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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박홍 전 총장 신부 사망 “주사파 뒤에 김정일” 발언 T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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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보남북통일 2024. 3. 1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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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박홍 전 총장 신부 사망 78살 “주사파 뒤에 김정일” 발언

2019-11-09

선종 善終 ; (천주교) 가톨릭 임종 때에 성사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

 

의견 ;;

와 ~ 서강대 전 총장 박홍 신부 seki 진짜 나쁜 넘이군요.

박정희 반대하며 진보에 있다가,, 왜 갑자기 극보수로 돌아섰는지?

 

김진홍 목사 seki 도 가난한 사람 돕다가,, 갑자기 보수로 돌아섰는데,,

이런 넘들이 돈을 얼마나 받았을까요?

이런 넘들이 또 다른 좃두환인데,

되질 때 죄가 없다고 천주교에 선종 善終(성사받고 죄 없이 죽음)을 했다고?  허 !!

 

돈달라는 뻔뻔한 불교 금바위 색기하고 같은 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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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포함, 더 좋은 기사.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22368

 

1994년 박홍 총장과 전광훈 목사의 차이 - NEWS M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 회장처럼 성직자 신분을 무릅쓰고 주사파 논쟁 혹은 종북 논쟁을 일으킨 인물이 있다. 제1차 북·미 핵위기 와중에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한 1994년 한

www.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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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기사 내용

 

1994년 김일성 사망 직후 청와대서 발언,

수사기관이 주도한 ‘주사파 색출 광풍’ 불러,

당뇨 합병증으로 치료 받아와,

 

1965년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예수회에 입회한 박 전 총장은

1970년 사제 수품했다.

1970∼80년대 서강대 종교학과 강사와 교수를 지냈고,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서강대 총장을 지냈다.

2000∼2003년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2003∼2008년 서강대 재단이사장으로 활동했다.

2003년에는 정부에서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주사파' '어둠의 세력' 색깔론 발언 박홍 전 서강대 총장 사망

2019.11.10

 

1994년 7월 청와대에서 열린 대학총장 간담회에 참석해 학생운동의 배후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목해 논란이 된 박홍 서강대 총장이 그해 8월 여의도클럽 토론회에 나와 ‘주사파’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1994년 7월 청와대에서 열린 대학총장 간담회에 참석해 학생운동의 배후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목해 논란이 된 박홍 서강대 총장이

그해 8월 여의도클럽 토론회에 나와 ‘주사파’ 관련 발언을 했다.

 

박홍 신부가 사망했다. 향년 78세.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에 맞섰던 인사였던 박 신부는

1990년대 ‘주사파’ ‘어둠의 세력’ 같은 ‘색깔론’ 발언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주사파 발언’은 선종 때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박 신부는 지난 9일 오전 4시 4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사망했다.

2017년 신장 투석을 받은 뒤 몸 상태 악화로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가 당뇨병 합병증 판정을 받았다. 최근엔 몸 상태 악화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박 신부는 1989년부터 1996년까지 8년간 서강대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학생운동권에 대한 여러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1994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14개 대학 총장 오찬에서 “주사파가 (학원 내에) 깊이 침투해있다”며 학생운동 세력 배후로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을 지목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박 전 총장은 고백성사·면담 중 운동권 학생들에게 들은 얘기라고 해명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공동의장 등 신자 6명은 고해성사 누설 혐의로 고발했다.

 

그해 8월25일엔 전,현직방송인 모임인 여의도클럽 주최 토론회에 나가

“1987년부터 1994년까지 전국 대학에서 배출된 주사파 세력 약 1만5000여명이 언론과 정당 등 사회 각 계층에 진출해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1991년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등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노동자의 분신이 잇따르자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1995년에는 한국통신노조 파업을 두고 북한의 조종을 받은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소송을 당해 1998년 패소판결을 받았다.

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인간적으로 훌륭한 분이니 가능한 한 용서를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사면을 건의했다.

 

1998년 서강대 재단 이사장에 내정됐다가 학생 반발로 취임이 무산됐다.

2002년 다시 재단 이사장으로 내정돼 재삼 학생들의 반발을 받았다가 이듬해 이사장에 취임했다.

 

1970년대 박정희 유신 정권에 맞섰던 진보 인사였다.

1971년 전태일 열사 추모 미사를 집전하다 중앙정부부에 학생들과 연행됐다.

1982년에는 ‘반미(反美)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가 검찰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천주교 예수회 소속이며 세례명은 루카(누가). 가톨릭대와 대건신학대를 거쳐 1969년 사제 수품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층 30호에 차려졌다.

발인은 11일, 장지는 용인천주교묘지 내 예수회 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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