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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逍遙遊 - Enjoyment in Untroubled Ease
01` 일반적인 가치 기준을 깨라 (내편:1.소요유,1) 가치` 고정관념` 정신` - 장자(내편) ; 제1편 소요유[1]-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어 그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변하여 새가 되는데 그 새의 이름을 붕이라 한다, 붕의 등도 길이가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붕이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을 덮은 구름과 같다. 붕은 태풍이 바다 위에 불어야 비로소 남쪽 바다로 옮겨갈 수 있다. 남쪽 바다란 바로 천지를 말한다. 기이한 일들이 적힌 제해에는「붕이 남쪽 바다로 옮겨갈 때에는 물을 쳐서 삼천 리나 튀게 하고, 빙빙 돌며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나 올라가며, 6개월을 날고서야 쉬게 된다」 기록되어 있다. - 莊子(內篇) ; 第1篇 逍遙遊[1]- 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 齊諧者, 志怪者也. 諧之言曰:「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02`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가 (내편:1.소요유,2) - 장자(내편) ; 제1편 소요유[2]- 아지랑이와 먼지는 생물이 호흡으로 뿜어내는 것이다. 하늘이 파란 것은 본래의 색깔이 그러한 것인가. 아니면 아득하게 멀어서 끝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역시 같을 것이다. 물이 깊지 않다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한 잔의 물을 작은 웅덩이에 붓고 겨자씨를 띄우면 배로 삼을 수 있겠지만, 잔을 그곳에 띄우면 곧바로 바닥에 닿을 것이다. 물은 얕은데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의 힘이 두텁지 않으면 큰 날개를 띄울 힘이 없을 것이다. 구만 리 높이 올라가면 바람이 그만큼 아래에 있게 되고 그렇게 되어야 바람을 탈 수 있게 될 것이다. 푸른 하늘을 등지게 되니 아무 거리낌도 없게 되고 그런 뒤에야 남쪽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莊子(內篇) ; 第1篇 逍遙遊[2]- 野馬也, 塵埃也, 生物之以息相吹也. 天之蒼蒼, 其正色邪? 其遠而無所至極邪? 其視下也, 亦若是則已矣. 且夫水之積也不厚, 則其負大舟也無方. 覆杯水於?堂之上, 則芥爲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 風之積也不厚, 則其負大翼也無力. 故九萬里, 則風斯在下矣, 而後乃今培風, 背負靑天而莫之夭閼者, 而後乃今將圖南.
03` 작은 것은 큰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편:1.소요유,3) - 장자(내편) ; 제1편 소요유[3]- 매미와 작은 비둘기가 붕을 비웃으면서 말하였다. “우리는 힘껏 날아야 느릅나무 가지에 올라가 앉을 수 있다. 때로는 거기에도 이르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붕은 9만 리나 높이 올라 남쪽 바다까지 가려는 것인가?” 가까운 근교에 가는 사람은 세 끼의 밥만으로 갔다가 돌아와도 여전히 배가 부르다. 백 리 길을 나서려는 사람은 전날 밤새도록 양식을 찧어 준비해야 하고, 천 리 길을 떠나는 나그네는 석 달 동안 식량을 모아 준비해야 한다. 작은 매미나 비둘기가 무엇을 알겠는가. - 莊子(內篇) ; 第1篇 逍遙遊[3]- ?與學鳩笑之曰:「我決起而飛, ?楡枋而止, 時則不至而控於地而已矣, 奚以之九萬里而南爲?」 適莽蒼者, 三飡而反, 腹猶果然. 適百里者, 宿?糧. 適千里者, 三月聚糧. 之二蟲又何知!
04` 짧은 것은 긴 것을 이해 못한다 (내편:1.소요유,4) - 장자(내편) ; 제1편 소요유[4]-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수명이 짧은 것은 수명이 긴 것에 미치지 못한다. 하루살이 버섯은 한 달을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이것들은 잠깐 동안 사는 것들이다. 초나라 남쪽 바다에 명령이라는 커다란 거북이 있는데, 오백 년을 봄으로 삼고 오백 년을 가을로 삼는다고 한다. 오랜 옛날 대춘이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는 8천년을 봄으로 삼고 8천 년을 가을로 삼았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오래 사는 것들이다. 팽조는 지금까지도 특히 오래 산 사람으로서 전해지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그의 수명과 자기의 수명을 비교하려 한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 莊子(內篇) ; 第1篇 逍遙遊[4]- 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 奚以知其然也? 朝菌不知晦朔, ??不知春秋, 此小年也. 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爲春, 五百歲爲秋.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 此大年也, 而彭祖乃今以久特聞, 衆人匹之, 不亦悲乎!
05`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 (내편:1.소요유,5) - 장자(내편) ; 제1편 소요유[5] - 탕임금이 극에게 물었을 때에도 같은 대답을 했다. 「궁 발의 북쪽에 명해라는 바다가 있는데, 그것이 천지이다. 그곳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넓이는 수천 리에 달하고, 그 길이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그 물고기의 이름은 곤이라 한다. 그곳에는 새도 있는데 그 새의 이름은 붕이라 한다. 그 등은 태산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구만리나 솟아올라 구름도 없는 높은 곳에서 푸른 하늘을 등진 다음에야 남쪽으로 날아가는데 남쪽의 바다로 가려는 것이다. 작은 메추라기가 그것을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 “저 놈은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힘껏 날아올라도 몇 길도 오르지 못하고 아래로 다시 떨어져 쑥대 사이를 오락가락 나는 것이 고작이지만 이 또한 날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저 녀석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작은 것과 큰 것의 분별의 차이인 것이다.」 - 莊子(內篇) ; 第1篇 逍遙遊[5]- 湯之問棘也是已: 湯問棘曰:「上下四方有極乎?」 棘曰:「無極之外, 復無極也. 窮髮之北有冥海者, 天池也. 有魚焉, 其廣數千里, 未有知其修者, 其名爲鯤. 有鳥焉, 其名爲鵬, 背若太山, 翼若垂天之雲, 搏扶搖羊角而上者九萬里, 絶雲氣, 負靑天, 然後圖南, 且適南冥也. 斥?笑之曰:‘彼且奚適也? 我騰躍而上, 不過數?而下, ?翔蓬蒿之間, 此亦飛之至也. 而彼且奚適也?’」 此小大之辯也.
06` 세상의 가치기준을 초월하라 (내편:1.소요유,6) - 장자(내편) ; 제1편 소요유[6]- 지혜는 하나의 관직을 맡아볼 만하고, 행동은 한 고을 정도에 유용하고, 덕은 한 임금을 모시기에 적당하고, 능력은 한 나라의 신임을 받을 만한 사람이 자신을 보는 것도 역시 이 메추리와 같다. 송영자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는 온 세상이 칭찬을 한다 해서 즐거워하는 일이 없었고, 온 세상이 비난을 한다 해도 기죽는 일이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과 밖의 구분이 명확하여 영예와 치욕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으므로 세상일에 대해 연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또한 아직 완전하지는 못하다. 가볍게 바람을 타고 돌아다니다가 15일이 지난 뒤에야 되돌아오곤 했다. 그는 바람이 순조롭고 순조롭지 못한 것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 또한 걸어다니는 번거로운 일에서 벗어났을 뿐 아직도 여전히 바람이라는 의지하는 데가 있는 것이다. 만약 천지의 참 모습을 타고 날씨의 변화를 다스림으로써, 그에 따라 무궁함에 노니는 사람이라면, 그는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인은 자기가 없고, 신인은 공이 없으며, 성인은 이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 莊子(內篇) ; 第1篇 逍遙遊[6]- 故夫知效一官, 行比一鄕, 德合一君而徵一國者, 其自視也亦若此矣. 而宋榮子猶然笑之. 且擧世而譽之而不加勸, 擧世而非之而不加沮, 定乎內外之分, 辯乎榮辱之境, 斯已矣. 彼其於世未數數然也. 雖然, 猶有未樹也. 夫列子御風而行, 冷然善也, 旬有五日而後反. 彼於致福者, 未數數然也. 此雖免乎行, 猶有所待者也. 若夫乘天地之正, 而御六氣之辯, 以遊无窮者, 彼且惡乎待哉! 故曰, 至人无己, 神人无功, 聖人无名.
07` 각자 삶의 분수와 방식이 있다 (내편:1.소요유,7) - 장자(내편) ; 제1편 소요유[7] - 요임금이 천하를 허유에게 물려주려고 말했다. “해 와 달이 떠 있는데도 횃불을 끄지 않는다면 그 빛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 때에 비가 왔는데도 계속해서 논과 밭에 물을 준다면 쓸데없는 짓이 아니겠습니까? 선생께서 즉위하여 다스리면 천하가 더욱 잘 다스려질 것인데도 아직도 내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있으니 천하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허유가 대답했다. “당신이 천하를 다스려 천하는 이미 다스려졌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당신을 대신한다면 그것은 명분을 위해 하는 것이 됩니다. 명분이란 사실의 부수물에 불과합니다. 제가 그 부수물을 위해 천하를 맡아야 되겠습니까? 뱁새는 깊은 숲 속에 둥지를 틀어도 한 개의 나뭇가지를 사용할 뿐이며,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신다 하더라도 그것은 배를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냥 돌아가십시오, 제가 천하를 맡는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습니다. 숙수가 비록 숙설간 일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축 술그릇과 제기를 넘어가 그의 일을 대신하지는 않는 법입니다.” - 莊子(內篇) ; 第1篇 逍遙遊[7]- 堯讓天下於許由, 曰:「日月出矣, 而?不息, 其於光也, 不亦難乎! 時雨降矣, 而猶浸灌, 其於澤也, 不亦勞乎! 夫子立, 而天下治, 而我猶尸之, 吾自視缺然. 請致天下.」 許由曰:「子治天下, 天下旣已治也. 而我猶代子, 吾將爲名乎? 名者實之賓也. 吾將爲賓乎? ??巢於深林, 不過一枝. 偃鼠飮河, 不過滿腹. 歸休乎君, 予无所用天下爲! ?人雖不治?, 尸祝不越樽俎而代之矣.」
08` 신인이란 자연과 하나된 사람이다 (내편:1.소요유,8) - 장자(내편) ; 제1편 소요유[8] - 견오가 연숙에게 물었다. “전에 접여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터무니없이 황당하여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야기에 놀라 은하처럼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너무 크고 엄청나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연숙이 말했다. “그가 대체 어떤 말을 하였습니까?” 견오가 말했다. “막고야산에 신인이 살고 있었답니다. 피부는 얼음이나 눈처럼 희고 몸은 처녀와 같이 부드러웠는데, 오곡을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용을 부리며 세상 밖에 노닐었다고 합니다. 그의 마음은 정에 들어 있어 만물이 상하거나 병드는 일이 없고 곡식들도 잘 여물게 했다고 합니다. 어찌나 황당한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숙이 말했다. “그럴 것입니다. 장님에게는 아름다운 무늬가 소용없고, 귀머거리에게는 악기의 소리가 소용없는 것입니다. 어찌 형체에만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겠습니까? 지혜에도 역시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당신 같은 사람입니다. 그 신인의 덕은 만물과 함께 어울려 하나가 된 것입니다. 세상이 스스로 다스려지도록 되어 있다면 누가 고생하며 천하를 위해 일하겠습니까? 어떤 물건도 그 신인을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장마로 큰 홍수가 나 그 물이 하늘까지 차도 물에 빠지지 않으며, 큰 가뭄에 쇠와 돌이 녹아 흐르고, 흙과 산이 탄다 해도 뜨거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는 먼지나 티끌 혹은 곡식의 빈 껍데기로도 요임금이나 순임금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어찌 사물을 위해 일을 하려 하겠습니까?” - 莊子(內篇) ; 第1篇 逍遙遊[8]- 肩吾問於連叔曰:「吾聞言於接輿, 大而無當, 往而不返. 吾驚怖其言, 猶河漢而無極也. 大有逕庭, 不近人情焉.」 連叔曰:「其言謂何哉?」 「曰:‘?姑射之山, 有神人居焉, 肌膚若氷雪, 綽約若處子. 不食五穀, 吸風飮露. 乘雲氣, 御飛龍, 而遊乎四海之外. 其神凝, 使物不疵?而年穀熟.’ 吾以是狂而不信也.」 連叔曰:「然! ?者无以與文章之觀, 聾者无以與乎鐘鼓之聲. 豈唯形骸有聾盲哉? 夫知亦有之. 是其言也, 猶時女也. 之人也, 之德也, 將旁?萬物以爲一, 世?乎亂, 孰弊弊焉以天下爲事! 之人也, 物莫之傷, 大浸稽天而不溺, 大旱金石流, 土山焦而不熱. 是其塵垢粃糠, 將猶陶鑄堯舜者也, 孰肯分分然以物爲事.」
09` 신인에게는 정치가 맞지 않는다 (내편:1.소요유,9) - 장자(내편) ; 제1편 소요유[9] - 송나라 사람 중에 장보관을 사 가지고 월나라로 팔러간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살았으므로 장보관이 필요없어 관을 팔 수가 없었다. 요임금이 천하의 백성들을 다스려 세상을 평화롭게 하였지만 분수의 북쪽 막고야산으로 가서 네 명의 신인을 만나 보았다면 아득히 천하를 잊어버렸을 것이다. - 莊子(內篇) ; 第1篇 逍遙遊[09]- 宋人資章甫而適諸越, 越人斷髮文身, 无所用之. 堯治天下之民, 平海內之政, 往見四子邈姑射之山, 汾水之陽, ?然喪其天下焉.
10` 물건의 쓰임이란 쓰기에 달린 것이다 (내편:1.소요유,10) - 장자(내편) ; 제1편 소요유[10] -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왕이 내게 큰 박씨를 주기에 그것을 심었더니 잘 자라서 다섯 섬이 들어갈 만한 박이 열렸습니다. 그 박에 물이나 장을 넣었더니 너무 물러서 들 수가 없었으므로 그것을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었더니 너무 크고 펑퍼짐하여 쓸모가 없었습니다. 크기만 하고 쓸데가 없어 깨버렸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선생은 큰 것을 사용하는 법을 제대로 모르시는군요. 송나라 사람 중에 손이 트지 않는 약을 만드는 비법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대대로 솜을 빠는 일을 했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얘기를 듣고 찾아와서 그 비법을 백금에 사겠다는 제안을 했답니다. 그는 가족들을 모아 놓고 의논하려 말했습니다. 「우리는 대대로 솜을 빨았지만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이다. 지금 그 비법을 백금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에게 팔면 하루아침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니 그 비법을 그에게 파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리하여 처방을 그 사람에게 팔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처방을 사 가지고 오나라로 가서 그 비법을 수군에서 쓰도록 오나라 임금을 설득했습니다. 때마침 월나라가 침범해 왔기 때문에 오나라의 임금은 그를 장수로 삼았습니다. 겨울철에 월나라 군사들을 물에서 맞아 싸운 그는 그 처방으로 크게 승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오나라에서 영지까지 봉해 받았다 합니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방법은 같은데 어떤 사람은 나라로부터 땅을 봉해 받고, 어떤 사람은 솜을 빠는 일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것은 쓰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다섯 섬들이 큰 박이 있다면 어찌하여 그것을 배로 삼아 강이나 호수에 띄울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그것이 크고 넓기만 하여 쓸데가 없다고 탓하고 있으니, 선생께서는 생각이 꽉 막힌 분이십니다.” - 莊子(內篇) ; 第1篇 逍遙遊[10]- 惠子謂莊子曰:「魏王貽我大瓠之種, 我樹之成而實五石, 以盛水漿, 其堅不能自擧也. 剖之以爲瓢, 則瓠落無所容. 非不?然大也, 吾爲其無用而?之.」 莊 子曰:「夫子固拙於用大矣. 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 世世以???爲事. 客聞之, 請買其方以百金. 聚族而謀曰:‘我世世爲???, 不過數金. 今一朝而?技百金, 請與之.’ 客得之, 以說吳王. 越有難, 吳王使之將, 冬與越人水戰, 大敗越人, 裂地而封之. 能不龜手, 一也. 或以封, 或不免於???, 則所用之異也. 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 而憂其瓠落無所用? 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
11` 쓸모 없는 것이어서 쓸모가 있다 (내편:1.소요유,11) - 장자(내편) ; 제1편 소요유[11] -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가 사는 곳에 사람들이 가죽나무라 부르는 큰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나무의 큰 줄기는 온통 혹투성이여서 먹줄을 칠 수가 없고, 작은 가지들은 마구 뒤틀려 있어서 자를 댈 수조차 없습니다. 길가에 서 있지만 어떤 목수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이 하는 말 또한 황당하고 쓸모가 없으니 사람들이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자가 말했다. “당신은 삵쾡이를 보지 못했습니까? 몸을 낮게 움츠리고 엎드려 있다가 돌아다니는 작은 짐승을 노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높고 낮은 데를 가리지 않다가 결국 덫에 치거나 그물에 걸려 죽고 맙니다. 태우란 큰 소는 그 크기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아 큰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작은 쥐는 잡지 못합니다. 지금 당신은 큰 나무를 가지고 그것이 쓸데없다고 탓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아무것도 없는 넓고 막막한 들에 그것을 심어 놓고, 하는 일 없이 그 주변을 노닐거나 졸리면 그 아래 드러누워 낮잠을 잘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그 나무는 쓸모가 없으니 도끼에 찍혀 일찍 죽지도 않을 것이고, 어느 것도 그 나무를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데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 어찌 근심거리가 되겠습니까.” - 莊子(內篇) ; 第1篇 逍遙遊[11]- 惠子謂莊子曰:「吾有大樹, 人謂之樗. 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 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 立之塗, 匠者不顧. 今子之言, 大而無用, 衆所同去也.」 莊 子曰:「子獨不見狸猩乎? 卑身而伏, 以候敖者. 東西跳梁, 不避高下. 中於機?, 死於罔?. 今夫?牛, 其大若垂天之雲. 此能爲大矣, 而不能執鼠. 今子有大樹, 患其无用, 何不樹之於无何有之鄕, 廣莫之野, 彷徨乎无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 不夭斤斧, 物无害者, 无所可用, 安所困苦哉!」
12` 자연의 피리소리 (내편:2.제물론,1)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1] - 남곽자기가 안석에 기대어 하늘을 보며 한숨을 짓고 있었는데, 우두커니 있는 모습이 그 자신조차도 잊은 듯했다. 안성자유가 그의 앞에서 시중을 들고 있다가 말했다. “무엇 때문에 그러고 계십니까? 본래가 몸을 마른 나무처럼 만들 수 있는 것입니까? 마음은 본시부터 불 꺼진 재처럼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까? 오늘 안석에 기대고 계신 모습이 전과 다르십니다.” 자기가 말했다. “지금 내가 나 자신을 잊고 있는 것을 네가 알았구나. 너는 사람들의 피리소리는 들었지만 땅의 피리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네가 땅의 피리 소리는 들었다 하더라도 하늘의 피리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가 말했다. “어떻게 하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까.” 자기가 말했다. “대 지가 기운을 내뿜는 것을 바람이라 한다. 바람이 일지 않으면 그만이나, 일어났다 하면 모든 구멍이 성난 듯 울부짖는다. 너는 그 바람 부는 소리를 듣지 못하겠느냐? 산과 숲의 술렁임과 백 아름 되는 큰 나무의 구멍들이 귀, 코, 입과 같으며, 목이 긴 병이나 술잔과도 같고, 절구통이나 깊은 웅덩이와도 같고 얕은 웅덩이와도 같은데, 물 흐르는 소리, 화살 나는 소리, 꾸짖는 소리, 바람들이 마시는 소리, 외치는 소리, 아우성치는 소리, 둔하게 울리는 소리, 맑게 울리는 소리를 낸다. 앞의 것들이 우우 하고 소리를 내면 뒤따르는 것들도 오오 하고 소리를 낸다. 소슬바람에는 작은 소리로 답하여 소리를 내고, 회오리바람에는 큰 소리로 답하여 소리를 낸다. 사나운 바람이 자면 모든 구멍들이 텅 비게 되는데, 너만이 살랑거리고 펄렁거리는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 자유가 말했다. “땅의 피리 소리란 여러 구멍에서 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람의 피리 소리란 대롱에서 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늘의 피리 소리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자기가 말했다. “온갖 물건을 불어서 모두 다르게 제각기 자기 소리를 내게 하는데 모두가 그 스스로 작용을 하지만 성난 듯 소리치는 것은 누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겠느냐?”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1]- 南郭子?隱机而坐, 仰天而噓, ?焉似喪其?. 顔成子游立侍乎前, 曰:「何居乎? 形固可使如槁木, 而心固可使如死灰乎? 今之隱机者, 非昔之隱机者也.」 子?曰:「偃, 不亦善乎? 而問之也! 今者吾喪我, 汝知之乎? 汝聞人?而未聞地?. 汝聞地?而未聞天?夫!」 子游曰:「敢問其方.」 子?曰:「夫大塊噫氣, 其名爲風. 是唯無作, 作則萬竅窺怒?. 而獨不聞之??乎? 山陵之畏佳, 大木百圍之竅穴, 似鼻, 似口, 似耳, 似?, 似圈, 似臼, 似?者, 似汚者, 激者, ?者, 叱者, 吸者, 叫者, ?者, ?者, 咬者. 前者唱于而隨者唱?. 冷風則小和, 飄風則大和, ?風濟則衆竅爲虛. 而獨不見之調調之??乎?」 子游曰:「地?則衆竅是已, 人?則比竹是已. 敢問天?.」 子?曰:「夫天?者, 吹萬不同, 而使其自己也, 咸其自取, 怒者其誰邪!」
13` 위대한 말은 담담하다 (내편:2.제물론,2)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2]-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너그럽고 여유 있지만, 작은 지혜를 가진 사람은 매사에 안절부절 갈피를 잡지 못하며 남의 눈치만 본다. 위대한 말은 담담하지만 하찮은 말은 수다스럽다. 잠이 들면 혼백이 꿈을 꾸고, 깨어나면 육신이 활동을 시작한다. 외부의 사물과 접촉하여 교섭함으로써 마음은 날마다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 가운데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도 있고, 우울한 사람도 있고, 꼼꼼한 사람도 있다. 작은 두려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흠칫 놀라게 하나, 큰 두려움은 오히려 멍청해지게 한다. 쇠뇌의 줄을 퉁기듯 튀어나온다는 말은 사람들이 시비를 가릴 때의 행동을 알맞게 표현한 말이다. 신에게 맹세한 것처럼 꿈적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사람들이 자기 입장을 끝까지 지켜 남을 이기려하는 것을 잘 표현한 말이다. 가을이나 겨울처럼 쇠잔해진다는 말은 사람들이 날로 쇠약하고 있음을 잘 표현한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 일에 자꾸만 빠져 들어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들이 늙고 쇠락하게 되는 것은 욕망에 억눌리어 앞뒤로 꽉 막히게 되기 때문이다. 죽음에 가까워진 사람의 마음은 다시 소생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2]- 大知閑閑, 小知閒閒. 大言炎炎, 小言詹詹. 其寐也魂交, 其覺也形開, 與接爲?, 日以心鬪. ?者, ?者, 密者. 小恐??, 大恐??. 其發若機?, 其司是非之謂也. 其留如詛盟, 其守勝之謂也. 其殺若秋冬, 以言其日消也. 其溺之所爲之, 不可使復之也. 其厭也緘, 以言其老?也. 近死之心, 莫使復陽也.
14` 현상은 있어도 형체는 없다 (내편:2.제물론,3)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3] -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걱정과 탄식, 변덕과 두려움, 경박함과 방탕함, 뽐냄과 허세 같은 사람의 마음이, 음악이 공간에서 생겨나고 버섯이 땅 기운으로 생겨 자라는 것처럼 밤낮으로 우리 앞에 서로 엇바뀌어 나타나지만, 그러나 그 싹이 튼 곳은 알지 못한다. 아 침저녁으로 이것들이 나타나는 것은 그 근원이 있어서 생기는 것이다. 그것들이 아니면 나도 존재할 수 없고, 내가 아니면 그것들도 의지할 곳이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가까울 것이나 그렇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을 주재하는 주재자가 있을 것도 같지만 특별히 그 증거를 발견할 수는 없다. 그것의 작용에 대해서는 이미 믿고 있다 하더라도 그 형체는 볼 수가 없다. 그런 현상은 존재하나 그 형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백 개의 골절, 아홉 개의 구멍, 여섯 가지의 내장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우리는 그 중 어느 것과 친밀한가? 그것을 모두 좋아하는가? 그 중 특별히 사랑하는 것이 있는가? 모두가 같다면 그 모든 것이 신하와 첩 같은 것인가? 신하나 첩 같은 것들은 서로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것들이 번갈아 가며 서로 임금이 되었다 신하가 되었다 하는가? 그래도 참된 임금은 따로 존재할 것이다. 그 현상을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 참된 지배자의 존재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3]- 喜怒哀樂, 慮嘆變?, 姚佚啓態. 樂出虛, 蒸成菌. 日夜相代乎前, 而莫知其所萌. 已乎, 已乎! 旦暮得此, 其所由以生乎! 非彼無我, 非我無所取. 是亦近矣, 而不知所爲使. 若有眞宰, 而特不得其?. 可行已信. 而不見其形, 有情而無形. 百骸.九竅.六藏, ?而存焉, 吾誰與爲親? 汝皆說之乎? 其有私焉? 如是皆有爲臣妾乎? 其臣妾不足以相治乎? 其遞相爲君臣乎? 其有眞君存焉? 如求得其情與不得, 無益損乎其眞.
15` 인생을 달리듯 살지 말라 (내편:2.제물론,4)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4]- 일단 몸을 받고 태어났으면 손상시키지 말고 그것이 다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밖의 물건들과 서로 맞서서 다투며 인생을 내달리듯 살아 그 발길을 멈추지 못한다면 슬픈 일이다. 평생을 발버둥치면서도 이룬 공은 하나도 없고, 일에 지쳐 녹초가 되었어도 그의 귀결은 알지 못한다면 참으로 가여운 일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죽지 않았다고 말한다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육체의 노화를 따라 그의 마음도 같이 늙어 간다면 어찌 큰 슬픔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삶이란 본시부터 이처럼 아둔한 것일까? 아니면 나만 홀로 아둔하고 사람들 중에는 아둔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것일까?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4]- 一 受其成形, 不化以待盡. 與物相刃相靡, 其行進如馳, 而莫之能止, 不亦悲乎! 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 ?然疲役而不知其所歸, 可不哀邪! 人謂之不死, 奚益! 其形化, 其心與之然, 可不謂大哀乎? 人之生也, 固若是芒乎? 其我獨芒, 而人亦有不芒者乎?
16` 마음으로 스승을 삼는다 (내편:2.제물론,5)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5]- 이미 지니고 있는 마음을 좇아 그것을 스승으로 삼는다면 어느 누군들 스승이 없겠는가. 반드시 마음의 변화를 인식하고 마음으로 스스로의 스승을 삼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도 스승은 있다. 그런데 마음으로 스승을 삼지도 않고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그것은 오늘 월나라로 떠나면서 어제 이미 도착했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하는 자는 비록 우임금이라 하더라도 알아줄 수 없는 것이니 나 또한 어쩔 수 없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5]- 夫隨其成心而死之, 誰獨且无師乎? 奚必知代而心自取者有之? 愚者與有焉. 未成乎心而有是非, 是今日適越而昔至也. 是以無有爲有. 無有爲有, 雖有神禹, 且不能知, 吾獨且奈何哉!
17` 말은 소리가 아니다 (내편:2.제물론,6)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6]- 말이란 소리가 아니다. 말이란 것은 어떤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그 말하는 것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말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하는 않는 것일까? 그것은 새끼 새의 우는 소리와는 다르지만, 거기에는 구별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일인가. 도는 어디에 숨겨 있다가 진실과 허위를 드러내며, 말은 어디에 가려져 있다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가. 도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도는 조그만 성취에 숨겨져 있으며, 말은 화려함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와 묵가의 시비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상대가 그르다고 하는 것은 이 쪽에서 옳다 하고, 상대가 옳다고 하는 것은 이 쪽에서 그르다고 한다. 오직 밝은 지혜로만 상대방이 그르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하고, 상대방이 옳다고 하는 것을 그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6]- 夫言非吹也, 言者有言, 其所言者特未定也. 果有言邪? 其未嘗有言邪? 其以爲異於?音, 亦有辯乎, 其無辯乎? 道惡乎隱而有眞僞? 言惡乎隱而有是非? 道惡乎往而不存? 言惡乎存而不可? 道隱於小成, 言隱於榮華. 故有儒墨之是非, 以是其所非而非其所是. 欲是其所非而非其所是, 則莫若以明.
18` 상대적인 판단 (내편:2.제물론,7)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7]- 물건은 저것이 되지 않는 것이 없고, 또 이것이 되지 않는 것도 없다. 저것은 저것의 입장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것으로써 알게 되면 곧 저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 역시 저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저것과 이것이 함께 생겨난다는 말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삶이 있으면 죽음도 있고 죽음이 있으면 삶도 있다. 가능한 것이 있으면 가능하지 않은 것이 있고, 가능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가능한 것이 있다. 옳음이 있어 그릇됨이 있고, 그릇됨이 있어 옳음이 있다. 그래서 성인은 이런 것에 의거하지 않고 그런 것을 자연에 비추어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옳음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것이 저것이 되고 저것은 또 이것이 된다. 저것도 한가지 시비가 되고, 이것도 한가지 시비가 된다. 그러면 과연 저것과 이것이 있는 것인가, 저것과 이것이 없는 것인가? 저것과 이것이라는 상대적인 개념이 없는 것을 도추라 한다. 중추가 되어야 비로소 둥근 고리의 중심을 차지한 꼴이 되어 무궁한 변화에 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옳음도 역시 무궁한 변화중의 하나이고, 그름도 역시 무궁한 변화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밝은 지혜로써 판단하는 것이 가장 옳다고 하는 것이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7]- 物无非彼, 物无非是. 自彼則不見, 自是則知之. 故曰彼出於是, 是亦因彼. 彼是方生之說也, 雖然, 方生方死, 方死方生, 方可方不可. 因是因非, 因非因是. 是以聖人不由, 而照之於天, 亦因是也. 是亦彼也, 彼亦是也. 彼亦一是非, 此亦一是非. 果且有彼是乎哉? 果且无彼是乎哉? 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 以應无窮. 是亦一无窮, 非亦一无窮也. 故曰莫若以明.
19` 당연하다 (내편:2.제물론,8)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8]- 손가락을 가지고서 손가락을 손가락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손가락이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을 손가락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못하다. 말(馬)을 가지고서 말을 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아닌 것을 가지고서 말을 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못하다. 천지는 한 개의 손가락과 같은 것이다. 만물은 한 마리의 말과 같은 것이다. 가능한 것은 할 수 있고, 불가능한 것은 할 수 없다. 도는 행하여짐으로써 이루어지고, 물건은 이름이 붙여짐으로써 그렇게 인식된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는다. 물건에는 본시부터 그렇게 될 요소가 담겨져 있으며, 물건에는 본시부터 가능한 요소가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 물건이란 없으며, 그렇게 가능하지 않은 물건이란 없는 것이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8]- 以指喩指之非指, 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也. 以馬喩馬之非馬, 不若以非馬喩馬之非馬也. 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 道行之而成, 物謂之而然. 有自也而可, 有自也而不可. 有自也而然, 有自也而不然. 惡乎然? 然於然. 惡乎不然? 不然於不然. 惡乎可? 可於可. 惡乎不可? 不可於不可. 物固有所然, 物固有所可. 無物不然, 無物不可.
20` 모두가 하나다 (내편:2.제물론,9)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9]- 종채와 기둥, 문둥이와 서시, 진기한 것과 괴상한 것 등은 도에 있어서는 모두가 통하여 하나가 된다. 분산은 다른 면에서는 성립이 된다. 성립은 다른 면에서는 파괴가 된다. 모든 물건에는 성립과 파괴가 없으며 다시 통하여 하나가 된다. 통달한 사람만이 모든 것이 통하여 하나가 됨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개인의 판단을 사용하지 않고 보편적인 영원한 것에 일체를 맡긴다. 보편적이고 영원하다는 뜻의 용(庸)은 작용이란 뜻의 용(用)과 통한다. 용(用)은 또 통(通)과 뜻이 통한다. 통(通)은 제대로 된다는 득(得)과 뜻이 통한다. 알맞게 제대로 된다면 거의 도에 이른 것이다. 이것을 근거로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었는데도 그렇게 된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을 일컬어 도라고 하는 것이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9]- 故爲是擧?與楹, ?與西施, 恢[?+危]?怪, 道通爲一. 其分也, 成也. 其成也, 毁也. 凡物無成與毁, 復通爲一. 唯達者知通爲一, 爲是不用而寓諸庸. 庸也者, 用也. 用也者, 通也. 通也者, 得也. 因是已. 已而不知其然, 謂之道.
21` 조삼모사 (내편:2.제물론,10)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10]- 정신과 마음을 통일하려 애쓰면서도, 모든 것이 같음을 알지 못하는 것을 조삼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조삼이라고 하는가? 옛날에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말했다.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朝三暮四)를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내었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명분이나 사실에 있어서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기뻐하고 성내는 다른 반응을 보인 것도 역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은 모든 시비를 조화시켜 균형 된 자연에 몸을 쉬는데, 이것을 일컬어 양행(兩行)이라 말한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10]- 勞神明爲一, 而不知其同也, 謂之朝三. 何謂朝三? 狙公賦?曰:「朝三而暮四.」衆狙皆怒. 曰:「然則朝四而暮三.」衆狙皆悅. 名實未虧而喜怒爲用, 亦因是也. 是以聖人和之以是非而休乎天釣, 是之謂兩行.
22` 존재 자체까지 잊는다 (내편:2.제물론,11)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11]- 옛날 지혜가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 있었다. 처음부터 사물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니, 지극하고도 완전하여 더 무엇을 보탤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다음의 경지는 사물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아무런 구별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다음의 경지는 사물에 구별이 있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옳고 그른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옳고 그르다는 시비가 드러난다는 것은 도가 무너지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도가 무너지는 것으로 말미암아 편애가 생기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과연 이루어짐과 무너짐은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11]- 古之人, 其知有所至矣. 惡乎至? 有以爲未始有物者, 至矣, 盡矣, 不可以加矣. 其次, 以爲有物矣, 而未始有封也. 其次, 以爲有封焉, 而未始有是非也. 是非之彰也, 道之所以虧也. 道之所以虧, 愛之所以成. 果且有成與虧乎哉? 果且無成與虧乎哉?
23` 영원하고 평범한 것에 맡겨라 (내편:2.제물론,12)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12] - 옛날 소씨가 금을 타던 경우가 이룸과 무너짐이 있는 예이고, 옛날 소씨가 금을 타고 있지 않던 경우가 이룸과 무너짐이 없는 예이다. 소문은 금을 탔었고, 사광은 지팡이를 짚고 음악을 들었으며, 혜자는 오동나무 안석에 기대어 대화를 했다. 이들 세 사람의 지혜는 모두 최고의 경지에 있었으므로 후세에까지 기록으로 전하여진 것이다. 그 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이 남들이 좋아하는 것보다 특이하다 생각하여 자기들의 특기를 남들에게 밝히려고 애썼다. 밝힐 수 없는 것으로 남들에게 밝히려 들었기 때문에 결국은 단단함과 흰 것은 같다는 견백론(堅白論)의 어리석음으로 끝맺은 것이다. 그래서 소문의 아들 또한 소문의 기술을 계승하는데 머물고 평생 이룬 것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이 이룬 것을 성취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도 무엇이든 성취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들이 이룬 것을 성취라고 말할 수가 없다면 사물에게나 우리에게나 성취란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성인들은 도를 어지럽히는 빛을 없애려고 했다. 그래서 자기 본위의 방법을 쓰지 않고 영원하고 평범한 것에 자기를 맡겼던 것이다. 이것을 밝힘이라 말하는 것이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12] - 有成與虧, 故昭氏之鼓琴也. 無成與虧, 故昭氏之不鼓琴也. 昭文之鼓琴也, 師曠之枝策也, 惠子之據梧也, 三子之知, 幾乎皆其盛者也, 故載之末年. 唯其好之也, 以異於彼. 其好之也, 欲以明之. 彼非 所明而明之, 故以堅白之昧終. 而其子又以文之綸終, 終身無成. 若是而可謂成乎? 雖我無成, 亦可謂成矣. 若是而不可謂成乎? 物與我無成也. 是故滑疑之耀, 聖人之所圖也. 爲是不用而寓諸庸, 此之謂以明.
24` 인식과 평가는 완전한 것이 못 된다 (내편:2.제물론,13)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13]- 여기 하나의 이론이 있다 하고, 그것이 이와 같이 밝은 지혜인가, 이와 같지 않은 것인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같은 것과 같지 않은 것이 모두 비슷한 것이기 때문에 곧 궤변과도 다를 것이 없게 될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한번 생각해 보자. 시작이라는 것이 있다면 일찍이 시작되지 않았던 적이 있을 것이며, 일찍이 시작되지 않았던 그 전도 있을 것이다.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다면, 일찍이 있고 없는 것도 없었던 적이 있을 것이며, 일찍이 있고 없는 것도 없었던 그 전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갑자기 없는 것이 존재하게 되는데, 그 때도 있고 없는 것 중에 과연 어떤 것이 있고 어느 것이 없었는지는 알지를 못한다. 지금 내게는 이미 이론이 있다. 그러나 내가 전개한 논리 중에 과연 이론이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13] - 今且有言於此, 不知其與是類乎? 其與是不類乎? 類與不類, 相與爲類, 則與彼无以異矣. 雖然, 請嘗言之. 有始也者, 有未始有始也者, 有未始有夫未始有始也者. 有有也者, 有无也者, 有未始有无也者, 有未始有夫未始有无也者. 俄而有无矣, 而未知有无之果孰有孰无也. 今我則已有謂矣, 而未知吾所謂之其果有謂乎, 其果无謂乎?
25` 나아감 없이 자기 분수를 따라라 (내편:2.제물론,14)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14]- 세상에 짐승의 가을털 끝 보다 더 큰 것은 없다고 여길 수도 있고, 태산을 작다고 여길 수도 있다. 어려서 죽은 아이보다 더 오래 살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팽조를 일찍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늘과 땅은 우리와 더불어 함께 존재하고 있고, 만물은 우리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다. 이미 하나가 되어 있으니 이론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미 하나로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또한 이론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하나라는 것과 이론은 두 가지가 되며, 그 두 가지와 하나로 또 세 가지가 된다. 그렇게 미루어 나아간다면 아무리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라 해도 계산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보통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처럼 없는 것으로부터 있는 데로 가는 데도 세 가지가 되었으니, 있는 것으로부터 있는 데로 나가는 데는 어떻겠는가? 나아감 없이 자기 분수를 따르기만 해야 될 것이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14]- 天 下莫大於秋毫之末, 而大山爲小. 莫壽於?子, 而彭祖爲夭. 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 旣已爲一矣.且得有言乎? 旣已謂之一矣, 且得无言乎? 一與言爲二, 二與一爲三. 自此以往, 巧曆不能得, 而況其凡乎! 故自无適有以至於三, 而況自有適有乎! 无適焉, 因是已.
26` 사람들의 분별이란 옳지 못하다 (내편:2.제물론,15)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15] - 도에는 본래 한계가 없다. 말(言)에는 본래 항구성이 없다. 그 때문에 말에는 구별이 생기는 것이다. 말에는 왼편이 있고 오른편이 있으며, 논(論)에는 설명이 있으며, 분석이 있고 분별이 있으며, 대립이 있고 다툼이 있다. 이것을 여덟 가지 덕이라 말한다. 천지사방 밖의 일을 성인은 살피기만 할 뿐 말하지 않는다. 천지사방 안의 일을 성인은 논하기만 할 뿐 설명하지 않는다. 춘추는 세상을 다스리는 길을 쓴 책으로 옛 임금들의 뜻이 적혀 있는데, 성인은 일을 설명하기만 했지 일의 성격을 분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분석해야 할 것에 대하여 분석하지 않은 것이 있고, 분별해야 할 것에 대하여 분별하지 않은 것이 있다. 어째서 그런 것인가. 성인들은 모든 것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나, 보통사람들은 모든 것을 분별함으로써 자기를 내세우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별하는 사람들은 옳게 보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15] - 夫道未始有封, 言未始有常, 爲是而有畛也, 請言其畛:有左, 有右, 有倫, 有義, 有分, 有辯, 有競, 有爭, 此之謂八德. 六合之外, 聖人存而不論, 六合之內, 聖人論而不議. 春秋經世先王之志, 聖人議而不辯. 故分也者, 有不分也. 辯也者, 有不辯也. 曰:「何也? 聖人懷之, 衆人辯之以相示也. 故曰辯也者, 有不見也.
27` 드러나는 것은 참된 것이 아니다 (내편:2.제물론,16)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 [16] - 위대한 도는 말로 표현하지 않으며, 위대한 이론은 말로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 위대한 사랑(仁)은 사랑하지 않는 듯하며, 위대한 청렴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위대한 용기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 도 가 밝게 드러난다면 도가 아닌 것이며, 말이 이론화하면 불충분한 것이다. 사랑을 늘 한다면 완전한 것이 못되며, 청렴함이 분명히 드러난다면 믿을 수 없는 것이며, 용기가 남을 해친다면 완전한 것이 못된다. 이 다섯 가지를 버리지 않고 있어야만 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지혜가 그의 지혜로써는 알 수 없는 곳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면 지극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어느 누가 말로 표현되지 않은 이론이나, 도의 모습을 지니지 않은 도를 알고 있는가? 만약 그런 것을 잘 아는 이가 있다면 그를 자연의 보고인 천부(天府)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부어도 차는 일이 없고, 퍼내도 마르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근원은 알 수가 없으니, 이러한 경지를 바로 빛을 싸서 감추는 보광이라 하는 것이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16] - 夫大道不稱, 大辯不言, 大仁不仁, 大廉不?, 大勇不?. 道昭而不道, 言辯而不及, 仁常而不周, 廉淸而不信, 勇?而不成. 五者[?+元]而幾向方矣. 故知止其所不知, 至矣. 孰知不言之辯, 不道之道? 若有能知, 此之謂天府. 注焉而不滿, 酌焉而不竭, 而不知其所由來, 此之謂?光.
28` 태양보다 밝다면 거리낌이 없다 (내편:2.제물론,17)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17] - 옛날에 요가 순에게 물었다. “나는 종, 회, 서오 세 나라를 정벌하려 하네. 그러나 임금 자리에 있으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확연하지 않으니 왜 그런 것일까?” 순이 말했다. “세나라는 아직 쑥풀이 무성한 미개한 부족 국가입니다. 마음이 꺼림칙한 것은 어쩐 일이십니까? 옛적에 10개의 태양이 일시에 만물을 샅샅이 비춘 일이 있습니다. 하물며 마음의 덕이 태양보다 밝다면 무슨 거리낌이 있겠습니까?”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17]- 故昔者堯問於舜曰:「我欲伐宗.膾.胥敖, 南面而不釋然. 其故何也?」 舜曰:「夫三子者, 猶存乎蓬艾之間. 若不釋然, 何哉? 昔者十日竝出, 萬物皆照, 而況德之進乎日者乎!」
29` 분별은 의미 없는 것이다 (내편:2.제물론,18) 도망 가는 물고기` 미인` 아름다움` 미의 기준`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18]- 설결이 왕예에게 물었다. “물건은 모두가 다 같다는 말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내가 그 것을 어찌 알겠는가?” “그렇다면 물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내가 어찌 그것을 알겠느냐? 내가 말하는 안다는 것이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그 어찌 알겠느냐? 내가 말하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님을 어찌 알겠느냐? 사람이 습지에서 자면 허리에 병이 나고 죽게 되는데 미꾸라지도 그렇더냐? 사람은 나무 위에서 두려워 벌벌 떠는데 원숭이도 그렇더냐? 이 들 중 어느 것이 바른 거처를 알고 있는 것이냐? 사람들은 소 ?양 ?개 ?돼지를 잡아먹고, 고라니와 사슴은 부드러운 풀을 먹고, 지네는 뱀을 잘 먹고, 솔개와 까마귀는 쥐를 좋아한다. 이들 중에서 어느 것이 올바른 맛을 알고 있는 것이냐? 원숭이는 편저의 암컷이 되고, 고라니는 사슴과 교미를 하며,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어울려 논다. 모장과 여희는 사람들이 미인이라 하지만 물고기는 그들을 보면 물 속 깊이 들어가고, 새는 그들을 보면 높이 날아가고, 고라니와 사슴은 그들을 보면 뛰어 달아난다. 이들 중 누가 천하의 올바른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것이냐? 어짊과 의로움의 기준이나 옳고 그른 판단의 방향이 어지러이 뒤섞여 있다. 내 어찌 그 분별을 알 수 있겠느냐?”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18]- 齧缺問乎王倪曰:「子知物之所同是乎?」 曰: 「吾惡乎知之!」 「子知子之所不知邪?」 曰: 「吾惡乎知之!」 「然則物无知邪?」 曰: 「吾惡乎知之! 雖然嘗試言之. 庸?知吾所謂知之非不知邪? 庸?知吾所謂不知之非知邪? 且吾嘗試問乎汝:民濕寢則腰疾偏死, ?然乎哉? 木處則?慄恂懼, ??然乎哉? 三者孰知正處? 民食芻?, ?鹿食薦, ??甘帶, ?鴉嗜鼠, 四者孰知正味? ??狙以爲雌, ?與鹿交, ?與魚游. 毛?.西施, 人之所美也. 魚見之深入, 鳥見之高飛, ?鹿見之決驟. 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 自我觀之, 仁義之端, 是非之塗, 樊然?亂, 吾惡能知其辯!」
30` 지극한 사람은 이해를 초월해 있다 (내편:2.제물론,19) 설결이 말했다. “이롭고 해로운 것을 알지 못하신다면 지인은 이해(利害)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지인이란 신묘한 것이다. 큰 연못을 말릴 뜨거운 불도 그를 뜨겁게 할 수 없고, 큰 강물을 얼어붙게 하는 추위도 그를 춥게 할 수 없다. 굉장한 천둥과 번개가 산을 무너뜨리고 바람이 바다를 뒤흔들어도 놀라는 일이 없다. 그런 사람은 구름을 타고 해와 달에 올라앉아 이 세상 밖에 노니는 것이다. 죽음과 삶도 그에게 변화를 가져올 수 없거늘 하물며 이해의 평가야 어떻겠느냐?”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19]- 齧缺曰:「子不知利害, 則至人固不知利害乎?」 王倪曰:「至人神矣! 大澤焚而不能熱, 河漢?而不能寒, 疾雷破山而不能傷, 飄風振海而不能驚. 若然者, 乘雲氣, 騎日月, 而遊乎四海之內. 死生無變於己, 而況利害之端乎!」
31` 가치의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 본다 (내편:2.제물론,20)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20]- 구작자가 장오자에게 물었다. “공자에게 「성인은 세상일에 종사하지 않으며, 이로움도 쫓지 않고 해로움도 피하지 않는다. 무엇을 추구하지도 않고 도를 따르지도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말한 것과 같이 표현되며, 말을 해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 먼지 묻은 세상 밖에 노닌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공자는 이 말을 터무니없는 말이라 하였지만, 내 생각에는 묘한 도를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오자가 말했다. “그것은 황제(黃帝)가 들었다 하더라도 당황할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어찌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또한 당신은 너무 서두르고 있습니다. 달걀을 보고 닭이 울기를 바라고, 탄환을 보고서 새 구이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 말해 줄 테니 한번 들어보도록 하십시오. 성 인이란 해와 달을 의지하여 행동하고 우주를 옆에 끼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행동은 자연에 합치되고 몸은 혼돈 속에 두며, 모든 사람들을 존중합니다. 보통사람들은 고생스럽게 몸과 마음을 쓰지만 성인은 아무 생각 없이 지냅니다. 억만년에 걸친 변화 가운데 몸을 맡기면서도 다만 한결같이 순수한 도를 지켜나갑니다. 만물을 모두 있는 그대로 두고, 인정하는 따듯이 마음으로 이것을 감싸는 것입니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20]- 瞿鵲子問乎長梧子曰:「吾聞諸夫子:‘聖人不從事於務, 不就利, 不違害, 不喜求, 不緣道. 无謂有謂, 有謂无謂, 而遊乎塵垢之外.’ 夫子以爲孟浪之言, 而我以爲妙道之行. 吾子以爲奚若?」 長梧子曰:「是皇帝之所聽熒也, 而丘也何足以知之! 且汝亦大早計, 見卵而求時夜, 見彈而求?炙. 「予嘗爲女妄言之, 女以妄聽之奚? 旁日月, 挾宇宙, 爲其?合, 置其滑?, 以隸相尊. 衆人役役, 聖人愚芚, 參萬歲而一成純. 萬物盡然, 而以是相蘊.
32` 사람들의 판단은 불완전한 것이다 (내편:2.제물론,21)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21]- 내 어찌 삶을 즐기는 것이 미혹한 일이 아님을 알겠는가? 내 어찌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어려서 고향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과 같지 않음을 알겠는가? 여 희는 예 땅의 경계를 지키는 관리의 딸이었다. 진나라에서 그녀를 처음 데려왔을 때에는 슬픔에 옷깃이 젖도록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임금의 방에 들어가서 임금과 호사스러운 자리를 같이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자, 그녀는 처음에 울었던 일을 후회했다. 내 어찌 죽는 사람이 그가 처음에 삶을 희구했던 일을 후회하지 않음을 알겠는가?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21]- 「予惡乎知說生之非惑邪! 予惡乎知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邪! 麗之姬, 艾封人之子也, 晉國之始得之也, 涕泣沾襟. 及其至於王所, 與王同筐牀, 食芻?, 而後悔其泣也. 予惡乎知夫死者不悔其始之?生乎!
33` 삶도 죽음도 모두 커다란 꿈이다 (내편:2.제물론,22)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22]- 꿈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거워하던 사람이 아침이 되어 울게 되는 경우가 있다. 꿈속에서 슬피 울던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사냥을 나가기도 한다. 꿈 을 꾸고 있을 때에는 그것이 꿈인 줄을 모른다. 또한 꿈속에서 그 꿈을 점치기도 한다. 꿈에서 깬 뒤에야 그것이 꿈인 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은 스스로 깨어 있다고 생각하고 버젓이 아는 척하며 임금이니 목동이니 하지만, 어리석은 일이다. 나와 그대는 모두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대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역시 꿈인 것이다. 이러한 말을 사람들은 이상한 말이라 할 것이다. 만세 뒤에 위대한 성인을 만나 그 뜻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늦은 것이 아니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22]- 「夢飮酒者, 旦而哭泣. 夢哭泣者, 旦而田獵. 方其夢也, 不知其夢也. 夢之中又占其夢焉, 覺而後知其夢也. 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 而愚者自以爲覺, 竊竊然知之. 君乎, 牧乎, 固哉! 丘也與女, 皆夢也. 予謂女夢, 亦夢也. 是其言也, 其名爲弔詭. 萬世之後而一遇大聖, 知其解者, 是旦暮遇之也.」
34`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내편:2.제물론,23)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23]- 나와 그대가 논쟁을 하였다고 하자. 그대가 이기고 내가 졌다면, 과연 그대가 옳고 나는 그른 것인가. 내가 이기고 그대가 졌다면, 과연 내가 옳고 그대는 그른 것일까? 그 어느 쪽은 옳고 어느 쪽은 그른 것일까? 우리 모두가 옳거나 우리 모두가 그른 것일까? 우리 모두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본시부터 멍청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해야 하겠는가.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한다면, 이미 그대와 의견이 같은데 어떻게 올바로 판정을 해줄 수 있겠는가?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와 의견이 같은데 어떻게 올바로 판정을 해줄 수가 있겠는가? 나나 그대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나 그대와는 의견이 다른데 어찌 올바로 판단을 해줄 수 있겠는가? 나나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이미 나나 그대와 의견이 같은데 어찌 올바른 판정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나 그대나 다른 사람들이나 모두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논리를 믿겠는가?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23]- 「旣使我與若辯矣, 若勝我, 我不若勝, 若果是也, 我果非也邪? 我勝若, 若不吾勝, 我果是也, 而果非也邪? 其或是也, 其或非也邪? 其俱是也, 其俱非也邪? 我與若不能相知也, 則人固受?闇, 吾誰使正之? 使同乎若者正之? 旣與若同矣, 惡能正之! 使同乎我者正之? 旣同乎我矣, 惡能正之! 使異乎我與若者正之? 旣異乎我與若矣, 惡能正之! 使同乎我與若者正之? 旣同乎我與若矣, 惡能正之! 然則我與若與人俱不能相知也, 而待彼也邪?
35` 변화하는 이론은 무의미한 것이다 (내편:2.제물론,24)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24]- 변하는 이론을 믿는 것은 믿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자연의 분수로서 모든 것을 조화시키고 무궁함으로써 모든 것의 바탕을 삼는 것이 주어진 삶을 다하는 방법이다. 자연의 분수로써 모든 것을 조화시킨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옳은 것이 만약 정말 옳은 것이라면, 옳은 것이 옳지 않은 것과 다르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게 된다. 그런 것이 정말로 그렇다면, 그런 것이 그렇지 않은 것과 다르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나이도 잊고 의리도 잊고 무한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한한 경지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24]- 「化聲之相待, 若其不相待, 和之以天倪, 因之以曼衍, 所以窮年也. 何謂和之以天倪? 曰:是不是, 然不然. 是若果是也, 則是之異乎不是也, 亦無辯. 然若果然也, 則然之異乎不然也亦無辯. 忘年忘義, 振於無竟, 故寓諸無竟.」
36` 지혜에 의한 평가는 부질없다 (내편:2.제물론,25)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25]- 망양이 그림자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는 걸어다니더니 지금은 멈춰 있습니다. 조금 전에는 앉아 있더니 지금은 서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마음가짐이 일정하지 못합니까?” 그림자가 말했다. “내가 의지하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내가 의지하는 것도 또한 의지하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내가 의지하는 것은 뱀 껍질이나 매미 날개 같은 것일까요? 어찌 그런 까닭을 알겠으며, 어찌 그렇지 않은 까닭을 알겠습니까?”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25]- 罔兩問景曰:「?子行, 今子止. ?子坐, 今子起. 何其无特操與?」 景曰:「吾有待而然者邪? 吾所待又有待而然者邪? 吾待蛇??翼邪? 惡識所以然! 惡識所
37` 장자와 나비 (내편:2.제물론,26) - 장자(내편) ; 제2편 제물론[26]-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다. 스스로 즐겁게 느끼면서도 자기가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니 자신은 엄연한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어 있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분별이 있다. 이러한 것을 물화(物化)라 부른다. - 莊子(內篇) ; 第2篇 齊物論[26]- 昔者莊周夢爲胡蝶, ??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38` 앎을 버려야 참된 삶을 누릴 수 있다 (내편:3.양생주,1) - 장자(내편) ; 제3편 양생주[1]- 우리의 삶에는 한계가 있으나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삶을 가지고 한계가 없는 앎을 뒤쫓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그런데도 앎을 추구하는 자가 있다면 위태로울 따름이다. - 莊子(內篇) ; 第3篇 養生主[1]- 吾生也有涯, 而知也无涯. 以有涯隨无涯, 殆已. 已而爲知者, 殆而已矣.
39` 선과 악의 중간 바르고 자연스러운 길을 가라 (내편:3.양생주,2) - 장자(내편) ; 제3편 양생주[2]- 선을 행함에 있어서는 명성을 가까이 하지 말고, 악을 행함에 있어서는 형벌을 가까이 하지 말며, 중정(中正)을 따름을 법도로 삼는다면 몸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고, 어버이를 부양할 수 있을 것이며, 타고난 자기 수명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 莊子(內篇) ; 第3篇 養生主[2]- 爲善无近名, 爲惡无近刑. 緣督以爲經, 可以保身, 可以全生, 可以養親, 可以盡年.
40` 자기도 대상도 없이 자연의 원리를 따라라 (내편:3.양생주,3) - 장자(내편) ; 제3편 양생주[3]- 한 백정이 문혜왕을 위해 소를 잡았다. 그의 손이 닿는 곳이나, 어깨를 기대는 곳이나, 발로 밟는 곳이나, 무릎으로 누르는 곳에서는 뼈와 살이 떨어졌다. 칼이 지날 때마다 설겅설겅 소리가 나는데 모두가 음률에 들어맞았다. 그의 동작은 상림의 춤과 같았으며, 그의 절도는 경수의 장단과도 같았다. 문혜왕이 말했다. “훌륭하다. 어떻게 하여 재주가 이런 경지에까지 이를 수가 있는가?” 백정이 칼을 놓고 대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로 재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잡았을 때는 보이는 것이 모두 소였습니다. 그러나 삼 년 뒤에는 완전한 소가 보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정신으로 소를 대할 뿐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감각의 작용은 멈추고 정신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천연의 조리를 따라 틈과 틈을 가르고, 큰 구멍을 따라 칼을 찌릅니다. 소의 본래 구조에 따라 칼을 쓰게 되어 힘줄이나 질긴 근육에 칼이 닿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니 큰 뼈에 칼이 닿는 일도 없습니다. 훌 륭한 백정은 일년마다 칼을 바꾸는데 그 이유는 살을 자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쓰는 칼은 십구년이 되었으며, 그 사이 잡은 소는 수천 마리에 이릅니다. 그러나 아직도 칼날은 숫돌에 새로 간 것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으나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넣기 때문에 칼의 움직임은 언제나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십구년이 지나도 칼날은 새로 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렇지만 뼈와 살이 엉긴 곳은 저로서도 다루기 어렵습니다. 조심조심하면서 눈은 그곳을 주목하고 동작을 늦추며 칼을 매우 미세하게 움직입니다. 그러면 후두둑 살과 뼈가 떨어져 흙이 땅 위에 쌓이듯 쌓입니다. 그렇게 되면 칼을 들고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흡족한 기분에 젖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잘 닦아 잘 보관해 둡니다.” 문혜왕이 말했다. “훌륭하다! 나는 백정의 말을 듣고서 삶을 기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 莊子(內篇) ; 第3篇 養生主[3]- ?丁爲文惠君解牛, 手之所觸, 肩之所倚, 足之所履, 膝之所?, ?然嚮然, 奏刀?然, 莫不中音. 合於桑林之舞, 乃中經首之會. 文惠君曰:「?, 善哉! 技蓋至此乎?」 ? 丁釋刀對曰:「臣之所好者道也, 進乎技矣, 始臣之解牛之時, 所見无非全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方今之時, 臣以神遇而不以目視, 官知之而神欲行. 依乎天理, 批大? 導大?因其固然, 技經肯?之未嘗微?, 而況大?乎! 良?歲更刀, 割也. 族?月更刀, 折也. 今臣之刀十九年矣, 所解數千牛矣, 而刀刃若新發於?. 彼節者有閒, 而刀刃者無厚. 以無厚入有閒, 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是以十九年而刀刃若新發於?. 雖然, 每至於族, 吾見其難爲, ?然爲戒, 視爲止, 行爲遲. 動刀甚微, ?然已解, 如士委地. 提刀而立, 爲之四顧, 爲之躊躇滿志, 善刀而藏之.」 文惠君曰:「善哉! 吾聞포丁之言, 得養生焉.」
41` 분수대로 자연을 따라 살아라 (내편:3.양생주,4) - 장자(내편) ; 제3편 양생주[4]- 공문헌이 우사를 보고 놀라며 말했다. “어찌된 일인가? 어째서 한 발을 잘렸는가? 하늘이 그랬는가? 사람이 그랬는가?” 우사가 말했다.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지 사람이 한 일은 아닙니다. 하늘이 나를 만들 때 외발이 되도록 정한 것입니다. 사람의 모습은 두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 외발도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지 사람의 짓이 아닌 것입니다. 못 가에 사는 꿩은 열 발자국을 걸어야 한 번 쪼을 모이를 만나고, 백 발자국을 걸어야 한 번 마실 물을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갇혀 길러지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우리 속에서는 신경을 쓰며 고생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 곳에 사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 莊子(內篇) ; 第3篇 養生主[4]- 公文軒見右師而驚曰:「是何人也? 惡乎介也? 天與, 其人與?」 曰:「天也, 非人也. 天之生是使獨也, 人之貌有與也. 以是知其天也, 非人也.」 澤雉十步一啄, 百步一食, 不?畜乎樊中. 神雖王, 不善也.
42` 죽음과 삶에 초연해야 한다 (내편:3.양생주,5) - 장자(내편) ; 제3편 양생주[5]- 노담이 죽자, 진실이 가서 세 번 곡하고는 나왔다. 그의 제자가 물었다. “돌아가신 분은 선생님의 친구가 아닙니까?” “그래, 친구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문상을 해도 되는 것입니까?” “그래. 처음에는 나도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문상을 하면서 보니 노인들은 자기 자식을 잃은 것처럼 곡을 하고, 젊은이들은 그의 어버이를 여읜 것처럼 곡을 했다. 그들이 그의 죽음에 슬퍼하는 까닭은 반드시 조상을 하여 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조상을 하도록 만들고, 반드시 곡을 해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곡을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을 어기고 인정을 배반한 것이며 그의 분수를 잊은 것이다. 그 런 것을 옛날에는 자연을 어긴 죄악이라 말했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가 태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며, 그 사람이 죽은 것 또한 죽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윤회하는 때에 안주하고, 주어진 운명에 따르면 슬픔이나 즐거움이 파고들 수 없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것을 하늘의 속박에서의 벗어나는 것이라 불렀었다.” - 莊子(內篇) ; 第3篇 養生主[5]- 老聃死, 秦失弔之, 三號而出. 弟子曰:「非夫子之友邪?」 曰:「然.」 「然則弔焉若此, 可乎?」 曰: 「然. 始也吾以爲至人也, 而今非也. 向吾入而弔焉, 有老者哭之, 如哭其子. 少者哭之, 如哭其母. 彼其所以會之, 必有不?言而言, 不?哭而哭者. 是遯天倍情, 忘其所受, 古者謂之遁天之刑. 適來, 夫子時也. 適去, 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 古者謂是帝之懸解.」
43` 자연에 의해 얻어지는 것은 영원하다 (내편:3.양생주,6) - 장자(내편) ; 제3편 양생주[6]- 손가락으로 땔나무를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으나 불을 널리 옮기는 데에는 그 한계를 알지 못한다. - 莊子(內篇) ; 第3篇 養生主[6]- 指窮於爲薪, 火傳也, 不知其盡也.
44` 자신을 먼저 살펴라 (내편:4.인간세,1)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1]- 안회가 공자에게 여행을 떠나겠다고 말하자, 공자가 말했다.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위나라로 갈까 합니다.” “무엇 하러 가려는 것이냐?” “듣자하니 위나라 임금은 나이가 젊고, 독단적인 행동만 한다고 합니다. 그는 나라를 잘못 다스리면서도 자기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백성들의 죽음도 가벼이 여겨 나라 안에 죽은 사람들이 가득하여 연못 속의 이끼 같다 합니다. 백성들은 갈 곳조차 없다 합니다. 저는 일찍이 선생님께서「잘 다스려지는 나라에서 떠나 어지러운 나라로 가야 한다. 의사의 집에 병자가 많이 모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실행하려고 합니다. 제가 가면 그 나라는 바르게 고쳐질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네가 가면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도란 잡되지 않아야 한다. 잡되면 일이 많아지고, 일이 많아지면 어지러워지고, 어지러우면 근심이 생기고, 근심이 생기면 구제해 줄 수도 없게 된다. 옛날의 지극한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살피고 난 뒤에야 남의 일에 관여했다. 자기 자신을 살펴본 결과가 불안정한데 난폭한 사람이 하는 행동을 간섭할 틈이 어디 있겠느냐?”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1]- 顔回見仲尼, 請行. 曰:「奚之?」 曰:「將之衛.」 曰:「奚爲焉?」 曰:「回聞衛君, 其年壯, 其行獨, 輕用其國, 而不見其過. 輕用民死, 死者以(國)量乎澤, 若蕉, 民其無如矣, 回嘗聞之夫子曰:‘治國去之, 亂國就之, 醫門多疾.’ 願以所聞, 思其所行, 則庶幾其國有?乎!」 仲尼曰:「?! 若殆往而刑耳! 夫道不欲雜, 雜則多, 多則擾, 擾則憂, 憂而不救. 古之至人, 先存諸己而後存諸人. 所存於己者未定, 何暇至於暴人之所行!
45` 덕과 지혜를 내세우면 위험하다 (내편:4.인간세,2)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2]- “너는 덕이 어떤 곳으로 흐르기 쉽고, 지(知)라는 것이 어떤 것에서 나오는지 아느냐? 덕은 명예심으로 흐르기 쉽고, 지는 경쟁심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명예욕은 서로를 손상시키고, 지는 다툼의 도구인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흉기이므로 지나치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 한 덕이 두텁고 신의가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기분을 잘 알지 못하면서 명성에 대해 남과 다퉈서는 안 된다. 또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면서 인의로 사람들을 바르게 하겠다며 난폭한 사람 앞에서 논의를 하면 미덕을 가지고도 그것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게 된다. 이러한 사람을 남을 해치는 사람이라 부르는 것이다. 남을 해치는 사람은 남이 반드시 그를 해치게 되어 있다. 너 또한 다른 사람으로 인해 해를 입게 될 것이다.”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2]- 「且若亦知夫德之所蕩而知之所爲出乎哉? 德蕩乎名, 知出乎爭. 名也者, 相軋也. 知者也, 爭之器也. 二者凶器, 非所以盡行也. 「且德厚信?, 未達人氣, 名聞不爭, 未達人心. 而强以仁義繩墨之言衒暴人之前者, 是以人惡育其美也, 命之曰?人. ?人者, 人必反?之, 若殆爲人?夫!
46` 모두 명성과 실리를 추구한다 (내편:4.인간세,3)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3]- “만약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못난 사람을 미워하는 임금이라면 어찌 네게 특별한 일을 해주기를 바라겠느냐? 네가 따지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따진다면 임금은 반드시 너를 권세로 누르고 이론을 무너뜨릴 것이다. 너는 눈이 캄캄해지고, 얼굴빛은 새파래지고, 입은 자기를 변명하기에 바쁘고, 태도는 비굴해질 것이며, 마음도 그를 따라가고 말 것이다. 이것은 불로 불을 끄고 물로 물을 막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것을 더욱 늘이는 것이라 부르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의 독선을 따라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너는 너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반드시 포악한 사람에게 죽게 될 것이다. 또한 옛날에도 걸왕은 관룡봉을 죽였고, 주왕은 왕자 비간을 죽였다. 이들은 모두 몸을 잘 닦았었고, 백성들을 잘 위하였지만, 신하로서 그의 임금의 뜻을 어긴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임금은 그들의 행동을 이유로 하여 그들을 제거했던 것이다. 이들은 명성을 좋아하던 임금이었다. 옛날에 요임금은 총지와 서오를 공격하였고, 우임금은 유호를 공격했다. 이들 나라는 폐허가 되고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쉴새 없이 전쟁을 하여 실리를 추구하던 임금이었다. 이들은 모두가 명예와 실리를 추구했던 사람들이다. 명성과 실리라는 것은 성인이라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네가 어쩌겠다는 것이냐?”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3]- 且苟爲悅賢而惡不肖, 惡用而求有以異? 若唯無詔, 王公必將乘人而鬪其捷. 而目將熒之, 而色將平之, 口將營之, 容將形之, 心且成之. 是以火救火, 以水救水, 名之曰益多. 順始無窮, 若殆以不信厚言, 必死於暴人之前矣! 「且昔者桀殺關龍逢, 紂殺王子比干, 是皆修其身以下??人之民, 以下拂其上者也, 故其君因其修以?之. 是好名者也. 昔者堯攻叢.枝.胥敖 禹攻有扈, 國爲虛?, 身爲刑戮, 其用兵不止, 其求實無已. 是皆求名實者也. 而獨不聞之乎? 名實者, 聖人之所不能勝也, 而況若乎! 雖然, 若必有以也, 嘗以語我來!」
47` 고집불통에게는 어떤 충고도 소용이 없다 (내편:4.인간세,4)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4]- 안회가 말했다. “마음을 단정하게 하면서도 맑게 비우고 한결같이 지니고 있으면 괜찮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아니다. 그는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쳐 우쭐대고 있으며 교만한 기색은 일정하지 않아서, 보통 사람들은 그의 뜻을 어기지 못한다. 그는 사람들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자기 마음의 쾌락을 추구한다. 그런 것을 두고 날로 발전해야 할 덕조차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물며 큰 덕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그는 자기를 고집함으로 남에 의하여 변화되지 않으며, 겉으로는 타협을 하지만 속으로는 반성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괜찮을 수 있겠느냐.” 안회가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마음 속은 곧고 겉모양은 공손히 하여 옛 분들과 비길 만하게 하겠습니다. 마음 속이 곧은 사람이 되면 하늘과 같은 무리가 될 것입니다. 하늘과 같은 무리가 된 사람은 천자나 자신이나 모두를 하늘이 자식으로 감싸주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의 말을 상대방이 칭찬해 주기를 바라겠습니까? 상대방이 좋지 않다고 꾸짖기를 바라겠습니까? 이와 같은 사람을 사람들은 동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과 같은 무리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겉모양이 공손한 사람은 사람들과 같은 무리가 아닙니다. 손 모아 홀을 들고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어 엎드리는 것은 신하로서의 예의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하는데 나만이 감히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남들이 하고 있는 짓을 하는 사람에게는 사람들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과 같은 무리가 되는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마침내는 옛 분들과 비길 만하게 된다는 것은 옛 분들과 같은 무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비록 교훈이 되고 꾸짖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오래 전부터 있던 일이며 내가 지어낸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비록 곧다 하더라도 탓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옛 분들과 같은 무리가 되는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괜찮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남을 바로잡는 말이 너무 많아서 친밀하게 느껴질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그렇게 고집하여 죄를 범하지는 않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래 가지고 어찌 남을 감화시키겠느냐? 그저 자기 마음에 따라 고집하고 세워 보는 것일 뿐이다.”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4]- 顔回曰:「端而虛, 勉而一則可乎?」 曰:「惡! 惡可! 夫以陽爲充孔揚, 采色不定, 常人之所不違, 因案人之所感, 以求容與其心. 名之曰日漸之德不成, 而況大德乎! 將執而不化, 外合而內不?, 其庸?可乎!」 「然則我內直而外曲, 成而上比. 內直者, 與天爲徒, 與天爲徒者, 知天子之與己皆天之所子, 而獨以己言?乎而人善之, ?乎而人不善之邪? 若然者, 人謂之童子, 是之謂與天爲徒. 外曲者, 與人爲徒也. 擎기曲拳, 人臣之禮也, 人皆爲之, 吾敢不爲邪! 爲人之所爲者, 人亦無疵焉, 是之謂與人爲徒. 成而上比者, 與古爲徒. 其言雖敎, ?之實也, 古之有也, 非吾有也. 若然者, 雖直而不病, 是之謂與古爲徒. 若是則可乎?」 仲尼曰:「惡! 惡可! 大多政法而不諜, 雖固亦無罪. 雖然, 止是耳矣, 夫胡可以及化! 猶師心者也.」
48` 마음을 비워야 잘 못을 없앨 수 있다 (내편:4.인간세,5)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5]- 안회가 말했다. “더 이상 어쩔 방도가 없는 것 같군요. 혹시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재계를 한다면 얘기해 주마. 사심을 가지고는 잘 될 수가 없다. 잘 된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하늘이 마땅찮아 할 것이다.” 안회가 말했다. “저는 집이 가난해서 술을 마시지도 않고 매운 것을 먹지 않은지 여러 달이 되었습니다. 이만 하면 재계를 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것은 제사 지낼 때의 재계이지 마음의 재계가 아니다.” 안회가 말했다. “마음의 재계란 어떤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너는 너의 뜻을 순수하게 하나로 모아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도록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써 듣도록 해야 한다. 귀란 듣기만 할 뿐이며, 마음이란 느낌을 받아들일 뿐이지만, 기란 텅 빈 채로 사물에 응대하는 것이다. 도란 텅 빈곳에 모이기 마련이다. 텅 비게 하는 것이 마음의 재계인 것이다.”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5]- 顔回曰:「吾无以進矣, 敢問其方.」 仲尼曰:「齋, 吾將語若! 有心而爲之, 其易邪? 易之者, ?天不宜.」 顔回曰:「回之家貧, 唯不飮酒不茹?者數月矣. 如此, 則可以爲齋乎?」 曰:「時祭祀之齋, 非心齋也.」 回曰:「敢問心齋.」 仲尼曰:「若一志, 无聽之以耳而聽之以心, 无聽之以心而聽之以氣! 耳止於聽, 心止於符.氣也者, 虛而待物者也. 唯道集虛. 虛者, 心齋也.」
49` 마음을 비우고 순응해야 한다 (내편:4.인간세,6)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6]- 얼마 후 안회가 말했다. “저는 처음에 마음의 재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얽매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자기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텅 비었다고 해도 되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래, 되었다. 네가 그 나라로 들어가 활동을 하더라도 임금의 악명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될 것이다. 들어주면 이야기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그만 둬라. 자기를 내세우지 말고 자기 생각을 앞세우지 말며, 순일하게 마음을 지녀 어쩔 수 없이 되도록 처신한다면 성공할 것이다. 행 적을 남기지 않기는 쉽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기는 어렵다. 사람에게 쓰일 때는 그대로 하기가 쉽지만, 하늘의 부림을 당할 때는 그대로 하기가 어렵다. 날개를 가지고 나는 자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았어도, 날개 없이 나는 자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지각을 가지고 무엇을 안다는 말은 들어보았으나, 지각없이 아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저 공허한 경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텅 빈 마음이 밝아질 것이다. 행복이나 좋은 일은 이런 곳에 머물게 된다. 행복이나 좋은 일이 머물지 않는 것을 한 곳에 앉아 있어도 정신은 딴 곳을 달리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귀와 눈을 속마음으로 통하게 하고 마음과 지각을 밖으로 내보낸다면, 귀신일지라도 찾아와 그에게 머물게 될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어떻겠느냐? 이것이 만물의 변화에 호응하는 것이다. 우임금이나 순임금도 법도로 삼았던 것이다. 복희나 궤거 같은 제왕이 평생토록 실행한 요점인 것이다. 그러니 보통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6]- 顔回曰:「回之未始得使, 實有回也. 得使之也, 未始有回也. 可謂虛乎?」 夫子曰:「盡矣. 吾語若! 若能入遊其樊而无感其名, 入則鳴, 不入則止. 无門无毒, 一宅而寓於不得已, 則幾矣. 「絶 迹易, 无行地難. 爲人使易以僞, 爲天使難以僞. 聞以有翼飛者矣.未聞以无翼飛者也. 聞以有知知者矣, 未聞以无知知者也. 瞻彼?者, 虛室生白, 吉祥止止.夫且不止, 是之謂坐馳. 夫徇耳目內通而外於心知, 鬼神將來舍, 而況人乎! 是萬物之化也, 禹舜之所紐也, 伏羲??之所行終, 而況散焉者乎!」
50` 효도와 충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내편:4.인간세,7)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7]- 엽공 자고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 공자에게 물었다. “초 왕은 저에게 상당히 중요한 임무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는 사신을 대하기를 매우 공경히 하면서도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서두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보통 남자라 하더라도 움직이게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제후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는 걱정이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제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일은 크고 작고간에 올바른 도를 따르지 않고서 일을 원만히 이루는 자가 드물다. 만약 일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반드시 법에 의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에 일을 성공시키면 반드시 기쁨과 두려움이 엇갈리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일을 성공시키건 성공시키지 못하건 간에 뒤의 걱정이 없는 것은 오직 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좋은 음식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밥을 지어 놓아도 식힐 것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 저는 아침에 사신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서 저녁에는 어름을 마시는 형편인데도 저의 몸 안은 근심으로 뜨거워져 있습니다. 저는 일을 실천으로 옮기기도 전에 이미 기쁨과 두려움이 엇갈리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에 일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반드시 법에 의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중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신하된 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선생님께서 제게 좋은 말씀을 해주십시오.” 공자가 말했다. “천하에는 큰 법칙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운명이며, 다른 하나는 의로움입니다.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운명입니다. 그것은 마음으로부터 벗어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의로움입니다. 어디를 가나 임금이 없는 곳이 없으며, 하늘과 땅 사이에서는 그 관계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큰 법칙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어버이를 섬기는 사람들은 지위가 높고 낮고 간에 어버이를 편안히 모시는 법인데, 이것이 효도의 극치입니다. 그의 임금을 섬기는 사람들은 일의 여하를 가리지 않고 임금을 평안히 모시는 법인데, 이것이 충성의 위대함입니다. 그분들의 마음을 섬기는 사람들은 슬픔과 즐거움이 눈앞에 엇바뀌어 드러나지 않고, 그들의 관계란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운명을 따라 그들을 평안히 모시는데, 이것이 덕의 극치입니다. 나라의 신하가 된 사람에게는 본시부터 자기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으니 일의 실정에 따라 행동하면서 그 자신은 잊어야 합니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할 틈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께서는 그대로 가십시오.”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7]- 葉公子高將使於齊, 問於仲尼曰:「王使諸梁也甚重, 齊之待使者, 蓋將甚敬而不急. 匹夫猶未可動, 而況諸侯乎! 吾甚慄之. 子常語諸梁也曰:‘凡事若小若大, 寡不道以?成. 事若不成, 則必有人道之患. 事若成, 則必有陰陽之患. 若成若不成而後無患者, 唯有德者能之.’吾食也執粗而不臧, ?無欲淸之人. 今吾朝受命而夕飮氷, 我其內熱與! 吾未至乎事之情, 而旣有陰陽之患矣. 事若不成, 必有人道之患. 是兩也, 爲人臣者不足以任之, 子其有以語我來!」 仲尼曰:「天下有大戒二:其一, 命也. 其一, 義也. 子之愛親, 命也, 不可解於心. 臣之事君, 義也, 無適而非君也, 無所逃於天地之間. 是之謂大戒, 是以夫事其親者, 不擇地而安之, 孝之至也. 夫事其君者, 不擇事而安之, 忠之盛也. 自事其心者, 哀樂不易施乎前, 知其不可奈何而安之若命, 德之至也. 爲人臣子者, 固有所不得已. 行事之情而忘其身, 何暇至於悅生而惡死! 夫子其行可矣.
51` 지나침은 거짓과 같다 (내편:4.인간세,8)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8]- “가까운 나라에는 반드시 신의로써 접촉하여야 하고, 먼 나라에는 반드시 말로써 충실함을 표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은 반드시 누군가가 가서 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 을 전달함에 있어서 양쪽이 다 기뻐하거나 양쪽이 다 노여워할 말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양쪽이 다 기뻐하는 말에는 반드시 지나치게 칭찬하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양쪽이 다 노여워하는 말이면 반드시 지나치게 요구하는 말이 많을 것입니다. 모든 지나친 것은 거짓된 것들과 같은 종류의 것들입니다. 거짓된 것이 되면 그것을 믿는 이들이 적어질 것입니다. 믿는 이가 적어지면 곧 말을 전하는 사신은 재앙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격언에 말하기를 「사신이 보통 사실을 전하고 지나친 말을 전하지 않는다면 무사할 것이다.」 라고 했던 것입니다.”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8]- 「丘請復以所聞:凡交近則必相靡以信, 交遠則必忠之以言, 言必或傳之. 夫傳兩喜兩怒之言, 天下之難者也. 夫兩喜必多溢美之言, 兩怒必多溢惡之言. 凡溢之類妄, 妄則其信之也莫, 莫則傳言者殃. 故法言曰:‘傳其常情, 無傳其溢言, 則幾乎全.’
52` 서두루지 말고 자연스럽게 일을 처리하라 (내편:4.인간세,9)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9]- “기교로써 승부를 다투는 사람은 처음에는 힘으로써 시작하지만 언제나 음모로써 끝을 맺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되면 기묘한 기교가 많아집니다. 예에 따라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점잖게 시작을 하지만 언제나 어지러움 속에 끝내게 됩니다. 너무 지나칠 때에는 기이한 즐김이 많아집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당당하게 시작하여 언제나 치졸하게 끝납니다. 일을 시작할 때는 간단하였지만 일이 끝나갈 때에는 반드시 거창해지기 때문입니다. 말 이란 풍파와 같은 것입니다. 행동에는 득과 실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풍파란 요동하기 쉬운 것이고, 득실이 있으면 위태로워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분노가 생기게 되는 까닭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교묘한 말과 약삭빠른 말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짐승은 죽을 때 소리를 가리지 않고 악을 씁니다. 숨이 가빠지니 마음이 다급해져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각박함이 지나치게 되면 반드시 상대방은 좋지 않은 마음으로 이에 대응하게 되는데 그 까닭은 알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을 알지 못하는데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격언에「명령은 바꾸지 말고, 성공을 하려 애쓰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도를 넘으면 지나치게 됩니다. 명령을 바꾸고 성공을 하려고 애쓰다보면 일이 위태로워집니다. 원 만한 성공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성과가 나쁘면 고칠 여유도 없습니다. 그러니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사물을 초월하여 마음을 노닐게 하고 어쩔 수 없이 되어 가는 처지에 몸을 두고 마음을 기르는 것이 최상의 길입니다. 어찌 일부러 만들어 보고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왕명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 되겠습니까?”
53` 상대에 맞추어 무리 없이 처신해야 한다 (내편:4.인간세,10)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10]- 안합이 위나라 영공의 태자의 스승이 되어 거백옥을 찾아가 물었다. “한사람이 있는데 그의 덕은 천성적으로 각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와 함께 무도한 짓을 하면 곧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그의 지혜는 남의 잘못을 알기에 알맞은 정도이고, 자기의 잘못은 알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했으면 좋겠습니까?” 거백옥이 대답했다. “경계하고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몸을 올바로 가지십시오. 태도는 순순히 따르는 것이 좋으며, 마음은 온화한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에도 조심함이 필요합니다. 순순히 따르되 남에게 끌려 들어가지 않아야 하며, 온순함은 남에게 드러내지 않아야 합니다. 온순히 따르는 태도로 남에게 끌려 들어가다 보면 멸망을 당하고 낭패를 보게 됩니다. 마음의 온화함을 남에게 드러내다 보면, 나쁜 평판이 생기고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아이와 같다면 그와 더불어 아이같이 되십시오. 상대방이 분수 없는 사람이라면 더불어 분수 없이 행동하십시오. 상대방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와 더불어 종잡을 수 없이 행동하십시오. 여기에 통달하게 되면 아무 탈이 없게 될 것입니다.”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10]- 顔闔將傅衛靈公太子, 而問於?伯玉曰:「有人於此, 其德天殺. 與之爲無方, 則危吾國. 與之爲有方, 則危吾身. 其知適足以知人之過, 而不知其所以過. 若然者, 吾奈之何?」 ? 伯玉曰:「善哉問乎? 戒之, 愼之, 正汝身也哉! 形莫若就, 心莫若和. 雖然, 之二者有患. 就不欲入, 和不欲出. 形就而入, 且爲顚爲滅, 爲崩爲蹶. 心和而出, 且爲聲爲名, 爲妖爲孼. 彼且爲?兒. 亦與之爲?兒. 彼且爲無町畦, 亦與之爲無町畦, 彼且爲無崖, 亦與之爲無崖. 達人入於無疵.
54` 상대방의 본성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내편:4.인간세,11)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11]- “당신은 사마귀를 아십니까? 화가 나서 그의 앞발을 벌리고 수레바퀴 앞에 막아서서 자기가 바퀴에 깔려 죽을 것도 모르고 물러서지 않습니다. 자기 재질의 훌륭함만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자기의 훌륭함을 크게 뽐내면서 상대방의 권위를 건드리면 위태로워집니다. 호랑이를 기르는 사람은 호랑이에게는 감히 산 것을 먹이로 주지 않는데, 호랑이가 산 먹이를 죽이는 사이에 사나움이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랑이에게 먹이를 통째로 주지 않는데, 그것은 먹이를 찢는 사이에 또한 사나움이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랑이의 배고픔과 배부름을 살펴 그 사나운 마음이 수그러들게 해줍니다. 사람과 호랑이는 종류가 다른 동물이지만, 호랑이가 자기를 길러주는 사람에게는 잘 보이려하는 것은 호랑이의 성질에 따라 맞추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호랑이가 자기를 길러주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호랑이의 성질을 거슬렀기 때문입니다. 말 을 사랑하는 사람은 바구니에 똥을 받고, 큰 조개 껍질에 오줌을 받습니다. 그러나, 모기나 등에가 말에 앉아 있어 그것을 잡으려고, 갑자기 손바닥으로 말의 등을 치면, 말은 놀라 재갈을 부수고 사람의 머리를 깨거나 가슴을 떠받습니다. 노여움이 생겨 사랑이 잊혀지기 때문입니다.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11]- 「汝不知夫螳螂乎? 怒其臂以當車轍, 不知其不勝任也, 是其才之美者也. 戒之, 愼之! 績伐而美者以犯之, 幾矣. 「汝不知夫養虎者乎? 不敢以生物與之, 爲其殺之之怒也. 不敢以全物與之, 爲其決之之怒也. 時其飢飽, 達其怒心. 虎之與人異類而媚養己者, 順也. 故其殺之者, 逆也. 「夫愛馬者, 以筐盛矢, 以蜃盛溺. 適有蚊?僕緣, 而?之不時, 則缺衝毁首碎胸. 意有所至而愛有所亡, 可不愼邪!」
55` 쓸모 없으므로 자신을 보전할 수 있다 (내편:4.인간세,12)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12]- 장석이 제나라로 가다가 토신묘 앞의 참나무를 보았다. 그 크기는 수천 마리의 소를 뒤덮을 만하였고, 그 둘레는 백 아름이나 되었으며, 그 높이는 산을 열 길 위에서 내려다 볼만한 데서부터 가지가 나 있었다. 배를 만들 만한 가지들도 몇 십 개나 되었다. 구경꾼들이 장이 선 것처럼 모여 있었다. 장석은 돌아다보지도 않고 멈추는 일도 없이 걸어갔다. 그의 제자는 그 나무를 실컷 구경하고 나서 장석에게 달려가 말했다. “제가 도끼를 들고 스승님을 따라 다닌 후로 이처럼 훌륭한 재목은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발길을 멈추지도 않으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장석이 말했다. “그런 말 말아라. 쓸모 없는 나무다.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만들면 빨리 썩어 버리고, 그릇을 만들면 쉽게 깨져 버리고, 문짝을 만들면 나무진이 흘러내리고, 기둥을 만들면 곧 좀이 먹는다. 그것은 재목이 못될 나무이다. 쓸 만한 곳이 없어서 그토록 오래 살고 있는 것이다.” 장석이 집에 돌아와 잠을 자는데 그 큰 나무가 꿈에 나타나 말했다. “그대는 나를 어디에 비교하는 것인가? 그대는 나를 좋은 재목에 견주려는 것인가? 돌배, 배, 귤, 유자 등 과일이 열리는 나무는 과일이 열리면 따게 되고, 따는 과정에서 욕을 당하게 된다. 큰 가지는 꺾어지고 작은 가지는 휘어진다. 이들은 자기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의 삶을 괴롭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타고난 목숨대로 끝까지 살지 못하고 중간에 일찍 죽어 버리는 것이다. 스스로 세속에서 얻어맞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 어떤 물건이고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쓸 곳이 없기를 원해 온 지가 오래되었다. 거의 죽을 뻔하다가 이제야 뜻대로 되어 쓸모 없음이 나의 큰 쓸모가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어찌 이렇게 커질 수가 있었겠는가? 또한 그대와 나는 모두가 같은 물건이다. 어찌하여 그대는 나를 다른 물건으로 보는가? 그리고 거의 죽어가는 쓸모 없는 사람이 어찌 쓸 데 없는 나무를 알 수가 있겠는가?” 장석은 깨어나서 그의 꿈을 얘기했다. 그의 제자가 말했다. “쓸모 없음에 뜻을 두었다면, 그 나무가 신목이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장석이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그는 사당에 몸을 기탁하고 있을 뿐인데도 자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욕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신목이 되지 않았다면 땔나무로 베어졌겠지, 또한 그의 보전 방법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런데도 겉만 보고 그를 칭찬한다면 그 또한 사실과 동떨어진 일이 아니겠느냐?”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12]- 匠石之齊, 至於曲轅, 見?社樹. 其大蔽數千牛, ?之百圍, 其高臨山, 十?而後有枝其可以爲舟者旁十數. 觀者如市, 匠伯不顧, 遂行不輟. 弟子厭觀之, 走及匠石, 曰:「自吾執斧斤以隨夫子, 未嘗見材如此其美也. 先生不肯視, 行不輟, 何邪?」 曰:「已矣, 勿言之矣! 散木也, 以爲舟則沈, 以爲棺槨則速腐, 以爲器則速毁, 以爲門戶則液?, 以爲柱則?. 是不材之木也, 無所可用, 故能若是之壽.」 匠 石歸, ?社見夢曰:「女將惡乎比予哉? 若將比予於文木邪? 夫?梨橘柚, 果?之屬, 實熟則剝, 剝則辱. 大枝折, 小枝泄. 此以其能苦其生者也, 故不終其天年而中道夭, 自?擊於世俗者也. 物莫不若是. 且予求無所可用久矣, 幾死, 乃今得之, 爲予大用. 使予也而有用, 且得有此大也邪? 且也若與予也皆物也, 奈何哉其相物也? 而幾死之散人, 又惡知散木!」 匠石覺而診其夢. 弟子曰:「趣取無用, 則爲社何邪?」 曰:「密! 若無言! 彼亦直寄焉, 以爲不知己者??也. 不爲社者, 且幾有?乎! 且也彼其所保與衆異, 而以義喩之, 不亦遠乎!」
56` 쓸모 없음이 곧 쓸모이다 (내편:4.인간세,13)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13]- 남백자기가 상구에 가서 큰 나무를 보았는데 특이했다. 말 4천 마리를 매어 놓아도 그 그늘에 완전히 가려질 정도였다. 자기가 말했다. “이건 무슨 나무일까? 이것은 분명 특이한 재목감이 되겠지?” 머리를 들어 그 나무의 작은 가지들을 보니 모두 구불구불하여 서까래나 기둥으로 쓸 수가 없었다. 머리를 숙여 그 나무의 뿌리를 보니 속이 텅 비어 관을 만들 재목으로 쓸 수도 없었다. 그 잎새를 따서 맛을 보니 입이 얼얼해 지고 상처가 났다. 그 냄새를 맡아보니 사람을 취하게 만들어 사흘동안이나 깨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기가 말했다. “이것은 재목으로 쓸 수 없는 나무여서 이처럼 크게 자랄 수 있었구나. 아, 신인(神人)들은 이래서 재능을 갖지 않는 것이구나.”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13]- 南伯子?遊乎商之丘, 見大木焉, 有異, 結駟千乘, 將隱?其所?. 子?曰:「此何木也哉? 此必有異材夫?」仰而視其細枝, 則拳曲而不可以爲棟樑. 俯而視其大根, 則軸解而不可以爲棺槨. ?其葉, 則口爛而爲傷. 嗅之, 則使人狂?, 三日而不已. 子?曰:「此果不材之木也, 以至於此其大也. 嗟乎神人, 以此不材!」
57` 재능이 있음으로 재난을 당하게 된다 (내편:4.인간세,14)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14]- 송나라에 형씨라는 곳이 있었는데, 개오동나무와 잣나무와 뽕나무가 잘 자랐다. 그러나 그 둘레가 한두 줌 되는 나무가 있으면 원숭이를 매어놓을 말뚝을 찾은 사람들이 베어 갔다. 서너 아름이 되는 나무가 있으면 큰집의 마루판이 필요한 사람들이 베어갔다. 일여덟 아름이 되는 나무가 있으면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들의 집에서 관을 만들 재목을 찾는 사람들이 베어 갔다. 그래서 그곳의 나무들은 타고난 제 수명대로 다 살지를 못하고 중도에 도끼에 찍혀 일찍 죽었다. 이것이 재능이 있는 것들의 재난이다. 그런데 액운을 쫓는 제사에는 이마에 흰털이 난 소와 코가 위로 올라간 돼지와 치질이 있는 사람은 제물로 적당치 않아 강물에 던지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는 모두 무당이나 축관들이 이미 알고 있어서 상서롭지 않은 물건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인(神人)이 크게 상서로운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14]- 「宋有荊氏者, 宜楸柏桑. 其拱把而上者, 求狙?之?者斬之. 三圍四圍, 求高名之麗者斬之. 七圍八圍, 貴人富商之家求?傍者斬之. 故未終其天年, 而中道之夭於斧斤, 此材之患也. 故解之以牛之白?者與豚之亢鼻者, 與人有痔病者不可以適河. 此皆巫祝以知之矣.所以爲不祥也. 此乃神人之所以爲大祥也.」
58` 부족함으로 수명대로 살 수 있다 (내편:4.인간세,15)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15]- 지리소라는 사람은 턱이 배꼽 아래 감추어지고, 어깨가 머리보다 높으며, 머리꼬리가 하늘로 치솟아 있고, 오장은 위쪽에 붙어 있고, 두 다리가 옆구리에 와 있었다. 그러나 바느질을 하여 먹고살기에는 충분했다. 키질을 하여 쌀을 고르면 열 식구는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나라에서 군인을 징집하여도 지리소는 팔을 휘저으며 그 곳에서 자유롭게 행동했다. 나라에 큰 공사가 있다 하더라도 지리소는 언제나 장애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노역에 끌려나가지 않았다. 나라에서 장애인들에게 곡식을 나눠주게 되면 상당한 양의 곡식과 열 다발의 땔나무를 받았다. 그의 형체를 잊을 수 있는(형체가 불완전한) 사람은 그러면도 그 자신을 충분히 보양할 수 있고, 그가 타고난 목숨대로 다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덕을 잊고 있는 사람은 어떻겠는가?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15]- 支離疏者, ?隱於臍, 肩高於頂, 會撮指天, 五管在上, 兩?爲脇. 挫鍼治?足以?口. 鼓?播精, 足以食十人. 上徵武士, 則支離攘臂而遊於其間. 上有大役, 則支離以有常疾不受功. 上與病者粟, 則受三鍾與十束薪. 夫支離其形者, 猶足以養其身, 終其天年, 又況支離其德者乎!
