에 공을 들인 것은 미·이스라엘·사우디의 ‘3각 협력’ 구도를 만들어
△ 이스라엘 안보 강화
△ 이란 견제
△ 중국의 중동 지역 영향력 차단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구조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번 충돌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팔레스타인에 동조하는 ‘아랍’의 대립이 도드라지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한 뒤 8일 항모 전단을 이스라엘 근해로 파견하고 탄약 등 무기 제공에 나섰다.
이에 견줘 사우디 정부는 휴전 촉구 성명에서 이스라엘군을 “점령군”으로 표현했다.
또 자신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정당한 권리 박탈”의 결과를 경고해왔다고 밝혔다.
다른 아랍국들도 ‘아랍의 대의’를 상징하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등을 돌리기 어렵게 됐다.
상황이 미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상황이 악화되자 미국 내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추진한 야심 찬 ‘중동 평화’ 구상이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 행정부는 아브라함 협정(2020년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바레인의 관계 정상화 협정)으로 아랍국들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정상화하려 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시도를 이어받으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외교적 대업 성취에 골몰해, 정착촌 건설 등을 밀어붙인 이스라엘의 극우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않아 팔레스타인의 불만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이번 충돌로 미국 시민 1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것도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뼈아픈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