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南無)"는 나모(namo)의 음사어로 "예배, 절, 인사"를 의미하는 나마스(산스크리트어: namas)의 연성에 따른 변화형. "예배"에서 바꾸어 귀의(歸依, saranagamana)을 표명한다는 뜻으로 이용되며, "저는 귀의합니다"로 해석된다.
"아미타(阿彌陀)"는 두 불명(佛名)인 "아미타바(무량의 광명, amitabha)"와 "아미타유스(무량의 수명, amitayus)"의 " 잴 수 없는(무량)"이라는 아미타(amita-)만을 음사한 것.
"나무아미타불"이란
"저는 (헤아릴 수 없는 광명, 헤아릴 수 없는 수명) 아미타불에 귀의합니다"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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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은 성탄절, 크리스마스 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날을 예수의 탄생일로 믿고 기뻐하며 감사 예배를 드린다.
가정마다 성탄 트리를 장식하며 이웃들에게 카드와 선물을 보내며 즐겁게 보낸다.
어찌보면 12 월 25 일은기독교인들만의명절은아니다.
이날은믿음과상관없이세계의명절이되었다.
그렇다면 세계의 명절이 된 12 월 25 일은 어떻게 성탄절이 되었는가?
그 역사적인 기록에 대해서 찾아본다.
성경에는성탄절에대해거의언급하지않는다.
복음서나사도행전에는예수의탄생일을기념해서지켰다는내용을찾아볼수없다.
성경은 예수의 탄생일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연도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예수가 태어나셨을 때에 밤에 들에서 자기 양 떼를 돌보던 목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누가복음 2장 8절에서 읽을 뿐이다.
(눅 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눅 2;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의견;;
이스라엘의추운겨울은양떼직이들이밖에나가서양떼를지킬수가없다. 거짓말,
이스라엘의 지리적 배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예수가 태어났던 때는 겨울보다는 여름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다 산지의 12월은 매우 춥다. 유다 산지에 인접한 유대 광야 역시 12월 밤은 몹시 춥다. 지금도 유대 광야에 정착한 베두윈들은 12월 추운 겨울 밤에 밖에서 양 떼를 돌보지 않는다. 겨울 밤에는 양떼를 축사에 보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탄생 계절에 주목하기 보다는 신학적인 부분에 더 주목해 왔다. 1-2세기의 역사적인 기록에서 성탄절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독교의가장초창기저자들인이레네우스(Irenaeus, CE 130-200)와터툴리안(Tertullian, CE. 160-240)도예수의탄생일에대해서는기록하지않았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Origen of Alexandria, CE. 185-253)도 로마인들이 생일을 기념하는 생일 축하 전통을 경멸했고, 이를 이방인의 관습이라 무시하였다.
분명한것은초기기독교인들은예수의탄생을축하하지도않았고그날을명절로지키지도않았다.
오히려 성경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절이 아닌 예수의 죽음과 부활함을 믿음의 기초로 보았다.
부활절은 유월절에 대한 재해석이기도 하다.
부활절(예수의 죽죽과 부활함을 기억하는 것)을 지키는 것은
고린도전서 5장 7-8절의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는 이 내용은 주후 2 세기 중반까지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부활절의 믿음이었다. 사도들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은 곧 부활을 믿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예수의 사역, 기적, 수난과 부활은 1세기와 2세기 초 기독교 저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하였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후대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기원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2세기 말의 기록인 도마의 어린 복음(Infancy Gospel of Thomas)과 야고보의 이전 복음(Proto-Gospel)이란 책에는 예수의 할아버지와 어린 시절 교육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예수의탄생날자는누구도언급하지않았다.
주후 약 200 년에 이르러 이집트의 기독교 선생들에 의해 예수의 탄생일이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CE 150-215)에 따르면, 많은 기독교 단체들에 의해 여러 다른 성탄일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어느누구도 12월 25일을성탄절로언급하지는않았다.
알렉산드리아의클레멘트 (Clement of Alexandria, CE 150-215) 도 12월 25일을성탄절이라고기록하지않았다.
클레멘트는 말하기를: 예수의 태어난 날과 연도를 결정한 사람들이 있었다.
성탄절은 아우구스투스의 통치 28년 (이집트 달력으로) Pachon 달 25일 (지금의 달력으로는 5월 20일)이다. . . . 그러나 예수님의 고난은 자세히 기록하였다. 십자가에서 고난 받은 날은 티베리우스 통치 16년 Phamenoth (3월 21일) 25일, 어떤 이들은 Pharmuthi (4월 21일) 25일, 또 다른 어떤 이들은 Pharmuthi (4월 15일)에 고난을 받으셨다고 기록하였다.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탄생일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세기 말이다.
그리고성탄절을경축하고기념하기시작한것은 4세기이후이다.
4세기에성탄절은두개였다.
12월 25일은서방로마제국이성탄절로지켰던반면,
동방로마제국은 1월 6일 (특히이집트와소아시아지역)을성탄절로지켰다.
현대아르메니안교회는아직도 1월 6일을성탄절로지킨다.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킨 가장 오래된 기록은 354년 달력 또는 354년 연대기 (the Chronography of 354)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354년 연대기’는 로마의 부유한 기독교인인 발렌티누스 (Valentinus)를 위하여 서예가이며 돌판화가인 퓨리우스 디오니시우스 필로칼루스 (Furius Dionysius Filocalus, Roman scribe and stone engraver,)가 제작한 달력을 가리킨다.
이 연대기에는 많은 순교자들의 죽은 날들이 기록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12월 25일을 설명한 부분이다.
필로칼루스(Furius Dionysius Filocalus, Roman scribe and stone engraver,)는 12월 25일을 ‘natus Christus in Betleem Judeae’라고기록하였다.
이는라틴어로 ‘그리스도는유대베들레헴에서나셨다’는말이다.
이내용이 12월 25일을성탄절로언급된가장오래된기록이다.
요약하면, 예수의태어나신정확한날곧성탄절은알수없다.
사도들은 그 날을 언급하지 않았고, 사도들의 제자들도 그 날에 대해서 어떤 암시도 남기지 않았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지 약 200년이 지난 후에 사람들은 예수의 태어난 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300년이 지난 후에야 성탄을 기념하였는데, 그 때는 여름이 아닌 추운 겨울로 결정되었다. 성탄절을 12월 25일과 1월 6일로지키지만이두날들은실제예수의탄생일이아닌믿음으로정해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