59` 무용의 쓰임은 아무도 모른다 (내편:4.인간세,16) - 장자(내편) ; 제4편 인간세[16]- 공자가 초나라로 가는데 초광접여가 객사 문 앞을 지나며 노래를 했다. 봉새야, 봉새야, 어찌하여 그대 덕이 쇠하였나? 장래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고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것 천하에 올바른 도가 있으면 성인은 교화를 이룩하고, 천하에 올바른 도가 없으면 성인은 자기 삶을 보전한다. 지금 시국에는 근근히 형벌을 면하기도 바쁘네 복은 새의 깃털보다 가벼운데 아무도 그것을 잡을 줄을 모르고 화는 땅보다 무거운데 아무도 그것을 피할 줄을 모르네 아서라, 아서라, 덕을 사람들에게 내세우는 짓을 위태롭고도 위태롭구나 땅을 가려가며 쫓아다니는 것이 밝음을 가리고 가려서 나의 갈 길을 그르치지 말아라 발길을 삼가고 삼가서 나의 발을 다치지 않게 하라 산의 나무는 스스로 베이도록 자라고 기름불은 스스로를 태워 버린다 육규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 의해서 잘려지고 옻나무는 옻칠에 쓰이기 때문에 또한 껍질이 벗겨진다 사람들은 모두 유용(有用)의 쓰임은 알지만 무용(無用)의 쓰임은 아무도 모르는구나. - 莊子(內篇) ; 第4篇 人間世[16]- 孔子適楚, 楚狂接輿遊其門曰: 「鳳兮鳳兮, 何如德之衰也! 來世不可待, 往世不可追也. 天下有道, 聖人成焉. 天下無道, 聖人生焉. 方今之時, 僅免刑焉. 福輕乎羽, 莫之知載. 禍重乎地, 莫之知避. 已乎已乎, 臨人以德! 殆乎殆乎, ?地而趨! 迷陽迷陽, 無傷吾行! 吾行?曲, 無傷吾足!」
60` 외물에 의해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내편:5.덕충부,1) - 장자(내편) ; 제5편 덕충부[1]- 노나라에 형벌로 발이 잘린 왕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를 따르며 공부하는 사람들의 수가 공자를 따르는 사람들의 수와 비슷했다. 상계가 공자에게 물었다. “왕태는 형벌로 절름발이가 된 사람입니다. 그를 따르며 공부하는 사람들의 수는 선생님과 함께 노나라의 인구를 둘로 나눈 것과 같은 형편입니다. 그는 가르치지도 않고 논하지도 않는데, 텅 빈 머리로 간 사람이 머리가 꽉 차서 돌아온다 합니다. 본시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이라는 것이 있어서 형식은 없어도 마음으로 충실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 선생님은 성인이십니다. 저는 게을러서 아직까지 찾아가 뵙지 못하였지만 저도 장차 그 분을 스승으로 모시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저보다 못한 사람이야 아니 그럴 수 있겠습니까? 어찌 노나라 사람들뿐이겠습니까. 저는 천하의 사람들을 이끌고 가 함께 배우려 하고 있습니다.” 상계가 말했다. “그는 절름발이인데도 선생님을 앞서고 있습니다. 그는 보통사람들 보다는 훨씬 뛰어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을 어떻게 씁니까?” 공자가 말했다. “죽음과 삶도 큰 문제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비록 하늘과 땅이 뒤집어진다 해도, 그 때문에 변화가 생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의지하는 곳 없이 안정되어 있어서 물건에 의하여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물건의 변화를 따르면서 참됨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 莊子(內篇) ; 第5篇 德充符[1]- 魯有兀者王?, 從之遊者, 與仲尼相若, 常季問於仲尼曰:「王?, 兀者也, 從之遊者, 與夫子中分魯. 立不敎, 坐不議, 虛而往, 實而歸. 固有不言之敎, 無形而心成者邪? 是何人也?」 仲尼曰:「夫子, 聖人也, 丘也直後而未往耳.丘將以爲師, 而況不若丘者乎! 奚假魯國! 丘將引天下而與從之.」 常季曰:「彼兀者也, 而王先生, 其與庸亦遠矣. 若然者, 其用心也獨若之何?」 仲尼曰:「死生亦大矣, 而不得與之變, 雖天地覆墜, 亦將不與之遺. 審乎無假而不與物遷, 命物之化而守其宗也.」
61` 사람은 겉모양 보다 그 마음이 중요하다 (내편:5.덕충부,2) - 장자(내편) ; 제5편 덕충부[2]- 상계가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만물은 서로 다르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몸의 담과 간도 초나라와 월나라 만큼 먼 것이고, 서로 같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만물은 모두가 한가지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아는 사람은 귀와 눈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것도 알지 못하게 되며, 마음을 덕의 조화 속에 노닐게 합니다. 만물이 한가지인 것만 보지 그것들이 어긋나는 점은 보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발을 잃은 것을 마치 흙을 털어 버린 것과 같이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상계가 말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닦음에 있어 그의 지각으로써 그의 마음을 얻었고, 그의 마음으로써 그의 한결같은 마음을 이룩했습니다.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에게로 모여드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멈춰 있는 물을 거울로 삼습니다. 멈춰 있는 것만이 멈춰 있음으로서 사람들을 모여들게 합니다. 땅 에서 성명을 받고 있는 것 중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올바르므로 겨울이나 여름이나 늘 푸른 것입니다. 하늘에서 성명을 받고 있는 것 중 오직 순임금만이 홀로 올발라서 만물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습니다. 다행히도 삶을 올바르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삶을 바로잡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근본적인 성명을 보존하는 효험은 두려움이 없는 결실을 이룩합니다. 한 사람의 용사가 많은 군사들 속으로 돌진해 들어갑니다. 용감하다는 명성을 스스로 추구하기 위해서 스스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 같은 것입니다. 하물며 하늘과 땅을 다스리고 만물을 감싸며 자신의 육체는 임시로 빌린 것에 불과하며 귀와 눈도 가상이며,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이 한가지라고 여김으로써 마음이 죽어버리는 일이 없는 사람이야 어떻겠습니까? 그는 또한 날을 골라 이승을 떠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가 또한 어찌 사물로써 자기 일을 삼으려 하겠습니까?” - 莊子(內篇) ; 第5篇 德充符[2]- 常季曰:「何謂也?」 仲尼曰, 「自其異者視之, 肝膽楚越也. 自其同者視之, 萬物皆一也. 夫若然者, 且不知耳目之所宜而遊心乎德之和. 物視其所一而不見其所喪, 視喪其足猶遺土也.」 仲尼曰:「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能止衆止. 受命於地, 唯松柏獨也正, 在冬夏靑靑. 受命於天, 唯堯舜獨也正, 在萬物之首. 幸能正生, 而正衆生. 夫保始之徵, 不懼之實. 勇士一人, 雄入於九軍. 將求名而能自要者, 而猶若是, 而況官天地, 府萬物, 直寓六骸, 象耳目, 一知之所知, 而心未嘗死者乎! 彼且擇日而登假, 人則從是也. 彼且何肯以物爲事乎!」
62` 겉모양과 신분은 무의미한 것이다 (내편:5.덕충부,3) - 장자(내편) ; 제5편 덕충부[3]- 신도가는 형벌로 다리를 잘린 사람이었는데, 정나라 재상인 자산과 함께 백혼무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했다. “내 가 먼저 나가게 되면 자네는 머물러 있고,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머물러 있기로 하세. 나는 지금 나가려고 하는데 자네는 머물러 있을 텐가? 그리고 자네는 재상인 나를 보고도 길을 비키려 하지 않는데, 자네는 재상과 자네의 신분이 같다고 보고 있는 것인가?” 신도가가 말했다. “선생님의 문하에 본시부터 재상이라는 것이 있었는가? 당신은 당신이 재상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남을 업신여기고 있다. 거울이 맑은 것은 먼지와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이고, 먼지와 때가 묻으면 거울은 맑지 않게 된다. 오랜 동안 현명한 사람과 같이 생활을 하면 곧 잘 못이 없게 된다고 했다. 지금 당신이 크게 떠받들며 배우고 있는 분은 우리 선생님이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잘못 된 것이 아닌가?” 자산이 말했다. “자네는 몸이 이 모양인데 요임금과 훌륭함을 겨루려 하고 있다. 자네는 자네의 덕으로 헤아려 스스로 반성할 줄도 모르는가?” 신도가가 말했다. “스스로 자기의 허물을 변호하며 자기 다리를 잃은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자기의 허물을 변호하지도 않고 자기 다리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다. 어찌할 수 없는 일임을 알고서 운명이라 여기고 이에 평안히 따르는 일은 오직 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명궁인 예의 활의 사정거리 안에 있으면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은 화살에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맞지 않는다면 운명이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다리가 완전하다고 해서 나의 불완전한 다리를 비웃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지만 선생님이 계신 곳에 가기만 하면 곧 시원한 마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선생님께서 훌륭하심으로 나를 씻어주시는 것인지, 내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선생님을 따라 공부한지 십구 년이 되지만 내가 절름발이라는 것을 의식한 일이 거의 없었다. 지금 당신은 나와 형체 속의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으면서도, 당신은 내게 형체의 모양을 따지고 있으니 잘못이 아닌가?” 자산은 부끄러운 듯 몸을 바로잡고 말했다. “더 이상의 말은 말아주시오.” - 莊子(內篇) ; 第5篇 德充符[3]- 申徒嘉, 兀者也, 而與鄭子産同師於伯昏无人. 子産謂申徒嘉曰:「我先出則子止, 子先出則我止.」其明日, 又與合堂同席而坐. 子産謂申徒嘉曰, 「我先出則子止, 子先出則我止. 今我將出, 子可以止乎, 其未邪? 且子見執政而不違, 子齊執政乎?」 申徒嘉曰:「先生之門, 固有執政焉如此哉? 子而悅子之執政而後人者也? 聞之曰:‘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則無過.’今子之所取大者, 先生也, 而猶出言若是, 不亦過乎!」 子産曰:「子旣若是矣, 猶與堯爭善, 計子之德, 不足以自反邪?」 申 徒嘉曰:「自狀其過, 以不當亡者衆, 不狀其過, 以不當存者寡, 知不可奈何, 而安之若命, 唯有德者能之. 遊於?之?中. 中央者, 中地也. 然而不中者, 命也. 人以其全足笑吾不全足者多矣, 我?然而怒. 而適先生之所, 則廢然而反. 不知先生之洗我以善邪? 吾與夫子遊十九年矣.而未嘗知吾兀者也, 今子與我遊於形骸之內, 而子索我於形骸之外, 不亦過乎!」 子産蹴然改容更貌曰:「子無乃稱!」
63` 명성을 추구함은 자기 몸을 구속하는 것이다 (내편:5.덕충부,4) - 장자(내편) ; 제5편 덕충부[4]- 노나라에 형벌로 다리가 잘린 숙산무지라는 사람이 공자를 찾아왔다. 공자가 말했다. “그대는 과거에 근신하지 않고 죄를 지어 이렇게 되어버렸다. 비록 지금 내게 찾아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무지가 말했다. “저는 힘써 할 일을 알지 못하고 저의 몸을 가벼이 해왔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아직도 다리보다 귀중한 것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온전히 지키고자 합니다. 하늘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땅은 모든 것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하늘과 땅처럼 여겼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러실 줄은 몰랐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들어오십시오. 제가 들은 것을 얘기해드리겠습니다.” 무지가 나간 뒤에 공자가 말했다. “제자들아, 힘써야 한다. 무지는 절름발이인데도 배움에 힘을 써 전날 행동의 잘못을 보충하려 하는데 하물며 온전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느냐.” 무지가 뒤에 노자에게 말했다. “공자는 아직 지인(至人)이 못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어째서 자주 선생님께 배우는 것입니까? 그는 또 특이하고 괴이한 명성이 알려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지인은 그런 것은 자신을 구속하는 족쇄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그에게 죽음과 삶을 한가지로 여기게 하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같은 것임을 깨우쳐주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그의 질곡을 풀어줄 수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무지가 말했다. “그에 대한 하늘의 형벌인데 어찌 풀어줄 수가 있겠습니까?” - 莊子(內篇) ; 第5篇 德充符[4]- 魯有兀者叔山無趾, 踵見仲尼, 仲尼曰:「子不謹, 前旣犯患若是矣. 雖今來, 何及矣!」 無趾曰:「吾唯不知務而輕用吾身, 吾是以亡足. 今吾來也, 猶有尊足者存焉, 吾是以務全之也. 夫天無不覆, 地無不載, 吾以夫子爲天地, 安知夫子之猶若是也!」 孔子曰:「丘則陋矣. 夫子胡不入乎, 請講以所聞!」 無趾出. 孔子曰:「弟子勉之! 夫無趾, 兀然者, 猶務學以複補前行之惡, 而況全德之人乎!」 無趾語老聃曰:「孔丘之於之人, 其未邪? 彼何賓賓以學子爲? 彼且?以?詭幻怪之名聞, 不知至人之以是爲己桎梏邪?」 老聃曰:「胡不直使彼以死生爲一條, 以可不可爲一貫者, 解其桎梏, 其可乎?」 無趾曰:「天刑之, 安可解!」
64` 중요한 것은 속에 지니고 있는 재질과 덕이다 (내편:5.덕충부,5) - 장자(내편) ; 제5편 덕충부[5]-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에 추하게 생긴 사람이 있는데 이름이 애태타라 합니다. 남자들이 그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 그를 흠모하여 떠나지를 못하였고, 여자들이 그를 보게 되면 부모들에게 다른 사람의 처가 되느니 차라리 그의 첩이 되겠다고 간청하는 사람들이 수십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어떠한 주장을 내세운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고, 언제나 사람들과 화합할 따름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사람의 죽음을 구제해 줄만한 지위도 없었고, 사람들을 배부르게 해줄 만큼 모아놓은 재산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다 추한 외모는 세상을 놀라게 할 정도였습니다. 화합하기는 하지만 주장을 내세우지는 않고, 명성이 사방으로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남녀들이 그에게 몰려들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그를 불러서 보니 과연 추함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했습니다. 내가 그와 지낸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나는 그의 사람됨에 마음이 끌렸고, 일년이 되지 않아, 나는 그를 믿게 되었습니다. 나라에 재상이 없는 터라 나는 그에게 재상자리를 맡기려 했습니다. 그는 걱정하는 듯하더니 아무 일도 아닌 듯 사양을 했습니다. 나는 마침내 그에게 나라를 맡기려던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말았습니다. 얼마 안 있어 그는 나를 떠나가 버렸습니다. 나는 멍하니 무엇을 잃어버린 듯했습니다. 이 나라에 함께 즐길 이가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제가 일찍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간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 때 새끼 돼지들이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금 있으니 새끼돼지들이 놀라 어미를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을 돌보아 주지 않았기 때문이며, 자기들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새끼 돼지들이 그 어미를 사랑한 것은 그 형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형체를 부리는 재덕(才德)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싸 우다가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칼을 함께 묻어주지 않습니다. 다리를 잘린 사람은 신발에 대하여 애착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그러할 근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자의 하녀가 되려면 앞머리를 자르지 않고 귀에 구멍을 뚫지 않아야 하며, 하인 중에서도 장가를 든 자들은 밖에 머물게 하며 다시 부리지 않습니다. 형체가 완전하다는 것조차도 부리는 조건에 들어가는데 하물며 덕이 완전한 사람이야 어떻겠습니까? 애태타는 말은 하지 않아도 남에게 믿음을 주고, 아무 노력 없이도 남과 친해집니다.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내어주면서도 그가 받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반드시 재질은 완전하면서도 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 莊子(內篇) ; 第5篇 德充符[5]- 魯哀公問於仲尼曰:「衛有惡人焉, 曰哀??. 丈夫與之處者, 思而不能去也. 婦人見之, 請於父母曰 ‘與爲人妻, 寧爲夫子妾’者, 十數而未止也. 未嘗有聞其唱者也, 常和人而矣. 无君人之位以濟乎人之死, 无聚祿以望人之腹. 又以惡駭天下, 和而不唱, 知不出乎四域, 且而雌雄合乎前. 是必有異乎人者也. 寡人召而觀之, 果以惡駭天下. 與寡人處, 不至以月數, 而寡人有意乎其爲人也. 不至乎期年, 而寡人信之. 國無宰, 寡人傳國焉, 悶然而後應, 氾然而若辭. 寡人醜乎, 卒授之國. 無幾何也, 去寡人而行, 寡人?焉若有亡也, 若無與樂是國也. 是何人者也?」 仲尼曰:「丘也嘗使於楚矣, 適見?子食於其死母者, 少焉?若皆棄之而走. 不見己焉爾, 不得類焉爾. 所愛其母者, 非愛其形也, 愛使其形者也. 戰而死者, 其人之葬也不以?資. ?者之?, 無爲愛之. 皆無其本矣. 爲天子之諸御, 不爪?, 不穿耳. 取妻者止於外, 不得復使. 形全猶足以爲爾, 而況全德之人乎! 今哀??未言而信, 無功而親, 使人授己國, 唯恐其不受也, 是必才全而德不形者也.」
65` 지극한 사람은 재질과 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내편:5.덕충부,6) - 장자(내편) ; 제5편 덕충부[6]- 애공이 말했다. “무엇을 재질이 완전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죽음과 삶, 존속과 사라짐, 곤궁과 영달, 가난과 부, 어짊과 아둔함, 욕과 칭찬,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이러한 것들은 일의 변화이며 운명의 현상입니다. 낮과 밤이 눈앞에서 바뀌고 있지만 사람들의 지각은 그 시작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변화는 조화를 어지럽히지 못하고, 마음 속에 스며들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조화됨으로써 즐겁게 통달하여 충실함을 잃지 않게 하면 밤낮으로 변화가 들어올 틈이 없게 되어 만물과 더불어 어울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물과 접하여 마음에 조화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재질이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애공이 말했다. “무엇을 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평형이란 물이 가득히 멈추어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법도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안으로 그 평형을 보전하여 밖으로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덕이란 수양으로써 조화가 이룩된 것입니다. 덕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그로부터 떠날 수가 없게 됩니다.” 애공이 훗날 그 얘기를 민자에게 했다. “처음에 나는 천하의 임금으로서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백성들의 바램을 손에 잡고 그들의 죽음을 걱정하면서, 나는 지극히 도통한 임금이라 여겼었습니다. 지금 나는 지인의 말씀을 듣고 나서 내 나라를 망치게 될까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나와 공자는 임금과 신하가 아니라 덕으로 맺어진 벗입니다.” - 莊子(內篇) ; 第5篇 德充符[6]- 哀公曰:「何謂才全?」 仲尼曰:「死生存亡, 窮達貧富, 賢與不肖毁譽, 飢渴寒暑, 是事之變, 命之行也. 日夜相代乎前, 而知不能規乎其始者也. 故不足以滑和, 不可入於靈府. 使之和預通而不失於兌. 使日夜無?而與物爲春, 是接而生時於心者也. 是之謂才全.」 「何爲德不形?」 曰:「平者, 水停之盛也. 其可以爲法也, 內保之而外不蕩也. 德者, 成和之修也. 德不形者, 物不能離也.」 哀公異日以告閔子曰:始也吾以南面而君天下, 執民之紀而憂其死, 吾自以爲至通矣. 今吾聞至人之言, 恐吾無其實, 輕用吾身而亡其國. 吾與孔丘, 非君臣也, 德友而已矣.」
66` 사람의 정이 없으면 시비가 생기지 않는다 (내편:5.덕충부,7) - 장자(내편) ; 제5편 덕충부[7]- 인기지리무신(온갖 장애가 있는 사람)이 위나라 영공을 만나 유세를 하니 영공이 기뻐했다. 그리고는 온전한 사람들을 보니 그들의 목이 가느다란 것 같았다. 옹앙대영(큰 혹이 있는 사람)이 제나라 환공을 만나 유세를 하니 환공이 기뻐했다. 그리고 나서 온전한 사람들을 보니 그들의 목이 가느다란 것 같았다. 그러므로 덕에 뛰어난 점이 있으면 형체에 대하여는 잊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잊었던 일에 대하여는 잊지 않고, 그들이 잊지 않았던 일은 잊는데, 이러한 것을 진실한 잊음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마음을 노닐게 하는 바가 있으며, 지혜를 번거로운 것이라 하고, 약속은 아교와 같은 것이라 하고, 덕은 다른 일과 접속시키는 것이라 하고, 기교는 남에게 물건을 파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성인은 꾀하지 않는데 어찌 지혜를 쓸 일이 있겠는가? 물건을 깎아 흩트리지 않는데 아교 같은 것을 어디에 쓰겠는가? 잃는 것이 없는데 어디에 덕을 쓰겠는가?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데 어찌 물건을 팔겠는가? 이 네 가지는 천연의 보육인 것이다. 천연의 보육이란 하늘이 먹여주는 것이다. 이미 하늘로부터 먹을 것을 받고 있는데 또 어찌 사람을 필요로 하겠는가? 성 인은 사람의 형체는 지니고 있지만 사람의 정은 지니고 있지 않다. 사람의 형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람의 정이 없기 때문에 시비가 생기지 않는다. 그들이 사람에게 속하여 있는 관계는 아주 작지만, 홀로 천연을 이룩하고 있는 점은 매우 크다. - 莊子(內篇) ; 第5篇 德充符[7]- ??支離無?說衛靈公, 靈公說之. 而視全人, 其?肩肩. 甕[央+瓦]大?說齊桓公, 桓公說之. 而視全人, 其?肩肩. 故德有所長, 而形有所忘. 人不忘其所忘, 而忘其所不忘, 此謂誠忘. 故 聖人有所遊, 而知爲孼, 約爲膠, 德爲接, 工爲商. 聖人不謀, 惡用知? 不斷, 惡用膠? 無喪, 惡用德? 不貨, 惡用商? 四者, 天?也. 天?者, 天食也. 旣受食於天, 又惡用人! 有人之形, 无人之情. 有人之形, 故群於人, 无人之情, 故是非不得於身. ?乎小哉, 所以屬於人也! ?乎大哉, 獨成其天!
67` 사람은 정이 없어야 한다 (내편:5.덕충부,8) - 장자(내편) ; 제5편 덕충부[8]-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정이 없는 것입니까?” 장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혜자가 말했다. “사람이면서 정이 없다면 어떻게 그를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도가 그에게 용모를 부여하였고, 하늘이 그에게 형질을 부여하였는데 어찌 사람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혜자가 말했다. “이미 그를 사람이라 말한다면 어찌 정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그것은 내가 말하는 정이 아닙니다. 내가 정이 없다고 말하는 근거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서 안으로 그 자신을 상하게 하지 않으며, 언제나 자연을 따라서 자기 삶에 이익을 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혜자가 말했다. “삶에 이익 되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자신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도가 그에게 용모를 부여하였고, 하늘이 그에게 형질을 부여하였으니,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서 안으로 자신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정신을 소외하고 당신의 정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나무에 기대어 서면 읊조리고, 앉으면 오동나무 안석에 기대어 잠을 잡니다. 하늘이 당신의 형체를 갖춰주었는데도 당신은 궤변으로 천하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습니다.” - 莊子(內篇) ; 第5篇 德充符[8]- 惠子謂莊子曰:「人故无情乎?」 莊子曰:「然.」 惠子曰:「人而无情, 何以謂之人?」 莊子曰:「道與之貌, 天與之形, 惡得不謂之人?」 惠子曰:「是非吾所謂情也. 吾所謂无情者, 言人之不以好惡內傷其身, 常因自然而不益生也.」 惠子曰:「不益生, 何以有其身?」 莊子曰:「道與之貌, 天與之形, 无以好惡內傷其身. 今子外乎子之神, 勞乎子之精, 倚樹而吟, 據(槁)梧而瞑. 天選之形, 子以堅白鳴!」
68` 지식이란 완전한 것이 못 된다 (내편:6.대종사,1)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1]- 하늘이 하는 일을 알고 사람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지극한 사람이다. 하늘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천연(天然)대로 살아간다. 사람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그의 지각(知覺)이 아는 일을 가지고 그의 지각이 알지 못하는 것을 양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가 타고난 나이대로 다 살면서 중도에 일찍 죽지 않는 사람은 곧 앎이 지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함이 있다. 앎이라 하는 것은 의거하는 데가 있은 다음에야 판단에 들어맞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거하는 곳은 전혀 안정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어찌 내가 말하는 하늘이 사람이 아닐 수가 있겠는가? 어찌 사람이 하늘이 아님을 알 수가 있겠는가?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1]- 知天之所爲, 知人之所爲者, 至矣. 知天之所爲者, 天而生也. 知人之所爲者, 以其知之所知, 以養其知之所不知, 終其天年而不中道夭者, 是知之盛也. 雖然, 有患. 夫知有所待而後當, 其所待者特未定也. 庸?知吾所謂天之非人乎? 所謂人之非天乎?
69` 참된 앎이란 앎이 없는 것이다 (내편:6.대종사,2)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2]- 참된 사람이어야만 참된 앎을 지니게 된다. 참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옛날의 참된 사람은 작은 일에도 거스르지 않고, 성공을 뽐내지 않으며, 일을 꾀하지도 않았었다. 이런 사람은 실패하는 일이 있어도 후회하지 않고, 잘 되어도 스스로 득의양양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가도 떨리지 않고, 물에 빠져도 젖지 않으며, 불 속으로 들어가도 뜨거워하지 않는다. 앎이 도에까지 승화되어 이와 같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옛날의 참된 사람은 잠을 자더라도 꿈을 꾸지 않고, 깨어 있다 하더라도 근심이 없었다. 음식은 좋은 것만을 찾지 않고, 숨쉬는 것은 여유가 있었다. 참된 사람은 발꿈치로도 숨을 쉬지만, 보통사람은 목구멍으로만 숨을 쉰다. 남에게 굴복 당한 사람들은 목에서 나는 소리가 물건을 토해내는 것과 같고, 욕심이 많은 사람은 타고난 기틀이 천박하다. 참된 사람은 삶을 기뻐할 줄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모른다. 세상에 나옴을 기뻐하지도 않고 저승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려 하지도 않는다. 의연히 가고 의연히 올 따름이다. 그는 삶의 시작을 꺼리지도 않고 그는 삶의 종말을 바라지도 않는다. 삶을 받아도 그것을 기뻐하고 그것을 잃어도 기뻐한다. 이것이 자기 마음으로써 도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며, 사람으로써 하늘을 돕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를 두고 참된 사람이라 부른다.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2]- 且有眞人而後有眞知. 何謂眞人? 古之眞人, 不逆寡, 不雄成, 不謨士. 若然者, 過而弗悔, 當而不自得也. 若然者, 登高不慄, 入水不濡, 入火不熱. 是知之能登假於道者也若此. 古之眞人, 其寢不夢, 其覺無憂, 其食不甘, 其息深深. 眞人之息以踵, 衆人之息以喉. 屈服者, 其?言若?. 其耆欲深者, 其天機淺. 古之眞人, 不知說生, 不知惡死. 其出不?, 其入不距. ?然而往, ?然而來而已矣. 不忘其所始, 不求其所終. 受而喜之, 忘而復之, 是之謂不以心損道, 不以人助天. 是之謂眞人.
70` 사물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산다 (내편:6.대종사,3) 경제` 물질` 돈` 때문에 갈등이되는 문제 화두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3]- 참된 사람은 그의 마음을 잊고 있고, 그의 얼굴은 적막하며, 그의 이마는 넓다. 쓸쓸하기가 가을과 같고, 따스하기가 봄과 같다. 기쁨과 노여움의 감정은 사철의 변화와 통하고, 만물과 잘 조화되어 그 한계를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인이 군사를 일으키게 되면 나라를 멸망시켜도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은 잃지 않는다. 이익과 은혜로운 혜택을 오래도록 베풀어지게 하면서도 사람들을 편애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만물에 통달함을 즐기는 것은 성인이 아니다. 따로 친근한 사람이 있는 것은 어짊이 아니다. 때에 앞서는 것은 현명한 것이 아니고, 이로움과 해로움이 같이 통하지 않는 것은 군자가 아니다. 명성을 쫓아서 자기를 잃는 것은 선비가 아니다. 자신을 망치면서도 참되지 않은 것은 남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호불해?무광?백이?숙제?기자?서여?기타?신도적 같은 이들은 남에게 부림을 당하고, 남을 즐겁게 하면서도, 그들의 즐김을 스스로 즐기지 못한 사람들이다.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3]- 若然者, 其心忘, 其容寂, 其??.凄然似秋, 煖然似春, 喜怒通四時, 與物有宜而莫知其極. < 故聖人之用兵也, 亡國而不失人心. 利澤施乎萬世, 不爲愛人, 故樂通物, 非聖人也. 有親, 非仁也. 天時, 非賢也. 利害不通, 非君子也. 行名失己, 非士也. 亡身不眞, 非役人也. 若狐不偕.務光.伯夷.叔齊.箕子.胥餘.紀他.申徒狄, 是役人之役, 適人之適, 而不自適其適者也.>
71` 참된 사람은 모든 것을 한가지로 본다 (내편:6.대종사,4)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4]- 참된 사람은 그의 키가 크다 하더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하지 않으며, 무엇이 부족한 듯하지만 남에게 받는 것이 없다. 편안히 행동하는 것이 모난 듯도 하지만 고집하는 일은 없다. 넓게 텅 비어 있지만 화려하지는 않다. 평화롭고 즐거워 언제나 기쁜 듯하다. 또한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을 때에만 행동을 한다. 그의 얼굴빛은 윤기가 더해가고, 그의 덕은 점잖게 지극한 선에 머물러 있다. 넓게 큰 듯하고, 높아서 제어할 수가 없다. 느릿느릿하여 한가함을 좋아하는 듯하고, 멍하니 말을 잊고 있는 듯하다. 법도로써 본체를 삼고, 예의로써 날개를 삼는다. 앎으로써 때에 알맞게 하고, 도로써 자연을 따른다. 법도로써 본체를 삼는 것은 그의 관찰이 밝기 때문이다. 예의로써 날개를 삼는 것은 세상에서 행동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앎으로써 때에 알맞게 하는 것은 일을 부득이하게 처리하기 때문이다. 덕으로써 자연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발이 있는 사람들이 언덕을 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이 참되려면 힘써 행실을 닦아야만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좋아하는 것도 한가지이고,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한가지이다. 그들에게는 한가지의 것도 한가지이고, 한가지 것이 아닌 것도 한가지이다. 그처럼 한가지라는 것은 하늘과 한 무리가 되는 것이고, 한가지가 아니라는 것은 사람과 한 무리가 되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은 서로 다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참된 사람이라 부르는 것이다.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4]- 古之眞人, 其狀義而不朋, 若不足而不承. 與乎其?而不堅也, 張乎其虛而不華也. ??乎其似喜也! 崔乎其不得已也! ?乎進我色也, 與乎止我德也. ?乎其似世也! ?乎其未可制也. 連乎其似好閉也, ?乎忘其言也. <以刑爲體, 以禮爲翼, 以知爲時, 以德爲循. 以刑爲體者, 綽乎其殺也. 以禮爲翼者, 所以行於世也. 以知爲時者, 不得已於事也. 以德爲循者, 言其與有足者至於丘也. 而人眞以爲勤行者也.> 故其好之也一, 其弗好之也一. 其一也, 其不一也. 其一與天爲徒, 其不一與人爲徒. 天與人不相勝也, 是之謂眞人.
72` 삶을 잘 사는 것이 죽음을 잘 맞이하는 길이다 (내편:6.대종사,5) 바른삶` 가치관` 최선`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5]- 죽음과 삶은 운명이다. 밤과 낮이 일정하게 있는 것은 천연이다. 사람들이 관여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있는 것은 모두가 만물의 실정인 것이다. 그들은 특히 하늘을 아버지처럼 여기면서 몸소 그것을 사랑하고 있다. 더욱 뛰어난 것이야 어떻겠는가? 사람들은 특히 임금은 자기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몸소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물며 참된 사람에게야 어떻겠는가? 물이 마르면 물고기들은 모여 서로 물기를 뿜어주고 서로를 물거품으로 적셔준다. 그러나 강물이나 호수 속에서 서로를 잊고 있던 때보다 못하다. 요임금을 기리고 걸왕을 비난하는 것은 차라리 두 사람을 모두 잊고 올바른 도로 동화되는 것만 못하다. 대지는 우리에게 형체를 부여하고 삶을 주어 우리를 수고하게 하고 있다. 늙게 만듦으로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고, 죽음으로써 우리를 쉬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삶은 잘사는 것은 곧 자기의 죽음을 잘 맞이하는 길인 것이다.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5]- 死生, 命也, 其有夜旦之常, 天也. 人之有所不得與, 皆物之情也. 彼特以天爲父, 而身猶愛之, 而況其卓乎! 人特以有君爲愈乎己, 而身猶死之, 而況其眞乎! 泉?, 魚相與處於陸, 相?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 與其譽堯而非桀也, 不如兩忘而化其道. <夫大塊載我以形, 勞我以生, 佚我以老, 息我以死. 故善吾生者, 乃所以善吾死也.>
73`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러움이 소중하다 (내편:6.대종사,6)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6]- 배를 골짜기에 감추어 두고 어살을 연못 속에 감추어 두면 든든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밤중에 힘있는 자가 그것을 짊어지고 달아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리석은 자들은 알지 못한다. 크고 작은 것을 감추어 두는 데에는 적당한 곳이 있겠지만, 그래도 다른 곳으로 옮겨질 곳이 항상 있는 것이다. 만약 천하를 천하에 감추어 두면 옮겨질 곳이 있을 수가 없는데, 이것이 영원한 만물의 위대한 실정인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의 형체를 타고난 것만으로도 기뻐한다. 사람의 형체 같은 것은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처음부터 한계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즐거워한다면 즐거울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물건이 딴 곳으로 옮겨갈 수 없는 곳에 놓임으로써 모든 존재를 인정한다. 일찍 죽는 일에도 잘 대처하고, 늙는 일에도 잘 대처하며, 시작하는 일에도 잘 대처하고, 끝맺는 일에도 잘 대처하여 사람들이 그를 본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만물이 관계되어 있고, 또 일체의 변화의 근거가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6]- 夫藏舟於壑, 藏山於澤, 謂之固矣. 然而夜半有力者負之而走, 昧者不知也. 藏小大有宜.猶有所遯. 若夫藏天下於天下而不得所遯, 是恒物之大情也. 特犯人之形而猶喜之. 若人之形者, 萬化而未始有極也, 其爲樂可勝計邪! 故聖人將遊於物之所不得遯而皆存. 善夭善老, 善始善終, 人猶效之.又況萬物之所係, 而一化之所待乎 !. 乎 = 어조사(語助辭) ㉡~느냐? ㉢~랴! ㉣~지?, ~겠지? ㉤~도다
74` 도는 만물의 근원으로 어디에나 있다 (내편:6.대종사,7)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7]- 도에는 정수(精粹)가 있고 실효(實效)가 있지만, 작위(作爲)도 없고 형체도 없다. 그것은 마음으로 전할 수는 있으나 물건처럼 받을 수는 없다. 그것을 체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는 없다. 스스로 근본적인 것이어서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의 옛날부터 엄연히 존재했다. 귀신들은 신령스럽게 하고, 황제들은 신성케 하였으며, 하늘을 생성하고 땅을 생성시켰다. 하늘 위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면서 높은 듯하지 않고, 땅 아래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면서 깊은 듯하지 않다. 하늘과 땅보다도 먼저 생겼으면서도 오래 된 듯하지 않고, 태고보다 오래되었으면서도 늙은 듯하지 않다. 희 위씨는 그것을 얻어 하늘과 땅을 연결시켰으며, 복희는 그것을 얻어 음양을 화합시켰다. 북두는 그것을 얻어 영원히 어지러워지지 않으며, 해와 달은 그것을 얻어 영원히 쉬지 않고 돌고 있다. 배감은 그것을 얻어 곤륜산으로 들어갔고, 풍이는 그것을 얻어 큰 강물에서 노닐게 되었으며, 견오는 그것을 얻어 큰산에 거처하게 되었다. 황제는 그것을 얻어 하늘로 올라갔으며, 전욱은 그것을 얻어 현궁에 거처하게 되었다. 우강은 그것을 얻어 땅의 북쪽 끝에 서게 되었고, 서왕모는 그것을 얻어 소광산에 좌정했다. 그 시작도 알 수 없거니와 그 종말도 알 수 없는 것이다. 팽조는 그것을 얻어 순임금 시대부터 오패의 시대까지 살았다. 전설은 그것을 얻어 무정의 재상으로써 온 천하를 다스렸으며, 동유를 올라타고 기숙의 꼬리를 차지하여 여러 별들과 나란히 하게 되었다.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7]- 夫 道, 有情有信, 無爲無形. 可傳而不可受, 可得而不可見. 自本自根, 未有天地, 自古以固存. 神鬼神帝, 生天生地. 在太極之上而不爲高, 在六極之下而不爲深, 先天地生而不爲久, 長於上古而不爲老. <?韋氏得之, 以?天地. 伏羲氏得之, 以襲氣母. 維斗得之, 終古不?. 日月得之, 終古不息. ?堪得之, 以襲崑崙. 馮夷得之, 以遊大川. 肩吾得之.以處大山. 皇帝得之, 以登雲天. ?頊得之, 以處玄宮. ?强得之, 立乎北極. 西王母得之, 坐乎少廣, 莫知其始, 莫知其終. 彭祖得之, 上及有虞, 下及五伯. 傅說得之, 以相武丁, 奄有天下, 乘東維, 騎箕尾, 而比於列星.>
75` 도는 인간적인 욕망의 초월에서 얻어진다 (내편:6.대종사,8) 욕망` 집착` 물질` 명예`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8]- 남백자규가 여우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나이가 많으면서도 얼굴빛이 아이들과 같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여우가 대답했다. “나는 도에 관해서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남백자규가 말했다. “도는 배울 수 있는 것입니까?” 여우가 말했다. “당신은 그럴만한 사람이 못 됩니다. 복양의라는 사람은 성인의 재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성인의 도는 지니고 있지 못했습니다. 나는 성인의 도는 지니고 있지만 성인의 재능은 지니지 못 했습니다. 나는 그를 가르치려 하였지만 그가 성인이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기대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성인의 도를 가지고 성인의 재질이 있는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나는 그에게 도를 닦게 하며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흘 뒤에는 천하를 잊게 되었고, 천하를 잊게 된 뒤 또 도를 닦게 하니 물건을 잊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잊게 된 뒤 다시 도를 닦게 하니 구일 뒤에는 삶을 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삶을 잊은 뒤에는 아침 햇살처럼 깨달음이 열렸고, 깨달음이 열린 뒤에는 유일한 도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를 볼 수 있게 된 뒤에는 시간의 변화가 없게 되었습니다. 시간의 변화가 없게 된 뒤에는 불사불생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모 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멸시키는 변화의 도리는 그 자체로서는 사멸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것에 생명을 주는 조물주는 그 자체로서는 생성하지는 않습니다. 나고 죽음의 배후에 있는 도는 나고 죽음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 도는 사라져 가는 것은 사라져 가는 그대로 보내고, 오는 것은 오는 그대로 맞아들입니다. 멸하는 것은 멸하는 그대로 맡기고 생겨나는 것은 생겨나는 대로 맡겨둡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맡겨두는 것입니다. 이 도의 상태를 영녕(?寧)이라 부릅니다. 영녕이란 스스로는 만족하여 정지하면서 만물은 생성하는 것입니다.” 남백자규가 말했다. “선생님은 어디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셨습니까?” 여우가 말했다. “부묵의 아들에게서 들었습니다. 부묵의 아들은 낙송의 손자에게 들었고, 낙송의 손자는 첨명에게 들었고, 첨명은 섭허에게 들었으며, 섭허는 수역에게 들었고, 수역은 어구에게 들었으며, 어구는 현명에게 들었고, 현명은 참료에게 들었으며, 참료는 의시에게 들었다고 합니다.”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8]- 南伯子葵問乎女?曰:「子之年長矣, 而色若孺子, 何也?」 曰:「吾聞道矣.」 南伯子葵曰:「道可得學邪?」 曰: 「惡! 惡可! 子非其人也. 夫卜梁倚有聖人之才而无聖人之道, 我有聖人之道而无聖人之才, 吾欲以敎之, 庶幾其果爲聖人乎! 不然, 以聖人之道告聖人之才, 亦易矣. 吾猶告而守之, 三日而候能外天下. 已外天下矣, 吾又守之, 七日而後能外物. 已外物矣, 吾又守之, 九日而後能外生. 已外生矣, 而後能朝徹. 朝徹, 而後能見獨. 見獨, 而後能无古今. 无古今, 而後能入於不死不生. 殺生者不死, 生生者不生. 其爲物, 無不將也, 無不迎也. 無不毁也, 無不成也. 其名爲?寧. ?寧也者, ?而後成者也.」 南伯子葵曰:「子獨惡乎聞之?」 曰:「聞諸副墨之子, 副墨之子聞諸洛誦之孫, 洛誦之孫聞之瞻明, 瞻明聞之?許, ?許聞之需役, 需役聞之於謳, 於謳聞之玄冥, 玄冥聞之參寥, 參寥聞之疑始.」
76` 신체의 변화도 자연의 변화의 일부이다 (내편:6.대종사,9)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9]- 자사 ?자여 ?자려 ?자래 네 사람이 모여 이야기했다. “누가 무(無)를 머리로 삼고, 삶을 척추로 삼고, 죽음을 궁둥이로 삼을 수 있겠는가? 누구든 삶과 죽음과 존속과 멸망이 한가지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더불어 친구가 될 것이다.” 네 사람은 서로 바라보면서 웃고 뜻이 맞아 서로 친구가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자여가 병이 나서 자사가 문병을 가니 자여가 말했다. “조물주는 참으로 위대하구나. 내 몸을 이토록 오그라들게 만들다니, 등은 곱사등이 되고, 오장의 힘줄은 위쪽으로 올라가고, 턱은 배꼽 아래로 감추어지고, 어깨가 머리끝보다 높고, 목덜미는 하늘을 가리키게 되었구나.” 음과 양의 기운이 어지러워져 있었으나 그의 마음은 한가롭고 맑아 아무 일도 없는 듯했다. 자여는 비틀거리며 우물가로 걸어가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말했다. “조물주가 나의 모습을 이토록 오그라들게 만들다니....” 자사가 말했다. “당신은 그렇게 된 것이 싫습니까?” 자여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내가 어찌 싫어하겠습니까. 나의 왼팔을 조금씩 변화시켜서 닭으로 만들어 준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새벽을 알려 줄 것입니다. 나의 오른팔을 조금씩 변화시켜 화살로 만들어 준다면 나는 새를 맞추어 구워 먹을 것이고. 나의 궁둥이를 조금씩 변화시켜 수레바퀴를 만들어주고 정신을 변화시켜 말로 만들어 준다면 나는 그대로 타고 다닐 것입니다. 따로 수레에 말을 멜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몸을 타고나는 것은 때를 얻은 것이며, 삶을 잃는 것은 자연의 변화에 따르는 것입니다. 때에 한정되고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면 슬픔이나 즐거움이 끼어들 사이가 없게 됩니다. 이것이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인 것입니다. 그런데 속박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지 못하는 것은 사물이 그를 동여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물이 하늘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오래된 진리입니다. 내가 어찌 싫어하겠습니까?”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9]- 子祀.子輿.子犁.子來四人相與語曰:「孰能以無爲首, 以生爲脊, 以死爲구, 孰知死生存亡之一體者, 吾與之友矣.」 四人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爲友. 俄而子輿有病, 子祀往問之. 曰:「偉哉夫造物者, 將以予爲此拘拘也! 曲?發背, 上有五管, ?隱於齊, 肩高於頂, 句贅指天.」陰陽之氣有?, 其心閒而無事, ?[足+鮮]而鑑於井, 曰:「嗟乎! 夫造物者又將以予爲此拘拘也!」 子祀曰:「女惡之乎?」 曰: 「亡, 予何惡? 浸假而化予之左臂而爲鷄, 予因以求時也. 浸假而化予之右臂以爲彈, 予因以求?灸. 浸假而化予之尻以爲輪, 以神爲馬, 予因以乘之, 豈更駕哉! 且夫得者, 時也, 失者, 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 此古之所謂縣解也. 而不能自解者, 物有結之. 且夫物不勝天久矣, 吾又何惡焉!」
77` 삶과 죽음은 변화하는 자연현상일 뿐이다 (내편:6.대종사,10)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10]- 자래가 병이 나서 숨을 몰아쉬며 죽으려 했다. 그의 처자들은 그를 둘러싸고 울고 있었다. 자리가 문병을 가서 말했다. “조용히 하고 저리들 가시오. 변화를 슬퍼할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방문에 기대어 자래에게 말했다. “자연의 조화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당신을 또 무엇으로 만들려는 것일까요? 당신을 어디로 가게 하려는 것일까요? 당신을 쥐의 간으로 만들려는 것일까요? 벌레의 발로 만들려는 것일까요?” 자래가 말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동서남북 어디로 가라고 하던 그대로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천지음양의 조화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부모의 명령정도가 아닙니다. 음양이 나에게 죽음을 요구하는데도 내가 따르지 않는다면 나는 곧 난폭한 자가 될 것이지만 음양에게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천지는 나에게 형체를 주어 삶으로써 나를 힘들게 하고, 늙음으로써 나를 편안케 하고, 죽음으로 쉬게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삶을 잘 사는 것이 곧 자기의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입니다. 대장장이가 쇠를 녹여 주물을 만들려고 하는데, 쇳물이 튀면서「나는 반드시 막야의 명검이 되겠다」고 말한다면 대장장이는 불길한 쇠라고 말할 것입니다. 지금 한번 사람의 형체를 타고났다고 해서「사람뿐이다. 나는 사람의 모습으로만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조물주는 반드시 불길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커다란 용광로라 생각하고 조물주를 대장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디로 가게 된들 문제될 것이 있겠습니까? 깜빡 잠들었다가 문뜩 깨어날 뿐인 것입니다.”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10]- 俄而子來有病, 喘喘然將死, 其妻子環而泣之. 子?往問之, 曰:「叱! 避! 無?化」 倚其戶與之語曰:「偉哉造化! 又將奚以汝爲, 將奚以汝適? 以汝爲鼠肝乎? 以汝爲蟲臂乎?」 子 來曰:「父母於子, 東西南北, 唯命之從. 陰陽於人, 不翅於父母. 彼近吾死而我不聽, 我則悍矣, 彼何罪焉! 夫大塊載我以形, 勞我以生, 佚我以老, 息我以死. 故善吾生者, 乃所以善吾死也. 今之大冶鑄金, 金踊躍曰 ‘我且必爲?[金+邪]大冶必以爲不祥之金. 今一犯人之形, 而曰 ‘人耳人耳’, 夫造化者必以爲不祥之人. 今一以天地爲大?, 以造化爲大冶, 惡乎往而不可哉!」成然寐, ?然覺.
78` 삶은 군살이고 죽음은 고름을 짜는 것과 같다 (내편:6.대종사,11)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11]- 자상호와 맹자반과 자금장 이렇게 세 사람이 서로 어울려 벗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누가 서로 관계가 없는 데서 서로 관계를 가지며, 서로 작용이 없는 데서 서로 작용할 수가 있겠는가? 누가 하늘로 올라가 안개 속을 노닐며 무한히 돌아다니고, 모든 것을 잊고 살면서 끝나는 곳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세 사람은 서로 쳐다보며 웃고 마음이 맞아 서로 친구가 되었다. 그 후 아무 일 없이 얼마동안 지내다가 자상호가 죽었다. 장사를 지내기 전에 공자도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자공을 보내어 일을 거들도록 했다. 가서 보니 맹자반과 자금장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누에 채반을 엮고 있고, 한 사람은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상호여, 상호여, 그대는 이미 참된 세상으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네.” 자공이 나아가 말했다. “시체를 앞에 두고 노래를 하는 것이 예라고 생각하십니까?”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저 사람이 어찌 예의 뜻을 알겠는가?” 자공이 돌아와 그 사실을 공자에게 말했다. “어찌 된 사람들이 세련된 행동이란 없고, 자신의 육체를 도외시하고 있었습니다. 시체를 앞에 두고 노래를 하면서도 얼굴 빛 조차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들은 세속의 밖에서 노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는 세속의 안에서 놀고 있다. 이 세상의 밖과 안은 서로 미칠 수 없는 것인데도 내가 너에게 가서 문상을 하게 하였으니 내가 부족했다. 그들은 지금 조물주와 벗이 되어 하늘과 땅의 한 기운 속에 노닐고 있다. 그들은 삶을 군살이나 혹처럼 여기고, 죽음을 고름을 짜거나 종기를 찢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어찌 죽음과 삶에 앞서고 뒤서는 것이 있음을 알겠느냐? 물체를 빌림으로써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만, 사실은 본체에 자신을 기탁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간이나 쓸개까지도 잊고, 자기의 귀와 눈도 염두에 없다. 처음과 끝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도 알 수가 없다. 아득히 티끌 세상 밖을 왕래하면서 하는 일 없는 무위의 일에 종사하면서 노닐고 있다. 그들이 어찌 번거롭게 세상 풍습의 예를 따르면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겠느냐?”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11]- 子桑戶.孟子反.子琴張三人相與語曰:「孰能相與於無相與, 相爲於無相爲? 孰能登天遊霧, 撓挑無極. 相忘以生, 無所終窮?」 三人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爲友. 莫然有間而子桑戶死, 未葬. 孔子聞之, 使子貢往侍事焉. 或編曲, 或鼓琴, 相和而歌曰:「嗟來桑戶乎! 嗟來桑戶乎! 而已反其眞, 而我猶爲人?!」 子貢趨而進曰:「敢問臨尸而歌, 禮乎?」 二人相視而笑曰:「是惡知禮矣!」 子貢反, 以告孔子, 曰:「彼何人者邪? 修行無有, 而外其形骸, 臨尸而歌, 顔色不變, 無以命之, 彼何人者邪?」 孔子曰:「彼, 遊方之外者也. 而丘, 遊方之內者也. 外內不相及, 而丘使女往弔之, 丘則陋矣. 彼方且與造物者爲人, 而遊乎天地之一氣. 彼以生爲附贅縣?, 以死爲決[ ? +丸]潰潰癰, 夫若然者, 又惡知死生先後之所在! 假於異物, 托於同體. 忘其肝膽, 遺其耳目. 反覆終始, 不知端倪. 芒然彷徨乎塵垢之外, 逍遙乎無爲之業. 彼又惡能??然爲世俗之禮, 以觀衆人之耳目哉!」
79` 도의 세상에서는 서로를 잊는다 (내편:6.대종사,12)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12]-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세상의 안과 밖 중 어느 곳을 쫓고 계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는 하늘의 벌을 받은 사람으로 세속의 안에 얽매어 있다. 그렇지만 나도 너희들과 함께 세상의 밖에서 살려고 한다.” 자공이 말했다. “세속의 밖으로 나가는 방법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가고, 사람들은 도에서 살아간다. 물에서 사는 것들을 위해서는 못을 파주면 먹고 살 수 있게 되고, 도에서 사는 것을 위해서는 아무 일 없이 안정되게 살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물고기는 강과 호수에서는 서로를 잊고, 사람은 도의 세계에서 서로를 잊는다고 하는 것이다.” 자공이 말했다. “기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기인이란 사람으로써는 기이하지만 하늘에 대하여는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소인은 인간 세상에서는 군자가 되며, 인간 세상의 군자는 하늘에서는 소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12]- 子貢曰:「然則夫子何方之依?」 孔子曰:「丘, 天之戮民也. 雖然, 吾與汝共之.」 子貢曰:「敢問其方.」 孔子曰:「魚相造乎水, 人相造乎道. 相造乎水者, 穿池而養給. 相造乎道者, 無事而生定. 故曰, 魚相忘乎江湖, 人相忘乎道術.」 子貢曰:「敢問畸人.」 曰:「畸人者, 畸於人而?於天. 故曰, 天之小人, 人之君子. 天之君子, 人之小人也.」
80` 죽음과 삶의 실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편:6.대종사,13)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13]-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맹손재는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곡을 하면서 눈물도 흘리지 않고 마음속엔 슬픔이 없는 듯 했고, 상을 지킴에 있어 서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예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는데도 상을 잘 치렀다는 평판이 노나라에 파다합니다. 이것은 상을 잘 치르지도 않고서 좋은 평판을 얻은 것이 아닙니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맹손씨는 도리를 다하였고, 예를 아는 사람들보다 훌륭했다. 사람들은 상을 간단히 치르려 해도 되지 않는데, 그는 이미 간단히 치르고 있다. 맹손씨는 살게 된 까닭을 알지 못하고, 죽게 된 까닭도 알지 못했다. 먼저 태어나는 것도 알지 못하였고, 뒤에 죽는 것도 알지 못했다. 자연의 변화에 따라 사람이 되었으니 자기는 알지 못하는 변화를 따를 따름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또 한 살아서 변화하고 있는 지금 어찌 변화하기 전의 상태를 알겠느냐? 변화하고 있지 않는 지금 어찌 변화한 뒤의 일을 알 수 있겠느냐? 나나 그대나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자들이 아닐까? 또한 그는 형체의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마음을 손상시키지는 않는다. 마음을 기탁한 몸의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마음은 정말로 죽는 일이 없다. 맹손씨는 독특한 깨달음이 있어서 남들이 곡을 하니 자신도 곡을 하기는 하지만 자기에게 합당한 방법으로 한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모두 지금의 몸을 가리켜 자기라고 하지만 그들이 어찌 자기들이 생각하는 자기가 진실한 자기임을 알겠느냐? 또한 그대가 꿈에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오르거나, 물고기가 되어 물속에 잠겼었다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꿈에서 깨어난 것인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꿈속에서 말하는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즐거운 상황에서 꼭 웃으려 할 것도 없으며, 이미 웃음이 나왔다면 그것을 안배할 것도 없는 것이다. 자연의 안배에 편안히 지내면서 변화를 따른다면 비로소 텅 빈 하늘과 일체가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13]- 顔回問仲尼曰:「孟孫才, 其母死, 哭泣無涕, 中心不戚, 居喪不哀. 無是三者, 以善處喪蓋魯國. 固有無其實而得其名者乎? 回壹怪之.」 仲尼曰:「夫孟孫氏盡之矣, 進於知矣, 唯簡之而不得, 夫已有所簡矣. 孟孫氏不知所以生, 不知所以死. 不知孰先, 不知孰後. 若化爲物, 以待其所不知之化已乎! 且方將化, 惡知不化哉? 方將不化, 惡知已化哉? 吾特與汝, 其夢未始覺者邪! 且彼有駭形而無損心, 有旦宅而無耗精. 孟孫氏特覺, 人哭亦哭, 是自其所以乃. 且也相與吾之耳矣, 庸?知吾所謂吾之非吾乎? 且汝夢爲鳥而?乎天, 夢爲魚而沒於淵. 不識今之言者, 其覺者乎, 其夢者乎? 造適不及笑, 獻笑不及排, 安排而去化, 乃入於廖天一.」
81` 깨우쳐 노력하면 고쳐 바른길로 갈 수 있다 (내편:6.대종사,14) 그러나 사람들은 이익을 따르므로 깨달음 보다는 이익이 먼저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14]- 의이자가 허유를 만나니 허유가 말했다. “요임금이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습니까?” 의이자가 말했다. “요임금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그대는 반드시 어짊과 의로움을 몸소 닦고, 옳고 그름을 밝게 말해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허유가 말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왔습니까? 요임금이 이미 당신에게 어짊과 의로움이란 먹물을 몸에 새기는 형벌을 가하였고, 옳고 그름이라는 코 베는 형벌을 가한 셈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어찌 거리낌 없이 자유로우며 변화 많은 도에 노닐려 하십니까?” 의이자가 말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 경지 안에 노닐고 싶습니다.” 허유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장님에게는 이목과 얼굴의 아름다움이 상관없고, 또한 여러 가지 채색과 무늬의 고움이 상관없는 것입니다.” 의이자가 말했다. “무장이 그의 아름다움을 잊고, 거양이 그의 힘을 잊고, 황제가 그의 앎을 잊었던 것은 모두가 노력을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조물주께서 저의 먹물을 몸에 새긴 형벌을 지워주시고, 코 베인 형벌을 보완해 주시어 제가 완전한 몸으로 선생님을 따르게 할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허유가 말했다. “알수 없는 일입니다. 나의 스승께서는 만물을 이룩해 주면서도 의로움이라 여기지 않으셨고, 만세에 은혜의 혜택이 미치게 하면서도 어짊이라 여기지 않으셨으며, 태고 적부터 살았으면서도 늙었다 여기지 않으셨고, 하늘과 땅을 위 아래로 만들고 여러 가지 형체들을 조각하였으면서도 교묘하다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노닐 경지입니다.”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14]- 意而子見許由. 許由曰:「堯何以資汝?」 意而子曰:「堯謂我:‘汝必躬服仁義而明言是非.’」 許由曰:「而奚來爲?? 夫堯旣已?汝以仁義, 而?汝以是非矣, 汝將何以遊夫遙蕩恣? 轉徙之塗乎?」 意而子曰:「雖然, 吾願遊於其藩.」 許由曰:「不然. 夫盲者無以與乎眉目顔色之好, ?者無以與乎靑黃??之觀.」 意而子曰:「夫无莊之失其美, 據梁之失其力, 皇帝之亡其知, 皆在??之間耳. 庸?知夫造物者之不息我?而補我?, 使我乘成以隨先生邪?」 許由曰:「噫! 未可知也. 我爲汝言其大略. 吾師乎! 吾師乎![?+?]萬物而不爲義, 澤及萬世而不爲仁, 長於上古而不爲老, 覆載天地刻彫衆形而不爲巧. 此所遊已.」
82` 좌망이란 모든 차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내편:6.대종사,15)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15]- 안회가 말했다. “저에게도 한 가지 발전한 것이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무슨 뜻이냐?” “저는 어짊과 의로움을 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은 부족하다.” 훗날 안회가 공자를 만나서 다시 말했다. “제에게 한 가지 발전한 것이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무엇이냐?” 안회가 말했다. “저는 예와 음악을 잊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아직도 덜 되었다.” 뒷날 다시 만나 안회가 말했다. “저에게도 발전한 것이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무엇이냐?” 안회가 말했다. “저는 좌망(坐忘)을 하게 되었습니다.” [ 좌망(坐忘) = 조용히 앉아서 잡념을 버리고 무아의 경지에 들어감. ] 공자가 놀란 듯이 되물었다. “좌망이란 어떤 것이냐?” 안회가 대답했다. “자신의 신체나 손발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눈이나 귀의 움직임을 멈추고, 형체가 있는 육체를 떠나 마음의 지각을 버리며, 모든 차별을 넘어서 대도에 동화하는 것이 좌망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도와 일체가 되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차별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변화에 그대로 따르면 일정한 것만을 추구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과연 현명하구나. 나도 너의 뒤를 따르며 배움을 얻어야겠다.”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15]- 顔回曰:「回益矣.」 仲尼曰:「何謂也?」 曰:「回忘禮樂矣.」 曰:「可矣, 猶未也.」 他日, 復見, 曰:「回益矣.」 曰:「何謂也?」 曰:「回忘仁義矣.」 曰:「可矣, 猶未也.」 他日, 復見, 曰:「回益矣.」 曰:「何謂也?」 曰:「回坐忘矣.」 仲尼蹴然曰:「何謂坐忘?」 顔回曰:「墮肢體, 黜聰明, 離形去知, 同於大通, 此謂坐忘.」 仲尼曰:「同則無好也, 化則無常也. 而果其賢乎! 丘也請從而後也.」
83` 모든 것은 운명이며 자연의 필연적인 힘이다 (내편:6.대종사,16) ? - 장자(내편) ; 제6편 대종사[16]- 자여와 자상이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마침 장마비가 열흘 간 내리니 자여가 자상이 병이 났을지도 모른다며 밥을 싸 가지고 그에게 주러 갔다. 자상의 집 문 앞에 이르니 노래하는 것도 같고, 곡하는 것도 같은 목소리로 거문고를 타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하늘의 짓인가. 사람의 짓인가?” 그는 힘겹게 나오는 목소리로 가사만을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자여가 들어가 말했다. “자네의 노래가 어째서 이 모양인가?” 자상이 말했다. “나를 이런 궁지에 몰리게 한 것이 누구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네. 부모라면 어찌 내가 가난하기를 바라시겠는가? 하늘은 사사로이 어떤 개인만을 덮어주지 않고, 땅은 사사로이 어떤 개인만을 길러주지 않으니, 하늘과 땅이 또한 나를 가난하게 만들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나를 이렇게 만든 자를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였네. 그러나 이토록 궁지에 몰리게 되었으니 운명인 모양일세.” - 莊子(內篇) ; 第6篇 大宗師[16]- 子輿與子桑友, 而霖雨十日. 子輿曰:「子桑殆病矣!」裏飯而往食之. 至子桑之門, 則若歌若哭, 鼓琴曰:「父邪! 母邪! 天乎! 人乎!」 有不任其聲而趨擧其詩焉. 子輿入, 曰:「子之歌詩, 何故若是?」 曰:「吾思夫使我至此極者而不得也. 父母豈欲吾貧哉? 天無私覆, 地無私載, 天地豈私貧我哉? 求其爲之者而不得也. 然而至此極者, 命也夫!」
84` 얽매이지도 않고 아무 것도 모른다 (내편:7.응제왕,1) - 장자(내편) ; 제7편 응제왕[1]- 설결이 왕예에게 가서 네 가지 질문을 하였는데 네 가지를 다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자 설결을 크게 기뻐하고, 포의자에게 가서 그 얘기를 했다. 포의자가 말했다. “이제야 그것을 알았는가? 유우씨는 태씨에게 미치지 못하는 분이었다. 유우씨는 그래도 어짊을 지니고 사람들을 구하여 사람들을 얻기는 하였으나, 처음부터 물건으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했다. 태씨는 잠잘 때는 평화스러웠고, 깨어났을 때에는 멍청했다. 어떤 때는 자신을 말이라 하였고, 어떤 때는 자신을 소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지혜는 진실로 믿음이 있고, 그의 덕은 매우 참되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물건에 얽매이지 않았었다.” - 莊子(內篇) ; 第7篇 應帝王[1]- 齧缺問於王倪, 四問而四不知. 齧缺因躍而大喜, 行以告蒲衣子. 蒲衣子曰:「而乃今知之乎? 有虞氏不及泰氏. 有虞氏, 其猶藏仁以要人. 亦得人矣, 而未始出於非人. 泰氏其臥徐徐, 其覺于于. 一以己爲馬, 一以己爲牛. 其知情信, 其德甚眞, 而未始入於非人.
85` 세상은 강압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다 (내편:7.응제왕,2) ? - 장자(내편) ; 제7편 응제왕[2]- 견오가 광접여를 만났다. 광접여가 말했다. “일중시가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였습니까?” 견오가 말했다. “내게 말하기를「임금 된 사람이 자기 맘대로 법령과 제도를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감히 따르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접여가 말했다. “그것은 덕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은 바다를 걸어서 건너가거나 땅을 파서 큰 강물을 만드는 것처럼 힘들고, 모기에게 산을 짊어지게 하는 것처럼 힘든 일입니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릴 때 겉을 다스리겠습니까? 자신을 올바르게 한 다음에 행동하며, 확실히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줄 따름입니다. 새는 높이 날아서 화살의 위험을 피하고, 생쥐는 큰 언덕 아래 깊은 굴을 파서 불에 타고 집이 파헤쳐지는 환란을 피합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전혀 지혜가 없는 짐승입니다.” - 莊子(內篇) ; 第7篇 應帝王[2]- 肩吾見狂接輿, 狂接輿曰:「日中始何以語女?」 肩吾曰:「告我君人者以己出經式義度, 人孰敢不聽而化諸!」 狂接輿曰:「是欺德也. 其於治天下也, 猶涉海鑿河, 而使蚊負山也. 夫聖人之治也, 治外乎! 正而後行, 確乎能其事者而已矣. 且鳥高飛以避??之害, ?鼠深穴乎神丘之下, 以避熏鑿之患, 而曾二蟲之無如!」
86` 사람은 편안히 생활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편:7.응제왕,3) ? - 장자(내편) ; 제7편 응제왕[3]- 천근이 은양 땅을 가다가 요수가에 이르러 어떤 이를 만나 물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사람이 말했다. “저리 가시오! 어째서 즐겁지 않은 질문을 하는 것입니까? 나는 지금 조물주와 벗이 되어 있습니다. 싫증이 나면 아득히 나는 새를 타고 이 세상 밖으로 가서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노닐며 한없이 넓은 들에서 살려던 참이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세상을 다스리는 일로 내 마음을 흩트리려 하는 것입니까?” 그래도 다시 물으니 그 사람이 말했다. “당신은 마음을 담담한 곳에 노닐게 하고 기운을 막막한 곳에 모을 것이며, 만물의 자연스러움을 따라 사사로움이 끼여들지 않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천하가 다스려질 것입니다.” - 莊子(內篇) ; 第7篇 應帝王[3]- 天根遊於殷陽, 至蓼水之上, 適遭無名人而問焉, 曰:「請問爲天下.」 無名人曰:「去! 汝鄙人也, 何問之不豫也! 予方將與造物者爲人, 厭, 則又乘夫莽?之鳥, 以出六極之外, 而遊無何有之鄕, 以處壙垠之野. 汝又何?以治天下感予之心爲?」 又復問. 無名氏曰:「汝遊心於淡, 合氣於漠, 順物自然而無容私焉, 而天下治矣.」
87` 세상은 저절로 다스려지게 해야 한다 (내편:7.응제왕,4) - 장자(내편) ; 제7편 응제왕[4]- 양자거가 노자를 만나서 말했다. “한 사람이 있는데, 동작이 빠르고 몸이 튼튼하며, 생각도 트이고 밝은 데다 도를 배우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밝은 임금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런 사람은 성인이 되기에는 너무 앎에 헛갈리고 자기 몸에 걸리어 몸을 번거롭게 하고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에 있는 무늬는 사람들에게 사냥을 하도록 충동시키고, 원숭이의 날램이나 삵쾡이를 잡는 개의 재주는 사람에게 끌려 다니며 자유롭지 못한 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밝은 임금에게 견줄 수 있겠습니까?” 양자거는 감동한 듯이 말했다. “밝은 임금의 다스림은 어떤 것입니까?” 노자가 말했다. “밝은 임금의 다스림은 공로가 천하를 뒤덮을 만해도 자기 힘으로 한 것처럼 보이게 행동하지 않으며, 교화가 만물에 베풀어져도 백성들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훌륭한 정치가 행하여져도 형용할 길이 없으며, 만물로 하여금 스스로 기뻐하게 만듭니다.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서서 아무 거리낌없는 경지에 노니는 것입니다.” - 莊子(內篇) ; 第7篇 應帝王[4]- 陽子居見老聃, 曰:「有人於此, 嚮疾强梁, 物徹疏明, 學道不[卷+力]. 如是者, 可比明王乎?」 老聃曰:「是於聖人也, 胥易技係, 勞形?心者也. 且也虎豹之文來田, ?狙之便來藉. 如是者, 可比明王乎?」 陽子居蹴然曰:「敢問明王之治.」 老聃曰:「明王之治:功蓋天下而似不自己, 化貸萬物而民弗恃. 有莫擧名, 使物自喜. 立乎不測, 而遊於無有者也.」
88` 운명은 있으나 내다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내편:7.응제왕,5) - 장자(내편) ; 제7편 응제왕[5]- 정나라에 계함이라는 신통한 무당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생사존망이나 화와 복, 오래 살고 일찍 죽는 일들을 년?월?일?시까지 귀신 같이 알아냈다. 정나라 사람들은 자기의 죽는 날을 알아맞힐까 두려워 그를 보기만 하면 모두 급히 달아났다. 열자가 그를 만나보고 반하여 돌아와 호자에게 말했다. “처음에 저는 선생님의 도가 지극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더 지극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호자가 말했다. “나는 너에게 형식에 대해서는 다 가르쳤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다 가르치지 못 했다. 너는 본시부터 도를 터득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느냐? 암컷이 많다 하더라도 수컷이 없으면 어찌 새끼가 있겠느냐? 네가 도를 가지고 세상 사람들과 다투는 것은 너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남으로 하여금 네 관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시험삼아 데리고 와서 내 관상을 보게 해라.” 다음날, 열자가 그를 데리고 와 호자를 만나보게 했다. 무당이 호자를 만나고 나와서 열자에게 말했다. “당신 선생은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열흘을 못 넘길 것입니다. 나는 이상한 것을 보았습니다. 젖은 재의 상을 보았습니다.” 열자가 들어가 옷깃이 흠뻑 젖도록 울면서 그 얘기를 호자에게 했다. 호자가 말했다. “조금 전에 나는 그에게 지문(地文)의 상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멍하니 움직이지도 않고 멎어 있지도 않는 것이다. 그는 아마 덕의 발동을 막는 경지를 보았을 것이다. 다시 한번 데려와 보거라.” 다음날 다시 무당을 데리고 와 호자를 보게 했다. 무당이 호자를 보고 나와서 열자에게 말했다. “당신의 선생이 나를 만난 것은 천만 다행입니다. 병이 다 나았습니다. 이제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그의 생명의 싹이 솟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열자가 들어가 그 얘기를 호자에게 하니, 호자가 말했다. “조금 전 나는 그에게 천양(天壤)의 상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이름도 형태도 없는 상태로 생기가 발뒤꿈치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마 천지 사이에 선한 생기가 점차 나타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시험삼아 다시 데려와 보거라.” 다음날 다시 계함과 함께 열자가 호자를 만나 보았다. 계함이 호자를 만나고 나와서 열자에게 말했다. “당신의 선생은 무슨 까닭인지 일정하지가 않기 때문에 나로서는 관상을 보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일정하게 하도록 전해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 한번 관상을 보아드리겠습니다.” 열자가 들어가 그 얘기를 호자에게 전하니 호자가 말했다. “나는 좀 전에 그에게 태충막승(太沖莫勝)의 상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빈 마음 그대로 일체를 받아들여 우열의 차별을 두지 않는 경지이다. 그는 아마 생기를 고르게 하여 일체를 평등하게 하는 심경을 보았을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물이 모여 못이 되고, 정지한 물이 못이 되며, 흐르는 물이 모여 못이 된다. 못에는 아홉 가지가 있지만 나는 그 중 세 가지만 들었다. 그를 다시 한번 데려와 보거라.” 다음날 다시 열자가 계함과 함께 호자를 만났다. 계함은 서 있을 새도 없이 넋이 빠져 달아났다. 호자가 말했다. “그를 따라가 보아라.” 열자가 그를 따라갔으나 따라잡지 못하고 되돌아와 호자에게 말했다. “이미 없어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호자가 말했다. “조금 전에 나는 그에게 미시출오종(未始出吾宗)의 상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자기의 근본에 있는 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경지이다. 이 경지에서는 자기를 공허하게 하고, 오직 사물의 움직임에 맡기어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며 다만 흐름에 맡기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천변만화하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 도망친 것이다.” 그 후 열자는 자기의 학문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 삼 년 동안 문밖을 나오지 않고, 그의 아내 대신 밥을 짓기도 하고, 돼지 먹이기를 사람 먹이듯 했다. 차별하는 마음을 버리고 특정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인위를 버리고 소박한 상태로 돌아가 마치 생각도 마음도 없는 흙과 같은 모습을 한 채 우뚝 서서 모든 것을 혼돈에 맡기고 그대로 평생을 마쳤다. - 莊子(內篇) ; 第7篇 應帝王[5]- 鄭有神巫曰季咸, 知人之死生存亡, 禍福壽夭, 期以歲月旬日, 若神. 鄭人見之, 皆棄而走. 列子見之而心醉, 歸, 以告壺子, 曰:「始吾以夫子之道爲至矣, 則又有至焉者矣.」 壺子曰:「吾與汝旣其文, 未旣其實, 而固得道與? 衆雌而无雄, 而又奚卵焉! 而以道與世亢, 必信, 夫故使人得而相汝. 嘗試與來, 以予示之.」 明日, 列子與之見壺子. 出而謂列子曰:「噫! 子之先生死矣! 弗活矣! 不以旬數矣! 吾見怪焉, 見濕灰焉. 列子入, 泣涕沾襟以告壺子. 壺子曰:「鄕吾示之以地文, 萌乎不震不正. 是殆見吾杜德機也. 嘗又與來.」 明日, 又與之見壺子. 出而謂列子曰:「幸矣, 子之先生遇我也! 有?矣, 全然有生矣! 吾見其杜權矣.」 列子入, 以告壺子. 壺子曰:「鄕吾示之以天壤, 名實不入, 而機發於踵. 是殆見吾善者機也. 嘗又與來.」 明日, 又與之見壺子. 出而謂列子曰:「子之先生不齊, 吾无得而相焉. 試齊, 且復相之.」 列子入, 以告壺子. 壺子曰:「鄕吾示之以太沖莫勝. 是殆見吾衡氣機也. ?桓之審爲淵, 止水之審爲淵, 流水之審爲淵. 淵有九名, 此處三焉. 嘗又與來.」 明日, 又與之見壺子. 立未定, 自失而走. 壺子曰:「追之!」列子追之不及. 反, 以報壺子曰:「已滅矣, 已失矣, 吾弗及已.」 壺子曰:「鄕吾示之以未始出吾宗. 吾與之虛而委蛇, 不知其誰何, 因以爲弟靡, 因以爲波流, 故逃也.」 然後列子自以爲未始學而歸, 三年不出. 爲其妻?, 食豕如食人. 於事无與親, 雕琢復朴, 塊然獨以其形立. 紛而封哉, 一以是終.
89` 마음 쓰기를 거울과 같이 해야 한다 (내편:7.응제왕,6) 참으로 어렵다 갈등` - 장자(내편) ; 제7편 응제왕[6]- 명예의 우상이 되지 마라. 모의(謀議)의 중심이 되지 마라. 일의 책임자가 되지 마라. 지혜의 소유주가 되지 마라. 무궁한 도를 철저히 터득하여 아무 조짐도 없는 경지에 노닐어라.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을 다하여 이득을 찾지 마라. 언제나 마음은 텅 비워야 한다. 지인(至人)의 마음 씀은 거울과 같은 것이다. 가는 것은 가는 대로 두고 오는 것은 오는 대로 둔다. 변화에 호응하되 감추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사물을 견뎌내면서 상처받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 莊子(內篇) ; 第7篇 應帝王[6]- 无爲名尸, 无爲謀府. 无爲事任, 无爲知主. 體盡无窮, 而遊无朕. 盡其所受乎天, 而无見得, 亦虛而已. 至人之用心若鏡, 不將不迎, 應而不藏, 故能勝物而不傷.
90` 인위가 가해지면 자연은 죽는다 (내편:7.응제왕,7) 자연` 환경` - 장자(내편) ; 제7편 응제왕[7]- 남해의 제왕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제왕을 홀이라 하고, 중앙의 제왕을 혼돈이라 했다. 어느 날 숙과 홀이 혼돈의 땅에서 만나게 되었다. 혼돈이 이들을 매우 잘 대접해 주자, 숙과 홀은 혼돈에게 보답할 의논을 했다. “사람들은 일곱 개의 구멍을 가지고 있어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고 있는데 혼돈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그에게 구멍을 뚫어주도록 합시다.” 그래서 혼돈의 몸에 하루에 한 개씩 구멍을 뚫어주었는데, 칠 일 만에 혼돈이 죽고 말았다. - 莊子(內篇) ; 第7篇 應帝王[7]- 南海之帝爲?, 北海之帝爲忽, 中央之帝爲混沌. ?與忽時相與遇於混沌之地, 混沌待之甚善. ?與忽謀報混沌之德, 曰:「人皆有七竅以視聽食息, 此獨無有, 嘗試鑿之.」日鑿一竅, 七日而混沌死. ================= [[외편 15 outer chapters]] 91` 인의 덕성의 존중과 논리의 전개는 쓸 데 없다 (외편:8.변무,1) - 장자(외편) ; 제8편 변무[1]-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이 붙어버린 변무나 손가락이 여섯인 육손이는 자연에서 나온 것이지만 정상적인 인간의 본성에서 보면 군더더기이다. 사마귀나 늘어진 혹은 몸에서 나왔지만 인간의 본성에서 보면 군더더기이다. 인의를 너무 중시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것이 오장에 딸려 있는 것이라 해도 도덕의 올바른 형태가 아니다. 발가락이 달라붙는 것은 쓸데없는 살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손에 손가락이 하나 더 있는 것은 쓸데없는 손가락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것이다. 오장의 진실한 기능에 쓸데없는 것을 덧붙여서 존중하는 사람들은 인의의 행위에 지나치게 치우치려고, 밝은 귀와 밝은 눈의 사용을 너무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밝음이 너무 지나친 사람은 오색에 혼란을 일으키고 아름다운 무늬에 빠져, 파란색, 노란색과 무늬의 화려함을 만드는 것이다. 이주 같은 사람이 그 예이다. 귀밝음이 지나친 사람은 오성(五聲)에 혼란을 일으키고 육률(六律)에 빠져, 쇠나 돌과 실과 대로 만든 악기와 황종과 대여와 같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사광 같은 사람이 그 예이다. 인(仁)을 쓸데없이 중시하는 사람은 덕을 빼내고 본성을 뽑아내며 세상사람들에게 따를 수 없는 법도를 받들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증삼과 사추 같은 사람이 그 예이다. 변설을 중시하는 사람은 탄알을 쌓아놓고 새끼줄로 묶으려는 것처럼 말귀를 따지려 들고, 궤변에 마음을 쓰며 애써 쓸데없는 말을 기리는 것이다. 양자나 묵자 같은 사람이 그 예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은 모두가 쓸데없는 것을 존중하고 소용없이 덧붙은 것을 존중하는 도이며, 천하의 지극한 올바른 도는 아닌 것이다. - 莊子(外篇) ; 第8篇 騈拇[1]- 騈拇枝指, 出乎性哉! 而侈於德. 附贅縣?, 出乎形哉! 而侈於性. 多方乎仁義而用之者, 列於五藏哉! 而非道德之正也. 是故騈於足者, 連無用之肉也. 枝於手者, 樹無用之指也. 騈枝於五藏之情者, 淫僻於仁義之行, 而多方於聰明之用也. 是故騈於明者, 亂五色, 淫文章, 靑黃??之煌煌非乎? 而離朱是已. 多於聰者, 亂五聲, 淫六律, 金石絲竹黃鐘大呂之聲非乎? 而師曠是已. 枝於仁者, 擢德塞性以收名聲, 使天下簧鼓以奉不及之法非乎? 而曾史是已. 騈於辯者, 累瓦結繩竄句, 遊心於堅白同異之閒, 而??譽無用之言非乎? 而楊墨是已. 故此皆多騈旁枝之道, 非天下至至正也.
92`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외편:8.변무,2) - 장자(외편) ; 제8편 변무[2]- 올바른 경지에 이른 사람은 그의 본성과 운명의 진실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합쳐져 있다 하더라도 쓸데없이 들러붙지 않고, 갈라져 있다 하더라도 소용없이 덧붙어 있지 않고, 길다 하더라도 남는 것이 없고, 짧다 하더라도 부족하지 않다. 물오리의 다리는 비록 짧지만 길게 늘여주면 걱정하게 될 것이며, 학의 다리가 비록 길지만 짧게 잘라주면 슬퍼하게 될 것이다. 본성이 길면 잘라주지 않아도 되고, 본성이 짧으면 이어주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인의는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 아니다. 어진 사람이란 얼마나 많은 걱정을 지니고 있는가? 또한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이 붙어 있는 사람은 그 것을 갈라주면 아파 울 것이다. 손가락이 하나 더 달린 육손이의 덧달린 손가락을 잘라주면 또한 아파 울 것이다.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숫자상 남음이 있고, 한 쪽은 부족함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걱정은 한가지이다. 지금 세상의 어진 사람들은 눈을 멀쩡히 뜨고서 세상의 환란을 걱정한다. 어질지 않은 사람들은 타고난 본성의 진실한 모습을 버리고 부귀를 탐내고 있다. 그러니 인의는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 아닌 것이다. - 莊子(外篇) ; 第8篇 騈拇[2]- 彼至正者, 不失其性命之情. 故合者不爲騈, 而枝者不爲岐. 長者不爲有餘, 短者不爲不足. 是故鳧脛雖短, 續之則憂. 鶴脛雖長, 斷之則悲. 故性長非所斷, 性短非所續, 無所去憂也. 意仁義其非人情乎! 彼仁人何其多憂也? 且夫騈於拇者, 決之則泣. 枝於手者, ?之則啼. 二者或有餘於數, 或不足於數, 其於憂一也. 今世之仁人, 蒿目而憂世之患. 不仁之人, 決性命之情而?貴富. 故曰仁義其非人情乎!
93` 인위적인 행위는 모두 사람의 본성을 해친다 (외편:8.변무,3) - 장자(외편) ; 제8편 변무[3]- 하나라?은나라?주나라 이 삼대 이후로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워졌는가. 갈 고리와 먹줄과 그림쇠와 굽은자를 써서 나무를 바로잡는 것은 나무의 본성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새끼와 끈과 아교와 옻칠로 단단히 만드는 것은 본래의 형태를 침해하는 것이다. 예의와 음악을 번거롭게 찾고, 인의로 달래어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들도 역시 그의 일정한 본연을 잃은 것이다. 천하에는 일정한 본연이 있다. 일정한 본연이란 것은 굽어 있어도 갈고리로 굽힌 것이 아니고, 곧아도 먹줄로 곧게 한 것이 아니고, 둥글어도 그림쇠로 둥굴게 한 것이 아니고, 모가 났어도 굽은자로 모나게 한 것이 아니다. 붙어 있으나 아교나 옻칠로 붙인 것이 아니고, 묶여 있으나 줄이나 새끼로 묶은 것이 아니다. 천하에 이끌리듯이 모두가 살고 있지만 살게 된 까닭은 알지 못한다. 다같이 모두가 자기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자기 모습을 지니게 된 까닭은 알지 못한다. 그런 것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변한 것이 아니니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런데 어찌하여 또 인의로 아교나 옻칠로 붙이고 줄과 새끼로 묶듯이 하여 도와 덕의 세계에 노닐려 하는가? 그것은 세상 사람들을 미혹시킬 뿐이다. 작게 미혹된 것이라면 방향이 틀린 것이다. 크게 미혹된 것이라면 본성을 잃은 것이다. 무엇으로 그 것을 알 수 있는가? 순임금이 인의를 내걸고서 천하의 인심을 어지럽힌 후로 세상사람들은 모두가 목숨을 걸고 인의의 편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인의로써 그들의 본성을 잃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 ?은 ?주 삼대 이후부터 천하는 모두가 물건 때문에 그의 본성을 잃었다. 선비들은 명예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대부들은 국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켰다. 성인은 천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켰다. 이러한 사람들의 행위는 내용도 같지 않고 그것에 의해 얻은 명성의 성질도 다르지만, 그들이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자기 본성을 손상시켰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인과 하녀 두 사람이 함께 양을 치러 갔다가 둘이 모두 자기의 양을 잃어버렸다. 하인에게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으니, 책을 읽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녀에게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으니 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한 일은 다르지만 자기가 지키던 양을 잃어버린 것은 같다. 백이는 수양산 아래에서 명예를 위해 굶어죽었다. 도척은 동릉 위에서 이익을 위해 죽었다. 두 사람이 죽은 상황은 다르지만 그들이 자기 삶을 해치고 자기 본성을 손상시킨 점에 있어서는 같은 것이다. 어찌하여 반드시 백이는 옳고 도척만 잘못되었다 할 수 있겠는가? 세상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희생시키고 있다. 인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면 사람들은 그를 군자라 부른다. 그가 재물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소인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자기 몸을 희생한 것은 같은데 어떤 이는 군자가 되고 어떤 이는 소인이 된다. 삶을 해치고 본성을 손상시킨 점으로 말하면 도척이나 백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 중 군자와 소인을 가려내야 하는가? - 莊子(外篇) ; 第8篇 騈拇[3]- 自三代以下者, 天下何其??也? 且夫待鉤繩規矩而正者, 是削其性者也. 待繩約膠漆而固者, 是侵其德者也. 屈折禮樂, ?兪仁義, 以慰天下之心者, 此失其常然也. 天下有常然. 常然者, 曲者不以鉤, 直者不以繩, 圓者不以規, 方者不以矩, 附離不以膠漆, 約束不以묵索. 故天下誘然皆生而不知其所以生, 同焉皆得而不知其所以得. 故古今不二, 不可虧也. 則仁義又奚連連如膠漆?索而遊乎道德之間爲哉, 使天下惑也! 夫小惑易方, 大惑易性. 何以知其然邪? 有虞氏招仁義以撓天下也, 天下莫不奔命於仁義, 是非以仁義易其性與? 故嘗試論之, 自三代以下者, 天下莫不以物易其性矣. 小人則以身殉利, 士則以身殉名, 大夫則以身殉家, 聖人則以身殉天下. 故此數子者, 事業不同, 名聲異號, 其於傷性以身爲殉, 一也. 臧與穀二人相與牧羊而俱亡其羊. 問臧奚事, 則挾?讀書. 問穀奚事, 則博塞以遊. 二人者, 事業不同, 其於亡羊均也. 伯夷死名於首陽之下, 盜?死利於東陵之上, 二人者, 所死不同, 其於殘生傷性均也. 奚必伯夷之是而盜?之非乎! 天下盡殉也, 彼其所殉仁義也, 則俗謂之君子. 其所殉貨財也, 則俗謂之小人. 其殉一也, 則有君子焉, 有小人焉. 若其殘生損性, 則盜?亦伯夷已, 又惡取君子小人於其間哉!
94` 모든 인위적인 것은 훌륭한 것이 못된다 (외편:8.변무,4) - 장자(외편) ; 제8편 변무[4]- 그의 본성을 인의에 종속시켰다면 증삼이나 사추처럼 통달했다 하더라도 내가 말하는 훌륭한 것은 못된다. 그의 본성을 다섯 가지 맛에 종속시켰다면 비록 유아처럼 통달했다 하더라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훌륭한 것은 못된다. 그의 본성을 다섯 가지 소리에 종속시켰다면 비록 사광처럼 통달했다 하더라도 내가 말하는 귀밝은 것은 못된다. 그의 본성을 다섯 가지 색깔에 종속시켰다면 비록 이주처럼 통달했다 하더라도 내가 말하는 눈밝은 것은 못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훌륭한 것이란 인의 같은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타고난 것의 훌륭함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훌륭한 것은 이른바 인의 같은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성명(性命)의 진실함에 맡겨두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려 하는 귀밝음이란 그가 남의 것을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눈밝음이란 남의 것을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스스로 보지는 않고 남의 것만을 보고, 스스로의 것을 지니지 않고 남의 것을 지니는 것은 남이 지니는 것만을 지니려 들고 자기가 지녀야 할 것은 스스로 지니지 않는 것이 된다. 남의 편안함만을 편안히 여기고 자신의 편안함은 스스로 편안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남의 편안함만을 편안히 여기고 자신의 편안함은 스스로 편하지 않다고 하는 점에 있어서는 도척과 백이 같은 사람들도 다같이 지나치게 편벽된 것이다. 나는 이점에서 도와 덕에 있어 부끄럽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위로는 감히 인의와 절조를 지키지 못하고 있고, 아래로는 감히 지나치게 편벽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8篇 騈拇[4]- 且夫屬其性乎仁義者, 雖通如曾史, 非吾所謂臧也. 屬其性於五味, 雖通如兪也, 非吾所謂臧也. 屬其性乎五聲, 雖通如師曠, 非吾所謂聰也. 屬其性乎五色, 雖通如離朱, 非吾所謂明也. 吾所謂臧者, 非仁義之謂也, 臧於其德而已矣. 吾所謂臧者, 非所謂仁義之謂也, 任其性命之情而已矣. 吾所謂聰者, 非謂其聞彼也, 自聞而已矣. 吾所謂明者, 非謂其見彼也, 自見而已矣. 夫不自見而見彼, 不自得而得彼者, 是得人之得而不自得其得者也, 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者也. 夫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 雖盜?與伯夷, 是同爲淫僻也. 余愧乎道德, 是以上不敢爲仁義之操, 而下不敢爲淫僻之行也.
95` 자연에 맡겨 되는 대로 내버려두어라 (외편:9.마제,1) - 장자(외편) ; 제9편 마제[1]- 말은 발굽으로 서러와 눈을 밟고, 털로는 바람과 추위를 막고 있다.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발을 높이 들고 날뛴다. 이것이 말의 참된 본성이다. 비록 높은 누대와 궁궐이 있다 해도 말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백락이 말을 잘 다스린다면서 말에게 낙인을 찍고, 털을 깎고, 발굽을 다듬고, 굴레를 씌우고, 고삐와 띠를 맨 다음 구유가 딸린 마구간을 짓고 넣어두었다. 그러자 말 중에 죽는 놈이 열 마리 중에 두세 마리가 나왔다. 거기에다 말을 굶주리게 하고, 목마르게 하고, 너무 뛰게도 하고, 갑자기 달리게도 하며, 여러 가지 장식을 붙여 보기 좋게 꾸며 주었다. 말의 앞에는 거추장스러운 재갈과 머리장식이 있게 되었고, 뒤에는 채찍의 위협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자 죽는 말이 반도 넘게 되었다. 옹기장이는 찰흙을 잘 다룬다고 하면서 둥근 것은 그림쇠에 맞추고, 모난 것은 굽은 자에다 맞춘다. 목수는 나무를 잘 다룬다면서 굽은 것은 갈고리에다 맞추고 곧은 것은 먹줄을 따라 자른다. 그러나 찰흙과 나무의 성질이야 어찌 그림쇠나 굽은 자와 갈고리나 먹줄에 맞추려 들겠는가? 그런데도 세상에서는 대대로 백락은 말을 잘 다스리고, 옹기장이와 목수는 찰흙과 나무를 잘 다룬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것도 역시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들의 잘못인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천하를 잘 다스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백성들에게는 일정한 본성이 있다. 길쌈을 해서 옷을 지어 입고, 농사를 지어 밥을 먹는데 이것을 다 같이 타고난 성질이라고 한다. 하나가 되어 치우치지 않는 것을 하늘에 맡겨 되는 대로 두는 것이라 말한다. - 莊子(外篇) ; 第9篇 馬蹄[1]- 馬, 蹄可以踐霜雪, 毛可以禦風寒, ?草飮水, 翹足而陸, 此馬之眞性也. 雖有義臺路寢無所用之. 及至伯樂, 曰:「我善治馬.」 燒之, 剔之, 刻之, ?之, 連之以羈?, 編之以?棧, 馬之死者十二三矣. 飢之, 渴之, 馳之, 驟之, 整之, 齊之, 前有? 飾之患, 而後有鞭?之威, 而馬之死者已過半矣. 陶者曰:「我善治埴, 圓者中規, 方者中矩.」匠人曰:「我善治木, 曲者中鉤, 直者應繩.」夫埴木之性, 豈欲中規矩鉤繩哉? 然且世世稱之曰「伯樂善治馬, 而陶匠善治埴木」, 此亦治天下者之過也. 吾意善治天下者不然. 彼民有常性, 織而衣, 耕而食, 是謂同德. 一而不黨, 命曰天放.
96` 본성대로 소박하게 자연 속에 살아야 한다 (외편:9.마제,2) - 장자(외편) ; 제9편 마제[2]- 지극한 덕으로 다스려지는 세상에서는 백성들의 행동이 신중하고 그들의 눈길은 한결같다. 그 때에는 산에 오솔길도 나지 않았고, 물 위에 배도 다리도 없었다. 만물이 무리를 이루어 살았고, 그들이 사는 고장 이웃하고만 접촉을 했다. 새와 짐승이 무리를 이루었었고, 풀과 나무는 제대로 자랐었다. 그러므로 새와 짐승들을 끈으로 매어 끌고 다니며 놀 수가 없었고, 새나 까치의 둥우리로 기어올라가 들여다 볼 수도 없었다. 지극한 덕으로 다스려지던 세상에서는 새나 짐승이 함께 어울려 살았었고, 만물이 무리를 이루어 다 같이 살았었다. 그러니 어찌 군자와 소인이 있음을 알았겠는가? 다 같이 무지하여 그의 타고난 성질을 떠나지 않았었다. 다 같이 욕망이 없었는데 이것을 소박함이라 말한다. 소박함으로써 백성들의 본성은 보전되는 것이다. 성인이 나와 애써 인(仁)을 행하고, 힘써 의(義)를 행하게 되자, 사람들은 비로소 의심을 하게 되었다. 도에서 벗어난 음악을 작곡하고, 번거로운 예의를 제정하게 되자 세상 사람들이 비로소 분열하게 되었다. 나무의 순박함을 해치지 않고 어떻게 소머리를 조각한 술잔을 만들 수 있겠는가? 백옥을 쪼지 않고 어떻게 옥으로 된 그릇을 만들 수 있겠는가? 도 와 덕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어찌 인의를 주장하겠는가? 본성과 진실함에서 떠나지 않았다면 어찌 예의와 음악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다섯 가지 빛깔이 어지러워지지 않았다면 누가 무늬와 채색을 만들었겠는가? 다섯 가지 소리가 어지러워지지 않았다면 누가 육률(六律)을 만들었겠는가? 소박함을 해쳐 기구를 만드는 것은 공인의 죄이다. 도덕을 무너뜨리고 인의를 내세우는 것은 성인의 잘못이다. - 莊子(外篇) ; 第9篇 馬蹄[2]- 故至德之世, 其行塡塡, 其視顚顚. 當是時也, 山无蹊隧, 澤无舟梁. 萬物群生, 連屬其鄕. 禽獸成群, 草木遂長.是故禽獸可係羈而遊, 鳥鵲之巢可攀援而?. 夫 至德之世, 同與禽獸居, 族與萬物竝, 惡乎知君子小人哉! 同乎无知, 其德不離. 同乎无欲, 是謂素樸. 素樸而民性得矣. 及至聖人, ??爲仁, ??爲義, 而天下始疑矣. ?漫爲樂, 摘僻爲禮, 而天下始分矣. 故純樸不殘, 孰爲犧樽! 白玉不毁, 孰爲珪璋! 道德不廢, 安取仁義! 性情不離, 安用禮樂! 五色不亂, 孰爲文采! 五聲不亂, 孰應六律! 夫殘樸以爲器, 工匠之罪也. 毁道德以爲仁義, 聖人之過也.
97` 인의로 본성을 잃게 만들어 세상이 어지러워졌다 (외편:9.마제,3) - 장자(외편) ; 제9편 마제[3]- 말이 날뛰면서 살고 있을 때에는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기쁘면 서로 목을 맞대고 비벼대고, 화가 나면 등을 돌려 서로 걷어찬다. 말의 지혜란 이것뿐이다. 그런데 말에게 멍에를 올려놓고 굴레로써 제약을 가하게 되자, 말은 수레채를 비키고, 멍에를 떨쳐버리고, 수레의 포장을 물어 찢고, 재갈을 뱉어내고, 고삐를 물어뜯을 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말의 지혜를 도적처럼 교활하게 만든 것은 백락의 죄이다. 혁서씨의 시대에는 백성들은 살면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걸어다니면서도 갈곳을 알지 못했다. 입에 음식을 문 채로 즐거워했고, 배를 두드리며 놀았었다. 백성들의 능력은 이 정도에 그쳤었다. 성인이 나와 예의와 음악으로 번거롭게 하여 천하의 모양을 뜯어 고쳤다. 인의를 내걸고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그러자 백성들은 일에 힘쓰면서 다투어 이익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를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도 역시 성인의 잘못인 것이다. - 莊子(外篇) ; 第9篇 馬蹄[3]- 夫馬, 陸居則食草飮水, 喜則交頸相靡, 怒則分背相?. 馬知已此矣. 夫加之以衡扼, 齊之以月題, 而馬知介倪. ?扼. ?曼. 詭銜. 竊?. 故馬之知而態至盜者, 伯樂之罪也. 夫赫胥氏之時, 民居不知所爲, 行不知所之, 含哺而熙, 鼓腹而遊, 民能以此矣. 及至聖人, 屈折禮樂以匡天下之形, 縣?仁義以慰天下之心, 而民乃始??好知, 爭歸於利, 不可止也. 此亦聖人過也.
98` 방비가 오히려 도둑을 돕는다 (외편:10.거협,1) - 장자(외편) ; 제10편 거협[1]-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며 궤를 여는 도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끈으로 꼭 묶고 자물쇠와 고리를 단단히 거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세상의 지혜이다. 그러나 큰 도적이 오면 궤를 짊어지고, 상자를 둘러메고, 주머니 째 들고 달아나면서, 오직 끈과 자물쇠와 고리가 약하지 않을까만을 걱정한다. 그러니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란 바로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쌓아놓은 꼴이 되지 않겠는가? - 莊子(外篇) ; 第10篇 ??[1]- 將爲??探囊發?之盜而爲守備, 則必攝緘?固??, 此世俗之所謂知也. 然而巨盜至, 則負?揭?擔囊而趨, 唯恐緘???之不固也. 然則鄕之所謂知者, 不乃爲大盜積者也?
99` 성인이란 큰 도적의 보호자에 불과하다 (외편:10.거협,2) - 장자(외편) ; 제10편 거협[2]- 세상의 지혜라는 것 중에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쌓아놓는 것이 아닌 것이 있는가? 이른바 성인이란 큰 도적을 위해 지켜주는 사람이 아닌 이가 있는가? 옛날 제나라는 이웃 고을이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소리가 서로 들리도록 인가가 많았고, 고기그물, 새그물이 쳐지는 곳과 쟁기와 괭이로 경작되는 땅이 사방 이천여 리나 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방 국경 안에 종묘와 땅의 신, 곡식의 신의 사당을 세우고 마을을 다스리는 방법이 어느 하나 성인을 본뜨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전성자가 하루아침에 제나라 왕을 죽이고 나라를 도둑질했다. 도둑질한 것이 어찌 나라뿐이겠는가? 성인의 지혜에서 나온 법까지도 도둑질했다. 그러므로 전성자는 도둑이라는 명성은 붙여졌어도 몸은 요임금이나 순임금처럼 편안히 지냈다. 조그만 나라는 감히 그를 비난하지 못하였고, 큰 나라도 감히 그를 처벌하지 못했으며, 12대에 걸쳐 제나라를 차지했었다. 그러니 제나라와 아울러 성인의 지혜에서 나온 법까지도 훔침으로써 그 도적의 몸이 지켜지지 않았던가? - 莊子(外篇) ; 第10篇 ??[2]- 故嘗試論之, 世俗之所謂知者, 有不爲大盜積者乎? 所謂聖者, 有不爲大盜守者乎? 何以知其然邪? 昔者齊國隣邑相望, 鷄狗之音相聞, 罔?之所布, ??之所刺, 方二千餘里. 闔四竟之內, 所以立宗廟社稷, 治邑屋州閭鄕曲者, 曷嘗不法聖人哉! 然而田成子一旦殺齊君而盜其國, 所盜者豈獨其國邪? 竝與其聖知之法而盜之. 故田成子有乎盜賊之名, 而身處堯舜之安, 小國不敢非, 大國不敢誅, 專有齊國. 則是不乃竊齊國, 竝與其聖知之法以守其盜賊之身乎?
100` 성인이 없어져야 도적도 없어진다 (외편:10.거협,3) 도둑은 성인이 이니라 재물 불균형 때문에 생긴것 - 장자(외편) ; 제10편 거협[3]- 세상에서 말하는 지극한 지혜로써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쌓지 않는 것이 있던가? 이른바 지극한 성인으로서 큰 도적을 위해 지켜주지 않는 것이 있던가? 옛날에 용봉은 목이 잘리고, 비간은 가슴이 갈려지고, 장홍은 배를 찢기고, 오자서는 강물에 던져졌다. 이 네 사람은 현명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도척의 부하가 도척에게 물었다. “도둑질에도 도가 있습니까?” 도적이 대답했다. “어디를 간들 도가 없을 수 있겠느냐? 남의 집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마음대로 알아맞히는 것은 성인이다.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기이다. 남보다 뒤에 나오는 것은 의로움이다. 도둑질을 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를 아는 것은 지혜이다. 그리고 나누어 갖는 것은 어짊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서 큰 도적이 되었던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었다.”
착한 사람도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서지 못하고, 도척도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행세하지 못한다. 세상에 착한 사람은 적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많으니, 성인이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점은 적고 해롭게 하는 점이 더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고, 노나라 술이 묽어 조나라 수도 한단이 포위 당했다고 하는 것이다. 성인이 생겨나자 도둑이 일어났다. 그러니 성인을 쳐 없애고 도둑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천하는 비로소 다스려질 것이다. 냇물이 마르면 골짜기가 생겨나고, 언덕이 평평해지면 연못이 메워진다. 성인이 죽어버리면 큰 도적은 생겨나지 않고, 천하는 평화로워져 아무 탈도 없게 될 것이다. 성인이 죽어버리지 않으면 큰 도적은 멈추지 않는다. 비록 성인을 존중하며 천하를 다스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바로 도적을 존중하여 이롭게 하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0篇 ??[3]- 嘗試論之, 世俗之所謂至知者, 有不爲大盜積者乎? 所謂至聖者, 有不爲大盜守者乎? 何以知其然邪? 昔者龍逢斬, 比干剖, ?弘?, 子胥靡, 故四子之賢而身不免乎戮. 故?之徒問於?曰:「盜亦有道乎?」?曰:「何適而无有道邪! 夫妄意室中之藏, 聖也. 入先, 勇也. 出後, 義也. 知可否, 知也. 分均, 仁也. 五者不備而能成大盜者, 天下未之有也.」由是觀之, 善人不得聖人之道不立, ?不得聖人之道不行. 天下之善人少而不善人多, 則聖人之利天下也少而害天下也多. 故曰, 唇竭則齒寒, 魯酒薄而邯鄲圍, 聖人生而大盜起. ?擊聖人, 縱舍盜賊, 而天下始治矣. 夫谷虛而川竭, 丘夷而淵實. 聖人已死, 則大盜不起, 天下平而无故矣. 聖人不死, 大盜不止. 雖重聖人而治天下, 則是重利盜?也.
101` 성인의 법도에 따라 나라를 훔친다 (외편:10.거협,4) - 장자(외편) ; 제10편 거협[4]- 세상을 위해 말과 되를 만들어 물건을 되면 곧 말과 되에 따라 물건을 훔친다. 세상을 위해 저울을 만들어 물건을 달면 곧 저울에 따라 물건을 훔친다. 세상을 위해 부신과 도장을 만들어 그것을 믿게 하면 곧 부신과 도장에 따라 물건을 훔친다. 세상을 위해 인의로써 그릇됨을 바로잡으려 하면 곧 인의를 따라 물건을 훔친다. 허리띠의 고리를 훔친 자는 처형을 당하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 제후의 문안에는 인의가 존재한다. 그러니 이것은 인의와 성인의 지혜까지 훔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큰 도적의 방법을 따라 제후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인의와 되와 말과 저울, 부신과 도장의 편리함을 훔치는 것은 높은 벼슬을 상으로 줘도 막을 수 없는 것이며, 도끼로 위협을 해도 금지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도적을 이롭게 하면서도 그것을 금지시킬 수 없는 것은 바로 성인의 잘못인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0篇 ??[4]- 爲之斗斛以量之, 則竝與斗斛而竊之. 爲之權衡以稱之, 則竝與權衡而竊之. 爲之符璽以信之, 則竝與符璽而竊之. 爲之仁義以矯之, 則竝與仁義而竊之. 何以知其然邪? 彼竊鉤者誅, 竊國者爲諸侯, 諸侯之門而仁義存焉, 則是非竊仁義聖知邪? 故逐於大盜, 揭諸侯, 竊仁義竝斗斛權衡符璽之利者, 雖有軒冕之賞弗能勸, 斧鉞之威弗能禁. 此衆利盜?而使不可禁者, 是乃聖人過也.
102` 인위적인 도덕과 기교가 세상을 어지럽힌다 (외편:10.거협,5) 물고기는 못을 벗어나면 안 되고, 나라를 다스리는 편리한 기구는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성인이란 세상의 편리한 기구인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드러낼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 성인을 없애고 지혜를 버리면 큰 도적이 없어질 것이다. 옥을 버리고 진주를 깨버리면 작은 도적이 사라질 것이다. 부신을 태워버리고 도장을 없애버리면 백성들이 순박해질 것이다. 말을 부수고 저울을 꺾어버리면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될 것이다. 천하의 성인이 법을 없애버려야만 백성들이 비로소 서로 토론할 만하게 될 것이다. 음악의 음정도 어지럽히고, 악기들은 태워버리고, 사광 같은 이의 귀를 막아버려야만 세상 사람들의 귀는 비로소 밝아질 것이다. 무늬를 없애고, 다섯 가지 채색을 흩트리고, 이주 같은 이의 눈을 막아놓아야만 세상사람들의 눈은 비로소 밝아질 것이다. 갈고리와 먹줄을 없애버리고, 그림쇠와 굽은 자를 버린 다음, 공수 같은 이의 손가락을 꺾어 버려야만 세상사람들은 비로소 재주가 교묘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기교는 졸렬한 듯이 보인다고 했던 것이다. 증삼과 사추의 행실을 깎아버리고, 양자와 묵자의 입을 틀어막고 인의를 내던져버려야만 세상사람들의 덕이 비로소 현묘한 도와 함께 어울리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눈이 밝아지면 세상에는 눈부시어 보이지 않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세상사람들의 귀가 정말로 밝게 되면 세상에는 들리지 않아 걱정되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지혜롭게 된다면 세상에는 미혹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덕을 지니게 된다면 세상에는 편벽된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저 증삼, 사추, 양자, 묵자, 사광, 공수, 이주 같은 사람들이란 모두 겉으로만 자기 덕을 내세워 온 세상을 눈부시고 어지럽게 만든 사람들이다. 올바른 법도로서는 아무 소용없는 것들이다. - 莊子(外篇) ; 第10篇 ??[5]- 故曰:「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不可以示人.」 彼聖人者, 天下之利器也, 非所以明天下也. 故絶聖棄知大盜乃止. ?玉毁珠, 小盜不起. 焚符破璽而民朴鄙. ?斗折衡, 而民不爭. ?殘天下之聖法, 而民始可與論議. 擢亂六律?絶?瑟, 塞師曠之耳, 而天下始人含其聰矣. 滅文章, 散五采, 膠離朱之目, 而天下始人含其明矣. 毁絶鉤繩而棄規矩, ?工?之指, 而天下始人含其巧矣. 削曾史之行, 鉗楊墨之口, 攘棄仁義, 天下之德始玄同矣. 彼人含其明, 則天下不?矣. 人含其聰, 則天下不累矣. 人含其知, 則天下不惑矣. 人含其德, 則天下不僻矣. 彼曾.史.楊.墨.師曠.工?.離朱, 皆外立其德而以?亂天下者也, 法之所无用也
103` 지혜의 발달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졌다 (외편:10.거협,6) - 장자(외편) ; 제10편 거협[6]- 아주 옛날에는 새끼에 매듭을 만들어 기호로 사용했으며, 먹는 음식을 달게 여겼고, 입는 옷을 아름답게 여겼고, 풍속을 따라 즐겼고, 거처를 편안히 여기며 지냈다.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보였고, 닭과 개의 소리가 이웃나라에까지 들렸다.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야말로 지극히 잘 다스려지던 때라 말할 수 있다. 지금은 백성들이 목을 빼고 발돋움하여 기다리다가 어디에 현명한 사람이 있다는 말만 들리면 양식을 싸 짊어지고 그에게 달려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안으로는 그의 어버이를 버리고, 밖으로는 그의 임금을 섬기는 일을 버리는 것이 된다. 그들의 발자취는 제후들의 국경에 줄을 잇게 되고, 그들의 수레바퀴 자국은 천리 밖에까지 연결이 된다. 이것은 바로 임금이 지혜를 좋아하는 데서 생긴 잘못이다. 임금이 정말로 지혜만 좋아하고 도를 알지 못하면 천하는 큰 혼란에 빠진다.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는가 하면 활, 쇠뇌, 그물, 주살, 덫, 올가미 등의 지혜가 많게 되자, 새들은 곧바로 하늘 위를 어지럽게 날게 되었다. 낚시, 미끼, 그물, 투망, 전대, 통발 등의 지혜가 많아지자 곧바로 고기들은 물 속을 어지러이 헤엄치게 되었다. 덫, 함정, 그물 등의 지혜가 많아지자 곧바로 짐승들은 진창을 어지러이 뛰어다니게 되었다. 지혜, 거짓, 속임수, 원한, 궤변, 논쟁, 의견차이 등이 많아지자 곧바로 세상의 습속은 이론에 미혹되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은 언제나 크게 어지러운데, 그 죄는 지혜를 좋아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일은 추구할 줄은 알면서도,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일은 추구할 줄을 모른다. 모두 자기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은 비난할 줄 알면서도, 이미 자기가 좋다고 생각한 일에 대해서는 비난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크게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위로는 해와 달의 밝음을 어기고, 산과 내의 정화를 녹여버리고, 가운데로는 사철을 변화를 무너뜨렸다. 숨쉬며 움직이는 벌레나 날아다니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들의 본성을 잃게 되었다. 지혜를 좋아하는 것이 이토록 세상을 어지럽히게 된 것이다. 하와 은과 주나라의 3대 이후로는 언제나 이와 같았다. 농사짓는 백성들은 버리고 교활하고 간사한 자들을 좋아하며, 고요한 무위는 버리고, 남을 속이는 마음을 즐겨하는데, 그런 거짓은 이미 천하를 어지럽히기에 충분한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0篇 ??[6]- 子獨不知至德之世乎? 昔者容成氏.大庭氏.伯黃氏.中央氏.栗陸氏.驪畜氏.軒轅氏.赫胥氏.尊盧氏.祝融氏.伏羲氏.神農氏, 當是時也, 民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樂其俗, 安其居, 隣國相望, 鷄狗之音相聞, 民至老死而不相往來. 若此之時, 則至治已. 今遂至使民延頸擧踵曰, 「某所有賢者」, ?糧而趣之, 則內棄其親而外去其主之事, 足跡接乎諸侯之境, 車軌結乎千里之外. 則是上好知之過也. 上 誠好知而無道, 則天下大亂矣. 何以知其然邪? 夫弓弩畢?機變之知多, 則鳥亂於上矣. 鉤餌罔???之知多.則魚亂於水矣. 削格羅落??之知多, 則獸亂於澤矣. 知詐漸毒?滑堅白解垢同異變多, 則俗惑於辯矣. 故天下每每大亂, 罪在於好知. 故天下皆知求其所不知而莫知求其所已知者, 皆知非其所不善而莫知非其所已善者, 是以大亂. 故上悖日月之明, 下?山川之精, 中墮四時之施. ??之蟲, 肖翹之物, 莫不失其性. 甚矣夫好知之亂天下也! 自三代以下者是已, 舍夫種種之民而悅 夫役役之?, 釋夫恬淡无爲而悅夫??之意, ??已亂天下矣.
104` 천하는 인위적으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 (외편:11.재유,1) - 장자(외편) ; 제11편 재유[1]- 천하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천하를 다스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천하를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은 천하 사람들이 그들의 본성을 잃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천하를 내버려두는 것은 그들이 타고난 덕이 바뀔까 두렵기 때문이다. 천하사람들이 그들의 본성을 잃지 않고 그들의 타고난 덕이 바뀌지 않는데도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고 할 사람이 있겠는가? 옛날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이 받아들이게 하면서 누구나 다 그의 본성을 즐기도록 했다. 이것은 고요히 둔 것은 아니다. 걸왕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세상사람들로 하여금 고생하면서 누구나 그의 본성을 괴롭히도록 했다. 이것은 즐기도록 둔 것은 아니다. 고요히 두지 않는 것이나 즐기도록 두지 않는 것은 모두가 타고난 덕에 어긋나는 것이다. 타고난 덕에 어긋나면서도 오래 갈 수 있는 것이란 세상에 없다.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면 양으로 치우치게 되며, 크게 노하면 음으로 치우치게 된다. 음이나 양으로 다 같이 치우쳐지면 사계절이 제대로 오지 않고 추위와 더위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음과 양이 어긋나면 사람들의 몸을 상하게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과 노여움의 도를 잃게 하고, 사는 곳이 일정치 않게 하고, 생각이나 사고가 제대로 되지 않게 하고, 도에 알맞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온 세상 사람들의 뜻도 고르지 않게 되고, 행동도 고르지 않게 되어 도척이나 증삼, 사추와 같은 행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온 세상을 들어 그 선한 것을 상 주려 한다 해도 다 줄 수가 없고, 온 세상을 들어 그 악한 것을 벌하려 해도 다 벌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이 크다고는 하지만 다 상주고 벌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은?주 3대 이후로는 시끄럽게 내내 상벌로 일을 삼았으니 그의 본성과 운명의 진실함에 편안히 지낼 겨를이 어디 있었겠는가? 또한 눈 밝은 것을 좋아한 결과 빛깔에 빠지게 되었고, 어짊을 좋아한 결과 타고난 덕을 어지럽히게 되었고, 의로움을 좋아한 결과 의리에 어긋나게 되었고, 예의를 좋아한 결과 겉치레에 자기를 잃게 되었고, 음악을 좋아한 결과 음탕함에 자신을 잃게 되었고, 성인을 좋아한 결과 재주에 자신을 잃게 되었고, 지혜를 좋아한 결과 남의 허물 찾기에 자신을 잃게 되었다. 온 천하가 그의 본성과 운명의 진실함에 편안하려면 이상의 여덟 가지의 것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들이다. 온 천하가 그의 본성과 운명의 진실함에 편안하지 않으려면 이 여덟 가지 것들이 곧 엉키고 뒤섞이면서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그러면 온 천하가 비로소 그것을 존중하고 아끼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미혹됨은 너무도 지나치다. 어찌 그대로 지나가는 대로 가게 둘 수 없는가. 그들은 재계를 하고 그에 대한 얘기를 하고, 무릎 꿇고 바로 앉아 그것들을 전하면서, 그것을 북 치고 노래하고 춤을 출 정도로 좋아하고 있으니, 아무도 이것을 어쩔 수가 없다. - 莊子(外篇) ; 第11篇 在宥[1]- 聞在宥天下, 不聞治天下也. 在之也者, 恐天下之淫其性也. 宥之也者, 恐天下之遷其德也. 天下不淫其性, 不遷其德, 有治天下哉! 昔堯之治天下也, 使天下欣欣焉人樂其性, 是不恬也. 桀之治天下也, 使天下??焉人苦其性, 是不愉也. 夫不恬不愉, 非德也. 非德也而可長久者, 天下無之. 人大喜邪? 毘於陽. 大怒邪? 毘於陰. 陰陽竝毘, 四時不至, 寒暑之和不成, 其反傷人之形乎! 使人喜怒失位, 居處無常, 思慮不自得, 中道不成章, 於是乎天下始喬詰卓?, 而後有盜?.曾.史之行. 故擧天下以賞其善者不足, 擧天下以罰其惡者不給, 故天下之大, 不足以賞罰. 自三代以下者, 匈匈焉終以賞罰爲事, 彼何暇安其性命之情哉! 而且說明邪? 是淫於色也. 說聰邪? 是淫於聲也. 說仁邪? 是亂於德也. 說義邪? 是悖於理也. 說禮邪? 是相於技也. 說樂邪? 是相於淫也. 說聖邪? 是相於禮也. 說知邪? 是相於疵也. 天下將安其性命之情, 之八者, 存可也, 亡可也. 天下將不安其性命之情, 之八者, 乃始?券?囊而亂天下也. 而天下乃始尊之惜之, 甚矣天下之惑也! 豈直過也而去之邪? 乃齋戒以言之, ?坐以進之, 鼓歌以?之, 吾若是何哉!
105` 천하는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외편:11.재유,2) - 장자(외편) ; 제11편 재유[2]- 군자가 부득이 천하를 다스리게 되었다면 아무런 작위도 가하지 않는 무위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아무런 작위도 가하지 않아야만 사람의 본성과 운명의 진실함에 편안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몸을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겨도 괜찮다. 자기 몸을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다스리게 해도 괜찮다. 그러므로 군자는 진실로 오장에 깃들인 생명을 흩트리지 않고, 그의 귀 밝음과 눈 밝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조용히 있다가 용처럼 나타나고, 심연처럼 침묵을 지키다가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자기 정신이 움직이면 자연의 변화가 그를 따르고, 조용히 아무런 작위도 가하지 않지만 만물은 저절로 움직여진다. 그런데 또 무슨 천하를 다스릴 필요가 있겠는가? - 莊子(外篇) ; 第11篇 在宥[2]- 故君子不得已而臨?天下, 莫若无爲. 无爲也而後安其性命之情. 故曰:「貴以身爲天下, 則可以託天下. 愛以身爲天下, 則可以寄天下.」 故君子苟能无解其五藏, 无擢其聰明. 尸居而龍見, 淵?而雷聲, 神動而天隨, 從容无爲而萬物炊累焉. 吾又何暇治天下哉!
106` 인심은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외편:11.재유,3) - 장자(외편) ; 제11편 재유[3]- 최구가 노자에게 물었다. “천하를 인위적으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인심을 이끌어갈 수 있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인심을 교란시키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인심이란 억누르면 내려가고 밀면 올라가는 것입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사이에 우쭐해지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 부드러움은 억세고 강한 것을 유하게도 만듭니다. 모나고 날카로워서 모든 것을 깎아 다듬으려 들기도 합니다. 뜨겁게 달아오르면 타오르는 불길 같고, 차갑게 식으면 꽁꽁 언 얼음과도 같게 됩니다. 마음의 빠르기는 잠깐 사이에 이 세상 밖에까지 갔다오는 정도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심연처럼 고요하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늘로 날아 오릅니다. 성냈다 뽐냈다 하여 잡아매 둘 수가 없는 것이 인심인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1篇 在宥[3]- 崔瞿問於老聃曰:「不治天下, 安臧人心?」 老聃曰:「女愼無?人心. 人心排下而進上, 上下囚殺, ?約柔乎剛疆. 廉?彫琢, 其熱焦火, 其寒凝氷. 其疾?仰之間而再撫四海之內, 其居也淵而靜, 其動也懸而天.?驕而不可係者, 其唯人心乎!
107` 성인을 멀리하고 지혜를 버려라 (외편:11.재유,4) - 장자(외편) ; 제11편 재유[4]- 옛날에 황제가 처음으로 인의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교란시켰다. 그래서 요임금과 순임금은 넓적다리에는 살이 없고 정강이에는 털이 붙어 있지 못할 정도로 애쓰며 세상사람들의 몸을 길렀다. 그의 온 몸으로 걱정하면서 인의를 행했다. 그의 혈기를 고생시키면서도 법도를 제정했다. 그러나 그래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요임금은 환두를 숭산으로 쫓아내고 삼묘를 삼위산으로 추방하고, 공공을 유도로 귀양보내야 했으니 이것은 천하가 뜻대로 다스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은?주의 삼대로 내려오면서 천하는 크게 어지러워졌다. 아래로는 걸왕과 도척이 있었고, 위로는 증삼과 사추가 있었으며, 유가와 묵가들이 한꺼번에 생겨났다. 그리하여 기뻐하고 노여워하면서 서로를 의심하고 어리석은 자와 지혜 있는 자들이 서로를 속이고, 훌륭하다느니 그렇지 않다느니 하며 서로 비난하였고, 거짓이니 참이니 하며 서로 헐뜯게 되어 천하가 쇠퇴했다. 사람들이 본시부터 타고난 큰 덕은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되고, 타고난 본성과 운명이 산란하여졌다. 온 천하가 지혜를 좋아하게 되자 백성들은 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에 도끼와 톱으로 자르고, 먹줄로 바로잡고, 망치와 끌로 쪼개야만 하게 되었다. 온 천하는 뒤범벅이 되어 크게 어지러워졌는데, 그 죄는 인심을 교란한 데 있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들은 큰 산 바위 아래 숨어살게 되었고, 천자는 묘당에서 걱정하고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지금 세상에는 목이 잘려 죽은 시체가 쌓이고, 형틀에 매인 자들이 줄을 잇고, 형벌을 받은 자들이 수두룩하게 되었다. 그래서 묵가와 유가들이 형틀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팔을 휘저으며 자기 주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수치스러워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성인과 지혜가 다른 사람을 구속하는 형틀이 되고, 인의가 사람의 손과 밝을 얽매는 형구가 되는 것을 알고 있다. 증삼과 사추가 걸왕이나 도척의 효시가 되지 않는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을 내치고 지혜를 버리면 천하가 크게 다스려진다고 하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1篇 在宥[4]- 「昔者皇帝始以仁義?人之心, 堯舜於是乎股無?, 脛無毛, 以養天下之形, 愁其五藏以爲仁義, 矜其血氣以規法度. 然猶有不勝也, 堯於是放?兜於崇山, 投三苗於三?, 流共工於幽都, 此不勝天下也. 夫施及三王而天下大駭矣. 下有桀?, 上有曾史, 而儒墨畢起. 於是乎喜怒相疑, 愚知相欺, 善否相非, 誕信相譏, 而天下衰矣. 大德不同, 而性命爛漫矣. 天下好知, 而百姓求竭矣. 於是乎?鋸制焉, 繩墨殺焉, 椎鑿決焉. 天下脊脊大亂, 罪在?人心. 故賢者伏處大山?巖之下, 而萬乘之君憂慄乎廟堂之上. 「今世殊死者相枕也, 桁陽者相推也, 刑戮者相望也, 而儒墨乃始離?攘臂乎桎梏之間. 噫, 甚矣哉! 其無愧而不知恥也甚矣! 吾未知聖知之不爲桁陽接?也, 仁義之不爲桎梏鑿?也, 焉知曾史之不爲桀?嚆矢也! 故曰 ‘絶聖棄知而天下大治.’」
108` 오래오래 사는 법 (외편:11.재유,5) 장수` 건강` - 장자(외편) ; 제11편 재유[5]- 황제가 천자가 된 뒤 19년이 되자 명령이 천하에 행해지게 되었다. 광성자가 공동산 위에 살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를 찾아가 만났다. 그리고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지극한 도에 통달하셨다하니 지극한 도의 정수에 대하여 듣고 싶습니다. 저는 천하의 정수를 취하여 오곡의 생산을 도움으로써 백성들을 먹여 살리려고 합니다. 저는 또한 음양을 다스려 생물을 제대로 생육케 하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광성자가 말했다. “당신이 묻는 것은 사물의 바탕인데, 당신이 다스리고자 하는 것은 사물의 찌꺼기입니다. 당신이 천하를 다스린 뒤로 구름이 모여들지 않고도 비가 내리고, 풀과 나무는 단풍이 들지 않고도 낙엽이 지고, 해와 달의 빛은 더욱 흐려지게 되었습니다. 당신처럼 간사한 마음으로 말이나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사람이 어찌 지극한 도를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는 물러 나와 천하를 버리고 특별한 방을 만들어 흰 띠풀을 깔고 석 달 동안 한가히 지낸 다음 다시 찾아가 그를 만났다. 광성자는 남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 있었다. 황제는 무릎으로 걸어나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린 채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지극한 도에 통달하셨다 하니 몸을 다스리는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습니까?” 광성자가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훌륭한 질문입니다. 당신에게 지극한 도를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지극한 도의 정수는 깊숙하고 까마득하며, 지극한 도의 극치는 어둑하고도 고요합니다.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이 정신을 간직하고 고요히 있으면 육체는 자연히 올바르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고요해야 하고 반드시 맑아야만 하며, 당신의 육체를 수고롭게 하지 않고 당신의 정신을 요동치게 하지 말아야만 오래도록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눈으로는 보는 것도 없고, 귀로는 듣는 것도 없고, 마음으로는 아는 것이 없이 당신의 정신은 자기 몸만을 지켜야 그 몸이 오래도록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내부를 삼가고 당신을 외부를 닫아거십시오. 아는 것이 많으면 재난이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크게 밝은 태양 위에 이르게 하여 저 지극한 양의 근원에 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을 깊고 아득한 문안으로 들어가게 하여 저 지극한 음의 근원에 도달하게 하겠습니다. 하늘과 땅은 각기 맡은 직능이 있고 음과 양은 서로의 작용이 있습니다. 조심하여 당신의 몸을 지키십시오. 모든 물건은 스스로 굳세어질 것입니다. 나는 그 도를 지키며 그 조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1200년 동안 몸을 닦아 왔으나 내 육체는 전혀 쇠하지 않고 있습니다.” 황제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선생님이야말로 바로 하늘이십니다.” 광성자가 말했다. “물건들은 모두 무궁한 것인데 사람들은 모두 종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건들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인데 사람들은 모두 끝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도를 체득한 사람은 위로는 황제가 되고 아래로는 왕이 될 것입니다. 내 도를 잃은 사람은 위로는 빛을 보다가 아래로는 흙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모든 물건들은 모두 흙에서 살다가 흙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떠나서 무궁의 문안으로 들어가 끝없는 들판에 노닐 것입니다. 나는 해와 달과 빛을 함께 할 것이며, 나는 하늘과 땅과 함께 영원할 것입니다. 나에게 부딪쳐도 의식치 못할 것이며, 나로부터 멀리 가도 그것을 모를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죽어버리겠지만 나는 홀로 존재할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1篇 在宥[5]- 皇帝立爲天子十九年, 令行天下, 聞廣成子在於空同之山, 故往見之, 曰:「我聞吾子達於至道, 敢問至道之精. 吾欲取天地之精, 以佐五穀, 以養民人, 吾又欲官陰陽, 以遂群生, 爲之奈何?」 廣成子曰:「而所欲問者, 物之質也. 而所欲官者, 物之殘也. 自而治天下, 雲氣不待族而雨, 草木不待黃而落, 日月之光益以荒矣. 而?人之心??者, 又奚足以語至道哉!」 皇帝退, 損天下, 築特室, 席白茅, 閒居三月, 復往邀之. 廣成子南首而臥, 皇帝順下風膝行而進, 再拜稽首而問曰:「聞吾子達於至道, 敢問, 治身奈何而可以長久?」廣成子蹶然而起, 曰:「善哉問乎! 來! 吾語汝至道. 至道之精, 窈窈冥冥至道之極, 昏昏??. 无視无聽, 拘神以靜, 形將自正. 必靜必淸, 无勞汝形, 无搖汝精, 乃可以長生. 目无所見, 耳无所聞, 心无所知, 汝神將守形, 形乃長生. 愼汝內, 閉汝外, 多知爲敗. 我爲汝遂於大明之上矣, 至彼至陽之原也. 爲汝入於窈冥之門矣, 至彼至陰之原也. 天地有官, 陰陽有藏, 愼守汝身, 物將自壯. 我守其一以處其和, 故我修身千二百歲矣, 吾形未常衰.」 皇帝再拜稽首曰:「廣成子之謂天矣!」 廣成子曰:「來! 余語汝. 彼其物无窮, 而人皆以爲有終. 彼其物无測, 而人皆以爲有極. 得吾道者, 上爲皇而下爲王. 失吾道者, 上見光而下爲土. 今夫百昌皆生於土而反於土, 故余將去汝, 入无窮之門, 以遊無極之野. 吾與日月參光, 吾與天地爲常. 當我, 緡乎! 遠我, 昏乎! 人其盡死, 而我獨存乎!」
109` 무위 속에 살면 자연은 스스로 변화한다 (외편:11.재유,6) - 장자(외편) ; 제11편 재유[6]- 운장이 동쪽에서 노닐 때 부요라는 신목 가지 옆을 지나다 마침 홍몽을 만났다. 홍몽은 자기 넓적다리를 두드리며 놀고 있었다. 운장은 그를 보고 발길을 멈추고 서서 말했다. “노인께서는 무엇을 하는 분이기에 이러고 계십니까?” 홍몽은 멈추지 않은 채 운장에게 말했다. “놀고 있습니다.” 운장이 말했다.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홍몸은 머리를 들어 운장을 보며 말했다. “음!” 운장이 말했다. “지금 하늘의 기운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땅의 기운은 뒤엉켜 있습니다. 여섯 가지 기후도 고르지 않고 사철도 절도에 맞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여섯 가지 기후의 정수를 화합시켜 여러 생물들을 생육케 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홍몽은 행동을 멈추지 않고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모릅니다. 나는 모릅니다.” 운장은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 후 3년 뒤 동쪽에 노닐게 되어 송나라 들판을 지나다 다시 홍몽을 만나게 되었다. 운장은 크게 기뻐하며 달려가 앞에 서서 말했다. “저를 잊으셨습니까? 하늘같이 훌륭한 분께서 저를 잊으셨습니까?”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홍몽에게 가르침을 요청했다. 홍몽이 말했다. “떠돌아다니면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함부로 뛰면서도 가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합니다. 노니는 사람이란 집착하는 곳이 없이 아무런 바램도 없는 경지를 바라볼 뿐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운장이 말했다. “저는 스스로 함부로 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백성들은 제가 가는 곳으로 따라옵니다. 저는 백성들에게 부득이한 일만 하고 있습니다만 백성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한마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홍몽이 말했다. “하늘의 법도를 어지럽히고 만물의 진실됨에 역행하면 하늘의 현묘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짐승들은 무리로부터 흩어지고, 새들은 모두 밤에도 울게 될 것입니다. 재난은 풀과 나무에 미치고, 화는 기어다니는 벌레에까지 미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인위적으로 다스린 잘못인 것입니다.” 운장이 말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홍몽이 말했다. “아! 귀찮으니 돌아가시오.” 운장이 말했다. “저로서는 하늘의 재난을 당하고 있으니 한마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홍몽이 마지못해 말했다. “마음을 기르십시오. 당신은 그저 무위 속에 살기만 하면 만물은 저절로 변화할 것입니다. 당신의 육체를 버리고 당신의 총명함을 버리십시오. 외물에 대한 생각을 잊는다면 자연의 기운과 크게 융합될 것입니다. 마음을 버리고 정신을 풀어버리면 아득히 영혼도 없게 될 것입니다. 만물은 번성하여 각각 자기의 본분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각각 자기의 근본으로 되돌아가면서도 아무 것도 모르고 혼동상태에서 평생 그곳을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알게 되면 곧 그것으로부터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 이름도 묻지 않고 그 실정도 보려들지 않을 것이니, 그대로 저절로 생육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운장이 말했다. “하늘이 저에게 덕을 내려주시고, 저에게 고요함을 보여주셨습니다. 평소 그것을 구하여 왔었는데 이제야 그것을 얻었습니다.” - 莊子(外篇) ; 第11篇 在宥[6]- 雲將東遊, 過扶搖之枝而適遭鴻蒙. 鴻蒙方將?脾雀躍而遊. 雲將見之, ?然止, 贄然立, 曰:「?何人邪? ?何爲此?」 鴻蒙?脾雀躍不輟, 對雲將曰, 「遊!」 雲將曰:「朕願有問也.」 鴻蒙仰而視雲將曰, 「?!」 雲將曰:「天氣不和, 地氣鬱結, 六氣不調, 四時不節. 今我願合六氣之精以育群生, 爲之奈何?」 鴻蒙?脾雀躍掉頭曰:「吾弗知! 吾弗知!」 雲將不得問. 又三年, 東遊, 過有宋之野而適遭鴻蒙. 雲將大喜, 行趨而進曰:「天忘朕邪? 天忘朕邪?」再拜稽首, 願聞於鴻蒙. 鴻蒙曰:「浮遊, 不知所求. 猖狂, 不知所往. 遊者?掌, 以觀无妄. 朕又何知!」 雲將曰:「朕也自以爲猖狂, 而民隨予所往. 朕也不得已於民, 今則民之放也. 願聞一言.」 鴻蒙曰:「亂天下之經, 逆物之情, 玄天弗成. 解獸之群, 而鳥皆夜鳴. 災及草木, 禍及止蟲. 噫, 治人之過也!」 雲將曰:「然則吾奈何?」 鴻蒙曰:「噫, 毒哉! 倦倦乎歸矣.」 雲將曰:「吾遇天難, 願聞一言.」 鴻蒙曰:「噫! 心養. 汝徒處无爲, 而物自化. 隨爾形體, 黜爾聰明, 倫與物忘. 大同乎?溟, 解心釋神, 莫然无魂. 萬物云云, 各復其根, 各復其根而不知. 渾渾沌沌, 終身不離. 若彼知之, 乃是離之. 无問其名, 无?其情, 物固自生.」 雲將曰:「天降朕以德, 示朕以?. 躬身求之, 乃今也得.」再拜稽首, 起辭而行.
110` 나라는 인위가 아닌 자연에 맡겨라 (외편:11.재유,7) - 장자(외편) ; 제11편 재유[7]- 보통사람들은 모두 남이 자기에게 찬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이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싫어한다. 자기에게 찬동하는 것을 바라고, 자기와 의견이 다르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여러 사람 가운데서 뛰어나고 싶은 심리에서이다. 여러 사람 가운데서 뛰어나고 싶은 심리를 지녔다고 해서 어찌 늘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날 수가 있겠는가? 여러 사람의 중론을 따라 편히 지내는 것이 좋고, 여러 사람들의 재주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런데도 인위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들은 우왕?탕왕?문왕의 이 점만을 보고 그들의 환란은 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인위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요행을 바라면서도 그의 나라를 잃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의 나라를 온전히 보전한 사람은 만 명 중에 한 명도 안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나라를 잃은 사람은 한 사람이 보존하였으면 만 명은 잃었을 것이다. 슬프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의 무지함이여!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큰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다. 큰 물건을 소유한 사람은 작은 물건들에 구애되어서는 안 된다. 사물을 다스리면서도 사물에 구애받지 않으면 모든 사물이 제대로 보존되게 된다. 사물을 제대로 보존하는 사람이 사물에 구애받지 않음을 알았다면 어찌 다만 천하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만이 그렇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천지사방을 드나들고 온 세상에 노닐되, 홀로 갔다 홀로 오는 것을 두고 일체를 홀로 소유하게 되는 독유(獨有)라 부르는 것이다. 홀로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 사람을 두고 지극히 귀한 사람이라 부르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1篇 在宥[7]- 世俗之人, 皆喜人之同乎己而惡人之異於己也. 同於己而欲之.異於己而不欲者, 以出乎衆爲心也. 夫以出乎衆爲心者, 曷常出乎衆哉! 因衆以寧所聞, 不如衆技衆矣. 而欲爲人之國者, 此攬乎三王之利而不見其患者也. 此以人之國僥倖也.幾何僥倖而不喪人之國乎! 其存人之國也, 無萬分之一. 而喪人之國也, 一不成而萬有餘喪矣. 悲夫, 有土者之不知也! 夫有土者, 有大物也. 有大物者, 不可以物. 物而不物, 故能物物. 明乎物物者之非物也, 豈獨治天下百姓而已哉! 出入六合, 遊乎九州, 獨往獨來, 是謂獨有. 獨有之人, 是謂至貴.
111` 위대한 사람이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외편:11.재유,8) - 장자(외편) ; 제11편 재유[8]- 위대한 사람의 가르침은 형체에 그림자가 따르고 소리에 울림이 따르는 것처럼 질문이 있으면 거기에 응답을 하여 자기가 품고 있는 생각을 다 털어놓는다. 그래서 온 천하의 반려가 된다. 그는 아무 소리도 없는 고요함에 몸을 두고, 일정한 방향도 없는 자유로운 행동을 한다. 허둥지둥 왔다갔다하고 있는 그대들을 이끌어 무한한 경지에 노닐게 할 것이다. 그는 드나듦에 있어 의지하는 곳이 없고, 태양처럼 시작도 끝도 없다. 그의 신체의 모양은 만물과 크게 하나가 되어 있으며, 크게 하나가됨으로써 자기가 없다. 자기가 없는데 어찌 사물의 존재를 인식하겠는가?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란 옛날의 군자이며, 무만을 보고 있는 사람은 하늘과 땅의 벗인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1篇 在宥[8]- 大人之敎, 若形之於影, 聲之於響. 有問而應之, 盡其所懷, 爲天下配. 處乎无響, 行乎无方. ?汝適復之撓撓, 以遊无端. 出入无旁, 與日无始. 頌論形軀, 合乎大同, 大同而无己. 無己, 惡乎得有有! 覩有者, 昔之君子. 覩无者, 天地之友.
112` 일이란 번거롭지만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외편:11.재유,9) - 장자(외편) ; 제11편 재유[9]- 천하기는 하지만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물건이다. 비천하기는 하지만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백성들이다. 귀찮기는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일이다.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공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법이다. 본성과 먼 것이지만 실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의이다. 인정에 가까운 것이지만 널리 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이다. 절도가 있기는 하지만 쌓여서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예이다. 잘 들어맞기는 하지만 높아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덕이다. 통일되어 있기는 하지만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도이다. 신묘하기는 하지만 그것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늘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늘을 잘 살펴 따르기만 하지 힘들여 일을 돕지는 않는다. 덕을 이루지만 쌓아 올리지는 않는다. 도를 따라가지만 모의하지는 않는다. 인에 합쳐지지만 그것에 의지하지는 않는다. 의에 몸을 두고 있지만 그것을 쌓지는 않는다. 예에 들어맞지만 꺼리는 것도 없다. 일을 처리해도 사양하지 않는다. 법에 따라 정제하여지되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백성들에게 의지하되 가볍게 여겨지지 않는다. 물건을 쓰기는 하되 버리지는 않는다. 일이란 할 만한 것은 못되지만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하늘에 밝지 않은 사람이란 덕에 있어서 순수하지 않다. 도에 통하지 않은 사람에게 잘 되는 것이라고는 없다. 도 를 잘 모른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도란 무엇을 말하는가? 하늘의 도가 있고 사람의 도가 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도 존귀한 것은 하늘의 도이다. 인위적인 것으로서 번거로운 것이 사람의 도이다. 임금이란 하늘의 도에 속하는 것이고, 신하란 사람의 도에 속하는 것이다. 하늘의 도와 사람의 도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니 살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1篇 在宥[9]- 賤而不可不任者, 物也. 卑而不可不因者, 民也. 匿而不可不爲者, 事也. ?而不可不陳者, 法也. 遠而不可不居者, 義也. 親而不可不廣者, 仁也. 節而不可不積者, 禮也. 中而不可不高者, 德也. 一而不可不易者, 道也. 神而不可不爲者, 天也. 故聖人觀於天而不助, 成於德而不累, 出於道而不謀, 會於仁而不恃, 薄於義而不積, 應於禮而不諱, 接於事而不辭, 齊於德而不亂, 恃於民而不輕, 因於物而不去. 物者莫足爲也, 而不可不爲. 不明於天者, 不純於德. 不通於道者, 無自而可. 不明於道者, 悲夫. 何謂道? 有天道, 有人道. 無爲而尊者, 天道也. 有爲而累者, 人道也. 主者, 天道也. 臣者, 人道也. 天道之與人道也, 相去遠矣, 不可不察也.
113` 도와 덕과 의로움과 일과 재주의 관계 (외편:12.천지,1)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1]- 하늘과 땅이 비록 크다고는 하나 그 조화는 고르고, 만물이 비록 종류가 많다고는 하나 그 다스림은 하나에 의한 것이며, 백성이 비록 많다고는 하나 그 주인은 임금이다. 임금은 덕을 근거로 하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태고적 임금은 천하를 다스림에 무위로 하였고, 하늘의 덕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도 로써 명분을 보면 천하의 임금은 올바르다. 도로써 분수를 보면 임금과 신하의 뜻은 분명하다. 도로써 능력을 보면 천하의 벼슬들은 잘 다스려진다. 도로써 모든 것을 보면 만물의 기능은 완전해진다. 그러므로 하늘과 통하는 것이 도이며, 땅에 따르는 것이 덕이며, 만물에 행하여지는 것이 의인 것이다. 위에서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일이다.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재주이다. 재주는 일에 지배되고, 일은 의에 지배되고, 의는 덕에 지배되고, 덕은 도에 지배되며, 도는 하늘에 의해 지배된다. 그러므로 옛날에 세상사람들을 양육하던 사람들은 아무런 욕망도 없이 온 천하가 만족하고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온 만물이 변화하고 고요히 있기만 해도 백성들이 안정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옛날 기록에도 하나에 통합됨으로써 만사가 다 이루어지고, 아무런 마음도 없게 됨으로써 귀신들도 굴복한다고 했다.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1]- 天地雖大, 其化均也. 萬物雖多, 其治一也. 人卒雖衆, 其主君也. 君原於德而成於天, 故曰, 玄古之君天下, 无爲也, 天德而已矣. 以道觀言, 而天下之名正. 以道觀分, 而君臣之義明. 以道觀能, 而天下之官治. 以道汎觀, 而萬物之應備. 故通於天者, 道也. 行於萬物者, 義也. 上治人者, 事也. 能有所藝者, 技也. 技兼於事, 事兼於義, 義兼於德, 德兼於道, 道兼於天, 故曰:古之畜天下者, 无欲而天下足, 无謂而萬物化, 淵靜而百姓定. 記曰:「通於一而萬事畢. 无心得而鬼神服.」
114` 군자란 어떤 사람인가 (외편:12.천지,2)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2]-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란 만물을 덮어주고 실어주는 것이다. 얼마나 넓고 큰가! 군자들이 그의 마음을 텅 비게 하지 않으면 받아들여질 수가 없는 것이다.」 무위로써 일하는 것을 하늘이라고 말한다. 무위로써 말하는 것을 덕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것을 인이라고 말한다. 같지 않은 것들이 같이 합쳐진 것을 크다고 말한다. 행동이 남들과 달리 어긋나지 않는 것을 너그러움이라고 말한다. 만 가지 같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라고 말한다. 굳게 자기 덕을 지키는 것을 기망이 있다고 말한다. 덕을 이룩하는 것을 입(立)이라고 말한다. 도를 따르는 것을 비(備)라고 말한다. 사물로 말미암아 뜻이 꺾이지 않는 것을 완전하다고 말한다. 군자로서 이 열 가지 것들만 분명히 알면 곧 큼직하게 그의 지닌 마음이 커질 것이며, 널리 만물이 그를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산에 금을 저장해 두고, 못에 진주를 저장해 둔 것과 같다. 재물을 이익이라 생각하지 않고 부귀를 가까이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일찍 죽는 것을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다. 재물을 얻은 것을 영화롭다 생각하지 않고, 궁핍한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 평생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분수대로 따를 것이다. 천하의 임금이 되는 것도 자기의 영예로운 자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영예로운 것은 맑게 드러난다. 만물은 한 가지 세계에 놓여 있고 죽음이나 삶이나 같은 모양인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2]- 夫子曰:「夫道, 覆載萬物者也, 洋洋乎大哉! 君子不可以不?心焉. 无爲爲之之謂天, 无爲言之之謂德, 愛人利物之謂仁, 不同同之之謂大, 行不崖異之謂寬, 有萬不同之謂富. 故執德之謂紀, 德成之謂立, 循於道之謂備. 不以物挫志之謂完. 君子明於此十者, 則韜乎其事心之大也, 沛乎其爲萬物逝也. 若然者, 藏金於山, 沈珠於淵, 不利貨財, 不折貴富, 不樂壽, 不哀夭. 不樂通, 不醜窮. 不拘一世之利以爲己私分, 不以王天下爲己處顯. 顯則明, 萬物一府, 死生同狀.」
115` 지극한 덕을 지닌 사람이란 (외편:12.천지,3)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3]-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란 그 모습이 심연처럼 조용하고, 맑은 물처럼 맑다. 쇠나 돌은 울리지 않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 쇠나 돌은 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만물의 이러한 성질은 누가 정해 놓은 것인가?」 큰덕을 지닌 사람들은 소박하게 행동하면서도 마음은 모든 일에 통달해 있다. 근본적인 도에 입각하여 살고 있어서 그의 지혜는 신묘에 통달한다. 그러므로 그의 덕이 넓다고 하는 것이다. 그의 마음의 움직임은 밖의 물건에 의해서 결정한다. 그러므로 모든 형체는 도가 아니고는 생성되지 않으며, 모든 생성은 덕이 아니고는 밝혀지지 않는 것이다. 형체를 보존하면서 생성을 다하고, 덕을 세우고 도를 밝힌다면 큰 덕을 지닌 사람이 아니겠는가? 널리 어디에나 불쑥 나타나 갑자기 움직이는데도 만물이 그것을 따른다면 그를 두고 큰 덕을 지닌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보아도 까마득하고, 들어도 아무 소리가 없는데, 까마득한 가운데서 홀로 밝음을 보고, 소리 없는 가운데서 홀로 화(和)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러므로 깊고도 깊으면서 만물을 존재하게 할 수 있고, 신묘하고도 신묘하여서 정묘한 작용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만물과 접촉함에 있어서는 지극한 무(無)에 있으면서도 만물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때때로 달려가지만 그의 알맞은 자리를 되찾는다. 크고도 작고 길고도 짧고 가깝고도 먼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3]- 夫子曰:「夫道, 淵乎其居也, ?乎其淸也. 金石不得, 無以鳴. 故金石有聲, 不考不鳴. 萬物孰能定之! 「夫王德之人, 素逝而恥通於事, 立之本原而知通於神. 故其德廣, 其心之出, 有物採之. 故形非道不生, 生非德不明. 存形窮生, 立德明道, 非王德者邪! 蕩蕩乎! 忽然出, 勃然動, 而萬物從之乎! 此謂王德之人. 「視乎冥冥! 聽乎無聲. 冥冥之中, 獨見曉焉. 無聲之中, 獨聞和焉. 故深之又深而能物焉, 神之又神而能精焉. 故其與萬物接也, 至無而供其求, 時騁而要其宿.(大小, 長短, 修遠.)
116` 무위, 무아, 무심의 경지에서 도를 터득할 수 있다 (외편:12.천지,4) 불교`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4]- 황제가 적수의 북쪽에 노닐고 곤륜산 언덕에 올라갔다가 남쪽을 바라보고 돌아오는 길에 그의 검은 진주를 잃어버렸다. 지혜로 하여금 그것을 찾게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고, 이주로 하여금 그것을 찾게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고, 끽후로 하여금 찾게 하였으나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상망을 시켰더니 곧 찾아내었다. 황제가 말했다. “이상하군. 상망 만이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4]- 皇帝遊乎赤水之北, 登乎崑崙之丘而南望, 還歸遺其玄珠. 使知索之而不得, 使離朱索之而不得, 使喫?索之而不得也. 乃使象罔, 象罔得之.皇帝曰:「異哉! 象罔乃可以得之乎?」
117` 세상은 지혜로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다 (외편:12.천지,5)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5]- 요임금의 스승은 허유였고, 허유의 스승은 설결이었고, 설결의 스승은 왕예였고, 왕예의 스승은 피의였다. 요임금이 허유에게 물었다. “설결께서는 하늘의 짝인 천자가 될만한 분이시지요? 저는 왕예를 통하여 그 분을 모시려고 합니다.” 허유가 말했다. “위험합니다. 천하를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설결의 사람됨은 총명하고 지혜가 밝으며 일을 잘하면서도 민첩합니다, 그 분의 성품은 남보다 뛰어나서 인간의 지혜로써 하늘을 떠받들려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잘못을 금하는 일은 잘 알고 있지만 잘못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분에게 하늘의 짝인 천자가 되게 하면 그 분은 인위적인 행동으로써 하늘을 무시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근본으로 하여 다른 것들에 차별을 둘 것입니다. 또한 지혜를 존중하여 날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에 부림을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물건에 구속을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면서 물건들에 대처하기에 바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합당하게 처리하려 바쁠 것입니다. 그리고 물건을 쫓아 변화함으로써 처음부터 일정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늘의 짝인 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가족이 있으면 선조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한 집안의 아버지는 될 수 있지만 한 집안의 선조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의 다스림은 혼란의 근본이 될 것이니, 그것은 신하로서의 재난인 동시에 임금에게도 해로울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5]- 堯之師曰許由, 許由之師曰齧缺, 齧缺之師曰王倪, 王倪之師曰被衣. 堯問於許由曰:「齧缺可以配天乎? 吾藉王倪而要之.」 許由曰:「殆哉?乎天下! 齧缺之爲人也, 聰明叡知, 給數以敏, 其性過人, 而又乃以人受天. 彼審乎禁過, 而不知過之所由生. 與之配天乎? 彼且乘人而無天, 方且本身而異形, 方且尊知而火馳, 方且爲緖使, 方且爲物?, 方且四顧而物應, 方且應衆宜, 方且與物化而未始有恒. 夫何足以配天乎? 雖然, 有族, 有祖, 可以爲衆父, 而不可以爲衆父父. 治, 亂之率也, 北面之禍也, 南面之賊也.」
118` 자연스럽다는 것은 무엇인가 (외편:12.천지,6)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6]- 요임금이 화땅에 놀러 갔었는데, 화땅의 국경을 지키는 사람이 말했다. “성인께서 오래 오래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국경을 지키는 사람이 말했다. “성인께서 부자가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국경지기가 말했다. “성인께서 많은 아들을 낳게 하여 주십시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그러자 국경지기가 말했다.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많은 아들을 낳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일입니다. 홀로 그것을 원하지 않으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요임금이 말했다.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 일이 많아지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아집니다. 이 세 가지 것들은 덕을 기르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어서 사양하는 것입니다.” 국경지기가 말했다. “처음에 나는 당신을 성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군자 정도에 지나지 않는군요. 하늘은 모든 사람을 낳고 그들에게 합당한 직분을 줍니다. 아들이 많다 해도 그들에게 직분이 주어지는데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부자가 된다 해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면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성인이란 메추리처럼 일정한 거처도 없고, 병아리처럼 부실하게 먹으면서도 새처럼 날아다니며 행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하여지면 모두가 번창하지만 천하에 도가 행하여지지 않을 때에는 덕이나 닦으면서 한가히 지냅니다. 천년이나 세상을 피해 살다가 세상을 떠나 신선 세상으로 올라갑니다. 하늘의 흰 구름을 타고서 하느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는 것이지요. 앞의 세 가지가 환란으로써 닥쳐올 수가 없으며 몸에는 언제나 재앙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욕된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국경지기가 떠나가자, 요임금이 뒤따라가면서 말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국경지기가 말했다. “물러가시오.”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6]- 堯觀乎華.華封人曰:「?. 聖人, 請祝聖人.」 「使聖人壽.」 堯曰:「辭.」 「使聖人富.」 堯曰:「辭.」 「使聖人多男子.」 堯曰:「辭.」 封人曰:「壽.富.多男子.人之所欲也, 女獨不欲, 何邪?」 堯曰:「多男子則多懼, 富則多事, 壽則多辱. 是三者, 非所以養德也, 故辭.」 封人曰:「始也我以女爲聖人邪, 今然君子也. 天生萬民, 必授之職, 多男子而授之職, 則何懼之有? 富而使人分之, 則何事之有! 夫聖人, ?居而?食, 鳥行而无彰, 天下有道, 則與物皆昌. 天下无道, 則修德就閒. 千歲厭世, 去而上倦. 乘彼白雲, 至於帝鄕. 三患莫至, 身常无殃. 則何辱之有!」 封人去之. 堯隨之, 曰:「請問?」 封人曰:「退已!」
119` 인위적인 정치로는 세상이 혼란해진다 (외편:12.천지,7)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7]-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리게 되자 백성자고를 제후로 삼았다. 그 후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천자자리를 물려주고, 순임금은 우임금에게 천자 자리를 물려주자, 백성자고는 제후자리를 사양하고 농사를 지었다. 우임금이 그를 찾아가 보니 그는 들에서 밭을 갈고 있었다. 우임금은 아래쪽으로 서서 물었다. “옛날 요임금께서 천하를 다스리실 때에는 선생님께서 제후로 계셨습니다. 요임금께서 순임금께 천자자리를 물려주셨고, 순임금께서는 저에게 천자 자리를 물려주셨는데,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제후자리를 물러나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백성자고가 말했다. “옛날 요임금께서 천하를 다스리실 때에는 상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이 일에 힘썼고, 벌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이 두려워했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상을 내리고 벌을 내리는데도 백성들은 어질지 않습니다. 덕은 이로부터 쇠하고, 형벌은 이로부터 확립되어 있습니다. 후세의 혼란은 이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해서 당신은 물러나지 않으십니까? 내 일이나 방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한가한 모습으로 돌아보지도 않고 밭을 갈았다.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7]- 堯治天下, 伯成子高立爲諸侯.堯授舜, 舜授禹, 伯成子高辭爲諸侯而耕, 禹往見之. 則耕在野. 禹趨就下風, 立而問焉, 曰:「昔堯治天下, 吾子立爲諸侯. 堯授舜, 舜授予, 而吾子辭爲諸侯而耕, 敢問, 其故何也?」 子高曰:「昔堯治天下, 不賞而民勸, 不罰而民畏. 今子賞罰而民且不仁, 德自此哀, 刑自此立, 後世之亂自此始矣. 夫子闔行邪? 无落吾事!」??乎耕而不顧.
120` 태초에는 無만이 있었다 (외편:12.천지,8)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8]- 태초에는 무(無)만이 있었다. 유(有)도 없었고 명칭도 없었다. 하나(一)가 여기에서 생겨났는데, 하나만 있고 형체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건은 하나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 그 작용을 덕이라 한다. 아직 형체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하나로부터 나뉘어져 가는 것이 잠시도 끊이지 않았는데, 이것을 명(命)이라 한다. 하나가 유동함으로써 물건을 생성시키며, 물건이 생성되어 생리가 갖추어지면 그것을 형체라 한다. 형체는 정신을 보존하게 되며 제각기 원칙을 지니게 되는데 그것을 본성이라고 한다. 본성이 닦아지면 덕으로 되돌아간다. 같아진다는 것은 텅 비어진다는 뜻이며, 텅 빈다는 것은 곧 커진다는 뜻이다. 새가 주둥이로 우는 상태와 합치되는데, 새가 주둥이로 우는 상태와 합치된다는 것은 하늘과 땅의 자연에 합치된다는 뜻이다. 그 합치되는 상태는 딱 들어맞지 않아서 어리석은 듯도 하고 흐리멍텅한 듯도 하다. 이것을 현묘한 덕이라 말하는 것이며, 크게 순조로운 상태와 같은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8]- 泰初有无无有无名. 一之所起, 有一而未形. 物得以生, 謂之德. 未形者有分, 且然无間, 謂之命. 留動而生物, 物成生理.謂之形. 形體保神, 各有儀則, 謂之性. 性修反德, 德至同於初. 同乃虛, 虛乃大.合喙鳴. 喙鳴合, 與天地爲合. 其合緡緡, 若愚若昏, 是謂玄德, 同乎大順.
121` 성인은 인위적인 지혜에 힘쓰지 않는다 (외편:12.천지,9)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9]- 공자가 노자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도를 다스려 만약 그 도를 본뜬다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하게 될 것입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한 개의 돌에서 굳다는 개념과 희다는 개념을 분리시켜 놓으면 허공에 달아매어 놓은 것처럼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성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것은 지혜로 일을 처리하고 기교에 얽매여서 몸을 고생시키고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자입니다. 짐승을 잘 잡는 개는 마음을 쓰게 되고, 날렵한 원숭이는 산과 숲 속에서 잡혀 끌려오게 됩니다. 당신에게 당신이 들어보지도 말해보지도 못했던 일을 알려 주겠습니다. 대 체로 머리도 있고 발도 있지만, 마음도 없고 귀도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는 것들과 같이 있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움직이고 멈추는 것과 죽고 사는 것과 망하고 흥하는 것은 또한 그들이 말하는 것 같은 근거에 의하여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스린다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물건을 잊고 하늘을 잊으면 그것을 자기를 잊었다고 부릅니다. 자기를 잊은 사람을 하늘로 들어간 사람이라 이르는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9]- 夫子問於老聃曰:「有人治道若相放, 可不可, 然不然. 辯者有言曰, ‘離堅白若縣宇.’ 若是則可謂聖人乎?」 老 聃曰:「是胥易技係, 勞形?心者也. 執狸之狗成思, 猿狙之便自山林來. 丘, 予告若, 而所不能聞與而所不能言, 凡有首有趾无心无耳者衆, 有形者與无形无狀而皆存者盡无. 其動止也, 其死生也, 其廢起也, 此又非其所以也. 有治在人, 忘乎物, 忘乎天, 其名爲忘己, 忘己之人, 是之謂入於天.」
122` 최상의 정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다 (외편:12.천지,10) 정치` 다스림`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10]- 장려면이 계철을 만나 말했다. “노나라 임금이 저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했는데 사양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아 말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옳은 말이었는지 그른 말이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한 말을 말씀드릴 테니 한 번 들어주십시오. 제가 노나라 임금에게 말하기를 「반드시 공손함과 검소함을 실행하고 공손하고 충실한 사람들을 뽑아 쓰되, 사사로움에 기우는 일이 없다면 백성들이 어찌 화합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계철이 웃으면서 말했다. “만약 선생의 말을 제왕의 덕에다 비추어 본다면 마치 사마귀가 앞다리를 벌리고 수레바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나 같은 것이니, 반드시 당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곧 그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높은 누대는 가지게 될 것이지만 일이 많아질 것이고, 그에게 몰려드는 사람만 많아질 것입니다.” 장려면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에 정신이 없어졌습니다. 간단하게나마 가르침을 주십시오.” 계철이 말했다. “위대한 성인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백성들의 마음을 풀어주어 그들로 하여금 가르침에 따라서 풍속을 훌륭하게 만들도록 합니다. 백성들의 악한 마음을 완전히 없애어 모두가 도를 얻으려는 뜻을 밀고 나가도록 합니다. 사람의 본성이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과 같아서 백성들은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정치를 어찌 요임금이나 순임금이 백성들을 가르치던 경지에 견주겠으며, 아무 생각 없이 모두가 같은 정치라고 하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같은 덕을 지니고 마음이 편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10]- 蔣閭?見季徹曰:「魯君謂면也曰:‘請受敎.’ 辭不獲命, 旣已告矣.未知中否, 請嘗薦之. 吾謂魯君曰:‘必服恭儉, 拔出公忠之屬而无阿私, 民孰敢不輯!’」 季徹局局然笑曰:「若夫子之言, 於帝王之德, 猶螳螂之怒臂而當車轍, 則必不勝任矣. 且若是, 則其自爲處危, 其觀壹多物, 將往投迹者衆.」 蔣閭???然驚曰:「?也?若於夫子之所言矣. 雖然, 願先生之言其風也.」 季徹曰:「大聖之治天下也, 搖蕩民心, 使之成敎易俗, 擧滅其賊心而皆進其獨志, 若性之自爲, 而民不知其所由然. 若然者, 豈兄堯舜之敎民, 溟?然弟之哉? 欲同乎德而心居矣!」
123` 기계가 발달하면 사람이 기계에 지배당한다 (외편:12.천지,11) 과학`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11]- 자공이 남쪽으로 초나라를 유람하고 나서 진나라로 돌아오다가, 한수 남쪽을 지나는 길에 한 노인이 채소밭을 돌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땅을 파고 우물로 들어가 항아리에 물을 퍼 들고 나와서 물을 주고 있었다. 힘은 무척 많이 들이고 있었으나 효과는 거의 없었다. 자공이 말을 걸었다. “기계가 있다면 하루에 상당히 많은 밭에 물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힘을 아주 적게 들이고도 그 효과는 클 것입니다. 왜 기계를 쓰지 않으십니까?” 노인이 머리를 들어 자공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자공이 말했다. “나무에 구멍을 뚫어 만든 기계인데 뒤는 무겁고 앞은 가볍습니다. 손쉽게 물을 풀 수 있는데 빠르기가 물이 끓어 넘치는 것 같습니다.” 밭을 돌보던 노인은 성난 듯 얼굴빛이 바뀌었으나 잠시 후 웃으며 말했다. “내가 우리 선생님께 듣기로는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쓸 일이 생기게 되고, 기계를 쓸 일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기계에 대해 마음을 쓸 일이 있게 되고, 기계에 대한 마음 쓰임이 가슴에 차 있으면 순박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고, 순박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면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하게 되고,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한 사람에게는 도가 깃들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나는 기계의 쓰임을 알지 못해서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자공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몸을 굽힌 채 말대꾸도 못했다. 잠시 후 밭을 돌보던 노인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무엇을 하는 분입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공자의 제자입니다.” 노인이 말했다. “당신의 선생은 널리 배움으로써 성인의 흉내를 내고, 허망한 말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홀로 악기를 연주하며 슬픈 노래를 함으로써 천하에 명성을 팔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당신도 당신의 정신과 기운을 잊고 당신의 육체를 버린다면 거의 도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몸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만 가시오. 내가 하는 일이나 방해하지 마시오.” 자공은 부끄러워 얼굴빛이 하얗게 되고 넋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30리를 가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의 제자가 물었다. “조금 전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선생님께서는 그 분을 만나고 나서 무엇 때문에 얼굴빛을 잃고 종일 정신이 없으십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나는 천하에 훌륭한 분은 우리 선생님 한 분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있는 줄은 알지도 못했었다. 내가 배운 선생님의 가르침은 일이란 가능한 것을 추구하고, 결과는 완성을 추구하며, 힘은 적게 들이고 드러나는 공로가 많은 것이 성인의 도라 배웠다. 지금 보니 그렇지가 않구나. 도를 지키는 사람은 덕이 완전해야 되며, 덕이 완전한 사람은 몸이 완전해야 되고, 몸이 완전한 사람은 정신이 완전해야 된다. 정신이 완전한 것이 성인의 도이다. 삶을 타고나서 백성들과 나란히 행동하면서도 갈 곳도 알지 못하고 망연하면서도 순일하고 완전해야 한다. 공로와 이익과 기교 같은 것은 반드시 사람의 마음에서 잊혀져야만 한다. 그런 사람은 그의 뜻이 아니면 가지 않고, 그의 마음이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비록 온 천하가 그를 칭찬하고 그의 말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돌아보지도 않는다. 온 천하가 그를 비난하고 그의 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그는 마음을 비운 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상의 칭찬과 비난도 그를 손상시키거나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덕이 완전한 사람이라 하는 것일 것이다. 나 같은 자는 바람에 출렁이는 물결 같은 사람인 것이다.” 자공이 노나라로 돌아와 공자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공자가 말했다. “그는 혼돈씨의 술법을 배워 닦은 사람이다. 절대적인 도 하나만을 알지 상대적인 둘은 알지 못한다. 그의 속만을 다스리지 그의 밖은 다스리지 않는다. 그는 마음을 밝게 하여 소박함으로 들어갔고, 무위함으로써 질박함으로 되돌아갔으며, 본성을 체득하고 순수한 정신을 지니고서 속세에 노닐고 있는 사람이다. 너는 무엇을 그리 놀라고 있느냐? 혼돈씨의 술법을 너와 내가 어찌 알겠느냐?”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11]- 子貢南遊於楚, 反於晉, 過漢陰見一丈人方將爲圃畦, 鑿隧而入井, 抱擁而出灌, 滑滑淵用力甚多而見功寡. 子貢曰:「有械於此, 一日浸百畦, 用力甚寡而見功多, 夫子不欲乎?」 爲 圃者仰而視之曰:「奈何?」 曰:「鑿木爲機, 後重前輕, ?水若抽. 數如?湯, 其名爲?.」爲圃者忿然作色而笑曰:「吾聞之吾師, 有機械者心有機事, 有機事者必有機心. 機心存於胸中, 則純白不備. 純白不備, 則神生不定.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 吾非不知, 羞而不爲也. 子貢瞞然慙, 俯而不對. 有閒, 爲圃者曰:「子奚爲者邪?」 曰:「孔丘之徒也.」 爲圃者曰:「子非夫博學以擬聖, 於于以蓋衆, 獨弦哀歌以賣名聲於天下者乎? 汝方將妄汝神氣, 墮汝形骸, 而庶幾乎! 汝身不能治, 而何暇治天下乎? 子往矣. 無乏吾事!」 子貢卑?失色, 頊頊然不自得, 行三十里而後愈. 其弟子曰:「向之人何爲者邪? 夫子何故見之變容失色, 終日不自反邪?」 曰: 「始吾以夫子爲天下一人耳, 不知復有夫人也. 吾聞之夫子, 事求可, 功求成. 用力少, 見功多者, 聖人之道. 今徒不然. 執道者德全, 德全者形全, 形全者神全. 神全者, 聖人之道也. 託生與民竝行而不知其所之, ?乎淳備哉! 功利機巧必忘夫人之心. 若夫人者.非其志不之, 非其心不爲. 雖以天下譽之, 得其所謂, ?然不顧. 以天下非之, 失其所謂, ?然不受. 天下之非譽, 无益損焉, 是謂全德之人哉! 我之謂風波之民.」 反於魯, 以告孔子, 孔子曰:「彼假修混沌氏之術者也, 識其一, 不知其二. 治其內, 而不治其外. 夫明白太素, 无爲復朴, 體性拘神, 以遊世俗之間者, 汝將固驚邪? 且混沌氏之術, 予與汝何足以識之哉!」
124` 성인(聖人)과 덕인(德人)과 신인(神人) (외편:12.천지,12)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12]- 순망이 동쪽의 대학으로 가다가 동해 가에서 우연히 원풍을 만났다. 원풍이 말했다. “어디를 가시는 길입니까.” 순망이 말했다. “대학으로 가는 길입니다.” 원풍이 물었다. “무엇 하러 가십니까?” 순망이 말했다. “대학은 물이 흘러들어도 차지를 않고, 퍼내어도 마르지 않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노닐려고 하는 것입니다.” 원풍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뜻이 없으십니까? 성인의 다스림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순망이 말했다. “성인의 다스림이란 관청에서 정치를 시행함에 있어서는 그 합당함을 잃어서는 안되며, 사람을 등용함에 있어서는 능력 있는 사람을 빠뜨려서는 안됩니다. 또 실정을 완전히 살피어 백성들의 행동에 따라 정치를 행합니다. 말은 자신부터 실천해야만 천하가 교화됩니다. 손짓하고 손가락질만 해도 사방의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자가 없어야 합니다. 이것을 성인의 다스림이라 합니다.” 원풍이 말했다. “덕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순망이 말했다. “덕 있는 사람이란 들어앉아 있을 때도 생각이 없고, 행동함에 있어서도 생각하는 것이 없습니다. 옳고 그르다거나 아름답고 추하다는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온 세상을 아울러 이롭게 하는 것을 기쁨이라 생각하고, 온 세상을 충족시켜주는 것을 안락이라 생각합니다. 모습은 의지할 곳이 없는 듯하여 마치 어린아이가 그의 어머니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 멍청하여 길을 가는 사람이 길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쓰는 재물에는 여유가 있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생기는지 알지를 못합니다. 음식은 충분히 먹으면서도 그것이 나오는 곳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덕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원풍이 말했다. “신인(神人)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순망이 대답했다. “신령스러운 훌륭한 분은 해와 달과 별의 빛을 타고 다니며, 몸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조광, 즉 널리 비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운명대로 따르고 실정대로 다하여, 하늘과 땅도 녹아 없어지고 만사가 사라져버린 듯 합니다. 만물과 함께 진실한 형태로 되돌아가는데 이것을 혼명, 즉 뒤섞이고 어둡다 하는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12]- 諄芒將東之大壑, 適遇苑風於東海之濱. 苑風曰:「子將奚之?」 曰:「將之大壑.」 曰:「奚爲焉?」 曰:「夫大壑之爲物也, 注焉而不滿, 酌焉而不竭, 吾將遊焉.」 苑風曰:「夫子无意於橫目之民乎? 願聞聖治.」 순芒曰:「聖治乎? 官施而不失其宜, 拔擧而不失其能, 畢見情事而行其所爲, 行言自爲而天下化, 手撓顧指, 四方之民莫不俱至, 此之謂聖治.」 「願聞德人.」 曰:「德人者, 居无思, 行无慮, 不藏是非美惡. 四海之內共利之之謂悅, 共給之之謂安. ?乎若?兒之失其母也, ?乎若行而失其道也. 財用有餘而不知其所自來, 飮食取足而不知其所從, 此謂德人之容.」 「願聞神人.」 曰:「上神乘光, 與形滅亡, 此謂照曠. 致命盡情, 天地樂而萬事銷亡, 萬物復情, 此之謂混冥.」
125` 다스리는 것은 다스리지 않는 것만 못하다 (외편:12.천지,13)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13]- 문무귀와 적장만계가 무왕의 군사들을 보러 갔었다. 적장만계가 말했다. “순임금의 정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전쟁의 환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무귀가 말했다. “천하가 고루 다스려지고 있던 것을 순임금이 다스린 것입니까? 아니면 세상이 어지러웠던 것을 뒤에 다스린 것입니까?” 적장만계가 말했다. “천하가 고루 다스려지고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순임금에게 다스리게 하였겠습니까? 순임금은 머리 종기에 약을 씀에 있어서는 머리를 모조리 깎게 하고서 다리꼭지를 붙이게 합니다. 병이 나야 의사를 구하는 것이지요. 효자가 약을 가져다 아버지에게 드릴 때 그의 얼굴은 근심스러운 듯하지만, 성인은 그처럼 병이 나게 한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지극한 덕이 퍼진 세상에서는 현명한 사람도 숭상하지 않고, 능력이 있는 사람도 쓰지 않습니다. 임 금은 솟아난 나뭇가지 같고, 백성들은 들의 사슴과 같습니다. 행동이 바르지만 그것이 의로움인 줄은 알지 못하며, 서로 사랑하지만 그것이 어짊인지 알지 못합니다. 충실하지만 그것이 충성인지 알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들어맞지만 그것이 신용인지 알지 못합니다. 꿈틀거리면서 움직여 서로를 위해 일하지만 그것이 은혜로움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행하여도 흔적도 없게 되며, 일하여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13]- 門無鬼與赤張滿稽觀於武王之師. 赤張滿稽曰:「不及有虞氏乎! 故離此患也.」 門無鬼曰:「天下均治而有虞氏治之邪? 其亂而後治之與?」 赤張滿稽曰:「天下均治之爲願, 而何計以有虞氏爲! 有虞氏之藥瘍也, 禿而施?, 病而求醫. 孝子操藥以修慈父, 其色?然, 聖人羞之. 「至德之世, 不尙賢, 不使能. 上如標枝, 民如野鹿, 端正而不知以爲義, 相愛而不知以爲仁, 實而不知以爲忠, 當而不知以爲信, 蠢動而相使, 不以爲賜. 是故行而無迹, 事而無傳.」
126` 세상 사람들의 판단은 미혹되어 있다 (외편:12.천지,14)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14]- 효자는 그의 부모에게 잘 보이려 들지 않고 충신은 그의 임금에게 아첨을 하지 않는데, 그것이 신하와 자식의 훌륭한 태도이다. 부모가 말씀하신 것이면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부모가 행한 일이면 훌륭하다고 인정하면 세상에서는 못난 자식이라고 말한다. 임금이 말한 것이면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임금이 행한 것이면 훌륭하다고 인정하면 세상에서는 그를 못난 신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그런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을 그렇다고 하고,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을 훌륭하다고 하면 곧 아첨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듣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상의 습속이 본시 부모보다 엄하고 임금보다도 존귀하다는 말인가? 자기를 아첨꾼이라고 말하면 곧 성난 듯이 얼굴빛을 바꾸고, 자기에게 눈치꾼이라고 말하면 화난 듯이 얼굴빛을 바꾼다. 그러면서도 평생토록 아첨꾼 노릇을 하고 평생토록 눈치꾼 노릇을 한다. 이유를 들면서 말을 꾸미는 것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시작과 끝, 근원과 결과가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 옷 자락을 늘어뜨리고, 아름다운 채색으로 꾸미고, 갖은 용모를 써가며 온 세상에 아양을 떨면서도 자신은 아첨을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더불어 무리를 이루고, 같이 옳고 그른 판단을 내리면서도 자신은 일반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극히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의 어리석음을 아는 사람은 크게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그의 미혹된 것을 아는 사람은 크게 미혹된 것은 아니다. 크게 미혹된 자는 평생토록 이해하지 못하고, 크게 어리석은 자는 평생토록 깨닫지 못한다.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 한 사람이 미혹되어 있다면 목적지로 갈 수 있다. 그것은 미혹된 자가 적기 때문이다.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미혹되어 있다면 고생만 하지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다. 그것은 미혹된 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온 천하가 미혹되어 있으니, 내가 비록 가려는 방향이 있다 하더라도 갈 수가 없다. 그러니 슬프지 않은가. 위대한 음악은 천한 귀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절양이나 황과 같은 속된 음악을 들으면 좋아서 웃고 법석을 떤다. 그러므로 고상한 말도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는 멈추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극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속된 말들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두 갈래로 모두가 미혹되어 있어서 목적지로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처럼 지금은 온 천하가 미혹되어 있다. 내가 비록 갈 곳이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 곳에 도달할 수가 있겠는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억지를 쓰고 있는 것 또한 한 가지의 미혹이다. 그러므로 그대로 버려 두고 밀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밀지만 않는다면 그 누가 더불어 근심을 할 것인가? 문둥이는 밤중에 자기 자식을 낳고서 바로 불을 가져다 비추어보면서 초조히 그 애가 자기를 닮지 않았을까 두려워한다.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14]- 孝子不諛其親, 忠臣不諂其君, 臣子之盛也. 親之所言而然, 所行而善, 則世俗謂之不肖子. 君之所言而然, 所行而善, 則世俗謂之不肖臣. 而未知此其必然邪? 世俗之所謂然而然之.所謂善而善之, 則不謂之道諛之人也. 然則俗故嚴於親而尊於君邪? 謂己道人, 則勃然作色, 謂己諛人, 則?然作色. 而終身道人也, 終身諛人也, 合譬飾辭聚衆也, 是終始本末不相罪坐. 垂衣裳, 設采色, 動容貌, 以媚一世, 而不自謂道諛. 與夫人之爲徒, 通是非, 而不自謂衆人, 愚之至也. 知其愚者, 非大愚也. 知其惑者, 非大惑也. 大惑者, 終身不解. 大愚者, 終身不靈. 三人行而一人惑, 所適者猶可致也, 惑者少也. 二人惑則勞而不至, 惑者勝也. 而今也以天下惑, 予雖有祈嚮, 不可得也. 不亦悲乎! 大聲不入於里耳, 折楊皇?, 則?然而笑. 是故高言不止於衆人之心, 至言不出, 俗言勝也. 以二缶鐘惑, 而所適不得矣. 而今也以天下惑, 予雖有祈嚮, 其庸可得邪! 知其不可得而强之, 又一惑也, 故莫若釋之而不推. 不推, 誰其比憂? 려之人夜半生其子, 遽取火而視之, 汲汲然唯恐其似己也.
127` 사람은 본성대로 살아야 한다 (외편:12.천지,15) - 장자(외편) ; 제12편 천지[15]- 백년 묵은 나무를 쪼개어 제사 때 쓰는 술잔을 만들려면, 나무에 채색을 하고 무늬를 조각한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는 도랑에 던져버린다. 제사에 쓰고 남은 술잔을 도랑에 버려진 부스러기와 견주어 본다면 아름답고 추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본성을 잃었다는 데 있어서는 같은 것이다. 도척과 증삼, 사추는 의로움을 행하는데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본성을 잃은 것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본성을 잃게 하는 것으로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다섯 가지 빛깔은 눈을 어지럽혀 눈을 어둡게 만든다. 둘째, 다섯 가지 소리는 귀를 어지럽혀 귀를 잘 들리지 않게 만든다. 셋째, 다섯 가지 냄새는 코를 찔러 콧속을 메이게 만든다. 넷째, 다섯 가지 맛은 입안을 흐려놓아 입을 병나고 상하게 만든다. 다섯째,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마음을 어지럽혀 본성을 날아가 버리게 만든다. 이 다섯 가지는 모두 삶에 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양주와 묵자는 자기의 주장을 드러내놓고 스스로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제대로 된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되는 것에 제약이 가해지고 있는데도 제대로 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비둘기나 부엉이가 새장 속에 있는 것도 역시 제대로 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소리와 빛깔은 그의 마음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가죽관이나 비취새깃으로 장식한 관을 쓰고, 홀을 꽂고, 큰 띠와 긴 바지를 입는 것은 그의 외모를 제약하는 것이다. 마음은 울안에 가득 차서 막힌 듯하고, 외모는 여러 겹으로 줄에 묶인 듯하다. 눈은 감긴 듯하고, 몸은 줄로 묶여진 가운데 있는 듯한데도 스스로는 제대로 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인이 팔을 뒤로 돌려 묶이고 손가락에 깍지가 끼여 있거나, 호랑이와 표범이 우리 속에 갇혀 있다 하더라도 역시 제대로 된 것이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2篇 天地[15]- 百年之木, 破爲犧樽, 靑黃而文之, 其斷在溝中. 比犧樽於溝中之斷, 則美惡有間矣, 其於失性一也. ?與曾史, 行義有間矣, 然其失性均也. 且夫失性有五. 一曰五色亂目, 使目不明. 二曰五聲亂耳, 使耳不聰. 三曰五臭薰鼻, 困?中?. 四曰五味濁口, 使口?爽. 五曰趣舍滑心, 使性飛揚. 此五者, 皆生之害也. 而楊墨乃始離?自以爲得, 非吾所謂得也. 夫得者困, 可以爲得乎? 則鳩?之在於籠也, 亦可以爲得矣. 且夫趣舍聲色以柴其內, 皮弁鷸冠縉笏紳修以約其外, 內支盈於柴柵外重??, ??然在??之中而自以爲得, 則是罪人交臂歷指而虎豹在於囊檻, 亦可以爲得矣.
128` 고요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비춰진다 (외편:13.천도,1) - 장자(외편) ; 제13편 천도[1]- 하늘의 도는 움직이고 있어 멈추어 쌓이는 일이 없다. 그래서 만물을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제왕의 도 또한 움직이고 있어 멈추어 쌓이는 일이 없다. 그래서 온 천하가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의 도 또한 움직이고 있어 멈추어 쌓이는 일이 없다. 그래서 온 나라가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하늘에 대하여 밝고, 성인에 대하여 통달하고, 제왕의 덕에 대하여 완전히 트인 사람은 그 자신을 간수함에 있어서 자욱하며 고요하지 않은 적이 없다. 성인이 고요한 것은 고요한 것이 훌륭하기 때문에 고요한 것이 아니다. 만물에 그의 몸을 굽힐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고요한 것이다. 물이 고요하면 눈썹과 수염도 밝게 비추며, 완전한 수평이 되어 위대한 목수라 하더라도 그것을 법도로 삼는다. 물이 고요하여도 맑은데, 하물며 정신이나 성인의 마음이 고요하다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하늘과 땅을 비추는 거울이요, 만물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3篇 天道[1]- 天道運而无所積, 故萬物成. 帝道運而无所積, 故天下歸. 聖道運而无所積, 故海內服. 明於天, 通於聖, 六通四?於帝王之德者, 其自爲也, 昧然无不靜者矣. 聖人之靜也, 非曰靜也善, 故靜也. 萬物无足以?心者, 故靜也. 水靜則明燭鬚眉, 平中準, 大匠取法焉. 水靜猶明, 而況精神! 聖人之心靜乎! 天地之鑑也, 萬物之鏡也.
129` 고요히 마음을 비워야 올바른 삶을 누린다 (외편:13.천도,2) 불교` - 장자(외편) ; 제13편 천도[2]- 텅 비고 고요하며 적막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의 기준이며 도덕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제왕이나 성인은 그런 경지에 머문다. 거기에 머물면 텅 비게 되고, 텅 비면 모든 것이 차게 되고, 모든 것이 차면 이치가 생기게 된다. 텅 비게 되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움직이게 되고, 움직이면 제대로 되게 된다. 고요하면 곧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면 모든 것을 제각기 맡아 하고 그 책임을 지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즐겁게 되어 걱정이나 근심이 있을 수 없게 되어 생명이 길어지는 것이다. 텅 비고 고요하며 적막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만물의 근본인 것이다. 이것을 잘 알고 임금이 되었던 것이 요임금이 세상을 다스릴 때였다. 이것을 잘 알고 임금을 섬겼던 것이 순임금이 신하노릇을 할 때였다. 이런 방법으로 윗자리에 처하는 것이 제왕이나 천자의 덕이다. 이런 방법으로 아랫자리에 처하는 것이 현묘한 성인과 왕위에 오르지 않고 왕도를 행한 이의 도이다. 이런 방법으로 물러나 살면서 한가하게 노닐면 강이나 바다나 산림에 숨어사는 선비들이 따를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나아가 세상을 다스린다면 공로가 커지고 이름이 드러나며 천하가 통일될 것이다. 고요히 있으면 성인이 되고, 움직이면 임금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경받고, 소박한 채로 있어도 천하에 그와 아름다움을 다툴 자가 없을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3篇 天道[2]- 夫虛靜恬淡寂漠无爲者, 天地之本, 而道德之至, 故帝王聖人休焉. 休則虛, 虛則實, 實者備矣. 虛則靜, 靜則動, 動則得矣. 靜則无爲, 无爲也則任事者責矣. 无爲則兪兪, 兪兪者憂患不能處, 年壽長矣. 夫虛靜恬淡寂漠无爲者, 萬物之本也. 明此以南鄕, 堯之爲君也. 明此以北面, 舜之爲臣也. 以此處上, 帝王天子之德也. 以此處下, 玄聖素王之道也. 以此退居而 閒游, 則江海山林之士服. 以此進爲而撫世, 則功大名顯而天下一也. 靜而聖, 動而王, 无爲也而尊, 樸素而天下莫能與之爭美.
130` 천락이란 무엇인가 (외편:13.천도,3) 제목이 다름 마음을 비우고 고요한 덕을 길러라 - 장자(외편) ; 제13편 천도[3]- 하늘과 땅의 덕을 분명히 체득한 것을 만물의 위대한 근본이요. 위대한 조종(祖宗)이라 부르며, 이것이 바로 하늘과 조화되는 것이다. 온 천하를 고르게 다스리고 사람들이 화합하게 하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과 화합하는 것을 인락(人樂)이라 부르고, 하늘과 조화되는 것을 천락(天樂)이라 부른다. 장자가 말했다. “도의 조화는 만물을 부수어 버리고도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 되지 않고, 은택이 만세에 미치지만 어짊이 되지 않고, 상고시대부터 살고 있으면서도 장수라 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을 위와 아래에 있게 하고, 만물의 형상을 조각하여 놓고도 교묘하다 하지 않는다. 이것을 두고 천락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락을 아는 사람의 삶은 천체의 운행과 같고, 그의 죽음은 물건의 변화와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고요히 있을 때에는 음(陰)과 같은 덕을 지니게 되고, 움직일 때에는 양(陽)과 같은 율동을 지닌다. 그러므로 천락을 아는 사람은 하늘에 대한 원망이 없고, 사람에 대한 비난이 없고, 물건에 의한 재난이 없고, 귀신에 의한 책망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움직이는 것은 하늘과 같고 그가 고요히 있는 것은 땅과 같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안정되어 천하를 다스린다. 따라서 귀신도 그에게 화를 내리지 못하고, 그의 영혼은 지치는 일이 없다. 한결같이 마음이 안정되어 있어서 만물이 복종하게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텅 비고 고요함을 가지고 하늘과 땅을 미루어 이해하고 만물의 이치에 통달함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을 천락이라 말하는 것이다. 천락이라는 것은 성인의 마음으로 천하를 양육하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3篇 天道[3]- 夫明白於天地之德者, 此之謂大本大宗, 與天和者也. 所以均調天下, 與人和者也. 與人和者, 謂之人樂. 與天和者, 謂之天樂. 莊子曰:「吾師乎! 吾師乎! (?+?)萬物而不爲戾, 澤及萬世而不爲仁, 長於上古而不爲壽, 覆載天地刻雕衆形而不爲巧, 此之爲天樂. 故曰:‘知天樂者, 其生也天行, 其死也物化. 靜而與陰同德, 動而與陽同波.’ 故知天樂者, 无天怨, 无人非, 无物累, 无鬼責. 故曰:‘其動也天, 其靜也地, 一心定而天地正. 其魄不崇, 其魂不疲, 一心定而萬物服.’ 言以虛靜推於天地, 通於萬物, 此之謂天樂. 天樂者, 聖人之心, 以畜天下也.」
131` 임금은 무위 백성은 유위? (외편:13.천도,4) - 장자(외편) ; 제13편 천도[4]- 제왕의 덕은 하늘과 땅을 조상으로 삼고 도와 덕을 주인으로 하며, 무위로서 법도로 삼는다. 무위란 것은 천하를 다스리는데 쓰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유위라 하는 것은 천하를 위해 쓰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은 무위라는 것을 귀중히 여겼었다. 임금이 무위이고 백성 또한 무위라면 그것은 백성들과 임금이 같은 덕을 지닌 것이다. 백성들이 임금과 같은 덕을 지니게 되면 신하노릇을 하지 않는 것이 된다. 백성들이 유위한데 임금도 역시 유위하다면 이것은 백성과 임금이 같은 도를 지키는 것이 된다. 임금과 백성이 같은 도를 지키면 임금노릇을 하지 않는 것이 된다. 임금은 반드시 무위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백성들은 반드시 유위로써 천하를 위해 쓰이는 것,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도인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3篇 天道[4]- 夫 帝王之德, 以天地爲宗, 以道德爲主, 以无爲爲常. 无爲也, 則用天下而有餘. 有爲也, 則爲天下用而不足. 故古之人貴夫无爲也. 上无爲也, 下亦无爲也, 是下與上同德, 下與上同德則不臣. 下有爲也, 上亦有爲也, 是上與下同德, 上與下同德則不主. 上必无爲而用天下, 下必有爲爲天下用, 此不易之道也.
132` 무위는 근본이고 나머지는 말단이다 (외편:13.천도,5) - 장자(외편) ; 제13편 천도[5]- 옛날에 천하를 다스리던 임금은 지혜가 비록 하늘과 땅을 덮을 만큼 넓다 해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의 말재주가 비록 만물을 두루 변호할 만하다 해도 스스로 말하지는 않았다. 그의 능력이 비록 온 세상에서 으뜸이라 해도 스스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하 늘이 생산하지 않아도 만물은 변화하고, 땅이 생장시키지 않아도 만물은 자라나며, 제왕은 무위하면서도 천하는 다스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보다 신묘한 것은 없고, 땅보다 더 풍부한 것은 없고, 제왕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왕의 덕은 하늘과 땅의 짝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과 땅을 타고서 만물을 달리게 하며 사람들을 부려쓰는 도인 것이다. 근본은 위에 있고 말단은 아래에 있다. 요점은 임금에게 달려 있고, 자세한 것은 신하들에게 달려 있다. 3 군과 여러 가지 무기의 사용은 덕의 말단적인 일이다. 상과 벌과 이익과 손해와 다섯 가지 형벌에 관한 법은 교화의 말단적인 일이다. 예의와 제도와 형식과 명칭 및 자세한 비교는 다스림의 말단적인 일이다. 종과 북과 소리 및 새의 깃과 소의 꼬리를 들고 추는 춤은 음악의 말단적인 것들이다. 곡하고 울면서 여러 가지 상복을 입는 것은 슬픔의 말단적인 것이다. 이 다섯 가지 말단적인 것은 반드시 정신의 작용이나 마음과 지혜의 활동이 있은 뒤에야 그에 따라 써야 하는 것이다. 말단적인 학문은 옛사람들도 지니고 있었으나 그것을 앞세우지는 않았다. - 莊子(外篇) ; 第13篇 天道[5]- 故古之王天下者, 知雖落天地, 不自慮也.辯雖彫萬物, 不自說也.能雖窮海內, 不自爲也. 天不産而萬物化, 地不長而萬物育, 帝王无爲而天下功. 故曰莫信於天, 莫富於地, 莫大於帝王. 故曰帝王之德配天地. 此乘天地, 馳萬物, 而用人?之道也. 本在於上, 末在於下. 要在於主, 詳在於臣. 三軍五兵之運, 德之末也. 賞罰利害, 五刑之?, 敎之末也. 禮法度數, 形名比詳, 治之末也.鐘鼓之音, 羽?之容, 樂之末也. 哭泣衰?, 隆殺之服, 哀之末也. 此五末者, 須精神之運, 心術之動, 然後從之者也. 末學者, 古人有之, 而非所以先也.
133` 다스림의 극치는 태평이다 (외편:13.천도,6) - 장자(외편) ; 제13편 천도[6]- 임금이 앞서면 신하가 따라간다. 아버지가 앞서면 자식이 따라간다. 형이 앞서면 아우가 따라간다. 어른이 앞서면 어린이가 따라간다. 남자가 앞서면 여자가 따라간다. 남편이 앞서면 부인이 따라간다. 모 든 높고 낮은 것과 앞서고 뒤서는 것은 하늘과 땅의 운행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그 모양을 본뜬 것이다. 하늘이 높고 땅이 낮은 것은 천지의 신명의 위치인 것이다. 봄과 여름이 앞서고 가을과 겨울이 뒤따르는 것은 사계절의 질서인 것이다. 만물이 변화하는데 있어서 펴지고 굽어지는 모양의 차별이 있고, 성해지고 쇠해지는 단계가 있는데 그것이 변화의 양상인 것이다. 하늘과 땅은 지극히 신령스러운 것인데도 높고 낮고 앞서고 뒤서는 순서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의 도에 없을 수 있겠는가? 종묘에서는 가까운 친척이 받들어지고, 조정에서는 지위 높은 사람이 받들어지고, 마을에서는 나이 많은 이가 받들어지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현명한 사람이 받들어지는데 이것이 위대한 도의 질서인 것이다. 도를 얘기하면서도 그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은 참된 도가 못되는 것이다. 도를 얘기하면서도 참된 도가 못된다면 어디에서 참된 도를 가져오겠는가? 그 러므로 옛날에 위대한 도를 밝히던 사람들은 먼저 하늘의 도를 밝히고 도와 덕을 그 다음에 밝혔다. 도와 덕이 밝혀진 뒤에는 어짊과 의로움이 그 뒤를 따랐다. 어짊과 의로움이 밝혀진 뒤에는 분수가 그 다음에 따랐다. 자기 분수가 밝혀진 뒤에는 형체와 명칭이 다음에 따랐다. 형체와 명칭이 밝혀진 뒤에는 일에 따른 책임이 그 다음에 따랐다. 일에 대한 책임이 밝혀진 뒤에는 살피고 생각하는 일이 그 다음에 따랐다. 살피고 생각하는 일이 밝혀진 뒤에는 옳고 그른 판단이 그 다음에 따랐다. 옳고 그른 판단이 밝혀진 뒤에는 상과 벌이 그 다음에 따랐다. 상과 벌이 밝혀진 뒤에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사람이 적절한 위치에 처하게 되고,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들이 제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어질고 현명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모두가 자기 본성대로 살아가고, 반드시 자기 능력에 따른 할 일을 지키고, 반드시 형식과 내용이 들어맞았다. 이런 방법으로 임금을 섬겼고, 이런 방법으로 백성을 양육했다. 이런 방법으로 만물을 다스렸고, 이런 방법으로 자신을 닦았다. 지혜와 계책을 쓰지 않아도 반드시 천연으로 되돌아 갔다. 이것을 두고 태평이라 말하는 것이니, 다스림의 극치인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3篇 天道[6]- 君先而臣從, 父先而子從, 兄先而弟從, 長先而小從, 男先而女從, 夫先而婦從. 夫尊卑先後, 天地之行也, 故聖人聚象焉. 天尊地卑, 神明之位也. 春夏先, 秋冬後, 四時之序也. 萬物化作, 萌區有狀, 盛衰之殺, 變化之流也. 夫天地至神, 而有尊卑先後之序, 而況人道乎. 宗廟尙親, 朝廷尙尊, 鄕黨尙齒, 行事尙賢, 大道之序也. 語道而非其序者, 非其道也. 語道而非其道者, 安取道. 是 故古之明大道者, 先明天而道德次之, 道德已明而仁義次之, 仁義已明而分守次之, 分守已明而形名次之, 形名已明而因任次之, 因任已明而原省次之, 原省已明而是非次之, 是非已明而賞罰次之, 賞罰已明而愚知處宜, 貴賤履位. 仁賢不肖襲情, 必分其能, 必由其名. 以此事上, 以此畜下, 以此治物, 以此修身, 知謀不用, 必歸其天, 此之謂大平, 治之至也.
134` 형체와 명칭, 내용과 형식은 지엽적인 것이다 (외편:13.천도,7) - 장자(외편) ; 제13편 천도[7]- 옛글에「형체가 있으면 명칭이 있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형체와 명칭은 옛사람들에게도 있었지만 앞세웠던 것은 아니었다. 옛날의 위대한 도를 얘기하던 사람들은 다섯 번째로 형체와 명칭을 들었었고, 아홉 번째로 상과 벌을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형체와 명칭을 얘기해도 그 근본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상과 벌을 얘기한다면 그 시작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 를 거꾸로 얘기하고, 도에 어긋나게 논하는 사람은 남에게 다스림을 받아야할 사람이니, 어찌 남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갑자기 형체와 명칭이나 상과 벌을 얘기한다면 정치의 수단에 대해서는 알 수 있겠지만 정치의 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천하에 그가 쓰여질 수는 있겠지만 그를 천하를 다스리는 데 쓰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이런 사람을 두고 변사로서 한가지 재주만 있는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다. 예의 제도와 형체와 명분 및 자세히 살펴 비교하는 일은 옛사람들에게도 있었다. 이것은 아래 백성들이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지, 임금이 백성들을 양육하는 방법은 아닌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3篇 天道[7]- 故書曰:有形有名. 形名者, 古人有之, 而非所以先也. 古之語大道者, 五變而形名可擧, 九變而賞罰可言也. 驟而語形名, 不知其本也. 驟而語賞罰, 不知其始也. 倒道而言, ?道而說者, 人之所治也, 安能治人. 驟而語形名賞罰, 此有知治之具, 非知治之道. 可用於天下, 不足以用天下, 此之謂辯士, 一曲之人也. 禮法數度, 形名比詳, 古人有之, 此下之所以事上, 非上之所以畜下也.
135` 임금은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외편:13.천도,8) - 장자(외편) ; 제13편 천도[8]- 순이 요임금에게 물었다. “천자로서 마음을 어떤 곳에 써야 합니까?” 요임금이 말했다. “나는 의지할 곳 없는 백성들에게 오만하지 않고, 궁한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죽은 사람을 가슴 아파하고, 어린 고아들은 돌보아주고, 과부들은 가엾게 여겨주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마음을 쓴 일들입니다.” 순이 말했다. “훌륭하기는 하지만 위대하지는 못하십니다.” 요임금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순이 말했다. “하늘의 덕이 있으면 나라가 편안해지고, 해와 달이 제대로 비추면 사철이 올바르게 바뀝니다. 낮과 밤의 법도가 있고 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됩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나는 사물에 집착되어 번거롭게 했습니다. 당신의 덕은 하늘과 합치되고, 내 덕은 사람에게 합치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옛날부터 위대하다고 높인 것이며, 황제와 요임금, 순임금이 다 같이 훌륭히 여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의 천하를 다스리던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따를 뿐이었다. - 莊子(外篇) ; 第13篇 天道[8]- 昔者舜問於堯曰:「天王之用心何如?」 堯曰:「吾不敖無告, 不廢窮民, 苦死者, 嘉孺子而哀婦人. 此吾所以用心已.」 舜曰:「美則美矣, 而未大也.」 堯曰:「然則何如?」 舜曰:「天德而土寧日月照而四時行. 若晝夜之有經. 雲行而雨施矣.」 堯曰:「膠膠擾擾乎! 子, 天之合也. 我, 人之合也.」 夫天地者, 古之所大也, 而皇帝堯舜之所共美也. 故古之王天下者, 奚爲哉? 天地而已矣.
136` 어짊과 의로움도 본성을 벗어난 것이다 (외편:13.천도,9) - 장자(외편) ; 제13편 천도[9]- 공자가 서쪽 주나라 왕실 서고에 책을 넣어두려 했다. 자로가 그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제가 듣건대 주나라의 서고를 관리하던 노담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그만두고 돌아가 집에 살고 있다 합니다. 선생님께서 책을 넣어 두시려면 가셔서 부탁을 해보십시오.” 공자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다.” 그리고 가서 노담을 만났으나 청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는 십이경을 펼쳐 놓고서 설명을 했다. 노담은 그의 설명에 동의하면서 말했다. “너무 장황합니다. 그 요점만을 들려주십시오.” 공자가 말했다. “요점은 어짊과 의로움입니다.” 노담이 말했다. “어짊과 의로움은 사람의 본성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군자는 어짊이 아니면 이룩되지 않고, 의로움이 아니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어짊과 의로움은 참된 사람의 본질입니다. 그밖에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노담이 말했다. “무엇을 어짊과 의로움이라 하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마음속은 부드럽고 사사로움이 없이 모두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어짊과 의로움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노담이 말했다. “뒤 에 하신 말씀은 더욱 위험합니다. 모두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사로움이 없다는 것이 바로 사사로움인 것입니다. 선생은 온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생육을 잃지 않도록 하고자 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늘과 땅에도 본래부터 법도가 있고, 해와 달에도 본래부터 광명이 있고, 별과 성좌에도 본래부터 배열이 있고, 새와 짐승들에게도 본래부터 무리가 있고, 나무에게는 본래부터 서서 자라는 본성이 있습니다. 선생도 그런 자연의 덕을 본받아 행하시고, 자연의 도를 따라 나아간다면 이미 목적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어짊과 의로움을 애써 들고 나와 북을 치고 다니면서 잃어버린 자식을 찾듯 하십니까? 선생은 사람들의 본성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3篇 天道[9]- 孔子西藏書於周室. 子路謀曰:「由聞周之徵藏史有老聃者, 免而歸居, 夫子欲藏書, 則試往因焉.」 孔子曰:「善.」 往見老聃, 而老聃不許, 於是?六經以說. 老聃中其說. 曰:「大?. 願聞其要.」 孔子曰:「要在仁義.」 老聃曰:「請問, 仁義, 人之性邪?」 孔子曰:「然. 君子不仁則不成, 不義則不生. 仁義, 眞人之性也, 又將奚爲矣?」 老聃曰:「請問, 何謂仁義?」 孔子曰:「中心物愷, 兼愛无私, 此仁義之情也.」 老聃曰:「意, 幾乎後言! 夫兼愛, 不亦迂乎! 无私焉, 乃私也. 夫子若欲使天下无失其牧乎? 則天地固有常矣, 日月固有明矣, 星辰固有列矣, 禽獸固有群矣, 樹木固有立矣. 夫子亦放德而行, 循道而趨, 已至矣. 又何偈偈乎揭仁義, 若擊鼓而求亡子焉? 意, 夫子亂人之性也!」
137`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가치 없는 것이다 (외편:13.천도,10) - 장자(외편) ; 제13편 천도[10]- 사성기가 노자를 찾아가서 물었다. “저는 선생님이 성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뵙고자 했습니다. 백 날을 여관에서 묵고, 발에는 물집이 겹으로 생겼어도 오는 길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뵙고 보니 성인이 아닌 듯합니다. 쥐 굴 앞에도 남은 곡식이 있는 법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을 버려 두고 길러주지 않는 것은 어짊이 아닙니다. 날것이나 삶은 것이 눈앞에 무진장인데도 한없이 긁어모아 쌓고만 있습니다.” 노자는 모르는 듯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성기가 다음날 다시 찾아와서 말했다. “어제는 선생님을 공격했었는데 오늘은 마음이 달라졌으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교묘한 지혜를 지닌 신성한 사람의 경지를 나는 스스로 초탈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제 당신이 나를 소라고 불렀다면 나는 소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를 말이라고 불렀다면 나는 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진실로 그런 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명칭을 붙여주는데 받지 않는다면 거듭 그 재액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의 행동은 언제나 같은 행위입니다. 나는 어떤 행위를 위해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사성기는 옆으로 비켜서면서 노자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신을 신은 채로 방안으로 들어가서는 몸을 닦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물었다. 노자는 말했다. “당신의 얼굴은 돋보이고, 눈은 번들번들하며, 이마는 넓고, 입은 재빠르게 움직이며, 몸집은 훤칠한데, 뛰려는 발을 묶어 놓은 듯합니다. 행동은 의젓하고 움직임은 쇠뇌를 퉁긴 것처럼 빠르고, 일을 잘 살펴 자세히 알며, 지혜 있고 교묘하며, 오만한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성실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변경에 사는 도둑질하는 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 莊子(外篇) ; 第13篇 天道[10]- 士成綺見老子而問曰:「吾聞夫子聖人也, 吾固不辭遠道而來願見, 百舍重?而不敢息. 今吾觀子, 非聖人也. 鼠壤有餘蔬, 而棄妹之者, 不仁也, 生熟不盡於前, 而積斂无崖.」 勞資漠然不應. 士成綺明日復見, 曰:「昔者, 吾有刺於子, 今吾心正却矣, 何故也?」 老子曰:「夫巧知神聖之人, 吾自以爲脫焉. 昔者子呼我牛也而謂之牛, 呼我馬也而謂之馬. 苟有其實, 人與之名而弗受, 再受其殃. 吾服也恒服, 吾非以服有服.」 士成綺雁行避影, 履行遂進而問:.「修身若何?」 老子曰:「而容崖然, 而目衝然, 而??然, 而口?然, 而狀義然, 似繫馬而止也. 動而持, 發也機, 察而審, 知巧而覩於泰, 凡以爲不信. 邊竟有人焉, 其名爲竊.」
138` 도를 체득한 사람이 지극한 사람이다 (외편:13.천도,11) - 장자(외편) ; 제13편 천도[11]- 노자가 말했다. “도는 크기로는 끝이 없고, 작기로는 없는 곳이 없어 세상 만물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 넓이는 한없이 넓어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그 깊이는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이다. 덕을 어짊과 의로움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신의 말초적인 일이다. 그런 것이야 지극한 사람이 아니면 그 누가 결정지을 수 있겠는가? 지극한 사람이 세상을 다스린다면 역시 위대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런 일 때문에 자기에게 장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온 천하가 권세를 두고 다툰다 하더라도 그는 거기에 끼여들지 않는다. 도란 의지하는 것이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익을 따라 뒤쫓지 않는다. 만물의 참됨을 추구하며 그의 근본을 잘 지킨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을 도외시하고 만물을 잊으면 그의 정신은 곤경에 처하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도에 통하고 덕에 합해지며 어짊과 의로움을 물리치고 예의와 음악을 멀리한다. 그래서 지극한 사람의 마음은 안정됨이 있게 되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3篇 天道[11]- 夫子曰:「夫道, 於大不終, 於小不遺, 故萬物備, 廣廣乎其无不容也, 淵淵乎其不可測也. 形德仁義, 神之末也, 非至人孰能定之! 夫至人有世, 不亦大乎! 而不足以爲之累. 天下奮棅而不與之偕, 審乎無假而不與利遷, 極物之眞, 能守其本, 故外天地, 遺萬物, 而神未嘗有所困也. 通乎道, 合乎德, 退仁義, 賓禮樂, 至人之心有所定矣.」
139` 말과 글로 도를 표현할 수는 없다 (외편:13.천도,12) 불교` 선종` 불립문자` - 장자(외편) ; 제13편 천도[12]- 도를 배움에 있어서 세상에서 귀중히 여기는 것은 글이다. 글이란 말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 귀중한 것이 된다. 말이 귀중한 것은 뜻이 있기 때문인데, 뜻이란 추구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뜻 이 추구하는 것은 말로는 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에서는 그 때문에 말을 귀중히 여기며 글을 전한다. 세상에서는 비록 그것들을 귀중히 여기지만 귀중히 여길 것이 못된다. 세상에서 귀중히 여기는 것은 귀중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형체와 색깔이다.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명칭과 소리이다. 세상사람들은 그 형체와 색깔과 명칭과 소리로 그것들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형체와 색깔과 명칭과 소리로는 절대로 그것들의 진실을 파악할 수 없다. 거기에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그것들을 알 수 있겠는가? - 莊子(外篇) ; 第13篇 天道[12]- 世 之所貴道者書也, 書不過語, 語有貴也. 語之所貴者意也, 意有所隨. 意之所隨者, 不可以言傳也, 而世因貴言傳書. 世雖貴之, 我猶不足貴也, 爲其貴非其貴也. 故視而可見者, 形與色也. 聽而可聞者, 名與聲也. 悲夫, 世人以形色名聲爲足以得彼之情! 夫形色名聲果不足以得彼之情, 則知者不言, 言者不知, 而世豈識之哉!
140` 글이란 옛사람의 찌꺼기이다 (외편:13.천도,13) 장자는 왜 글을 썼는가? 문자` 글` - 장자(외편) ; 제13편 천도[13]- 제나라 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뜰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던 목수가 망치와 끌을 놓고 올라와서 환공에게 물었다. “임금님께서 읽고 계신 것에는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성인의 말씀이시다.” “성인은 살아 계신 분입니까?” “이미 돌아가신 분이다.” “그렇다면 임금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이겠습니다.” 환공이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에 대해 수레바퀴나 만드는 자가 어찌 논의하느냐? 올바른 근거가 있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죽여버리겠다.” 목수는 말했다. “저는 제가 하는 일로서 그 일도 관찰한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엉성히 깎으면 헐렁해져 견고하게 되지 않고, 꼼꼼히 깎으면 빠듯해져 서로 들어맞지 않습니다. 엉성하지도 않고 꼼꼼하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의 감각에 의하여 마음의 호응으로서 결정되는 것이지 입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법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저는 그것을 저의 아들에게 가르쳐 줄 수가 없고, 저의 아들은 그것을 저에게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이 되도록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과 그의 전할 수 없는 정신은 함께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임금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3篇 天道[13]- 桓公讀書於堂上, 輪扁?輪於堂下, 釋椎鑿而上, 問桓公曰:「敢問, 公之所讀者何言邪?」 公曰:「聖人之言也.」 曰:「聖人在乎?」 公曰:「已死矣.」 曰:「然則君之所讀者, 故人之糟魄已夫!」 桓公曰:「寡人讀書, 輪人安得議乎!有說則可, 无說則死.」 輪扁曰:「臣也以臣之事觀之. ?輪, 徐則苦而不入. 不徐不疾, 得之於手而應於心, 口不能言, 有數存焉於其間. 臣不能以喩臣之子, 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 是以行年七十而老?輪. 古之人與其不可傳也死矣. 然則君之所讀者, 故人之糟魄已夫!」
141` 상황이란 (외편:14.천운,1) - 장자(외편) ; 제14편 천운[1]- “하늘은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땅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인가? 해와 달은 서로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는 것인가? 누가 이것들을 주관하는가? 누가 이것들을 질서 있게 유지하는가? 누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이것들을 밀어 그렇게 되게 하는가? 땅은 틀로 묶여 있어 그렇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인가? 하늘은 움직이며 돌아서 스스로 멈출 수도 없게 되어 있는 것인가? 구름이 비를 오게 하는가? 비가 구름을 만드는가? 누가 구름이 일고 비를 내리게 하는가? 누가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 재미로 그렇게 추진하는가? 바람은 북쪽에서 생겨나서 서쪽으로 불었다 동쪽으로 불었다 하기도 하며, 위쪽으로 불면서 빙빙 돌기도 한다. 누가 바람을 불고 마시고 하는 것일까? 누가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 바람을 부채질하는가? 어째서 그런지 알고 싶다.” 무함이 말했다. “내가 말해드리지요. 하늘에는 육극(六極)과 오상(五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왕이 이것을 따르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이것을 거스르면 흉해지는 것입니다. 구주(九疇)와 낙서(洛書)에 기록된 것을 보면, 정치가 완성되고 덕이 갖추어지면 온 세상을 햇볕처럼 비추게 되어, 세상사람들은 그 임금을 떠받들게 되는데, 이런 분을 상황(上皇)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4篇 天運[1]- 「天其運乎? 地其處乎? 日月其爭於所乎? 孰主張是? 孰維綱是? 孰居无事而推行是? 意者其有機緘而不得已邪? 意者其運轉而不能自止邪? 雲者爲雨乎? 雨者爲雲乎? 孰隆施是? 孰居无事淫樂而勸是? 風起北方, 一西一東, 在上彷徨, 孰噓吸是? 孰居无事而披拂是? 敢問何故?」 巫咸?曰:「來! 吾語女. 天有六極五常, 帝王順之則治, 逆之則凶. 九洛之事, 治成德備, 監照下土, 天下戴之, 此謂上皇.」
142` 지극한 어짊에는 친함이 없다 (외편:14.천운,2) 인정` 정` - 장자(외편) ; 제14편 천운[2]- 상나라 태재인 탕이 장자에게 어짊에 대해서 물었다. 장자가 말했다.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것이 어짊입니다.” 탕이 물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아비와 새끼가 서로 친한데 어찌 어질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탕이 말했다. “지극한 어짊은 어떤 것입니까?” 장자가 말했다. “지극한 어짊에는 친함이 없습니다.” 탕이 말했다. “제가 듣기로는 친함이 없다면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효성스러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지극한 어짊은 효성스럽지 않은 것이라 해도 되겠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극한 어짊이란 고상한 것이어서 효성으로 그것을 말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것이 효성보다 뛰어난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효성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남쪽으로 가는 사람이 영땅에 이르러 북쪽을 바라보면 명산(冥山)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째서이겠습니까? 멀리 떠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공경함으로 효도를 하는 것은 쉽지만 사랑으로 효도를 하기는 어렵다. 어버이를 잊는 것은 쉽지만 어버이로 하여금 자기를 잊게 하기는 어렵다. 어버이로 하여금 자기를 잊게 하기는 쉽지만 천하를 모두 잊기는 어렵다. 천하를 모두 잊는 것은 쉽지만 천하로 하여금 나를 모두 잊게 하기는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덕은 요임금과 순임금도 잊고 그들이 한 것과 같은 일도 하지 않고, 이익과 은택이 오래도록 베풀어지게 하는데도 천하에서는 그를 알아주지 않는데, 어찌 크게 한숨지으며 어짊과 효성만을 얘기하겠습니까? 효도와 공경과 어짊과 의로움이나 충성과 신용과 정절과 청렴 같은 것은 모두가 스스로 힘씀으로써 자기의 덕을 부려먹는 것들이어서 존귀한 것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존귀한 사람은 나라의 벼슬도 버리고, 지극한 부자는 나라의 재물도 물리치고, 지극한 소망을 얻은 사람은 명예도 물리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4篇 天運[2]- 商大宰蕩問仁於莊子. 莊子曰:「虎狼, 仁也.」 曰:「何謂也?」 莊子曰:「父子相親, 何爲不仁?」 曰:「請問至仁.」 莊子曰:「至仁無親.」 大宰曰:「蕩聞之, 無親則不愛, 不愛則不孝. 謂至仁不孝, 可乎?」 莊子曰:「不然. 夫至仁尙矣, 孝固不足以言之. 此非過孝之言也, 不及孝之言也. 夫南行者至於?, 北面而不見冥山, 是何也? 則去之遠也. 故曰:以敬孝易, 以愛孝難. 以愛孝易, 以忘親難. 忘親易, 使親忘我難. 使親忘我易, 兼忘天下難. 兼忘天下易, 使天下兼忘我難. 夫德遺堯舜而不爲也, 利澤施於萬世, 天下莫知也, 豈直太息而言仁孝乎哉! 夫孝悌仁義, 忠信貞廉, 此皆自勉以役其德者也, 不足多也. 故曰, 至貴, 國爵竝焉. 至富, 國財竝焉. 至顯, 名譽竝焉. 是以道不?.」
143` 어리석기 때문에 도를 터득하게 된다 (외편:14.천운,3) - 장자(외편) ; 제14편 천운[3]- 북문성이 황제에게 물었다. “임금님께서는 함지의 음악을 동정의 들에서 연주하셨는데, 저는 처음 듣고는 두려움을 느꼈고, 다시 듣고는 권태를 느꼈고, 마지막으로 듣고서는 미혹되어 버렸습니다. 밋밋하고 멍멍해서 스스로를 어쩔 수도 없었습니다.” 황제가 말했다. “당신에게는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나는 음악을 연주함에는 사람을 따르고, 악기를 연주함에는 하늘을 따르고, 음악을 진행시킴에는 예의를 따르고, 음악을 조화시킴에는 하늘의 지극한 도를 따릅니다. 이른바 지극한 음악이라는 것은 먼저 사람의 일로써 거기에 호응하고, 하늘의 도리로써 거기에 따르고, 다섯 가지 덕으로써 그것을 진행시키며, 자연으로써 거기에 호응케 하는 것입니다. 그런 뒤에야 사계절을 고르게 다스리고 만물을 크게 조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계절이 바뀌고 만물이 바뀌어 생겨나듯이, 한번 성했다 한번 쇠했다 하면서 문무로써 조리 있게 다스리고, 한번은 맑게 한번은 흐리게 음양으로 조화시켜 그 소리가 널리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겨 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 천둥소리가 그들을 놀라게 하듯이 나는 자연을 따릅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꼬리가 없고, 그 시작에는 머리가 없습니다. 한번은 죽었다 한번은 살았다 하며, 한 번은 넘어졌다 한 번은 일어나듯이 하며 연주를 합니다. 그 변화는 무궁해서 조금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그래서 두려웠을 것입니다. 나는 또한 음양의 조화로써 그것을 연주하고, 해와 달의 밝음으로써 그것을 밝힙니다. 그래서 그 소리는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며, 부드럽기도 하고 억세기도 한 것입니다. 변화는 한결같이 가지런하여 옛 법도만을 위주로 하지는 않습니다. 골짜기에 있어서는 골짜기에 가득 차고, 굴속에 있어서는 굴속에 가득 찹니다. 마음의 빈틈을 막아주고 정신을 지켜주며 물건에 따라 양을 변화시킵니다. 그 소리는 널리 진동하고, 그 이름은 높고 맑음이라 할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은 그 그윽함을 지키고, 해와 달과 별들은 그 법도에 따라 운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언제나 궁극에 머물러 있게 하고, 정지 없는 상태로 흘러가게 합니다. 당신이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려 해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무 심히 사방으로 트인 길에 서서 금에 몸을 기대고 읊조려 보십시오. 눈과 지혜는 보고자 하는 데서 막히게 될 것이며, 능력은 뒤쫓으려 하는 데서 다하게 될 것입니다. 나도 이미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형체가 공허한 세계로 채워지며 마음이 부드럽게 되었기 때문에 권태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나는 또한 음악을 연주함에 있어서 권태로움이 없는 소리를 사용하였고, 그것을 조화시킴에 있어서 자연의 생명으로써 했습니다. 그러므로 뒤섞여 한꺼번에 생겨나는 듯 했고, 음악이 고조되자 아무런 형체도 없는 듯이 되었습니다. 널리 진동하여 퍼지며 멈추지 아니하고 흐릿해져서 소리가 없는 듯이 되었습니다. 방향도 없는 곳으로 움직이고, 아득한 곳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죽은 것이라 생각되기도 하고, 때로는 살아있는 것이라 생각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혹은 열매가 열린 듯이 생각되기도 하고 혹은 꽃만 핀 듯이 생각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움직이며 흐르고 흩어지며 옮겨가서 일정한 소리를 위주로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는 그것을 의심하고 성인들에게 물어보아야 하게 되었습니다.
성인이란 진실에 통달하고 운명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기틀은 움직여지지 않아도 오관(五官)은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하늘의 음악이라 하는데, 말은 하지 않아도 마음은 기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염씨가 기리어 말했습니다. 「그것을 들어보아도 그 소리는 들리지 않고, 그것을 보아도 그 형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과 땅에 가득 차고 천지사방을 포용한다」 당신이 그것을 들으려해도 귀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니, 그래서 미혹되었던 것입니다. 음악이라는 것은 두려움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두려움 때문에 재난을 당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그 다음에는 권태로움으로써 그것을 계속합니다. 권태롭기 때문에 모든 의식이 없어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미혹됨으로써 음악을 끝내는 것이니, 미혹되기 때문에 어리석은 듯 모든 것을 잊습니다. 어리석기 때문에 도를 터득하게 됩니다. 도를 터득하면 모든 것을 거기에 싣고서 도와 더불어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4篇 天運[3]- 北門成問於皇帝曰:「帝張咸池之樂於洞庭之野, 吾始聞之懼, 復聞之怠, 卒聞之而惑. 蕩蕩??, 乃不自得.」 帝曰:「汝殆其然哉! 吾奏之以人, 徵之以天, 行之以禮義, 建之以太淸. 四時迭起, 萬物循生. 一盛一衰, 文武倫經. 一淸一濁, 陰陽調和, 流光其聲. 蟄蟲始作, 吾驚之以雷霆. 其卒无尾, 其始无首. 一死一生, 一?一起. 所常无窮, 而一不可待. 汝故懼也. 「吾又奏之以陰陽之和, 燭之以日月之明. 其聲能短能長, 能柔能剛, 變化齊一, 不主故常. 在谷滿谷, 在?滿?. 塗却守神, 以物爲量. 其聲揮綽, 其名高明, 是故鬼神守其幽, 日月星辰行其紀. 吾止之於有窮, 流之於无止. 子欲慮之而不能知也, 望之而不能見也, 遂之而不能及也. ?然立於四虛之道, 倚於槁梧而吟. 心窮乎所欲知, 目窮乎所欲見, 力屈乎所欲逐, 吾旣不及已夫! 形充空虛, 乃至委蛇. 汝委蛇, 故怠. 「吾又奏之以无怠之聲, 調之以自然之命, 故若混逐叢生, 林樂而无形. 布揮而不曳, 幽昏而无聲. 動於无方居於窈冥. 或謂之死, 或謂之生. 或謂之實, 或謂之榮. 行流散徙, 不主常聲. 世疑之, 稽於聖人, 聖也者, 達於情而遂於命也. 天機不張而吾官皆備, 无言而心說, 此之謂天樂. 故有?氏爲之頌曰:‘聽之不聞其聲, 視之不見其形, 充滿天地, 苞裏六極.’ 汝欲聽之而無接焉, 而故惑也. 「樂也者, 始於懼, 懼故崇. 吾又次之以怠, 怠故遁. 卒之於惑, 惑故愚. 愚故道, 道可載而與之俱也.」
144` 처지와 시대에 맞아야 한다 (외편:14.천운,4) - 장자(외편) ; 제14편 천운[4]- 공자가 서쪽 위나라로 여행을 갔을 때, 안연이 사금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이 번 여행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금이 말했다. “애석하게도 당신의 선생님은 궁지에 몰리게 될 것입니다.” 안연이 물었다. “왜 그렇습니까?” 사금이 말했다. “무당이 쓰는 개허수아비는 귀신 앞에 진열되기 전에는 상자에 담겨지고 무늬를 수놓은 보자기에 싸여집니다. 시동과 축관은 제계를 하고 그것을 신에게 바칩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치고 난 다음에는 길가는 사람들이 그 머리와 등을 짓밟고, 풀 베는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때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 다시 그것을 가져다가 상자에 담고 무늬가 수놓인 보자기에 싸놓고 그 곁에서 자고 눕고 한다면, 그가 악몽을 꾸게 되거나 자주 가위에 눌리게 된다고들 합니다.
지금 당신의 선생님은 옛 임금들이 이미 사용한 개허수아비를 가져다 제자들을 모아놓고 함께 그 곁에 노닐면서 자고 눕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송나라에서는 나무를 베어 넘기는 협박을 당하였고, 위나라에서는 발자국까지 지우며 다녀야 할 정도로 쫓기며 두 나라에서 궁지에 몰렸었습니다. 이것이 악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를 당하여 칠일동안이나 익힌 음식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죽음과 삶 사이에서 지냈습니다. 이것이 가위눌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물 위를 여행하기에는 배를 이용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고, 땅 위를 여행하는 데는 수레를 이용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배로 물 위를 여행할 수 있다고 해서 땅 위에서도 배를 저어가려 한다면 평생을 가도 얼마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옛날과 지금이란 물이나 육지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나라와 노나라는 배나 수레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주나라의 방식을 노나라에 행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육지 위에서 배를 밀고 가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힘들기만 하지 아무런 성과도 없을 것이며 자신에게 반드시 재앙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들은 방향이 없는 작용이 사물에 대응하는데 있어서 궁지에 몰리는 일이 없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무거운 추를 달아놓은 두레박틀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끌어올리면 내려가고 놓으면 올라갑니다. 그것은 사람이 끌어당기는 것이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려가든 올라가든 사람에게 책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삼황오제의 예의와 법도는 모두 공통됨을 숭상하지 않고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숭상했습니다. 그러니 삼황오제의 예의와 법도를 비유로 들면 마치 돌배와 배와 귤과 유자나 같은 것입니다. 그 맛은 모두 틀리지만 모두가 입에 넣으면 맛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의와 법도라는 것은 시대를 따라서 변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숭이에게 주공의 옷을 입혀준다면 원숭이는 반드시 물어뜯고 찢어발겨 모두 벗어야 만족을 할 것입니다. 옛날과 지금의 차이를 보면 마치 원숭이가 주공과는 다른 것이나 같습니다.
아름다운 서시가 가슴이 아파서 그의 동네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자, 그 동네에 사는 못난 여자가 그것을 보고 아름답게 생각하고는 돌아와서 자기도 역시 가슴에 두 손을 얹고서 남이 보는 데서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그 마을의 부자는 그를 보고는 문을 굳게 닫아걸고서 나가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를 보고는 처자를 거느리고 다른 고장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 여자는 아름다운 얼굴에 찌푸림이 있음만을 알았지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몰랐던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당신의 선생님도 이와 같은 궁지에 몰리게 될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4篇 天運[4]- 孔子西遊於衛. 顔淵問師金曰:「以夫子之行爲奚如?」 師金曰:「惜乎, 而夫子其窮哉!」 顔淵曰:「何也?」 師金曰:「夫芻狗之未陳也, 盛以?衍, 巾以文繡, 尸祝齊戒以將之. 及其已陳也, 行者踐其首脊, 蘇者取而?之而已. 將復取而盛以?衍, 巾以文繡, 遊居寢臥其下, 彼不得夢, 必且數?焉. 今而夫子, 亦取先王已陳芻狗, 聚弟子游居寢臥其下. 故伐樹於宋, 削迹於衛, 窮於商周, 是非其夢邪? 圍於陳蔡之間, 七日不火食, 死生相與隣, 是非其夢邪? 「夫水行莫如用舟, 而陸行莫如用車. 以舟之可行於水也而求推之於陸, 則沒世不行尋常. 古今非水陸與? 周魯非舟車與? 今?行周於魯, 是猶推舟於陸也, 勞而无功, 身必有殃. 彼未知夫无方之傳, 應物而不窮者也. 「且子獨不見夫桔?者乎? 引之則俯, 舍之則仰. 彼, 人之所引, 非引人也, 故俯仰而不得罪於人. 故夫三皇五帝之禮義法度, 不矜於同而矜於治, 故譬三皇五帝之禮義法度, 其猶? 梨橘柚邪! 其味相反而皆可於口. 「故禮義法度者, 應時而變者也. 今取?狙而衣以周公之服, 彼必?齧挽裂, 盡去而後慊. 觀古今之異, 猶?狙之異乎周公也. 故西施病心而?其里, 其里之醜人見之而美之, 歸亦捧心而?其里. 其里之富人見之, 堅閉門而不出, 貧人見之, ?妻子而去走. 彼知?美, 而不知?之所以美. 惜乎, 而夫子其窮哉!」
145` 명예란 공용의 기구와 같다 (외편:14.천운,5) - 장자(외편) ; 제14편 천운[5]- 공자가 나이 쉰한살이 되도록 도에 대하여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남쪽 패땅으로 가서 노자를 찾았다. 노자가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을 북방의 현자라고들 하던데 선생님께서도 도를 터득하고 계시겠군요.” 공자가 말했다. “아직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어디에서 도를 구하려 하셨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저는 도를 음양의 변화에서 구해보려 하였으나 십이 년이 지나도록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그 렇겠지요. 도를 가져다 바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자기 임금에게 바칠 것입니다. 도를 가져다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자기 부모에게 갖다 드릴 것입니다. 도를 일러줄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자기 형제들에게 일러줄 것입니다. 도를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자기 자손들에게 전해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마음속에 도의 주인이 될만한 것이 없으면 그 사람에게 머물지 않고, 밖이 올바르지 않으면 행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밖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성인은 그것을 내놓지 않습니다.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에 대하여 마음속에 주인노릇을 할 만한 것이 없으면 성인은 그것에 의거하지 않습니다. 명 예란 공용의 기구와 같은 것이어서 홀로 많이 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짊과 의로움은 임금의 여관과 같은 것이니, 단지 하루저녁 묵는 것은 괜찮겠지만 오래 묵어 있을 곳은 못됩니다. 오래 머물러 있으면 책망만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옛날의 지극한 사람은 어짊을 가는 길로 삼고, 의로움을 숙소로 삼아 몸을 기탁함으로써 소요하는 고장에 노닐었습니다. 그는 자기 먹을 정도의 것만이 생산되는 땅을 지니고, 먹고 남을 것이 없는 정도의 채소밭을 가꾸었습니다. 소요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 먹을 것만을 생산한다는 것은 몸을 보양하기 쉬움을 뜻합니다. 먹고 남는 것이 없을 정도란 남에게 내놓지도 않음을 뜻합니다. 옛날에는 이것을「참됨을 취하는 노닒」이라 불렀습니다. 부를 좋은 것으로 아는 사람은 남에게 재산을 사양하지 못하며, 출세를 좋은 것으로 아는 사람은 남에게 명예를 양보하지 못하고, 권세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남에게 권력을 맡기지 못합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있자니 두렵고, 그것들을 버리자니 슬퍼질 것입니다. 전혀 도에 대하여 살핀 것이 없어서 언제나 쉬지 않고 변동하는 것들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은 하늘의 벌을 받을 백성들인 것입니다. 원한 ?은혜 ?취하는 것 ?주는 것 ?간하는 것 ?가르치는 것 ?살리는 것 ?죽이는 것의 여덟 가지는 일을 바로잡는 기구입니다. 오직 위대한 변화를 따라서 막히는 것이 없는 사람만이 그것들을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르게 하려면 자신부터 올바르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마음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문이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4篇 天運[5]- 孔子行年五十有一而不問道, 乃南之沛見老聃. 老聃曰:「子來乎? 吾聞子, 北方之賢者也, 子亦得道乎?」 孔子曰:「未得也.」 老子曰:「子惡乎求之哉?」 曰:「吾求之於度數, 五年而未得也.」 老子曰:「子又惡乎求之哉?」 曰:「吾求之於陰陽, 十有二年而未得.」 老子曰:「然. 使道而可獻, 則人莫不獻之於其君. 使道而可進, 則人莫不進之於其親. 使道而可以告人, 則人莫不告其兄弟. 使道而可以與人, 則人莫不與其子孫. 然而不可者, 无?也, 中无主而不止, 外无正而不行. 由中出者, 不受於外, 聖人不出. 由外入者, 無主於中, 聖人不隱. 名, 公器也, 不可多取. 仁義, 先王之?廬也, 止可以一宿而不可久處, ?而多責. 「古之至人, 假道於仁, 託宿於義, 以遊逍遙之墟, 食於苟簡之田, 立於不貸之圃. 逍遙, 无爲也. 苟簡, 易養也. 不貸, 无出也. 古者謂是采眞之遊. 「以富爲是者, 不能讓祿. 以顯爲是者, 不能讓名. 親權者, 不能與人柄. 操之則慄, 舍之則悲, 而一無所鑑, 以?其所不休者, 是天之戮民也. 怨恩取與諫敎生殺, 八者, 正之器也, 唯循大變无所湮者爲能用之. 故曰, 正者, 正也. 其心以爲不然者, 天門弗開矣.」
146` 인위적인 행동은 결과가 좋지 않다 (외편:14.천운,6) - 장자(외편) ; 제14편 천운[6]- 공자가 노자를 만나서 어짊과 의로움에 대하여 물었다. 노자가 말했다. “겨가 눈에 들어가면 곧 하늘과 땅과 사방의 위치를 혼동하게 됩니다. 모기가 살갗을 물면 밤새도록 잠을 못 잡니다. 어짊과 의로움이란 잔인한 것이어서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기에 이보다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소박함을 잃게 하지 마십시오. 선생께서 바람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모든 덕이 아울러 처신하게 될 것입니다. 또 어찌 애쓰면서 큰북을 짊어지고 두드리고 다니면서 잃은 자식을 찾듯 지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백조는 매일 목욕을 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매일 검은 물을 들이지 않아도 검습니다. 검고 흰 소박한 바탕은 좋고 나쁨을 따질 것이 못됩니다. 명예라는 겉모양은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샘물이 마르면 그 곳 물고기들은 땅 위에 함께 모여 서로 물을 뿜어주고 서로 침으로 적셔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강물이나 호수 속에서 서로를 잊고 잊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4篇 天運[6]- 孔子見老聃而語仁義. 老聃曰:「夫播??目, 則天地四方易位矣. 蚊??膚, 則通昔不寐矣. 夫仁義?然乃憤吾心, 亂莫大焉. 吾子使天下无失其朴, 吾子亦放風而動, 總德而立矣, 又奚傑傑然揭仁義, 若負建鼓而求亡子者邪? 夫鵠不日浴而白, 烏不日黔而黑. 黑白之朴, 不足以爲辯. 名譽之觀, 不足以爲廣. 泉?, 魚相與處於陸, 相?以濕, 相濡以沫, 不若相忘於江湖!」
147` 인위로 다스림은 다스리지 않음만 못하다 (외편:14.천운,7) - 장자(외편) ; 제14편 천운 [7] - 공자가 노자를 만나고 돌아와 사흘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노자를 만나서 무엇을 가르쳐주려 하셨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는 이제야 용을 본 것 같다. 용은 합쳐지면 훌륭한 몸을 이루고, 흩어지면 아름다운 무늬를 이룬다. 구름의 기운을 타고 다니며 음양 속을 날아다니는 것이다. 나는 입이 벌어져 다물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노자에게 가르쳐줄 수 있었겠느냐.” 자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 중에는 본시 시체처럼 있다가도 용처럼 나타나고, 우레 소리를 내다가도 심연 같은 침묵을 지키고, 활동이 하늘과 땅 같은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저도 그 분을 뵐 수 있겠습니까?” 마침내 공자의 주선으로 자공이 노자를 만났다. 노자는 마침 대청에 앉아 있다가 마중하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미 다 늙어버렸는데 내게 무엇을 얘기해주려 하십니까?” 자공이 말했다. “삼황과 오제의 천하를 다스리던 방법은 같지 않았지만 그 분들이 명성을 누렸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 분들이 성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시다니 어째서입니까?” 노자가 말했다. “젊은이 좀더 가까이 오시오! 당신은 어째서 그들의 방법이 같지 않다는 것입니까?” 자공이 말했다. “요 임금은 순임금에게 천하를 물려주었고, 순임금은 우임금에게 천하를 물려주었으며, 우임금은 힘을 사용하였고, 탕임금은 군사를 사용했습니다. 문왕은 주왕에게 순종하여 감히 거스르려 하지 않았으나, 무왕은 주왕을 거슬러 순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노자가 말했다. “젊은이 좀더 가까이 오시오. 내 당신에게 삼황과 오제의 천하를 다스리던 방법을 얘기해 주겠습니다. 황제가 천하를 다스릴 적에는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백성들 중에는 그의 부모가 죽어도 곡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래도 백성들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백성들의 마음을 서로 친하게 만들었습니다. 백성들 중에는 그들의 친분 때문에 친하게 지내고 따돌리는 차별을 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그래도 백성들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순 임금이 천하를 다스려 백성들의 마음을 서로 다투게 만들었습니다. 백성들 가운데는 부인이 아기를 배어 가지고 열 달 안에 자식을 낳고, 아이가 태어나서 다섯 달만에 말을 하게 되고, 방긋방긋 웃기도 전에 사람들을 분별하는 경우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사람들에게 어려서 죽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우 임금이 천하를 다스려 백성들의 마음을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마음을 갖게 되었고, 전쟁은 도리를 따른다는 구실이 생겼으며, 도적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닌 것으로 되었고, 자기만을 중히 여기고 천하의 보고 듣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천하 사람들은 크게 놀라 유가와 묵가들이 한꺼번에 생겨났던 것입니다. 시작할 때는 그런 대로 법도가 있었으나, 결과는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당신에게 삼황과 오제가 천하를 다스리던 방법을 얘기해 주겠습니다. 이름은 천하를 다스렸다고 하지만 사실은 더 말할 수 없이 천하를 어지럽혔던 것입니다. 삼황의 지혜는 위로는 해와 달의 밝은 빛을 거슬렸고, 아래로는 산과 냇물의 정기를 배반하였으며, 가운데로는 사계절의 순환을 파괴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지혜는 전갈의 꼬리보다도 잔혹한 것입니다. 작은 짐승들도 모두가 그의 본성과 생명의 진실한 모습을 따라 편안히 지냅니다. 그런데 스스로 성인이라 생각하고 있다면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수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자공은 다리를 떨면서 불안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 莊子(外篇) ; 第14篇 天運[7]- 孔子見老聃歸, 三日不談, 弟子問曰:「夫子見老聃, 亦將何規哉?」 孔子曰:「吾乃今於是乎見龍! 龍, 合而成體, 散而成章, 乘雲氣而養乎陰陽. 予口張而不能?, 予又何規老聃哉!」 子貢曰:「然則人固有尸居而龍見, 淵?而雷聲, 發動如天地者乎? 賜亦可得而觀乎?」 遂以孔子聲見老聃. 老聃方將倨堂而應, 微曰:「予年運而往矣, 子將何以戒我乎?」 子貢曰:「夫三皇五帝之治天下不同, 其係聲名一也. 而先生獨以爲非聖人, 如何哉?」 老聃曰:「小子少進! 子何以謂不同?」 對曰:「堯授舜, 舜授禹, 禹用力而湯用兵, 文王順紂而不敢逆, 武王逆紂而不肯順, 故曰不同.」 老聃曰:「小子少進! 余語汝三皇五帝之治天下. 皇帝之治天下, 使民心一, 民有其親死不哭而民不非也. 堯之治天下, 使民心親, 民有爲其親殺其殺而民不非也. 舜之治天下, 使民心競, 孕婦十月而生子, 子生五月而能言, 不至乎孩而始誰, 則人始有夭矣. 禹之治天下, 使民心變, 人有心而兵有順, 殺盜非殺人, 自爲種而天下耳, 是以天下大駭, 儒墨皆起. 其作始有倫, 而今乎歸, 女何言哉! 余語汝, 三皇五帝之治天下, 各曰治之, 而亂莫甚焉. 三皇之治, 上悖日月之明, 下?山川之精, 中墮四時之施, 其知?於蠣?之尾, 鮮規之獸, 莫得安其性命之情者, 而猶自以爲聖人, 不亦可恥乎, 其无恥也?」 子貢蹴蹴然立不安.
148` 발자국은 발이 아니다 (외편:14.천운,8) - 장자(외편) ; 제14편 천운 [8] - 공자가 노자에게 말했다. “저는 시, 서, 예, 악, 역, 춘추의 다섯 가지 경전을 공부하였는데, 스스로 오랫동안 공부하여 그 뜻을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임금들에게 쓰이기를 바라면서 옛 임금들의 도를 논하고 주공과 소공의 업적을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한 임금도 저를 등용해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란 설득시키기 어려운 것이며, 도란 밝히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당신이 세상을 잘 다스리는 임금을 만나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여섯 가지 경서란 옛 임금들이 남겨놓은 발자취입니다. 어찌 그 발자취를 남긴 장본인이겠습니까? 지금 당신이 말하는 것은 발자취나 같은 것입니다. 발자취란 것은 신발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발자취가 어찌 신발이겠습니까? 백역이라는 새는 암수가 서로 바라보면서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데도 정이 통하여 새끼를 뱁니다. 충이라는 벌레는 수컷이 바람 부는 위쪽에서 울고 암컷은 바람 부는 아래쪽에서 호응하기만 해도 새끼를 뱁니다. 류란 짐승은 자신이 암컷 수컷을 다 겸하기 때문에 스스로 정을 통하여 새끼를 뱁니다. 본성은 바뀌어질 수가 없고, 천명도 변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멈출 수가 없고, 도는 막히는 경우가 없습니다. 진실로 도를 터득하기만 한다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고, 도를 잃으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자는 석달 동안 밖에 나오지 않고 들어앉아 있다가 다시 노자를 찾아갔다. “저도 터득했습니다. 까마귀와 까치는 알에서 부화하고, 물고기는 물거품에 붙어서 새끼를 치고, 나나니벌은 배추벌레 속에서 자라 변하여 되고, 아우를 보게 되면 형은 울게 됩니다. 제가 이러한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 되지 못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 되지 못한 주제에 어떻게 남을 교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좋습니다. 당신은 도를 터득한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4篇 天運[8]- 孔子謂老聃曰:「丘治詩書禮樂易春秋六經, 自以爲久矣, 孰知其故矣. 以奸者七十二君, 論先王之道而明周召之迹, 一君無所鉤用. 甚矣夫! 人之難說也! 道之難明邪?」 老子曰:「幸矣子之不遇治世之君也! 夫六經, 先王之陳迹也, 豈其所以迹哉! 今子之所言, 猶迹也. 夫迹, 履之所出, 而迹豈履哉! 夫白?之相視, 眸子不運而風化. 蟲, 雄鳴於上風, 雌應於下風而風化. 類自爲雌雄, 故風化. 性不可易, 命不可變, 時不可止, 道不可壅. 苟得於道, 无自而不可. 失焉者, 无自而可.」 孔子不出三月, 復見曰:「丘得之矣. 烏鵲孺魚傅沫, 細要者化, 有弟而兄啼. 久矣夫丘不與化爲人! 不與化爲人, 安能化人!」 老子曰: 可.丘得之也
149` 편안하고 간단하고 담담히 살면 근심 걱정이 없다 (외편:15.각의,1) 포기` 무집착` 근심` 걱정` - 장자(외편) ; 제15편 각의[1]- 뜻을 높이 가지고 행동을 고상히 하며, 세상과 동떨어져 사람들과 다르게 살며, 고답적인 이론으로 세상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것은 높은 자세로 처신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산골짜기에 숨어사는 선비나 세상을 비난하는 사람이 하는 짓이다. 그리고 깡마른 몸으로 연못에 투신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다. 어 짊과 의로움과 충성과 믿음을 얘기하며, 공손하고 검소하며 남을 앞세우며 겸양하는 것은 자기 몸을 닦으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을 다스리려는 선비와,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사람들의 짓이다. 그러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학자들이 좋아하는 일이다. 위대한 공로를 얘기하고 위대한 명성을 세우며, 임금과 신하의 예를 지키고, 위아래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은 세상을 다스리려는 것이다. 이것은 조정에 나가 벼슬을 하는 선비와 임금을 높이고 나라를 강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그리고 공로를 세우고 다른 나라를 병합시키려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다. 풀과 나무가 우거진 택지로 나가 넓은 곳에 살면서 고기를 낚으며 한가로이 지내는 것은 무위로 지내려는 것이다. 이것은 강이나 바다에 노니는 선비와 세상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그리고 한가로이 살려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깊은 호흡을 하면서 낡은 기운은 토해 내고 신선한 기운을 빨아들이며, 곰이 나무에 매달리고 새가 날면서 발을 뻗치는 것 같은 체조를 하는 것은 오래 살려는 것이다. 이것은 기운을 끌어들이는 선비와 몸을 보양하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그리고 팽조 같이 오래 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뜻을 높이지 않고도 고상해지고, 어짊과 의로움이 없이도 몸이 닦여지고, 공로와 명성이 없이도 다스려지고, 강과 바다에 노닐지 않고도 한가로워지고, 기운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오래 사는 사람은, 잊지 않는 것도 없고 갖추고 있지 않은 것도 없는 사람이다. 담담히 마음은 끝 이 없지만 모든 미덕은 그에게로 모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과 땅의 도이며 성인의 덕인 것이다. 그러므로 담담하고 고요하며 허무하고 무위한 것은 하늘과 땅의 올바른 도리이며 도덕의 본질이라고 얘기했던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쉬면서 편히 지내어 편안하고도 간단한 것이다. 편안하고도 간단하면 담담하게 되고, 편안하고 간단하여 담담하다면 근심 걱정이 끼어 들 수가 없고 사악한 기운이 침입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덕은 완전하고 그의 정신에는 결함이 없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5篇 刻意[1]- 刻意常行, 離世異俗, 高論怨誹, 爲亢而已矣. 此山谷之士, 非世之人, 枯槁赴淵者之所好也. 語仁義忠信, 恭儉推讓爲修而已矣. 此平世之士, 敎誨之人, 遊居學者之所好也. 語大功, 立大名, 禮君臣, 正上下, 爲治而已矣. 此朝廷之士, 尊主强國之人, 致功幷兼者之所好也. 就藪澤, 處閒曠, 釣魚閒處, 无爲而已矣. 此江海之士, 避世之人, 閒暇者之所好也. 吹?呼吸, 吐故納新, 熊經鳥申, 爲壽而已矣. 此導引之士.養形之人, 彭祖壽考者之所好也. 若夫不刻意而高, 无仁義而修, 无功名而治, 无江海而閒, 不導引而壽, 无不忘也, 无不有也, 澹然无極而衆美從之, 此天地之道, 聖人之德也. 故曰, 夫恬?寂漠虛无无爲, 此天地之本而道德之質也. 故聖人休焉, 休則平易矣, 平易則恬?矣. 平易恬?, 則憂患不能入, 邪氣不能襲, 故其德全而神不虧.
150` 성인의 덕이란 어떤 것인가 (외편:15.각의,2) - 장자(외편) ; 제15편 각의[2]- 그러므로「성인은 살아감에 있어서는 자연의 운행을 따르고, 죽음에 있어서는 만물과 함께 변화한다. 고요히 있으면 음과 같은 덕이 되고, 움직이면 양과 같은 물결을 이룬다.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며, 환란을 피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외물이 느끼는데 따라서 반응을 보이며, 외물이 닥쳐온 다음에야 움직이며, 부득이 해야만 비로소 일어선다. 지혜와 기교를 버리고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하늘의 재난도 없고, 물건으로 인한 번거로움도 없고, 사람들의 비난도 없고, 귀신의 책망도 없다. 그의 삶은 물 위에 떠돌아다니는 듯하며, 그의 죽음은 휴식과 같은 것이다. 생각하고 염려하지 않고, 미리 일을 계획하지도 않는다. 빛이 있지만 겉으로 빛나지 않고, 믿음이 있지만 일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들은 잠을 자도 꿈꾸지 않으며, 잠에서 깨어나도 걱정하는 일이 없다. 그들의 정신은 순수하며, 그의 영혼은 피로해하지 않는다. 허무하고 담담함으로써 바로 자연의 덕과 합치되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5篇 刻意[2]- 故曰, 聖人之生也天行, 其死也物化. 靜而與陰同德, 動而與陽同波. 不爲福先, 不爲禍始. 感而後應, 迫而後動, 不得已而後起. 去知與故, 循天之理. 故曰无天災, 无物累, 无人非, 无鬼責. 不思慮, 不豫謀. 光矣而不燿, 信矣而不期, 其寢不夢, 其覺无憂. 其生若浮, 其死若休. 其神純粹, 其鬼不罷. 虛无恬?, 乃合天德.
151` 몸과 정신을 보양하는 방법 (외편:15.각의,3) 장자(외편) ; 제15편 각의[3]- 그러므로「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덕에 있어서 편벽된 것이며,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것은 도에 있어서 그릇된 것이며,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마음에 있어서 올바름을 잃은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근심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덕에 있어서 지극한 것이며, 한결같음으로써 변하지 않는 것은 고요함에 있어서 지극한 것이며,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없는 것은 텅 비움에 있어서 지극한 것이며, 사물과 교섭이 없는 것은 담담함에 있어서 지극한 것이며, 자연에 역행하는 것이 없는 것은 순수함에 있어서 지극한 것이다. 그러므로「육체를 혹사시키고 쉬지 않으면 지치게 되며, 정신을 사용하여 멈추는 일이 없으면 수고롭게 된다. 지치면 말라죽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물의 본성은 잡된 것이 섞이지 않으면 맑고, 움직이지 않으면 평평하다. 그러나 꽉 막혀 흐르지 않으면 역시 맑아질 수가 없다. 이것은 자연의 덕과 비슷한 형상이다. 그러므로「순수하여 잡된 것이 섞이지 않고, 고요하고 한결같아 변하지 않으며, 담담히 무위하고, 움직이면 자연의 운행을 따른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것이 정신을 보양하는 도인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5篇 刻意[3]- 故曰, 悲樂者, 德之邪. 喜怒者, 道之過. 好惡者, 心之失. 故心不憂樂, 德之至也. 一而不變, 靜之至也. 无所於?, 虛之至也. 不與物交, ?之至也. 无所於逆, 粹之至也. 故曰, 形勞而不休則弊, 精用而不已則竭. 水之性, 不雜則淸, 莫動則平. 鬱閉而不流, 亦不能淸. 天德之象也. 故曰, 純粹而不雜, 靜一而不變, ?而无爲, 動而以天行, 此養神之道也.
152` 정신이 순수하고 소박한 사람 (외편:15.각의,4) 단순` 소박` 순수` 장자(외편) ; 제15편 각의[4]- 간수에서 난 명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칼 상자 속에 잘 보관해 두고 감히 사용하지 않는다. 보물로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정신은 사방으로 자유로이 유동하여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다. 위로는 하늘 끝에 이르고, 밑으로는 땅 속에 서리면서 만물을 변화시키고 양육시키지만 그 형상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것을 동제라고 부른다. 순수하고 소박한 도란 오직 이 정신을 지키는 것이다. 지키어 잃지 않음으로써 정신과 더불어 일체가 되어야 한다. 일체가 됨으로써 순수함으로 통하고 자연의 윤리와 합치되는 것이다. 속담에 말하기를「보통사람들은 이익을 중히 여기고 청렴한 선비는 명예를 중히 여기고, 현명한 선비는 의지를 존중하며, 성인은 순수함을 귀중히 여긴다」고 했다. 그러므로 소박하다는 것은 그의 정신에 다른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것을 뜻한다. 순수하다는 것은 그의 정신에 결함이 전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순수함과 소박함을 체득하고 있는 사람을 참된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5篇 刻意[4]- 夫有干越之劍者, ?而藏之, 不敢輕用也, 寶之至也. 精神四達竝流, 无所不極, 上際於天, 下蟠於地.化育萬物, 不可爲象, 其名爲同帝. 純素之道, 唯神是守. 守而勿失, 與神爲一, 一之精通, 合於天倫. 野語有之曰:「衆人重利, 廉士重名, 賢人尙志, 聖人貴精.」 故素也者, 謂其无所與雜也. 純也者, 謂其不虧其神也. 能體純素, 謂之眞人.
153` 속된 학문과 지혜로는 본성을 기를 수 없다 (외편:16.선성,1) - 장자(외편) ; 제16편 선성[1]- 통속적인 학문으로 본성을 닦아 그 원초적인 상태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통속적인 생각으로 욕망을 다스려 그의 밝은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몽매한 백성이라 한다. 옛날의 도를 다스리던 사람들은 욕심을 끊고 깨끗하고 편안하게 있음으로써 지혜를 길렀다. 나면서부터 지혜로써 행동하는 일이 없었으니, 그를 두고서 지혜로써 욕심이 없이 깨끗하고 담담함을 기르는 것이라 말한다. 지혜와 욕심이 없이 깨끗하고 담담함이 서로를 길러줌으로써 조화와 이치가 그의 본성에 생겨나는 것이다. 덕이란 조화를 이루는 것이며, 도란 이치에 맞는 것이다. 덕이 모든 것을 용납하는 것이 어짊이다. 도가 모두 이치에 들어맞는 것이 의로움이다. 의로움이 밝음으로써 사물과 친근하게 되는 것이 충실함이다. 속마음이 순수하고 충실하여 그 성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음악이다. 자기 몸이 행하는 대로 맡기어 두고도 절도에 알맞게 따르게 되는 것이 예의이다. 그런데 예의와 음악이 한곳에 치우쳐 행하여지면 곧 천하가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남을 바로잡아주려 하면서도 자기의 덕을 어둡게 만드는데, 덕이란 물건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가리게 되면 물건은 반드시 그의 본성을 잃게 된다. - 莊子(外篇) ; 第16篇 繕性[1]- 繕性於俗, 俗學以求復其初. 滑欲於俗思, 以求致其明. 謂之蔽蒙之民. 古之治道者, 以恬養知. 知生而无以知爲也, 謂之以知養恬. 知與恬交相養, 而和理出其性. (夫德, 和也. 道, 理也. 德无不容, 仁也. 道无不理, 義也. 義明而物親, 忠也. 中純實而反乎情, 樂也. 信行容體而順乎文, 禮也. 禮樂偏行, 則天下亂矣.) 彼正而蒙己德, 德則不冒, 冒則物必失其性也.
154` 인위적인 지혜로 세상은 혼란에 빠졌다 (외편:16.선성,2) - 장자(외편) ; 제16편 선성[2]- 옛날 사람들은 혼돈하여 어둑한 가운데 온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담백하고도 적막한 생활을 했다. 그 때는 음양이 조화되어 고요하였고, 귀신도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사계절은 절도에 맞았고, 만물은 훼손됨이 없었으며, 모든 생물은 일찍 죽는 일이 없었다. 사람들은 비록 지혜를 가졌다 하더라도 쓸 곳이 없었다. 이것을 지극한 통일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 때에는 일부러 하는 일이란 없이 언제나 자연스러웠다. 덕이 쇠퇴하자 수인과 복희가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자연을 따르기는 하였지만 통하여 하나가 되지는 않았다. 덕이 더 쇠퇴하자 신농과 황제가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안락하기는 하였지만 자연을 따르지는 않게 되었다. 덕이 더 쇠퇴하자 요와 순이 세상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정치와 교화의 나쁜 풍속을 일으켰고, 순진함이 없어지고 소박함이 사라지게 했으며, 선을 위해 도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했고, 덕을 저버리고 행동하게 했다. 그렇게 된 뒤에는 사람의 본성을 버리고 자기 마음을 따르게 되었다. 마음과 마음으로 상대방을 살피어 알았으나 천하를 안정시킬 수는 없었다. 그런 뒤에 문채를 거기에 부가하였고, 넓은 지식을 더했다. 문채란 본질을 멸실케 하고, 넓은 지식은 마음을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 뒤에는 백성들이 미혹되어 혼란을 일으키게 되었으니, 그들의 본성과 진실로 되돌아가거나 그들의 원래상태로 복귀할 수가 없게 되었다. - 莊子(外篇) ; 第16篇 繕性[2]- 古之人, 在混芒之中, 與一世而得澹漠焉. 當是時也, 陰陽和靜, 鬼神不擾, 四時得節萬物不傷, 群生不夭, 人雖有知, 无所用之, 此之謂至一. 當是時也, 莫之爲而常自然. 逮 德下衰, 及燧人伏羲始爲天下, 是故順而不一. 德又下衰, 及神農黃帝始爲天下, 是故安而不順. 德又下衰, 及唐虞始爲天下, 與治化之流, 효[?+梟]淳散朴, 離道以爲, 險德以行, 然後去性而從於心. 心與心識知, 而不足以定天下, 然後附之以文, 益之以博. 文滅質, 博溺心, 然後民始惑亂, 无以反其性情而復其初.
155` 세상을 떠나 몸을 보존하며 때를 기다린다 (외편:16.선성,3) - 장자(외편) ; 제16편 선성[3]- 세상은 도를 잃었고, 도는 세상을 잃었다. 세상과 도가 서로를 잃었던 것이다. 그러니 도를 닦는 사람이라도 무슨 수로 세상을 일으키겠으며, 세상 역시 무슨 수로 도를 일으키겠는가? 도는 세상에 일어날 수가 없고, 세상은 도를 따라 일어날 수가 없으니, 비록 성인이 산 속에 숨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의 덕은 숨겨지는 것이다. 덕 이 숨겨진다는 것은 본시 성인 스스로가 덕을 숨기는 것이 아니다. 옛날의 이른바 숨어 있는 선비라는 사람들은 그의 몸을 감추어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입을 닫고서 말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지혜를 감추어 두고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시대의 운명이 그와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시대의 운명이 들어맞아 크게 자기 뜻을 전하여 폈다면 백성을 옛날의 지극한 통일로 되돌려 놓되 자기의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의 운명이 들어맞지 않아 자기가 천하에서 크게 궁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자신의 본성을 깊이 간직하고 자기의 운명을 편안히 받아들이면서 때를 기다릴 것이다. 이것이 몸을 보존하는 도인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6篇 繕性[3]- 由是觀之, 世喪道矣, 道喪世矣. 世與道交相喪也, 道之人何由興乎世, 世亦何由興乎道哉! 道无以興乎世, 世无以興乎道, 雖聖人不在山林之中, 其德隱矣. 隱, 故不自隱. 古之所謂隱士者, 非伏身而弗見也, 非閉其言而不出也, 非藏其知而不發也, 時命大謬也. 當時命而大行乎天下, 則反一无迹. 不當時命而大窮乎天下, 則深根寧極而待. 此存身之道也.
156` 본성을 버리고 인위적인 것만 추구하여 혼란에 빠진다 (외편:16.선성,4) - 장자(외편) ; 제16편 선성[4]- 옛날 몸을 보존하던 사람들은 변설로서 지혜를 꾸미지 않았고, 지혜로써 천하의 일을 다 밝혀 알려 들지 않았으며, 지혜로써 덕을 다 밝히려 들지 않았다. 그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의 본성으로 돌아갔으니, 자기가 또 무슨 일을 인위적으로 하였겠는가? 도 란 본래 행동으로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덕이란 본래 지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은 지식이란 덕을 손상시키는 것이며, 작은 행동이란 도를 손상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올바르게 할 따름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즐거움이 완전해지는데 그것을 뜻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옛날의 이른바 뜻을 얻었던 사람들이란 높은 벼슬을 얻었던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즐거움을 더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일 뿐이다. 지금의 뜻을 얻었다는 사람들이란 높은 벼슬을 얻은 것을 두고 말한다. 높은 벼슬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자기의 본성이나 운명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물건이 갑자기 와서 자기에게 붙은 것과 같은 것이다. 자기에게 붙은 것이지만 그것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그것이 떠나는 것을 붙들어 둘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벼슬을 얻었다하여 뜻을 방자히 두지 아니하고, 곤궁하다 해도 세속을 쫓지 않아야 한다. 그 즐거움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심이 없을 뿐인 것이다. 자기에게 있던 것이 떨어져 나가면 즐겁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이런 것을 보면 비록 즐긴다 하더라도 전혀 마음은 본성을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건에 의해 자기를 잃게 되고, 세속 때문에 본성을 잃는 것을 두고 근본과 말단을 거꾸로 하는 백성들이라 하는 것이다.
157` 눈앞의 대상에만 집착하는 것은 잘못이다 (외편:17.추수,1)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1]- 가을철이 되면 물이 불어난 모든 냇물이 황하로 흘러든다. 그 본 줄기는 커서 양편 물가의 거리가 상대편에 있는 소나 말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황하의 신은 기뻐하면서 천하의 모든 아름다움을 자신이 갖췄다고 생각하고, 흐름을 따라 동쪽으로 가 북해에 도착했다. 그 곳에 이르러 동쪽을 바라보았으나 물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황하의 신은 비로소 그의 얼굴을 돌리어 북해의 신을 우러러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속담에 백가지 도리를 알고는 자기 만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고 하였는데, 저를 두고 한 말인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일찍이 공자의 넓은 지식을 낮게 평가하고 백의 같은 절의를 가볍게 여기는 이론을 듣고서도 지금까지는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선생님의 끝을 알 수 없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런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제가 선생님의 문하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위태로웠을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위대한 도를 터득한 사람에게 비웃음을 받았을 것입니다.” 북해의 신이 말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하여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공간의 구속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에게 어름에 대해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시간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뚤어진 선비에게 도에 관해 얘기를 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침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은 물가를 벗어나 큰 바다를 보고서야 당신의 추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위대한 도리를 얘기해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 하의 물 중에 바다 보다 더 큰 것은 없다.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며, 잠시도 흘러듦을 멈추지 않는 데도 차서 넘치지 않는다. 미려에서는 바닷물이 잠시도 쉬지 않고 흘러 나가지만 물이 말라들지 않는다. 봄이나 가을에도 변화가 없고, 장마가 지나 가뭄이 드나 영향이 없다. 이 바다가 장강이나 황하의 흐름보다 얼마나 방대한 것인가는 수량으로 계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것을 가지고 스스로 뛰어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늘과 땅으로부터 형체를 물려받았고, 음과 양으로부터 기운을 물려받았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어서 작은 나무나 작은 돌이 마치 큰산에 있는 것이나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나의 존재를 작게 보고 있는데 어찌 스스로 뛰어나다고 생각할 리 있겠는가? 사방의 바다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크기를 헤아려보면, 소라 구멍이 큰 연못가에 나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한 나라가 세상에 차지하는 크기를 헤아려 보면 큰 창고 속에 있는 곡식 알 하나와 비슷하지 않은가? 물건의 종류에는 몇 만이라는 숫자가 붙는데 사람들이 그 중 하나의 숫자를 차지한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곡식들이 생산되는 곳과 배와 수레가 통하는 곳에 널리 살고 있는데, 사람이란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런 사람을 만물에 비교해 본다면 말의 몸에 있는 하나의 가는 털에 지나지 않는다. 오제가 천자 자리를 서로 물려준 것이나, 삼왕에 이르러 서로 다툰 것이나, 어진 사람이 근심하는 것이나,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 수고를 하는 것이나 모두가 이와 같이 작은 일이다. 백 이는 왕위를 사양함으로써 명성을 얻었고, 공자는 여러 가지 가르침을 얘기하여 박학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남보다 뛰어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당신이 조금 전까지 스스로 물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여기던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1]- 秋水時至, 百川灌河, 涇流之大, 兩?渚崖之間不辯牛馬. 於是焉河伯欣然自喜, 以天下之美爲盡在己. 順流而東行, 至於北海, 東面而視, 不見水端, 於是焉河伯始旋其面目, 望洋向若而歎曰:「野語有之曰:‘聞道百以爲莫己若者’, 我之謂也. 且夫我嘗聞少仲尼之聞而輕伯夷之義者, 始吾弗信. 今我睹者之難窮也, 吾非至於子之門, 則殆矣, 吾長見笑於大方之家.」 北海若曰「井?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曲士不可以語於道者, 束於敎也. 今爾出於崖?, 觀於大海.乃知爾醜, 爾將可與語大理矣. 天下之水, 莫大於海, 萬川歸之, 不知何時止而不盈, 眉閭泄之, 不知何時已而不虛. 春秋不變, 水旱不知. 此其過江河之流, 不可爲量數. 而吾未嘗以此自多者, 自以比形於天地而受氣於陰陽, 吾在天地之間, 猶小石小木之在大山也, 方存乎見少, 又奚以自多! 計四海之在天地之間也, 不似?空之在大澤乎? 計中國之在海內, 不似?米之在大倉乎? 號物之數謂之萬, 人處一焉. 人卒九州, 穀食之所生, 舟車之所通, 人處一焉. 此其比萬物也, 不似豪末之在於馬體乎? 五帝之所運, 三王之所爭, 仁人之所憂, 任士之所勞, 盡此矣. 伯夷辭之以爲名, 仲尼語之以爲博, 此其自多也, 不似爾向之自多於水乎?」
158` 지혜에서 나온 분별과 평가는 무의미한 것이다 (외편:17.추수,2)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2]- 황하의 신이 말했다. “하늘과 땅은 크다고 하고, 털끝은 작다고 할 수도 있습니까?” 북해의 신이 말했다. “아니다. 물건이란 양이 무궁하여 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각자의 분수는 일정하지 않고 변하는 것이며, 일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위대한 지혜를 지닌 사람은 먼 것과 가까운 것을 똑같이 본다. 그래서 작은 것이라 무시하지 않고, 큰 것이라 대단히 여기지 않는다. 물건의 양이란 무궁하여 한정할 수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또 옛날과 현재를 한가지 것으로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오래 산다 하더라도 교민하지 않고, 생명이 짧다 하더라도 더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시간이란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또 모든 것은 달처럼 찼다 기울었다 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물건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물건을 잃어도 걱정하지 않는다. 사람의 분수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도란 넓은 것임을 분명히 알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산다고 해서 기뻐하지 않고, 죽는다고 해서 불행으로 여기지 않는다. 일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있을 수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을 헤아려 보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에 비길 것이 못 된다. 또한 살아 있는 시간이란 살아 있지 못한 시간에 비길 것이 못 된다. 그런 지극히 작은 입장에서 지극히 큰 영역을 추궁하려 들고 있음으로, 미혹되고 혼란하여 스스로 안정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털끝이 지극히 미세하다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겠는가? 하늘과 땅이 지극히 큰 영역이라고 어떻게 규정할 수 있겠는가?”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2]- 河伯曰:「然則吾大天地而小毫末, 可乎?」 北海若曰:「否, 夫物, 量无窮, 時无止, 分无常, 終始无故. 是故大知觀於遠近, 故小而不寡, 大而不多, 知量无窮. 證?今故, 故遙而不悶, ?而不?. 知時无止. 察乎盈虛, 故得而不喜, 失而不憂, 知分之无常也. 明乎坦塗, 故生而不說, 死而不禍, 知終始之不可故也. 計人之所知, 不若其所不知. 其生之時, 不若未生之時. 以其至小求窮其至大之域, 是故迷亂而不能自得也. 由此觀之, 又何以知毫末之足以定至細之倪! 又何以知天地之足以窮至大之域!」
159` 절대진리는 상대적 비교를 초월한 곳에 있다 (외편:17.추수,3)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3]- 황하의 신이 말했다. “세상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지극히 정세한 것에는 형체가 없고, 지극히 큰 것은 포괄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입니까?” 북해의 신이 말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면 그 전체를 다 볼 수가 없고, 큰 것에서 작은 것을 보면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 정세하다는 것은 작은 것 중에서도 미세하다는 뜻이다. 극대하다는 것은 큰 것 중에서도 아주 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 볼 수 없고,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자연의 형세가 그런 것이다. 정세하다느니 굵다느니 하는 것은 형체가 있어서 결정되는 것이다. 형체가 없는 것은 수량으로 나눌 수가 없는 것이다. 포괄할 수 없이 큰 것은 숫자로서 크기를 따져 밝힐 수 없는 것이다. 말로써 논할 수 있는 것이란 물건으로서 큰 것이다. 뜻으로서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물건으로서 정세한 것이다. 말로써 논할 수 없고, 뜻으로서 살펴 인지할 수 없는 것은 정세하고 크다는 것을 결정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3]- 河伯曰:「世之議者皆曰:‘至精无形, 至大不可圍.’ 是信情乎?」 北海若曰:「夫自細視大者不盡, 自大視細者不明. 故異便, 此勢之有也. 夫情, 小之微也. ?, 大之殷也. 夫精粗者, 期於有形者也. 无形者, 數之所不能分也. 不可圍者, 數之所不能窮也. 可以言論者, 物之粗也. 可以意致者, 物之精也. 言之所不能論, 意之所不能致者, 不期精粗焉.」
160` 세상의 가치평가를 초월한 위대한 인물이란 (외편:17.추수,4)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4]- 위대한 사람의 행동은 사람을 해치는 짓을 하지 않으면서 어짊과 은혜를 많이 베풀려 하지도 않는다. 행동은 이익을 위하는 일이 없지만 문지기나 노예를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재물을 위해 다투지 않지만 사양하는 것을 훌륭한 것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일을 함에 있어 남의 힘을 빌리지도 않지만 자기 힘으로 먹고사는 것을 훌륭하게 여기지 않으며, 탐욕 많은 자나 비열한 자들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행동은 세속과 다르지만 치우치고 기이한 것을 훌륭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행동은 여러 사람을 따르지만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들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세상의 벼슬이나 봉록으로도 그의 행동을 권유하기에는 부족하고, 형벌이나 치욕으로도 그를 욕되게 하기는 부족하다. 그는 옳고 그름은 분별할 수 없는 것이며, 작고 큰 것도 분별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다. 듣건대 도를 터득한 사람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지극한 덕을 지닌 사람은 남이 알아주지 않으며, 위대한 사람에게는 자기가 없다고 하였는데, 자기의 분수를 한정하고 지내는 지극한 경지인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4]- < 是故大人之行, 不出乎害人, 不多仁恩. 動不爲利, 不賤門隸. 貨財弗爭, 不多辭讓. 事焉不借人, 不多食乎力, 不賤貧汚. 行殊乎俗, 不多벽異. 爲在從衆, 不賤?諂. 世之爵祿不足以爲勸, 戮恥不足以爲辱. 知是非之不可爲分, 細大之不可爲倪. 聞曰:‘道人不聞, 至德不得, 大人无己.’ 約分之至也.>
161` 상대적인 평가는 절대평가에 미치지 못한다 (외편:17.추수,5)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5]- 황하의 신이 말했다. “물건의 외형 또는 물건의 내면에 있어서 무엇을 기준으로 귀하고 천한 구분이 생기며,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작고 큰 구분이 생기는 것입니까?” 북해의 신이 말했다. “도의 입장에서 본다면, 물건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다. 물건 자체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은 귀하고 남은 천한 것이다. 세속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귀하고 천한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하는 것이다.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어느 것에 비하여 크다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 중에 크지 않은 것이 없게 되며, 어느 것에 비하여 작다는 입장에서 보면 만물 중에 작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하늘과 땅도 큰 것과 비교를 하게 되면 작은 풀 씨 한 알 정도로 생각될 수 있고, 털끝도 작은 것과 비교하게 되면 큰 산 정도로 생각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모든 것이 상대적인 입장에서 그렇게 되는 것임을 알 것이다. 공용(功用)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공용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에는 쓸데 없는 것이란 없게 되며, 그 공용을 없다고 부정하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 중에 쓸데 있는 것이란 없게 된다. 동쪽과 서쪽은 서로 반대가 되면서도 서로 어느 한편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안다면, 곧 공용의 규정도 상대적인 것임을 알 것이다. 취향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이 그러함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에는 옳지 않은 것이란 없게 된다. 그것이 그름을 비난하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에는 그릇되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요임금이나 걸왕이 모두 스스로는 시인하면서도 남이 비난하였다는 것을 안다면 취향이란 것도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것임을 알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5]- 河伯曰:「若物之外.約物之內, 惡至而倪貴賤? 惡至而倪小大?」 北 海若曰:「以道觀之, 物无貴賤. 以物觀之, 自貴而相賤. 以俗觀之, 貴賤不在己. 以差觀之.因其所大而大之, 則萬物莫不大. 因其所小而小之. 則萬物莫不小. 知天地之爲?米也, 知毫末之爲丘山也, 則差數覩矣. 以功觀之, 因其所有而有之, 則萬物莫不有. 因其所无而无之. 則萬物莫不无. 知東西之相反而不可以相无, 則功分定矣. 以趣觀之. 因其所然而然之, 則萬物莫不然. 因其所非而非之.則萬物莫不非. 知堯桀之自然而相非, 則趣操覩矣.
162` 시대와 환경에 자연스럽게 따를 줄 알아야 한다 (외편:17.추수,6)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6]- 옛날에 요와 순은 천자의 자리를 물려받아 제업을 이루었고, 연나라 임금 증은 재상의 아들 지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었으나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다. 은나라 탕왕이나 주나라 무왕은 다툼을 통하여 왕이 되었으나, 초나라 백공은 다툼을 통하여 멸망했다. 이처럼 다투고 사양하는 예절이나, 요임금과 걸왕 같은 행동이 때에 따라 귀하게도 되고 천하게도 되는 것이어서 일정한 표준에 의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들 보나 기둥같이 큰 재목은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유용하지만 작은 구멍을 막는 데는 소용이 없다. 그것은 기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지만 쥐를 잡는 데는 삵쾡이만 못하다. 그것은 재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올빼미는 밤에도 벼룩을 잡고 터럭 끝도 볼 수 있지만 낮에 나와서는 눈을 뜨고도 큰산도 보지 못한다. 그것은 본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데 어찌 옳다는 것을 존중하고 그르다는 것은 무시하며, 다스림은 존중하고 혼란은 무시하는가? 그것은 하늘과 땅의 이치와 만물의 진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하늘은 존중하면서 땅은 무시하고, 음은 존중하면서 양은 무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것이 통용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을 버리지 않고 내세우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가 아니면 거짓말쟁이인 것이다. 옛날 제왕들을 보면 물려주는 방법이 서로 달랐고, 하?은?주 3대의 왕위 계승 방법도 각기 달랐다. 그 시대와 어긋나게 하고, 그 때의 세속을 거스르는 자를 두고 찬탈자라 부르며, 그 시대에 합당하게 하고 그 때의 세속을 따르는 사람을 두고 의로운 사람이라 부르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6]- 「昔者堯舜讓而帝, 之괘?讓而絶. 湯武爭而王, 白工爭而滅. 由此觀之, 爭讓之禮, 堯桀之行, 貴賤有時, 未可以爲常也. 梁麗可以衝城, 而不可以窒穴, 言殊器也. 騏驥??, 一日而馳千里, 捕鼠不如狸?, 言殊技也. ??夜撮蚤, 察毫末, 晝出瞋目而不見丘山, 言殊性也. 故曰, 蓋師是而无非, 師治而无亂乎? 是未明天地之理 萬物之情者也. 是猶師天而无地, 師陰而无陽, 其不可行明矣. 然且語而不舍, 非愚則誣也. 帝王殊禪, 三代殊繼. 差其時, 逆其俗者, 謂之簒夫. 當其時, 順其俗者, 謂之義之徒. ??乎河伯! 女惡知貴賤之門, 小大之家!」
163` 평가에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 (외편:17.추수,7)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7]- 황하의 신이 말했다. “저는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제가 사양하거나 밟고 나아가거나 멈추는데 있어서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북해의 신이 말했다. “도의 입장에서 볼 때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무엇을 천히 여기겠는가? 이런 경지를 혼돈하게 통일된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뜻에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도에 크게 어긋나게 된다. 도의 입장에서 볼 때 무엇을 적다하고 무엇을 많다 하겠는가? 이런 경지를 구별 없이 연결되는 상태라 말하는 것이다. 한 편에만 치우치는 행동을 하여서는 안 된다. 그러면 도에 어긋나게 된다. 엄격하기가 나라의 임금과 같아서 사사로운 은덕을 베푸는 일이 없어야 한다. 유유자득하기가 제사를 받는 땅의 신과 같아서 사사로이 복을 내려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대범하기가 사방이 끝없는 것과 같아서 아무런 한계도 없어야 한다. 만물을 다 같아 아울러 감싸서 그 어떤 사람만을 아껴주거나 도와 주는 일이 없으면 이것을 두고 일정한 넓이가 없는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만물은 한결같이 평등한 것이니, 어느 것이 못하고 어느 것이 더 나은가? 도에는 시작도 끝도 없지만 물건에는 삶과 죽음이 있다. 그래서 물건의 공용이란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비어 있다가도 어떤 때는 차게 마련이어서 그 형세에는 일정한 위치가 없다. 늙어 가는 나이는 막을 수가 없고, 흘러가는 시간은 멈출 수가 없다. 생성소멸과 찼다가는 비는 일을 반복하여 그치면 또 시작을 한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위대한 도의 뜻을 얘기하고 만물의 이치를 논하는 까닭인 것이다. 물건의 생성은 말이 뛰거나 달리는 것처럼 변화한다.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란 없고, 잠시도 바뀌지 않는 것이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하겠는가? 그대로 스스로 변화하게 내버려두면 그만이다.”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7]- 河伯曰:「然則我何爲乎, 何不爲乎? 吾辭受趣舍, 吾終奈何?」 北海若曰:「以道觀之, 何貴何賤, 是謂反衍. 无拘而志, 與道大蹇. 何少何多, 是謂謝施. 無一而行, 與道參差. 嚴嚴乎若國之有君, 其无私德. 繇繇乎若祭之有社, 其无私福. 泛泛乎其若砂防之无窮, 其无所畛域. 兼懷萬物, 其孰承翼? 是謂无方. 萬物一齊, 孰短孰長? 道无終始, 物有死生, 不恃其成. 一虛一盈, 不位乎其形. 年不可擧, 時不可止. 消息盈虛, 終則有始. 是所以語大義之方, 論萬物之理也. 物之生也, 若驟若馳, 无動而不變, 无時而不移. 何爲乎, 何不爲乎? 夫固將自化.」
164` 인위와 자연 (외편:17.추수,8)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 [8] - 황하의 신이 말했다. “어찌하여 도가 귀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북해의 신이 말했다. “도를 아는 사람은 반드시 이(理)에도 통달해 있고, 이에 통달한 사람은 물건의 변화에 대한 적응에 밝다. 물건의 변화에 대한 적응이 밝은 사람은 사물에 의하여 자신이 해를 받는 일이 없다. 지극한 덕을 지닌 사람은 불도 뜨겁게 하지 못하며, 물도 그를 빠져죽게 하지 못하며, 추위와 더위도 그를 해칠 수가 없고, 새나 짐승들도 그를 상하게 할 수 없다. 그 렇다고 그것들을 가볍게 여긴다는 말은 아니다. 편안함과 위험을 살피고 화와 복 어느 것에나 안주하여 자기의 거취를 신중히 함으로써 아무것도 그를 해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연을 그의 내부에 존재하게 하고, 인위적인 것은 밖으로 내보내어, 그의 덕이 자연에 있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연과 사람의 행위에 대하여 알고 자연을 근본으로 삼는다면, 그의 올바른 위치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아가고 물러나고 굽히고 뻗치고 자유자재로 되며, 도로 되돌아가 진리의 극치를 얘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황하의 신이 물었다. “무엇을 자연이라 하고, 무엇을 인위라 하는 것입니까?” 북해의 신이 말했다. “소나 말이 네 발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연이라 말하고, 말의 머리에 고삐를 매거나 소의 코를 뚫는 것을 인위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위로써 자연을 손상시키면 안되고, 지혜로 천명을 손상시키면 안되고, 자기의 덕을 명성의 위해 희생시키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자연을 삼가 지켜 잃지 않는 것을 그의 진실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8]- 河伯曰:「然則何貴於道邪?」 北海若曰:「知道者必達於理, 達於理者必明於權, 明於權者不以物害己. 至德者, 火弗能熱, 水弗能溺, 寒暑弗能害, 禽獸不能賊. 非謂其薄之也, 言察乎安危, 寧於禍福, 謹於去就, 莫之能害也. 故曰, 天在內, 人在外, 德在乎天. 知乎人之行, 本乎天, 位乎得. ??而屈伸, 反要而語極.」 河伯曰:「何謂天? 何謂人?」 北海若曰:「牛馬四足, 是謂天. 落馬首, 穿牛鼻, 是謂人. 故曰, 无以人滅天, 无以故滅命, 无以得殉名. 謹守而勿失, 是謂反其眞.」
165` 생긴 대로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의 방법이다 (외편:17.추수,9) 정형수술` 성형수술`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9]- 발 이 하나밖에 없는 기라는 짐승은 발이 많은 지네를 부러워하고, 지네는 발 없이도 움직이는 뱀을 부러워하고, 뱀은 의지하는 데 없이 움직이는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움직이지도 않고 가는 눈(目)을 부러워하고, 눈은 가지 않고도 아는 마음을 부러워한다. 기가 지네에게 말했다. “나는 한발로 껑충껑충 뛰어다니지만 뜻대로 가지지 않습니다. 선생은 수많은 발을 쓰니 얼마나 편하십니까?” 지네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침 뱉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침을 뱉으면 큰 것은 구슬 같고 작은 것은 안개 같은데, 크고 작은 것이 섞여 떨어지는 그 수는 이루 다 알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지금 나는 그처럼 나의 자연스러운 기능을 사용할 따름이어서 그렇게 편리한 줄은 모르고 있습니다.” 지네가 뱀에게 물었다. “저는 많은 발로 다니고 있지만 선생의 발 없는 것만 못하니 어째서입니까?” 뱀이 대답했다. “자연스러운 기능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내 어찌 발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뱀이 바람에게 물었다. “저는 저의 척추와 갈비뼈를 움직여 다니고 있으니 의지하는 곳이 있는 셈입니다. 선생께서는 북해에서 일어나 남해로 불어 들어가는데도 의지하는 곳이란 없으니 어째서입니까?” 바람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북해에서 일어나 남해로 불어 들어갑니다. 그러나 손가락도 나를 이겨낼 수 있고, 발길질도 역시 나를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큰 나무를 꺾고 큰 지붕을 날려 보내는 것이 또한 나의 능력입니다. 작은 것은 이겨내지 못하면서도 큰 것은 이겨내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크게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성인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9]- 夔憐?, ?憐蛇, 蛇憐風, 風憐目, 目憐心. 夔謂?曰:「吾以一足??而行, 予无如矣. 今子之使萬足, 獨奈何?」 ?曰:「不然. 子不見夫唾者乎? 噴則大者如珠, 小者如霧, 雜而下者不可勝數也. 今予動吾天機, 而不知其所以然.」 ?謂蛇曰:「吾以衆足行, 而不及子之无足, 何也?」 蛇曰:「夫天機之所動, 何可易邪? 吾安用足哉!」 蛇謂風曰:「予動吾脊脅而行, 則有似也. 今子蓬蓬然起於北海, 蓬蓬然入於南海, 而似无有, 下野?」 風曰:「然. 予蓬蓬然起於北海而入於南海也, 然而指我則勝我, ?我亦勝我. 雖然, 夫折大木, 蜚大屋者, 唯我能也, 故以衆小不勝爲大勝也. 爲大勝者, 唯聖人能之.」
166` 운명과 시세를 믿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라 (외편:17.추수,10)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10]- 공자가 광이라는 곳에 갔을 때 송나라 사람들이 그를 몇 겹으로 포위하고 해치려 하였으나 공자는 쉬지 않고 금을 타며 노래를 했다. 자로가 들어와서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이 상황에서 즐거우실 수가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내가 이제껏 곤궁한 것을 싫어한지 오래 되었지만 그것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운명일 것이다. 나의 뜻대로 되기를 바란지 오래 되었지만 그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시세(時勢)일 것이다. 요 임금과 순임금의 시대에는 천하에 곤궁한 사람이 없었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지혜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걸왕과 주왕 시대에는 천하에 뜻대로 사는 사람이란 없었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지혜가 없어서 그렇게 되었던 것은 아니다. 시세가 마침 그랬던 것이다. 물 속을 다니면서도 교룡이나 용을 피하지 않는 것은 어부들의 용기이다. 육지를 다니면서도 외뿔소나 호랑이를 피하지 않는 것은 사냥꾼들의 용기이다. 시퍼런 칼날이 눈앞에 맞부딪치고 있어도 죽음을 삶과 같이 여기는 것은 열사들이 용기이다. 자기가 곤궁하여진 것은 운명임을 알고, 뜻대로 되자면 시세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큰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성인의 용기이다. 자로야! 자리에 편히 앉거라. 나는 운명에 의하여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아 무장한 군사를 이끄는 장수가 들어와 사과했다. “저희들은 선생님이 양호인 줄 알고서 포위했던 것입니다. 이제 양호가 아닌 것을 알았으니 사과를 드리고 물러나려고 왔습니다.”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10]- 孔子遊於匡, 衛人圍之數?, 而絃歌不?. 子路入見, 曰:「何夫子之娛也?」 孔子曰:「來! 吾語女. 我諱窮久矣, 而不免, 命也. 求通久矣, 而不得, 時也. 當堯舜之時而天下无窮人, 非知得也. 當桀紂之時而天下无通人, 非知失也. 時勢適然. 夫水行不避蛟龍者, 漁父之勇也. 陸行不避?虎者, 獵夫之勇也. 白刃交於前, 視死若生者, 烈士之勇也. 知窮之有命. 知通之有時, 臨大難而不懼者, 聖人之勇也. 由處矣, 吾命有所制矣.」 无幾何, 將甲者進, 辭曰:「以爲陽虎也, 故圍之. 今非也, 請辭而退.」
167` 우물 안의 개구리 (외편:17.추수,11)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11]- 공손룡이 위모에게 물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옛 훌륭한 임금들의 도를 배웠고, 자라서는 어짊과 의로움의 행동을 밝혔습니다. 같고 다른 것들을 하나로 합하여 논하였고, 같은 돌에서 굳다는 개념과 희다는 개념을 둘로 분리시켰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 하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 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학자들의 지혜를 곤경으로 몰아 넣었고, 여러 사람들의 구변을 궁지로 몰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지극히 통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자의 말을 듣고 나서는 멍하니 정신을 잃고 이상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저의 이론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인지, 저의 지혜가 그만 못한 것인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입을 열 수가 없습니다. 그의 도는 어떤 것입니까?” 공자 모가 책상에 기대어 크게 한숨을 짓고 하늘을 우러러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무너진 우물 안의 개구리 얘기를 듣지 못하였습니까? 개구리가 어느 날 동해의 거북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참 즐겁다. 나는 우물가 위로 뛰어올라가 놀기도 하고, 깨어진 벽 틈으로 들어가 쉬기도 한다. 물로 들어가서는 양편 겨드랑이를 수면에 대고 턱을 물 위에 받치며, 진흙을 발로 차면 발등까지 밖에 빠지지 아니한다. 장구벌레나 게나 올챙이를 둘러보아도 나만한 자가 없다. 거기다가 한 우물을 독점하고서 무너진 우물을 지배하는 즐거움이란 또한 최고의 것이다. 당신도 한 번 들어와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래서 동해의 거북이 들어가 보려고 왼발을 넣기도 전에 오른편 무릎이 걸려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어정어정 걸어나와 개구리에게 바다 얘기를 했습니다. 「천리의 먼 거리로도 바다를 크기를 표현하기는 부족하며, 천 길의 높이로도 바다의 깊이를 형용하기는 부족하다. 우 임금 때 십 년 동안에 아홉 번이나 큰 장마가 졌지만 바다의 물은 불어나지 않았고, 탕 임금 때 팔 년 동안에 일곱 번이나 가뭄이 들었지만 바다의 물은 줄어들지 않았다. 시간이 짧고 긴데 따라 변화하는 법이 없으며, 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줄고 늘지 않는 것이 바다의 즐거움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나자 우물안 개구리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멍하니 정신을 잃어버렸다합니다.”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11]- 公孫龍問於魏牟曰:「龍少學先王之道, 長而明仁義之行. 合同異, 離堅白然不然, 可不可. 困百家之知, 窮衆口之辯. 吾自以爲至達已. 今吾聞莊子之言, ?焉異之. 不知論之不及與, 知之弗若與? 今吾无所開吾喙, 敢問其方.」 公子牟隱机大息, 仰天而笑曰:「子獨不聞夫?井之?乎? 謂東海之鱉曰:‘吾樂與! 出跳梁乎井幹之上, 入休乎缺?之崖. 赴水則接腋持?, 蹶泥則沒足滅?. 還視?蟹與科斗, 莫吾能若也. 且夫擅一壑之水, 而跨??井之樂, 此亦至矣, 夫子奚不時來入觀乎!’ 東海之鱉左足未入, 而右膝已?矣. 於是逡巡而却, 告之海曰:‘夫千里之遠, 不足以擧其大. 千?之高, 不足以極其深. 禹之時十年九?, 而水弗爲加益. 湯之時八年七旱, 而崖不爲加損. 夫不爲頃久推移, 不以多少進退者, 此亦東海之大樂也.’ 於是?井之?聞之, 適適然驚, 規規然自失也.
168` 자연스럽게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외편:17.추수,12)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12]- 위모가 말을 이었다. “당신의 지혜란 옳고 그름의 한계조차 알지 못할 정도인데 장자의 말을 이해하려 하고 있으니, 그것은 마치 모기에게 산을 짊어지게 하고, 노래기에게 황하를 건너게 하는 것과 같아서 감당해 내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지혜는 오묘한 말을 논할 만큼 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일시적인 궤변에 의한 이익이나 추구하는 것은 무너진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지 않습니까? 또한, 장자는 황천을 내리 밟고 하늘로 올라가 남쪽도 없고 북쪽도 없이 질펀히 사방으로 퍼져서,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달하여 있고, 동쪽도 없고 서쪽도 없이 아득한 우주의 근본에서 시작하여 위대한 도로 되돌아와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멍청히 관찰로 이해하고 변론으로 추구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는 대롱으로 하늘을 내다보고, 송곳으로 땅을 가리키며 하늘과 땅의 넓이를 살피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얼마나 작은 소견입니까. 또한, 당신은 수릉의 젊은이가 한단으로 가서 걸음걸이를 배웠던 얘기를 듣지 못하였습니까? 그는 한단의 걸음걸이를 배우기도 전에 옛날의 걸음걸이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어서 돌아왔다 합니다. 지금 당신이 돌아가지 않으면 당신의 옛 마음마저 잊을 것이며, 당신의 옛 직업도 잃을 것입니다.” 공손룡은 이 말을 듣자 입은 열린 채 닫혀지지 않았고, 혀는 말려 올라간 채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몸을 돌려 달아나고 말았다.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12]- 「且夫知不知是非之竟, 而猶欲觀於莊子之言, 是猶使蚊?負山, 商?馳河也, 必不勝任矣, 且夫知不知論極妙之言而自適一時之利者, 是非?井之?與? 且彼方?黃泉而登大皇, 无南无北, 奭然四解, 淪於不測. 无東无西, 始於玄冥, 反於大通. 子乃規規然而求之以察, 索之以辯, 是直用管窺天, 用錐指地也, 不亦小乎! 子往矣! 且子獨不聞夫壽陵餘子之學行於邯鄲與? 未得國能, 又失其故行矣, 直匍匐而歸耳. 今子不去, 將忘子之故, 失子之業.」 公孫龍口?而不合, 舌擧而不下, 乃逸而走.
169` 진흙탕에 꼬리를 끌고 다닐지언정,(외편:17.추수,13)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13]- 장자가 복수 근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을 때, 초나라 임금이 대부 두 사람을 그에게 보내어 자신의 뜻을 전하게 했다. “번거롭겠지만 나라의 정치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드리운 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가 듣건대, 초나라에는 신령스런 거북이 있는데 죽은 지 이미 삼천 년이나 되었다 합니다. 임금은 그 것을 비단으로 싸서 상자에 넣어 묘당 위에 그것을 보관한다 합니다. 그 거북의 입장이라면, 죽어서 뼈만 남기어 존귀하게 되고 싶겠습니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겠습니까?” 두 대부는 대답했다. “그야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려 할 것입니다.” 장자는 말했다. “그러면 돌아가시오. 나는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며 살려는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13]- 莊子釣於?水, 楚王使大夫二人往先焉, 曰:「願以境內累矣!」 莊子持竿不顧, 曰:「吾聞楚有神龜, 死已三千歲矣, 王以巾?而藏之廟堂之上. 此龜者, 寧其死爲留骨而貴乎? 寧其生而曳尾於塗中乎?」 二大夫曰:「寧生而曳尾塗中.」 莊子曰:「往矣! 吾將曳尾於塗中.」
170` 썩은 쥐는 먹지 않는다 (외편:17.추수,14)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14]- 혜자가 양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때, 장자가 그를 만나러 갔었다. 어떤 사람이 혜자에게 “장자가 오는 것은 선생님 대신 이 나라 재상이 되려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니, 혜자는 놀라 사람들을 시켜 사흘 낮 사흘 밤을 두고 장자의 행방을 찾게 했다. 그 뒤에 장자가 찾아와 만나서 얘기했다. “남방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은 원추라 부른다. 당신도 그 새를 알고 있겠지? 원추라는 새는 남해에서 출발하면 북해까지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단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솔개는 썩은 쥐를 갖고 있다가, 원추가 날아오자 자기 것을 빼앗을까봐 끽 소리를 내며 놀랐다고 한다. 지금 당신은 양나라 때문에 나를 보고 끽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인가?”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14]- 惠子相梁, 莊子往見之. 或謂惠子曰:「莊子來, 欲代子相.」 於是惠子恐, 搜於國中三日三夜. 莊子往見之, 曰:「南方有鳥, 其名爲??, 子知之乎? 夫??, 發於南海而飛於北海, 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飮. 於是?得腐鼠, ??過之, 仰而視之曰:‘?!’ 今子欲以子之梁國而?我邪?」
171` 남의 감정을 안다는 것은,(외편:17.추수,15) 물고기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15]- 장자가 혜자와 더불어 호수가 둑을 거닐고 있었다. 그 때 장자가 말했다.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군. 물고기는 즐거울 거야.”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 것을 아는가?”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가?” 혜자가 말했다. “나는 자네가 아니라서 본시 자네를 알지 못하네. 자네도 본시 물고기가 아니니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틀림없네.” 장자가 말했다. “얘기를 그 근본으로 되돌려 보세. 자네가 내게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하고 물었던 것은, 이미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네. 그래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것인데, 나는 호수가에서 물고기와 일체가 되어 그들의 즐거움을 알고 있었던 것이네.” - 莊子(外篇) ; 第17篇 秋水[15]- 莊子與惠子遊於濠梁之上. 莊子曰:「?魚出遊從容, 是魚之樂也.」 惠子曰:「子非魚, 安知魚之樂?」 莊子曰:「子非我, 安知我不知魚之樂?」 惠子曰:「我非子, 固不知子矣. 子固非魚也, 子之不知魚之樂, 全矣.」 莊子曰:「請循其本. 子曰 ‘汝安知魚樂’ 云者, 旣已知吾知之而問我, 我知之濠上也.」
172` 절대적인 가치란 없는 것이다 (외편:18.지락,1) 절대` 상대`적 - 장자(외편) ; 제18편 지락[1]- 천하에는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자기 몸을 잘 살리는 길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무엇을 피하고, 무엇에 몸담아야 하는가? 무엇을 따라 나가야 하고, 무엇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가? 무엇을 즐거워해야 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존중하는 것은 부귀와 장수와 명예이다. 세상에서 즐거워하는 것은 몸의 안락과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옷과 좋은 빛깔과 음악 같은 것들이다. 세상에서 싫어하는 것은 빈천과 일찍 죽는 것과 비난을 받는 것이다. 세상에서 괴롭게 여기는 것은 몸이 편안치 않은 것과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하는 것과 아름다운 옷을 걸치지 못하는 것과 좋은 빛깔을 보지 못하는 것과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것들을 얻지 못하게 되면 크게 근심하며 두려워하게 된다. 이것은 그의 육체만을 위하는 것이니 어리석은 짓이다. 부자라는 사람들은 자신을 괴롭히면서 애써서 일하여 많은 재물을 쌓아 놓고도 다 쓰지 못한다. 이것은 그의 육체만을 위한 것이니 원리에 벗어나는 짓이다. 신분이 귀한 사람들이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하여 일의 잘 되고 잘못 되는 것을 생각한다. 이것은 그의 육신만을 생각하는 것이니 원리로부터 멀리 벗어난 것이다.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은 근심과 더불어 태어나는 것이다. 장수한다고 해도 정신이 희미한 채 오래도록 근심하며 죽지 않는 것이니 얼마나 그것이 괴로울 것인가? 이것은 그의 육신만을 위한 때문이니 원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이다. 열사들은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일컬어지고 있지만 그의 몸을 잘 살리지는 못한 것이다. 나는 그들의 훌륭함이 정말로 훌륭한 것인지 훌륭하지 못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훌륭하다고 하자니 그의 몸도 살리지 못하여 안 될 일이고, 훌륭하지 않다고 하자니 남은 잘 살려줄 수는 있으니 또한 안될 일이다. 그러므로「충실히 간하여도 듣지 않을 때에는 눈치껏 물러서야지 다투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오자서는 임금과 다투다가 그의 육신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다투지 않았다면 명성이 이룩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진실로 훌륭한 것이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 莊子(外篇) ; 第18篇 至樂[1]- 天下有至樂无有哉? 有可以活身者无有哉? 今奚爲奚據? 奚避奚處? 奚就奚去? 奚樂奚惡? 夫天下之所尊者, 富貴壽善也. 所樂者, 身安厚味美服好色音聲也. 所下者, 貧賤夭惡也. 所苦者, 身不得安逸, 口不得厚味, 形不得美服, 目不得好色, 耳不得音聲. 若不得者, 則大憂以懼, 其爲形也, 亦愚哉! 夫富者, 若身疾作, 多積財而不得盡用, 其爲形也亦外矣. 夫貴者, 夜以繼日, 思慮善否, 其爲形也亦疏矣. 人之生也, 與憂俱生, 壽者??, 久憂不死, 何故也! 其爲形也亦遠矣. 烈士爲天下見善矣, 未足以活身. 吾未知善之誠善邪, 誠不善邪? 若以爲善矣, 不足活身. 以爲不善矣, 足以活人. 故曰:「忠諫不聽, ?循勿爭.」 故父子胥爭之以殘其形, 不爭, 名亦不成. 誠有善无有哉?
173` 지극한 명예는 명예를 초월하는 데 있다 (외편:18.지락,2) 무위는 지극한 즐거움이며 몸을 살리는 길이다 - 장자(외편) ; 제18편 지락[2]- 지금 세속에서 하는 짓이나 즐기는 것을 보아도 나는 그 즐거움이 정말 즐거움인지 정말 즐거움이 아닌지를 알지 못한다. 내가 세속에서 즐기는 것을 관찰한 바로는 모두가 무리 지어 나가면서 꼭 해야할 말, 안하고는 못 배길 일처럼 하면서 모두가 즐겁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이 즐거운 것인지, 즐겁지 못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과연 즐거움이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나는 무위야말로 진실한 즐거움이라 여기고 있다. 그러나 세속에서는 그것을 크게 괴로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지극한 즐거움이란 즐거움을 초월하는데 있고, 지극한 명예란 명예를 초월하는데 있다고 하는 것이다. 세상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정말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위만은 옳고 그름의 판단에 단정을 내릴 수가 있다. 지극한 즐거움과 몸을 살려주는 길은 오직 무위에 있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하늘은 무위한데 그로 인해 맑다. 땅은 무위한데 그로 인해 안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 두 가지 무위가 서로 합쳐져 만물 모두가 변화하는 것이다. 아득하고 아련하여 그 근원을 알 수가 없다. 아득하고 아련하여 그 형체를 알 수가 없다. 만물이 번성하고 있지만 모두가 무위로부터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은 무위이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으로 그 누가 무위할 수 있겠는가? - 莊子(外篇) ; 第18篇 至樂[2]- 今俗之所爲與其所樂, 吾又未知樂之果樂邪, 果不樂邪? 吾觀夫俗之所樂, 擧群趣者??然如將不得已, 而皆曰樂者, 吾未知之樂也, 亦未知之不樂也. 果有樂无有哉? 吾以无爲誠樂矣, 又俗之所大苦也. 故曰:「至樂无樂, 至譽无譽.」 天下是非果未可定也. 雖然, 无爲可以定是非. 至樂活身, 唯无爲幾存. 請嘗試言之. 天无爲以之淸, 地无爲以之寧, 故兩无爲相合, 萬物皆化生. 芒乎?乎, 而无從出乎! ?乎芒乎, 而无有象乎! 萬物職職, 皆從无爲殖. 故曰天地无爲也而无不爲也, 人也孰能得无爲哉!
174` 죽음이란 자연의 변화에 불과하다 (외편:18.지락,3) - 장자(외편) ; 제18편 지락[3]- 장자의 아내가 죽자 혜자가 조상하러 갔다. 장자는 그 때 두 다리를 뻗고 앉아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말하였다 “그분과 함께 살았고, 자식을 길렀으며, 함께 늙었다. 그런 부인이 죽었는데 곡은 안하고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장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그녀가 죽고서 처음에는 나라고 어찌 슬픔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가 태어나기 이전을 생각해 보니 본시는 삶이 없었던 것이었고, 삶만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형체조차 없었던 것이었으며, 형체만이 아니라 기운조차 없었던 것이다. 흐리멍덩한 사이에 섞이어 있었으나 그 것이 변화하여 기운이 있게 되었고, 기운이 변화하여 형체가 있게 되었으며, 형체가 변화하여 삶이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아내가 또 변화하여 죽어간 것이다. 이것은 봄, 가을과 여름, 겨울의 사철이 운행하는 것과 같은 변화였던 것이다. 그 사람은 하늘과 땅이라는 거대한 방 속에 편안히 잠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소리내어 그의 죽음을 따라서 곡을 한다면 천명에 통달하지 못한 짓이라 스스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곡하지 않고 노래를 부른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8篇 至樂[3]- 莊子妻死, 惠子弔之, 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 惠子曰:「與人居, 長者.老.身死, 不哭, 亦足矣, 又鼓盆而歌, 不亦甚乎!」 莊子曰:「不然. 是其始死也, 我獨何能无槪然! 察其始而本无生, 非徒无生也而本无形, 非徒无形也而本无氣. 雜乎芒?之間, 變而有氣, 氣變而有形, 形變而有生, 今又變而之死, 是相與爲春秋冬夏四時行也. 人且偃然寢於巨室, 而我??然隨而哭之, 自以爲不通乎命, 故止也.」
175` 죽고 사는 것은 밤과 낮과 같다 (외편:18.지락,4) - 장자(외편) ; 제18편 지락[4]- 지리숙과 활개숙이 명백의 언덕과 곤륜산 봉우리 같은 황제가 전에 노닐다 쉬던 곳을 구경갔다. 그런데 갑자기 활개숙의 왼쪽 팔꿈치에 혹이 생겨 그는 마음속으로 놀라면서 언짢게 생각하는 듯 했다. 지리숙이 말했다. “자네는 그것이 언짢은가?” 활개숙이 대답했다. “아닐세, 내가 어찌 언짢게 생각하겠는가? 무엇이 생겨나려면 다른 것에 의지해야만 하네. 무엇이건 힘을 빌려야 생겨나게 되는 것이지, 그러니 생겨난다는 것은 먼지나 때가 묻는 것과 같고. 죽고 사는 것은 밤과 낮이나 같네. 나와 자네는 그런 변화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그 변화가 나에게 미친 것이네. 내 어찌 무엇을 언짢게 생각하겠는가?” - 莊子(外篇) ; 第18篇 至樂[4]- 支離叔與滑介叔觀於冥伯之丘, 崑崙之虛, 黃帝之所休. 俄而柳生其左?, 其意蹶蹶然惡之. 支離叔曰:「子惡之乎?」 滑介叔曰:「亡, 予何惡! 生者, 假借也. 假之雅生生者, 塵垢也. 死生爲晝夜. 且吾與子觀化而化及我, 我又何惡焉!」
176` 삶과 죽음은 같은 것이다 (외편:18.지락,5) 삶` 죽음` 생사` - 장자(외편) ; 제18편 지락[5]- 장자가 초나라로 가다가 앙상한 해골을 보았는데, 바싹 말라 겨우 형체만이 남아 있었다. 장자가 말채찍으로 해골을 두드리며 해골에게 물었다. “그대는 삶을 탐하여 이치를 잃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나라를 망치는 일을 하여 처형을 당해 이렇게 되었는가? 아니면 그대가 선하지 못한 행동을 함으로서 부모처자에게까지 치욕을 남겨주게 될까 두려워 이렇게 되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헐벗고 굶주려 이렇게 되었는가? 아니면 나이가 많아서 이렇게 되었는가?” 그리고는 해골을 끌어다 베고 누워 잤다. 밤중에 해골이 꿈에 나타나 말했다. “조금 전에 당신이 한 얘기는 변사와 같은 말이었다. 당신이 말한 것은 모두가 살아 있는 사람의 괴로움이 되는 것이다. 죽어 버리면 그런 것이 없다. 당신은 죽음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고 싶은가?” 장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해골이 말했다. “죽음의 세계에 있어서는 위로는 임금이 없고, 아래로는 신하가 없다. 대범히 하늘과 땅을 봄과 가을로 삼고 있다. 비록 임금 노릇이 즐겁다지만 이보다 더 할 수는 없다.” 장자가 그것을 믿지 않고 말했다. “내가 사람의 목숨을 주관하는 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육체를 만들게 하여 당신의 뼈와 살과 살갗을 갖추게 하고서, 당신의 부모처자와 마을 사람과 아는 사람들에게 돌려보내 주도록 한다면, 당신은 그렇게 하겠습니까?” 해골은 심히 화를 내며 말했다. “내 어찌 이 즐거움을 버리고서 다시 산 사람의 고생스러움으로 돌아가겠는가?” - 莊子(外篇) ; 第18篇 至樂[5]- 莊子之楚, 見空??, ?然有形, ?以馬?因而問之, 曰:「夫子貪生失理, 而爲此乎? 將子有亡國之事, 斧鉞之誅, 而爲此乎! 將子有不善之行, 愧遺父母妻子之醜, 而爲此乎? 將子有凍?之患, 而爲此乎? 將子之春秋故及此乎?」 於是語卒, 援??, 枕而臥. 夜半, ??見夢曰:「子之談者似辯士. 視子所言, 皆生人之累也, 死則无此矣. 子欲聞死之說乎?」 莊子曰:「然.」 ??曰:「死, 无君於上, 无臣於下. 亦无四時之事, 從然以天地爲春秋, 雖南面王樂, 不能過也.」 莊子不信, 曰:「吾使司命復生子形, 爲子骨肉肌膚, 反子父母妻子閭里知識, 子欲之乎?」 ??深?蹙?曰:「吾安能棄南面王樂而復爲人間之勞乎!」
177` 본성을 벗어나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 (외편:18.지락,6) - 장자(외편) ; 제18편 지락[6]- 안연이 동쪽 제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공자가 걱정하는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자공이 자리에 내려앉으며 물었다. “안연이 동쪽 제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얼굴에 걱정하는 빛이 역력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좋은 질문이다. 옛날 관자가 한 말 중에서 내가 매우 훌륭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있다. 그는 주머니가 작으면 큰 것을 지니고 있을 수가 없고, 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물을 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말은 운명에는 이미 정해진 것이 있고, 형체에는 적절히 맞는 것들이 있어서, 그것들은 늘이거나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내 가 두려워하는 것은 안연은 제나라 임금에게 가서 요순과 황제의 도를 이야기하며, 수인과 신농의 말을 강조할 것이지만, 제나라 임금은 마음 속으로 그런 것들을 추구해 보아도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해를 못하면 안연에게 의혹을 품을 것이고, 의혹을 품으면 안연을 죽이고 말 것이다. 너는 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느냐? 옛 날에 어떤 새가 노나라 교외에 와서 내려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그 새를 맞이하여 종묘로 불러들여 잔치를 베풀고, 구소의 음악을 연주하면서 쇠고기, 양고기, 돼지고기로 안주를 삼았다. 새는 눈을 멍하니 뜨고 걱정하고 슬퍼하면서 한 조각의 고기도 먹지 못하고, 한잔의 술도 마시지 못하고서 사흘만에 죽고 말았다. 이것은 사람인 자기를 양육하는 방법으로 새를 양육했기 때문이다. 그는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그 새를 기르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려면 마땅히 그가 살던 곳에 살게 하고, 호숫가에 노닐게 하며, 강이나 호수에서 헤엄치게 하고, 미꾸라지나 송사리를 잡아먹게 하며, 같은 새들과 줄지어 날아가 내려앉고 멋대로 유유히 지내게 해야만 되는 것이다. 새는 사람의 말조차 듣기 싫어하거늘 어찌 시끄러운 음악을 견디겠느냐? 함지나 구소의 음악을 동정의 들판에서 연주한다면, 새들은 그 소리를 듣고 날아가 버리고, 짐승들은 그 소리를 듣고 달아나 버리고, 물고기들은 그 소리를 듣고 깊숙이 물 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이다. 사람들만이 그것을 들으면 흥이 나서 서로 모여들어 둘러싸고 구경을 한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살지만 사람은 물 속에 들어가면 죽어 버린다. 이 둘은 서로 자기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옛날 성인들은 그들의 능력을 같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할 일을 같게 맡기지 않았다. 이름은 사실을 근거로 하고, 법도는 모두 본성에 어울리도록 설정했다. 그래서 그것을 조리가 통달하고 행복이 지속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8篇 至樂[6]- 顔淵東之齊, 孔子有憂色, 子貢下席而問曰:「小子敢問, 回東之齊, 夫子有憂色, 何邪?」 孔子曰:「善哉汝問! 昔者管子有言, 丘甚善之, 曰:‘?小者不可以懷大, ?短者不可以汲深.’ 夫若是者, 以爲命有所成而形有所適也, 夫不可損益. 吾恐回與齊侯言堯舜黃帝之道, 而重以燧人神農之言. 彼將內求於己而不得, 不得則惑, 人惑則死. 「且女獨不聞邪? 昔者海鳥止於魯郊, 魯侯御而觴之于廟, 奏九韶以爲樂, 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憂悲, 不敢食一?, 不敢飮一杯, 三日而死. 此以己養養鳥也, 非以鳥養養鳥也. 夫以鳥養養鳥者, 宜栖之深林, 遊之壇陸, 浮之江湖, 食之??, 隨行列而止, 委蛇而處. 彼唯人言之惡聞, 奚以夫??爲乎! 咸池九韶之樂, 張之洞庭之野, 鳥聞之而飛, 獸聞之而走, 魚聞之而下入, 人卒聞之, 相與還而觀之. 魚處水而生, 人處水而死, 彼必相與異, 其好惡故異也. 故先聖不一其能, 不同其事. 名止於實, 義設於適, 是之謂條達而福持.」
178` 나고 죽는 변화는 큰 문제가 아니다 (외편:18.지락,7) - 장자(외편) ; 제18편 지락[7]- 열자가 길을 가다가 길가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마침 백년은 된 듯 한 해골을 보고서 쑥대를 뽑아 가지고 해골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오직 나와 그대만이 진정한 죽음도 없고, 진정한 삶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연 죽어 있는 그대는 슬픈 것인가? 살아 있는 나는 기쁜 것인가?” 여러 가지 물건은 각기 생겨난 기틀이 있다. 물을 만나면 물때가 되고, 물에 젖은 흙 사이에 있게 되면 푸른 이끼가 되며, 언덕 위에 나면 질경이가 된다. 질경이가 썩은 흙을 만나면 오족이 된다. 뿌리는 굼벵이가 되며, 그 잎새는 나비가 된다. 나비는 변화하여 벌레가 되는데, 아궁이 밑에 생겨날 때에는 매미껍질 같은데 그 이름을 구철이라 한다. 이 구철이 천 날이 지나면 변화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건여골이라 한다. 건여골이 밷는 침이 사미라는 벌레가 되고, 사미는 식혜가 된다. 이노라는 벌레는 식혜에서 생겨난다. 황황이라는 벌레는 구유에서 생겨나고, 구유는 무예에서 생겨나며, 무예는 부권에서 생겨난다고 한다. 양해라는 풀은 죽순이 나지 않는 오래된 대와 합치어서 청녕이란 벌레를 낳는데, 청녕이 표범을 낳고, 표범이 말을 낳고, 말이 사람을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또 변화의 오묘한 기틀로 들어가 변화한다. 만물은 모두 변화의 기틀에서 생겨나서, 모두가 변화의 기틀에 의하여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8篇 至樂[7]- 列子行食於道從, 見百歲??, ?蓬而指之曰:「唯予與汝知而未嘗死, 未嘗生也. 若果養乎? 予果歡乎?」 種有幾, 得水則爲繼, 得水土之際則爲??之衣, 生於陵屯則爲陵?, 陵?得鬱棲則爲烏足. 烏足之根爲??, 其葉爲胡蝶. 胡蝶胥也化而爲蟲, 生於?下, 其狀若脫, 其名爲??. ??千日爲鳥, 其名爲乾餘骨. 乾餘骨之沫爲斯彌, 斯彌爲食醯. ?輅生乎食醯. 黃?生乎九猷. ?芮生乎腐?. 羊奚比乎不[筍+子], 久竹生靑寧. 靑寧生程, 程生馬, 馬生人, 人又反入於機. 萬物皆出於機, 皆入於機.
179` 삶을 잊으면 정신이 손상받지 않는다 (외편:19.달생,1) 육체를 보양하는 것은 삶을 기르는 것이 아니다 - 장자(외편) ; 제19편 달생[1]- 삶의 진실에 통달한 사람은 타고난 본성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에는 힘쓰지 않는다. 천명의 진실에 통달한 사람은 운명으로써 어쩔 수 없는 일에는 힘쓰지 않는다. 육체를 보양하려면 반드시 먼저 물건이 있어야 하는데, 남아도는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육체를 보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삶을 지탱하자면 반드시 먼저 육체를 손상시키지 말아야 할 것인데, 육체가 손상되지 않으면서도 삶을 잃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삶이 태어나는 것은 아무도 물리칠 수 없는 것이며, 삶이 떠나버리는 것도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육체를 보양하는 것으로써 충분히 삶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육체를 보양하는 것으로써는 진실로 삶을 보존하기에 족하지 않다고 한다면, 세상에 할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비록 할 만한 것이 못되는데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육체를 보양하는 데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육체를 보양하려는 생각을 버리려 한다면 세상일을 버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세상일을 버리면 아무런 거리낌도 없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면 마음이 바르고 평안해진다. 마음이 바르고 평안하면 자연과 더불어 삶을 나날이 새로이 하게 될 것이다. 삶을 나날이 새로이 하게 되면 거의 도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세상일은 일부러 버리지 않아도 버려지고, 삶은 일부러 잊지 않아도 잊어져야 한다. 일을 버리면 곧 육체가 고생스럽지 않게 되고, 삶을 잊으면 곧 정신이 손상 받지 않는다. 육체가 완전하고 정신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면 자연과 일체가 되게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은 만물의 부모이다. 하늘의 양과 땅의 음의 기운이 합쳐지면 형체가 이룩되고, 흩어지면 처음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이루게 된다. 육체와 정신이 손상됨이 없는 것, 이것을 자연의 변화와 함께 옮아가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정신의 정순함이 극점에 이르면 본원으로 돌아가서 하늘의 활동을 돕게 되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9篇 達生[1]- 達生之情者, 不務生之所无以爲, 達命之情者, 不務命之所无奈何. 養形必先之以物, 物有餘而形不養者有之矣. 有生必先无離形, 形不離而生亡者有之矣. 生之來不能却, 其去不能止. 悲夫! 世之人以爲養形足以存生. 而養形果不足以存生, 則世奚足爲哉! 雖不足爲而不可不爲者, 其爲不免矣. 夫 欲免爲形者, 莫如棄世. 棄世則无累, 无累則正平, 正平則與彼更生, 更生則幾矣. 事奚足棄而生奚足遺? 棄事則形不勞, 遺生則精不虧. 夫形全精復, 與天爲一. 天地者, 萬物之父母也, 合則成體, 散則成始. 形精不虧, 是謂能移. 精而又精, 反以相天.
180` 몸과 정신이 완전히 자연스러운 상태에 있으면,,, (외편:19.달생,2) 장자(외편) ; 제19편 달생[2]- 열자가 관윤에게 물었다. “지인은 물 속에 들어가도 숨막히지 않고, 불을 밟아도 뜨겁지 않으며, 만물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어떻게 하여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관윤이 말했다. “그것은 정순한 기운을 잘 지키기 때문이다. 지혜와 기교나 과단성과 용기로써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모습과 모양과 소리와 색채를 지니고 있는 것은 모두 물건인 것이다. 물건과 물건이 어찌 서로 사이가 멀겠는가? 어찌 그중 어느 것이 우선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들은 형태와 빛깔에 의하여 차이가 결정될 따름인 것이다. 그런데 물건의 형체가 이루어지기 전의 원초적인 경지에 이르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던 경지에 머무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를 체득하여 추궁해 나가는 사람이라면 다른 물건이 어떻게 그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지극한 사람은 자기 분수에 지나치지 않는 경지에 처신하고, 무한히 변화하는 법도에 몸을 맡기고, 만물이 시작되고 끝나는 변화 속에 노닌다. 그의 본성을 순일(純一)케 하고, 그의 정기를 기르고, 그의 덕을 자연에 합치시키어, 만물이 이룩되는 조화에 통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천성을 지키고 있는 것이 완전하며, 그의 정신에는 틈이 없는 것이니, 물건이 어디로부터 그에게 개입하겠는가? 술 에 취한 사람은 수레에서 떨어져도 다치기는 할지언정 죽지는 않는다. 몸의 골절은 다른 사람과 같지만 그를 손상시키는 점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은 술 취한 사람의 정신은 완전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수레에 타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과 삶, 놀람과 두려움이 그의 가슴속에 스며들지 않으므로 어떤 물건에 부딪친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는 술에 의하여 완전한 정신 상태를 얻고 있으므로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 하물며 자연에 의해서 완전한 정신 상태를 얻은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성인은 자연에 몸을 담고 있으므로 아무 것도 그를 손상시킬 수 없는 것이다. 원수를 갚으려는 사람도 원수의 칼까지 꺾지는 않으며, 비록 성을 잘 내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바람에 날려 온 기왓장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물건처럼 무심한 지경에 이르면 온 천하가 태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공격하여 싸우는 혼란이 없어지고, 사람을 죽이는 형벌이 없어지자면 이 길을 따라야만 되는 것이다. 인 위적인 자연을 개발시키지 아니하고, 자연스러운 자연을 개발시키는 사람에게는 덕이 생겨날 것이고,인위적인 것을 개발시키는 사람에게는 피해가 생겨날 것이다. 자연스러움을 싫어하지 않으면서, 인위적인 것을 삼갈 줄 알아야만 한다. 그러면 백성들은 거의 그의 천진함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9篇 達生[2]- 子列子問關尹曰:「至人潛行不窒, 蹈火不熱, 行乎萬物之上而不慄. 請問何以至於此?」 關尹曰:「是純氣之守也, 非知巧果敢之列. 居, 予語汝! 凡有貌象聲色者, 皆物也, 物與物何以相遠? 夫奚足以至乎先? 是形色而已. 則物之造乎不形而止乎无所化, 夫得是而窮之者, 物焉得而止焉! 彼將處乎不淫之度, 而藏乎无端之紀, 遊乎萬物之所終始, 壹其性, 養其氣, 合其德, 以通乎物之所造. 夫若是者, 其天守全, 其神無?, 物奚自入焉! 「夫醉者之墜車, 雖疾不死. 骨節與人同而犯害與人異, 其神全也, 乘亦不知也, 墜亦不知也, 死生驚懼不入乎其胸中, 是故?物而不?. 彼得全於酒而猶若是, 而況得全於天乎? 聖人藏於天, 故莫之能傷也.」 <復讐者不折?干, 雖有?心者不怨飄瓦, 是以天下平均. 故无攻戰之亂, 无殺戮之刑者, 由此道也. 不開人之天, 而開天之天, 開天者德生, 開人者賊生. 不厭其天, 不忽於人, 民幾乎以其眞!>
181` 자연의 도를 통하는 데는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외편:19.달생,3) - 장자(외편) ; 제19편 달생[3]- 공자가 초나라를 가는 길에 숲 속을 지나다가 꼽추가 매미를 잡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매미를 줍듯 하고 있었다. 공자가 물었다. “당신은 교묘하기도 하군요. 무슨 도가 있는 것입니까?” 꼽추가 대답했다. “제게도 도가 있습니다. 오뉴월 사이에 매미채 위에 알을 두 개 포개어 놓고서 떨어뜨리지 않게 되면, 실패하는 일이 극히 적게 됩니다. 알을 세 개 포개어 놓고서도 떨어뜨리지 않게 되면 실패하는 일은 열에 한번 정도 있게 됩니다. 알을 다섯 개 포개어 놓고도 떨어뜨리지 않게 되면 마치 매미를 줍는 것 같이 잡게 됩니다. 지금 나의 몸가짐은 마치 베어낸 나무 등걸 같고, 나의 팔놀림은 마치 마른 나뭇가지 같이 됩니다. 비록 하늘과 땅이 크고 만물은 많다고 하지만 오직 매미 날개만을 알게 됩니다. 나는 몸과 마음이 젖혀지지도 않고, 기울어지지도 않으며, 어떤 일에도 매미 날개에 대한 집념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찌 잡히지 않겠습니까?” 공자가 그의 제자들을 돌아다보면서 말했다. “의지가 헛갈리지 않고 통일되면 귀신에 가깝게 되는 법이라 했는데, 그것은 저 꼽추 영감을 두고 한 말 같구나.” - 莊子(外篇) ; 第19篇 達生[3]- 仲尼適楚, 出於林中, 見??者承?, 猶?之也. 仲尼曰:「子巧乎! 有道邪?」 曰:「我有道也. 五六月累丸二而不墜, 則失者?銖. 累三而不墜, 則失者十一. 累五而不墜, 猶?之也. 吾處身也, 若厥株拘. 吾執臂也, 若槁木之枝. 雖天地之大, 萬物之多, 而唯?翼之知. 吾不反不側, 不以萬物易?之翼, 何爲而不得!」
182` 외물에 마음이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외편:19.달생,4) - 장자(외편) ; 제19편 달생[4]- 안연이 공자에게 물었다. “제가 일찍이 상심의 못을 건넌 적이 있었는데, 사공의 배 다루는 솜씨가 귀신과 같았습니다. 제가 배 젓는 솜씨를 배울 수 있겠는가 물으니, 그는「배울 수 있습니다. 헤엄을 잘치는 사람은 쉽사리 배울 수 있고, 잠수를 잘하는 사람은 배를 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곧 저을 수 있을 겁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그 까닭을 물었으나 제게 얘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 쉽사리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물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잠수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배를 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도 곧 저을 수 있다는 것은 그는 심연을 언덕과 같이 보고, 배가 뒤집히는 것을 마치 수레가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기 때문이다. 뒤집히고 뒤로 물러나는 것과 같은 온갖 사태가 눈앞에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의 마음에는 전혀 개입 되지 않는 것이다. 이쯤 되면 어디를 간들 여유가 있지 않겠느냐? 질그릇을 내기로 걸고 활을 쏘면 잘 쏠 수 있지만, 띠고리를 내기로 걸고 쏘면 마음이 걸리게 되고, 황금을 내기로 걸고 쏘면 눈이 가물가물하게 된다. 그의 기술은 언제나 같지만 아껴야 할 물건이 있게 되면 밖의 물건이 소중하게 여겨지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밖의 물건을 소중히 여기게 되면 자기 속마음은 졸렬해지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9篇 達生[4]- 顔淵問仲尼曰:「吾嘗濟乎觴深之淵, 津人操舟若神. 吾問焉, 曰:‘操舟可學邪?’ 曰:‘可. 善游者數能. 若乃夫沒人, 則未嘗見舟而便操之也.’ 吾問焉而不吾告, 敢問何謂也?」 仲尼曰:「善游者數能, 忘水也. 若乃夫沒人之未嘗見舟而便操之也, 彼視淵若陵, 視舟之覆猶其車却也. 覆却萬方陳乎前而不得入其舍, 惡往而不暇! 以瓦注者巧, 以鉤注者憚, 以黃金注者?. 其巧一也, 而有所矜, 則重外也. 凡外重者內拙.」
183` 양생을 위해서는 일상생활이 중요하다 (외편:19.달생,5) - 장자(외편) ; 제19편 달생[5]- 전개지가 주나라 위공을 만났을 때 위공이 말했다. “내가 듣건대 축신은 양생을 배웠다 합니다. 선생께서는 축신에게 배웠는데 어떤 얘기를 들으셨습니까?” 전개지가 말했다. “저는 빗자루를 들고 뜰 앞에서 시중을 들었을 뿐이니 선생님으로부터 무엇을 들었겠습니까?” 위공이 말했다. “선생은 너무 겸손하십니다. 들려주십시오.” 전개지가 말했다.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양생을 잘하는 사람은 양을 치는 것이나 같은 것이어서, 그 중 뒤쳐지는 놈을 발견하여 채찍질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위공이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노나라에 단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위 굴 속에 살면서 골짜기 물을 마시며 지냈습니다.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지 아니하고, 나이가 칠십이 되었어도 어린아이 같은 얼굴빛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호랑이가 그를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또 장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잣집이고 가난한 집이고 간에 뛰어다니며 사귀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사십 세에 열병에 걸려 죽어버렸습니다. 단표는 그의 속마음을 길렀으나 그의 밖을 호랑이가 잡아 먹어버렸습니다. 장의는 그의 외부의 교제는 잘 하였으나 그의 안에서 병이 그를 공격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가 그 중 뒤쳐지는 놈에게 채찍질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공자도 말하기를「안으로 들어가 내부만을 기르면서 숨지 말 것이며, 밖으로 나와 외부만을 기르며 드러내지 말 것이며, 마른 나무처럼 중앙에 우뚝 서 있어야 한다. 내부와 외부와 중앙의 조화가 잘 터득되면 그는 지극한 사람으로서 이름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험 난한 길이 있어 열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지나다 죽는다면 곧 그의 부자 형제들은 서로 경계를 할 것이며, 반드시 많은 하인들을 보호자로 데리고서야 그 길을 나설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가장 두려워하여야 할 곳은 방의 이불 속이나 먹고 마시고 하는 일상 생활입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경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잘못된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9篇 達生[5]- 田開之見周威公. 威公曰:「吾聞祝腎學生, 吾子與祝腎游, 亦何聞焉?」 田開之曰.「開之操拔?以侍門庭, 亦何聞於夫子!」 威公曰:「田子无讓, 寡人願聞之.」 開之曰:「聞之夫子曰:‘善養生者, 若牧羊然, 視其後者而鞭之.’」 威公曰:「何謂也?」 田開之曰:「魯有單豹者, 巖居而水飮, 不與民共利, 行年七十而猶有?兒之色. 不幸遇餓虎, 餓虎殺而食之. 有張毅者, 高門縣薄, 无不走也, 行年四十而有內熱之病以死. 豹養其內而虎食其外, 毅養其外而病攻其內, 此二子者, 皆不鞭其後者也.」 仲尼曰:「无入而藏, 无出而陽柴立其中央. 三者若得, 其名必極. 夫畏塗者, 十殺一人, 則父子兄弟相戒也, 必盛卒徒而後敢出焉, 不亦知乎! 人之所取畏者, ?席之上, 飮食之間. 而不知爲之戒者, 過也!」
184` 모든 생명은 본성대로 편안히 살기를 원한다 (외편:19.달생,6) - 장자(외편) ; 제19편 달생[6]- 제사를 관장하는 관리가 예복을 차려 입고 돼지우리로 가서는 돼지에게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죽음을 싫어하느냐? 내가 석 달 동안 몸을 깨끗이 하고, 사흘 동안 금기를 지켜, 흰 띠풀을 깔고 요리한 다음 너의 어깨와 엉덩이 고기를 장식된 제기 위에 모셔 놓으려 한다. 그러면 너도 좋지 않겠느냐?” 돼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을 하였을 것이다. “겨나 지게미를 먹이면서 살더라도 돼지우리 속에 그냥 두는 것이 좋겠다.” 사 람이 자신을 위해서 생각할 때에는 만약 살아서는 높은 벼슬자리에 있고, 죽어서는 상여 위 아름다운 관속에 놓이게 된다면 곧 그렇게 하려고 들 것이다. 돼지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그의 편안한 삶을 부정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편안한 삶을 취하고 있으니, 돼지만을 다르게 취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莊子(外篇) ; 第19篇 達生[6]- 祝宗人玄端以臨牢?, 說?曰:「汝奚惡死? 吾將三月[牛+?]汝, 十日戒, 三日齊, 藉白茅, 加汝肩尻乎彫俎之上, 則汝爲之乎?」 爲?謀, 曰不如食以糠糟而錯之牢?之中, 自爲謀, 則苟生有軒冕之尊, 死得於豚楯之上, 聚?之中則爲之. 爲?謀則去之, 自爲謀則取之, 所異?者何也?
185` 사람의 병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외편:19.달생,7) 질병` 이픔` 건강` 귀신` 정신` - 장자(외편) ; 제19편 달생[7]- 제나라 환공이 택지로 사냥을 나갔는데, 관중이 수레를 몰고 있었다. 환공은 마침 귀신을 보고서 관중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중부께서도 무엇을 보셨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저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환공이 돌아와서 헛소리를 하며 실성한 병에 걸려 여러 달 출입을 못했다. 제나라 선비 중에 황자고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환공을 찾아보고 말했다. “임금님께서는 스스로 앓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귀신이 어찌 임금님을 앓도록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마음 속에 엉긴 기운이 흩어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으면 곧 정신상태가 불안전하게 됩니다. 기운이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오지 않으면 사람을 쉽사리 성내게 만듭니다. 내려가기만 하고 올라오지 않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잘 잊도록 만듭니다.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오지도 않아서 몸 속에 담기어 심장에 가득 차면 곧 병이 됩니다.” 환공이 말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귀신은 있는 것입니까?” 황자고오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진흙탕에는 이라는 귀신이 있고, 부엌 아궁이에는 계라는 귀신이 있습니다. 집안의 쓰레기 더미에는 뇌정이라는 귀신이 생기게 되고, 집의 동북쪽 모퉁이에는 배아해룡이라는 귀신이 뛰어다니고, 서북쪽 모퉁이에는 일양이라는 귀신이 있기 마련입니다. 물에는 망상이라는 귀신이 있고, 언덕에는 졸이라는 귀신이 있으며, 산에는 기라는 귀신이 있고, 들에는 방황이라는 귀신이 있으며, 못에는 위사라는 귀신이 있습니다.” 환공이 물었다. “위사라는 귀신은 모양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황자고오가 대답했다. “위사는 그 굵기가 수레바퀴통만 하고, 길이는 수레 멍에만 하며, 자주색 옷에 붉은 관을 쓰고 있습니다. 그 놈의 성질은 수레 달리는 소리를 듣기 싫어하며, 사람을 보면 그의 목을 빼어들고 섭니다. 그 놈을 본 사람은 거의 모두 패자가 된다고 합니다.” 환공은 기뻐서 웃으며 말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본 놈입니다.” 그리고는 옷과 관을 바르게 하고 그와 함께 앉아 이야기를 하였는데, 하루도 넘기기 전에 어느덧 병이 나아버렸다. - 莊子(外篇) ; 第19篇 達生[7]- 桓公田於澤, 管仲御, 見鬼焉. 公撫管仲之手曰:「仲父何見?」 對曰:「臣无所見.」 公反, ??爲病, 數日不出. 齊士有皇子告敖者曰:「公則自傷, 鬼惡能傷公! 夫忿?之氣, 散而不反, 則爲不足. 上而不下, 則使人善怒. 下而不上, 則使人善忘. 不上不下, 中身當心, 則爲病.」 桓公曰:「然則有鬼乎?」 曰:「有. 沈有履, ?有?. 戶內之煩壤, 雷霆處之. 東北方之下者, 倍阿?龍躍之. 西北方之下者, 則?陽處之. 水有罔象, 丘有[山+幸], 山有夔, 野有彷徨, 澤有委蛇.」 公曰:「請問, 委蛇之狀何如?」 皇子曰:「委蛇, 其大如?, 其長如轅, 紫衣而朱冠. 其爲物也, 惡聞雷車 之聲, 則捧其首而立. 見之者殆乎覇.」 桓公?然而笑曰:「此寡人之所見者也.」 於是正衣冠與之坐, 不終日而不知病之去也.
186` 단계적으로 수양을 쌓아 완전한 덕을 지녀야 한다 (외편:19.달생,8) - 장자(외편) ; 제19편 달생[8]- 기성자가 임금을 위해서 싸움닭을 기르고 있었다. 임금이 열흘 만에 닭을 싸움시킬 수 있겠는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안됩니다. 아직 헛되이 거만하여 기운만 믿고 있습니다.” 열흘만에 다시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안됩니다. 아직도 상대방에 대하여 울림이나 그림자처럼 호응하기만 합니다.” 열흘을 더 지나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안됩니다. 아직도 상대방을 노려보며 기운이 성합니다.” 열흘이 더 지나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거의 되었습니다. 비록 상대방 닭이 운다 하더라도 이미 아무런 태도의 변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를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깎아놓은 닭과 같습니다. 그의 덕은 완전해졌습니다. 다른 닭들은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되돌아 달아날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9篇 達生[8]- 紀?子爲王養鬪鷄. 十日而問:「鷄可鬪已乎?」 曰:「未也, 方虛?而恃氣.」 十日又問, 曰:「未也. 猶應嚮景.」 十日又問, 曰:「未也. 猶疾視而盛氣.」 十日又問, 曰:「幾矣. 鷄雖有鳴者, 已无變矣, 望之似木鷄矣, 其德全矣, 異鷄无敢應, 見者反走矣.」
187` 사사로움을 버리고 자연의 움직임에 맡겨라 (외편:19.달생,9) - 장자(외편) ; 제19편 달생[9]- 공자가 여양에 구경을 갔다. 거기에는 삼십 길 높이의 폭포가 있는데, 물거품이 삼십 리나 소용돌이치며 흐르고 있어 큰 자라나 악어나 물고기나 자라도 헤엄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한 남자가 거기에서 헤엄치는 것을 보고는, 걱정이 있어 죽으려는 사람인 줄로 생각하고는 제자들을 시켜 흐름을 따라 내려가 그를 구해주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수백 보를 헤엄치고 나와서는 머리를 흩트린 채 노래를 부르며 언덕 아래를 거닐고 있었다. 공자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나는 선생을 귀신인 줄로 알았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사람이 분명하군요. 물 속을 헤엄치는 데도 특별한 도가 있는 것입니까?” 남자가 말했다. “없습니다. 내게는 도가 없습니다. 나는 습성으로 헤엄을 시작했는데 습성이 성격으로 발전되고, 성격이 천명으로 이룩된 것입니다. 나는 소용돌이와 함께 들어가서는 솟아오르는 물길과 함께 물위로 나옵니다. 물길을 따를 뿐이지 사사로운 힘을 쓰지 않습니다. 이것이 내가 여기에서 헤엄을 칠 수 있는 까닭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무엇을 두고 습성으로 시작하여 성격으로 발전되고 천명으로 이룩된다고 하는 것입니까?” 남자가 말했다. “우리가 육지에서 나서 육지에서 편히 지내고 있는 것이 습성입니다. 물 속에서 자라나서 물에서 편안히 지내게 되는 것이 성격입니다. 내가 그렇게 되는 까닭은 알지 못하는데도 그렇게 되는 것이 천명입니다.” - 莊子(外篇) ; 第19篇 達生[9]- 孔子觀於呂梁, 縣水三十?, 流沫四十里, ??魚鱉之所不能游也. 見一丈夫游之, 以爲有苦而欲死也, 使弟子竝流而拯之. 數百步而出, 被髮行歌而游於塘下. 孔子從而問焉, 曰:「吾以子爲鬼, 察子則人也. 請問, 蹈水有道乎?」 曰:「亡, 吾无道. 吾始乎故, 長乎性, 成乎命. 與齊俱入, 與汨偕出, 從水之道而不爲私焉. 此吾所以蹈之也.」 孔子曰:「何謂始乎故, 長乎性, 成乎命?」 曰:「吾生於陵而安於陵, 故也. 長於水而安於水, 性也. 不知吾所以然而然, 命也.」
188` 자연의 이치에 따라 천연에 합치되면 신기에 이른다 (외편:19.달생,10) - 장자(외편) ; 제19편 달생[10]- 재경이라는 명공이 나무를 깎아서 북틀을 만들었다. 북틀이 만들어지자 그 것을 본 사람들이 귀신의 솜씨 같다고 모두 놀랐다. 노나라 제후가 그 것을 보고 재경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슨 도술로 이것을 만들었는가?” 재경이 대답했다. “저는 목수인데 무슨 도술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한가지 원리는 있습니다. 저는 북틀을 만들려 할 때에는 감히 기운을 소모하는 일이 없이 반드시 재계를 함으로써 마음을 고요히 만듭니다. 사흘동안 재계를 하면 감히 이익과 상이나 벼슬과 녹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닷새동안 재계를 하면 감히 비난과 칭찬이나 교묘함과 졸렬함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이레동안 재계를 하면 문득 제가 지닌 손발과 육체까지도 잊게 됩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에는 나라의 조정도 안중에 없고, 오로지 안으로 기교를 다하기만 하며, 밖의 혼란 같은 것은 없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된 뒤에야 산림으로 들어가 재목의 성질을 살피고, 모양도 완전한 것을 찾아냅니다. 그리고는 완전한 북틀을 마음속에 떠올린 뒤에야 손을 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적에는 그만둡니다. 곧 저의 천성과 나무의 천성을 합치시키는 것입니다. 제가 만든 기구가 신기에 가까운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19篇 達生[10]- 梓慶削木爲?, ?成, 見者驚猶鬼神. 魯侯見而問焉, 曰:「子何術以爲焉?」 對曰:「臣工人, 何術之有! 雖然, 有一焉. 臣將爲?, 未嘗敢以耗氣也, 必齊以靜心. 齊三日, 而不敢懷慶賞爵祿. 齊五日, 不敢懷非譽巧拙. 齊七日, 輒然忘吾有四枝形體也. 當是時也, 无公朝, 其巧專而而滑消. 然後入山林, 觀天性. 形軀至矣, 然後成見?, 然後加手焉. 不然則已. 則以天合天, 器之所以疑神者, 其由是與!」
189` 본성을 무시한 인위적 기교는 실패하게 된다 (외편:19.달생,11) - 장자(외편) ; 제19편 달생[11]- 동야직이라는 사람이 수레를 모는 기술을 가지고 장공을 만났다. 그의 수레 모는 솜씨는 나가고 물러나는 것이 먹줄에 들어맞을 듯이 곧았고, 좌우로 도는 것은 그림쇠에 들어맞을 듯이 정원형을 그렸다. 장공은 옛날 조부도 이보다 더 낫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그에게 밭이랑 길을 돌아오도록 했다. 안합이 그를 만나고 돌아와 장공에게 말했다. “동야직의 말이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장공은 묵묵히 대답을 않고 있었는데, 과연 조금 후에 말이 넘어져서 돌아왔다. 장공이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말이 넘어질 것을 알았습니까?” 안합이 대답했다. “그는 말의 힘이 다 하였는데도 계속 달리게 하려고 하였으므로 넘어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 莊子(外篇) ; 第19篇 達生[11]- 東野稷以御見莊公, 進退中繩, 左右旋中規. 莊公以爲文弗過也, 使之鉤百而反. 顔闔遇之, 入見曰:「稷之馬將敗.」 公密而不應. 少焉, 果敗而反. 公曰:「子何以知之?」 曰:「其馬力竭矣. 而猶求焉, 故曰敗.」
190` 마음과 외물이 동화되면 가장 편안하다 (외편:19.달생,12) - 장자(외편) ; 제19편 달생[12]- 공수가 손으로 도안을 하면 그림쇠나 굽은 자를 쓴 것과 같이 정확했다. 그의 손가락이 물건에 동화되어 있어서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정신은 하나로 되어 아무런 거리낌도 받지 않는 것이다. 발을 잊는 것은 신이 알맞기 때문이다.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알맞기 때문이다. 옳고 그른 것을 잊는 것은 편안하고 알맞기 때문이다. 안으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밖으로 물건에 이끌리지 않는 것은 사리와 경우에 편안하고 알맞기 때문이다. 알맞음에서 시작하여 알맞지 않은 일이 없게 되면, 알맞음이 알맞은 것조차도 잊게 되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19篇 達生[12]- 工?旋而蓋規矩, 指與物化而不以心稽, 故其靈壹一而不桎. 忘足, ?之適也. 忘要, 帶之適也. 忘是非, 心之適也. 不內變, 不外從, 事會之適也. 始乎適而未嘗不適者, 忘適之適也.
191` 자신의 수양과 용기를 남에게 보이지 마라 (외편:19.달생,13) 숨김` 나타냄` 보임` - 장자(외편) ; 제19편 달생[13]- 손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편경자의 집을 찾아가서 말했다. “저 는 고을에 살면서 수양이 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지 않았고, 어려움을 당해서도 용기가 없다는 말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밭과 들판에서 농사를 지어도 풍년을 만나보지 못하고,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도 좋은 때를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향리로부터는 배척을 받고 고을로부터는 쫓겨나게 된 처지인데 무슨 죄 때문입니까? 천명일까요? 저는 어째서 이런 운명을 당해야 됩니까?” 편경자가 말했다. “당신은 지인의 행동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자신의 간담조차도 잊고 자기의 눈과 귀조차도 잃어버린 채, 망연히 티끌과 먼지 세상 밖에 노닐며 일할게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지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서 일을 하면서도 능력을 믿지 않고, 우두머리가 되면서도 남을 지배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지식을 꾸며대어 어리석은 사람을 놀라게 하며, 몸을 닦아 남의 더러움을 밝히면서, 해와 달처럼 당신을 드러내려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당신이 육체를 온전히 지니고 이목구비를 다 갖추고서, 중도에 일찍이 귀머거리나 장님이나 절름발이가 되지 않고, 보통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하늘을 원망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어서 가보시오.” 손휴가 나가자 편경자는 방으로 들어와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탄식을 했다. 그러자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무엇 때문에 탄식을 하십니까?” 편경자가 말했다. “조금 전에 손휴가 왔을 때 나는 그에게 지인의 덕을 얘기해 주었다. 나는 그가 놀라서 마침내는 미혹되게 될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제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손휴의 주장이 옳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글렀다면, 그른 것이 옳은 것을 미혹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손휴의 주장이 글렀고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다면, 그는 본시 미혹한 상태로 왔던 것이니 어찌 선생님의 잘못이 되겠습니까?” 편경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옛날에 한 마리의 새가 날아와 노나라 교외에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그 새를 좋아해서 소와 양과 돼지를 잡아 그 새에게 먹이고, 구소의 음악을 연주하여 그 새를 즐겁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새는 처음부터 근심하고 슬퍼하면서 눈이 어지러워져서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못했다. 이것은 자기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길렀기 때문이다. 만약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려 한다면 마땅히 깊은 숲 속에 살게 하고, 강물과 호수 위에 떠다니게 하며, 그로 하여금 진흙 속의 미꾸라지를 잡아먹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처럼 넓은 땅에 편안히 지내게 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손휴는 멍청하고 견문이 적은 사람인데도 내가 그에게 지인의 덕을 이야기 해준 것은 마치 생쥐를 수레나 말에 태워주고 작은 메추라기를 아악으로써 즐겁게 해주려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가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 莊子(外篇) ; 第19篇 達生[13]- <有孫休者, 踵門而?子扁慶子曰:「休居鄕不見謂不修, 臨難不見謂不用. 然而田原不遇歲, 事君不遇世, 賓於鄕里, 逐於州部, 則胡罪乎天哉? 休惡遇此命也?」 扁子曰:「子獨不聞夫至人之自行邪? 忘其肝膽, 遺其耳目, 芒然彷徨乎塵垢之外, 逍遙乎无事之業, 是謂爲而不恃, 長而不宰. 今汝飾知以驚愚, 修身以明汚, 昭昭乎若揭日月而行也. 汝得全而形軀, 具而九竅, 无中道夭於聲盲跛蹇而比於人數, 亦幸矣, 又何暇乎天之怨哉! 子往矣!」 孫子出. 扁子入, 坐有間, 仰天而歎. 弟子問曰:「先生何爲歎乎?」 扁子曰:「向者休來, 吾告之以至人之德, 吾恐其驚而遂至於惑也.」 弟子曰:「不然. 孫子之所言是邪? 先生之所言非邪? 非固不能惑是. 孫子所言非邪? 先生所言是邪? 彼固惑而來矣, 又奚罪焉!」 扁子曰:「不然. 昔者有鳥止於魯郊, 魯君說之, 爲具太牢而饗之, 奏九韶以樂之, 鳥乃始憂悲眩視, 不敢飮食. 此之謂以己養養鳥也. 若夫以鳥養養鳥者, 宜棲之深林, 浮之江湖, 食之以委蛇, 委蛇而處, 則安平陸而已矣. 今休, 款啓寡聞之民也, 吾告以至人之德, 譬之若載?以車馬, 樂?以鐘鼓也. 彼又惡能无驚乎哉!」>
192` 집착 없이 변화하며 중간에 처한다 (외편:20.산목,1) 쓸모없슴` 유용` 무용` - 장자(외편) ; 제20편 산목[1]- 장자가 산 속을 가다가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다. 나무꾼이 그 옆에 있으면서도 나무를 베지 않아 그 까닭을 물으니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장자가 말했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는 것이다” 장자가 산에서 내려와 친구의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친구는 기뻐하면서 하인에게 거위를 잡아 요리를 만들라고 했다. 하인이 물었다. “그 중 한 놈은 잘 울고 한 놈은 울 줄을 모르는데 어느 놈을 잡을까요?” 주인이 말했다. “울지 못하는 놈으로 잡아라” 제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어제 산 속의 나무는 쓸모가 없어 천수를 다했는데, 오늘의 거위는 쓸모가 없어 죽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처신하시겠는지요?” 장자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재목이 되고 재목이 되지 않는 것의 중간에 처신하겠다. 그러나 재목이 되고 재목이 되지 않는 것의 중간이란 것은, 도와 비슷하기는 하나 참된 도는 아니므로 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니라. 자연의 도와 덕을 타고 유유히 떠다니는 자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칭찬도 없고 비방도 없으며, 한번은 용이 되었다가 한번은 뱀이 되었다가 시간과 더불어 변화하면서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조화로움을 자신의 법도로 삼을 것이다. 만물의 근원에서 노닐게 하여, 사물을 사물로서 부리되 외물에 의해 사물로서의 부림을 받지 않을 것이니 어찌 재난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겠느냐? 이것이 바로 신농씨와 황제의 법칙인 것이다. 그러나 만물의 실체나 인간 세상의 이치는 그렇지 않아서, 모이면 흩어지고, 이루면 무너지고, 모가 나면 깎이고, 높아지면 비난받고, 무언가 해놓으면 훼손당하고, 어질면 모함을 받고, 어리석으면 속임을 당한다. 그러니 어떻게 재난을 면할 수 있겠느냐? 자연의 도와 덕이 행하여지는 곳에서만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 莊子(外篇) ; 第20篇 山木[1]- 莊子行於山中, 見大木, 枝葉盛茂, 伐木者止其旁而不取也. 問其故, 曰:「无所可用.」 莊子曰:「此木以不材得終其天年!」 出於山, 舍於故人之家. 故人喜, 命?子殺雁而烹之. ?子請曰:「其一能鳴, 其一不能鳴, 請奚殺?」 主人曰:「殺不能鳴者.」 明日, 弟子問於莊子曰:「昨日山中之木, 以不材得終其天年. 今主人之雁, 以不材死. 先生將何處?」 莊子笑曰:「周將處乎材與不材之間. 材與不材之間, 似之而非也, 故未免乎累. 若夫乘道德而浮遊則不然. 无譽无?, 一龍一蛇, 與時俱化, 而无肯專爲. 一上一下, 以和爲量, 浮遊乎萬物之祖. 物物而不物於物, 則胡可得而累邪! 此神農黃帝之法則也. 若夫萬物之情, 人倫之傳, 則不然. 合則離, 成則毁. 廉則挫, 尊則議, 有爲則虧, 賢則謀, 不肖則欺, 胡可得而必乎哉! 悲夫! 弟子志之, 其唯道德之鄕乎!」
193` 빈배처럼 자신을 비우면 걱정도 해도 없다 (외편:20.산목,2) - 장자(외편) ; 제20편 산목[2]- 저자 남쪽의 의요가 노나라 제후를 만나니, 노나라 제후는 근심하는 빛을 띠고 있었다. 의요가 말했다. “임금께서는 어찌 근심스러운 빛을 띠고 계십니까?” 노나라 제후가 말했다. “나는 옛 훌륭한 임금들의 도를 배웠고, 옛 임금들이 하신 일을 닦았습니다. 나는 귀신을 공경하고 현명한 사람들을 존중하며 그들과 친근히 지내면서 일을 하고 잠시도 멈추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환란을 면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때문에 근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요가 말했다. “임금님의 걱정을 없애는 방법은 깊지 못하십니다. 살찐 여우와 아름다운 무늬의 표범이 산림 속에 살면서 바위굴에 숨어 있는 것은 고요함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밤에는 움직이고 낮에는 굴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은 경계하기 위한 것입니다. 비록 배고프고 목마르며 곤궁한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먼 강과 호숫가로 가서 먹이를 구하는 것은 안정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그물과 덫의 걱정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가죽이 재난의 원인 되는 것입니다. 지금 임금님께 있어서 노나라는 그 가죽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라건대 임금님께서는 육체를 잘라내고 가죽을 벗어버리며 마음을 씻어내고 욕망을 없애버리고서 아무도 없는 들판에 노닐도록 하십시오. 남월땅에 한 고을이 있는데 이름을 건덕이라 부릅니다. 그 곳의 백성들은 어리석고 소박하며, 사사로움이 적고 욕망도 적으며, 일 할 줄만 알았지 물건을 저장해 둘 줄은 모릅니다. 남에게 무엇을 주고도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 알지 못하며 예의란 어떻게 하여야 지켜지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멋대로 무심히 행동하면서도 위대한 자연의 도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즐겁기만 하며 죽으면 편히 묻힙니다. 바라건대 임금께서도 나라를 떠나고 속된 일을 버리시며 자연의 도와 어울리시며 그곳에 가십시오.” 노나라 제후가 말했다. “그곳에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거니와 또 강과 산이 막혀 있는데 내게는 수레도 배도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의요가 말했다. “임금께서는 육체적인 방만을 없애시고 높은 지위를 생각하는 마음을 없앰으로써 임금님의 배와 수레를 삼으십시오.” 노나라 제후가 말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아득히 멀고 아무도 없는데 나는 누구와 이웃을 삼고 지낸단 말입니까? 내게는 먹을 것도 없고 양식도 없는데 어떻게 그 곳에 갈 수 있겠습니까?” 의요가 말했다. “임금의 비용을 적게 하시고 임금의 욕망을 줄이시면 비록 양식이 없다 하더라도 풍족하게 됩니다. 임금께서는 강을 건너고 바다에 배를 띄우게 되면 바라보아도 그 끝이 보이지 않고, 갈수록 그 끝나는 곳을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임금님을 배웅하는 사람들이 모두 강 언덕에서 돌아가 버리면 임금께서는 멀리 자유로운 경지로 떠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은 재난이 있게 되고, 사람들에게 보호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근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임금은 사람을 다스리지 않았고, 사람들의 보호도 받지 않았었습니다. 바라건대 임금께서는 스스로의 재난을 제거하고 근심을 없애고서 홀로 도와 더불어 크게 광막한 나라에서 노니십시오. 배를 나란히 하고 황하를 건널 때 만약 빈배가 와서 자기 배에 부딪힌다면 비록 마음이 좁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성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그 배에 타고 있다면 소리쳐 배를 다른 곳으로 저어가라고 할 것입니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칠 것이고, 그래도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치면서 반드시 나쁜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는 성내지 않다가 지금은 성내고 소리치는 것은 앞의 배는 빈배였는데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텅 비우고 세상을 노닌다면 그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 - 莊子(外篇) ; 第20篇 山木[2]- 市南宜僚見魯侯, 魯侯有憂色. 市南子曰:「君有憂色, 何也?」 魯侯曰:「吾學先王之道, 修先君之業. 吾敬鬼尊賢, 親而行之, 无須臾離居, 然不免於患, 吾是以憂.」 市南子曰:「君之除患之術淺矣! 夫豊狐文豹, 棲於山林, 伏於巖穴, 靜也. 夜行晝居, 戒也, 雖飢渴隱約, 猶且胥疏於江湖之上而求食焉, 定也. 然且不免於罔羅機?之患. 是何罪之有哉? 其皮爲之災也. 今魯國獨非君之皮邪? 吾願君?形去皮, ?心去欲, 而遊於无人之野. 南越有邑焉, 名爲建德之國. 其民愚而朴, 少私而寡欲. 知作而不知藏, 與而不求其報. 不知義之所適, 不知禮之所將. 猖狂妄行, 乃蹈乎大方. 其生可樂, 其死可藏. 吾願君去國捐俗, 與道相輔而行.」 君曰:「彼其道遠而險, 又有江山, 我无舟車, 奈何?」 市南子曰:「君无形倨, 无留居, 以爲君車.」 君曰:「彼其道幽遠而无人.吾誰與爲?.吾无糧, 我无食, 安得而至焉?」 市南子曰:「少君之費, 寡君之欲, 雖无糧而乃足. 君其涉於江而浮於海, 望之而不見其崖, 愈往而不知其所窮. 送君者皆自崖而反, 君自此遠矣! 故有人者累, 見有於人者憂. 故堯非有人, 非見有於人也. 吾願去君之累, 除君之憂, 而獨與道遊於大莫之國. 方舟而濟於河, 有虛[舟+公]來觸舟, 雖有?心之人不怒. 有一人在其上, 則呼張?之. 一呼而不聞, 再呼而不聞, 於是三呼邪, 則必以惡聲隨之. 向也不怒而今也怒, 向也虛而今也實. 人能虛己以遊世, 其孰能害之!」
194` 무심히 자연에 따르면 아무런 장애가 없다 (외편:20.산목,3) - 장자(외편) ; 제20편 산목[3]- 북궁사가 형나라 영공을 위해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여 종을 만들게 되었다. 그는 성곽 문 밖에 제단을 만들고 석 달 만에 위 아래로 종을 거는 종 틀을 완성했다. 왕자인 경기가 보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방법을 써서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북궁사가 말했다. “순일함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지 아무런 다른 방법을 쓴 것이 없습니다. 제가 듣건대 구슬이라는 것은 깎고 쪼고 함으로써 본연의 소박함으로 복귀하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멍청히 아무런 의식도 없이 멍청히 바보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의식 없이 변화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은 보내고 오는 것은 맞이했습니다. 오는 것은 막지 않고 가는 것은 잡지 않았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대로 놔두고 유순히 따르는 사람들 또한 그대로 버려 두었습니다. 스스로 힘이 닫는대로 하도록 버려 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침저녁으로 세금을 거두어 들여도 터럭 끝만큼도 백성들을 손상시키지 않은 것입니다. 제가 이 정도이니 하물며 위대한 도를 터득한 분은 어떻겠습니까?” - 莊子(外篇) ; 第20篇 山木[3]- 北宮奢爲衛靈公賦斂以爲鐘, 爲壇乎郭門之外, 三月而成上下之縣. 王子慶忌見而問焉, 曰:「子何術之設?」 奢曰:「一之間, 无敢設也. 奢聞之, ‘旣彫旣琢, 復歸於朴.’ ?乎其无識, ?乎其怠疑. 萃乎芒乎, 其送往而迎來. 來者勿禁, 往者勿止. 從其强梁, 隨其曲傅, 因其自窮, 故朝夕賦斂而毫毛不挫, 而況有大塗者乎!」
195`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해를 입지 않는다 (외편:20.산목,4) 명예` 사명` 사명감` 숨김` - 장자(외편) ; 제20편 산목[4]-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중간에서 사람들에게 포위를 당하여 칠일 동안이나 더운 음식을 먹지 못했다. 그때 태공임이 찾아와서 공자를 위문하여 말했다. “선생님은 죽게 될 것 같습니다.” 공자가 답했다. “그렇소.” 태공임이 말했다. “선생님은 죽는 것을 싫어하십니까?” 공자가 답했다. “그렇소.” 태공임이 말했다. “제가 시험삼아 죽지 않는 법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동해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을 의태라 부릅니다. 그 새는 본성이 느려서 아무 능력도 없는 듯이 보이지요. 날 때에는 다른 새들이 서로 이끌어 주어야 날고, 쉴 때에는 다른 새들과 붙어 있습니다. 나아갈 때에는 감히 다른 새들의 앞에 서지 않고, 물러설 때에는 다른 새들보다 뒤서지 않습니다. 먹이를 먹을 때도 감히 다른 새보다 앞서 맛보지 않고, 반드시 다른 새가 먹고 난 나머지를 먹습니다. 그래서 그 새는 다른 새들 무리에게 배척 당하는 일이 없고, 사람들에게도 해를 입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난을 면하고 있습니다. 곧은 나무는 먼저 잘리고, 맛있는 우물은 먼저 마르는 법입니다. 선생을 생각해보면 자신의 지식을 꾸며 어리석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몸을 닦아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마치 해와 달을 걸고 가듯이 훤하게 자신을 내세우기에 환난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내가 위대한 덕을 이룬 사람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스스로 뽐내는 자는 공이 없게 되고, 공을 이루고 물러나지 않는 자는 실패하게 되며, 명성을 이루고 그대로 머물고자 하는 자는 욕을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어느 누가 과연 공명을 마다하고 보통 사람들과 같이 처신하겠습니까? 그의 도가 널리 행하여져도 자기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의 덕이 세상에 시행되어도 명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마음을 순수하게 가지고, 언제나 한결같이 행동하여 마치 미친 사람인 양 무심하게 공적을 남기지 않고, 권세를 버리며 공명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남을 책잡을 일도 없고, 남에게 책잡힐 일도 없을 것입니다. 지인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법이거늘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공명을 좋아하는 것입니까?”
이 말을 들은 공자는 곧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제자들을 버리고 큰 늪지에 숨어살면서 도토리와 밤을 주워 먹으며 살았다. 그리하여 짐승들 사이로 들어가도 무리가 흩어지지 않았고, 새들 틈에 들어가도 그 행렬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새와 짐승들도 그를 싫어하지 않았으니 하물며 사람들이야 어떠했겠는가! - 莊子(外篇) ; 第20篇 山木[4]- 孔子圍於陳蔡之間, 七日不火食. 大公任往弔之曰:「子幾死乎?」 曰:「然.」 「子惡死乎?」 曰:「然.」 任曰:「予嘗言不死之道. 東海有鳥焉, 其名曰意怠. 其爲鳥也, ????, 而似无能. 引援而飛, 迫脅而棲. 進不敢爲前, 退不敢爲後. 食不敢先嘗, 必取其緖. 是故其行列不斥, 而外人卒不得解, 是以免於患. 直木先伐, 甘井先竭. 子其意者飾知以驚愚, 修身以明?, 昭昭乎如揭日月而行, 故不免也. 昔吾聞之大成之人曰:‘自伐者无功, 功成者墮, 名成者虧.’ 孰能去功與名而還與衆人! 道流而不明居, 德行而不名處. 純純常常, 乃比於狂. 削迹捐勢, 不爲功名. 是故无責於人, 人亦无責焉. 至人不聞, 子何喜哉? 孔子曰:「善哉!」 辭其交遊, 去其弟子, 逃於大澤. 依?褐, 食?與栗. 入獸不亂群, 入鳥不亂行. 鳥獸不惡, 而況人乎!
196` 담백함으로 친해지고 달콤함으로 끊어진다 (외편:20.산목,5) 가치관 - 장자(외편) ; 제20편 산목[5]- 공자가 자상호에게 물었다. “저는 노나라에서 두 번 쫓겨나고, 송나라에서는 뽑힌 나무에 죽을 뻔하였고, 위나라에서는 쫓겨났으며, 송나라와 주나라에서는 궁지에 몰렸고, 진과 채 두 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되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차례 어려움을 당하게 되자, 친한 사람들과의 교분은 점차 멀어지고 제자들도 차츰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 어찌 된 까닭입니까?” 자상호가 대답했다. “그대는 가나라에서 도망하였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습니까? 임회라고 하는 그 사람은 천금 가치가 나가는 옥을 버린 채 아기를 업고 도망하였답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값어치로 따지면 아기는 별로 나가지 않으며, 짐 되기로 말하면 아기가 더 힘이 듭니다. 그런데도 값나가는 옥을 버리고 아기를 업고 도망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임회는 「옥은 이익으로 결합된 것이지만 아기는 하늘이 맺어 준 것입니다. 이익으로 맺어진 사람들은 어려움과 곤란함을 당하게 되면 서로를 버리게 되지만, 하늘이 맺어준 사람들은 어려움과 곤란함을 당하게 되면 서로 단결하는 것입니다. 서로 버리려는 것과 서로 단결하는 것은 역시 그 차이가 매우 멉니다.」 라고 대답하였답니다. 또한 군자의 사귐은 물같이 담백하지만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합니다. 군자의 사귐은 담백하기 때문에 친해지고, 소인의 사귐은 달콤하기 때문에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까닭 없이 맺어진 것은 까닭 없이 떨어져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삼가 가르침을 잘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공자는 천천히 걸으면서 돌아와 학문을 끊고 책을 버렸다. 제자들은 그의 앞에서 허리를 굽히지 않게 되었으나 그들의 친애는 더욱 높아만 갔다. 다음날 자상호가 다시 말했다. “순임금이 임종 때 우에게 명했습니다. 「그대는 다음의 것을 경계하라. 육체는 자연을 따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며, 심정은 본성을 따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자 연을 따르면 서로 떨어지지 않게 되고, 본성을 따르면 수고롭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수고롭지 않게 된다면 학문을 추구하여 자신을 꾸미려 하지 않게 됩니다. 학문을 추구하여 자신을 꾸미려 하지 않게 되면 밖의 물건에 자신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 莊子(外篇) ; 第20篇 山木[5]- 孔子問子桑?曰:「吾再逐於魯, 伐樹於宋, 削迹於衛, 窮於商周, 圍於陳蔡之間. 吾犯此數患, 親交益疏, 徒友益散, 何與?」 子桑?曰:「子獨不聞假人之亡與? 林回棄千金之璧, 負赤子而趨. 或曰:‘爲其布與? 赤子之布寡矣. 爲其累與? 赤子之累多矣. 棄千金之璧, 負赤子而趨, 何也?’ 林回曰:‘彼以利合, 此以天屬也.’ 夫以利合者, 迫窮禍患害相棄也. 以天屬者, 迫窮禍患害相收也. 夫相收之與相棄亦遠矣. 且君子之交淡若水, 小人之交甘若醴. 君子淡以親, 小人甘以絶. 彼无故以合者, 則无故以離.」 孔子曰:「敬聞命矣!」 徐行翔佯而歸, 絶學捐書, 弟子无揖於前, 其愛益加進. 異日, 桑?又曰:「舜之將死, 乃命禹曰:‘汝戒之哉! 形莫若緣, 情莫若率. 緣則不離, 率則不勞. 不離不勞, 則不求文以待形. 不求文以待形, 固不待物.’」
197` 때를 못 만났음을 탓하지 말고 순리를 따라라 (외편:20.산목,6) 때` 시기` 시대` - 장자(외편) ; 제20편 산목[6]- 장자가 누더기로 기운 거친 무명옷에다 삼줄로 얽어맨 신을 신고서 위나라 임금을 찾아갔다. 위나라 임금이 말했다. “어쩌다 선생은 그토록 곤경에 빠졌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가난한 것이지 곤경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선비에게는 자연의 도와 덕이 있는데 그 것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곤경에 빠지는 것입니다. 옷이 해지고 신발에 구멍이 난 것은 가난한 것이지 곤경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이른바 때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나무에 기어오르는 원숭이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원숭이는 남나무나 가래나무나 상장나무 같은 큰 나무에 올라 나뭇가지에 매달려 지낼 때에는 예나 봉몽과 같은 명궁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겨냥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원숭이가 산뽕나무나 가시나무나 탱자나무 같은 작은 나무 사이에 있을 때에는 위태로운 듯이 곁눈질을 하며 다니고 두려움에 덜덜 떨게 됩니다. 이것은 원숭이의 근육이나 뼈가 더욱 굳어져 유연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처해 있는 형세가 불편하여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같이 혼미한 임금과 어지러운 신하들 사이에 처신하면서 곤경에 빠지지 않으려 한다 해도 어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이것은 충신인 비간이 심장을 도려내게 된 것으로도 증명이 됩니다.” - 莊子(外篇) ; 第20篇 山木[6]- 莊子衣大布而輔之, 正?係履而過魏王. 魏王曰:「何先生之憊邪?」 莊子曰:「貧也, 非憊也. 士有道德不能行, 憊也. 衣弊履穿, 貧也, 非憊也. 此所謂非遭時也. 王獨不見夫騰猿乎? 其得枏梓豫章也, 攬蔓其枝而王長其間, 雖?逢蒙不能眄?也. 及其得?棘枳枸之間也, 危行側視, 振動悼慄. 此筋骨非有加急而不柔也, 處勢不便, 未足以逞其能也. 今處昏上亂相之間, 而欲无憊, 奚可得邪? 此比干之見剖心徵也夫!」
198` 곤경에 처해도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변화에 순응하라 (외편:20.산목,7) - 장자(외편) ; 제20편 산목[7]-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경에 빠져 칠일 동안이나 불로 익힌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자는 왼손은 마른 나무에 걸쳐놓고 오른 손으로는 마른 나뭇가지를 두드리며 신농씨의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그에게 악기는 있었지만 절주가 없고, 그의 소리는 있지만 음률은 없는 상태였는데, 두드리는 나무소리와 그의 목소리는 잘 어울려 사람의 마음을 울렸다. 그 때 안회가 두 손을 모아 쥐고 눈길을 떨궈 공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자는 안회가 자기의 뜻을 크게 해석해 재난을 크게 생각하거나 자기를 아낀 나머지 슬퍼할까 두려워 말했다. “안회야. 자연의 재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편히 지내기는 쉽지만, 인위적인 부귀를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을 바르게 갖기란 어려운 것이다. 모든 일은 시작되면 끝나지 않는 것이 없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사람이란 자연과 한가지인 것이다. 지금 노래를 부른 것은 누구였더냐?” 안회가 말했다. “감히, 자연의 재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편히 지내기는 쉽다는 말씀의 뜻을 알고 싶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굶주림과 목마름과 추위 더위와 궁색해져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천지의 운행이며 만물 변화의 표현인 것이다. 그 말은 이러한 운행변화와 함께 변화하여 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신하된 사람은 임금의 명으로부터 감히 벗어나지 못한다. 신하 노릇을 하는 도리도 이와 같은데 하늘을 대하는 도리야 어떻겠느냐?” 안회가 다시 물었다. “무엇을 두고 인위적인 부귀를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을 바르게 갖기는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처음 출세를 하고 보면 모든 것이 뜻대로 되고, 벼슬과 녹이 아울러 보태져서 궁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밖의 물건이 이롭게 해주는 것이지 자기가 지니고 있던 것은 아니다. 결국 나의 운명이 밖으로부터 지배당하게 되는 것이다. 군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고, 현명한 사람은 물건을 훔치지 않는 법인데, 우리가 벼슬이나 녹 같은 것은 취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새 중에서는 제비보다 지혜로운 것이 없다. 눈으로 보아서 처신하기 부적합한 곳이면 뒤돌아볼 것도 없이 달아난다. 비록 그의 먹이를 떨어뜨렸다 해도 그 것을 버리고 달아난다. 제비는 그처럼 사람들을 두려워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들어와 집을 짓고 사는데, 그 것은 살 곳과 먹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안회가 물었다. “무엇을 두고 모든 일이 시작되면 끝나지 않는 것이 없이 변화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만물은 변화하고 있지만 그렇게 만드는 것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어찌 변화가 끝나는 곳을 알겠으며, 어찌 변화가 시작되는 곳을 알겠느냐? 자기를 올바르게 하고서 그 변화에 호응할 따름인 것이다.” 안회가 물었다. “무엇을 두고 사람과 자연이 한가지라 하셨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자연이 존재하는 것도 자연이요.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역시 자연이다. 사람이 자연의 도를 터득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성격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성인이란 편안히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기어 끝 가는 데까지 가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20篇 山木[7]- 孔子窮於陳蔡之間, 七日不火食, 左據槁木, 右擊槁枝, 而歌?氏之風, 有其具而无其數, 有其聲而无宮角, 木聲與人聲, 犁然有當於人之心. 顔回端拱還木而窺之. 仲尼恐其廣己而造大也, 愛己而造哀也, 曰:「回, 无受天損易, 无受人益難. 无始而非卒也, 人與天一也. 夫今之歌者其誰乎?」 回曰:「敢問无受天損易.」 仲尼曰:「飢渴寒暑, 窮桎不行, 天地之行也, 運物之泄也, 言與之偕逝之謂也. 爲人臣者, 不敢去之. 執臣之道猶若是, 而況乎所以待天乎!」 「何謂无受人益難?」 仲尼曰:「始用四達, 爵祿竝至而不窮, 物之所利, 乃非己也, 吾命其在外者也. 不給視, 雖落其實, 棄之而走. 其畏人也, 而襲諸人間, 社稷存焉爾.」 「何謂无始而非卒?」 仲尼曰:「化其萬物而不知其禪之者, 焉知其所終? 焉知其所始? 正而待之而已耳.」 「何謂人與天一邪?」 仲尼曰:「有人, 天也. 有天, 亦天也. 人之不能有天, 性也, 聖人晏然體逝而終矣!」
199` 자신을 잊고 외물을 추구하는 것은 재난의 원인이 된다 (외편:20.산목,8) - 장자(외편) ; 제20편 산목[8]- 장자가 숲 속을 거닐다가 이상한 까치를 보게 되었다. 엄청나게 큰 날개와 눈을 가진 까치는 장자의 이마를 스치고 밤나무 숲으로 날아가 앉았다. 장자가 말했다. “무슨 새가 날개는 크면서도 멀리 날지 못하고, 눈이 크면서도 잘 보지 못하는구나.” 장자는 바지를 걷어올리고 빠른 걸음으로 숲 속으로 들어가 활을 들고 그 새를 겨누었다. 이 때 매미 한 마리가 나무그늘에 앉아 자신의 몸조차도 잊고 울고 있었다. 그 매미를 잡으려고 사마귀 한 마리가 나뭇잎에 몸을 숨기고 매미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사마귀 또한 매미를 잡으려는 생각에 빠진 나머지 아까 그 까치가 자신을 잡으려고 노리고 있다는 것을 모를 만큼 자신을 잊고 있었다. 까치 또한 사마귀를 잡으려는 욕심에 자신을 잊고 있었다. 장자는 두려워하며 말했다. “아아.. 물건이란 본시 서로 해를 끼치며, 이로움과 해로움은 같이 있는 것이구나.” 그리고는 활을 버리고 뒤돌아 도망을 치니 숲을 관리하는 사람이 뒤쫓아와 이유를 캐물었다. 장자는 되돌아와 사흘동안 우울했다. 제자가 그 이유를 물으니 장자가 말했다. “나는 외형에 마음이 사로잡혀 내 몸을 잊고 있었다. 흐린 물을 보고 있어서 맑은 연못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내가 선생님께 들은 바에 의하면 그 습속으로 들어가서는 그 금령에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숲 근처에 놀러 나갔다가 나의 몸을 잊었던 것이다. 이상한 까치는 나의 이마를 스치고 숲 속으로 날아가 그의 몸을 잊었다. 그리고 밤나무 숲 관리인은 나를 도둑으로 알고 욕보였으니... 그래서 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 - 莊子(外篇) ; 第20篇 山木[8]- 莊 周遊於雕陵之樊, 覩一異鵲自南方來者, 翼廣七尺, 目大運寸, 感周之?而集於栗林. 莊周曰:「此何鳥哉, 翼殷不逝, 目大不覩?」 蹇裳?步, 執彈而留之. 覩一蟬, 方得美蔭而忘其身. 螳螂執예而搏之, 見得而忘其形. 異鵲從而利之, 見利而忘其眞. 莊周?然曰:「噫! 物固相累, 二類召也!」 捐彈而反走, 虞人逐而?之. 莊周反入, 三月不庭. 藺且從而問之:「夫子何爲頃間甚不庭乎?」 莊周曰:「吾守形而忘身, 觀於濁水而迷於淸淵. 且吾聞諸夫子曰:‘入其俗, 從其令.’ 今吾遊於雕陵而忘吾身, 異鵲惑吾?, 遊於栗林而忘眞, 栗林虞人以吾爲戮, 吾所以不庭也.」
200` 자신을 비우고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외편:20.산목,9) 자만심 - 장자(외편) ; 제20편 산목[9]- 양자가 송나라에 가서 여관에 묵게 되었다. 여관 주인에게는 첩이 두 명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예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추하게 생겼었다. 그런데 추하게 생긴 여자가 귀여움을 받고 예쁜 여자가 천대를 받고 있었다. 양자가 그 이유를 물으니 여관 주인이 말했다. “예쁜 여자는 스스로가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나는 그녀가 예쁜 줄 모르게 되었고, 추하게 생긴 여자는 스스로가 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나는 그가 추한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양자가 말했다. “현명한 행동을 하되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기만 한다면 어디를 가나 사랑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 - 莊子(外篇) ; 第20篇 山木[9]- 陽子之宋, 宿於逆旅. 逆旅人有妾二人, 其一人美, 其一人惡, 惡者貴而美者賤. 陽子問其故, 逆旅小子對曰:「其美者自美, 吾不知其美也. 其惡者惡, 吾不知其惡也.」 陽子曰:「弟子記之! 行賢而去自賢之行, 安往而不愛哉!」
201` 완전한 덕 없이는 모든 외물이 재해의 원인이 된다 (외편:21.전자방,1) 잡편의 전자방은 위나라 현인. 文候의 스승 (田밭 전, 子아들 자, 方모 방) - 장자(외편) ; 제21편 전자방[1]- 전자방이 위나라 문후를 모시고 앉아 있었는데 여러 번 계공의 훌륭함을 얘기했다. 그러자 문후가 물었다. “계공은 선생의 스승이십니까?” 전자방이 말했다. “아닙니다. 저의 마을 사람입니다. 그의 도에 대한 얘기는 매우 합당하므로 제가 훌륭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문후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선생께는 스승이 없습니까?” 전자방이 말했다. “있습니다.” 문후가 물었다. “선생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전자방이 대답했다. “동곽의 순자입니다.” 문후가 말했다. “그런데도 선생은 어찌 한번도 그분의 훌륭함을 말하지 않으십니까?” 전자방이 말했다. “그 분의 사람됨은 참되어, 사람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하늘처럼 텅 비어 있으며, 자연을 따름으로써 참됨을 기르며, 맑은 마음으로써 만물을 포용합니다. 남이 무도한 짓을 하더라도 자기 모습을 올바로 지님으로써 그로 하여금 깨닫게 하며, 모든 개인의 뜻은 자연히 사라지게 합니다. 제가 어떻게 그분의 훌륭함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전자방이 나간 뒤에도 문후는 하루종일 멍하니 말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앞에 서 있는 신하를 불러 말했다. “완전한 덕을 지닌 군자는 정말 멀리 있는 듯하구나. 처음에 나는 성인과 지혜 있는 이의 말과 인의의 행동을 지극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전자방의 스승 얘기를 듣고 나서 나의 형체가 풀리어 움직이기도 싫어지고 입이 닫히어 말하기도 싫어졌다. 내가 배워온 것들이란 흙이나 먼지 같은 것이었다. 위나라는 나에게 재해가 되고 있을 뿐이다.” - 莊子(外篇) ; 第21篇 田子方[1]- 田子方侍坐於魏文侯, 數稱谿工. 文侯曰:「谿工, 子之師邪?」 子方曰:「非也, 无擇之里人也. 稱道數當, 故无擇稱之.」 文侯曰:「然則子无師邪?」 子方曰:「有.」 曰:「子之師誰邪?」 子方曰:「東郭順子.」 文侯曰:「然則夫子何故未嘗稱之?」 子方曰:「其爲人也眞, 人貌而天虛, 緣而?眞, 淸而容物. 物無道, 正容以悟之, 使人之意也消. 无擇何足以稱之!」 子方出, 文侯?然終日不言, 召前立臣而語之曰:「遠矣, 全德之君子! 始吾以聖知之言仁義之行爲至矣, 吾聞子方之師, 吾形解而不欲動, 口鉗而不欲言. 吾所學者直土梗耳, 夫魏眞爲我累耳!」
202` 사람의 행동은 절도보다 자연스러워야 한다 (외편:21.전자방,2) - 장자(외편) ; 제21편 전자방[2]- 온백설자가 제나라로 가다가 노나라에 머물렀다. 노나라 사람 가운데 어떤 이가 그를 만나기를 요청하자 온백설자가 말했다. “내가 듣건대 중국의 사람들은 예의에는 밝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데는 어둡다고 했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제나라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도 노나라에서 머물렀는데, 전의 그 사람이 다시 만나주기를 요청했다. 온백설자가 말했다. “전에도 나를 만나려 하였었고, 지금도 나를 만나려하고 있으니 반드시 나를 깨우쳐줄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가 손님을 만나고 들어와 탄식을 했다. 다음 날도 그 손님을 만났는데 또 들어와 탄식을 했다. 그의 하인이 물었다. “그 손님을 만나실 때마다 들어와서 탄식을 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온백설자가 대답했다. “내가 전에 너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중국사람들은 예의에는 밝지만 사람의 마음을 아는데는 어둡다고. 어제 내가 만났던 사람은 나아가고 물러서는 것이 가늠쇠나 자를 댄 것처럼 일정한 규칙이 있고, 점잖은 모습은 용이나 호랑이 같았다. 그가 나에게 말하는 태도는 자식과 같았고, 나를 인도해 주는 태도는 어버이와 같았다. 그래서 탄식을 했던 것이다.”
공자도 그를 만났던 일이 있었는데, 공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온백설자를 만나보고자 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서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런 사람은 눈으로 보기만 해도 도를 지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말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21篇 田子方[2]- 溫伯雪子適齊, 舍於魯. 魯人有請見之者, 溫伯雪子曰.「不可. 吾聞中國之君子, 明乎禮義而陋於知人心, 吾不欲見也.」 至於齊, 反舍於魯, 是人也又請見. 溫伯雪子曰:「往也?見我, 今也又?見我. 是必有以振我也.」 出而見客, 入而歎. 明日見客, 又入而歎. 其僕曰:「每見之客也, 必入而歎, 何耶?」 曰:「吾固告子矣:‘中國之民, 明乎禮義而陋乎知人心.’ 昔之見我者, 進退一成規一成矩, 從容一若龍一若虎, 其諫我也似子, 其道我也似父, 是以歎也.」 仲尼見之而不言. 子路曰:「吾子欲見溫伯雪子久矣, 見之而不言, 何邪?」 仲尼曰:「若夫人者, 目擊而道存矣, 亦不可以容聲矣.」
203` 자연이 변화하는 근본 원리가 중요하다 (외편:21.전자방,3) - 장자(외편) ; 제21편 전자방[3]-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걸으시면 저도 걷고, 선생님께서 빨리 걸으시면 저도 빨리 걷고, 선생님께서 달리시면 저도 달립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먼지도 남기지 않고 달려버리시면 저는 뒤에서 눈만 멀뚱히 뜨고 있습니다.” 공자가 물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안회가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걸으시면 저도 걷는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면 저도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빨리 걸으시면 저도 빨리 걷는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이론을 펴시면 저도 이론을 편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달리시면 저도 달린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도를 말씀하시면 저도 도를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지도 남기지 않고 달려버리시면 저는 뒤에서 눈만 멀뚱히 뜨고 있을 거라는 말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남에게 믿음을 받고, 남과 친하려 하지 않으셔도 남들이 친하게 따르고, 벼슬이나 권력이 없어도 백성들이 굴복해 오는데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어찌 잘 살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슬픔 중에 믿음이 죽는 것 보다 더 큰 슬픔이 없으며, 사람의 죽음은 그 다음 가는 슬픔이다.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들어가는데 만물은 모두가 이에 따라 방향을 정한다. 눈이 있고 발이 있는 사람들은 해를 기다렸다 일을 하기 시작한다. 해가 뜨면 세상의 일이 시작되고, 해가 지면 세상의 일도 없어지는 것이다. 만물도 역시 그러니, 그것에 의하여 죽기도 하고 그것에 의하여 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번 형체를 타고난 이상 스스로를 멸망시키지 않고 되어 가는 대로 맡겨두어야 하며, 밖의 물건을 따라서 움직여야 한다. 변화는 낮이나 밤이나 쉬는 틈이 없으므로 그것이 끝나는 곳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만물이 다 같이 형체를 타고났지만 운명을 미리 알아 그 앞날을 규정해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날이 자연의 변화를 따라갈 뿐이다. 내가 평생토록 너와 한 팔을 끼고 지낸다 하더라도 결국은 서로를 잃게 될 것이니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너는 거의 드러난 나의 겉의 것을 그대로 행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그것이 현재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텅 빈 시장에 가서 말을 사려고 하는 것과 같다. 내가 너를 생각하는 것도 매우 빨리 잊게 될 순간적인 것이고, 네가 나를 생각하는 것도 매우 빨리 잊게 될 순간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너는 무엇을 걱정하는가? 비록 옛날의 나를 잊어버린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언제나 잊혀질 수 없는 참된 나도 그 중에 존재하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21篇 田子方[3]- 顔淵問於仲尼曰:「夫子步亦步, 夫子趨亦趨, 夫子馳亦馳. 夫子奔逸絶塵, 而回?若乎後矣!」 仲尼曰:「回, 何謂邪?」 曰:「夫子步, 亦步也. 夫子言, 亦言也. 夫子趨, 亦趨也. 夫子辯, 亦辯也. 夫子馳, 亦馳也. 夫子言道, 回亦言道也. 及奔逸絶塵而回?若乎後者, 夫子不言而信, 不比而周, 无器而民滔乎前, 而不知所以然而已矣.」 仲尼曰:「惡! 可不察與! 夫哀莫大於心死, 而 人死亦次之. 日出東方而入於西極, 萬物莫不比方, 有首有趾者, 待是而後成功, 是出則存, 是入則亡. 萬物亦然, 有待也而死, 有待也而生. 吾一受其成形, 而不化以待盡, 效物而動, 日夜无隙, 而不知其所終. 薰然其成形, 知命不能規乎其前, 丘以是日?. 「吾終身與汝交一臂而失之, 可不哀與! 女殆著乎吾所以著也. 彼已盡矣, 而女求之以爲有, 是求馬於唐肆也. 吾服女也甚忘, 女服吾也亦甚忘. 雖然, 女奚患焉! 雖忘乎故吾, 吾有不忘者存.」
204` 지극히 즐거운 인생의 경지란 (외편:21.전자방,4) - 장자(외편) ; 제21편 전자방[4]- 공자가 노자를 만나러 가니, 노자는 머리를 감고 나서 머리를 풀어 흩트린 채 머리를 말리고 있었는데 꿈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람 같지 않았다. 공자는 비켜서서 기다리다가 잠시 후에 말했다. “제눈이 어두워진 것일까요? 아니면 제대로 본 것일까요? 조금전의 선생님의 형체는 뻣뻣한 것이 마른 나무 같았으며, 밖의 물건은 잊고 사람들을 떠나 홀로 우뚝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나는 만물이 태어나던 처음의 경지에 노닐고 있었습니다.” 공자가 물었다. “그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노자가 말했다. “마음이 곤하여지기만 하지 알 수는 없고, 입이 닫혀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신을 위해 그 대략적으로 말을 해보겠습니다. 지극한 음기는 고요하고 지극한 양기는 동적인 것입니다. 고요함은 하늘로부터 나오고, 움직임은 땅으로부터 나오며, 이 두 가지 기운이 서로 통하여 조화를 이룸으로써 물건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그 법도를 다스리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형체는 본 일이 없습니다. 만물은 생겨나고 없어지고 하며 가득 찼다 비었다 하기도 하며 한번 어두워졌다가 한 번 밝아집니다. 날로 바뀌고 달로 변화하여, 하루도 쉬지 않고 이 현상이 지속되지만 그 조화의 공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만물의 발생은 싹이 튼 곳이 있으며, 죽음은 귀결되는 곳이 있습니다. 만물의 시작과 끝은 서로 끝없이 반복되어 그 끝나는 곳을 알 수가 없습니다. 또 그 누가 만물의 근원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런 경지에 노닌다는 말의 뜻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런 경지로 들어가면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즐겁습니다. 지극한 아름다움을 얻고 지극한 즐거움에 노니는 이를 지인이라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그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풀을 먹는 짐승들은 풀밭이 바뀌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물에 사는 벌레들은 물이 바뀌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생활상의 조그만 변화가 일어났을 뿐이지 그의 큰 법도를 잃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쁨이나 노여움?슬픔?즐거움 같은 감정들이 가슴속에 스며들지 않는 것입니다. 천하라는 곳은 만물이 한결같이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자기가 거기에 일체가 되어 동화될 수만 있다면 자기의 사지나 육체는 먼지나 때와 같은 것이 될 것이며, 죽음과 삶, 시작과 끝을 밤이나 낮과 같은 것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그를 어지럽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세상의 이해득실이나 화복 같은 잔일들이야 어떻겠습니까? 노예를 버리는 사람이 노예를 진흙처럼 버릴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이 노예보다 귀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장 귀한 도는 나에게 있으며, 변화에 의해 잃게 되지 않으며, 또한 만물을 변화하게 하여 영원무궁하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내 마음에 걱정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이미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면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덕이 하늘과 땅의 짝이 될만한데도 지극한 말씀을 빌어서 마음을 닦고 계십니다. 옛날의 군자라도 누가 이보다 뛰어날 수 있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물이 맑은 것은 무위하지만 그 성격이 자연히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인이 덕을 지니고 있는 것도 의식적으로 덕을 닦지 않아도 만물들이 떨어질 수 없이 화합되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높고, 땅은 스스로 두터우며, 해와 달은 스스로 밝은데 그것들이 무슨 덕을 닦는 것이 있겠습니까?” 공자가 물러나와 안회에게 말했다. “내가 지닌 도라는 것은 독 안에 든 바구미와 같은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나의 몽매함을 깨우쳐 주지 않았다면 나는 하늘과 땅이 위대하고 완전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 莊子(外篇) ; 第21篇 田子方[4]- 孔子見老聃, 老聃新沐, 方將被髮而乾, ?然似非人. 孔子便而待之, 少焉見, 曰:「丘也眩與, 其信然與? 向者先生形體掘若槁木, 似遺物離人而立於獨也.」 老聃曰:「吾遊心於物之初.」 孔子曰:「何謂邪?」 曰: 「心困焉而不能知, 口?焉而不能言, 嘗爲汝議乎其將. 至陰肅肅, 至陽赫赫. 肅肅出乎天, 赫赫發乎地. 兩者交通成和而物生焉, 或爲之紀而莫見其形. 消息滿虛, 一晦一明, 日改月化, 日有所爲, 而莫見其功. 生有所乎萌, 死有所乎歸, 始終相反乎无端而莫知乎其所窮. 非是也, 且孰爲之宗!」 孔子曰:「願聞其方.」 曰: 「草食之獸不疾易藪, 水生之蟲不疾易水, 行小變而不失其大常也, 喜怒哀樂不入於胸次. 夫天下也者, 萬物之所一也. 得其所一而同焉, 則四肢百體將爲塵垢, 而死生終始將爲晝夜而莫之能滑, 而況得喪禍福之所介乎! 棄隸者若棄泥塗, 知身貴於隸也, 貴在於我而不失於變. 且萬化而未始有極也, 夫孰足以患心! 已爲道者解乎此.」 孔子曰:「夫子德配天地, 而猶假至言以修心, 古之君子, 孰能脫焉?」 老聃曰:「不然. 夫水之於삭?也, 无爲而才自然矣. 至人之於德也, 不修而物不能離焉, 若天地自高, 地之自厚, 日月之自明, 夫何修焉!」 孔子出, 以告顔回曰:「丘之於道也, 其猶醯鷄與! 微夫子之發吾覆也, 吾不知天地之大全也.」
205` 세상에 진실한 도를 체득한 사람은 드물다 (외편:21.전자방,5) - 장자(외편) ; 제21편 전자방[5]- 장자가 노나라 애공을 만났을 때, 애공이 말했다. “노나라에는 유자들은 많지만 선생의 학술을 닦는 사람은 적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노나라에는 유자가 적습니다.” 애공이 물었다. “온 노나라 사람들이 유자의 옷을 입고 있는데 어찌 유자가 적다는 것입니까?” 장자가 말했다. “제가 듣건대 유자가 둥근 관을 쓰고 있는 것은 하늘의 때를 안다는 표시이고, 모난 신을 신고 있는 것은 땅의 현상을 안다는 표시이고, 오색실로 구슬을 꿰어차고 있는 것은 일을 하게 되면 결단을 내린다는 표시라고 했습니다. 군자가 그런 도를 지니고 있다면 반드시 그런 복장을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런 도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굳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어찌하여 나라 안에 명령을 내려「그런 도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런 옷을 입고 있지 않은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공포하지 않으십니까?” 이에 애공은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그 후 닷새가 지나자 노나라에는 감히 유자의 옷을 입고 있는 자가 없게 되었다. 다만 한 사나이가 유자의 옷을 입고서 궁궐 문 앞에 서 있었다. 애공이 곧 그를 불러 나라 일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천 가지로 바뀌고 만 가지로 변화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막히는 것이 없었다. 장자가 말했다. “노나라에 유자는 한 사람 뿐입니다. 어찌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莊子(外篇) ; 第21篇 田子方[5]- 莊子見魯哀公. 哀公曰:「魯多儒士, 少爲先生方者.」 莊子曰:「魯少儒.」 哀公曰:「擧魯國而儒服, 何謂少乎?」 莊子曰:「周聞之, 儒者冠?冠者, 知天時. 履句?者, 知地形. 緩佩?者, 事至於斷. 君子有其道者, 未必爲其服也. 爲其服者. 未必知其道也. 公固以爲不然, 何不號於國中曰:‘无此道而爲此服者, 其罪邪!’」 於是哀公號之五日, 而魯國无敢儒服者, 獨有一丈夫儒服而立乎公門. 公卽召而問以國事, 千轉萬變而不窮. 莊子曰:「以魯國而儒者一人耳, 可謂多乎?」
206` 형식을 초월해야 참된 기교를 발휘할 수 있다 (외편:21.전자방,6) 형식` 악기` 재능` - 장자(외편) ; 제21편 전자방[6]- 백리해는 벼슬과 녹이 그의 마음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소를 먹이면 소가 살이 쪘으며, 진나라 목공으로 하여금 그의 천한 신분을 잊고 그와 더불어 정치를 하도록 만들었다. 순임금은 죽고 사는 것이 그의 마음에 끼여들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을 감화시키기에 족했던 것이다. 송나라 원군이 나라의 지도를 그리려 했다. 여러 화공들이 모두 달려와 명령을 받자 읍하고 서서 붓을 빨고 먹을 가는데, 방에도 못 들어오고 밖에 밀려나 있는 사람들이 반이 넘었다. 한 화공이 늦게 왔는데 유유히 빨리 걷지도 않고, 명령을 받고도 읍하고 서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원군이 사람을 시켜 그를 살펴보게 하니 그는 옷을 벗고 벌거숭이가 되어 두 발을 쭉 뻗고 앉아 있었다. 원군이 말했다. “됐다. 그 자가 정말로 잘 그릴 사람이다.” - 莊子(外篇) ; 第21篇 田子方[6]- 百里奚爵祿不入於心, 故飯牛而牛肥, 使秦穆公忘其賤, 與之政也. 有虞氏死生不入於心, 故足以動人. 宋元君將畵圖, 衆史皆至, 受揖而立. ?筆和墨, 在外者半. 有一史後至者, ??然不趨, 受揖不立, 因之舍. 公使人視之, 則解衣般??. 君曰:「可矣, 是眞畵者也.」
207` 특별한 의식으로는 무위의 다스림이 어렵다 (외편:21.전자방,7) - 장자(외편) ; 제21편 전자방[7]- 주나라 문왕이 장 땅에 구경을 갔다가 한 남자가 낚시질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낚싯대를 들고는 있지만 고기를 낚지는 않고 있었다. 그는 낚싯대를 들고 고기를 낚으려는 것이 아니라 낚시질로 자적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왕은 그를 등용하여 그에게 정치를 맡기려 하였으나 대신들과 부형들이 불안을 느낄까 두려웠다. 그대로 버려 두자니 백성들이 하늘과 같은 정치가를 잃게 되는 것을 차마 그대로 덮어둘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대부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어젯밤에 나는 훌륭한 사람을 만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검은 얼굴빛에 구레나룻이 났고, 한쪽 발굽만 붉은 얼룩말을 타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장땅의 노인에게 그대의 정치를 맡기면 백성들의 고통이 덜어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 대부들은 얼굴빛을 바꾸면서 말했다. “돌아가신 임금님이신 것 같습니다.” 문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점을 쳐보도록 하시오.” 여러 대부들이 말했다. “돌아가신 임금님께서 임금님께 직접 명하신 것인데 어찌 의심하여 점을 치겠습니까?” 마침내 장 땅의 노인을 맞이하여 그에게 정치를 맡겼다. 그는 법령을 바꾸지도 않았고 특별한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다. 삼년 만에 문왕이 나라를 시찰하니 조정의 신하들은 당파의 우두머리를 없애고 파벌을 없애버렸고, 관청의 우두머리들은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았고, 단위가 다른 도량형기들이 감히 사방의 외국으로부터 들어오지 않았다. 조정의 신하들이 당파의 우두머리를 없애고 파벌을 해산시킨 것은 대중과 함께 화합하기 위한 것이었다. 관청의 우두머리들이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 것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이었다. 단위가 다른 도량형기들이 감히 사방의 외국으로부터 들어오지 않는 것은 제후들이 각기 다른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문왕이 그를 태사로 모시고 제자의 예로써 북쪽을 향해 앉아서 물었다. “이 정치를 온 천하에 미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장땅의 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사직을 하고는 아침까지 명령을 내리다가는 밤에 도망하여 평생토록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다.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문왕은 아직 도에 통하지 못했습니까? 어째서 꿈을 빌어야만 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함부로 말하지 말아라. 문왕께서는 능력껏 다한 것인데, 어찌 그것을 논하고 비판하느냐? 그분은 다만 임시로 대세를 따랐을 뿐이다.” - 莊子(外篇) ; 第21篇 田子方[7]- 文王觀於臧, 見一丈人釣, 而其釣莫釣. 非持其釣有釣者也, 常釣也. 文王欲擧而授之政, 而恐大臣父兄之弗安也. 欲終而釋之, 而不忍百姓之无天也. 於是旦而屬之大夫曰:「昔者寡人夢見良人, 黑色而[?+頁], 乘駁馬而偏朱蹄, 號曰:‘寓而政於臧丈人, 庶幾乎民有?乎!」 諸大夫蹴然曰:「先君王也.」 諸大夫曰:「先君之命, 王其无?, 又何卜焉!」 遂迎臧丈人而授之政. 典法无出, 偏令无出. 三年, 文王觀於國, 則列士壞植散群, 長官者不成德, ?斛不敢入於四竟. 列士壞植散群, 則尙同也. 長官者不成德, 則同務也. ?斛不敢入於四竟, 則諸侯无二心也. 文王於是焉以爲大師, 北面而問曰.「政可以及天下乎?」 臧丈人昧然而不應, 泛然而辭, 朝令而夜遁, 終身无聞. 顔淵問於仲尼曰:「文王其猶未邪? 又何以夢爲乎?」 仲尼曰:「?, 汝无言! 夫文王盡之也, 而又何論刺焉! 彼直以循斯須也.」
208` 외물과 이해를 초월해야 참된 기교가 발휘될 수 있다 (외편:21.전자방,8) - 장자(외편) ; 제21편 전자방[8]- 열자가 백혼무인을 위해 활쏘기를 했다. 활시위를 완전히 잡아당기고는 그의 팔꿈치 위에 물이 담긴 그릇을 올려놓고 쏘는데, 활을 쏘아 화살이 나가자마자 화살이 다시 깍지에 끼어져 있었고, 둘째 화살이 나가자마자 다시 세 번째 화살이 시위에 매겨져 있었다. 이때에 그는 마치 나무인형과 같았다. 백혼무인이 말했다. “이것은 기술적인 활쏘기이지 기술을 쓰지 않는 활쏘기는 아니다. 시험삼아 너와 더불어 높은 산에 올라가 치솟은 바위를 밟고 백길 깊이의 심연을 앞에 두고서도 네가 잘 쏠 수 있는가를 보기로 하자.” 백 혼무인은 높은 산에 올라가 높이 치솟은 바위를 밟고 백 길의 심연을 앞에 두고, 등을 대고 더듬거리며 나아가는데 발의 삼분의 이는 허공에 놓여 있었다. 열자에게 손짓하여 그곳에 나오게 하니, 열자는 땅에 엎드린 채 발뒤꿈치까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백혼무인이 말했다. “지인이란 위로는 푸른 하늘을 들여다보고 아래로는 황천바닥까지 들어가며, 팔방으로 멋대로 날아다니되 정신이나 기백이 변치 않는 것이다. 지금 너는 두려움에 눈까지 가물거리는 모양이니, 지금 활을 쏜다면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 莊子(外篇) ; 第21篇 田子方[8]- 列禦寇爲伯昏无人射, 引之盈貫, 措杯水其?上, 發之, 適矢復沓, 方矢復寓. 當是時, 猶象人也. 伯昏无人曰:「是射之射, 非不射之射也. 嘗與汝登高山, 履危石, 臨百?之淵, 若能射乎?」 於是无人遂登高山, 履危石, 臨百?之淵, 背逡巡, 足二分垂在外, 揖禦寇而進之. 禦寇伏地, 汗流至踵. 伯昏无人曰:「夫至人者, 上?靑天, 下潛黃泉, 揮斥八極, 神氣不變. 今汝?然有恂目之志, 爾於中也殆矣夫!」
209` 참된 사람은 변화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외편:21.전자방,9) - 장자(외편) ; 제21편 전자방[9]- 견오가 손숙오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세 번이나 초나라 영윤이 되었었으나 그것을 영화로 생각하지 않았고, 세 번 그 자리를 떠날 때마다 근심하는 빛이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선생님을 이상하다 의심했었지만 지금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기쁘고 즐거운 듯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 마음을 지니고 계십니까?” 손숙오가 말했다. “내가 남 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는 닥쳐오게 되어 있는 것은 물리칠 수 없고, 떠나는 것은 멈추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얻고 잃게 되는 것이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심하는 빛이 없을 뿐입니다.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한 내가 존경을 받는 것이 영윤이라는 벼슬 때문인지 나 자신 때문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벼슬 때문이라면 나 자신 때문이 아닐 것이고, 나 자신 때문이라면 벼슬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바로 만족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는 여유가 있는데, 어찌 사람들이 귀하고 천하게 여기는 것에 마음을 쓸 틈이 있겠습니까?” 공자가 그 얘기를 듣고 말했다. “옛날의 진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설득시킬 수 없었고, 미인이라 하더라도 유혹할 수가 없었으며, 도적들도 겁탈할 수가 없었다. 복희나 황제도 그와 벗할 수가 없었다. 죽고 사는 것은 큰 문제이지만 그의 마음을 변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 하물며 벼슬과 녹이 문제가 되겠느냐? 그런 사람의 정신은 큰 산을 지나야 하더라도 방해가 되지 않고 깊은 못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낮고 천한 지위에 놓여도 고달프지 않다. 언제나 하늘과 땅에 충만하여 남에게 모든 것을 주기만 하는데도 자기는 더욱 많아지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21篇 田子方[9]- 肩吾問於孫叔敖曰:「子三爲令尹而不榮華, 三去之而无憂色. 吾始也疑子, 今視者之鼻間??然, 子之用心獨奈何?」 孫叔敖曰:「吾何以過人哉! 吾以其來不可却也, 其去不可止也, 吾以爲得失之非我也, 而无憂色而已矣. 我何以過人哉! 且不知其在彼乎, 其在我乎? 其在彼邪? 亡乎我. 在我邪? 亡乎彼. 方將躊躇, 方將四顧, 何暇至乎人貴人賤哉!」 仲尼聞之曰:「古之眞人, 知者不得說, 美人不得濫, 盜人不得劫, 伏戱黃帝不得友. 死生亦大矣, 而无變乎己, 況爵祿乎! 若然者, 其神經乎大山而无介, 入乎淵泉而不濡, 處卑細而不憊, 充滿天地, 旣以與人, 己愈有.」
210` 외물의 변화는 진실한 나의 존재와는 상관이 없다 (외편:21.전자방,10) 장자(외편) ; 제21편 전자방[10]- 초나라 임금이 범나라 임금과 마주앉아 있었다. 잠시 후 초나라 임금과 신하가 범나라가 망했다고 세 번이나 말을 했다. 그러나 범나라 임금은 말했다. “범나라의 멸망이 나의 존재를 없앨 수는 없는 것입니다.” 범나라의 멸망이 나의 존재를 없앨 수 없는 것이라면, 곧 초나라의 존재도 나의 존재를 존재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범나라는 처음부터 망한 일이 없고, 초나라는 처음부터 존재한 일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 莊子(外篇) ; 第21篇 田子方[10]- 楚王與凡君坐, 少焉, 楚王左右曰凡亡者三. 凡君曰:「凡之亡也, 不足以喪吾存. 夫‘凡之亡不足以喪吾存’, 則楚之存不足以存存. 由是觀之, 則凡未始亡而楚未始存也.」
211` 도를 말하는 사람은 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외편:22.지북유,1)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1]- 지가 북쪽의 현수가에 노닐다 은분의 언덕에 올라가는 길에 무위위를 만났다. 지가 무위위에게 말했다.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사색하고 어떤 것을 생각하면 도를 알게 됩니까? 어떻게 처신하고 어떻게 행동하면 도에 편안히 지낼 수 있게 됩니까? 어떤 것을 따르고 어떤 길로 가면 도를 얻을 수가 있습니까?” 세 번이나 물었으나 무위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지는 물음에 대답을 얻지 못하고, 백수의 남쪽으로 되돌아와 호결산 위에 올라갔다가 광굴을 만났다. 지는 앞에서와 같은 말을 광굴에게도 물어보았다. 광굴이 말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말하려하니, 마음속으로 말을 하려하다가도 하려고 하던 말을 잊게 되는군요.” 지는 물음에 대답을 얻지 못하고 돌아와 황제에게 앞에 물었던 말을 다시 물었다. 황제가 말했다. “사색도 없고 생각도 없어야 비로소 도를 알게 된다. 처신하는 곳도 없고 행하는 것도 없어야만 비로소 도에 편안히 지내게 된다. 따르는 것도 없고 가는 길도 없어야만 비로소 도를 얻게 된다.” 지가 황제에게 물었다. “저와 임금님은 도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무위위와 광굴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옳은 것입니까?” 황제가 말했다. “무위위가 진실로 옳은 것이다. 광굴은 그와 비슷하다. 도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인께서는 말로 표현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했던 것이다.”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1]- 知北遊於元水之上, 登隱?之丘而適遭无爲謂焉. 知謂无爲謂曰:「予欲有問乎若. 何思何慮則知道? 何處何服則安道? 何從何道則得道?」 三問而无爲謂不答也, 非不答, 不知答也. 知不得問, 反於白水之南, 登狐?之上, 而睹狂屈焉. 知以之言也問乎狂屈. 狂屈曰.「?! 予知之, 將語若, 中欲言而忘其所欲言.」 知不得問, 反於帝宮, 見黃帝而問焉. 黃帝曰:「无思无慮始知道, 无處无服始安道, 无從无道始得道.」 知問黃帝曰:「我與若知之, 彼與彼不知也, 其孰是邪?」 黃帝曰:「彼无爲謂眞是也, 狂屈似之. 我與汝終不近也. 夫知者不言, 言者不知, 故聖人行不言之敎.
212` 도란 말이나 인위로 이루어질 수 없다 (외편:22.지북유,2)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2]- “도는 말로써 이르게 할 수 없고, 덕은 인위로써 이르게 할 수 없다. 인은 그대로 행하여도 괜찮지만, 의는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고, 예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잃은 뒤에야 덕이 중시되고, 덕을 잃은 뒤에야 인이 중시되고, 인을 잃은 뒤에야 의가 중시되고, 의를 잃은 뒤에야 예가 중시된다. 예라는 것은 도의 열매 없는 꽃과 같은 것이며 혼란의 시발점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닦는 사람은 쓸데없는 일은 매일같이 버려야 한다. 그것을 버리고 또 버림으로써 무위에 이르러야 한다. 무위하게 됨으로써 모든 변화와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이미 물건으로써 존재하고 있으면서 근본으로 되돌아가려고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위대한 사람뿐이다.”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2]- 道不可致, 德不可至. 仁可爲也, 義可虧也, 禮相僞也. 故曰:‘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禮者, 道之華而亂之首也.’ 故曰:‘爲道者日損, 損之又損之以至於无爲, 无爲而无不爲也.’ 今已爲物也, 欲復歸根, 不亦難乎! 其易也, 其唯大人乎!
213` 천하는 하나의 기로 통한다 (외편:22.지북유,3)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3]- “삶이란 죽음의 무리이며, 죽음이란 삶의 시작인 것이다. 누가 그것의 법도를 다스리고 있는지 아는가? 사람의 삶이란 기가 모인 것이다. 기가 모이면 탄생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죽는 것이다. 만약 죽음과 삶을 같은 무리로 본다면 우리에게 또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만물은 일체인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신기하다고 하고, 그들에게 추하게 보이는 것을 고약하고 추하다고 한다. 그러나 고약하고 추한 것은 변하여 신기한 것이 되고, 신기한 것은 다시 변하여 고약하고 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는 한가지 기로써 통달되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성인은 그러므로 통일을 귀하게 여긴다.”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3]- 「生也死之徒, 死也生之始, 孰知其紀! 人之生, 氣之聚也. 聚則爲生, 散則爲死. 若死生爲徒, 吾又何患! 故萬物一也, 是其所美者爲神奇, 其所惡者爲臭腐. 臭腐復化爲神奇, 神奇復化爲臭腐. 故曰:‘通天下一氣耳.’ 聖人故貴一.」
214` 도란 극히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외편:22.지북유,4)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4]- 지가 황제에게 말했다. “제가 무위위에게 물었을 때 무위위는 제게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제게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몰랐던 것입니다. 제가 광굴에게 물었을 때 광굴은 마음속으로는 제게 얘기해 주려 하면서도 얘기를 해주지 않았는데, 제게 얘기를 해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얘기해 주려 하면서도 얘기할 말을 잊었던 것입니다. 지금 제가 임금님께 여쭈니 임금님께서는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도에 가깝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황제가 말했다. “무위위가 진실로 도를 알고 있다는 것은 거기에 대하여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굴은 도에 거의 가깝다고 한 것은 그의 도에 대해 잊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와 나는 끝내 도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거기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광굴이 그 얘기를 전해 듣고서 황제는 사리에 맞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4]- 知謂黃帝曰:「吾問无爲謂, 无爲謂不應我, 非不我應, 不知應我也. 吾問狂屈, 狂屈中欲告我而不我告, 非不我告, 中欲告而忘之也. 今予問乎若, 若知之, 奚故不近?」 黃帝曰:「彼其眞是也, 以其不知也. 此其似之也, 以其忘之也. 予與若終不近也, 以其知之也.」 狂屈問之, 以黃帝爲知言.
215` 우주만물의 존재와 변화는 도에 의한 것이다 (외편:22.지북유,5)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5]- 하늘과 땅은 위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고, 사계절은 밝은 법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논의하지 않고, 만물은 생성의 원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설명하지 않는다. 성인이란 하늘과 땅의 아름다움을 근원으로 삼고 있고 만물의 원리에 통달한 사람이다. 지인은 무위하며 위대한 성인은 작위가 없는데 하늘과 땅의 원리에 달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신령스럽고 밝은 도는 지극히 정묘하여 자연만물의 변화와 물건과 우리들이 죽고 살며 모나고 둥근 형체를 갖게 하고 있지만 그 근원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만물은 옛날부터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가 크다고 하지만 도의 내부를 떠나지 못한다. 가을 짐승의 털이 작다고 하지만 그 또한 도에 의하여 형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세 상의 모든 것은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변화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있지 않는다. 음양과 사철은 올바로 운행되어 모두가 그 질서를 잃지 않는다. 어두컴컴하여 없는 듯하면서도 존재하며, 자욱하니 형체가 없으면서도 신령스러운 것이 도이다. 만물은 도에 의하여 자라고 있지만 알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근본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이것에 의하여 자연을 달관할 수가 있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5]- 天地有大美而不言, 四時有明法而不議, 萬物有成理而不說. 聖人者, 原天地之美而達萬物之理, 是故至人无爲, 大聖不作, 觀於天地之謂也. 合彼神明至精, 與彼百化, 物已死生方圓, 莫知其根也, 扁然而萬物自古以固存. 六合爲巨, 未離其內. 秋毫爲小, 待之成體. 天下莫不沈浮, 終身不顧. 陰陽四時運行, 各得其序. ?然若亡而存, 油然不形而神, 萬物畜而不知. 此之謂本根, 可以觀於天矣.
216` 도를 터득한 사람이란 (외편:22.지북유,6)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6]- 설결이 피의에게 도에 관하여 물으니, 피의가 대답했다. “당신이 당신의 형체를 바르게 갖고 당신의 시선을 통일한다면 자연의 조화가 이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지혜를 버리고 당신의 태도를 통일하기만 한다면 신명이 당신의 몸에와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덕이 당신을 아름답게 하여 줄 것이며, 도가 당신의 생활을 이룩해 줄 것입니다. 당신은 어리석은 듯이 갓 낳은 송아지처럼 되어 모든 일의 까닭을 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설결은 잠이 들었다. 피의는 기쁘게 노래를 부르며 그 자리를 떠나갔다. “형체는 마른 해골과 같고, 마음은 식은 재와 같네. 진실로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다고 스스로 뽐내지도 않네. 흐릿하고 컴컴하게 무심하여 함께 얘기할 수도 없네. 이는 어찌된 사람인가.”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6]- 齧缺問道乎被衣, 被衣曰:「若正汝形, 一汝視, 天和將至. 攝汝知, 一汝度, 神將來舍. 德將爲汝美, 道將爲汝居, 汝瞳焉如新生之犢而无求其故!」 言未卒, 齧缺睡寐. 被衣大說, 行歌而去之, 曰:「形若槁骸, 心若死灰, 眞其實知, 不以故自持. 媒媒晦晦, 无心而不可與謀. 彼何人哉!」
217` 도란 사람이 인식하여 지닐 수 없는 것이다 (외편:22.지북유,7)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7]- 순임금이 승에게 물었다. “도란 터득하여 지니고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승이 말했다. “임금님의 몸도 임금님이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거기에다 도를 지니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순임금이 말했다. “내 몸이 내 소유가 아니라면 누가 지니고 있는 것입니까?” 승이 말했다. “그 것은 하늘과 땅에 부속되어 있는 형체입니다. 삶도 임금님께서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 부속되어 있는 조화입니다. 생명도 임금님께서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 부속되어 있는 순리인 것입니다. 자손들도 임금님께서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 부속된 변화입니다. 그러므로 걸어가면서도 갈 곳을 알지 못하고, 살고 있으면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하늘과 땅이 운동하는 기에 의하여 되는 것인데 어찌 소유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7]- 舜問乎丞曰:「道可得而有乎?」 曰:「汝身非汝有也, 汝何得有夫道?」 舜曰:「吾身非吾有也, 孰有之哉?」 曰:「是天地之委形也. 生非汝有, 是天地之委和也. 姓名非汝有, 是天地之委順也.孫子非汝有, 是天地之委?也. 故行不知所往, 處不知所持, 食不知所味. 天地之强陽氣也, 又胡可得而有邪!」
218` 지극한 도는 만물과 자연변화의 근본이다 (외편:22.지북유,8)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8]- 공자가 노자에게 물었다. “오늘은 한가하니 지극한 도에 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노자가 말했다. “제계를 하여 당신 마음을 깨끗이 씻고, 당신의 정신을 맑게 씻어내고, 당신의 지혜를 없애야 합니다. 도라는 것은 아득하여 표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해 대강을 얘기해 주겠습니다. 분 명한 물건들은 어둑어둑하여 보이지 않는 것에서 생겨나고, 형체를 지니고 있는 것들은 형체가 없는 것에서 생겨납니다. 사람의 정신은 도에서 생겨나며 육체는 정기의 화합에서 생겨납니다. 그리고 만물은 형체로부터 형체들을 서로 생성합니다. 그러므로 몸에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짐승들은 태생을 하고, 여덟 개의 구멍을 가지고 있는 새나 물고기들은 난생을 하지만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는 자취도 없고 그것이 어디로 가는 지는 한계도 없습니다. 드나드는 문도 없고 들어가 머물 방도 없으며, 사방으로 통달하여 넓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를 따르는 사람은 신체가 건강하고 생각이 두루 통달되며, 귀와 눈이 총명합니다. 그의 마음 씀은 수고롭지 않고, 밖의 물건의 변화에 대한 호응은 자유롭기만 합니다. 하늘도 이것을 터득하지 못하면 높을 수가 없고, 땅도 이것을 터득하지 못하면 넓을 수가 없으며, 해와 달도 이것을 터득하지 못하면 운행될 수가 없고, 만물도 이것을 터득하지 못하면 창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라는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8]- 孔子問於老聃曰:「今日晏閒, 敢問至道.」 老聃曰:「汝齊戒, 疏淪而心, ?雪而精神, ?擊而知! 夫道, ?然難言哉! 將爲汝言其崖略. 「夫昭昭生於冥冥, 有倫生於无形, 精神生於道, 形本生於精, 而萬物以形相生, 故九竅者胎生, 八竅者卵生. 其來无迹, 其往无崖, 无門无旁, 四達之皇皇也. 邀於此者, 四肢强, 思慮恂達, 耳目聰明, 其用心不勞, 其應物无方. 天不得不高, 地不得不廣, 日月不得不行, 萬物不得不昌, 此其道與!」
219` 도란 지식과 이론을 초월한 만물의 근원이다 (외편:22.지북유,9)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9]- “도에 대하여 널리 안다는 것은 반드시 옳은 지식이 아니며, 거기에 대하여 잘 논한다는 것이 반드시 옳은 지혜는 아닙니다. 도를 터득한 성인들은 그런 지식과 이론을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거기에 보태주어도 늘어나지 않고, 덜어내어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 성인이 보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깊기는 바다와 같고 지극히 높으며 끝나는가 하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갑니다. 만물을 운행하게 하고 성장시키면서도 빠뜨리는 것이 없으니, 군자의 도는 그 밖에 멀리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만물은 모두 이에 의하여 성장하고 변화하면서도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도라는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9]- 「且夫博之不必知, 辯之不必慧, 聖人以斷之矣. 若夫益之而不加益, 損之而不加損者, 聖人之所保也. 淵淵乎其若海, 巍巍乎其若山, 終則復始也, 運量萬物而不?. 則君子之道, 彼其外與! 萬物皆往資焉而不?, 此其道與!」
220` 죽음은 도에 따른 자연변화의 한 현상이다 (외편:22.지북유,10)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10]- “이땅에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사람은 음도 아니고 양도 아니어서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잠시 동안 사람으로 존재하지만, 결국은 그 근본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근본에서부터 본다면 삶이란 것은 기가 모여 있는 물건에 불과합니다. 비록 오래 살고, 일찍 죽는 차이가 있다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짧은 시간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니 어찌 요임금은 성인이고 걸왕은 폭군이란 시비가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나무 열매나 풀의 열매도 원리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논리는 다 추구하기는 어렵지만 역시 그 원리에 의하여 서로 어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인은 그 원리에 의한 변화를 당하게 되면 어기지 않고, 변화가 눈앞에 지나가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 조화함으로써 순응하는 것이 덕이며, 거기에 짝이 되어 순응하는 것이 도인 것입니다. 이 덕과 도에서 제왕이 생겨나고 왕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있는 것은 마치 날쌘 말이 틈 앞을 지나는 것처럼 순간적인 일에 불과합니다. 만물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서 모두가 생겨나고, 자연의 변화에 의하여 모두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연의 변화에 의하여 태어나기도 하고 또 자연의 변화에 의하여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물들은 서러워하고 인간들은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러나 죽음이란 활집에서 활을 풀어놓는 것과 다름이 없는 자연의 변화이며, 책 껍질을 벗겨버리는 것과 같은 자연의 변화인 것입니다. 육체에서 혼백이 떨어지는 것인데, 혼백이 어디론가 가버리면 육체도 이를 따라 위대한 귀착점인 도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형체도 없는 상태에서 형체가 이룩되고 형체를 지닌 물건은 형체가 없는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다 같이 알고 있는 일이지만, 지극한 도에 이르려는 사람은 그 구별에 대하여 힘쓸 것이 못 됩니다. 이것에 대하여는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논하는 것이지만 지극한 도에 이르려는 사람은 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 대하여 논하면 지극한 도에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란 분명히 보려고 하면 만나지 못하는 것이니, 이론을 펴는 것은 침묵을 지키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도란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이 못 되며, 거기에 대하여 듣는 것은 귀를 막고 듣지 않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지혜와 감각을 떠나 도에 합치되는 것을 위대한 터득을 했다는 뜻에서 대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10]- 「中國有人焉, 非陰非陽, 處於天地之間, 直且爲人, 將反於宗. 自本觀之, 生者, ?醋物也. 雖有壽夭, 相去幾何? 須臾之說也. 奚足以爲堯桀之是非! 果?有理, 人倫雖難, 所以相齒. 聖人遭之而不違, 過之而不守. 調而應之, 德也. 偶而應之, 道也. 帝之所興, 王之所起也.」 「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 忽然而已. 注然勃然, 莫不出焉. 油然?然, 莫不入焉. 已化而生, 又化而死, 生物哀之, 人類悲之. 解其天?, 墮其天[失+衣], 紛乎宛乎, 魂魄將往, 乃身從之, 乃大歸乎! 不形之形, 形之不形, 是人之所同知也, 非將至之所務也, 此衆人之所同論也. 彼至則不論, 論則不至. 明見无値, 辯不若?. 道不可聞, 聞不若塞. 此之謂大得.」
221` 도는 어디에나 있고 모든 현상은 도에 의한 것이다 (외편:22.지북유,11)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11]- 동곽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도라는 것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입니까?” 장자가 말했다. “어디에든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있는 곳을 지적해 주십시오.” “개미에게 있습니다.” “어찌해서 그처럼 하찮은 곳에 있습니까?” “강아지풀이나 논에 자라는 피에도 있습니다.” “어찌해서 더욱 하찮은 것에 있습니까?” “기와나 벽돌에도 있습니다.” “어찌해서 더욱 심해집니까?” “오줌과 똥에도 있습니다.” 더 이상 동곽자는 아무 말도 못하게 되었다. 장자가 다시 말했다. “당신의 질문은 본래가 본질적인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시장의 관리인이 시장을 감독하는 사람에게 돼지를 밟아보고 그 살찐 정도를 조사하게 할 때도, 살찌기 어려운 곳을 밟아내려 갈수록 그 정도를 더욱 잘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꼭 어디에 있는가하고 한정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물건은 무엇이나 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극한 도는 이와 같은 것이며, 위대한 이론 역시 이런 것입니다. 두루, 언제나, 모두 이 세 가지 표현은 도에 대하여 말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을 뜻하여 그 표현하는 것은 한가지인 것입니다. 시험삼아 당신과 더불어 무하유의 궁전에 노닐어 봅시다. 그리고 함께 자연의 도에 합치되어 도를 논해보면 그 무궁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험삼아 무위의 경지에 들어가 봅시다. 그러면 담담히 고요해지고 깨끗이 맑아져서 만물과 조화되어 한가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뜻은 텅비게 되어, 마음은 가려는 곳 없이 자연에 맡겨두어 그 이르는 곳도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되는 대로 갔다 왔다 하며 그 멈춰지는 곳을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미 왔다갔다하고 있지만 그 끝나는 곳을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텅빈 광대한 곳에 거닐고 있어서 위대한 지혜를 쓴다해도 그 궁극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물건을 물건의 존재대로 인정하는 사람은 물건과 한계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물건에 대하여 한계를 긋고 구별하는 사람은 이른바 물건에 의하여 자기 한계를 지니게 되는 사람인 것입니다. 물건과의 한계가 없다는 것은 상대적인 한계대로 순응하는 것이며, 물건에 대하여 한계를 긋는다는 것은 상대적인 한계대로 순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찼다가는 비고, 모였다가 없어지는 것으로 말한다면, 어떤 물건이 차고 비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차고 비는 것이 아니며, 어떤 물건이 모이고 없어지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모이고 없어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물건의 근본과 말단도 절대적인 근본과 말단이 되는 것은 아니며, 어떤 물건이 쌓이고 흩어지고 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쌓이고 흩어지고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11]- 東郭子問於莊子曰:「所謂道, 惡乎在?」 莊子曰:「無所不在.」 東郭子曰:「期而後可.」 莊子曰:「在?蟻.」 曰:「何其下邪?」 曰:「在?稗.」 曰:「何其愈下邪?」 曰:「在瓦?.」 曰:「何其愈甚邪?」 曰:「在屎溺.」 東郭子不應. 莊子曰:「夫子之問也, 固不及質. 正獲之問於監市履?也, 每下愈況. 汝唯莫必, 无乎逃物. 至道若是, 大言亦然. 周遍咸三者, 異名同實, 其指一也. 「嘗 相與游乎无何有之宮, 同合而論, 无所終窮乎! 嘗相與无爲乎! 澹而靜乎! 漠而淸乎! 調而閒乎! 寥已吾志, 无往焉而不知其所至, 去而來而不知其所止, 吾已往來焉而不知其所終. 彷徨乎馮?, 大知入焉而不知其所窮. 物物者與物无際, 而物有際者, 所謂物際者也. 不際之際, 際之不際者也. 謂盈虛衰殺, 彼爲盈虛非盈虛, 彼爲衰殺非衰殺, 彼爲本末非本末, 彼爲積散非積散也.」
222` 도에 대한 이론은 진실한 도를 뜻할 수 없다 (외편:22.지북유,12)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12]- 아하감이 신농과 함께 노용길에게 공부하고 있었다. 신농이 안석에 기대어 문을 닫고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하감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말했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네.” 신농이 안석에 기대어 있다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가 지팡이를 내던지며 웃으며 말했다. “하늘은 내가 편벽되고 고루하면서도 허망한 자라 하여, 나를 버리고 돌아가시게 한 것일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계발시켜줄 지극한 말씀도 한 마디 없이 돌아가셨구나.” 엄강조가 그 얘기를 듣고 말했다. “도를 체득한 사람이란 천하의 군자들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신농은 도에 대하여 털끝의 만분의 일도 터득하고 있지 못하면서 그 분이 지극한 말을 품은 채 죽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하물며 도를 체득한 사람이야 도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임을 얼마나 잘 알겠는가? 도란 보아도 형체가 없고 들어도 소리가 없다. 사람들 중에 그것을 논하는 사람들이 도를 캄캄하다는 뜻에서 명명(冥冥)이라 부르고 있으나, 도에 대한 이론은 진실한 도를 뜻할 수 없는 것이다.”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12]- ?荷甘與神農同學於老龍吉. 神農隱?闔戶晝瞑, ?荷甘日中?戶而入曰:「老龍死矣!」 神農隱?擁杖而起, ?然放杖而笑, 曰:「天知予僻陋慢?, 故棄予而死. 已矣! 夫子无所發予之狂言而死矣夫!」 ?堈弔聞之曰:「夫體道者, 天下之君子所繫焉. 今於道, 秋毫之端萬分未得處一焉, 而猶知藏其狂言而死, 又況夫體道者乎! 視之无形, 聽之无聲, 於人之論者, 謂之冥冥, 所以論道, 而非道也.」
223` 도란 형용하고 인지할 수 없는 것이다 (외편:22.지북유,13)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13]- 태청이 무궁에게 물었다. “당신은 도를 아십니까?” 무궁이 말했다. “알지 못합니다.” 다시 무위에게 물으니 무위가 말했다. “도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태청이 다시 물었다. “당신이 아는 도에는 법도라는 것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 법도는 어떻습니까?” “내가 아는 도는 귀해질 수도 있고 친해질 수도 있으며, 모여들 수도 있고 흩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도의 법도입니다.” 태청이 이 얘기를 듣고 무시에게 물었다. “무궁은 알지 못하였고, 무위는 알고 있었는데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입니까?” 무시가 말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 심오하고, 그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천박한 것입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내면적인 것이고 안다는 것은 외면적인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태청이 탄식하며 말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입니까? 안다는 것이 바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누가 알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아는 것임을 알겠습니까?” 무시가 말했다. “도란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니 들은 것은 도가 아닙니다. 도란 볼 수 없는 것이니 본 것은 도가 아닙니다. 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니 말로 표현되었다면 도가 아닙니다. 형체를 지닌 물건들의 형체를 지니게 하는 것이 도임을 알겠습니까? 그러니 도란 이름을 붙여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시가 다시 말했다. “누가 도에 대하여 물었을 때 그 물음에 대답을 하는 사람은 도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도에 대하여 질문한 사람도 역시 참된 도에 대하여 듣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란 물어서도 안 되는 것이며, 묻는다 하여 대답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물어서는 안 되는 것을 묻는 것은 헛된 질문입니다. 대답할 수 없는 것을 대답하는 것은 진실한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이 없이 헛된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은 밖으로는 우주의 현상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고, 안으로는 태초의 오묘한 이치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곤륜산 같은 고원한 경지에 가보지도 못하고 태허의 거침없는 세계에 노닐어 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13]- 於是泰淸問乎无窮曰:「子知道乎?」 无窮曰:「吾不知.」 又問乎无爲. 無爲曰:「吾知道.」 曰:「子之知道, 亦有數乎?」 曰:「有.」 无爲曰:「吾知道之可以貴, 可以賤, 可以約, 可以散, 此吾所以知道之數也.」 泰淸以之言也問乎无始曰:「若是, 則无窮之弗知與无爲之知, 孰是而孰非乎?」 无始曰:「不知深矣, 知之淺矣. 弗知內矣, 知之外矣.」 於是泰淸中而歎曰:「弗知乃知乎! 知乃不知乎! 孰知不知之知?」 无始曰:「道不可聞, 聞而非也. 道不可見, 見而非也. 道不可言, 言而非也. 知形形之不形乎! 道不當名.」 无始曰:「有問道而應之者, 不知道也. 雖問道者, 亦未聞道. 道无問, 問无應. 无問問之, 是問窮也. 无應應之, 是无內也. 以无內待問窮, 若是者, 外不觀乎宇宙, 內不知乎大初, 是以不過乎崑崙, 不遊乎太虛.」
224` 무(無)도 없는 절대적인 무의 경지 (외편:22.지북유,14) 무`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14]- 광요가 무유에게 물었다. “당신은 존재하는 것입니까.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무 유는 대답 않았다. 광요는 대답을 얻지 못하자 무유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득하고 텅 비어 있어 하루 종일 그를 보았으나 보이지 않았고, 그의 소리를 들으려 하였으나 듣지 못했으며, 그를 잡아보려 하였으나 잡을 수가 없었다. 광요가 말했다. “지극하구나. 그 누가 이런 경지에 이를 수가 있겠는가? 나는 무의 존재는 인식할 수 있었지만 무도 없는 경지는 인식할 수가 없었다. 무와 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야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14]- 光曜問乎无有曰:「夫子有乎? 其无有乎? 无有弗應也. 光曜不得問, 而孰視其狀貌, ?然空然, 終日視之而不見, 聽之而不聞, 博之而不得也. 光曜曰:「至矣! 其孰能至此乎! 予能有无矣, 而未能无无也. 及爲无有矣, 何從至此哉!」
225` 정신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신기에 이를 수 있다 (외편:22.지북유,15)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15]- 대사마의 띠 갈고리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 팔십이 되어서도 작은 실수 조차 없었다. 대사마가 말했다. “당신은 기교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무슨 도가 있는 것입니까?” 띠 갈고리를 만드는 사람이 말했다. “저에게는 지키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나이 스물에 띠 갈고리를 만들기를 좋아하였는데,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띠 갈고리가 아니면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기술의 사용에 있어서 정신을 다른 곳에 쓰지 않는 방법을 씀으로써 늙도록 그의 기술을 발휘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하물며 쓰지 않는 것조차 없는 경지의 도야 어떻겠는가? 만물은 어느 곳이고 이에 힘입지 않는 것이 있는가?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15]- 大馬之?鉤者, 年八十矣, 而不失豪芒. 大馬曰:「子巧與? 有道與?」 曰:「臣有守也. 臣之年二十而好?鉤, 於物无視也, 非鉤无察也. 是用之者, 假不用者也以長得其用, 而況乎无不用者乎! 物孰不資焉!」
226` 도는 시작도 끝도 옛날도 지금도 없다 (외편:22.지북유,16)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16]- 염구가 공자에게 물었다. “하늘과 땅이 있지 않았을 때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알수 있다. 옛날도 지금이나 같았다.” 염구는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을 얻지 못하고 물러났다가 다음날 다시 찾아와 말했다. “어제 제가「하늘과 땅이 있기 전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선생님은 「알 수 있다. 옛날도 지금이나 같았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어제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어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을 텅 비우고 신명으로써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오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장애가 있어 신명치 못한 마음으로 뜻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다. 자손이 있지도 않은데 자손이 있는 것으로 따져 가면 되겠느냐?” 염구가 대답도 하기 전에 공자가 다시 말했다. “그만두어라. 대답은 말아라. 삶의 원리로써 살고 죽게 하는 것도 아니며, 죽음의 원리로써 죽고 살게 하는 것도 아니다. 죽음과 삶이 의지하는 물건이 있겠느냐? 모두가 스스로 변화해 가는 자연현상으로써 일체의 것인 것이다.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겨난 물건이 있는 것일까? 물건을 물건으로써 존재하게 한 것은 물건이 아닌 도인 것이니, 물건이 생겨난 것이 다른 물건에 앞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물건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물건의 존재는 끝이 없는 것이다. 성인은 사람들을 사랑함에 있어 끝내 끝이 없는데 역시 여기에서 법도를 취한 것이다.”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16]- ?求問於仲尼曰:「未有天地可知邪?」 仲尼曰:「可. 古猶今也.」 ?九失問而退, 明日復見, 曰:「昔者吾問 ‘未有天地可知乎?’ 夫子曰:‘可. 古猶今也.’ 昔日吾昭然, 今日吾昧然, 敢問何謂也?」 仲尼曰:「昔之昭然也, 神者先受之. 今之昧然也, 且又爲不神者求邪! 无古无今, 无始无終. 未有子孫而有子孫, 可乎?」 ?九未對. 仲尼曰:「已矣, 未應矣! 不以生生死, 不以死死生. 死生有待邪? 皆有所一體. 有先天地生者物邪? 物物者非物. 物出不得先物也, 猶其有物也. 猶其有物也, 无已. 聖人之愛人也終无已者, 亦乃取於是者也.
227` 외물과 융화하여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겨라 (외편:22.지북유,17) - 장자(외편) ; 제22편 지북유[17]-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제가 전에 선생님으로부터 사라져가는 것을 전송하지도 말고 닥쳐오는 것을 마중하지도 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까닭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옛날 사람들은 밖의 물건이 변화하더라도 거기에 순응하기만 했지 자기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 사람들은 자기 마음은 밖의 물건에 의하여 변화하면서도 밖의 물건에 동화하지는 못한다. 물건과 더불어 함께 변화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자신의 마음은 변화시키지 않는 것이다. 자연에 따라 변화하기도 하고 변화하지 않기도 하는데, 언제나 자연의 변화를 따르기만 하며 반드시 자연에 대하여 지나치는 일이 없이 자기 분수를 지킨다. 희위씨는 동산을 만들고 살았고, 황제는 채소밭을 만들고 살았고, 유우씨 순임금은 궁전을 만들고 살았고, 은나라 탕임금과 주나라 무왕은 궁실을 짓고 살았다. 이처럼 후대로 올수록 노니는 범위가 좁아져서, 후세에는 군자라는 사람들이 유가와 묵가를 따라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으므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서로를 공격하게 되었다. 그러니 하물며 지금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성인은 물건을 따르므로 물건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물건을 손상시키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는 물건 또한 그를 손상시킬 수 없게 된다. 오직 물건을 손상시키는 일이 없는 사람만이 자연을 따라 보내고 마중할 수가 없게 된다. 산림에서건 평원에서건 노니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흔흔히 즐기게 하여 준다. 그러나 즐김이 끝나기도 전에 슬픔이 또 계속되게 되는 것이다. 슬픔과 즐거움이 닥치는 것은 우리로서는 막을 수가 없다. 그것들이 떠나는 것도 우리는 막을 수가 없다. 슬프다! 세상 사람들이란 바로, 밖의 물건들이 머물러 슬프고 즐겁게 해주는 여관이라 할 수 있다. 지혜로써 경험한 것들은 알지만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한다. 능력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은 할 수 있지만 능력 밖에 있는 것은 할 수 없다. 그래서 알지 못하는 것이 있고,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본래 사람으로써는 면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으로서 면할 수 없는 일을 면하려고 힘쓰고 있다는 것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지극한 이론이란 이론을 초월한 것이며, 지극한 행위란 행위를 초월한 것이다. 지혜로써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려한다는 것은 천박한 일이다.” - 莊子(外篇) ; 第22篇 知北游[17]- 顔淵問乎仲尼曰:「回嘗聞諸夫子曰:‘无有所將, 无有所迎.’ 回敢問其遊.」 仲尼曰:「古之人, 外化安不化, 安與之相靡, 必與之莫多. ?韋氏之?, 黃帝之圃, 有虞氏之宮, 湯武之室. 君子之人, 若儒墨者師, 故以是非相[?+?]也, 而況今之人乎! 聖人虛物不傷物. 不傷物者, 物亦不能傷也. 唯无所傷者, 爲能與人相將迎. 山林與! 皐壤與! 使我欣欣然而樂與! 樂未畢也, 哀又繼之. 哀樂之來, 吾不能禦, 其去弗能止. 悲夫, 世人直爲物逆旅耳! 夫知遇而不知所不遇, 能能而不能所不能. 无知无能者, 固人之所不免也. 夫務免乎人之所不免者, 豈不亦悲哉! 至言去言, 至爲去爲. 齊知之所知, 則淺矣.」
[[ 잡편 7 miscellaneous chapters]] 228` 지극한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잡편:23.경상초,1)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1] - 노자의 제자중에 경상초라는 사람이 있었다. 노자의 도를 어느 정도 터득하고 북쪽 외루산에 살고 있었다. 그의 하인 중에서 똑똑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그를 떠났고, 그의 첩들 중에서 온후하고 어진 사람들은 그를 멀리 했다. 못난 자들만 그와 함께 살고 멍청한 자들만 그의 부림을 받았다. 삼 년이 지나자 외루산 일대에 크게 풍년이 들었다. 외루산 일대의 사람들은 서로 얘기했다. “경상초가 처음 왔을 때 우리는 놀라며 그를 이상히 여겼었다. 나날이 그가 한 일을 헤아려보면 별 것이 아닌데, 일년을 두고 따져보니 큰일을 해 놓았다. 아마도 그는 성인일 것이다. 우리가 어찌 그 분을 윗자리에 앉혀놓고 임금으로 모시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경상초는 그 얘기를 듣고 남쪽으로 앉은 채 떨떠름한 표정을 짖고 있었다. 제자들이 이상히 생각하여 그 이유를 물으니, 경상초가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이상하게 보이느냐? 봄기운이 퍼지면 온갖 초목이 싹트고, 가을이 되면 모든 열매가 익는다. 봄이나 가을에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것은 자연의 도에 의하여 그렇게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듣기로 지극한 사람은 작은 방안에 조용히 숨어살고, 백성들은 멋대로 날뛰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곳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나를 어진 사람으로 떠받들려 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스스로를 내세우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노자의 말에 어긋나게 된 것이므로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 [1] - 老聃之役, 有庚桑楚者, 偏得老聃之道, 以北居畏壘之山, 其臣之畵然知者去之, 其妾之?然仁者遠之. 擁腫之與居, ?掌之爲使. 居三年, 畏壘大壤. 畏壘之民相與言曰:「庚桑子之始來, 吾?然異之. 今吾日計之而不足, 歲計之而有餘. 庶幾其聖人乎! 子胡不相與尸而祝之, 社而稷之乎?」 庚桑子聞之, 南面而不釋然. 弟子異之. 庚桑子曰:「弟子何異乎予? 夫春氣發而百草生, 正得秋而萬寶成. 夫春與秋, 豈无得而然哉? 天道已行矣! 吾聞至人, 尸居環堵之室, 而百姓猖狂不知所如往. 今以畏壘之細民而竊竊焉欲俎豆予于賢人之間, 我其杓之人邪! 吾是以不釋於老聃之言.」
229` 인위적인 일이나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마라 (잡편:23.경상초,2)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2] - 경상초의 제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보통의 작은 도랑에서는 큰 고기는 그의 몸을 돌릴 수가 없지만, 송사리나 미꾸라지는 거기에서도 그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한길 높이의 언덕에서는 큰 짐승들은 그의 몸을 감출 곳이 없지만 여우는 그곳에서도 신출귀몰합니다. 또한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며, 착한 것과 이로운 것을 앞세우는 것은 요순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그러니 하물며 외루산 지방의 백성들이야 그렇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십시오.” 경상초가 말했다. “수레를 한 입에 삼킬 만큼 큰 짐승이라 하더라도 홀로 떨어져 산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물과 올가미의 재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배를 삼킬 만큼 큰 물고기라 하더라도 뛰어올랐다가 잘못하여 물 밖으로 나오게 되면 작은 개미들이라 하더라도 그를 괴롭히게 된다. 그러므로 새와 짐승들은 높은 곳을 싫어하지 않고, 고기와 자라들은 깊은 곳을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그처럼 그의 육체와 생명을 완전히 하는 사람들은 그의 몸을 숨김에 있어서 깊고 먼 것을 싫어하지 않는 법이다. 또한 요순 같은 사람들에게 칭찬할 만한 점이 어디 있느냐? 그들의 자신들의 이론으로써 함부로 집의 담을 뚫게 하고 그 안에 쑥대를 무성하게 만든 것과 같다. 그들은 머리칼을 한올한올 골라가며 빗질을 하고, 쌀알을 세어가며 밥을 짓는 것과 같은 일을 했다. 그런 작은 일에 얽매어서야 어찌 세상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현명한 사람들을 등용하면 백성들이 서로 다투게 되고, 지혜 있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면, 백성들은 서로 도둑질을 하게 된다. 이런 몇 가지 일로는 백성들을 돈후하게 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방법은 백성들에게 이익을 열심히 추구하게 하여, 자식 중에서 아버지를 죽이는 자가 생겨나고, 신하 중에서는 임금을 죽이는 자가 생겨나게 만들 것이다. 대낮에 도둑질을 하고, 한낮에 남의 담을 뚫고 들어가는 일이 생기게 만들 것이다. 큰혼란의 근본은 틀림없이 요순시대에 생겨났던 것이다. 그런 것은 결국 천세 뒤까지 존속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천세 뒤에는 반드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2]- 弟子曰:「不然. 夫尋常之溝, 巨魚无所還其體, 而??爲之制. 步?之丘, 巨獸无所隱其軀, 而[?+女]狐爲之祥. 且夫尊賢授能, 先善與利.自古堯舜以然, 而況畏壘之民乎! 夫子亦聽矣!」 庚桑子曰:「小子來! 夫函車之獸, 介而離山, 則不免於罔?之患. 呑舟之魚, ?而失水, 則蟻能苦之. 故鳥獸不厭高, 魚鼈不厭深. 夫全其形生之人, 藏其身也, 不厭深?而已矣. 「且 夫二子者, 又何足以稱揚哉! 是其於辯也, 將妄鑿垣牆而殖蓬蒿也. 簡髮而櫛, 數米而炊, 竊竊乎又何足以濟世哉! 擧賢則民相軋, 任知則民相盜. 之數物者, 不足以厚民. 民之於利甚勤, 子有殺父, 臣有殺君, 正晝爲盜, 日中穴(?+不). 吾語女, 大亂之本, 必生於堯舜之間, 其末存乎千世之後. 千世之後, 其必有人與人相食者也!」
230` 마음을 번거롭게 쓰지 말아라 (잡편:23.경상초,3)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3] - 경상초의 제자 남영주가 크게 감동하여 자리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저처럼 이미 나이가 든 사람은 어떻게 수양을 해야 말씀하신 것처럼 될 수 있겠습니까?” 경상초가 말했다. “자신의 육체를 완전히 하고 자신의 삶을 보전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리저리 쓰지 마십시오. 그렇게 삼 년만 지내면 내가 말한 것처럼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영주가 말했다. “눈의 형체를 두고 말하자면 제가 보기에는 장님도 우리와 다를 바 없지만, 장님은 보지 못합니다. 귀의 형체를 두고 말하자면 제가 보기에는 귀머거리도 우리와 다를 바 없지만 귀머거리는 듣지 못합니다. 마음의 형체를 두고 말하자면, 제가 보기에는 미친 사람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지만 미친 사람은 바른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형체와 형체들은 서로 비슷합니다. 그런데도 기능에는 차이가 나는 것은 어떤 물건이 그들 사이에 간격을 만들기 때문인 것입니까? 도를 추구해 보려 해도 도를 터득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제게 말씀하시기를「형체를 완전히 하고, 삶을 보전하며, 생각을 이리저리 쓰지 마라」라고 하셨는데, 저는 억지로 도에 관하여 듣기는 하였지만 겨우 귀에만 들렸을 뿐 마음으로 깨우치지는 못했습니다.” 경상초가 말했다. “말로는 다 설명되었습니다. 작은 나나니벌은 큰 벌레를 자기 새끼로 길러내지 못하고, 작은 닭은 큰고니의 알을 부화시키지 못하지만, 큰 닭은 그것이 가능하다 했습니다. 닭과 닭을 놓고 볼 때 그 덕은 모두가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은 가능하고 한편은 가능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재능에 본시부터 크고 작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의 재능은 작아서 당신을 교화시킬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남쪽으로 가서 노자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3]- 南榮?蹴然正坐曰:「若?之年者已長矣, 將惡乎託業以及此言邪?」 庚桑子曰:「全汝形, 抱汝生无使汝思慮營營. 若此三年, 則可以及此言矣.」 南 榮?曰:「目之與形, 吾不知其異也, 而盲者不能自見. 耳之與形, 吾不知其異也, 而聲者不能自聞. 心之與形, 吾不知其異也, 而狂者不能自得. 形之與形亦?矣, 而物或間之邪, 欲相求而不能相得? 今謂?曰:‘全汝形, 抱汝生, 勿使汝思慮營營.’ ?勉聞道耳矣!」 庚桑子曰:「辭盡矣. 奔蜂不能化藿?, 越鷄不能伏鵠卵, 魯鷄固能矣. 鷄之與鷄, 其德非不同也, 有能與不能者, 其才固有巨小也. 今吾才小, 不足以化子. 子胡不南見老子!」
231` 지혜 어짊 의로움은 자신을 괴롭힌다 (잡편:23.경상초,4) 정의` 의분` 갈등`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4] - 남영주가 양식을 챙겨 짊어지고, 칠일 밤낮이 걸려 노자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노자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경상초가 있는 곳에서 오지 않았습니까?” 남영주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어째서 함께 온 사람들이 그리도 많습니까?” 남영주는 놀라며 그의 뒤를 돌아보았다. 노자가 말했다. “내 말의 뜻을 모르겠습니까?” 남영주는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 하다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했다. “지금 저는 대답할 말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질문하려던 말도 잊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남영주가 말했다. “제게 지혜가 없으면 사람들은 저에게 어리석다고 말할 것이고, 지혜가 많으면 도리어 저 자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어질지 않으면 곧 남을 해치게 될 것이고, 어질면 도리어 저 자신을 괴롭히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의롭지 않으면 남에게 해를 가할 것이고, 의롭고 보면 도리어 저 자신을 괴롭히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처지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 가지가 제가 걱정하는 문제입니다. 경상초의 소개로 선생님께 이것을 여쭈려고 왔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좀전에 나는 당신의 두 눈썹 사이를 보고 당신의 문제를 알았습니다. 당신의 말을 듣고 나의 추측이 확실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골똘히 앉아서 고민하기를 자기 부모를 여읜 것처럼 하고, 장대를 들고서 바다 깊이를 재려는 사람처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기 본성을 잃은 사람입니다. 멍하니 당신은 당신의 성정으로 되돌아가려고 하지만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안되었습니다.”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4]- 南榮??糧, 七日七夜至老子之所. 老子曰:「子自楚之所來乎?」 南榮?曰:‘唯.’ 老子曰:「子何與人偕來之衆也?」 南榮?懼然顧其後. 老子曰:「子不知吾所謂乎?」 南榮?俯而慙, 仰而歎曰:「今者吾忘吾答, 因失吾問.」 老子曰:「何謂也?」 南榮?曰:「不知乎? 人謂我朱愚. 知乎? 反愁我軀. 不仁則害人, 仁則反愁我身. 不義則傷彼, 義則反愁我己. 我安逃此而可? 此三言者, ?之所患也, 顧因楚而問之.」 老子曰:「向吾見若眉睫之間, 吾因以得汝矣, 今汝又言而信之. 若規規然若喪父母, 揭竿而求諸海也. 女亡人哉, ??乎! 汝欲反汝情性而无由入, 可憐哉!」
232` 자아를 버리고 어린아이처럼 되어라 (잡편:23.경상초,5)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5] - 남영주는 노자 밑에 머물기를 자청하여, 그가 좋다고 생각하는 도덕을 추구하고,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버리자 열흘만에 근심이 멎었다. 그리고 나서 노자를 만나니 노자가 말했다. “당신은 스스로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서 푹 익은 기운이 서리어 있는 듯하군요. 그러나 아직도 마음속에 얼마간의 악한 기운이 남아 있는 듯합니다. 밖의 일에 마음이 얽매어 있는 자는 마음이 번거로워 자제를 할 수 없을 것이니, 안으로 마음의 작용을 닫아 놓아야 합니다. 자기 안의 마음에 얽매어 있는 사람은 생각이 뒤엉키어 자제를 할 수 없을 것이니, 밖으로 보고 듣는 것을 닫아버려야 합니다. 밖이나 안으로 얽매여 있는 자는 도덕을 지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위대한 도를 따라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남영주가 말했다. “마을 사람이 병들어 다른 마을 사람이 문병을 갔을 때, 앓고 있는 사람이 그의 병에 대하여 얘기할 수 있다면, 그의 병은 아직 대단한 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선생님께 위대한 도에 대하여 듣는다는 것은, 비유를 하자면 마치 약을 먹음으로써 병을 도지게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삶을 보양하는 방법에 대하여 듣고 싶을 따름입니다.” 노자가 말했다. “삶을 보양하는 방법이란 위대한 도 하나를 지니는 것이며, 자기 본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점치는 것에 의하여 자기의 길흉을 판단하려 들지 않아야 하고, 자기 분수를 지킬 줄 알아야 하고, 인위적인 행위를 그만둘 수 있어야 합니다. 남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자기를 충실히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행 동은 자연스러워야 하고, 마음은 거리낌이 없어야 하고, 아이처럼 순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데, 그것은 지극히 자연과 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루 종일 주먹을 쥐고 있어도 손이 저리지 않는데 그것은 자연의 덕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보면서도 눈을 깜빡이지 않는데 밖의 물건에 대하여 치우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길을 가도 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 앉아 있어도 할 일을 알지 못합니다. 밖의 물건에 순응하고 자연의 물결에 자신을 맡깁니다. 이것이 삶을 보양하는 방법입니다.” 남영주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이 지극한 사람의 덕이라는 것입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어름이 풀려 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은 상태를 얘기한 것입니다. 지인이란 사람들과 더불어 땅 위에 함께 어울려 살고, 자연을 함께 즐기는 사람입니다. 사람과 물건이나 이익과 피해 때문에 남과 다투지 않으며, 남들에 비해 괴상한 짓을 하지도 않고, 어떤 모의도 하지 않고, 어떤 일도 이루려 들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갔다가 아무 거리낌없이 돌아옵니다. 이것을 삶을 보양하는 방법이라고도 말합니다.” 남영주가 말했다. “그러면 그것으로 극치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아직 충분하지 못합니다. 내가 이미 당신에게 얘기하기를 아이와 같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란 움직이지만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걷지만 자기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몸은 마른 나무의 가지와 같고, 마음은 식은 재와 같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재난도 닥칠 수 없고, 행복도 찾아올 수 없습니다. 재난도 행복도 있지 않은데 어찌 사람의 재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5]- 南榮?請入就舍, 召其所好, 去其所惡, 十日自愁, 復見老子. 老子曰:「汝自酒濯, 熟哉鬱鬱乎! 然而其中津津乎猶有惡也. 夫外?者不可繁而捉, 將內?. 內?者不可繆而捉, 將外?. 外內?者, 道德不能持, 而況放道而行者乎!」 南榮?曰:「里人有病, 里人問之, 病者能言其病, 然其病病者, 猶未病也. 若?之聞大道, 譬猶飮藥以加病也, ?願聞衛生之經而已矣.」 老子曰:「衛生之經, 能抱一乎? 能勿失乎? 能无卜筮而知吉凶乎? 能止乎? 能已乎? 能舍諸人而求諸己乎? 能?然乎? 能?然乎? 能兒子乎? 兒子終日?而?不?, 和之至也. 終日握而手不?, 共其德也. 終日視而目不?, 偏不在外也. 行不知所之, 居不知所爲, 與物委蛇, 而同其波. 是衛生之經已.」 南榮?曰:「然則是至人之德已乎?」 曰:「非也. 是乃所謂氷解凍釋者, 能乎? 夫至人者, 相與交食乎地而交樂乎天, 不以人物利害相?, 不相與爲怪, 不相與爲謀, 不相與爲事, ?然而往, ?然而來. 是謂衛生之經已.」 曰:「然則是至乎?」 曰:「未也. 吾固告汝曰:‘能兒子乎?’ 兒子動不知所爲, 行不知所之, 身若槁木之枝而心若死灰. 若是者, 禍亦不至, 福亦不來. 禍福无有, 惡有人災也!」
233` 태연하고 안정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잡편:23.경상초,6)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6] - 마음이 태연하고 안정되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러운 빛을 발한다. 자연스러운 빛을 발하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마음이 닦인 사람은 언제나 일정한 덕을 지니고 있다. 일정한 덕을 지닌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귀의하게 되고, 하늘이 그를 돕게 된다. 사람들이 귀의하는 사람을 천민(天民)이라고 한다. 하늘이 도와 주는 사람을 천자(天子)라고 말한다. 학자란 그가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려 한다. 일을 실행하는 사람은 그가 실행할 수 없는 것을 실행하려 한다. 이론가는 그가 이론으로 밝힐 수 없는 것들을 논하려 한다. 그가 알 수 없는 경지에 처신할 줄 안다면 그것이 지극한 앎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경지에 처신하지 못한다면 자연의 도를 무너뜨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6]- 宇泰定者, 發乎天光. 發乎天光者, 人見其人, 物見其物. 人有修者, 乃今有恒. 有恒者, 人舍之天助之. 人之所舍, 謂之天民. 天之所助, 謂之天子. 學者, 學其所不能學也. 行者, 行其所不能行也. 辯者, 辯其所不能辯也. 知止乎其所不能知, 至矣. 若有不卽是者, 天鈞敗之.
234` 외물에 의해 마음이 어지럽지 않아야 한다 (잡편:23.경상초,7)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7] - 물건의 변화에 대비함으로써 형체를 기리고, 물러나 잡된 생각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마음을 살리며, 자기 속에 지닌 성정을 공경히 함으로써 밖의 변화에 통달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데도 갖가지 악한 일이 닥치는 것은 모두가 천명일 뿐 사람 탓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으로 안정된 마음을 어지럽힐 것은 못 되며, 자기 마음속에 그 불행이 끼여들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음이란 지탱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므로 자기 자신이 지탱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자신의 마음을 정성 되게 하기도 전에 행동을 한다면, 행동을 할 때마다 자연의 도에 어긋나게 될 것이다. 밖으로부터의 작용이 그의 마음에 끼여들어 와도 그 작용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제나 자기의 본연을 잃게 될 것이다. 선 하지 않은 짓을 여러 사람들이 똑똑히 보는 가운데서 행한다면 사람들이 그를 잡아 처벌할 것이다. 선하지 않은 행동을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가운데서 행한다면 귀신이 그를 잡아 처벌할 것이다. 사람들에 대하여 분명하고 귀신에 대하여도 분명하게 된 후에야 독자적으로 도에 알맞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기 내부에 대하여 충실한 사람은 이름을 바라지 않는 행동을 실천할 것이고, 외부에 대하여 추구하는 사람은 재물을 추구하려는 뜻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무명을 실천하는 사람은 언제나 변함 없는 빛이 있을 것이다. 재물을 추구하는 데 뜻을 둔 사람은 장사꾼과 같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발돋움하여 자신을 크게 보이려 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도 자신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 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구하는 사람은 물건이 그의 마음에 끼여들게 된다. 물건에 대하여 구차한 사람은 그 자신도 용납될 수 없을 것인데 어떻게 남을 용납할 수가 있겠는가? 남을 용납할 수 없는 자는 친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친한 사람이 없는 자는 남과 아무 관계도 없게 될 것이다. 무 기도 뜻을 상하게 하는 것처럼 예리한 손상을 끼치지는 못한다. 막야 같은 명검도 뜻을 손상시키기에는 무딘 것이다. 사람의 피해는 음양의 기에 의한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하늘과 땅 사이에서는 그 재해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음양의 기 자체가 해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7]- 備物以將形, 藏不虞以生心, 敬中以達彼, 若是而萬惡至者, 皆天也, 而非人也, 不足以滑成, 不可內於靈臺. 靈臺者有持, 而不知其所持, 而不可持者也. 不見其誠己而發, 每發而不當, 業入而不舍, 每更爲失. 爲不善乎顯明之中者, 人得而誅之. 爲不善乎幽闇之中者, 鬼得而誅之. 明乎人, 明乎鬼者, 然後能獨行. 券 內者, 行乎无名. 券外者, 志乎期費. 行乎无名者, 唯庸有光. 志乎期費者, 唯賈人也, 人見其?, 猶之魁然. 與物窮者, 物入焉. 與物且者, 其身之不能容, 焉能容人! 不能容人者无親, 无親者盡人. 兵莫?於志, ??爲下. 寇莫大於陰陽, 无所逃於天地之間. 非陰陽賊之, 心則使之也.
235` 도에 어긋나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같다 (잡편:23.경상초,8)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8] - 도는 만물에 통하면서도 그 분별을 이룩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루어지는 것도 무너지는 것도 모두 도에 의하여 행하여진다. 다만 분별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분별됨으로써 모든 것이 자기에게 갖추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갖추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밖에 존재하는 것이 자기에게만 모두 갖추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밖으로만 나가고 자기 본성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그는 죽어 귀신이 될 것이다. 밖으로만 나가고도 얻는 것이 있다면, 바로 죽음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이미 그의 본성이 멸망되었다면 실제로 살고 있어도 이미 죽어 귀신이 되어 있는 것과 같다. 형체가 있는 몸으로써 형체가 없는 도를 본받아야만 안정되게 되는 것이다. 만물이 태어나지만 그 근본은 없는 것이며, 이승을 떠나는 것도 들어가는 구멍이 있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고는 있지만 차지할 장소는 무한하고, 영원히 존재하여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이다. 태어나기는 하지만 들어갈 구멍이 없기 때문에 존재가 있는 것이다. 존재는 하고 있지만 차지할 장소는 무한하다는 것은 상하사방의 공간을 뜻한다. 영원히 존재하며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은 예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시간을 뜻한다. 도는 삶에도 작용하고 죽음에도 작용하며, 생겨나는 데도 작용하고 없어져버리는 데도 작용한다. 없어지고 생겨나게 하면서도 그 형체는 드러나지 않는데, 이것을 천문(天門)이라 부른다. 천문이란 존재로서는 무(無)인 것이다. 만물은 존재가 무인 데서 생겨난다. 존재는 존재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없다. 반드시 존재가 무에서 생겨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존재가 무인 것은 한결같이 존재가 무인 것이다. 성인은 이 경지에 몸을 두고 있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8]- 道通. 其分也成也, 其成也毁也. 所惡乎分者, 其分也以備. 所以惡乎備者, 其有以備. 故出而不反, 見其鬼. 出而得, 是謂得死. 滅而有實, 鬼之一也. 以有形者象无形者而定矣. 出无本, 入无竅. 有實而无乎處, 有長而无乎本剽, 有所出而無竅者有實. 有實而无乎處者, 宇也. 有長而无本剽者, 宙也. 有乎生, 有乎死, 有乎出, 有乎入, 入出而无見其形, 是謂天門. 天門者, 无有也, 萬物出乎无有. 有不能以有爲有, 必出乎无有, 而无有一无有. 聖人藏乎是.
236` 마음이 쉽게 옮겨다녀서는 안 된다 (잡편:23.경상초,9)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9] - 옛날 사람 중에는 그의 슬기가 지극한 경지에 도달했던 이가 있었다. 어느 경지에까지 도달 했었는가하면, 첫째로 처음부터 물건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한 것이다. 이는 지극하고 완전한 경지여서 여기에 더 보탤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다음으로는 물건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삶을 죽음과 같은 것으로 보고, 죽음이란 되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것과 저것의 분별이 이미 생긴 것이다. 그 다음이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뒤에 삶이 있게 되었고, 삶도 곧 죽게 된다는 것이다. 존재가 없는 것을 머리로 삼고, 죽음을 궁둥이로 삼는 것이다. 있고 없는 것과 죽음과 삶이 한결같은 도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는 그 사람과 벗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 세 종류의 사람들은 비록 차이는 있지만 같은 왕족이라 할 수 있다. 초나라 왕족인 소씨와 경씨는 성이 다르고 사는 곳과 집안과 봉해진 지명이 다르기는 하지만 다 같은 왕족이 아닌가? 살고 있다는 것은 먼지가 묻어 있다는 것과 같다. 어지러이 바람에 불리는 것을 옮겨감이라 한다. 옮겨감에 대하여 말하여 보려해도 말로써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이렇게 말은 하지만 알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납제에는 내장과 발톱까지 붙어 있는 소를 제물로 쓰는데, 먹지 못할 것들을 떼어버릴 수도 있지만 완전한 소가 못되기 때문에 떼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집을 구경하는 사람은 정전과 조당을 두루 보았다 하더라도 그 집의 변소까지 가 보아야 완전히 집을 구경한 것이 된다. 이 때문에 옮겨감에 대해서도 들어 논하는 것이다. 옮겨감에 대하여 다시 논하여 보면, 그것은 자기 삶을 근본으로 삼고 자기 지혜를 스승으로 모시기 때문에 시비를 따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명분과 내용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위주로 하여 남들로 하여금 자기의 명분을 따르게 하려 들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죽음으로 명분을 보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유용한 것을 슬기롭다 하고, 무용한 것은 어리석다고 한다. 뜻이 통하는 것을 명예롭다고 하고, 궁지에 몰리는 것을 욕되다 한다. 옮겨감이란 지금 사람들의 태도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미와 작은 비둘기가 큰 붕새를 비웃었던 것과 같은 일이다.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9]- 古之人, 其知有所至矣. 惡乎至? 有以爲未始有物者, 至矣, 盡矣, 弗可以加矣. 其次以爲有物矣, 將以生爲喪也, 以死爲反也, 是以分已. 其次曰始无有, 旣而有生, 生俄而死. 以无有爲首, 以生爲體, 以死爲尻, 孰知有无死生之一守者, 吾與之爲友. 是三者雖異, 公族也. 昭景也, 著戴也, 甲氏也, 著封也, 非一也. 有生, 암也, 披然曰移是. 嘗言移是, 非所言也. 雖然, 不可知者也. 臘者之有??, 可散而不可散也. 觀室者周於寢廟, 又適其偃焉, 爲是擧移是. 請常言移是. 是以生爲本, 以知爲師, 因以乘是非. 果有名實, 因以己爲質, 使人以爲己節, 因以死償節. 若然者, 以用爲知, 以不用爲愚, 以徹爲名, 以窮爲辱. 移是, 今之人也, 是?與學鳩同於同也.
237` 지극한 도리는 구별을 초월한다 (잡편:23.경상초,10)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10]- 시장에서 남의 발을 밟으면 잘못을 사과하지만, 친형의 발을 밟았다면 아이코 하는 정도의 소리를 내며, 아주 친한 사람인 경우에는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지극한 예는 자기와 남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지극한 의로움은 자신과 물건을 구분하지 않고, 지극한 슬기는 꾀하는 일이 없고, 지극한 어짊은 각별히 친한 이가 없고, 지극한 신의는 금전이 개입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 [10] - ?市人之足, 則辭以放?, 兄則以?, 大親則已矣. 故曰, 至禮有不人, 至義不物, 至知不謀, 至仁無親, 至信?金.
238` 마음의 혼란을 버리고 도를 터득하는 법 (잡편:23.경상초,11)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11] - 뜻의 움직임을 버리고, 마음의 속박을 풀고, 덕을 해치는 것을 제거하고, 도를 막는 물건을 치워버려야만 한다. 귀해지고, 부유해지고, 저명해지고, 존경받고, 명예를 얻고, 이익을 얻는 여섯 가지는 뜻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용모와 동작과 얼굴빛과 논리와 기분과 정의(情意) 이 여섯 가지는 마음을 속박하는 것이다. 악과 욕망과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 이 여섯 가지는 덕을 해치는 것이다. 떠나는 것과 나아가는 것과 취하는 것과 주는 것과 지혜와 능력 이 여섯 가지는 도를 막는 것이다. 이 네 종류의 여섯 가지 것들이 가슴속을 어지럽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올바르게 될 것이다. 올바르게 되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분명해지고, 분명해지면 텅 비게 되고, 텅 비게 되면 무위하면서도 자연의 생성변화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없게 될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 [11] - 徹志之勃, 解心之謬, 去德之累, 達道之塞. 貴富顯嚴名利六者, 勃志也. 容動色理氣意六者, 謬心也. 惡欲喜怒哀樂六者, 累德也. 去就取如知能六者, 塞道也. 此四六者不?胸中則正, 正則靜, 靜則明, 明則虛, 虛則无爲而无不爲也.
239` 도와 덕과 본성의 관계 (잡편:23.경상초,12)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 [12] - 도라는 것은 덕이 늘어선 것이다. 삶이란 것은 덕의 빛인 것이다. 본성이란 것은 삶의 바탕인 것이다. 본성이 움직이는 것을 행위라고 말하는데, 행위가 인위적이면 본성을 잃은 것이라 한다. 앎이란 물건과의 접촉에서 생겨난다. 앎이란 생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은, 곁눈질로서는 물건의 전체를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행동을 하되 자연을 따라 부득이하게 움직이는 것을 덕이라 말한다. 행동을 하되 자기의 본성을 잃는 일이 없는 것을 다스림이라 말한다. 명성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과 반대가 되지만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된다.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 [12] - 道者, 德之欽也. 生者, 德之光也. 性者, 生之質也. 性之動, 謂之爲. 爲之僞, 謂之失. 知者, 接也. 知者, 謨也. 知者之所不知, 猶?也. 動以不得已之謂德, 動而非我之謂治, 名相反而實相順也.
240` 벌레는 벌레 노릇을 하기에 자연스럽다 (잡편:23.경상초,13)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 [13] - 명궁이었던 예는 작은 것을 화살로 정확히 맞추기는 잘하였지만, 사람들이 자기를 칭찬하지 않게 하는 일은 잘하지 못했다. 성인은 자연스러운 일은 잘하지만 인위적인 일은 잘하지 못한다. 자연스러운 일에도 뛰어나고 인위적인 일에도 뛰어난 사람은 오직 완전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벌레들은 오직 벌레 노릇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울 수가 있는 것이다. 완전한 사람이 자연을 싫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인위적인 자연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처럼 자연과 인위적인 것을 엄연히 구별하는 자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13]- ?工乎中微而拙乎使人無己譽. 聖人工乎天而拙乎人. 夫工乎天而?乎人者, 唯全人能之. 唯蟲能蟲, 唯蟲能天. 全人惡天? 而況吾天乎人乎!
241` 천하로 새장을 삼으면 도망칠 곳이 없다 (잡편:23.경상초,14)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 [14] - 한마리 새가 예에게로 날아가면 예가 그 놈을 쏘아 잡을 수 있겠지만 간혹 실패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천하로써 새장을 삼는다면 새들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상나라 탕임금은 이윤을 요리사라는 직분으로써 새장에 가두었고, 진나라 목공은 다섯 장의 양가죽으로 백리해를 새장에 가두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가 좋아하는 것을 미끼로 삼지 않고서는 새장에 가두어 넣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14]- 一雀適?, ?必得之, 威也. 以天下爲之籠, 則雀無所逃. 是故湯以胞人籠伊尹, 秦穆公以五羊之皮籠百里奚. 是故非以其所好籠之而可得者, 無有也.
242` 고요하려면 마음을 평온히 지녀야 한다 (잡편:23.경상초,15) - 장자(잡편) ; 제23편 경상초 [15] - 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은 자가 법도에 구애받지 않는 것은 밖의 명예 같은 것은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죄수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죽음과 삶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반복하여 공부함으로써 마음속에 부끄러운 것이 없게 되면 사람에 대하여 잊게 된다. 사람에 대해서 잊게 되면 자연과 합치되는 천인(天人)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공경해도 기뻐하지 않고, 그를 모욕해도 성내지 않는 것은 오직 하늘의 조화와 합치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낼 경우를 당해도 성내지 않으면 성냄도 성내지 않음으로 귀결되고 만다. 행동함에 무위하면 행동은 무위로 귀결되고 만다. 고요하고 싶으면 마음을 평온히 지녀야 한다. 신명스러워지고 싶으면 마음이 자연에 순응하여야 한다. 그의 행동이 합당하게 되고 싶으면 자연에 따라 부득이 하게 행동하여야 한다. 자연에 따라 부득이하게 행동하는 것이 성인의 도인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3篇 庚桑楚 [15] - 介者侈畵, 外非譽也. 胥靡登高而不懼, 遺死生也. 夫復?不?而忘人, 忘人, 因以爲天人矣. 故敬之而不喜, 侮之而不怒者, 唯同乎天和者爲然. 出怒不怒, 則怒出於不怒矣. 出爲无爲, 則爲出於无爲矣. 欲靜則平氣, 欲神則順心, 有爲也欲當, 則緣於不得已, 不得已之類, 聖人之道.
243` 사람의 괴로움은 부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잡편:24.서무귀,1)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 [1] - 서무귀가 여상의 소개로 위나라 무후를 만났다. 무후가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선생께서는 병이 나셨군요. 산림에 은거하는 것이 고되어 나를 만나러 오신 모양입니다.” 서무귀가 말했다. “제가 임금님을 위로하고 싶은데 어찌 저를 위로하십니까? 임금께서는 욕망을 만족시키고, 좋아하고 미워하는 감정에 따라 모든 일을 하시려 하기 때문에, 성명의 참모습을 해치고 있습니다. 임금께서 욕망을 버리고 애증의 감정을 버리신다면, 귀와 눈이 괴로움을 당할 것입니다. 저야말로 임금님을 위로해 드리려 합니다. 임금께서 저를 위로할 것이 무엇이 있으시겠습니까” 무후는 언짢은 듯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서무귀가 말했다. “시험삼아 개를 감정하는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질이 낮은 개는 아무것이나 배가 부를 때까지 찾아먹는데 이는 고양이의 본성과 같습니다. 중질의 개는 해를 바라보듯 뜻이 높고 먼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질이 높은 개는 스스로를 잊은 듯 언제나 한결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개를 감정하는 것은 말을 감정하는 것만은 못합니다. 말 이빨이 먹줄을 댄 듯 곧고 목덜미는 고리가 휜 것처럼 구부정하고, 머리는 굽은 자를 댄 것처럼 모가 나고 눈은 그림쇠로 그린 듯 둥근 것이 국마라 할 만한 말입니다. 그렇지만 국마는 천하마 보다는 못합니다. 천하의 명마는 저절로 천성의 재질을 갖추고 있으며 고요하고 그 스스로를 잊은 듯 한결같습니다. 이런 말은 질풍같이 달리되 먼지를 일으키지 않고, 얼마를 가서야 멈추게 될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무후는 크게 기뻐하며 웃는 낯이 되었다.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 [1] - 徐无鬼因女商見魏武侯, 武侯勞之曰:「先生病矣! 苦語山林之勞, 故乃肯見於寡人.」 徐无鬼曰:「我則勞於君, 君有何勞於我! 君將盈耆欲, 長好惡, 則性命之情病矣. 君將黜耆欲, ?好惡, 則耳目病矣. 我將勞君, 君有何勞於我!」 武侯超然不對. 少焉, 徐无鬼曰:「嘗語君, 吾相狗也. 下之質執飽而止, 是狸德也. 中之質若視日, 上之質若亡其一. 吾相狗, 又不若吾相馬也. 吾相馬, 直者中繩, 曲者中鉤, 方者中矩, 圓者中規, 是國馬也, 而未若天下馬也. 天下馬有成材, 若?若失, 若喪其一, 若是者, 超? 絶塵, 不知其所, 」武侯大悅而笑.
244`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그립다 (잡편:24.서무귀,2)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 [2] - 서무귀가 나오자 여상이 그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대체 무슨 말로 우리 임금을 설득하셨습니까? 제가 임금님을 설득시키는 방법은 횡적으로는 시, 서, 예, 악을 사용하였고, 종적으로는 주서의 금판편?육도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사에 도움을 주고 공을 세운 일도 많지만 우리 임금이 제 말에 대해 이를 드러내고 웃으신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무슨 말로 임금님을 설득하여 저렇게 기뻐하시는 것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나는 오직 임금님께 내가 개와 말을 감정했던 이야기를 해드렸을 뿐입니다.” 여상이 말했다. “그것뿐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당신은 저 월나라의 유배당한 사람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하였습니까? 나라를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아서는 그가 전에 알고 있던 사람을 보기만 하고도 기뻐했습니다. 나라를 떠난 지 수십 일이 되자 전에 자기 나라에서 만난 일밖에 없는 사람을 보고도 기뻐했습니다. 일년이 넘자 자기가 아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만 보아도 기뻐했다고 합니다. 나라를 떠나 오랜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을 그리는 마음이 깊어지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인적이 드문 황량한 고장에 가서 잡초 우거져 족제비 다니던 길까지 가리우는 곳에서 오랫동안 홀로 있게 되면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기뻐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형제나 친척의 웃음소리가 곁에서 들린다면 어떻겠습니까? 임금께서는 참된 사람의 말이나 웃음소리를 가까이서 들어 본 지 오래되었던 것입니다!”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2]- 徐无鬼出, 女商曰:「先生獨何以說吾君乎? 吾所以說吾君者, 橫說之則以詩書禮樂, 從說之則以金板六?, 奉事而大有功者不可爲數, 而吾君未嘗啓齒. 今先生何以說吾君, 使吾君說若此乎?」 徐无鬼曰:「吾直告之吾相狗馬耳.」 女商曰:「若是乎?」 曰: 「子不聞夫越之流人乎? 去國數日, 見其所知而喜. 去國旬月, 見所嘗見於國中者喜. 及期年也, 見似入者而喜矣. 不亦去人滋久, 思人滋深乎? 夫逃虛空者, 藜?柱乎??之逕, ?位其空, 聞人足音?然而喜矣, 又況乎昆弟親戚之??其側者乎! 久矣夫, 莫以眞人之言??吾君之側乎!」
245` 인위적인 정치는 모두를 괴롭힌다 (잡편:24.서무귀,3) 정치`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 [3] - 서무귀가 무후를 만나니 무후가 말했다. “선생께서는 산 속에 살며 도토리와 밤을 먹고 파와 부추를 물리도록 먹으며 나를 찾아오지 않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를 찾아오신 것은 늙었기 때문입니까? 이제 술과 고기 맛을 보러 오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내게 나라를 잘 다스릴 만한 복이 있어서온 것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저는 빈천하게 나서 자랐기 때문에 임금님의 술과 고기를 감히 먹고 마시고자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임금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무후가 말했다. “무슨 소리입니까. 어떻게 나를 위로한단 말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임금님의 정신과 육체를 위로해드리겠다는 말입니다.” 무후가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하늘과 땅이 만물을 키우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결같습니다. 높은 데 있다고 해서 더 존귀해지지 않고 낮은 데 있다고 해서 더 비천해지지 않습니다. 임금께서는 홀로 군주의 자리에 있으면서 한 나라의 백성들을 수고롭게 해 자신의 귀와 눈과 코와 입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임금님의 신명이 허락하지 않을 일입니다. 무릇 신명이란 남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좋아하고, 사사로운 것을 싫어하는 법입니다. 사사롭게 자신만을 생각하신다면, 이것은 이미 병이 됩니다. 그래서 그 점을 위로해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이런 병에 걸리게 된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무후가 말했다. “선생을 만나 뵈려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나는 백성을 사랑하고 의를 위해 전쟁을 그만두려는데 어떻습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안됩니다.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백성을 해치는 시초가 됩니다. 임금께서 그런 생각을 하시면 좋은 정치를 이룰 수가 없으실 것입니다. 또한 의를 위해 전쟁을 그만두겠다는 것 자체가 전쟁을 일으키는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정치를 하신다면 아마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훌륭한 일을 이루겠다는 것은 악의 바탕인 것입니다. 임금께서 인의를 행하시더라도 아마 위선이 될 것입니다. 그런 형식을 갖추시면 거짓 형식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갖추게 되면 자랑하는 마음이 생기며, 이러한 변화가 밖으로 전쟁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높은 누각 위에서 군대를 사열할 생각을 말아야 하며, 제사를 드리는 궁궐 앞에 보병과 기병을 집합시키실 생각도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덕을 저 버리고 이치에 어긋나는 일을 하셔도 안됩니다. 계교로 남을 이기려 해서도 안됩니다. 계략으로 남을 이기려 해서도 안됩니다. 전쟁으로 남을 이기려해서도 안됩니다. 다 른 나라의 백성을 죽이고 남의 나라의 땅을 빼앗아 차지함으로써 자기의 육체와 정신을 만족시키려 하는 자는 그 전쟁이 아무리 훌륭한 명분을 갖고 있더라도 과연 어느 쪽이 좋은 건지 알 수 없으며, 설사 전쟁에 이긴다 하더라도 승리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임금께서는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디 마음 속의 정성을 닦음으로써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혼란 되지 마십시오. 그래야 백성들이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임금께서 어찌 전쟁을 그만 두시겠다는 생각조차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3]- 徐无鬼見武侯曰:「先生居山林, 食茅栗厭??, 以賓寡人, 久矣夫! 今老邪? 其欲干酒肉之味邪? 其寡人亦有社稷之福邪?」 徐无鬼曰:「无鬼生於貧賤, 未嘗敢飮食君之酒肉, 將來勞君也.」 君曰:「何哉, 奚勞寡人?」 曰:「勞君之神與形.」 武侯曰:「何謂邪?」 徐无鬼曰:「天地之養也一, 登高不可以爲長, 居下不可以爲短. 吾獨爲萬乘之主, 以苦一國之民, 以養耳目鼻口, 夫信者不自許也. 夫神者, 好和而惡姦. 夫姦, 病也, 故勞之. 唯君所病之, 何也?」 武侯曰:「欲見先生久矣. 吾欲愛民而爲義偃兵, 其可乎?」 徐无鬼曰:「不可. 愛民, 害民之始也. 爲義偃兵, 造兵之本也. 君自此爲之, 則殆不成. 凡成美, 惡器也. 君雖爲仁義, 幾且僞哉! 形固造形, 成固有伐, 變固外戰. 君亦必无盛鶴列於麗?之間, 无徒驥於?壇之宮, 无藏逆於得, 无以巧勝人, 无以謀勝人, 无以戰勝人. 夫殺人之士民, 兼人之士地, 以養吾私與吾神者, 其戰不知孰善? 勝之惡乎在? 君若勿已矣, 修胸中之誠, 以應天之情而勿?. 夫民死已脫矣, 吾將惡乎用夫偃兵哉!」
246`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말을 기르는 것과 같다 (잡편:24.서무귀,4)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 [4] - 헌원 황제가 대외를 만나기 위해 구자산으로 찾아갔다. 방명이 수레를 몰고, 창우가 참승이 되고, 장약과 습붕이 말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곤혼과 활계가 수레 뒤를 따랐다. 양성의 들판에 이르러 함께 가던 일곱 명의 성인이 모두 그만 길을 잃게 되었다. 길을 물을 곳이 없었는데 마침 목동을 만나게 되었다. 황제가 그 목동에게 물었다. “너는 구자산을 알고 있느냐?” 목동이 대답했다. “예.” “대외가 있는 곳을 알고 있느냐?” 목동이 대답했다. “예.” 황제가 다시 물었다. “신기한 아이로구나. 구자산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외가 있는 곳까지 알고 있다니.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말을 해줄 수 있겠느냐?” 목동이 대답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지금 저처럼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무슨 특별한 것이 있겠습니까? 저는 어렸을 때 자연 속에 유유히 살다가, 마침 눈이 안보이게 되는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한 노인께서 저에게 해가 뜨면 수레를 타고 양성의 들판에서 노닐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병이 조금 나았기 때문에 다시 자연 속을 유유히 살려고 합니다. 무릇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도 바로 제가 병을 고친 일과 같을 뿐입니다.” 황제가 물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너의 일은 아니겠지만,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대하여 알고 싶구나.” 소년은 아무 말이 하지 않았다. 황제가 다시 묻자 소년은 입을 열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어찌 말을 치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그저 말을 해치는 것을 없애는 것일 뿐입니다.” 황제는 머리를 숙여 큰절을 두 번하고, 그 소년을 천사(天師)라고 부른 뒤 물러났다.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4]- 黃帝將見大?乎具茨之山, 方明爲御, 昌寓?乘, 張若?朋前馬, 昆?滑稽後車. 至於襄城之野, 七聖皆迷, 无所問塗. 適遇牧馬童子, 問塗焉, 曰:「若知具茨之山乎?」 曰:「然.」 「若知大?之所存乎?」 曰:「然.」 黃帝曰:「異哉小童! 非徒知具茨之山, 又知大?之所存. 請問爲天下.」 小童曰:「夫爲天下者, 亦若此而已矣, 又奚事焉! 予少而自遊於六合之內, 予適有?病, 有長者敎予曰:‘若乘日之車而遊於襄城之野.’ 今予病少?, 予又且復遊於六合之外. 夫爲天下亦若此而已. 予又奚事焉!」 黃帝曰:「夫爲天下者, 則誠非吾子之事. 雖然, 請問爲天下.」 小童辭. 黃帝又問. 小童曰:「夫爲天下者, 亦奚以異乎牧馬者哉! 亦去其害馬者而已矣!」 黃帝再拜稽首, 稱天師而退.
247` 사람들은 외물에 사로잡혀 본성을 잃고 있다 (잡편:24.서무귀,5)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 [5] - 지식을 가진 선비는 지모가 쓰이는 변란이 없으면 즐거울 수 없다. 변설에 뛰어난 선비는 의견을 얘기할 기회가 없으면 즐거울 수가 없다. 일을 잘 살피는 선비는 논쟁할 일이 없으면 즐거울 수 없다. 이들은 모두 밖의 사물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다. 세상에서 뛰어난 선비는 조정에서 출세하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 선비는 벼슬로 영화로운 생활을 하게 되고, 힘이 센 선비는 어려운 일을 당하여 실력을 발휘하고, 용감한 선비는 환란을 당하여 기개를 떨치고, 무술이 뛰어난 선비는 전쟁을 즐기며, 애써 노력하는 선비는 명분을 추구하고, 법률에 밝은 선비는 다스림을 널리 펴고, 예의와 음악에 밝은 선비는 용모를 공경하고, 인의를 숭상하는 선비는 사람관계를 귀중히 여긴다. 농부는 밭일을 할 것이 없으면 즐거울 수 없고, 상인들은 장사할 일이 없으면 즐거울 수가 없다. 서민들은 아침저녁으로 할 일이 있으면 부지런하고, 공인들은 좋은 기계에 대한 기술이 있으면 재빠르게 일한다. 돈과 재물이 쌓이지 않으면 탐욕이 많은 자들은 근심을 하고, 권세가 세어지지 않으면 뽐내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슬퍼하며, 형세를 잘 쫓는 무리들은 변란을 즐긴다. 이들은 때를 만나야 쓰일 곳이 있게 되며, 어떤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이끌리는 자들이며, 사물의 변화에 얽매이는 자들이다. 자기의 육체와 본성을 달리게 하고, 밖의 만물에 대하여 몰두하며, 평생토록 본성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자들이다!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5]- 知士无思慮之變則不樂, 辯士无談說之序則不樂, 察士无凌?之事則不樂, 皆?於物者也.」 招世之士與朝, 中民之士榮官, 筋力之士矜難, 勇敢之士奮患, 兵革之士樂戰, 枯槁之士宿名, 法律之士廣治, 禮敎之士敬容, 仁義之士貴際. 農夫无草萊之事則不比, 商賈无市井之事則不比. 庶人有旦暮之業則勸, 百工有器械之巧則壯. 錢財不積則貪者憂, 權勢不尤則?者悲. 勢物之徒樂變, 遭時有所用, 不能无爲也. 此皆順比於歲, 不易於物者也. 馳其形性, 潛之萬物, 終身不反, 悲夫!
248` 자가당착에 빠져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잡편:24.서무귀,6)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 [6] - 장자가 말했다. “활을 쏘는 사람이 미리 표적을 정하지도 않고 맞추었다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예 같은 명궁이 될 수 있을 것인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혜자가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유가?묵가와 양주학파와 공손룡학파의 넷이 있고, 선생까지 합치면 다섯이 되는데 과연 어느 것이 옳은 것입니까? 혹시 노거와 같은 입장입니까? 한번은 그의 제자가 노거에게 말하기를「저는 선생님의 도를 터득했습니다. 저는 겨울에도 나무 없이 솥의 물을 끓일 수 있고, 여름에도 어름을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노거가 말하기를「그것은 다만 양의 기운으로 양의 기운인 불을 불러오고, 음의 기운으로 음의 기운인 어름을 불러온 것뿐이지 내가 말하는 도는 아니다. 내가 너에게 나의 도를 보여주겠다」라고 말하고는 그를 위해 슬을 뜯었습니다. 슬 하나는 대청에다 놓고, 다른 하나는 방에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한 편 현의 궁음 줄을 뜯으면 다른 슬의 궁음 줄도 움직이고, 슬의 각음 줄을 뜯으면 다른 슬의 각음 줄도 움직이는데, 음률이 완전히 같았습니다. 시험삼아 한 줄의 음조를 바꾸어 다섯 가지 음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게 하고서 그 줄을 뜯으니, 다른 슬 스물 다섯 현이 모두 움직였습니다. 처음부터 그 음은 소리로서 특이한 것은 아니었는데, 모든 음을 지배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의 입장도 이와 같은 것입니까?” 혜자가 말했다. “지금 유가와 묵가와 양주학파와 공손룡학파들은 나와 토론을 전개하며 말로써 서로 배척하고 소리를 쳐 상대방을 위압하려 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자기가 그르다는 이는 없는데 어찌 그와 같겠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제나라 사람이 자기 자식은 죄를 졌다고 송나라로 귀양을 보내고서, 그의 집 문지기는 죄를 져서 다리를 잘린 자를 임명했습니다. 그는 또 목이 긴 종을 구입하여 목을 묶어두어 소리가 나지 않게 했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자식을 찾으려 하면서도 문밖에도 나가보려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모두가 일을 잘못 판단한 것입니다. 초나라 사람 중에 남의 집에 묵으면서 문지기와 싸운 사람이 있었는데, 방중에 아무도 없을 때 배 안에서 뱃사람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배가 물가에 닿지도 않았을 때라면 분명히 원한을 사서 위험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6]- 莊子曰:「射者非前期而中, 謂之善射, 天下皆?也, 可乎?」 惠子曰:「可.」 莊子曰:「天下非有公是也, 而各是其所是, 天下皆堯也, 可乎?」 惠子曰:「可.」 莊子曰:「然則儒墨楊秉四, 與夫子爲五, 果孰是邪? 或者若魯遽者邪? 其弟子曰:‘我得夫子之道矣, 吾能冬?鼎而夏造氷矣.’ 魯遽曰:‘是直以陽召陽, 以陰召陰, 非吾所謂道也. 吾示子乎吾道.’ 於是爲之調瑟, 廢一於堂, 廢一於室, 故宮宮動, 故角角動, 音律同矣. 夫或改調一弦, 於五音无當也, 鼓之, 二十五弦皆動, 未始異於聲, 而音之君已. 車若是者邪?」 惠子曰:「今夫儒墨楊秉, 且方與我以辯, 相拂以辭, 相鎭以聲, 而未始吾非也, 則奚若矣?」 莊子曰:「齊人?子於宋者, 其命?也不以完, 其求?鍾也以束縛, 其求唐子也而未始出域, 有遺類矣! 夫楚人寄而??者. 夜半於無人之時而與舟人鬪, 未始離於岑而足以造於怨也.」
249` 마땅한 상대가 있어야 한다 (잡편:24.서무귀,7)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 [7] - 장자가 어떤 사람의 장례식을 치르고 오다가 혜자의 묘 앞을 지나게 되자 따르는 자를 돌아보고 말했다. “초나라의 도읍인 영에 흙을 바르는 장인이 있었다. 그는 자기 코끝에 백토를 파리의 날개만큼 얇게 바르고 석공인 장석에게 이것을 깎아 내게 했다. 장석은 도끼를 바람소리가 나게 휘둘렀으나 영의 장인은 그저 듣기만 하고 그대로 있었다. 백토는 모두 깎여 떨어졌지만 코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고 영의 장인도 선 채로 얼굴빛조차 바꾸지 않았다. 송나라의 원군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장석을 불러 말했다. 「시험삼아 내게도 백토를 바르고 깍아내어보아라.」 장석이 말했다. 「전에는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기술의 근원이 되는 사람이 죽고 없어서 불가능합니다.」” 나는 혜자가 죽은 뒤로 나의 이론의 전개할 바탕이 없어졌다. 나도 이제 혜자가 죽었으니 더불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졌구나.”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7]- 莊 子送葬, 過惠子之墓, 顧謂從者曰:「?人堊漫其鼻端, 若蠅翼, 使匠石?之. 匠石運斤成風, 聽而?之, 盡堊而鼻不傷, ?人立不失容. 宋元君聞之, 召匠石曰:‘嘗試爲寡人爲之.’ 匠石曰:‘臣則嘗能?之. 雖然, 臣之質死久矣.’ 自夫子之死也, 吾无以爲質矣, 吾无與言之矣.」
250` 자기를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 (잡편:24.서무귀,8)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 [8] - 관중이 병이 나자 제나라 환공이 그를 위문하고 말했다. “중부의 병환이 중하시니, 누구에게 나라 일을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까?” 관중이 말했다. “임금님께서는 누구에게 맡기려 하고 계십니까?” 환공이 말했다. “포숙아에게 맡기려 합니다. 관중이 말했다. “안됩니다. 그의 사람됨은 결백하고 청렴하면서도 선하기만 한 선비입니다. 그는 자기와 같지 않은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지 않습니다. 또한 한번 남의 잘못을 알게 되면 평생토록 잊지 않습니다. 그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하시면 위로는 임금님께 반기를 들 것이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뜻을 거스를 것입니다. 머지않아 그가 임금님께 죄를 지을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좋겠습니까?” 관중이 말했다. “부득이 나라 일을 맡기려 하신다면 습붕이 괜찮을 것입니다. 그의 사람됨은 위로는 임금님의 존재는 잊고 아래로는 백성들이 떨어지지 않게 합니다. 그는 황제와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있고, 자기만 못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자기의 덕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성인이라 말하고, 자기의 재물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현인이라 말합니다. 현명한 사람으로서 남에게 군림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산 사람은 없습니다. 현명한 사람으로서 남의 아래에 처신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나라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들으려 하지 않고, 집안에서는 모든 것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득이 하다면 습붕이 좋을 것입니다.”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8]- 管仲有病, 桓公問之曰:「仲父之病病矣, 可不諱云! 至於大病, 則寡人惡乎屬國而可?」 管仲曰:「公誰欲與?」 公曰:「鮑叔牙.」 曰:「不可. 其爲入, 潔廉善士也, 其於不己若者不比之, 又一聞人之過, 終身不忘. 使之治國, 上且鉤乎君, 下且逆乎民. 其得罪於君也, 將弗久矣!」 公曰:「然則孰可?」 對曰:「勿已, 則?朋可. 其爲人也, 上忘而下不畔, 愧不若黃帝而哀不己若者. 以德分人謂之聖, 以財分人謂之賢. 以賢臨人, 未有得人者也. 以賢下人, 未有得人者也. 其於國有不聞也, 其於家有不見也. 勿已, 則?朋可.」
251` 재주만 믿고 잘난 체 하다가는 해를 당한다 (잡편:24.서무귀,9)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 [9] - 오나라 임금이 강물에 배를 띄우고 원숭이들이 많이 사는 산으로 올라갔다. 여러 원숭이들이 그를 보자 놀라서 모든 것을 버리고 울창한 숲 속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한 마리의 원숭이만이 유유히 거닐며 뱀을 집어던지기도 하면서 임금에게 잔재주를 보였다. 임금이 그 놈을 활로 쏘니 재빨리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버렸다. 임금은 따라온 사람들에게 명하여 계속하여 활을 쏘게 하니 마침내 원숭이는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임금이 그의 친구 안불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원숭이는 자기 기교를 자랑하고, 자신의 날램을 믿고서 내게 오만하게 굴다가 이처럼 죽음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네, 이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네. 자네들도 잘난 얼굴을 하고서 남에게 교만하게 굴어서는 안되네.” 안불의는 돌아와서 동오를 스승으로 모시고 잘난 체 하는 그의 얼굴빛을 고치었다. 그리고 자기가 즐기는 일들을 버리고, 높은 지위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나자 나라안의 사람들이 그를 칭송하게 되었다.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9]- 吳王浮於江, 登乎狙之山. 衆狙見之, 恂然棄而走, 逃於深?. 有一狙焉, 委蛇攫[?+又+爪] , 見巧乎王. 王射之, 敏給搏捷矢. 王命相者趨射之, 狙執死. 王顧謂其友顔不疑曰:「之狙也, 伐其巧, 恃其便以敖予, 以至此?也! 戒之哉! 嗟乎, 无以汝色驕人哉!」 顔不疑歸而師董梧以鋤其色, 去樂辭顯, 三年而國人稱之.
252` 모든 마음을 버리고 나면 (잡편:24.서무귀,10)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 [10] - 남백자기가 안석에 기대어 앉아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안성자가 들어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선생님은 매우 훌륭한 인물이십니다. 본래 육체를 마른 나뭇가지처럼 만들 수 있고, 마음을 식은 재처럼 만들 수 있는 것입니까?” 남백자기가 말했다. “나는 일찍이 산 속 굴에서 살아 보았다. 그 때 제나라 임금 전화가 나를 한번 만나러 오자, 제나라 백성들은 그것을 세 번이나 칭찬했다고 한다. 이것은 반드시 내가 명성을 얻으려 했기 때문에 그가 나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나를 그렇게 팔려고 했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나를 사려고 했던 것과 같다. 만약 내가 그런 생각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면, 그가 어떻게 내가 그런 줄을 알 수 있었겠느냐? 내가 만약 그렇게 나를 팔려 들지 않았다면 그가 어떻게 그렇게 나를 사러 들었겠느냐? 나는 스스로의 본성을 잃고 있는 사람을 슬퍼한다. 나는 또한 남을 슬퍼하는 사람도 슬퍼한다. 나는 또 남을 슬퍼하는 것을 슬퍼하는 사람도 슬퍼한다. 그래서 뒤에 모든 마음을 버리고 나면 날로 모든 생각과 멀어져 마른 나뭇가지나 죽은 재처럼 될 것이다. ”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10]- 南伯子?隱?而坐, 仰天而噓. 顔成子入見曰:「夫子, 物之尤也. 形固可使若槁骸, 心固可使若死灰乎?」 曰: 「吾嘗居山穴之中矣. 當是時也, 田禾一覩我, 而齊國之衆三賀之. 我必先之, 彼故知之. 我必賣之, 彼故?之. 若我而不有之, 彼惡得而知之? 若我而不賣之, 彼惡得而?之? 嗟乎! 我悲人之自喪者, 吾又悲夫悲人者, 吾又悲夫悲人之悲者, 其後而日遠矣.」
253` 옛 방법을 따르되 합치시키려 들지 마라 (잡편:24.서무귀,11)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11]-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 초나라 임금이 공자를 위해 잔치를 벌였다. 손숙오가 술잔을 들고 서 있었고, 시남의료가 술잔을 받아 땅에 부어 제사를 올리면서 말했다. “옛날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에 무엇이라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저는 말로 표현하지 않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태껏 이것에 대하여 말해본 일이 없으니, 여기에서 그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남 의료께서는 구슬놀이를 하여 초나라와 송나라의 전쟁을 해결하였다 합니다. 손숙오께서는 깃부채를 들고 달게 잠을 자면서도 영땅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을 무기를 버리도록 만들었다 합니다. 제게 석자 길이의 입이 있다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행동은 도라고 드러나지 않는 도이며, 공자의 말은 말로 표현하지 않는 이론인 것이다. 그러므로 덕이란 도로써 통일되어 있는 곳에 총합되고, 이론이란 지혜로써 알 수 없는 경지에 머물러야만 지극한 것이다. 도가 통일되어 있는 곳이라면 덕은 함께 합쳐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혜로써 알 수 없는 것이라면 이론으로써는 밝혀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 없이 덕을 세우고, 알지 못하면서 이론을 내세워 명분을 찾는 유가나 묵가는 흉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러므로 바다가 흘러드는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고도 변함이 없는 것은 광대함의 극치인 것이다. 성인은 하늘과 땅을 아울러 포괄하고, 은택을 온 천하에 미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서는 아무런 벼슬도 없고, 죽어서도 아무런 시호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재물을 모으지도 않고, 명예를 세우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 부른다. 개가 잘 짖는다고 좋은 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말을 잘 한다 해서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위대함이야 말과 상관이 있겠는가? 스스로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위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스스로 내세우는 것이야 덕이 되겠는가? 위대하게 갖추어져 있기로는 하늘과 땅보다 더 한 것이 없다. 그러나 무엇을 추구하여 위대하게 갖추어진 것인가? 위대하게 갖추어짐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추구하는 것이 없고, 잃는 것도 없고, 버리는 것도 없어야 하며, 외물로 말미암아 자기의 본성을 바꾸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자기 본성으로 되돌아옴으로써 자연스럽게 막히는 일이 없고, 옛 방법을 따르되 옛 방법에 합치시키려 들지 않는 것이 위대한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다.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11]- 仲尼之楚, 楚王觴之, 孫叔敖執爵而立, 市南宜僚受酒而祭曰:「古之人乎! 於此言已.」 曰:「丘也聞不言之言矣, 未之嘗言, 於此乎言之. 市南宜僚弄丸而兩家之難解, 孫叔敖甘寢秉羽而?人投兵. 丘願有喙三尺!」 彼之謂不道之道, 此之謂不言之辯, 故德總乎道之所一. 而言休乎知之所不知, 至矣. 道之所一者, 德不能同也. 知之所不能知者, 辯不能擧也. 名若儒墨而凶矣. 故海不辭東流, 大之至也. 聖人幷包天地, 澤及天下, 而不知其誰氏. 是故生无爵, 死无諡, 實不聚, 名不立, 此之謂大人. 狗不以善吠爲良, 人不以善言爲賢, 而況爲大乎! 夫爲大不足以爲大, 而況爲德乎! 夫大莫若天地, 然奚求焉而大備矣. 知大備者, 无求, 无失, 无棄, 不以物易己也. 反己而不窮, 循古而不摩, 大人之誠.
254` 육체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잡편:24.서무귀,12) 재물` 물질` 경제` 욕심` 부` 욕망`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12]- 자기에게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들을 앞에 불러 앉혀놓고 구방인을 불러 물었다. “나를 위해 내 자식들의 관상을 보아주십시오. 누가 복을 타고났습니까?” 구방인이 말했다. “곤이 복을 타고났습니다.” 자기는 기뻐하며 구방인에게 말했다. “어떤 복을 타고났습니까?” 구방인이 말했다. “곤은 임금과 같은 식사를 하면서 일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자기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 자식이 어찌 그런 불행을 당하게 된단 말입니까?” 구방인이 말했다. “나라의 임금과 같은 식사를 하면서 그의 은택이 온 집안에 미칠 것이니, 하물며 부모님이야 얼마나 그 덕을 많이 보시겠습니까? 지금 선생님께서 얘기를 듣고 우시는 것은 복을 차는 것입니다. 자식은 행운을 타고났으나 아버지는 불행할 것입니다.” 자기가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안다고 내 자식 곤이 행운을 타고났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저 술과 고기가 코와 입으로 들어간다는 것인데 그것들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십니까? 내가 가축을 기른 일도 없는데 암양이 방의 아랫목에 생겨난다든지, 사냥을 한 일도 없는데 메추라기가 방의 동남쪽 귀퉁이에 생겨난 것과 같은 얘기인데 당신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내가 내 자식들과 더불어 노닐고자 하는 것은 하늘과 땅에 노니는 것입니다. 나는 자식들과 더불어 하늘을 따라 즐기고, 땅에 순응하며 먹고살려는 것입니다. 나는 자식들과 더불어 인위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 계책을 쓰지 않으며, 괴상한 짓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는 자식들과 더불어 하늘과 땅의 진실한 모습을 타고서 사물이 그들과 서로 어긋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자식들과 더불어 한결같이 유유자적하고, 일이 합당한 것을 따지며 마음을 쓰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 자식에게 세속적인 보상이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모든 괴상한 징후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괴이한 행동이 있게 됩니다. 아마도 나와 내 자식의 죄는 아닐 것이니, 하늘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 것입니다. 나는 그래서 슬퍼하는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곤을 연나라로 보냈는데, 도중에 곤이 도적들에게 잡혔다. 완전한 몸으로 팔려니 도망갈 우려가 있어 다리를 자른 다음 파는 것이 좋겠다고 도적들은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는 다리를 잘린 다음 제나라로 팔려갔는데, 마침 대가집의 문지기가 되어 그런 대로 그 자신은 평생토록 고기를 먹으며 살다 죽었다 한다.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12]- 子?有八子, 陳諸前, 召九方?曰:「爲我相吾子, 孰爲祥?」 九方?曰:「梱也爲祥.」 子?瞿然喜曰:「奚若?」 曰:「梱也將與國君同食以終其身.」 子?索然出涕曰:「吾子何爲以至於是極也!」 九方?曰:「夫與國君同食, 澤及三族, 而況父母乎! 今夫子聞之而泣, 是禦福也. 子則祥矣, 父則不祥.」 子?曰:「?, 汝何足以識之, 而梱祥邪? 盡於酒肉入於鼻口矣, 而何足以知其所自來? 吾未嘗爲牧想?生於奧, 未嘗好田而?生於?, 若勿怪, 何邪? 吾所與吾子遊者, 遊於天地. 吾與之邀樂於天, 吾與之邀食於地. 吾不與之爲事, 不與之爲謀, 不與之爲怪. 吾與之乘天地之誠而不以物與之相?, 吾與之一委蛇而不與之爲事所宜. 今也然有世俗之償焉! 凡有怪徵者, 必有怪行, 殆乎, 非我與吾子之罪, 幾天與之也! 吾是以泣也.」 无幾何而使梱之於燕, 盜得之於道, 全而?之則難, 不若?之則易, 於是乎?而?之於齊, 適當渠公之街, 然身食肉而終.
255` 자연스럽게 사랑하고 이롭게 해주어야 한다 (잡편:24.서무귀,13)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13]- 설결이 우연히 허유를 만나 말했다. “선생은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허유가 말했다. “요임금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합니다.” 설결이 말했다.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허유가 말했다. “요 임금은 부지런히 인에 힘을 쓰고 있으니, 나는 그가 하는 짓이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될까 두렵습니다. 후세에는 아마도 사람이 사람을 서로 잡아먹게 될 것입니다. 백성들을 모여들게 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을 사랑해주면 친해지고, 그들을 이롭게 해주면 모여들고, 그들을 칭찬해주면 일에 힘씁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일을 시행하면 흩어집니다. 백성을 이롭게 하고 사랑하는 것은 인의로부터 나옵니다. 인의라는 명목을 버리고 정말로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이는 적고, 인의라는 명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의의 행동이란 다만 성실성을 없앨 따름입니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자들이 이용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한사람의 전제가 천하를 이롭게 한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물건의 한 면만을 얼핏 본 것과 같습니다. 요임금은 현명한 사람이 천하에 이롭다는 것만을 알았지, 그들이 천하에 해가 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현명함을 초월한 사람만이 그런 사실을 압니다.”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13]- 齧缺遇許由, 曰:「子將奚之?」 曰:「將逃堯.」 曰:「奚謂邪?」 曰: 「夫堯畜畜然仁, 吾恐其爲天下笑. 後世其人與人相食與! 夫民, 不難聚也. 愛之則親, 利之則至, 譽之則勸, 致其所惡則散. 愛利出乎仁義, 損仁義者寡, 利仁義者衆. 夫仁義之行, 唯且无誠, 且假夫禽貪者器. 是以一人之斷制利天下, 譬之猶一?也. 夫堯知賢人之利天下也, 而不知其賊天下也, 夫唯外乎賢者知之矣!」
256`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 진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잡편:24.서무귀,14)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14]- 세상에는 난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고, 유수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고, 권루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 주에 속하는 사람들이란, 한 선생의 이론을 배우기만 하면 여과 없이 그것을 따라 자기의 학설로써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만족하고서 처음의 물건이 있지 않았던 상태가 있었음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을 주관이 없이 유연하다는 뜻에서 난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유 수에 속하는 사람들이란, 돼지의 몸에 붙어사는 이와 같은 사람들이다. 길게 털이 자라난 장소를 골라서 스스로 넓은 궁전의 광대한 정원이라 생각한다. 발굽 모서리나 사타구니 사이 또는 젖통 사이나 넓적다리 사이를 스스로 안락한 방이나 편안한 장소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때이건 도살꾼이 돼지를 잡은 뒤 마른풀을 깔아 불을 붙이고 그 위에 돼지를 올려놓으면 자신도 돼지의 털과 함께 타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들은 자기가 사는 구역 안에서 살아가기도 하고 죽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을 일시적인 안락을 꾀한다는 뜻의 유수라 부르는 것이다. 권루에 속하는 사람들이란, 순임금과 같은 사람들이다. 양고기는 개미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개미들은 양고기를 좋아하여 모여드는데, 양고기에서는 노린내가 나기 때문이다. 순은 인의라는 노린내나는 행동을 하여 백성들이 그를 좋아했다. 그러므로 순은 사는 곳을 세 번이나 옮겼으나 그 때마다 도시를 형성했다. 등이라는 고장으로 옮겼을 적에는 십여 만 가호나 모여들었다. 요임금은 순이 현명하다는 얘기를 듣고서 그를 등용하여 불모의 땅을 맡기면서 그 땅에 가서 은택을 베풀어 달라고 말했다. 순은 불모의 땅을 맡은 다음, 나이가 늙었고 귀와 눈이 어두워졌으나 돌아가 쉬지를 못했다. 그래서 이들을 꼽추와 같이 등이 굽도록 일한다는 뜻에서 권루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신인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모여드는 것을 싫어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도 이들과 친근하게 지내지 않는다. 친근하게 지내지 않으면 이익을 기대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매우 친한 사람도 없고, 관계가 아주 먼 사람도 없다. 덕을 지니고 조화된 마음을 기르면서 천하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진인이라 부르는 것이다. 개미로서는 양고기를 쫓는 지혜를 버리고, 물고기로서는 넓은 강물에서처럼 서로의 관계를 잊으며, 양고기로서는 개미를 모여들게 하려는 의식을 버린다. 눈에 보이는 대로 물건을 보고, 귀에 들리는 대로 소리를 들으며, 마음은 본성으로 되돌아가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이러한 사람의 마음은 먹줄을 친 듯이 평평하며, 그의 변화는 자연을 따르기만 한다. 이것이 옛날의 진인이다. 자연스러움으로써 인간을 대할 뿐, 인위적인 것으로 자연의 변화에 참견하지 않는다. 이것이 옛날의 진인이다.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14]- 有暖姝者, 有濡需者, 有卷婁者. 所謂暖姝者, 學一先生之言, 則暖暖姝姝而私自說也, 自以爲足矣, 而未知未始有物也, 是以謂暖姝者也. 濡需者, 豕蝨是也, 擇疏?者以爲廣宮大?, 奎?曲?, 乳間股脚, 此以爲安室利處, 不知屠者之一旦鼓臂布草操煙火, 而己與豕俱焦也. 此以域進, 此以域退, 此其所謂濡需者也. 卷婁者, 舜也. 羊肉不慕蟻, 蟻慕羊肉, 羊肉?也. 舜有?行, 百姓悅之, 故三徙成都, 至鄧之虛而十有萬家. 堯聞舜之賢, 擧之童土之地, 曰冀得其來之澤. 舜擧乎童土之地, 年齒長矣, 聰明衰矣, 而不得休歸, 所謂卷婁者也. 是以神人惡衆至, 衆至則不比, 不比則不利也. 故无所甚親, 无所甚疏, 拘德煬和以順天下, 此謂眞人. 於魚棄知, 於魚得計, 於羊棄意. 以目視目, 以耳聽耳, 以心復心. 若然者, 其平也繩, 其變也循. 古之眞人, 以天待人, 不以人入天. 古之眞人.
257` 감각이나 능력이 오히려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 (잡편:24.서무귀,15)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15]- 얻는 것이 생이고, 잃는 것이 사일 수도 있지만, 얻는 것이 사이고 잃는 것이 생일 수도 있다. 약이라는 것은 그 내용물을 보면, 오두나 도라지나 계옹이나 시령 같은 것으로 지어지고, 이것들이 때에 따라 번갈아 가며 주된 약제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월나라 임금 구천은 싸움에 패하여 삼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회계산으로 도망했다. 그 때 월나라 대부 종만이 지금은 망했지만 다시 부흥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종도 그 자신에게 불운이 닥칠 근거가 됨은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올빼미의 눈은 낮에는 보이지 않지만 밤에는 잘 보이고, 학의 다리에는 긴 마디가 있지만 이것을 없애주면 슬퍼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또 말하기를「바람이 불어가면서 강물을 말리고, 햇볕도 비치면서 강물을 말리고 있다. 그러나 바람과 햇볕이 언제나 강물을 지키고 있음에도 강물은 처음부터 그들과 충돌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강물은 근원이 있고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본시 물이 흙을 적셔줌에는 빈틈이 없고, 그림자가 사람을 따르는 것에도 빈틈이 없고, 물건과 물건의 관계에도 빈틈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눈의 시력은 위태롭고, 귀의 청력도 위태롭고, 마음의 작용도 위태롭기만 한 것이다. 모든 능력은 그것을 지니고 있다해도 위태로운 것이다. 본성으로부터 떠나서 위태로움이 이루어지면 고칠 겨를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재화는 자라서 더욱 불어나기만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본성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하면 많은 공이 들며 그 결과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능력을 자신의 보물로 생각하고 있으니 또한 슬프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라를 망치고, 백성들을 살육하는 일이 그치지 않고 있는데도 그 원인을 추구할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15]- 得之也生, 失之也死. 得之也死, 失之也生. 藥也, 其實菫也, 桔梗也, 鷄?也, 豕零也, 是時爲帝者也, 何可勝言! 句踐也以甲楯三千棲於會稽. 唯種也能知亡之所以存, 唯種也不知其身之所以愁. 故曰, ?目有所適, 鶴脛有所節, 解之也悲. 故曰, 風之過河也有損焉, 日之過河也有損焉. 請只風與日相與守河, 而河以爲未始其?也, 恃源而往者也. 故水之守土也審, 影之守人也審, 物之守物也審. 故目之於明也殆, 耳之於聰也殆. 心之於殉也殆. 凡能其於府也殆, 殆之成也不給改. 禍之長也玆萃, 其反也緣功, 其果也待久. 而人以爲己寶, 不亦悲乎! 故有亡國戮民无已, 不知問是也.
258` 사람의 지능은 진리나 원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잡편:24.서무귀,16) - 장자(잡편) ; 제24편 서무귀[16]- 발이 땅을 밟는 지면은 그 좁기가 이를 데 없다. 비록 밟는 지면이 좁기는 하지만 그 발이 밟지 않는 지면이 넓은 것을 믿은 후에야 안심하고 걸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처럼 사람이 아는 것도 적다. 비록 아는 것이 적지만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을 의지하고서야 자연이란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물의 근원이 하나라는 대일(大一)을 알고, 만물의 근원이 지극히 고요하고 움직임이 없다는 일음(一陰)을 알고, 만물을 분별 없이 하나로 보는 대목(大目)을 알고, 자연의 조화가 균등히 작용한다는 대균(大均)을 알고, 자연이란 일정한 법도가 있다는 대방(大方)을 알고, 자연이란 진실하다는 대신(大信)을 알고, 자연이란 안정된 것이라는 대정(大定)을 알면 지극한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대일은 도로 통하게 해주며, 대음은 모든 분규를 해결하게 해주며, 대목은 자연을 달관하게 하며, 대균은 그의 본성에 따라 스스로 터득하게 하며, 대방은 모든 법도를 터득하게 하고, 대신은 모든 의혹을 없애주며, 대정은 자신을 안정되게 유지해 준다. 사람의 지능이 다 한 곳에 자연의 변화가 있고, 무(無)의 원리가 어둠 속에서도 작용하고 있고, 만물을 생성하게 하는 원리가 있고, 그런 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법칙이 있는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과 같고, 그것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과 같은 것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경지에 이른 뒤에야 그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추구해보면 한계가 있을 수도 없고, 한계가 없을 수도 없는 것이며, 뒤섞여 있는 듯하면서도 그 속에 실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손상된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에 위대한 원칙이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어찌하여 사람들은 그것에 대하여 추구하지도 않는가? 어찌하여 그렇게 미혹되어 있는가? 미혹되지 않은 마음으로 미혹을 풀어줌으로써 미혹되지 않은 경지로 되돌아가게 하면 바로 본성의 위대한 불혹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4篇 徐無鬼[16]- 故足之於地也踐, 雖踐, 恃其所不?而後善博也. 人之於知也少, 雖少, 恃其所不知而後知天之所謂也. 知大一, 知大陰, 知大目, 知大均, 知大方, 知大信, 知大定, 至矣. 大一通之, 大陰解之, 大目視之, 大均緣之, 大方體之, 大信稽之, 大定持之. 盡 有天循有照, 冥雨樞, 始有彼. 則其解之也似不解之者, 其知之也似不知之也, 不知而後知之. 其問之也, 不可以有崖, 而不可以无崖. ?滑有實, 古今不代, 而不可以虧, 則可不謂有大揚?乎! 闔不亦問是已.奚惑然爲! 以不惑解惑, 復於不惑, 是尙大不惑.
259` 지혜보다 무위의 덕이 사람을 감화시킨다 (잡편:25.칙양,1) 무위` - 장자(잡편) ; 제25편 칙양[1]- 칙양이 초나라에 놀러 갔는데, 이절이 그에 관하여 초나라 임금에게 얘기했다. 그러나 임금은 그를 만나보지 않았다. 이절이 그대로 돌아가자 칙양이 왕과를 보고 말했다.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저를 임금님께 소개해 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왕과가 말했다. “나는 공열휴만 못합니다.” 칙양이 말했다. “공열휴란 무엇을 하는 분이십니까?” 왕과가 말했다. “그는 겨울에는 강에서 자라를 작살로 찔러 잡고, 여름이면 산기슭에서 쉬고 있습니다. 누가 지나다가 물으면 여기가 자기 집이라고 대답한다 합니다. 이절이 임금께 말씀드려도 되지 않았는데 하물며 나 같은 사람이 말씀을 드린다 해서 되겠습니까? 또한 저의 지혜는 이절만 못합니다. 이절의 사람됨은 덕은 없지만 지혜는 있습니다. 스스로 자연에 맡기어 신명으로써 외물을 접하지 않고 본시 부귀를 누리는 지위에 미혹되어 있습니다. 그와 접촉하면 덕으로써 서로를 돕게 되지 않고, 서로의 덕을 없애는 것을 돕는 결과가 됩니다.
헐벗은 사람이 봄에 가서야 옷을 빌리고, 더위를 먹은 사람이 겨울이 되어서도 찬바람을 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초나라 임금의 사람됨은 형식적으로는 존엄합니다. 그가 죄에 대하여 용서를 하지 않기로는 호랑이와 같습니다. 말재주가 있고 올바른 덕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그를 설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인은 그가 곤궁할 적에는 식구들로 하여금 그의 가난함을 잊게 만들고, 그가 출세를 했을 경우에는 임금이나 대신들로 하여금 벼슬과 녹을 잊고서 스스로 겸하하도록 만듭니다. 그는 외물에 대하여는 외물과 동화하여 즐기고, 사람들에 대하여는 도가 서로 통하게 하고 즐김으로써 자기의 본성을 보전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는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로 하여금 화합하는 마음을 가지게 만들고, 사람들과 나란히 서 있으면서도 사람들을 동화하게 만듭니다. 그들을 모두 아버지와 아들 같은 정으로 귀착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가만히 들어앉아 있어도 그가 세상에 베푸는 바를 한번 살펴보면,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효과가 이와 같이 위대합니다. 그래서 공열휴에게 부탁을 드려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 莊子(雜篇) ; 第25篇 則陽[1]- 則陽游於楚, 夷節言之於王, 王未之見, 夷節歸. 彭陽見王果曰:「夫子何不譚我於王?」 王果曰:「我不若公閱休.」 彭陽曰:「公閱休奚爲者邪?」 曰: 「冬則?鼈於江, 夏則休乎山樊. 有過而問者, 曰:‘此予宅也.’ 夫夷節已不能, 而況我乎! 吾又不若夷節. 夫夷節之爲人也, 无德而有知, 不自許, 以之神其交, 固顚冥乎富貴之地, 非相助以德, 相助消也. 夫凍者假衣於春, ?者反冬乎冷風. 夫楚王之爲人也, 形尊而嚴. 其於罪也, 無赦如虎. 非夫?人正德, 其孰能橈焉!
260` 지혜에 의지하면 근심만이 생긴다 (잡편:25.칙양,2) - 장자(잡편) ; 제25편 칙양[2]- 성인은 만물의 혼란을 달관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일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그처럼 통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천성이기 때문이다. 천명으로 되돌아가 행동하며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서 성인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지 혜를 의지하면 근심만이 생기며 행하는 일도 오래가지 못하여 멈추어지게 될 것이며, 그것은 어쩔 수도 없는 것이다. 나면서 아름다운 사람은 남이 그에게 거울을 주어야 그것을 보고서 자기가 아름다운 것을 알지만 남이 얘기해주지 않으면 자기가 남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을 알든 모르든 그것을 들었든 듣지 않았든 그가 아름답다는 것은 결코 부정될 수 없는 것이며, 사람들이 그의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본성이기 때문이다. 성인은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 성인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그러나 남이 얘기해주지 않으면 그 자신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을 알든 모르든, 그것을 듣든 듣지 못하든 간에 그가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끝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사람들이 그를 통하여 편하게 지내게 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본성이기 때문이다. 조국이나 고향은 그 곳을 떠난 사람들이 바라보기만 해도 기쁨을 느끼게 된다. 비록 언덕과 초목에 가려서 십분의 일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마음은 기쁜 것이다. 하물며 옛날 보던 것을 보고, 옛날 듣던 것을 들을 때는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겠는가? 옛날에 보던 높다란 누각이 사람들 사이에 보일 때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 莊子(雜篇) ; 第25篇 則陽[2]- 聖人達綢繆, 周盡一體矣, 而不知其然, 性也. 復命搖作而以天爲師, 人則從而命之也. 憂乎知, 而所行恒无幾時, 其有止也, 若之何! 生而美者, 人與之鑑, 不告則不知其美於人也. 若知之, 若不知之, 若聞之, 若不聞之, 其可喜也終无已, 人之好之亦无已, 性也. 聖人之愛人也, 人與之名, 不告則不知其愛人也. 若知之, 若不知之, 若聞之, 若不聞之, 其愛人也終无已, 人之安之亦无已, 性也. 舊國舊都, 望之暢然. 雖使丘陵草木之緡, 入之者十九, 猶之暢然. 況見見聞聞者也, 以十?之臺縣衆閒者也!
261` 자연을 스승으로 삼아라 (잡편:25.칙양,3) - 장자(잡편) ; 제25편 칙양[3]- 옛날의 염상씨는 자연변화의 원리를 터득하여 되어 가는 대로 자신을 맡기고 만물과 함께 시작도 없고 끝도 없었으며 시간도 없었고 시간의 흐름도 없었다. 매일 만물과 함께 변화하여가는 사람이란 전혀 변화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찌하여 그런 경지에 처신해 보려들지 않는가? 자연을 스승으로 삼으려 하면서도 자연을 스승으로 삼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 밖의 물건을 따라 모든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니, 그것을 어찌 하겠는가? 성 인에게는 처음부터 자연의 의식도 없었다. 처음부터 사람에 대한 의식도 없었다. 처음부터 시작도 없었고, 처음부터 물건도 없었다. 세상과 더불어 함께 행동하여 거리낌이 없었고, 그의 행동은 완비되어 있어 자기를 손상케 하는 일이 없었다. 그가 자연에 합치됨이 이와 같았으니 어떠했겠는가? 상나라 탕임금은 사어, 문윤, 등항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스승을 따르기는 하되 얽매이지는 않고 되는 대로 내맡기었다. 그 때문에 뛰어난 명성을 얻었고, 명성에 따를 법도로 무르익어 명성과 법도 두 가지가 함께 세상에 드러났던 것이다. 공자도 사려를 다해 보았지만 결국 자연을 스승으로 삼았던 것이다. 용성씨가 말하기를「날(日)이 없으면 해(歲)도 없고, 안이 없으면 겉도 없다」고 말했다. - 莊子(雜篇) ; 第25篇 則陽[3]- ?相氏得其環中以隨成, 與物无終无始, 无幾无時. 日與物化者, 一不化者也, 闔嘗舍之! 夫師天而不得師天, 與物皆殉, 其以爲事也若之何? 夫聖人未始有天, 未始有人, 未始有始, 未始有物, 與世偕行而不替, 所行之備而不?, 其合之也若之何? 湯得其司御門尹登恒爲之傅之, 從師而不?, 得其隨成. <爲之司其名. 之名?法, 得其兩見. 仲尼之盡慮, 爲之傅之.> 容成氏曰:「除日无歲, 无內无外.」
262`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것과 같다 (잡편:25.칙양,4) - 장자(잡편) ; 제25편 칙양[4]- 위나라 혜왕 영이 제나라 위왕 모와 맹약을 맺었는데 제나라 위왕이 그 맹약을 배반했다. 위나라 혜왕은 화가 나서 사람들을 시켜 그를 찔러 죽이려 했다. 위나라 서수 공손연이 그 이야기를 듣고 부끄럽게 여기면서 말했다. “임금님께서는 만승의 군주이신데도 한 남자를 시켜 원수를 갚으려고 하고 계십니다. 제게 이십만의 군사를 내려주시어 임금님을 위해 제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면 제나라 국민들을 사로잡고 제나라의 소와 말들을 끌어옴으로써 제나라 임금이 속이 타서 등창이 터지게 만들겠습니다. 그런 뒤에 그 나라를 빼앗아버리겠습니다. 제나라 장수 전기를 도망치게 만들고서 그의 등을 쳐서 척추를 부러뜨려 버리겠습니다.” 위나라의 계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서 부끄럽게 여기면서 말했다. “열길 높이의 성을 쌓아놓았을 때, 그 열길 높이의 성을 다시 허물어버린다면 이것을 쌓은 일꾼들이 고생만 한 결과가 됩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지 칠 년이 되었는데, 이것은 정치의 기반입니다. 공손연은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이니 그의 말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위나라 화자가 다시 이 말을 듣고서 추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제나라를 정벌하자는 얘기를 하는 자는 혼란을 일삼는 사람입니다. 제나라를 정벌하지 말자고 말하는 자도 역시 혼란을 일삼는 사람입니다. 제나라를 정벌하자고 말하는 자와 제나라를 정벌하지 말자고 말하는 자가 혼란을 일삼는 자라고 말하는 자도 역시 혼란을 일삼는 자입니다.” 위나라 혜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화자가 말했다. “임금님께서는 올바를 도를 추구하기만 하시면 그 뿐입니다.” 혜자가 그 말을 듣고서 대진인을 혜왕에게 소개했다. 대진인이 혜왕에게 말했다. “임금님께서는 달팽이를 알고 계십니까?” 혜왕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대진인이 말했다. “달팽이의 왼쪽 뿔에 나라 하나가 있었는데 촉씨라 불렀습니다. 달팽이의 오른쪽 뿔에도 한 나라가 있었는데 만씨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가 땅을 서로 빼앗으려고 전쟁을 벌였습니다. 쓰러진 시체사 수만 명이나 되었고, 패배하여 도망치는 자들을 추격하여 십오일 만에야 되돌아 왔습니다.” 혜왕이 말했다. “그 무슨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까?” 대진인이 말했다. “저는 임금님께서 사실을 받다들이기를 바랍니다. 임금님께서는 사방과 하늘과 땅을 생각할 때 한계가 있다고 여기십니까?” 혜왕이 말했다. “한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진인이 말했다. “마음을 한계도 없는 경지에서 노닐게 할 줄 안다면 돌이켜 이 세상의 나라를 생각해 볼 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존재가 되지 않겠습니까?” 혜왕이 말했다. “그렇겠지요.” 대진인이 말했다. “이 세상에는 위나라가 있습니다. 위나라 가운데 또 양나라가 있습니다. 양나라 가운데 임금님이 계십니다. 임금님이 만씨와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혜왕이 말했다. “다를 것이 없겠군요.” 대진인이 나가자, 혜왕은 멍하니 자신도 잊은 듯이 있었다. 대진인이 나간 뒤 혜자가 찾아오자 혜왕이 말했다. “그 손님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성인이라도 그만은 못할 것입니다.” 혜자가 말했다. “피리를 불면 고운 피리소리가 나지만, 칼자루 끝에 뚫린 구멍을 불면 바람 소리만 날 뿐입니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사람들이 기리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요와 순을 대진인에게 비교하여 얘기하면 입에서 나는 바람 소리에 불과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 - 莊子(雜篇) ; 第25篇 則陽[4]- 魏瑩與田侯牟約, 田侯牟背之. 魏瑩怒, 將使人刺之. 犀首公孫衍聞而恥之曰:「君爲萬乘之君也, 而以匹夫從讐! 衍請受甲二十萬, 爲君 攻之, 虜其人民, 係其牛馬, 使其君內熱發於背. 然後拔其國. 忌也出走, 然後?其背, 折其脊.」 季子聞而恥之曰:「築十?之城, 城者旣十?矣, 則又壞之, 此胥靡之所苦也. 今兵不起七年矣, 此王之基也. 衍亂人, 不可聽也.」 華子聞而醜之曰:「善言伐齊者, 亂人也. 善言勿伐者, 亦亂人也. 謂伐之與不伐亂人也者, 又亂人也.」 君曰:「然則若何?」 曰:「君求其道而已矣!」 惠子聞之而見戴晉人. 戴晉人曰:「有所謂蝸者, 君知之乎?」 曰:「然.」 「有國於蝸之左角者曰觸氏, 有國於蝸之右角者曰蠻氏, 時相與爭地而戰, 伏尸數萬, 逐北旬有五日而後反.」 君曰:「噫! 其虛言與?」 曰:「臣請爲君實之. 君以意在四方上下有窮乎?」 君曰:「無窮.」 曰:「知遊心於無窮, 而反在通達之國, 若存若亡乎?」 君曰:「然.」 曰:「通達之中有魏, 於魏中有梁, 於梁中有王, 王與蠻氏辯乎?」 君曰:「無辯.」 客出而君?然若有亡也. 客出, 惠子見. 君曰:.「客, 大人也, 聖人不足以當之.」 惠子曰:「夫吹?也, 猶有?也. 吹劍首者, ?而已矣. 堯舜, 人之所譽也. 道堯舜於戴晉人之前, 譬猶一?也.」
263` 잘하는 말을 듣는 것조차 수치이다? (잡편:25.칙양,5) - 장자(잡편) ; 제25편 칙양[5]- 공자가 초나라를 가다가 의구산 아래 주막에서 묵었다. 그 때 그 이웃집의 하인 부부가 지붕에 올라가 있었다. 자로가 말했다. “저기서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공자가 말했다. “그는 성인으로서 하인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백성들 속에 자신을 묻고 밭 두렁 가에 자신을 숨기고 있어서 그의 명성은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 그의 뜻은 한이 없는 사람이다. 그의 입은 비록 말하고 있으나 그의 마음은 말을 한 일이 없다. 또한 세상과 멀리 떨어져 그의 마음은 세상과 어울리려 하지 않고 있다. 그는 땅속에 잠기어 있듯이 숨어 지내는 사람이다. 그는 아마도 시남의 의료일 것이다.” 자로가 가서 그를 불러오겠다고 하니 공자가 말했다. “그만두어라. 그는 내가 자기를 알아보았음을 알았고, 내가 초나라에 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초나라에 가서 반드시 초나라 임금으로 하여금 자기를 부르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또 내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조차도 수치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물며 친히 만나는 것이야 얼마나 수치로 생각하겠느냐? 그런데 어찌 그대로 남아 있겠느냐?” 자로가 가서 보니, 이미 그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 莊子(雜篇) ; 第25篇 則陽[5]- 孔子之楚, 舍於蟻丘之漿. 其隣有夫妻臣妾登極者, 子路曰:「是??何爲者邪?」 仲尼曰:「是聖人僕也. 是自埋於民, 自藏於畔. 其聲銷, 其志無窮, 其口雖言, 其心未嘗言, 方且與世違而心不屑與之俱. 是陸沈者也, 是其市南宜僚邪?」 子路請往召之. 孔子曰:「已矣! 彼知丘之著於己也, 知丘之適楚也, 以丘爲必使楚王之召己也, 彼且以丘爲?人也. 夫若然者, 其於?人也羞聞其言, 而況親見其身乎! 而何以爲存?」 子路往視之, 其室虛矣.
264` 자기 본성을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 한다 (잡편:25.칙양,6) - 장자(잡편) ; 제25편 칙양[6]- 장오의 봉인이 자뢰에게 말했다. “임금이 정치를 함에 있어서는 거칠게 함부로 해서는 안되며,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소홀히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됩니다. 전에 내가 벼를 심어보니, 밭갈이를 거칠게 함부로 하니 벼이삭도 거칠게 함부로 내게 보답을 했습니다. 김매는 것을 거칠게 함부로 하니, 벼이삭도 소홀히 아무렇게나 내게 보답을 했습니다. 다음 해에는 생각을 바꾸어 밭을 깊게 갈고 써레질을 잘했더니, 벼가 잘 자라 많은 이삭을 맺어, 일년 내내 실컷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장자가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지금 사람들이 그의 몸을 다스리고, 그의 몸을 건사함에 있어서는 대부분 이 봉인이 말한 것과 비슷한 방법을 쓰고 있다.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도망을 치고, 그의 본성을 떠나 타고난 성정을 없애고, 그의 신명을 잃고서 여러 가지 세상일에 종사한다. 그러므로 그의 본성을 거칠게 함부로 다루는 사람은 욕망과 증오의 움이 터서 그의 성격을 이룬다. 갈대 같은 잡초들이 자라나 처음 싹이 틀 때에는 나의 몸에 도움을 줄 듯이 보이지만 곧 나의 본성을 뽑아버려, 위쪽은 무너지고 아래쪽은 새면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 퍼져나간다. 그래서 종기와 부스럼이 생기고, 열병에 걸리고, 당뇨병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5篇 則陽[6]- 長梧封人問子牢曰:「君爲政焉勿鹵莽, 治民焉勿滅裂. 昔予爲禾, 耕而鹵莽之, 則其實亦鹵莽而報予. 芸而滅裂之, 其實亦滅裂而報予. 予來年變齊, 深其耕而孰?之, 其禾?以滋, 予終年厭?.」 莊子聞之曰:「今人之治其形, 理其心, 多有似封人之所謂, 遁其天, 離其性, 滅其情, 亡其神, 以衆爲. 故鹵莽其性者, 欲惡之孼, 爲性?葦??, 始萌以扶吾形, 尋擢吾性. 竝潰漏發, 不擇所出, 漂疽疥癰, 內熱?膏是也.」
265` 백성들의 죄는 위정자의 책임이다 (잡편:25.칙양,7) 정치` 민주` 위정자` - 장자(잡편) ; 제25편 칙양[7]- 백구가 노자에게 배우고 있을 때 말했다. “청컨대 온 천하를 다니며 노닐게 하여주십시오.” 노자가 말했다. “그만두어라 천하란 것도 이곳이나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다시 요청하니 노자가 물었다. “그래 어디서부터 유람을 시작하겠느냐?” 백구가 말했다. “제나라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백구는 제나라로 가서 처형당한 시체를 보고는 올바로 누이고서 자기의 예복을 벗어 그 시체를 덮어주고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며 말했다. “아! 천하에는 큰 재난이 많은데 그대 홀로 먼저 당하였구나. 그대는 도둑질을 한 것은 아니었나? 살인을 한 것은 아니었나? 영예와 치욕을 따지게 된 연후에야 고민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재물을 모으게 된 연후에야 다툼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는 사람들을 고민하게 하는 일들을 내세우고, 사람들을 다투게 하는 것을 모음으로써 사람들의 몸을 쉴 새도 없이 곤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대와 같은 처지를 당하지 않으려 한다 해도 될 수가 있겠는가? 옛날의 임금들은 이득은 백성들에게 돌리고, 손실은 자기에게로 돌리었다. 정당한 것은 백성들에게 돌리고, 비뚤어진 것은 자기에게로 돌리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실수가 있을 때에는 물러나서 스스로를 책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숨어서 일을 결정하고는 알지 못하는 자들을 우롱하며, 크게 어려운 일을 하게 하고는 감히 하지 못하는 자들을 벌준다. 무거운 임무를 맡겨 놓고는 감당하지 못하는 자들을 처벌한다. 먼길을 가게하고는 이르지 못하는 자들을 처형한다. 그리고 백성들의 능력과 지혜가 다하면 곧 허위로 일을 충당한다. 위정자가 날로 허위적인 일을 많이 하게 되면 백성들이 어떻게 허위의 일을 하지 않게 되겠는가? 힘이 부족하면 속이게 되고, 지혜가 부족하게 되면 자기를 놓게 되며, 재물이 부족하게 되면 도둑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도둑질이 행하여지게 되는 것을 누구에게 책임추궁을 해야 되겠는가?” - 莊子(雜篇) ; 第25篇 則陽[7]- 柏矩學於老聃, 曰:「請之天下遊.」 老聃曰:「已矣! 天下猶是也.」 又請之, 老聃曰:「汝將何始?」 曰:「始於齊.」 至齊, 見辜人焉, 推而强之, 解朝服而幕之, 號天而哭之曰:「子乎子乎! 天下有大?, 子獨先離之, 曰莫爲盜! 莫爲殺人! 榮辱立, 然後覩所病. 貨財聚, 然後覩所爭. 今立人之所病, 聚人之所爭, 窮困人之身使无休時, 欲无至此, 得乎! 「古之君人者, 以得爲在民, 以失爲在己. 以正爲在民, 以枉爲在己. 故一形有失其形者, 退而自責. 今則不然. 匿爲物而過不識, 大爲難而罪不敢, 重爲任而罰不勝, 遠其塗而誅不至. 民知力竭, 則以僞繼之, 日出多僞, 士民安取不僞! 夫力不足則僞, 知不足則欺, 財不足則盜. 盜竊之行, 於誰責而可乎?」
266` 지혜를 바탕으로 한 시비는 믿을 것이 못된다 (잡편:25.칙양,8) - 장자(잡편) ; 제25편 칙양[8]- 거백옥은 나이 육십이 되기까지 육십 번이나 태도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옳다고 주장했던 일도 끝에 가서는 옳지 않은 일이라고 부정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지난 오십구년 동안 부정하지 않았던 일들이 없음을 알지 못한다. 만물은 생존하고 있지만 그 근원을 볼 수는 없다. 만물은 사멸되고 있지만 사멸되어 가는 문은 볼 수가 없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혜로써 알고 있는 사실을 존중한다. 그러나 지혜로써 알지 못하는 일에 의지하여야만 지혜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크게 미혹되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이론도 결국은 그런 시비의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른바 그런 대로 그렇게 지내야만 하는 것인가? - 莊子(雜篇) ; 第25篇 則陽[8]- ?伯玉行年六十而六十化, 未嘗不始於是之而卒?之以非也, 未知今之所謂是之非五十九非也. 萬物有乎生而莫見其根, 有乎出而莫見其門. 人皆尊其知之所知而莫知恃其知之所不知而後知, 可不謂大疑乎! 已乎已乎! 且无所逃. 此所謂然與, 然乎?
267` 어찌하여 영공인가 (잡편:25.칙양,9) - 장자(잡편) ; 제25편 칙양[9]- 공자가 태사인 대도, 백상건, 희위에게 말했다. “위나라 영공은 술 마시며 즐김에 빠져 국가의 정치는 돌보지도 않았고, 사냥하러 다니느라 제후들과의 맹회에 관한 일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영공이라는 시호를 붙인 까닭은 무엇입니까?” 대도가 말했다. “그것은 바로 그래서입니다.” 백상건이 말했다. “영공에게는 처가 세 사람 있었는데 그들과 같은 욕조에서 목욕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추가 명을 받들어 임금이 있는 곳에 나올 때에는 기다시피 마중 나가 부축하여 주었습니다. 처들에게는 터무니없는 짓을 그토록 심하게 하면서도, 현명한 사람을 만날 때에는 그처럼 공경을 다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영공이란 시호가 주어진 까닭입니다.” 희위가 말했다. “영공이 죽었을 때, 옛 무덤에 장사 지내려 하니 점괘가 불길하다고 나왔습니다. 모래 언덕에 장사 지내는 것이 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래 언덕을 몇 길 파 내려가자 돌로 된 석관이 나왔습니다. 그 석관을 씻고서 보니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자식은 의지할 만한 것이 못된다. 영공이 이 곳을 빼앗는다」 영공에게 신령스럽다는 영공이라는 칭호가 주어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앞의 두 사람들이 어찌 이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 莊子(雜篇) ; 第25篇 則陽[9]- 仲尼問於大史大?, 伯常騫, ?韋曰:「夫衛靈公飮酒湛樂, 不聽國家之政. 全獵畢?, 不應諸侯之際. 其所以爲靈公者何邪?」 大?曰:「是因是也.」 伯常騫曰:「夫靈公有妻三人, 同濫而浴. 史?奉御而進所, 搏幣而扶翼. 其慢若彼之甚也, 見賢人若此其肅也, 是其所以爲靈公也.」 ?韋曰:「夫靈公也死, 卜葬於故墓不吉, 卜葬於沙丘而吉. 掘之數?, 得石槨焉, 洗而視之, 有銘焉, 曰:‘不馮其子, 靈公奪而里之.’ 夫靈公之爲靈也久矣, 之二人何足以識之!」
268` 여론이란 무엇인가 (잡편:25.칙양,10) 여론` 소지가 대공조에게 물엇다. “고을의 여론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대공조가 말했다. “고을이란 성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풍속을 형성하는 것이다. 각기 다른 요소들을 합쳐 같은 하나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같은 하나를 분산시키고 보면 각기 다른 것이 된다. 말 몸의 여러 부분을 놓고서 말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말이 우리 앞에 매여 있을 때 몸의 모든 부분이 합치되어 서 있기 때문에 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덕과 산도 낮은 흙들이 쌓인 것들이 모여 높아진 것이며, 강물도 시냇물이 합쳐져서 커진 것이다. 그처럼 위대한 사람이란 모든 개인을 합쳐서 공(公)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밖에서 어떤 의견이 제시되면 자기의 다른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 생각에만 집착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가 제시한 의견이 올바르다 하더라도 남의 의견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사계절은 각기 기후가 다르지만 하늘은 한편에만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한 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섯 가지 관직은 직책이 서로 다르지만 임금이 어느 하나에만 사사로이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나라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문인과 무인은 기능이 다르지만 위대한 사람은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덕이 완비되는 것이다. 만물은 이치가 서로 다르지만, 도가 사사로이 치우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이름 없는 무명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도는 무명이기 때문에 무위하다. 무위하지만 어떤 변화나 존재에도 참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고 세상에는 변화가 있다. 화와 복은 흘러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모두가 제각기 따르는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바르다고 인정되는 것이 한 편에서는 잘못된 것이 될 수도 있다. 커다란 늪지에 비교를 하면 갖가지 동식물이 한군데 어우러져 살고 있는 것과 같다. 큰산에 비추어 보면 나무나 바위들이 다 같은 터전 위에 놓여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을 고을의 여론이라 하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5篇 則陽[10]- 少知問於大公調曰:「何謂丘里之焉?」 大公調曰:「丘里者, 合十姓百名而以爲風俗也, 合異以爲同, 散同以爲異. 今指馬之百體而不得馬, 而馬係於前者, 立其百體而謂之馬也. 是故丘山積卑而爲高, 江河合小而爲大, 大人合幷而爲公. 是以自外入者, 有主而不執. 由中出者, 有正而不距. 四時殊氣, 天不賜, 故歲成. 五官殊職, 君不私, 故國治. 文武殊能, 大人不賜, 故德備. 萬物殊理, 道不私, 故无名. 无名故无爲, 無爲而无不爲. 時有終始, 世有變化. 禍福淳淳, 至有所拂者而有所宜. 自殉殊面, 有所正者有所差. 比於大澤, 百材皆度. 觀於大山, 木石同壇. 此之謂丘里之言.」 少知曰:「然則謂之道, 足乎?」 大公調曰:「不然. 今計物之數, 不止於萬, 而期曰萬物者, 以數之多者號而讀之也. 是故天地者, 形之大者也. 陰陽者, 氣之大者也. 道者爲之公. 因其大而號以讀之, 則可也, 已有之矣, 乃將得比哉? 則若以斯辯, 譬猶狗馬, 其不及遠矣!」
269` 말과 지혜로 추구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다 (잡편:25.칙양,11) - 장자(잡편) ; 제25편 칙양[11]- 소지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도라고 말하여도 되겠습니까?” 대공조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지금 세상의 물건의 수를 헤아려 보면 만 가지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만물이라고 한정하여 말하는 것은 숫자 중에서 많은 단위를 붙여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라는 것은 형체 중에서 큰 것이며, 음과 양이라는 것은 기 중에서 큰 것이다. 도라는 것은 그것들 전체에 대하여 공정히 작용하는 것이다. 그것의 위대함을 근거로 하여 그것을 도라고 부른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도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면 곧 다른 물건과 상대적인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논한다면, 비유를 들면 여론과 도는 개와 말이나 같은 것이 되어 도의 진실함이 멀리 미치지 못하는 것이 된다.” 소지가 말했다. “사방 천지 사이의 만물의 발생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까?” 대공조가 말했다. “음 과 양이 서로 작용하여 서로 해치기도 하고 서로 다스리기도 한다. 사계절이 서로 엇바뀌면서 서로 발생하게 하기도 하고, 서로 죽이기도 한다. 욕망과 증오와 버리고 취하는 생각들이 여기에서 문득 일어나, 암놈과 수놈이 결합함으로써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안락과 위험이 서로 바뀌며, 화와 복이 서로 번갈아 발생하고, 더딘 것과 다급한 것이 서로 엇갈리며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현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명분과 실태는 조리를 이룰 수도 있으며 그 정미한 작용은 기술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질서를 따라서 서로 다스려지며 운행의 오르내림에 의하여 서로 작용을 하여, 궁해지면 되돌아오고 끝나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만물이 지니고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그것은 말로도 표현할 수 있고 지혜로도 추구할 수 있는 것인데, 물건의 현상을 정리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은 물건이 없어지는 것을 추궁하지도 않고 물건이 생겨나는 근원을 따지지도 않는다. 이것은 논리로써 논할 수 없이 중지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莊子(雜篇) ; 第25篇 則陽[11]- 少知曰:「四方之內, 六合之裏, 萬物之所生惡起?」 大公調曰:「陰陽相照, 相蓋相治. 四時相代, 相生相殺. 欲惡去就, 於是橋起. 雌雄片合, 於是庸有. 安危相易, 禍福相生, 緩急相摩, 聚散以成. 此名實之可紀, 精微之可志也. 隨序之相理, 橋運之相使, 窮則反, 終則始. 此物之所有. 言之所盡, 知之所至, 極物而已. 覩道之人, 不隨其所廢, 不原其所起, 此議之所止.」
270` 주재자의 존재는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다 (잡편:25.칙양,12) - 장자(잡편) ; 제25편 칙양[12]- 소지가 말했다. “계진처럼 자연의 주재자가 없다는 설과 첩자처럼 주재자가 있다는 설이 있는데, 두 사람의 설 중에 어느 것이 진실에 합치되고 어느 것이 진리에 들어맞는 것입니까?” 대공조가 말했다. “닭이 울고 개가 짖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비록 위대한 지혜를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고 있는가를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그것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추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분석해 나가면 비길 데 없이 정미한 경지에 이르게 되고, 크게는 한정지을 수 없는 정도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 주재자가 있다거나 주재자가 없다고 하는 이론은 물건의 현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어서 결국은 잘못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주재자가 있으면 작용이 실재적인 것이 되고, 주재자가 없다면 작용도 허무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름이 있고 사실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현상계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름도 없고 사실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상계를 공허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할 수 있고 마음으로 추리할 수 있는 것이지만, 도란 말로 표현할수록 진실과는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물건이 생겨나기 전에 생겨나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없는 것이며, 이미 죽어버린 것을 죽지 못하게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다. 죽음과 삶은 우리로부터 멀리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 원리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주재자가 있다거나 주재자가 없다는 설은 결국 억측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 내가 보건대 만물의 근본은 추궁하여도 끝이 없는 것이다. 내가 추구해 보건대 만물의 종말은 오는 곳이 한정이 없는 것이다. 끝도 없고 한정도 없으니, 그것을 무로써 표현할 때 비로소 물건의 실리와 합치되게 되는 것이다. 주재자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것은 이론의 출발점으로써 만물과 더불어 영원히 부침할 것이다. 도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도라는 이름은 가정적으로 그렇게 불리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주재자가 있고 없다는 것은 물건의 일단을 놓고서 얘기할 수 있는 일이지, 어찌 자연의 위대한 도를 놓고서 말할 수 있겠는가? 도를 말로써 충분히 나타낼 수 있다면 하루종일 말하면 도를 형용해 낼 수가 있을 것이다. 도를 말로써 표현해 낼 수 없는 것이라면 하루 종일 말을 하더라도 물건에 대한 얘기에 그칠 것이다. 도란 물건의 극치이므로 말이나 침묵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말도 아니고 침묵도 아닌 경지에서 그런 도의 극치는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5篇 則陽[12]- 少知曰:「季眞之莫爲, 接子之或使, 二家之議, 孰正於其情, 孰?於其理?」 大公調曰:「鷄鳴狗吠, 是人之所知. 雖有大知, 不能以言讀其所自化, 又不能以意測其所將爲. 斯而析之, 精至於无倫, 大至於不可圍, 或之使, 莫之爲, 未免於物, 而終以爲過. 或使則實, 莫爲則虛. 有名有實, 是物之居, 无名无實, 在物之虛. 可言可意, 言而愈疏. 未生不可忌, 已死不可?. 死生非遠也, 理不可覩. 或之使, 莫之爲, 疑之所假. 吾觀之本, 其往无窮. 吾求之末, 其來无止. 无窮无止, 言之无也, 與物同理. 或使莫爲, 言之本也, 與物終始. 道不可有, 有不可无. 道之爲名, 所假而行. 或使莫爲, 在物一曲, 夫胡爲於大方? 言而足, 則終日言而盡道. 言而不足, 則終日言而盡物. 道物之極, 言?不足以載. 非言非?, 議有所極.」
271` 믿지 못할 세상일에 사로잡히지 마라 (잡편:26.외물,1) - 장자(잡편) ; 제26편 외물[1]- 외부의 사물들은 절대적인 것이라고 긍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용봉은 충신이면서 하나라 걸왕에게 처형당하였고, 비간은 충간을 하다가 은나라 주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주왕의 서형 기자는 미친척하고 살았고, 주왕의 간신 악래도 죽음을 당하였으며, 걸왕과 주왕도 결국은 멸망했다. 임금들이란 모두가 그의 신하들이 충성스럽기를 바라지만, 충신이라 하여 반드시 신임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나라 오자서는 충신이면서도 사형을 당하여 시체가 강물에 던져졌고, 주나라 장홍은 죄 없이 촉 땅에서 죽어야 했다. 그를 장사 지낸 지 3년 만에 그의 피는 변하여 푸른 구슬이 되었다 한다. 부모 된 사람이면 누구나 그의 자식이 효성스럽기를 바란다. 그러나 효자라고 반드시 사랑 받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은나라의 효기는 계모로 인하여 근심 속에 살아야 했고, 증삼은 아버지의 미움을 사서 슬픔 속에 지내야 했다. 나무와 나무를 마찰시키면 불이 붙고, 쇠가 불 속에 오래 있으면 녹게 된다. 음과 양의 기운이 엇섞이어 행해지면 하늘과 땅이 크게 놀라 움직인다. 그래서 천둥과 번개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빗줄기 속에서도 큰 느티나무가 벼락에 맞아 불타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 람에게는 커다란 우환이 있는데 이해(利害)라는 것으로, 두 가지 중 어느 곳에 치우쳐도 그 피해로부터 도망칠 길이 없다. 언제나 두려워함으로써 아무 일도 이룩하지 못하게 되며, 그의 마음은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또 고민이 마음에 엉기어 근심에 잠기게 되며, 이해에 관한 생각이 서로 마찰을 일으켜 지나친 불같은 욕망을 낳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의 화기(和氣)를 불태우게 된다. 마음을 달처럼 비워 맑아도 본래 사람은 불같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모든 것이 무너져 올바른 도리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6篇 外物[1]- 外物不可必, 故龍逢誅, 比干戮, 箕子狂, 惡來死, 桀紂亡. 人主莫不欲其臣之忠, 而忠未必信, 故伍員流于江, ?弘死于蜀, 藏其血三年而化爲碧. 人親莫不欲其子之孝, 而孝未必愛, 故孝己憂而曾參悲. 木與木相摩則然, 金與火相守則流. 陰陽錯行, 則天地大?, 於是乎有雷有霆, 水中有火, 乃焚大槐, 有甚憂兩陷而无所逃, ??不得成, 心若懸於天地之間, 慰?沈屯, 利害相摩, 生火甚多, 衆人焚和, 月固不勝火, 於是乎有?然而道盡.
272` 모든 일은 때와 경우에 알맞아야 한다 (잡편:26.외물,2) - 장자(잡편) ; 제26편 외물[2]- 장자가 집이 가난하여 감하후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 감하후가 말했다. “빌려드리지요. 내가 영지의 세금을 거두어들인 다음 선생에게 삼백금을 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장자는 화가나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다. “내가 어제 이곳에 오는데 도중에 나를 부르는 자가 있었습니다. 돌아다보니 수레바퀴자국 가운데에 있는 붕어였습니다. 「붕어야,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붕어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동해의 물결을 타는 용왕의 신하입니다. 선생께 한 말이나 몇 됫박의 물이 있으면 저를 살려주십시오.」 내가 말했습니다. 「그런가, 내가 남쪽의 오나라와 초나라의 임금을 설득시켜 서강의 물을 끌어다가 너를 맞이하도록 하겠다. 어떠냐?」 붕어는 성이 나서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늘 필요로 하는 물을 잃고 있어서 당장 몸 둘 곳이 없습니다. 저는 한 말이나 몇 됫박의 물만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대로하다가는 차라리 저를 건어물 가게에 가서 찾는 것만 못하게 될 것입니다.」” - 莊子(雜篇) ; 第26篇 外物[2]- 莊周家貧, 故往貸粟於監河侯. 監河侯曰:「諾. 我將得邑金, 將貸子三百金, 可乎?」 莊 周忿然作色曰:「周昨來, 有中道而呼者. 周顧視車轍中, 有?魚焉. 周問之曰:‘?魚來! 子何爲者邪?’ 對曰:「我, 東海之波臣也. 君豈有斗升之水而活我哉?’ 周曰:‘諾. 我且南遊吳越之土, 激西江之水而迎子, 可乎?’ ?魚忿然作色曰:‘吾失我常與, 我无所處. 吾得斗升之水然活耳, 君乃言此, 曾不如早索我於枯魚之肆!’」
273` 뜻이 크지 못하면 큰일을 하지 못한다 (잡편:26.외물,3) 현실도피( 318, 319, 320 ) 과 반대, 도전` 대인` 포부` 꿈` 그릇` 뜻` 큰 것` 큼` - 장자(잡편) ; 제26편 외물[3]- 임공자가 큰 낚시와 굵고 검은 줄을 준비한 다음 오십 마리의 황소를 미끼로 하여 회계산에 걸터앉아 낚싯대를 동해에 던졌다. 매일 낚시질을 계속하였으나 일년이 넘도록 고기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은 큰 고기가 낚시를 물더니 큰 낚싯대를 끌고 물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가 뛰어오르면서 등지느러미를 떨치니, 산더미 같은 흰 물결이 솟아오르면서 바닷물이 진동했다. 그 소리는 귀신들의 울음소리와 같아서 천리나 떨어진 곳의 사람들까지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임공자는 이 물고기를 잡아서 썰어 건포로 만들었다. 절강 동쪽으로부터 창오 북쪽에 이르는 사람들은 모두 그 고기를 실컷 먹었다. 그런 뒤에 세상에서 재주를 겨루며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무리들이 모두 놀라며 이 얘기를 전했다. 작은 낚싯대와 가는 줄로 도랑에 가서 송사리나 붕어를 노리는 낚시를 하면서 큰 고기를 잡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처럼 쓸데없는 작은 이론들을 꾸며내 가지고서는 높은 명성을 추구해 보았자, 크게 출세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그러므로 임공자의 얘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세상에서 제대로 행세 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 莊子(雜篇) ; 第26篇 外物[3]- 任公子爲大鉤巨緇, 五十緇以爲餌, ?乎會稽, 投竿東海, 旦旦而釣, 期年不得魚. 已而大魚食之, 牽巨鉤, ?沒而下, ?揚而奮?, 白波若山, 海水震蕩, 聲?鬼神, 憚赫千里. 任公子得若魚, 離而?之, 自制河以東, 蒼梧已北, 莫不厭若魚者. 已而後世?才諷說之徒, 皆驚而相告也. 夫揭竿累, 趨灌瀆, 守??, 其於得大魚難矣. 飾小說以干縣令, 其於大達亦遠矣. 是以未嘗聞任氏之風俗, 其不可與經於世亦遠矣.
274` 지식을 이용해 교묘하게 더 나쁜 짓을 한다 (잡편:26.외물,4) - 장자(잡편) ; 제26편 외물[4]- 유학자가 시경과 예기를 근거로 하여 남의 무덤을 도굴했다. 함께 간 큰선비가 무덤 위에서 아래쪽에 대고 말했다. “동녘이 밝아오는데 일이 어찌 되어가고 있는가?” 작은 선비가 무덤 속에서 말했다. “시의를 아직 다 벗기지 못했습니다.” 큰선비가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푸른 보리가 무덤 가에 자라고 있네. 살아서 은혜를 베풀지도 못하고서 죽어서 어찌 구슬을 물겠는가?」라고 했네 그 놈의 머리를 잡고 그의 턱수염을 누른 다음, 쇠망치로 그의 턱을 쳐서 천천히 그의 볼까지 벌린 다음, 입 속의 구슬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잘 꺼내시게.” - 莊子(雜篇) ; 第26篇 外物[4]- 儒以詩禮發?, 大儒?傳曰:「東方作矣! 事之何若?」 小儒曰:「未解裙?, 口中有珠.」 「詩固有之曰:‘靑靑之麥, 生於陵陵, 生不佈施, 死何含珠爲?’ 接其?, 壓其?, 而以金椎控其?, 徐別其頰, 无傷口中珠.」
275` 오만한 행동은 후세에까지 환란의 원인이 된다 (잡편:26.외물,5) - 장자(잡편) ; 제26편 외물[5]- 노래자의 제자가 땔나무를 하러 나갔다가 도중에 공자를 만나고 돌아와 말했다. “저기에 한 사람이 있는데, 상체는 길고 하체는 짧으며 등은 꼽추에다 귀는 머리 뒤편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빛은 세상을 두루 보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노래자가 말했다. “그가 공자다. 불러오너라.” 공자가 오자 노래자가 말했다. “공구여! 그대 몸의 오만함과 그대 얼굴의 지혜로운 듯한 모양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군자가 될 것이다.” 공자가 읍을 하고 물러서서 송구스러운 듯 용모를 바로잡고 말했다. “그러면 저의 학업도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노래자가 말했다. “그대는 일세의 혼란을 참지 못하고 만세의 환란을 가볍게 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본시 그대의 재능이 형편없는 것인가? 지략이 없어서 진실에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 당신은 신이 나서 그렇게 하고 있겠지만, 평생의 치욕이 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행동은 영향을 받기 쉬운 것이다. 서로의 명성의 위해 끌어당기며, 서로의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맺어지는 것이다. 요임금을 칭송하고 걸왕을 비난하느니보다 차라리 칭송과 비난을 멈추고, 성인과 폭군의 존재를 다 잊어야만 할 것이다. 본성을 어기면 손상을 받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다. 성인이란 조심하면서 일을 함으로서 언제나 성공을 하는 것이다. 어쩔 것인가? 당신의 행위를 끝내 교만하게만 할 것인가?” - 莊子(雜篇) ; 第26篇 外物[5]- 老萊子之弟子出取薪, 遇仲尼, 反以告, 曰:「有人於彼, 修上而趨下, 말루이後耳, 視若營四海, 不知其誰氏之子?」 老萊子曰:「是丘也. 召而來.」 仲尼至. 曰:「丘! 去汝躬矜與汝容知, 斯爲君子矣.」 仲尼揖而退, 蹙然改容而問曰:「業可得進乎?」 老萊子曰:「夫不忍一世之傷而驚萬世之患, 抑固?邪, 亡其略弗及邪? 惠以歡爲?, 終身之醜, 中民之行進焉耳, 相引以名, 相結以隱. 與其譽堯而非桀, 不如兩忘而閉其所非譽. 反无非傷也, 動无非邪也. 聖人躊躇, 以興事, 以每成功. 奈何哉其載焉終矜爾!」
276` 그물을 두려워 않고 물새만 두려워 한다 (잡편:26.외물,6) 사람의 능력과 지혜는 믿을 것이 못 된다 - 장자(잡편) ; 제26편 외물[6]- 송나라 원군이 밤에 꿈을 꾸었는데 머리를 풀어헤친 사람이 곁문으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저는 재로의 연못에서 온 사람입니다. 청강 신의 사자로서 황하의 신에게 가다가 고기잡이 여저에게 잡혔습니다.” 원군은 깨어나서 사람을 시켜 꿈을 점치게 했다. “그는 신령스런 거북입니다.” 원군이 말했다. “고기잡이 중에 여저라는 사람이 있는가?” 신하들이 말했다. “있습니다.” 원군이 말했다. “여저를 데리고 와라“ 다음날 여저가 오자 원군이 말했다. “고기잡이를 하다가 무엇을 잡았는가?” 여저가 대답했다. “저의 그물에 흰 거북이 걸렸습니다. 거북의 직경이 다섯 자나 됩니다.” 원군이 명령했다. “그대의 거북이를 나에게 가지고 오라.” 거북이 도착하자 원군은 거북을 죽일까 살릴까 마음의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다시 점을 치게 하니 거북을 죽여서 그 등껍질로 점을 치면 길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거북을 잡아 일흔두번이나 구멍을 뚫으며 점을 치니 들어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 이에 대하여 공자가 말했다. “신령스런 거북의 능력은 원군의 꿈에 나타날 줄은 알면서도 여저의 그물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의 지혜는 일흔두번이나 구멍을 뚫어 점을 쳐도 틀리는 일이 없을 정도이면서도 그의 내장이 도려내지는 환란을 피하지는 못했다. 이러니 지혜도 곤경에 놓이는 경우가 있고, 신령스러움으로도 미치지 못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비록 지극한 지혜가 있다해도 사람들은 그를 해칠 수 있다. 물고기는 고기 그물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물새들은 두려워한다. 작은 지혜를 버려야만 큰 지혜가 밝아지고, 훌륭하다는 의식을 버려야만 스스로 훌륭해지는 것이다. 태어나 스승이 없이도 말할 수 있게 되는데, 말할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 때문인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6篇 外物[6]- 宋元君夜半而夢人被髮窺阿門, 曰:「予自宰路之淵, 予爲淸江使河伯之所, 漁者余且得予.」 元君覺, 使人占之, 曰:「此神龜也.」 君曰:「漁者有余且乎?」 左右曰:「有.」 君曰:「令余且會朝.」 明日, 如此朝. 君曰:「漁何得?」 對曰:「且之網得白龜焉, 其圓五尺.」 君曰:「獻若之龜.」 龜至, 君再欲殺之, 再欲活之, 心疑, 卜之, 曰:「殺龜以卜, 吉.」 乃?龜以卜, 七十二鑽而无遺?. 仲尼曰:「神龜能見夢於元君, 而不能避余且之網. 知能七十二鑽而无遺?, 不能避? 腸之患. 如是, 則知有所困, 神有所不及也. 雖有至知, 萬人謀之. 魚不畏網而畏??. 去小知而大知明, 去善而自善矣. ?兒生无石師而能言, 與能言者處也.」
277` 쓸모 없는 것이 있어 쓸모 있는 것이 있다 (잡편:26.외물,7) - 장자(잡편) ; 제26편 외물[7]-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선생의 말씀은 쓸모가 없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쓸데가 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 곳을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땅이란 넓고도 크기가 한이 없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걸을 때 쓰이는 것은 발로 밟는 부분뿐입니다. 그렇다고 발 크기에 맞추어 발자국만큼의 땅만 남겨놓고 나머지 부분은 황천에 이르도록 깎아낸다면 그래도 그 땅이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겠습니까?” 혜자가 대답했다. “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쓸데없는 것의 쓰임도 잘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 莊子(雜篇) ; 第26篇 外物[7]- 惠子謂莊子曰:「子言无用.」 莊子曰:「知无用而始可與言用矣. 天地非不廣且大也, 人之所用容足耳. 然則厠足而?之致黃泉, 人尙有用乎?」 惠子曰:「无用.」 莊子曰:「然則无用之爲用也亦明矣.」
278` 얽매이지 말고 어울리되 본성을 잃지 마라 (잡편:26.외물,8) 물들지 마라 - 장자(잡편) ; 제26편 외물[8]- 장자가 말했다. “사람 중에는 자연을 따라 노닐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자연을 따라 노닐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 중에는 자연을 따라 노닐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자연을 따라 노닐 수 있겠는가? 물건을 쫓아 움직이는 마음을 가졌거나, 세상을 떠나 홀로 특이한 행동을 하는 것은 지극한 지혜와 두터운 덕을 쌓은 이의 행동이 아닐 것이다.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넘어지고 떨어지고 하여도, 본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욕망을 따라 달리면서도 돌아보지도 않는 자인 것이다. 비록 서로 임금이 되고 신하가 되어 있다 하여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세상이 바뀌게 되면 상대방을 천하게 여길 수 없도록 처지도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지극한 사람은 행적에 얽매이지 않는다」하는 것이다. 옛날을 존중하고 현대를 낮게 보는 것은 학자들의 오랜 잘못이다. 그러나 희위씨의 입장에서 지금 세상을 본다면, 그 누가 편벽 되지 않은 자가 있겠는가? 오직 지극한 사람만이 세상에 노닐면서도 편벽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순응하면서도 자기의 본성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지극한 사람은 세상의 가르침에 따르기는 하지만 억지로 그것을 배우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뜻을 따르기는 하지만 자기 본성을 잃고 그렇게 되지는 않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6篇 外物[8]- 莊子曰:「人有能遊, 且得不遊乎? 人而不能遊, 且得遊乎? 夫流遁之志, 決絶之行, 噫, 其非至知厚德之任與! 覆墜而不反, 火馳而不顧, 雖相與爲君臣, 時也, 易世而无以相賤. 故曰至人不留行焉. 「夫尊古而卑今, 學者之流也. 且以?韋氏之流觀今之世, 夫孰能不波? 唯至人乃能遊於世而不僻, 順人而不失己. 彼敎不學, 承意不彼.」
279` 막히는 일 없이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 (잡편:26.외물,9) - 장자(잡편) ; 제26편 외물[9]- 눈이 잘 보이는 것을 밝다고 하고, 귀가 잘 들리는 것을 귀밝다고 하고, 코가 예민한 것을 냄새를 잘 맡는다고 하고, 입이 예민한 것을 맛을 잘 안다고 하고, 마음이 잘 통하는 것을 지혜롭다고 하고, 지혜가 잘 통하는 것을 덕이라고 한다. 도라는 것도 막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막히면 숨이 막히게 되고, 숨이 막힌 것이 멈추지 않으면 사리에 어긋나게 되고, 사리에 어긋나면 여러 가지 폐해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물건 중에서도 지혜가 있는 것은 호흡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성대해지지 않는 것은 하늘의 죄가 아니다. 하늘은 늘 뚫리게 하여 낮이고 밤이고 변함이 없다. 사람들 자신이 자기의 구멍을 스스로 일부러 막고 있는 것이다. 뱃속의 태 안에도 넓은 공간이 있고, 마음에도 자연스럽게 노닐 공간이 있는 것이다. 집안에 빈 공간이 없으면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 반목을 한다. 마음에 자연스럽게 노닐 공간이 없으면 여러 가지 정욕이 서로 다투게 된다. 큰 숲 속이나 산 속 같은 곳이 사람들에게 좋게 생각되는 것은, 사람의 정신이 정욕을 견디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 莊子(雜篇) ; 第26篇 外物[9]- 目徹爲明, 耳徹爲聰, 鼻徹爲顫, 口徹爲甘, 心徹爲知, 知徹爲德. 凡道不欲壅, 壅則?, ?而不止則?, ?則衆害生. 物之有知者恃息, 其不殷, 非天之罪. 天之穿之, 日夜无降, 人則顧塞其竇. 胞有重?, 心有天遊. 室无空虛, 則婦姑勃谿, 心无天遊, 則六鑿相攘. 大林丘山之善於人也, 亦神者不勝.
280` 일의 성과는 조건이 알맞을 때 나타난다 (잡편:26.외물,10) - 장자(잡편) ; 제26편 외물[10]- 덕은 명성을 추구하는 데서 잃게 되고, 명성은 자기를 드러내는 데서 망치게 된다. 책모는 다급한 데서 생각하게 되고, 지혜는 다툼에서 나오는 것이다. 삶의 보호는 자신의 관능을 지키는 데서 이루어지고, 일의 성과는 모든 조건이 알맞을 때 나타난다. 봄에 비가 오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풀과 나무들이 무성해지며, 밭 갈고 김 매는 일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풀과 나무는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나는데,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6篇 外物[10]- 德溢乎名, 名溢乎暴, 謀稽乎?, 知出乎爭, 柴生乎守, 官事果乎衆宜. 春雨日時, 草木怒生, ??於是乎始修, 草木之到植者過半而不知其然.
281` 외형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잡편:26.외물,11) 외모` 형식` - 장자(잡편) ; 제26편 외물[11]- 고요함은 병을 고칠 수 있으며, 눈썹과 머리를 깨끗이 손질을 하면 늙음을 방지할 수가 있고, 편안함은 조급한 마음을 없앨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방법은 심신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지, 편안히 자득하는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어서 그런 사람들은 그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성인이 천하를 바로 고치는 방법에 대해서 신인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현인이 세상을 바로 고치는 방법에 대해서 성인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군자가 나라를 바로 고치는 방법에 대해서 현인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소인들에 시세에 영합하는 방법에 대해서 군자는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송나라 성문밖에 부모를 여읜 사람이 있었는데, 곡하고 슬퍼함으로 상을 치렀다 하여 그에게 관사라는 벼슬이 내려졌다. 그러자 그 마을 사람들 중에 친상을 치르다 몸을 상하게 하여 죽는 자가 태반이나 되었다. 요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물려주려 하자 허유는 도망을 쳤다. 탕임금이 무광에게 천하를 물려주려 하자 무광은 노했다. 기타는 그 얘기를 듣고 자기에게 주어질 차례라 단정을 하고, 제자들을 거느리고 관수가로 가서 숨어살았다. 제후들은 기타가 물에 투신할까 걱정되어 삼 년 동안이나 그를 위문했다. 신도적은 그것을 보고 자기도 높은 명망을 얻으려고 황하에 몸을 던져 죽었다. 통발은 고기를 잡는 도구이지만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게 된다. 올가미란 토끼를 잡는 기구이지만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를 잊게 된다. 말이란 것은 뜻을 표현하는 도구이지만, 뜻을 표현하고 나면 말을 잊게 된다. 우리는 어찌하면 말을 잊은 사람들과 더불어 얘기를 할 수 있게 될까? - 莊子(雜篇) ; 第26篇 外物[11]- 靜然可以補病, ?[女+ ]可以休老, 寧可以止遽. 雖然, 若是, 勞者之務也, 佚者之所未嘗過而問焉. 聖人之所以?天下, 神人未嘗過而問焉. 賢人所以해世, 聖人未嘗過而問焉. 君子所以?國, 賢人未嘗過而問焉. 小人所以合時, 君子未嘗過而問焉. 演門有親死者, 以善毁爵爲官師, 其黨人毁而死者半. 堯與許由天下, 許由逃之. 湯與務光, 務光怒之紀他聞之, 帥弟子而?於?水, 諸侯弔之, 三年, 申徒狄因以?河.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而與之言哉!
282` 친아버지는 아들의 중매를 설 수가 없다 (잡편:27.우언,1) - 장자(잡편) ; 제27편 우언[1]- 내 글에는 우언이 십분의 구 정도이고, 그 속에 세상에서 중시되는 인물을 빌린 중언이 십분의 칠 정도이다. 그리고 일에 따라 매일같이 한 치언은 자연의 경계와 잘 조화되는 것들이다. 십 분의 구나 되는 우언은 밖의 사물을 인용해 도를 논한 것들이다. 친아버지는 아들의 중매를 설 수가 없다. 친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칭찬하는 것은 그 효과가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들의 잘못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입장에 대하여는 순응하지만, 자기와 같은 입장이 아니면 반대를 한다. 자기와 같은 생각은 그것을 옳다고 인정하고, 자기와 다른 생각은 그것이 다르다고 부정을 한다. 그 중에서 십분의 칠을 차지한다는 중언은 사람들의 논쟁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늙은 고로(故老)의 말을 인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이가 앞서면서도 일에 대한 경위와 이치를 모른다면, 누가 그를 고로라고 부른다 해도 진실한 선배로서의 고로는 못되는 것이다. 선배이면서도 남에 앞 설 덕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면, 사람으로서의 도가 없는 것이다. 선배이면서도 사람으로서의 도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런 사람을 진부한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에 따라 매일 같이 한 말들이 자연의 분계와 잘 조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을 따라 무궁함으로써 영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비를 말하지 않으면 사물들과 조화되게 된다. 조화와 시비를 말하는 것은 조화되지 않으며, 시비를 말하는 것과 조화도 조화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비를 말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말을 하되 시비를 말하지 않으면 평생토록 말을 해도 말을 한 일이 없는 것이 된다. 평생토록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을 안 한 일이 없는 것이 된다. 모든 일은 까닭이 있으면 가하게 되고, 까닭이 있으면 가하지 않게도 된다. 까닭이 있으면 그렇게도 되고, 까닭이 있으면 그렇지 않게도 된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어찌하여 그렇지 않게 되는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렇지 않게 된 것이다. 어찌하여 가하게 되는가? 가하기 때문에 가하게 된 것이다. 어찌하여 가하지 않게 되는가? 가하지 않기 때문에 가하지 않게 된 것이다. 물건은 본시부터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고, 물건은 본시부터 가하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은 물건이란 없고, 가하지 않게 된 물건도 없는 것이다. 일 에 따라 매일 같이 한 말들이 자연의 분계와 조화되지 않는다면 누가 오래 갈 수 있겠는가? 만물은 모두 종류가 다르며 각기 다른 형체로써 무궁히 변화하는 것이다. 처음과 끝을 둥근 고리의 처음과 끝처럼 구분할 수 없고, 그 이치는 터득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을 자연의 조화라는 뜻에서 천균(天均)이라 부르는 것이다. 천균이란 자연의 분계에 합치되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7篇 遇言[1]- 寓言十九, 重言十七, ?言日出, 和以天倪. 寓言十九, 藉外論之. 親父不爲其子媒. 親父譽之, 不若非其父者也. 非吾罪也, 人之罪也. 與己同則應, 不與己同則反. 同於己爲是之, 異於己爲非之. 重言十七, 所以已言也, 是爲耆艾, 年先矣, 而无經緯本末以期年耆者, 是非先也. 人而无以先人, 无人道也. 人而无人道, 是之謂陳人. ?言日出, 和以天倪, 因以曼衍, 所以窮年. 不言則齊, 齊與言不齊, 言與齊不齊也, 故曰言无言. 言无言, 終身言, 未嘗言. 終身不言, 未嘗不言. 有自也而可, 有自也而不可. 有自也而然, 有自也而不然. 惡乎然? 然於然. 惡乎不然, 不然於不然. 惡乎可? 可於可. 惡乎不可? 不可於不可. 物固有所然, 物固有所可, 无物不然, 无物不可. 非?言日出, 和以天倪, 孰得其久! 萬物皆種也, 以不同形相禪, 始卒若環, 莫得其倫, 是謂天均. 天均者天倪也.
283` 시비의 경지를 초월해야 한다 (잡편:27.우언,2) 중용` 과격` 온건` - 장자(잡편) ; 제27편 우언[2]- 장자가 혜자에게 말했다. “공자는 나이 예순 살에 이르도록 예순 번이나 사고 방식이 변했습니다. 처음에 옳다고 하던 것을 끝에 가서는 부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옳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지난 오십구년 동안 부정하던 것이 대부분입니다.” 혜자가 말했다. “공자는 그의 뜻을 성실히 하고 지혜로써 일했기 때문이겠지요.” 장자가 말했다. “공자는 뜻이나 지혜를 버렸습니다. 그는 시비를 논한 적이 없었습니다. 공자는 위대한 근본으로부터 재질을 타고서 영기를 품고 살아가면 우는 소리도 법도에 들어맞고, 말을 해도 법칙에 맞는다고 했습니다. 이익과 의로움을 자기 앞에 늘어놓고서 좋아하고 싫어하고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은 오직 사람의 입을 수고하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공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으로부터 복종하여 감히 거슬러 대립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고는 천하의 안정 속에 안정되게 살았습니다. 나는 아직 공자에게 미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 莊子(雜篇) ; 第27篇 遇言[2]- 莊子謂惠子曰:「孔子行年六十而六十化, 始時所是, 卒而非之, 未知今之所謂是之非五十九非也.」 惠子曰:「孔子勤志服知也.」 莊子曰:「孔子謝之矣, 而其未之嘗言. 孔子云:‘夫受才乎大本, 復靈以生, 鳴而當律, 言而當法, 利義陳乎前, 而好惡是非直服人之口而已矣. 使人乃以心服, 而不敢?立, 定天下之定.’ 已乎已乎! 吾且不得及彼乎!」
284` 일이나 물건에 마음이 끌리면 안 된다 (잡편:27.우언,3) - 장자(잡편) ; 제27편 우언[3]- 증자는 두 번 벼슬살이를 하였는데, 두 번 모두 마음이 변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부모님에 생존해 계실 적에는 벼슬하여 삼부의 녹을 받았으나 마음이 즐거웠다. 뒤에는 벼슬하여 삼천종의 녹을 받았으나 부모님을 모실 수가 없어서 내 마음이 슬펐다.” 공자의 제자가 그 말을 듣고, 공자에게 물었다. “증삼은 그의 녹에 의하여 마음이 끌리지 않는 사람이라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이미 마음이 끌리고 있지 않느냐? 마음이 끌리는 데가 없는 사람이라면 슬픔이 있을 수가 있겠느냐? 그는 삼부나 삼천종의 녹을 보기를 마치 참새나 모기가 그의 앞을 날아 지나가는 것을 보듯 할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7篇 遇言[3]- 曾子再任而心再化, 曰:「吾及親仕, 三釜而心樂. 後仕, 三千鍾而不?親, 吾心悲.」 弟子問於仲尼曰:「若參者, 可謂无所縣其罪乎?」 曰:「旣已縣矣. 夫无所縣者, 可以有哀乎? 彼視三釜三千鍾, 如觀鳥雀蚊?相過乎前也.」
285` 근원을 알 수 없는 삶과 죽음에 집착하지 마라 (잡편:27.우언,4) - 장자(잡편) ; 제27편 우언[4]- 안성자유가 스승인 동곽자기에게 말했다. “제가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뒤로 일 년만에는 헛된 마음을 버리어 소박해졌고, 이 년 만에는 밖의 사물에 순종하게 되었고, 삼 년만에는 모든 사물들에 통달하게 되었고, 사 년만에는 저 자신과 물건이 합치되게 되었고, 오 년만에는 모든 물건이 저를 따르게 되었고, 육 년만에는 신명으로 모든 사물에 대하여 깨우치게 되었고, 칠 년만에는 천지자연과 합치되게 되었고, 팔 년만에는 죽음도 모르고 삶도 모르게 되었으며, 구 년만에는 위대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살아서는 행동을 하지만 죽으면 모두가 그만이다. 사람의 죽음은 모두가 그 까닭이 있지만, 삶은 양의 기운이 움직여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근원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떻게 가는 곳이 없을 수가 있는가? 하늘에는 천체운행의 법도가 있고, 땅에는 평평하고 험한 상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에서 생사의 문제를 추궁할 것인가? 생명이 끝나는 곳을 알 수가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천명이 없다고 하겠는가? 생명이 시작되는 곳을 알 수가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천명이 있다고 하겠는가? 물건과 정신이 서로 호응하는 것이 있다면 어찌하여 귀신이 없다고 하겠는가? 서로 호응하는 것이 없다면 어찌하여 귀신이 있다고 하겠는가? - 莊子(雜篇) ; 第27篇 遇言[4]- 顔成子游謂東郭子?, 曰:「自吾聞子之言, 一年而野, 二年而從, 三年而通, 四年而物, 五年而來, 六年而鬼入, 七年而天成, 八年而不知死, 不知生, 九年而大妙.」 生有爲, 死也. 勸公, 以其死也, 有自也. 而生陽也, 无自也. 而果然乎? 惡乎其所適? 惡乎其所不適? 川有曆數, 地有人據, 吾惡乎求之? 莫知其所終, 若之何其无命也? 莫知其所始, 若之何其有命也? 有以相應也, 若之何其无鬼邪? 无以相應也, 若之何其有鬼邪?
286` 사람은 의지하는 대상이 없어야 한다 (잡편:27.우언,5) - 장자(잡편) ; 제27편 우언[5]- 여러 망양(罔兩)들이 그림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조금 전에는 몸을 굽히고 있었는데 지금은 젖히고 있고, 조금 전에는 머리를 묶고 있었는데 지금은 흩뜨리고 있으며, 조금 전에는 앉아 있었는데 지금은 일어나 있고, 조금 전에는 걷고 있었는데 지금은 멈춰 서 있습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림자가 말했다. “어째서 그런 쓸데없는 것을 묻는 것입니까? 나는 존재하고 있지만 그 까닭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매미 껍질이나 뱀의 껍질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과 비슷하면서도 형체가 없으니, 다른 것입니다. 불과 햇볕 앞에서는 나는 이루어지지만, 그늘이나 밤에는 사라집니다. 불과 해는 내가 의지하는 대상입니다. 그러니 하물며 의지하는 대상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들이 오면 나도 따라서 오고, 그것들이 가버리면 나도 따라서 가버립니다. 그것들이 움직이면 나도 따라서 움직입니다. 움직이는 것에 대하여 어찌해서 나에게 묻는 것입니까?” - 莊子(雜篇) ; 第27篇 遇言[5]- 罔兩問於景曰:「若向也俯而今也仰, 向也括撮而今也被髮, 向也坐而今也起, 向也行而今也止, 何也?」 景曰:「搜搜也, 奚稍問也! 予有而不知其所以. 予, ?甲也, 蛇?也, 似之而非也. 火與日, 吾屯也. 陰與夜, 吾代也. 彼吾所以有待邪? 而況乎以无有待者乎! 彼來則我與之來, 彼往則我與之往, 彼强陽則我與之强陽. 强陽者又何以有問乎!」
287` 뽐내는 마음을 버려야 올바른 도를 배울 수 있다 (잡편:27.우언,6) 명예` 자만심` 내세움` - 장자(잡편) ; 제27편 우언[6]- 양자거가 남쪽 패땅으로 여행을 갔을 때, 노자도 서쪽으로 진나라 일대를 유람하고 있었다. 양자거는 패땅의 교외로 영접을 나가서, 양땅에 이르러 노자를 만났다. 노자는 오는 도중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했다. “처음에 나는 그대를 가르칠만하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보니 안되겠다.” 양자거는 대답도 하지 않고 숙사로 돌아와 세숫대야와 양치질 물과 수건과 빗을 노자에게 올린 다음, 문 밖에 신을 벗어놓고 무릎으로 걸어나가서 말했다. “조금 전에 저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여쭙고자 하였으나 선생님께서는 길가시기에 틈이 없으신 듯하여 감히 여쭙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한가하신 듯하니 그 까닭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대는 눈을 치켜 부릅뜨고 있으니 누가 그대와 더불어 지내겠는가? 크게 결백한 사람은 더러운 것 같이 행동하고, 덕이 성대한 사람은 덕이 부족한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양자거는 송구스러운 듯이 얼굴빛을 바꾸면서 말했다. “가르침을 삼가 받들겠습니다.” 전에는 같은 여관에서 묵는 사람들이 그를 마중하고 전송하였고, 여관 주인은 방석을 날라왔고, 주인의 처는 수건과 빗을 갖다 주었으며, 여관에 묵는 사람들은 그를 보면 자리를 피했고, 불을 때던 사람들도 그를 보면 아궁이 앞을 피해갔다. 그러나 그가 다시 돌아가자 여관에 묵는 사람들이 그와 자리를 다투면서 어울리게 되었다. - 莊子(雜篇) ; 第27篇 遇言[6]- 陽子居南之沛, 老聃西遊於秦, 邀於郊, 至於梁而遇老子. 老子中道仰天而歎曰:「始以汝爲可敎, 今不可也.」 陽子居不答. 至舍, 進?漱巾櫛, 脫?戶外, 膝行而前曰:「向者弟子欲請夫子夫子行不閒, 是以不敢. 今閒矣, 請問其過.」 老子曰:「而????, 而誰與居? 大白若辱, 盛德若不足.」 陽子居蹴然變容曰:「敬聞命矣!」 其往也, 舍者迎將, 其家公執席, 妻執巾櫛, 舍者避席, 煬者避?. 其反也, 舍者與之爭席矣.
288` 외물에 끌려 자기 삶을 어지럽히지 마라 (잡편:28.양왕,1)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1]- 요가 천하를 허유에게 물려주려 하였으나 허유가 받지 않았다. 다시 자주지부에게 물려 주려하니 자주지부가 말했다. “저를 천자로 삼아주시겠다니 좋기는 합니다만, 저는 마침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어 치료하고 있는 중입니다. 천하를 다스릴 만한 겨를이 없습니다.” 천하가 지극히 귀중한 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자기의 삶을 손상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다른 사물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오직 천하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천하를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순이 천하를 자주지백에게 맡기려하니 자주지백이 말했다. “제가 마침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어서 병을 고치고 있는 중입니다. 천하를 다스릴 만한 겨를이 없습니다.” 본래 천하란 큰그릇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자기의 목숨과 바꾸지는 앉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도를 터득한 사람과 세속적인 사람과의 차이이다. 순이 천하를 선권에게 물려주려 하니 선권이 말했다. “저는 이 우주 안에 서서, 겨울에는 털옷을 입고, 여름에는 칡?베옷을 입으며, 봄이면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몸은 일하기에 족할 만큼 튼튼하며, 가을에는 곡식을 거둬들여 몸을 편히 쉬게 할 수 있습니다. 해가 뜨면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와 쉬면서, 천지사이를 유유히 소요하며 마음은 한가롭게 자득하고 있습니다. 어찌 천하 따위를 일삼겠습니까? 슬프게도 당신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그는 천하를 받지 않고 나라를 떠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가 있는 곳을 알 수가 없었다. 순이 천하를 그의 벗인 석호의 농부에게 물려주려 하니 석호의 농부가 말했다. “부지런도 하시군. 당신도 꽤나 억척스런 사람이야.” 그는 순의 덕이 지극하지 못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리하여 부부가 손을 잡고 자식들을 이끌고 바다 속의 섬으로 들어가 평생 돌아오지 않았다.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1]- 堯以天下讓許由, 許由不受. 又讓於子州支父, 子州支父曰:「以我爲天子, 猶之可也. 雖然, 我適有幽憂之病, 方且治之, 未暇治天下也.」 夫天下至重也, 而不以害其生, 又?他物乎! 唯无以天下爲者, 可以托天下也. 舜讓天下於子州支伯. 子州支伯曰:「予適有幽憂之病, 方且治之, 未暇治天下也.」 故天下大器也, 而不以易生, 此有道者之所以異乎俗者也. 舜以天下讓善卷, 善卷曰:「余立於宇宙之中, 冬日衣皮毛, 夏日衣葛?. 春耕種, 形足以勞動. 秋收斂, 身足以休食. 日出而作, 日入而息, 逍遙於天地之間而心意自得. 吾何以天下爲哉! 悲夫, 子之不知余也!」 遂不受. 於是去而入深山, 莫知其處. 舜以天下讓其友石戶之農, 石戶之農曰:「捲捲乎后之爲人, ?力之士也!」 以舜之德爲未至也, 於是夫負妻戴, ?子以入於海, 終身不反也.
289` 백성을 위하여 백성을 해치지 마라 (잡편:28.양왕,2)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2]- 주나라의 대왕단부가 빈에 살고 있을 때, 적인들이 공격을 해 왔다. 대왕단부는 전쟁을 피하려고, 그들에게 가죽과 비단을 바치며 달랬으나 듣지 않았다. 그들에게 개와 말을 주며 달래어도 듣지 않았다. 그들에게 진주와 구슬을 주며 달래어도 듣지 않았다. 적인들이 바라는 것은 땅이었다. 그래서 대왕단부가 말했다. “남의 형과 함께 살면서 그의 아우를 죽이거나, 남의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그의 자식을 죽이는 일을 나는 차마 못하겠다. 그대들은 모두가 힘써 여기에서 잘 살아라. 내 신하가 되는 것과 적인들의 신하가 되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느냐? 내가 듣건대 백성들을 보양하는데 쓰이는 물건을 위해 보양할 백성들을 해치지 않는 법이라 했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짚고서 그 곳을 떠났다. 백성들은 줄을 지어 그를 따라가서 마침내 기산 아래 이르러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대왕단부 같은 이는 삶을 존중할 줄 안다고 말 할 수 있다. 삶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존귀하고 부하다 하더라도 몸을 보양하는 수단을 위해 자신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비록 가난하고 천하다 하더라도 이익을 위해 육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지금 세상사람들은 높은 벼슬과 존귀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도 모두가 생활 수단을 잃는 것을 중시한다. 그래서 이익을 보기만 하면 가벼이 그 자신을 파멸시키고 있으니 어찌 미혹된 것이 아니겠는가?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2]- 大 王亶父居?, 狄人攻之. 事之以皮帛而不受, 事之以犬馬而不受, 事之以珠玉而不受, 狄人之所求者土地也. 大王亶父曰:「與人之兄居而殺其弟, 與人之父居而殺其子, 吾不忍也. 子皆勉居矣! 爲吾臣與爲狄人臣奚以異! 且吾聞之, 不以所用養害所養.」 因杖?而去之. 民相連而從之, 遂成國於岐山之下. 夫大王亶父, 可謂能尊生矣. 能尊生者, 雖貴富不以養傷身, 雖貧賤不以利累形. 今世之人居高官尊爵者, 皆重失之, 見利輕亡其身, 豈不惑哉!
290` 삶은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잡편:28.양왕,3)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3]- 월나라 사람이 삼대에 걸쳐 그들의 임금을 죽였다. 왕자인 수는 그것이 걱정되어 남산의 단혈로 도망쳤으므로 월나라에는 임금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신하들이 왕자 수를 찾아 나섰으나 찾지 못하다가 간신히 단혈에서 그를 찾아냈다. 그러나 왕자 수는 단혈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월나라 사람들은 쑥을 굴 안에 넣고 불을 피워 연기를 내어 그를 나오게 하여 임금이 타는 수레에 태웠다. 왕자 수는 수레의 줄을 잡고 수레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보며 울부짖었다. “임금님이라니, 어째서 나를 놓아줄 수 없다는 것인가!” 왕자 수는 임금이 되기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임금노릇을 함으로써 생기는 환란이 싫었던 것이다. 완자 수 같은 사람은 나라 때문에 자기 삶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월나라 사람들은 그를 찾아내어 임금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3]- 越人三世弑其君, 王子搜患之, 逃乎丹穴. 而越國無君, 求王子搜不得, 從之丹穴. 王子搜不肯出, 越人薰之以艾. 乘以王輿. 王子搜援綏登車, 仰天而呼曰:「君乎! 君乎! 獨不可以舍我乎!」 王子搜非惡爲君也, 惡爲君之患也. 若王子搜者, 可謂不以國傷生矣, 此固越人之所欲得爲君也.
291` 근심을 만들어 삶을 손상시키지 마라 (잡편:28.양왕,4)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4]-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다투다가 상대방의 영토를 침략했다. 자화자가 소희후를 만나보니 소희후는 근심하는 빛을 띠고 있었다. 자화자가 말했다. “지 금 가령 천하 사람들이 임금님 앞에 계약서를 제출했다고 합시다. 계약서의 문구에는 「왼손으로 이것을 잡는 사람은 오른손이 없어진다. 오른쪽 손으로 이것은 잡는 사람은 왼손이 없어진다. 그러나 이것을 잡는 사람은 반드시 천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고 써 있습니다. 임금님은 그 계약서를 잡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소희후가 말했다. “잡지 않을 것입니다.” 자화자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두 팔을 천하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몸은 또한 두 팔보다도 중합니다. 그리고 한나라는 천하에 비하여 훨씬 더 가볍습니다. 지금 다투시고 있는 땅은 한나라보다도 또 훨씬 가벼운 것입니다. 그런데 임금님께서는 자신이 근심을 안고 삶을 손상시키면서까지 그것을 얻지 못해 걱정하고 계십니다.” 소희후가 말했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나에게 가르침을 준 사람들은 많지만 이런 말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자화자는 일의 가볍고 무거운 평가를 올바로 알았었다고 할 수 있다.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4]- 韓魏相與爭侵地. 子華子見昭僖侯, 昭僖侯有憂色. 子華子曰:「今使天下書銘於君之前, 書之言曰:‘左手攫之則右手廢, 右手攫之則左手廢, 然而攫之者必有天下.’ 君能攫之乎?」 昭僖侯曰:「寡人不攫也.」 子華子曰:「甚善! 自是觀之, 兩臂重於天下也, 身又重於兩臂. 韓之輕於天下亦遠矣, 今之所爭者, 其輕於韓又遠. 君固愁身傷生以憂戚之不得也!」 僖侯曰:「善哉! 敎寡人者衆矣, 未嘗得聞此言也.」 子華子可謂知輕重矣.
292` 귀중한 것으로 하찮은 것을 얻으려 마라 (잡편:28.양왕,5)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5]- 노나라 임금이 안합은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폐물을 들고 가서 모셔오게 했다. 안합은 누추한 집에 살면서, 삼베옷을 입고 소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다가 노나라 임금의 사신이 찾아오자 그를 맞이했다. 사신이 말했다. “여기가 안합의 집입니까?” 안합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사신들이 폐물을 바치자 안합이 말했다. “아마 잘못 듣고 사신을 보내어 죄가 될지도 모르니 다시 한번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신들이 돌아가 확인을 한 다음 다시 와서 그를 찾으니 이미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안합 같은 인물이야말로 정말로 부귀를 싫어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진실한 도로써 자기 몸을 다스리고, 그 나머지로써 나라를 돌보고, 그 찌꺼기로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다」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제왕들의 공로란 성인들의 여분의 일인 것이며, 그런 일은 자신을 완전히 간수하고 삶을 보양하는 방법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세속의 군자들은 대부분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삶을 버리면서까지 사물을 추구하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 모든 성인의 행동이란 반드시 그것을 하는 까닭과 그것을 하는 방법을 반드시 먼저 살피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어느 사람이 수후의 구슬로써 천길 높이의 참새를 쏘았다면 제상 사람들은 반드시 그를 비웃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사용한 것이 귀한 것임에 반하여 그것으로 얻은 것은 가벼운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이 어찌 수후의 구슬의 귀중함에 비교되겠는가?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5]- 魯 君聞顔闔得道之人也, 使人以幣先焉. 顔闔守陋閭, ?布之衣而自飯牛. 魯君之使者至, 顔闔自對之. 使者曰:「此顔闔之家與?」 顔闔對曰:「此闔之家也.」 使者致幣, 顔闔對曰:「恐聽謬而遺使者罪, 不若審之.」 使者還, 反審之, 復來求之, 則不得已. 故若顔闔者, 眞惡富貴也. 故曰, 道之眞以治身, 其緖餘以爲國家, 其土?以治天下. 由此觀之, 帝王之功, 聖人之餘事也, 非所以完身養生也. 今世俗之君子, 多危身棄生以殉物, 豈不悲哉! 凡聖人之動作也, 必察其所以之與其所以爲. 今且有人於此, 以隨侯之珠彈千?之雀, 世必笑之. 是何也? 則其所用者重而所要者輕也. 夫生者, 豈特隨侯珠之重哉!
293` 남의 말에 의한 판단은 옳지 못하다 (잡편:28.양왕,6)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6]- 열자가 궁하여 용모에 굶주린 빛이 역력했다. 한 손님이 그런 사실을 정나라 자양에게 말했다. “열자는 도를 터득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의 나라에 살면서 궁해졌다면 선생님께서 선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정나라 자양은 곧 관리들에게 명하여 열자에게 양식을 보내주도록 했다. 열자는 사자들을 보자 두 번 절하고 사양했다. 사자들이 떠난 뒤 열자가 들어오자, 그의 처가 열자를 보고 가슴을 치며 말했다. “제가 듣건대 도를 터득한 사람의 처자들은 누구나 안락함을 누린다 했습니다. 지금 굶주린 빛이 짙어, 그분이 사람을 시켜 먹을 것을 보내어 왔는데도 당신은 받지 않았습니다. 어찌 천명이 아니겠습니까?” 열자가 웃으면서 그의 처에게 말했다. “그분은 자신이 나를 알아 본 것이 아니오. 남의 말만 듣고서 나에게 양식을 보낸 것이오. 그러니 나에게 죄를 주는 일도 역시 남의 말만 듣고 그렇게 할 것이오. 이것이 내가 받지 않은 까닭이오.” 그 뒤에 백성들이 결국 난리를 일으키어 자양을 죽여버렸다.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6]- 子列子窮, 容貌有飢色. 客有言之於鄭子陽者曰:「列禦寇, 蓋有道之士也, 居君之國而窮, 君无乃爲不好士乎?」 鄭子陽卽令官遺之粟. 子列子見使者, 再拜而辭. 使者去, 子列子入, 其妻望之而?心曰:「妾聞爲有道者之妻子, 皆得佚樂, 今有飢色. 君過而遺先生食, 先生不受, 豈不命邪!」 子列子笑謂之曰:「君非自知我也. 以人之言而遺我粟, 至其罪我也又且以人之言, 此吾所以不受也.」 其卒, 民果作難而殺子陽.
294` 분수에 맞게 편하게 지낼 줄 알아야 한다 (잡편:28.양왕,7) 분수`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7]- 초나라의 소왕이 오나라와의 싸움에 져 나라를 잃고 도망했을 때, 양을 잡는 백정인 열이라는 자도 소왕을 따라 도망쳤다. 뒤에 소왕이 나라로 돌아와 그를 따랐던 사람들에게 상을 줄 때에 열의 차례가 되었다. 이때 열이 말했다. “대왕께서 나라를 잃었을 때, 저 역시 양을 잡는 일을 잃었습니다. 대왕께서 돌아오시어 저 역시 양을 잡는 일로 돌아왔습니다. 저의 벼슬과 녹은 이미 되찾은 셈입니다. 또 무슨 상을 논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임금은 억지로라도 그에게 상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양백정 열이 말했다. “대왕께서 나라를 잃었던 것은 저의 죄가 아니었기에 감히 그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대왕께서 돌아오신 것 역시 저의 공로가 아니기에 감히 그 상을 받지 못하겠습니다.” 임금이 신하들을 시켜 그를 보자고 했다. 그러자 양백정 열이 말했다. “초나라의 법도에 의하면 무거운 상이나 큰공을 세운 자라야 임금을 뵙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저의 지혜는 나라를 보존하기에는 부족하고, 저의 용기는 적 앞에서 죽음을 무릅쓰기에 부족합니다. 그래서 오나라 군대가 우리 영 땅을 침범했을 때, 저는 환난을 피해 도망쳤을 뿐, 대왕 때문에 따라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국법을 어기고 규약을 깨뜨리면서까지 저를 만나려 하시니. 그리되면 저는 천하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소왕이 사마인 자기에게 말했다. “양백정인 열은 미천한 신분에 있으나 사리를 헤아리는 데 있어서는 높은 식견을 갖고 있소. 그대는 나를 위해 그를 데려다가 삼공의 지위에 앉혀주시오.” 양백정 열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삼공의 지위가 양 백정의 지위보다는 존귀하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만종의 녹이 양백정을 함으로써 얻는 이득보다 훨씬 많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찌 벼슬과 녹을 탐하여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함부로 상을 내리신다는 말을 듣게 하겠습니까! 바라건대 저를 양 잡는 백정의 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는 끝내 상을 받지 않았다.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7]- 楚昭王失國, 屠羊說走而從於昭王.昭王反國, 將賞從者, 及屠羊說. 屠羊說曰:「大王失國, 說失屠羊. 大王反國, 說亦反屠羊. 臣之爵祿已復矣, 又何賞之有哉!」 王曰:「見之!」 屠羊說曰:「楚國之法, 必有重賞大功而後得見, 今臣之知不足以存國而勇不足以死寇. 吳軍入?, 說畏難而避寇, 非故隨大王也. 今大王欲廢法毁約而見說, 此非臣之所以聞於天下也.」 王謂司馬子?曰:「屠羊說居處卑賤而陳義甚高, 子其爲我延之以三旌之位.」 屠羊說曰:「失三旌之位, 吾知其貴於屠羊之肆也. 萬鍾之祿, 吾知其富於屠羊之利也. 然豈可以貪爵祿而使吾君有妄施之名乎! 說不敢當, 願復反吾屠羊之肆.」 遂不受也.
295` 자기 분수에 따라 도를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 (잡편:28.양왕,8)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8]- 원헌이 노나라에 살고 있을 때, 그의 집은 사방 한 칸 정도의 작은 집이었는데, 초가지붕에는 풀이 자라 있었고, 싸리문은 부서져 있고, 뽕나무 줄기로 문지도리를 삼았으며, 깨진 항아리를 박아 창을 낸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칡으로 창을 가리고 있었다. 위에서는 비가 새고 아래 바닥은 축축했는데, 원헌은 똑바로 앉아서 금을 뜯으며 노래하고 있었다. 자 공은 큰 말이 끄는 수레를 탔는데, 수레 안쪽은 보랏빛 천으로 장식하고 겉포장은 흰 천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큰 수레가 그의 집 골목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는 걸어가서 원헌을 만났다. 원헌은 가죽나무 껍질 관을 쓰고 뒤축도 없는 신을 신은 채 지팡이를 짚고 문으로 나와 그를 마중했다. 자공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어찌 이렇게 고생을 하시며 사십니까?” 원헌이 대답했다. “내가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은 가난하다고 말하고, 배우고도 행하지 못하는 것을 고생하는 것이라 말한다 했습니다. 지금 나는 가난한 것이지 고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공은 우물쭈물 뒷걸음질치면서 부끄러운 얼굴빛을 띠었다. 원헌이 웃으며 말했다. “세상의 평판을 바라면서 행동하고, 자기와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만을 벗하고, 학문은 남에게 뽐내기 위해서 하고, 가르침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하고, 인의를 내세워 간악한 짓을 하고, 수레와 말을 장식하고 하는 일들은 나로서는 차마 하지 못할 일입니다.”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8]- 原憲居魯, 環堵之室, 茨以生草. 蓬戶不完, 桑以爲樞. 而甕?二室, 褐以爲塞. 上漏下濕, 匡坐而弦歌. 子貢乘大馬, 中紺而表素, 軒車不容巷, 往見原憲. 原憲華冠?履, 杖藜而應門. 子貢曰:「?! 先生何病?」 原憲應之曰:「憲聞之, 无財謂之貧, 學道而不能行謂之病. 今憲, 貧也, 非病也.」 子貢逡巡而有愧色. 原憲笑曰:「夫希世而行, 比周而友, 學以爲人, 敎以爲己, 仁義之慝, 與馬之飾, 憲不忍爲也.」
296` 자기를 기르는 사람은 이익을 잊는다 (잡편:28.양왕,9)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9]- 자공이 위나라에 있을 때 헤진 솜옷은 겉 천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얼굴빛은 부황기가 돌았고, 손과 발에는 못이 박혀 있었다. 사흘 동안 밥을 짓지 못하기 일쑤고, 십 년 동안 옷을 만들어 보지 못했다. 관을 바로 쓰려하면 갓끈이 끊어져 있었고, 옷깃을 여미려하면 팔꿈치가 나와 있었으며, 신을 신으면 뒤축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가 신을 끌면서 시경 상송을 노래하면 소리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서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다. 천자도 그를 신하로 삼을 수가 없었고, 제후들도 그를 벗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뜻을 기르는 사람은 자기 형체를 잊고, 자기 형체를 기르는 사람은 이익을 잊으며, 도를 닦으려는 사람은 마음조차 잊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9]- 曾子居衛, 縕袍无表, 顔色腫?, 手足??. 三日不擧火, 十年不製衣, 正寇而纓絶, 捉衿而?見, 納?而踵決. 曳?而歌商頌, 聲滿天地, 若出金石. 天子不得臣, 諸侯不得友. 故養志者忘形, 養形者忘利, 致道者忘心矣.
297` 만족하는 사람은 이익 때문에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다 (잡편:28.양왕,10) 만족` 과욕` 욕심`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10]- 공자가 안회에게 말했다. “안회야! 집안이 가난하고 신분도 천한데 어찌하여 벼슬을 하려하지 않느냐?” 안회가 대답했다. “벼슬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게는 성곽 밖의 밭 오십 묘가 있으니 죽꺼리를 얻기에는 충분합니다. 성곽 안에는 밭 십 묘가 있으니 무명과 삼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금을 타고 지내면 스스로 즐기기에 충분합니다.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도는 스스로 즐겁게 살기에 충분합니다. 저는 벼슬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공자가 갑자기 얼굴빛을 바꾸며 말했다. “네 뜻이 참으로 훌륭하다. 내가 듣건대 만족할 줄 안는 사람은 이익 때문에 스스로를 해치지 않고, 자득할 줄 아는 사람은 이익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속마음의 수행이 되어 있는 사람은 지위가 없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했다. 나는 그것을 마음에 새겨둔 지 오래 되었으나, 지금 그대에게서 뒤늦게 그것이 실행되고 있음을 본다. 이것이 나의 소득이다.”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10]- 孔子謂顔回曰:「回, 來! 家貧居卑, 胡不仕乎?」 顔回對曰:「不願仕. 回有郭外之田五十畝, 足以給?粥. 郭內之田十畝, 足以爲絲麻. 鼓琴足以自娛, 所學夫子之道者, 足以自樂也. 回不願仕.」 孔子?然象容曰:「善哉, 回之意. 丘聞之, 知足者, 不以利自累也. 心自得者, 失之而不懼. 行修於內者, 無位而不?. 丘誦之久矣, 今於回而後見之. 是丘之得也.」
298`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라 (잡편:28.양왕,11)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11]- 중산의 공자 모가 첨자에게 말했다. “몸은 강과 바닷가에 숨어살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위나라 궁궐 아래에 가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첨자가 말했다. “삶을 소중히 하십시오. 삶을 소중히 하시면 이익이 가볍게 느껴집니다.” 공자 모가 말했다. “그런 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첨자가 말했다.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겠거든 그대로 마음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정신적 고뇌가 없어질 것입니다.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면서도 억지로 마음을 따르지 않는 것을 거듭 자기를 손상시키는 것이라 합니다. 거듭 자기를 손상케 하는 사람 중에는 오래 사는 이가 없습니다.” 위나라의 공자 모는 만 승 군주의 공자이다. 따라서 그가 바위굴 속에 숨는데 있어서는 평민의 선비보다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도를 터득하려는 뜻은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11]- 中山公子牟謂瞻子曰:「身在江海之上, 心居乎魏闕之下, 奈何?」 瞻子曰:「重生. 重生則輕利.」 中山公子牟曰:「雖知之, 未能自勝也.」 瞻子曰:「不能自勝則從之, 神无惡乎? 不能自勝而强不從者, 此之謂重傷. 重傷之人, 无壽類矣.」 魏牟, 萬乘之公子也, 其隱巖穴也, 難爲於布衣之士. 雖未至乎道, 可謂有其意矣!
299` 눈서리가 쳐야 송백의 꿋꿋함을 알 수 있다 (잡편:28.양왕,12) 역경` 고난` 견딤` 지구력` 인내`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12]-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경에 빠졌을 때, 칠일동안이나 밥을 지어먹지 못하였고, 명아주국에 곡식 없이 먹고 지내었다. 그래서 얼굴빛이 매우 지쳐있었으나, 공자는 방에서 금을 타며 노래를 하였고, 안회는 밖에서 나물을 뜯고 있었는데, 자로와 자공이 주거니 받거나 말했다. “우 리 선생님께서는 노나라에서 두 번이나 쫓겨났고, 위나라에서도 추방당하였으며, 송나라에서는 그를 깔아 죽이려고 나무를 베어 넘겼으며, 상나라와 주나라에서도 곤경에 빠졌었는데, 이제는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포위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생님을 죽이려던 사람도 죄를 지은 것이 아니게 되었고, 선생님을 모욕하여도 금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금을 타고 노래하면서 음악을 그친 일이 없다. 군자로서 수치를 모른다 해도 이렇게까지 될 수 있는가? ” 안회는 대꾸도 하지 않고 있다가 들어와 공자에게 말했다. 공자는 금을 옆으로 밀어놓으며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자로와 자공은 속 좁은 인간들이다. 불러오너라. 내가 그들에게 이야기하겠다.” 자로와 자공이 들어와서, 자로가 말했다. “이 정도의 상황이면 궁지에 몰린 것이 아닙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군자가 도에 통달한 것을 도통이라 말하고, 도에 궁하여진 것을 궁지라 말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인의의 도를 품고서 어지러운 세상의 환란을 만나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어찌 궁지에 몰린 것이 되겠느냐? 그 러므로 마음속으로 반성하여 도에 궁하지 않아야 되며, 어려움을 당하여도 그의 덕을 잃지 않아야 된다. 날씨가 차가운 철이 되어 서리와 눈이 내리면 우리는 그 때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꿋꿋함을 알게 된다.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의 곤경은 나에게는 오히려 다행인 듯하다.” 그리고 공자는 스스로 금을 다시 잡아서 타며 노래를 했다. 그러자 자로가 벌떡 일어나 방패를 들고 거기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자공이 말했다. “나는 하늘이 높은 것도 땅이 낮은 것도 알지 못하는 위인이로다. 옛날의 도를 터득했던 사람들은 곤경에 빠져도 즐기고 뜻이 통하게 되어도 즐기었다. 그들이 즐긴 것은 곤경과 통달이 아니었다. 도덕이 여기에 있다면, 곤경과 통달은 춥고 더운 것과 바람 불고 비 오는 기후 변화와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유는 영수가에 숨어살면서 즐기었고, 공백은 공수산에 숨어살면서 자득했던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12]- 孔子窮於陳蔡之間, 七日不火食, 藜羹不?, 顔色甚憊, 而猶弦歌於室. 顔回擇菜於外, 子路子貢相與言曰:「夫子再逐於魯, 削迹於衛, 伐樹於宋, 窮於商周, 圍於陳蔡, 殺夫子者无罪, 藉夫子者无禁. 弦歌鼓琴, 未嘗絶音, 君子之无恥也若此乎?」 顔回无以應, 入告孔子. 孔子推琴?然而歎曰:「由與賜, 細人也. 召而來, 吾語之.」 子路子貢入. 子路曰:「如此者可謂窮矣!」 孔子曰, 「是何言也! 君子通於道之謂通, 窮於道之謂窮. 今丘抱仁義之道以遭亂世之患, 其何窮之爲! 故內省而不窮於道, 臨難而不失其德, 大寒旣至, 霜雪旣降, 吾是以知松柏之茂也. 陳蔡之隘, 於丘其幸乎!」 孔子削然反琴而弦歌, 子路?然執干而舞. 子貢曰:「吾不知天之高也, 地之下也.」 古之得道者, 窮亦樂, 通亦樂. 所樂非窮通也, 道德於此, 則窮通爲寒暑風雨之序矣. 故許由娛於潁陽而共伯得志乎共首.
300` 자신의 본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다 (잡편:28.양왕,13)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13]- 순임금이 천하를 그의 친구인 북이무택에게 넘겨주려 했다. 그러자 북인무택이 말했다. “임금님 사람됨이 이상하구나. 밭이랑 가운데 살고 있다가 요임금 문하에 노닐더니, 거기에 그치지 않고 또 그 욕된 행동을 가지고 나를 더럽히려 하고 있구나. 나는 그를 만나는 것조차 부끄럽다.” 그리고는 스스로 청랭의 연못에 몸을 던졌다.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13]- 舜以天下讓其友北人无擇, 北人无擇曰:「異哉后之爲人也, 居於?畝之中而遊堯之門! 不若是而已, 又欲以其辱行漫我. 吾羞見之.」 因自投淸冷之淵.
301` 청렴함을 위해 목숨을 버리다 (잡편:28.양왕,14) 청렴` 정의` 바름`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14]- 탕임금이 하나라 걸왕을 정벌하려고 변수에게 계책을 물었다. 변수가 말했다. “제가 아는 일이 아닙니다.” 탕임금이 말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묻는 것이 좋겠습니까?” 변수가 말했다. “저도 모릅니다.” 탕임금이 다시 무광에게 상의했다. 무광이 말했다. “제가 아는 일이 아닙니다.” 탕임금이 말했다. “누가 좋겠습니까?” 무광이 말했다. “저는 모릅니다.” 탕임금이 물었다. “이윤이면 어떻겠습니까?” 무광이 말했다. “그는 강인하면서도 치욕을 견디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 이상은 알지 못합니다.” 탕임금은 마침내 이윤과 계책을 상의하여 걸왕을 쳐서 승리했다. 그리고는 천하를 변수에게 물려주려 하니 변수가 말했다. “임금님께서는 걸왕을 치실 때 제게 상의를 했던 것은 반드시 제가 임금을 칠만한 적신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걸왕을 쳐부수고 나서 저에게 천하를 물려주려 하는 것은 반드시 저를 탐욕스러운 인간이라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어지러운 세상에 태어나기는 하였지만, 무도한 사람들이 거듭 와서 그의 욕된 행동으로 저를 더럽히고 있으니, 저는 차마 더 이상 그런 말을 듣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스스로 조수에 몸을 던져 죽어버렸다. 탕임금이 다시 무광에게 천하를 넘겨주려고 말했다. “지혜 있는 자는 계책을 세우고, 무인들은 그것을 실천하고, 어진 사람이 그것을 다스리는 것이 옛부터의 도입니다. 선생 같으신 분이 어찌 임금의 자리에 오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광이 사양하면서 말했다. “임금을 몰아내는 것은 의로움이 아니고, 백성을 죽이는 것은 어진 행동이 아닙니다. 남이 그런 짓을 범하여 어려운 일을 해놓은 것으로 제가 그 이익을 누린다면 깨끗한 짓이 못됩니다. 제가 듣건대「의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그의 녹을 받지 아니하고, 무도한 세상에서는 그 흙을 밟지 않는다」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저를 높이려 하시니 어찌하겠습니까? 저는 더 이상 이런 꼴을 오래 보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돌을 안고 스스로 여수에 자기 몸을 던져버렸다.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14]- 湯將伐桀, 因卞隨而謀, 卞隨曰:「非吾事也.」 湯曰:「孰可?」 曰:「吾不知也.」 湯又因務光而謀:務光曰:「非吾事也.」 湯曰:「孰可?」 曰:「吾不知也.」 湯曰:「伊尹如何?」 曰:「强力忍垢, 吾不知其他也.」 湯遂與伊尹謀伐桀, 剋之, 以讓卞隨. 卞隨辭曰:「后之伐桀也謀乎我, 必以我爲賊也. 勝桀而讓我, 必以我爲貪也. 吾生乎亂世, 而无道之人再來漫我以其辱行, 吾不忍數聞也.」 乃自投稠水而死. 湯又讓?光曰:「知者謀之, 武者遂之, 仁者居之, 古之道也. 吾子胡不立乎?」 務光辭曰:「廢上, 非義也. 殺民, 非仁也. 人犯其難, 我享其利, 非廉也. 吾聞之曰, 非其義者, 不受其祿, 无道之世, 不踐其土. 況尊我乎! 吾不忍久見也.」 乃負石而自沈於 廬水.
302`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 (잡편:28.양왕,15) - 장자(잡편) ; 제28편 양왕[15]- 옛날 주나라가 일어날 때에 두 사람의 선비가 고죽이라는 고장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백이와 숙제이다. 두 사람이 서로 상의를 했다. “내가 듣건대 서쪽에 한 사람이 있는데, 도를 터득한 사람인 듯하니 가보기로 합시다.” 그리고는 기산의 남쪽 기슭에 이르렀을 때, 무왕이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아우인 숙단을 시켜 그들을 마중하도록 했다. 숙단은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녹은 2등 이상을 주고, 벼슬은 일등 자리를 주겠다고 말하면서, 짐승의 피를 빨고 이 맹세를 쓴 글을 땅에 묻어 맹세를 굳혔다.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허 이상도 하군요.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도가 아닌데요. 옛날 신농이 천하를 다스리고 있을 때에는 철에 따른 제사를 공경히 지내기는 하였지만, 행복을 빌지는 않았습니다. 백성들에 대하여 충실하고 신뢰감 있게 정성을 다하여 다스리기는 하였지만 다른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즐거이 정치를 맡으면 정치를 하였고, 즐거이 다스리게 되면 다스리기만 했습니다. 남의 손실을 근거로 하여 자신의 성공을 바라지 않았고, 남을 낮추면서 자신이 높아지도록 하니 않았으며, 시세를 만났다 하여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주나라는 은나라가 혼란함을 보고서 갑자기 좋은 정치를 하려하고 있습니다. 윗사람은 계책을 써서 신하들을 모으고, 아랫사람은 재물을 쓰며 벼슬을 구하고 있습니다. 군대에 의지하여 위세를 보존하고, 짐승의 피를 내어 맹세함으로써 믿음을 표시하며, 훌륭한 행동을 표창함으로써 민중들을 기쁘게 해주고, 사람들을 죽이면서 남을 공격하여 이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혼란을 밀고 나가 주왕의 폭정과 대체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제가 듣건대 옛날의 선비들은 잘 다스려지는 세상을 만나면 그에게 맡겨진 일을 피하지 않고,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면 구차히 살아가려 들지 않는다 했습니다. 지금 천하가 혼미하고 주나라의 덕이 쇠하고 있습니다. 주나라와 함께 살아감으로써 내 몸을 더럽히기보다는 차라리 주나라를 피하여 나의 행동을 깨끗이 하여야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북쪽 수양산으로 가서 마침내 굶어죽었다. 백이와 숙제 같은 사람들은 부귀에 대하여는 구차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다 해도 절대로 받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높이 뛰어난 절조나 남과 다른 행동으로 홀로 그의 뜻을 즐기고 세상에서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두 선비의 절의인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8篇 讓王[15]- 昔周之興, 有士二人處於孤竹, 曰伯夷叔齊. 二人相謂曰:「吾聞西方有人, 似有道者, 試往觀焉.」 至於岐陽, 武王聞之, 使叔旦往見之, 與之盟曰:「加富二等, 就官一列.」 血牲而埋之. 二 人相視而笑曰:「?, 異哉! 此非吾所謂道也. 昔者神農之有天下也, 時祀盡敬而不祈喜. 其於人也, 忠信盡治而无求焉. 樂與政爲政, 樂與治爲治, 不以人之壞自成也, 不以人之卑自高也, 不以遭時自利也. 今周見殷之亂而遽爲政, 上謀而行貨, 阻兵而保威, 割牲而盟以爲信, 揚行以說衆, 殺伐以要利, 是推亂以易暴也. 吾聞古之士, 遭治世不避其任, 遇亂世不爲苟存. 今天下闔, 周德衰, 其竝乎周以塗吾身也, 不如避之以?吾行.」 二子北至於首陽之山, 遂餓而死焉. 若伯夷叔齊者, 其於富貴也, 苟可得已, 則必不賴. 高節戾行, 獨樂其志, 不事於世, 此二士之節也.
303` 공자 도척을 설득하러 가다 (잡편:29.도척,1) - 장자(잡편) ; 제29편 도척[1]- 공자에게 유하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아우의 이름은 도척이라 했다. 도척은 9천명의 졸개를 거느리고 천하를 횡행하면서 제후들의 영토를 침범하여 그들을 털었다. 남의 집에 구멍을 뚫고 문을 부수고 들어가 남의 소와 말을 훔치고 남의 부녀자들을 약탈했다. 이익를 탐하느라 친척도 잊었으며, 부모형제도 돌아보지 않았고, 조상들에게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그가 지나가는 곳에서는 큰 나라는 성을 지키고, 작은 나라는 성안으로 도망쳐 난을 피했다. 그래서 온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했다. 공자가 유하계에게 말했다. “한 사람의 아버지 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아들을 훈계할 수 있을 것이요. 한 사람의 형 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아우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일세. 만약 아버지로서 그 자식을 훈계할 수 없고, 형으로서 그 아우를 가르칠 수 없다면, 부자와 형제간의 친애도 그리 대수로운 것이 못 될 것이네. 지금 자네는 세상이 알아주는 재사이면서, 그 아우는 도척이라는 대도가 되어 천하에 해를 끼치고 있는데도 그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속으로 자네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네. 내 그대를 대신해 가서 그를 설득해 보겠네.” 유하계가 말했다. “자네는 한 사람의 아비 된 사람은 반드시 그 자식을 훈계할 수 있고, 한 사람의 형 된 사람은 그 아우를 가르칠 수 있다 하였네 만, 만약 자식이 아버지의 훈계를 듣지 않고 동생이 형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어찌하겠나? 또 도척이란 녀석의 사람됨은 마음은 용솟음치는 샘물같이 끝이 없고, 의지는 회오리바람같이 사나우며, 완력은 어떤 적이라도 막아내기에 충분하고, 그 언변은 자기의 비행을 꾸며대기에 충분하다네, 제 마음에 들면 좋아하지만, 제 마음에 듣지 않으면 성을 내며 함부로 욕을 해대니, 부디 가지 말게나.” 그러나 공자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안회에게 수레를 몰게 하고 자공을 오른편에 앉힌 뒤 도척을 만나러 갔다. - 莊子(雜篇) ; 第29篇 盜?[1]- 孔子與柳下季爲友, 柳下季之弟, 名曰盜?. 盜?從卒九千人, 橫行天下, 侵暴諸侯, 穴室樞戶, 驅人牛馬, 取人婦女, 貪得忘親, 不顧父母兄弟, 不祭先祖. 所過之邑, 大國守城, 小國入保, 萬民苦之. 孔子謂柳下季曰:「夫爲人父者, 必能詔其子. 爲人兄者, 必能敎其弟. 若父不能詔其子, 兄不能敎其弟, 則无貴父子兄弟之親矣. 今先生, 世之才士也, 弟爲盜?, 爲天下害, 而弗能敎也, 丘竊爲先生羞之. 丘請爲先生往說之.」 柳下季曰:「先生言爲人父者必能詔其子, 爲人兄者必能敎其弟, 若子不聽父之詔, 弟不受兄之敎, 雖今先生之辯, 將奈之何哉! 且?之爲人也, 心如涌泉, 意如飄風, 强足以矩敵, 辯足以飾非, 順其心則喜, 逆其心則怒, 易辱人以言. 先生必无往.」 孔子不聽, 顔回爲馭, 子貢爲右, 往見盜?.
304` 공자는 도척보다 위선자이다 (잡편:29.도척,2) - 장자(잡편) ; 제29편 도척[2]- 도척이 한창 태산의 남쪽에서 졸개들을 쉬게 하고, 자신은 사람의 간을 회를 쳐 먹고 있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앞으로 나아가 도척의 졸개를 보고 말했다. “노나라에 사는 공구라는 사람이 장군의 높은 의기를 듣고 삼가 재배로써 알현코자 합니다.” 졸개가 들어가 아뢰니, 도척이 그 말을 듣고 노하여 눈은 샛별같이 번뜩이고, 머리카락이 치솟아 관을 찌를 듯했다. “그건 저 노나라의 위선자 공구가 아니냐? 내 대신 그에게 전하라. 너는 적당히 말을 만들고 지어내어 함부로 문왕과 무왕을 칭송하며, 머리에는 나뭇가지 같이 이것저것 장식한 관을 쓰고, 허리에는 죽은 소의 가죽으로 만든 띠를 하고 다니면서, 부질없는 소리를 멋대로 지껄이고,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먹고살며, 길쌈을 하지도 않으면서 옷을 입는다. 입술을 놀리고 혀를 차면서 제멋대로 옳다 그르다 판단을 내려 천하의 군주들을 미혹시키고, 학자들로 하여금 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면서, 함부로 효니 공손함이니 우애니 하는 것을 정해놓고 제후들에게 요행히 인정을 받아 부귀라도 누려볼까 하는 속셈을 갖고 있다. 네 죄는 참으로 무겁다. 당장 돌아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네 간으로 점심반찬을 만들 것이다.” 공자가 다시 졸개를 통해 말했다. “저는 장군의 형님인 유하계와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부디 장군의 신발이라도 쳐다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졸개가 다시 전하니 도척이 말했다. “이리 데려 오너라.” 공자는 총총걸음으로 나아가 자리를 피해 물러서면서 도척에게 크게 두 번 절을 했다. - 莊子(雜篇) ; 第29篇 盜?[2]- 盜?乃發休卒徒於太山之陽, 膾人肝而?之. 孔子下車而前, 見謁者曰:「魯人孔丘, 聞將軍高義, 敬再拜謁者.」 謁 者入通, 盜?聞之大怒, 目如明星, 髮上指冠, 曰:「此夫魯國之巧僞人孔丘非邪? 爲我告之:‘爾作言造語, 妄稱文武, 冠枝木之冠, 帶死牛之脅, 多辭繆說, 不耕而食, 不織而衣, 搖脣鼓舌, 擅生是非, 以迷天下之主, 使天下學士不反其本, 妄作孝弟而僥倖於封侯富貴者也. 子之罪大極重, 疾走歸! 不然, 我將以子肝益晝?之膳!’」 孔子復通曰:「丘得幸於季, 願望履幕下.」 謁者復通, 盜?曰:「使來前!」
305` 공자 도척을 설득하기 위하여 말하다 (잡편:29.도척,3) - 장자(잡편) ; 제29편 도척[3]- 도척은 그를 보자 크게 노하여 그의 양발을 떡 벌리고,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눈을 부릅뜬 채, 마치 새끼를 거느린 호랑이 같이 말했다. “구야, 앞으로 나오너라. 네가 하는 말이 내 뜻에 맞으면 살 것이되, 거스른다면 죽을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제가 듣건대, 천하에는 세 가지 덕이 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키가 크고 체격이 늠름하며, 용모가 아름다워 아무에게도 비길 수 없고, 늙은이도 젊은이도 고귀한 이도 미천한 이도 모두 그를 좋아하는 것, 이것이 첫째가는 덕입니다. 그 지혜는 천지를 뒤덮고, 능력은 모든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고 있는 것, 이것이 중간치의 덕입니다. 용기가 있어 과감하며 많은 부하를 거느리는 것, 이것이 제일 낮은 덕입니다. 대개 누구라도 이 가운데 한가지 덕만 갖추고 있으면 제후라 칭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이 세 가지 덕을 함께 갖추고 계십니다. 키는 여덟자두치나 되고, 얼굴과 눈에서는 빛이 나며, 입술은 진한 붉은 색이고, 이는 조개를 가지런히 한 듯하고, 목소리는 황종의 음에 들어맞습니다. 그런데도 도척이라 불리고 계시니 저는 마음속으로 장군님을 위해 이를 심히 부끄럽고 애석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장군께서 제 말을 따르실 의향이 있으시면, 저는 남쪽으로는 오나라와 월나라,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노나라, 동쪽으로는 송나라와 위나라, 서쪽으로는 진나라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들로 하여금 장군을 위해 수 백 리 사방으로 큰 성을 만들어 수십만 호의 봉읍을 만들며, 장군을 제후로 삼게 하고자 합니다. 그리하면 천하와 더불어 이 난세를 혁파하고, 병사들을 쉬게 하며, 형제들을 거두어 보양해주고, 다같이 조상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성인이나 재사들의 행위인 동시에 천하가 바라는 바이옵니다.” - 莊子(雜篇) ; 第29篇 盜?[3]- 孔子趨而進, 避席反走, 再拜盜?. 盜?大怒, 兩展其足, 案劍瞋目, 聲如乳虎, 曰:「丘來前! 若所言, 順吾意則生, 逆吾心則死.」 孔子曰:「丘聞之, 凡天下人有三德:生而長大, 美好无雙, 少長貴賤見而皆說之, 此上德也. 知維天地, 能辯諸物, 此中德也. 勇悍果敢, 聚衆率兵, 此下德也. 凡人有此一德者, 足以南面稱孤矣. 今將軍兼此三者, 身長八尺二寸, 面目有光, 脣如激丹, 齒如齊貝, 音中黃鍾, 而名曰盜?, 丘竊爲將軍恥不取焉. 將軍有意聽臣, 臣請南使吳越, 北使齊魯, 東使宋衛, 西使晉楚, 使爲將軍造大城數百里, 立數十萬戶之邑, 尊將軍爲諸侯, 與天下更始, 罷兵休卒, 收養昆弟, 共祭先祖. 此聖人才士之行, 而天下之願也.」
306` 공자가 끼친 해가 도척보다 더 크다 (잡편:29.도척,4) - 장자(잡편) ; 제29편 도척[4]- 도척은 더욱더 크게 노하여 말했다. “구야, 듣거라. 대저 이익으로써 권할 수 있고 말로써 간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세상의 어리석은 범인들이나 하는 짓이니라. 지금 내 체격이 훌륭하며 용모가 아름답고 사람들이 나를 보면 좋아하는 것은 내 부모의 덕이다. 네 따위가 나를 칭찬해 주지 않더라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또 내가 듣건대. 남의 면전에서 칭찬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등뒤에서 욕하기도 잘한다고 했느니라. 지금 네가 큰 성을 쌓게 한다느니, 백성들을 모아 준다고 했는데, 그것은 이익으로써 나를 권면하는 것이니 나를 범속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다루려는 것이다. 허나 그런 것들이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 성이 크다 한들 천하보다 크겠느냐? 요와 순임금은 천하를 다스렸으나 그 자손들은 송곳하나 꽂을 땅도 갖고 있지 못했느니라. 탕임금과 무왕도 스스로 천자가 되었으나 그 자손은 모두 끊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이익이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또 내가 듣건대, 옛적에는 새나 짐승이 많고 사람의 숫자는 적어, 사람들은 모두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며 짐승의 해를 피했고, 낮에는 도토리와 밤을 줍고 밤에는 나무 위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을 유소씨의 백성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또 옛적에는 백성들이 옷을 입을 줄도 모르고 여름이면 장작을 쌓아놓았다 겨울에는 이것을 땠다. 그래서 이들은 지생의 백성이라고 한다. 신농씨의 시대에는 안락하게 누워 자고 일어나서는 유유자적했다. 백성들은 자기의 어머니는 알아도 아버지는 몰랐고, 고라니나 사슴 따위와 함께 살았다. 농사를 지어먹고 길쌈을 해 입었으며 서로를 해치려는 마음 따위는 지니지 않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지극한 덕이 한창 성했던 시대였느니라. 그런데 황제는 덕을 완전히 실현시킬 수가 없어, 치우와 탁록의 들에서 싸워, 사람들의 피가 백리 사방을 물들였다. 이어 요와 순이 천자가 되자 많은 신하들을 내세웠고, 탕왕은 그의 주군을 내치었으며, 무왕은 주왕을 죽였다. 이 뒤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다수가 소수를 학대하게 된 것이다. 탕왕과 무왕 이후는 모두 세상을 어지럽히는 무리들이다. 지금 너는 문왕의 도를 닦고서 천하의 이론을 도맡아 후세사람들을 가르친다고 나섰다. 넓고 큰 옷에 가는 띠를 띠고 헛된 말과 거짓 행동으로 천하의 임금들을 미혹시키어 부귀를 추구하려는 것이다. 도둑치고도 너보다 더 큰 도둑은 없는데, 세상 사람들은 어찌하여 너를 도구(盜丘)라 부르지 않고, 반대로 나를 도척(盜?)이라 부르는 것이냐! - 莊子(雜篇) ; 第29篇 盜?[4]- 盜?大怒曰:「丘來前! 夫可規以利而可諫以言者, 皆愚陋恒民之謂耳. 今長大美好, 人見而悅之者, 此吾父母之遺德也. 丘雖不吾譽, 吾獨不自知邪? 「且吾聞之, 好面譽人者, 亦好背而毁之. 今丘告我以大城衆民, 是欲規我以利而恒民畜我也, 安可久長也! 城之大者, 莫大乎天下矣. 堯舜有天下, 子孫无置錐之地. 湯武立爲天子, 而後世絶滅. 非以其利大故邪? 「且吾聞之, 古者禽獸多而人少, 於是民皆巢居以避之, 晝拾橡栗, 暮栖木上, 故命之曰 有巢氏之民. 古者民不知衣服, 夏多積薪, 冬則煬之, 故命之曰知生之民. 神農之世, 臥則居居, 起則于于, 民知其母, 不知其父, 與?鹿共處, 耕而食, 織而衣, 无有相害之心, 此至德之隆也. 然而黃帝不能致德, 與蚩尤戰於??鹿之野, 流血百里. 堯舜作, 立群臣, 湯放其主, 武王殺紂. 自是以後, 以强陵弱, 以衆暴寡. 湯武以來, 皆亂人之徒也. 「今子修文武之道, 掌天下之辯, 以敎後世, 縫衣淺帶, 矯言僞行, 以迷惑天下之主, 而欲求富貴焉, 盜莫大於子. 天下何故不謂子爲盜丘, 而乃謂我爲盜??
307` 공자의 가르침이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잡편:29.도척,5) - 장자(잡편) ; 제29편 도척[5]- 너는 달콤한 말로 자로를 설복시켜 자기를 따르게 하고, 그가 쓰고 있던 높은 관을 벗기고, 그가 차고 있던 길 칼을 풀어놓게 한 뒤, 네 가르침을 받게 했다. 천하에서는 모두 말하기를, 공구는 난폭한 행동을 금지시키고 그릇된 행동을 금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결국 자로는 위나라 임금을 죽이려다가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위나라의 동문 밖에서 사형을 받아 그의 몸이 소금에 절여지게 되었다. 이것은 너의 가르침이 불충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너는 스스로 재사니, 성인이니 하고 자처하지만, 노나라에서 추방되었고, 제나라에서는 궁지에 몰렸었고, 진과 채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를 당했으니, 천하에 몸둘 곳이 없게 되었지 않느냐? 너는 자로로 하여금 처형을 당해 몸이 소금에 절여지게 만들었으니, 결국 환난으로 말미암아, 위로는 몸을 보전할 길이 없고, 아래로는 사람 노릇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너의 도를 어찌 귀한 것이라 하겠느냐? 세상에서 덕이 높다고 한다면, 황제보다 더한 이가 없지만, 그 황제도 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어 탁록의 들에서 싸워 백 리 사방을 피로 물들였다. 요임금은 자애심이 없었고, 순임금은 효를 다하지 못했으며, 우임금은 일을 하느라 깡말랐고, 탕왕은 그 주군을 내쳤으며, 무왕은 주왕을 죽였고, 문왕은 유리에 유폐되었다. 이 여섯 사람은 세상에서 높이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논하자면, 모두가 이익 때문에 그 진실에 대해 미혹됨으로써 억지로 그 성정을 거슬렀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행동이야말로 심히 수치스럽다 할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9篇 盜?[5]- 子 以甘辭說子路而使從之, 使子路去其危冠, 解其長劍, 而受敎於子, 天下皆曰孔丘能止暮禁非. 其卒之也, 子路欲殺衛君而事不成, 身菹於衛東門之上, 是子敎之不至也. 子自謂才士聖人邪? 則再逐於魯, 削跡於衛, 窮於齊, 圍於陳蔡, 不容身於天下.子敎子路菹此患, 上无以爲身, 下无以爲人, 子之道豈足貴邪? 「世之所高, 莫若黃帝, 黃帝尙不能全德, 而戰??鹿之野, 流血百里. 堯不慈, 舜不孝, 禹偏枯, 湯放其主, 武王伐紂, 此六子者, 世之所高也, 孰論之, 皆以利惑其眞而强反其情性, 其行乃甚可羞也.
308` 현인이나 충신도 본성을 위배했던 사람들이다 (잡편:29.도척,6) - 장자(잡편) ; 제29편 도척[6]- 세상에서 말하는 현사로는 백이와 숙제가 있는데, 고죽의 임금자리를 사퇴하고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고, 그들의 시체는 아무도 장사를 지내 주지 않았다. 포초라는 사람은 자기의 행동을 꾸미고 세상을 비난하다가 나무를 끌어안고 죽었다. 신도적은 임금을 간하다가 들어주지 않자 돌을 지고 스스로 황하에 몸을 던져 물고기와 자라의 밥이 되었다. 개자추는 지극히 충성을 다해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문공에게 먹였으나, 뒤에 문공이 그를 배반하자, 그는 노하여 진나라를 떠나 살다 나무를 껴안은 채 타죽었다. 미생은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물이 불어도 떠나지 않고 있다가 다리 기둥을 끌어안은 채 죽어야만 했다. 이 네 사람은 잡기 위해 매달아놓은 개나, 제물로 강물에 던져진 돼지나 표주박을 들고 구걸을 하러 다니는 자나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자기의 명분에 얽매이어 죽음을 가벼이 하고 근본으로 돌아가 수명을 보양하려 하지 않은 자들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충신으로는 비간이나 오자서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오자서는 처형을 당해 시체가 강물에 던져졌고, 비간은 가슴을 찢기어 심장이 드러내어졌다. 이 두 사람은 천하에서 말하는 충신들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위에서부터 자서나 비간까지 모두 귀하다고 할 만한 것이 못되는 것이다. 네가 나를 설득시키는 방법으로 내게 귀신이야기를 한다면 내가 알 수 없을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네가 사람에 관한 일로써 이야기한다면 여기서 더 이상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그것들은 모두 내가 들어 알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 莊子(雜篇) ; 第29篇 盜?[6]- 「世之所謂賢士, 莫若伯夷叔齊. 伯夷叔齊辭孤竹之君而餓死於首陽之山, 骨肉不葬. 鮑焦飾行非世, 抱木而死. 申徒狄諫而不聽, 負石自投於河, 爲魚鼈所食. 介子推至忠也, 自割其股以食文公, 文公後背之, 子推怒而去, 抱木而燔死. 尾生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梁柱而死. 此六子者, 无異於?犬流豕操瓢而乞者, 皆離名輕死, 不念本養壽命者也. 「世之所謂忠臣者, 莫若王子比干伍子胥. 子胥沈江, 比干剖心, 此二子者, 世謂忠臣也, 然卒爲天下笑. 自上觀之, 至于子胥比干, 皆不足貴也. 「丘之所以說我者, 若告我以鬼事, 則我不能知也. 若告我以人事者, 不過此矣, 皆吾所聞知也.
309` 공자의 도는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잡편:29.도척,7) - 장자(잡편) ; 제29편 도척[7]- 이제 내가 너에게 사람의 성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다. 눈은 좋은 빛깔을 보려 하고, 귀는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하며, 입은 좋은 맛을 보려하고, 기분은 만족을 바란다. 사람의 수명은 기껏해야 백살, 중간정도로는 80살, 밑으로 가면 60살이다. 그것도 병들고 여위고 죽고 문상하고 걱정거리로 괴로워하는 것을 빼고 나면 그 가운데 입을 벌리고 웃을 수 있는 것은 한달 중에 불과 사오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과 땅은 무궁하지만 사람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일정한 때가 있다. 이 유한 한 육체를 무궁한 천지 사이에 맡기고 있기란 준마가 좁은 문틈을 휙 달려 지나가 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자기의 기분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그 수명을 보양하지 못하는 자는 모두가 도에 통달하지 못한 사람인 것이다. 네가 하는 말들은 모두 내가 버리는 것들이다. 당장 뛰어 돌아가거라.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아라! 너의 도라는 것은 본성을 잃은 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사기와 허위일 뿐이다. 그런 것으로는 사람의 참된 모습을 보전할 수 없느니라. 어찌 논의할 대상이나 되겠느냐? - 莊子(雜篇) ; 第29篇 盜?[7]- 「今吾告子以人之情, 目欲視色, 耳欲聽聲, 口欲察味, 志氣欲盈. 人上壽百歲, 中壽八十, 下壽六十, 除病瘦死喪憂患, 其中開口而笑者, 一月之中不過四五日而已矣. 天與地无窮, 人死者有時, 操有時之具而托於无窮之間, 忽然无異騏驥之馳過隙也. 不能說其志意, 養其壽命者, 皆非通道者也. 「丘之所言, 皆吾之所棄也, ?去走歸, 无復言之! 子之道, 狂狂汲汲, 詐巧虛僞事也, 非可以全眞也, 奚足論哉!」
310` 공자 도척에게 기가 질리다 (잡편:29.도척,8) - 장자(잡편) ; 제29편 도척[8]- 공자는 두 번 절하고 빠른 걸음으로 문을 달려 나와 수레에 올라서는 말고삐를 세 번이나 잡았다 놓쳤다. 눈은 멍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얼굴은 불꺼진 잿빛이었다. 수레 앞턱의 가로나무에 기대어 머리를 떨구고는 숨도 내쉬지 못할 정도였다. 노나라의 동문에 이르러 마침 유하계를 만났다. 유하계가 말했다. “요즘 며칠동안 보지를 못하였는데, 거마의 행색을 보아하니, 혹시 도척을 만나러 갔다가 오는 것이 아닌가?” 공자는 하늘을 우러르며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렇다네.” 유하계가 말했다. “도척이란 놈이 전에 이야기한 대로 자네의 뜻을 거스르지 않던가?” “그랬다네. 나는 말하자면 아픈데도 없는데 뜸질을 한 격이 되고 말았네. 허둥대며 달려가다가 호랑이 머리를 매만지고 호랑이 수염을 잡아당긴 셈이니 자칫하면 호랑이에게 먹힐 뻔 하였네.”
311` 작은 도적은 잡히고 큰 도적은 제후가 된다 (잡편:29.도척,9) - 장자(잡편) ; 제29편 도척[9]- 자장이 만구득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인의를 행하지 않습니까? 인의를 행하지 않으면 신용을 얻지 못하고, 신용을 얻지 못하면 벼슬에 임용되지 못하며, 벼슬에 임용되지 못하면 이익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명성의 관점에서 보든지, 이익으로 계산하든지 인의야말로 가장 좋은 것입니다. 만약 명예나 이익을 버린다 하더라도 마음에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선비가 행동함에 있어서 인의는 하루도 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구득이 말했다. “수치를 모르는 자가 부자가 되고, 말이 많은 자가 출세합니다. 큰 명예와 이익이란 수치도 모르고 말만 많은 자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명예란 관점에서 보든, 이익으로 계산하든 말 많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 됩니다. 만약 명예와 이익을 내버리고 마음에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선비의 행동으로서는 그의 천성을 간직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자장이 말했다. “옛날에 걸왕과 주왕은 천자라는 귀한 자리에 있으면서 온천하의 부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노예들에게라도 너의 행동이 걸이나 주와 같다고 하면, 곧 부끄러운 빛을 띠며 마음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들은 이러한 사람들까지도 천하게 여기는 대상입니다. 공자와 묵자는 필부로서 궁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지금 재상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라도 당신의 행동이 공자와 묵자 같다고 말하면 곧 얼굴빛을 바꾸면서 그런 정도에 이르기에 부족하다고 말하게 되는데, 이들은 선비들이 진실로 존귀하게 여기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자의 권세를 지녔다 하더라도 반드시 존귀하지 않을 수 있고, 필부로서 궁하게 지낸다 하더라도 반드시 천한 것은 아닙니다. 귀천의 구분은 행동이 아름답고 악한 것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만구득이 말했다. “작은 도적은 잡히고 말지만 큰 도적은 제후가 됩니다. 그런데 제후의 문하에는 의로운 선비들이 모이게 됩니다. 옛날의 제나라 환공 소백은 자기의 형을 죽이고 형수를 부인으로 삼았으나, 현명한 관중이 그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전성자 상은 제나라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훔쳤으나, 공자는 그로부터 폐물을 받았습니다. 관중과 공자를 얘기함에 있어서는 그들을 천하게 보면서도 실지로 행동함에 있어서는 그들 아래에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과 행동의 실제 문제가 모순을 이룬 채 가슴속에서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치에 어긋난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옛 책에서 말하기를「어떤 것이 나쁘고 어떤 것이 아름다운지 알 수가 없다. 성공을 하면 우두머리가 되어 존경받고, 성공하지 못하는 자는 꼬리가 되어 천대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 莊子(雜篇) ; 第29篇 盜?[9]- 子將問於滿苟得曰:「盖不爲行? 无行則不信, 不信則不任, 不任則不利. 故觀之名, 計之利, 而義眞是也. 若棄名利, 反之於心, 則夫士之爲行, 不可一日不爲乎!」 滿苟得曰:「无恥者富, 多信者顯. 夫名利之大者, 幾在无恥而信. 故觀之名, 計之利, 而信眞是也. 若棄名利, 反之於心, 則夫士之爲行, 拘其天乎!」 子將曰:「昔者桀紂貴爲天子, 富有天下, 今謂臧聚曰, 汝行如桀紂, 則有?色, 有不服之心者, 小人所賤也. 仲尼墨翟, 窮爲匹夫, 今謂宰相曰, 子行如仲尼墨翟, 則變容易色稱不足者, 士誠貴也. 故勢爲天子, 未必貴也. 窮爲匹夫, 未必賤也. 貴賤之分, 在行之美惡.」 滿苟得曰:「小盜者拘, 大盜者爲諸侯, 諸侯之門, 仁義存焉. 昔者桓公小白殺兄入嫂, 而管仲爲臣. 田成子常殺君竊國, 而孔子受幣. 論則賤之, 行則下之, 則是言行之情悖戰於胸中也, 不亦拂乎! 故書曰:‘孰惡孰美? 成者爲首, 不成者爲尾.’」
312` 본성에 어긋나면 재앙을 자초한다 (잡편:29.도척,10) - 장자(잡편) ; 제29편 도척[10]- 자장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인의를 행하지 않으신다면 멀고 친한 사람의 구별이 없게 될 것이고, 귀하고 천한 신분의 기준도 없게 될 것이며, 어른과 아이의 질서도 없게 될 것입니다.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친구들 사이의 관계인 오륜(五倫)과, 아저씨들, 형제들, 일가들, 조카들, 스승, 치구들 사이의 관계인 육기(六紀)도 어떻게 구별할 구가 있겠습니까?” 만구득이 말했다. “요임금은 맏아들을 죽였고, 순임금은 이복동생을 귀향 보냈었는데, 멀고 친한 사람의 구별이 있는 것입니까? 탕임금은 걸왕을 내쳤고, 무왕은 주왕을 죽였는데, 귀하고 천한 신분의 기준이 있는 것입니까? 왕계는 형을 물리치고 왕위의 계승자가 되었고, 주공은 형을 죽였는데 어른과 아이의 질서가 있는 것입니까? 유학자들은 거짓된 이론을 펴고, 묵가의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다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오륜과 육기의 분별이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도 선생께서는 명분을 바르다고 주장하고 저는 이익을 바르다고 주장하는데, 명분이고 이익이고 그 사실을 알고 보면 이치에 순응되지도 않고 도리에 합치되지도 않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무약에게 물으니,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소인들은 재물을 추구하고, 군자들은 명예를 추구한다. 그들이 그들의 진실함을 변화시키고 그들의 본성을 바꾸는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은 버리고 그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추구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한가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인이 되지 말고 본성으로 되돌아가 자연을 따르고, 군자가 되지도 말고 하늘의 원리를 따르기만 하라고 하는 것이다. 굽 었든 곧았든 간에 하늘의 법도에 서로 호응해야 한다. 자기 사방을 둘러보면서 적응하며 때의 변화에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옳든 그르든 간에 원만한 마음을 지켜야만 한다. 자기의 뜻을 홀로 이룩하여 도와 더불어 세상에 노닐어야 한다. 한결같이 행동하려고 애쓰지 말고, 의로움을 이룩하려 애쓰지 말라. 그러면 자기의 본성만을 잃게 될 것이다. 자기의 부를 추구하지 말 것이며, 성공하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그런 행동은 자기의 천성을 버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비간은 심장이 도려내어지고 오자서는 눈이 도려내졌는데, 충성하려 했기 때문에 닥친 재난이었던 것이다. 직궁은 아버지의 도둑질을 증언했다가 처벌되었고, 미생이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려다가 다리 밑에서 물에 빠져 죽은 것은 신의를 지키려던 환란인 것이다. 포자가 나무를 끌어안고 선 채로 말라죽고, 승자가 자기 변명도 못해보고 목매어 죽었던 것은 깨끗함을 지키려다 받은 피해이다. 공자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종신을 하지 못하고, 광자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종신하지 못했던 것은, 의로움을 지키려는 데서 온 과실인 것이다. 이상은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고 후세에도 이야기되어지는 사실들이다. 선비 된 사람으로서 자기 말이 올바른 것이라 고집하고 자기 행동이 올바르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런 재앙을 당하고 그런 환란을 만나게 된 것이다.」 - 莊子(雜篇) ; 第29篇 盜?[10]- 子將曰:「子不爲行, 卽將疏戚无倫, 貴賤无義, 長幼无序. 五紀六位, 將何以爲別乎?」 滿苟得曰:「堯殺長子, 舜流母弟, 疏戚有倫乎? 湯放桀, 武王殺紂, 貴賤有義乎? 王季爲適, 周公殺兄, 長幼有序乎? 儒者僞辭, 墨者兼愛, 五紀六位將有別乎! 「且子正爲名, 我正爲利. 名利之實, 不順於理, 不監於道. 吾日與子訟於无約曰:‘小人殉財, 君子殉名. 其所以變其情, 易其性, 則異矣. 乃至於棄其所爲而殉其所不爲, 則一也.’ 故曰, 无爲小人, 反殉而天. 无爲君子, 從天之理. 若枉若直, 相而天極. 面觀四方, 與時消息. 若是若非, 執而圓機. 獨成而意, 與道徘徊. 无轉而行, 无成而義, 將失而所爲. 无赴而富, 无殉而成, 將棄而天. 「比干剖心, 子胥抉眼, 忠之禍也. 直躬證父, 尾生溺死, 信之患也. 鮑子立乾, 勝子不自理廉之害也. 孔子不見母, 匡子不見父, 義之失也. 此上世之所傳, 下世之所語, 以爲士者正其言, 必其行, 故服其殃, 利其患也.」
313` 명예와 이익은 환란을 가져다 준다 (잡편:29.도척,11) - 장자(잡편) ; 제29편 도척[11]- 무족이 지화에게 물었다. “사람 중에 명예를 위해 일어나고, 이익을 위해 나가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가 부유해지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모여들어서는 그에게 머리를 숙이고, 남들이 머리를 숙이면 그는 귀해지는 것입니다. 남이 머리를 숙임으로써 귀해지는 것은 오래 살고 몸을 편안히 하고, 뜻을 즐겁게 하는 근거가 되는 도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당신만이 그 일에 뜻이 없으니,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입니까? 뜻과 지혜는 있지만 힘이 없어 실행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올바른 것만 추구하느라 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지화가 말했다. “지금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고, 같은 고장에서 생활하고 있는데도 나 같은 사람을 세속을 초월한 선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느라 올바른 표준도 없이 예전부터 오늘에 이르는 시대의 흐름과 시비의 분별만을 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은 속인들과 함께 살면서 세속에 감화되어 지극히 귀중한 본성을 떠나서 지극히 존귀한 도를 버리고, 그들이 바라는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는 그들이 오래 살고 몸을 편안히 하고 뜻을 즐겁게 하는 도를 논한다는 것이 동떨어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참담한 고통과 즐거운 편안함이 자기 몸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살피지 않는 것입니다. 불안한 두려움과 날뛸 듯한 기쁨이 자기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살피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명예와 이익을 추구할 줄만 알았지 추구하는 이유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자란 존귀한 위치에 놓이고 천하를 다 차지하는 부를 지니게 되더라도 환란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 莊子(雜篇) ; 第29篇 盜?[11]- 无足問於知和曰:「人卒未有不興名就利者. 彼富則人歸之, 歸則下之, 下則貴之. 夫見下貴者, 所以長生安體樂意之道也. 今子獨无意焉, 知不足邪, 意知而力不能行邪! 故推正不忘邪?」 知和曰:「今夫此人以爲興己同時而生, 同鄕而處者, 以爲夫絶俗過世之士焉. 是專无主正, 所以覽古今之時, 是非之分也, 與俗化. 世去至重, 棄至尊, 以爲其所爲也. 此其所以論長生安體樂意之道, 不亦遠乎! 慘?之疾, 恬愉之安, 不監於體. ??之恐, 欣?之喜, 不監於心. 知爲爲而不知所以爲, 是以貴爲天子, 富有天下, 而不免於患也.」
314` 부와 명예보다 본성을 지키는 것이 났다 (잡편:29.도척,12) - 장자(잡편) ; 제29편 도척[12]- 무족이 말했다. “부란 사람에 대하여 이롭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부는 어떠한 아름다움도 이룰 수 있고, 어떠한 권세라도 추구할 수 있으므로 이것은 지극한 사람도 미칠 수 없는 일이며, 성인도 따라갈 수 없는 일입니다. 부는 남의 용기와 능력을 빌어 위세를 떨치고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남의 지혜와 계략을 이용하여 명석하게 잘 살필 수도 있습니다. 남의 덕을 근거로 하여 현명하고 어질게 행동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있지 않아도 임금이나 아버지 같은 위엄을 지닐 수도 있습니다. 또 한 음악이나 미술이나 권세와 같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들을 배우지 않고도 즐길 수가 있습니다. 몸은 다른 물건을 빌지 않고도 편안할 수 있습니다. 탐나는 것을 얻고 싫어하는 것을 피하는 일도 스승을 기다릴 것 없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온 천하가 비록 나를 비난한다 하더라도 누가 그것을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지화가 말했다. “지혜 있는 사람의 행동은 본시 행동의 표준을 백성들로 삼아서 그들의 기준을 어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만족하고 있어서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할 것이 없으므로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만족을 못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욕망을 추구하게 되고, 사방으로 다투면서도 스스로 탐욕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남음이 있기 때문에 남이 추구하는 것을 사양하며, 천하를 버리고도 스스로를 결백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렴하다거나 탐욕스럽다는 실제 내용은 추구하는 밖의 물건에 의하여 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자기 마음의 법도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 자의 권세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존귀함으로써 남에게 교만하지 않습니다. 천하의 부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재물로써 사람을 희롱하지 않습니다. 천자의 환란을 헤아리고 그것이 천성에 반하는 것임을 생각하고, 그것은 본성을 해치는 것이라 단정하기 때문에 사양하고 받지 않는 것입니다. 명예를 바라기 때문이 아닙니다. 요임금과 순임금이 임금노릇을 하면서도 남에게 임금자리를 사양했던 것은 천하에 어짊을 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명예나 이익 때문에 삶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선권이나 허유가 임금자리를 내주어도 받지 않았던 것은 공연히 사양한 것이 아니라, 번거로운 일로 인해 자기를 해치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그의 이로움을 위해 그 피해를 사퇴한 것이어서 천하 사람들은 현명하다고 칭송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천하를 차지할 수 있는데도 차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명예를 추구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닙니다.” - 莊子(雜篇) ; 第29篇 盜?[12]- 无足曰:「富貴之於人, 无所不利, 窮美究?, 至人之所不得逮, 賢人之所不能及, 俠人之勇力而以爲威强, 秉人之知謀以爲明察, 因人之德以爲賢良, 非享國而嚴若君父. 且夫聲色滋味權勢之於人, 心不待學而樂之, 體不待象而安之. 夫欲惡避就, 固不待師, 此人之性也. 天下雖非我, 孰能辭之!」 知和曰:「知者之爲, 故動以百姓, 不違其度, 是以足而不爭, 无以爲故不求. 不足故求之, 爭四處而不自以爲貪. 有餘故辭之, 棄天下而不自以爲廉. 廉貪之實, 非以迫外也, 反監之度. 勢爲天子而不以貴驕人, 富有天下而不以財?人. 計其患, 慮其反, 以爲害於性, 故辭而不受也, 非以要名譽也. 堯舜爲帝而雍, 非仁天下也, 不以美害生也. 善卷許由得帝而不受, 非虛辭讓也, 不以事害己. 此皆就其利, 辭其害, 而天下稱賢焉, 則可以有之, 彼非以興名譽也.」
315` 부와 명예는 사람을 해치는 부질없는 것이다 (잡편:29.도척,13) - 장자(잡편) ; 제29편 도척[13]- 무족이 말했다. “사람은 꼭 자기의 명예를 지탱하려고 자신을 괴롭히고 단것도 먹지 않으며 몸의 보양을 절약함으로써 생활만을 지탱해갑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오랫동안 앓으면서 오랫동안 곤궁하게 죽지 않고 사는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지화가 말했다. “평범한 것이 행복이 되며, 남음이 있으면 해가 된다는 것은 모든 물건이 그런데, 재물에 있어서는 더욱 심합니다. 지금 부자들은 귀로는 종, 북, 저, 피리의 소리를 들으며 즐기고, 입으로는 짐승고기와 맛있는 술맛을 실컷 봄으로써 그의 뜻을 만족시키는 한편 그의 할 일은 잊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혼란이라 말할 만한 것입니다. 자 신의 성한 기운에 빠져 들어가 무거운 짐을 지고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고통이라 말할만한 일입니다. 재물을 탐하여 병에 걸리고, 권력을 탐하여 정력을 다 쓰며, 고요히 살게 되면 정욕에 빠지고, 몸이 윤택해지면 정력을 낭비합니다. 그러니 이것이 질병이라 말할 만한 일입니다. 부를 바라고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마음 가득히 담이 둘러쳐진 것처럼 장애가 생기지만 그것을 피할 줄은 모릅니다. 그대로 정력을 사용하여 마지않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치욕이라 말할 만한 일입니다. 재물이 쌓여도 쓸데가 없는데도 재물을 모을 생각을 품은 채 버리지 않습니다. 마음 가득히 번뇌로 가득 차는데도 이익을 추구하여 마지않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우환이라 말할만한 일입니다. 집안에 있으면 강도가 들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밖에 나가면 도적들에게 해를 입지나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집에는 망루와 내다보는 창을 만들어 놓고 밖에는 홀로 다니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것은 두려움이라 말할 만한 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는 천하의 지극한 피해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들 이것을 잊고서 살필 줄 모릅니다. 그 환란이 닥쳐야만 그의 삶을 다하고 재물을 다 바쳐서라도 다만 하루의 무고한 날로라도 돌아가기를 바라지만, 그 때엔 이미 그리 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명예란 관점에서 추구하더라도 얻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얽매고 자기 몸을 해치면서까지 이런 것을 다투고 있으니 또한 미혹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 莊子(雜篇) ; 第29篇 盜?[13]- 无足曰:「必持其名, 苦體絶甘, 約養以持生, 則亦久病長?而不死者也.」 知 和曰:「平爲福, 有餘爲害者, 物莫不然, 而財其甚者也. 今富人, 耳營於鐘鼓管?之聲, 口?於芻??醴之味, 以感其意, 遺忘其業, 可謂亂矣. ?溺於馮氣, 若負重行而上坂也, 可謂苦矣. 貪財而取慰, 貪權而取竭, 靜居則溺, 體澤則馮, 可謂疾矣. 爲欲富就利, 故滿若堵耳而不知避, 且憑而不舍, 可謂辱矣. 財積而无用, 服膺而不舍, 滿心戚醮, 求益而不止, 可謂憂矣, 內則疑?請之賊, 外則畏寇盜之害, 內周樓疏, 外不敢獨行, 可謂畏矣. 此六者, 天下之至害也, 皆遺忘而不知察, 及其患至, 求盡性竭財, 單以反一日之无故而不可得也. 故觀之名則不見, 求之利則不得, ?意體而爭此, 不亦惑乎!」
316` 장자의 세 가지 칼 (잡편:30.설검,1) - 장자(잡편) : 제30편 설검[1]- 조나라 문왕이 칼을 좋아하여 문하에 삼천 검객이 식객으로 모여들었다. 밤낮으로 어전에서 칼싸움을 하여 사상자가 1년에 100명이 넘었다. 그래도 문왕은 싫증을 내지 않고 칼싸움을 좋아하여, 그런 상태로 3년이 지나자 나라가 쇠퇴하여서 제후들이 조나라를 멸망시키려 엿보게 되었다. 태자 회가 이를 걱정하여 좌우의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누구든 임금의 마음을 설득시켜 검객들을 기르는 일을 멈추게 하면 천금을 상으로 내릴 것이다.” 그 중 누군가가 말했다. “장자라면 할 수 있을 겁니다.” 태자는 사람을 시켜 천금을 가지고 가서 장자를 데려오게 했다. 그러나 장자는 그것을 받지 않고 사자와 함께 와서 태자를 만나 말했다. “태자께서는 제게 무엇을 시키려고 천금을 내리셨는지요?” 태자가 말했다. “선생께서 명철한 성인이라는 말을 듣고 천금을 예물로 하여, 사자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께서 받지 않으시니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태자께서 제게 시키실 일이란 임금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위로 임금을 설득시키려다 임금의 뜻을 거스른다면 아래로는 태자의 뜻까지 저버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 몸은 사형을 당하게 될 것인데, 천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약 제가 위로 임금을 설득시키고 아래로 태자의 뜻에 들어맞는다면 조나라에서 제게 무슨 상을 내리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렇군요. 우리 임금은 검객만 좋아하십니다.” “좋습니다. 저도 검술에는 제법 솜씨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임금께서 좋아하는 검객은 모두 더벅머리에 살쩍은 불끈 치솟았으며, 낮게 기울어진 관을 쓰고, 장식이 없는 끈으로 관을 매고, 소매가 짧은 옷을 입었으며, 눈을 부릅뜨고 말을 더듬거립니다. 임금께서는 그래야만 좋아하십니다. 지금 선생께서 유복을 입고 임금을 뵈려 한다면 반드시 일을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검복을 갖추어 주십시오.” 사흘이 걸려 검복이 갖추어지자 장자는 태자를 만났다. 태자는 그를 데리고 임금을 만나러 갔다. 왕은 칼을 뽑아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자는 궁전 문으로 들어가면서도 잰걸음을 걷는 예의를 지키지도 않고, 임금을 보고도 절을 하지 않았다. 임금이 말했다. “그대는 무엇으로 나를 가르치려고 태자로 하여금 소개하도록 하였습니까?” “저는 대왕께서 칼을 좋아하신다는 말을 들었기에 칼로써 임금을 뵈려합니다.” “그대는 칼로 몇 사람이나 대적할 수 있습니까?” “저의 칼은 열 걸음마다 한사람씩 베어 천리를 가도 아무도 가로막지 못합니다.” “천하무적이로다!” “대개 검술이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이쪽의 허점을 보여줌으로써 이로 상대를 유인하고, 상대보다 늦게 칼을 뽑으면서 상대보다 먼저 공격하는 것입니다. 한번 실제로 이를 시험해 보이고 싶습니다.” “우선 좀 쉬십시오. 객사로 물러가 명을 기다리시오. 시합준비를 갖추고 선생을 모시겠습니다.” 임금은 곧 검객들을 7일 동안 시합을 시켜 60여명의 사상자를 낸 뒤, 그 가운데 5, 6명을 골라 궁전 아래 검을 받들고 늘어서게 했다. 그리고는 장자를 불러 말했다. “오늘은 시험삼아 검객들과 검술을 겨루어보게 하겠습니다.” “오랫동안 이 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선생이 평소에 쓰던 칼은 길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제가 쓸 칼은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제게 칼이 세 개 있는데, 임금께서 원하시는 대로 쓰겠습니다. 먼저 이것을 설명 드린 뒤에 시합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 세 가지 칼에 대해 듣고 싶소.” “천자의 칼이 있고, 제후의 칼이 있으며, 서민의 칼이 있습니다.” - 莊子(雜篇) : 第30篇 說劒[1]- 昔趙文王喜劍, 劍士夾門而客三千餘人, 日夜相擊於前, 死傷者歲百餘人, 好之不厭. 如是三年, 國衰, 諸侯謀之. 太子?患之, 募左右曰:「孰能說王之意止劍士者, 賜之千金.」 左右曰:「莊子當能.」 太子乃使人以千金奉莊子. 莊子弗受, 與使者俱, 往見太子曰:「太子何以敎周, 賜周千金?」 太子曰:「聞夫子明聖, 謹奉千金以幣從者. 夫子弗受, ?尙何敢言!」 莊子曰:「聞太子所欲用周者, 欲絶王之喜好也. 使臣上說大王而逆王意, 下不當太子, 則身刑而死, 周尙安所事金乎? 使臣上說大王, 下當太子, 趙國何求而不得也!」 太子曰:「然, 吾王所見, 唯劍士也.」 莊子曰:「諾. 周善爲劍.」 太子曰:「然吾王所見劍士, 皆蓬頭突?垂冠, 曼胡之纓, 短後之衣, 瞋目而語難, 王乃說之. 今夫子必儒服而見王, 事必大逆.」 莊子曰:「請治劍服.」 治劍服三日, 乃見太子. 太子乃與見王, 王脫白刃待之. 莊子入殿門不趨, 見王不拜. 王曰:「子欲何以敎寡人, 使太子先焉?」 曰:「臣聞大王喜劍, 故以劍見王.」 王曰:「子之劍何能禁制?」 曰:「臣之劍, 十步一人, 千里不留行.」 王大悅之, 曰:「天下无敵矣!」 莊子曰:「夫爲劍者, 示之以虛, 開之以利, 後之以發, 先之以至. 願得試之.」 王曰:「夫子休就舍, 待命設?請夫子.」 王乃校劍士七日, 死傷者六十餘人, 得五六人, 使奉劍於殿下, 乃召莊子. 王曰:「今日試使士敦劍.」 莊子曰:「望之久矣.」 王曰:「夫子所御杖, 長短何如?」 曰:「臣之所奉皆可. 然臣有三劍, 唯王所用, 請先言而後試.」 王曰:「願聞三劍.」 曰:「有天子之劍, 有諸侯之劍, 有庶人之劍.」
317` 천자의 칼, 제후의 칼, 서민의 칼 (잡편:30.설검,2) - 장자(잡편) : 제30편 설검[2]- “천자의 칼이란 무엇입니까?” “천자의 칼이란 연나라의 계곡과 변방의 석성을 칼끝으로 하고, 제나라의 태산을 칼날로 삼으며, 진과 위나라가 칼등이 되고, 한나라와 위나라가 칼집이 되며, 사방의 오랑캐들로 씌우고, 사계절로 감싸서, 그것을 발해로 두르고, 상산을 띠 삼아 묶고, 오행으로 제어하고, 형벌과 은덕으로 논하며, 음양의 작용으로 발동하고, 봄과 여름의 화기로 유지하고, 가을과 겨울의 위세로 발휘케 합니다. 이 칼을 곧장 내지르면, 앞을 가로막는 것이 없고, 아래로 내리치면 걸리는 것이 없으며, 휘두르면 사방에 거칠 것이 없습니다. 위로는 구름을 끊고, 아래로는 땅을 지탱하는 큰 줄을 자를 수 있습니다. 이 칼은 한번 쓰기만 하면 제후들의 기강이 바로 서고, 천하가 모두 복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천자의 칼입니다.” 문왕이 멍하니 바라보다 말했다. “제후의 칼은 어떻습니까?” “제후의 칼은 용기 있는 자로 칼끝을 삼고, 청렴한 사람으로 칼날을 삼으며, 현명하고 어진 사람으로 칼등을 삼고, 충성스러운 이로 칼자루의 테를 삼으며, 호걸로 칼집을 삼습니다. 이 칼 역시 곧장 내지르면 앞에 가로막는 것이 없고, 위로 쳐 올리면 위에 걸리는 것이 없으며, 아래로 내치면 아래에 걸리는 것이 없고, 휘두르면 사방에서 당할 것이 없습니다. 위로는 둥근 하늘을 법도로 삼아 해와 달과 별의 세 가지 빛을 따르고, 아래로는 모가 난 땅을 법도로 삼아 사계절을 따르며, 가운데로는 백성들의 뜻을 헤아리어 사방의 온 나라를 편안하게 합니다. 이 칼을 한번 쓰면 천둥소리가 진동하는 듯하며, 나라 안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게 되어 모두가 임금님의 명령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제후의 칼입니다.” “서민의 칼은 어떻습니까?” “서민의 칼은 더벅머리에 살쩍은 비쭉 솟았으며, 낮게 기운 관을 쓰고, 장식이 없는 끈으로 관을 묶었으며, 소매가 짧은 옷을 입고, 부릅뜬 눈에 말을 더디게 하면서 임금님 앞에서 서로 치고 받으며 싸우되, 위로는 목을 베고, 아래로는 간과 폐를 찌릅니다. 이것이 바로 서민의 칼이며, 이른 바 투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일단 목숨을 잃고 나면 이미 나라 일에 쓸모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임금님께서는 천자와 같은 자리에 계시면서도 서민의 칼을 좋아하시니 저는 황공하오나 임금님을 낮게 보고 있습니다.” 임금은 그 말에 장자의 옷소매를 잡아끌고 궁전 위로 올라갔다. 요리사가 음식을 올렸으나 임금은 세 번이나 그 둘레를 맴돌 뿐이었다. 장자가 말했다. “임금께서는 편히 앉으시어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칼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다 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동안 문왕은 궁전을 나가지 않았으며 검객들은 모두가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 莊子(雜篇) : 第30篇 說劒[2]- 王曰:「天子之劍何如?」 曰: 「天子之劍, 以燕谿石城爲鋒, 齊岱爲鍔, 晉衛爲脊, 周宋爲?, 韓魏爲夾. 包以四夷, 裏以四時, 繞以渤海, 帶以恒山. 制以五行, 論以刑德. 開以陰陽, 持以春夏, 行以秋冬. 此劍, 直之无前, 擧之无上, 案之无下, 運之无旁, 上決浮雲, 下絶地紀. 此劍一用, 匡諸侯, 天下服矣. 此天子之劍也.」 文王芒然自失, 曰:「諸侯之劍何如?」 曰: 「諸侯之劍, 以知勇士爲鋒, 以淸廉士爲鍔, 以賢良士爲脊, 以忠聖士爲?, 以豪桀士爲夾. 此劍, 直之亦无前, 擧之亦无上, 案之亦无下, 運之亦无旁. 上法圓天以順三光, 下法方地以順四時, 中和民意以安四鄕. 此劍一用, 如雷霆之震也, 四封之內, 無不賓服而聽從君命者矣. 此諸侯之劍也.」 王曰:「庶人之劍何如?」 曰:「庶人之劍, 蓬頭突?垂冠, 曼胡之纓, 短後之衣, 瞋目而語難. 相擊於前, 上斬頸領, 下決肝肺. 此庶人之劍, 无異於鬪鷄, 一旦命已絶矣, 无所用於國事. 今大王有天子之位而好庶人之劍, 臣竊爲大王薄之.」 王乃牽而上殿. 宰人上食, 王三環之. 莊子曰:「大王安坐定氣, 劍事已畢奏矣.」 於是文王不出宮三月, 劍士皆服斃其處也.
318`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일 (잡편:31.어부,1) 집단` 단체`적 힘`없이 권력`없이 경재력`없이 꿈`이 크면 도전`하면 고난` 갈등` 사명` 320 까지 계속 - 장자(잡편) ; 제31편 어부[1]- 공자가 우거진 숲 속을 가다가 살구나무가 있는 높은 단에 앉아 쉬고 있었다. 제자들은 책을 읽고, 공자는 노래를 부르며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타던 곡조가 채 반도 끝나기 전에 한 어부가 배에서 내려왔다. 수염과 눈썹은 새하얗고 머리칼을 풀어 헤친 채 소매를 휘저으며 강가의 둔덕으로 올라와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으로는 턱을 괸 채 듣고 있었다. 곡이 끝나자 자공과 자로 두 사람을 불러 세우고는 공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자로가 대답했다. “노나라의 군자입니다.” 어부가 물었다. “성씨가 무엇입니까?” 자로가 대답했다. “성은 공씨입니다.” 어부가 물었다. “공씨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자로가 대답하기 전에 자공이 대답을 했다. “공씨는 본성이 충성과 믿음을 지키고 있으며, 몸은 어짊과 의로움을 실행하고, 예의와 음악을 꾸며 놓고, 인륜을 정해 놓았습니다. 위로는 임금께 충성을 다하고, 아래로는 모든 백성을 교화하여 천하를 이롭게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공씨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어부가 다시 물었다. “그는 영토를 가지고 있는 임금입니까?” 자공이 말했다. “아닙니다.” “그럼 제후와 임금을 보좌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러자 어부는 웃으며 돌아서 가면서 중얼거렸다. “어진 것이 어진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 몸은 화를 면치 못하겠구나. 마음을 괴롭히고 몸을 지치게 하여 자신의 참모습을 위태롭게 하는구나. 아아! 그는 도에서 멀리도 떨어져 있구나!” - 莊子(雜篇) ; 第31篇 漁父[1]- 孔子遊於緇?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 奏曲未半. 有漁父者, 下船而來, 須眉交白, 被髮揄袂, 行原以上, 距陸而止, 左手據膝, 右手持?以聽. 曲終而招子貢子路, 二人俱對. 客指孔子曰:「彼何爲者也?」 子路對曰:「魯之君子也.」 客問其族. 子路對曰:「族孔氏.」 客曰:「孔氏者何治也?」 子路未應, 子貢對曰:「孔氏者, 性服忠信, 身行仁義, 飾禮樂, 選人倫, 上以忠於世主, 下以化於齊民, 將以利天下. 此孔氏之所治也.」 又問曰:「有土之君與?」 子貢曰:「非也.」 「侯王之佐與?」 子貢曰:「非也.」 客乃笑而還, 行言曰:「仁則仁矣, 恐不免其身. 苦心勞形以危其眞. 嗚呼, 遠哉其分於道也!」
319` 공자 어부에게 가르침을 청하다 (잡편:31.어부,2) 318 에서 연속 내용 273 도전 사명` 대인` 포부` 꿈` 그릇` 뜻` 큼` - 장자(잡편) ; 제31편 어부[2]- 자공이 돌아와 공자에게 그 사실(318 집편31 어부1)을 알리니, 공자는 거문고를 밀쳐놓고 일어나 말했다. “그는 성인일 것이다.” 그리고는 곧 내려가 그를 뒤쫓아 못 가에 이르니 어부는 막 삿대를 집고 배를 띄우려는 참이었다. 공자를 돌아보고는 몸을 돌려 그를 향해 마주섰다. 공자는 뒷걸음질쳐 두 번 절하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어부가 물었다. “그대는 내게 무슨 볼 일이 있으십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조금 전에 선생께서는 채 말씀을 다 안 해 주시고 떠나셨습니다. 저는 어리석어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 속으로 선생을 모시고 아랫자리에 앉아, 다행히 선생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제게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부가 말했다. “허허 그대는 배우는 것을 무척 좋아하시는군요.” 공자가 두 번 절하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배우기를 좋아하여 이제 예순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극한 가르침은 듣지 못했습니다. 어찌 감히 마음을 비우고 선생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겠습니까?” - 莊子(雜篇) ; 第31篇 漁父[2]- 子貢還, 報孔子. 孔子推琴而起曰:「其聖人與!」 乃下求之, 至於澤畔, 方將杖拏而引其船, 顧見孔子, 還鄕而立. 孔子反走, 再拜而進. 客曰:「子將何求?」 孔子曰:「?者先生有緖言而去, 丘不肖, 未知所謂, 竊待於下風, 幸聞咳唾之音以卒相丘也.」 客曰:「?! 甚矣子之好學也!」 孔子再拜而起曰:「丘少而修學, 以至於今, 六十九歲矣, 无所得聞至敎, 敢不虛心!」
320`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 (잡편:31.어부,3) / 318 잡편 제31편 어부1, / 319 잡편 제31편 어부2 / 에서 연속 되는 내용 - 장자(잡편) ; 제31편 어부[3]- 어부가 말했다. “같은 종류 것들끼리 서로 어울리고, 같은 종류의 소리들끼리 서로 화응하는 것이 본래 천지자연의 도리입니다, 내가 터득한 대도는 미루어 두고 그대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그대가 하는 것은 사람의 일입니다. 천자, 제후, 대부, 서민 이 네 가지 인간이 스스로 제 위치에 바르게 서는 것은,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네 가지 인간이 제자리를 벗어나게 되면 그보다 큰 혼란은 없을 것입니다. 벼슬아치는 그 직무를 수행하고, 사람들은 자기 일에 편히 머물고 있으며, 위아래가 서로 넘보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밭이 황폐하고, 집이 새며, 입고 먹을 것이 부족하고, 세금을 제 때 물지 못하고, 처와 첩들이 화목하지 못하며 어른과 아이간에 질서가 없는 것은 서민의 걱정입니다. 임무를 감당할 능력이 없고, 관청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며, 행동이 청렴하지 못하고, 부하관원들이 일을 게을리 하며, 훌륭한 공적도 올리지 못하고, 벼슬과 녹을 지탱하지 못하는 것은 대부들의 걱정거리입니다. 조정엔 충신이 없고, 국가는 혼란하며, 장인들의 기술은 시원치 않고, 조정에 바치는 공물은 좋은 것이 없으며, 봄과 가을의 조근에는 남보다 뒤지고, 천자와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은 제후들의 걱정거리입니다. 음 양이 조화되지 않고, 추위와 더위가 제철에 맞지 않아 여러 가지 사물들이 그로 인해 손상되고, 제후들이 난리를 일으키어 마음대로 서로를 침략하여 백성들을 해치며, 예악이 절도에 맞지 않고, 재정이 궁핍해지고, 인륜이 어지러워져 백성들이 음란해지는 것은 천자나 그를 보좌하는 재상들의 걱정거리입니다. 지금 그대는 위로는 임금이나 재상의 권력도 없고, 아래로는 대신이라든가 관리 같은 벼슬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멋대로 예악을 꾸미고, 인륜을 정하여 여러 백성들을 교화하고 있으니 너무 쓸데없이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莊子(雜篇) ; 第31篇 漁父[3]- 客曰:「同類相從, 同聲相應, 故天之理也. 吾請釋吾之所有而經子之所以. 子之所以者, 人事也. 天子諸侯大夫庶人, 此四者自正, 治之美也, 四者離位而亂莫大焉. 官治其職, 人處其事, 乃无所陵. 故田荒室露, 衣食不足, 徵賦不屬, 妻妾不和, 長少无序, 庶人之憂也. 能不勝任, 官事不治, 行不淸白, 群下荒怠, 功美不有, 爵祿不持, 大夫之憂也. 廷无忠臣, 國家昏亂, 工技不巧, 貢職不美, 春秋後倫, 不順天子, 諸侯之憂也. 陰陽不和, 寒暑不時, 以傷庶物, 諸侯暴亂, 擅相攘伐, 而殘民人, 禮樂不節, 財用窮?, 人倫不飭, 百姓淫亂, 天子之憂也. 今子旣上无君侯有司之勢, 而下无大臣職事之官, 而擅飾禮樂, 選人倫, 以化齊民, 不亦泰多事乎.
321` 여덟 가지 흠과 네 가지 환란 (잡편:31.어부,4) 성숙` 중용` 대인` 완성` 원만` - 장자(잡편) ; 제31편 어부[4]- “사람에게는 여덟 가지 흠이 있고, 일에는 네 가지 환란이 있으니 그것을 살피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가 할 일이 아닌데도 그 일을 하는 것을 외람됨이라 합니다.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데도 진언하는 것을 간사함이라 합니다. 남의 뜻에 맞도록 말을 이끌어 가는 것을 아첨이라 합니다. 남의 악한 점을 얘기하기 좋아하는 것을 참해라 합니다. 사귀던 사람을 떨어지게 하고 친한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것을 해침이라 합니다. 남을 칭찬하고 속임으로써 남을 악에 떨어뜨리는 것을 간악함이라 합니다.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두 가지 다 받아들이며 얼굴빛을 적응시키고,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을 음험함이라 합니다. (이상의 여덟 가지 흠이란 것은) 밖으로는 사람을 어지럽히고 안으로는 자신을 손상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군자들은 그를 벗하지 않고, 명철한 임금은 그를 신하로 삼지 않습니다. 네 가지 환란이라 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큰 일을 해내기 좋아하고 변경을 잘 시키어 일정한 것들까지 바꾸며 공명을 얻으려 애쓰는 것을 참람함이라 말합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일을 멋대로 하며 남의 것을 침범하여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탐욕함이라 말합니다.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고 간하는 말을 들으면 그 나쁜 짓을 더 심하게 하는 것을 포악함이라 말합니다. 남이 자기에게 찬성을 하면 괜찮지만 자기에게 찬성을 하지 않으면 비록 좋은 일이라도 좋지 않다 하는 것을 횡포함이라 말합니다. 이상이 네 가지 환란입니다. 이 여덟 가지 흠을 버리고 네 가지 환란을 행하지 않아야 비로소 가르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莊子(雜篇) ; 第31篇 漁父[4]- 「且人有八疵, 事有四患, 不可不察也. 非其事而事之, 謂之摠. 莫之顧而進之, 謂之?, 希意道言, 謂之諂. 不擇是非而言, 謂之諛. 好言人之惡, 謂之讒. 析交離親, 謂之賊. 稱譽詐僞以敗惡人, 謂之慝. 不擇善否, 兩容頰適, 倫拔其所欲, 謂之險.此八疵者, 外以亂人, 內以傷身, 君子不友, 明君不臣. 所謂四患者. 好經大事, 變更易常, 以?功名, 謂之?. 專知擅事, 侵人自用, 謂之貪. 見過不更, 聞諫愈甚, 謂之?. 人同於己則可, 不同於己, 雖善不善, 謂之矜. 此四患也. 能去八疵, 无行四患, 而始可敎已.」
322` 발자국을 없애려고 달려가는 사람 (잡편:31.어부,5) 거짓말` 과격` 포기` 무관심` 체념` 중용` - 장자(잡편) ; 제31편 어부[5]- 공자는 슬픈 듯이 탄식하며 두 번 절하고 일어나 말했다. “저는 노나라에서 두 번이나 쫓겨나고, 위나라에서도 추방당하고, 송나라에서는 나무를 베어 넘겨 저를 죽이려 하였고,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를 당했었습니다. 저는 제가 잘못한 것을 알지 못하겠는데도 이러한 네 가지 고통을 겪었던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어부는 슬픈 듯이 얼굴빛을 바꾸면서 말했다. “선생은 정말 깨우칠 줄을 모르시는군요. 어떤 사람이 자기 그림자가 두렵고 자기 발자국이 싫어서 이것들을 떠나 달아나려 하였는데, 발을 빨리 놀릴수록 발자국은 더욱 많아졌고, 아무리 빨리 뛰어도 그림자는 그의 몸을 떠나지 않았다 합니다. 그래도 그 자신은 아직도 느리게 뛰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쉬지 않고 질주하다가 결국에는 힘이 다해 죽고 말았다 합니다. 그는 그늘 속에 쉬면 그림자가 사라지고, 고요히 있으면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리석음이 지나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어짊과 의로움의 뜻을 자세히 알고 있고, 사리가 같고 다른 한계를 잘 살피고 있고, 움직이고 고요히 있는 변화를 잘 관찰하고 있고, 받고 주는 정도를 적절히 할 줄 알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알고, 기쁨과 노여움의 절도를 조화시킬 줄 알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화를 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기 몸을 삼가 닦고 그 진실함을 신중히 지켜 명예 같은 외물은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면 아무런 환란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몸을 닦지 않고서 남에게 그 이유를 묻고 있으니 이것은 사실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莊子(雜篇) ; 第31篇 漁父[5]- 孔子?然而歎, 再拜而起曰:「丘再逐於魯, 削迹於衛, 伐樹於宋, 圍於陳蔡. 丘不知所失, 而離此四謗者何也?」 客悽然變容曰:「甚矣子之難悟也! 人有畏影惡迹而去之走者, 擧足愈數而迹愈多, 走愈疾而影不離身, 自以爲尙遲, 疾走不休, 絶力而死. 不知處陰以休影, 處靜以息迹, 愚亦甚矣! 子審仁義之間, 察同異之際, 觀動靜之變, 適受與之度, 理好惡之情, 和喜怒之節, 而幾於不免矣. 謹修而身, 愼守其眞, 還以物與人, 則无所累矣. 今不修之身而求之人, 不亦外乎!」
323` 자연과 진실함이 귀중한 이유 (잡편:31.어부,6) - 장자(잡편) ; 제31편 어부[6]- 공자가 슬픈 듯이 말했다. “어떤 것을 진실함이라 말하는 것입니까?” 어부가 말했다. “진실한 것이란 정성이 지극한 것입니다. 정성 되지 못하면 남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곡하는 사람은 비록 슬픈 척 해도 슬프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억지로 화난척하는 사람은 비록 엄하게 군다고 하더라도 위압을 주지 못합니다. 억지로 친한 척하는 사람은 비록 웃는다 하더라도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진실로 슬픈 사람은 소리를 내지 않아도 슬프게 느껴집니다. 진실로 노한 사람은 성내지 않아도 위압이 느껴집니다. 진실로 친한 사람은 웃지 않아도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진실함이 속마음에 있는 사람은 정신이 밖으로 발동됩니다. 이것이 진실함이 귀중한 까닭입니다. 그것을 인간생활의 원리에 적용시키면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자애롭고 효성스럽게 되며,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충성스럽고 곧게 되며, 술을 마심에 있어서는 기쁘고 즐겁게 되며, 상을 당하면 슬프고 애통하게 됩니다. 충성스럽고 곧은 것은 공로가 위주가 되며, 술을 마시는 것은 즐거움이 위주가 되며, 상을 치르는 것은 슬픔이 위주가 되며, 부모님을 섬기는 것은 부모님 마음에 드는 것이 위주가 됩니다. 일의 공로를 훌륭하게 이룩하는 데 있어서는 그 방법이 일정해서는 안됩니다. 부모님을 섬기어 마음에 들도록 해드리는 데에 있어서는 방법을 논할 일이 아닙니다. 술을 마심으로써 즐기는 데 있어서는 술잔을 이것저것 고를 것이 없습니다. 상을 당하여 슬퍼함에 있어서는 예의를 따질 일이 아닙니다. 예 의라는 것은 세속적인 행동의 기준입니다. 진실함이란 것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자연은 변경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늘을 법도로 삼고 진실함을 귀중히 여기며 세속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와 반대입니다. 하늘을 법도로 삼지 못하고 사람의 일에 얽매여 고생을 합니다. 진실함을 귀중히 할 줄 모르고 세상일에 따라서 세속과 함께 변화하기 때문에 언제나 만족하지 못합니다. 선생이 일찍이 인위적인 학문에 빠져 위대한 도에 대하여 늦게 듣게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 莊子(雜篇) ; 第31篇 漁父[6]- 孔子?然曰:「請問何謂眞?」 客曰:「眞者, 精誠之至也. 不精不誠, 不能動人. 故强哭者雖悲不哀, 强怒者雖嚴不威, 强親者雖笑不和. 眞悲无聲而哀, 眞怒未發而威, 眞親未笑而和. 眞在內者, 神動於外, 是所以貴眞也. 其用於人理也, 事親則慈孝, 事君則忠貞, 飮酒則歡樂, 處喪則悲哀. 忠貞以功爲主, 飮酒以樂爲主, 處喪以哀爲主, 事親以適爲主, 功成之美, 无一其迹矣. 事親以適, 不論所以矣. 飮酒以樂, 不選其具矣. 處喪以哀, 无問其禮矣. 禮者, 世俗之所爲也. 眞者, 所以受於天也, 自然不可易也. 故聖人法天貴眞, 不拘於俗. 愚者反此. 不能法天而恤於人, 不知貴眞, 祿祿而受變於俗, 故不足. 惜哉, 子之蚤湛於人僞而晩聞大道也.」
324` 어울려 갈만한 사람과 어울려 간다 (잡편:31.어부,7) - 장자(잡편) ; 제31편 어부[7]- 공자가 다시 두 번 절하고 일어나 말했다. “지금 제가 선생님을 뵙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시고 제자처럼 대하시며 몸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생님 댁은 어디십니까. 선생님을 따라가 학업을 닦아 위대한 도를 완전히 배우고 싶습니다.” 어부가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함께 갈만한 사람과는 함께 어울려 오묘한 도에 이르도록 가도 되지만, 함께 갈 수 없는 자는 그런 도를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므로 삼가 함께 어울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몸에 아무런 재난이 없게 될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더 노력하십시오. 나는 이만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만 작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삿대질하여 배를 물에 띄우고 갈대밭 사이로 사라졌다. 안회가 수레를 돌리고 자로는 손잡이 줄을 공자에게 주었으나, 공자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떠나간 배가 남긴 물결이 잠잠해지고 삿대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다음에야 수레에 올랐다. - 莊子(雜篇) ; 第31篇 漁父[7]- 孔子又再拜而起曰:「今者丘得遇也, 若天幸然. 先生不羞而比之服役, 而身敎之. 敢問舍所在, 請因受業而卒學大道.」 客曰:「吾聞之, 可與往者與之, 至於妙道. 不可與往者, 不知其道, 愼勿與之, 身乃无咎. 子勉之! 吾去子矣, 吾去子矣!」 乃刺船而去, 延緣葦間. 顔淵還車, 子路授綏, 孔子不顧, 待水波定, 不聞拏音而後敢乘.
325` 도에 통한 사람이기에 공경을 한다 (잡편:31.어부,8) - 장자(잡편) ; 제31편 어부[8]- 자로가 수레에 다가서면서 물었다. “제가 선생님을 모신지 오래 되었습니다만 선생님께서 사람을 만나 오늘처럼 상대방을 존경하는 일은 보지 못했습니다. 만승의 천자나, 천승의 제후들도 선생님을 뵐 적에는 언제나 뜰에 자리를 함께 마련하고 대등한 예로 대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래도 오만한 듯한 얼굴이셨습니다. 지금 어부는 삿대를 짚은 채 마주 서 있는데도 선생님께서는 허리를 굽히고 몸을 꺾으며 두 번 절하고서야 대답을 하셨습니다. 너무 지나치신 것이 아닙니까? 저희 제자들은 모두 선생님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부에게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공자는 수레 앞턱 나무에 엎드리고 탄식하며 말했다. “자로를 가르쳐 깨우쳐 주기는 너무 어렵구나. 예의에 몰두한지 오래 되었는데도 비루한 마음이 아직도 다 없어지지 않고 있구나. 어른을 만나서 공경하지 않는 것은 실례이다. 현명한 이를 보고도 존경하지 않는 것은 어짊이 아니다. 그가 지극히 어진 이가 아니라면 남을 굴복시키지 못하였을 것이다. 남을 굴복시킨다 하더라도 정성 되지 않았다면 그의 진실함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함이 통하지 않음으로써 언제나 자신을 손상케 되는 것이다. 애석하다. 사람에게 있어 어질지 못한 것처럼 화가 크게 미치는 것이 없는데도 자로는 홀로 멋대로 행동하는구나. 또한 도는 만물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모든 물건이 이것을 잃으면 죽고, 이것을 얻으면 산다. 일을 함에 있어서는 이것을 거스르면 실패를 하고, 이것에 순응하면 성공을 한다. 그러므로 도의 존재에 대하여는 성인들도 존중하는 것이다. 저 어부도 도에 있어서는 터득한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莊子(雜篇) ; 第31篇 漁父[8]- 子路旁車而問曰:「由得爲役久矣, 未嘗見夫子遇人如此其威也. 萬乘之主, 千乘之君, 見夫子未嘗不分庭伉禮, 夫子猶有倨傲之容. 今漁父杖拏逆立, 而夫子曲要磬折, 言拜而應, 得无太甚乎? 門人皆怪夫子矣, 漁人何以得此乎?」 孔子伏軾而歎曰:「甚矣由之難化也! 湛於禮義有間矣, 而樸鄙之心至今未去. 進, 吾語汝! 夫遇長不敬, 失禮也. 見賢不尊, 不仁也. 彼非至人, 不能下人, 下人不精, 不得其眞, 故長傷身. 惜哉! 不仁之於人也, 禍莫大焉, 而由獨擅之. 且道者, 萬物之所由也, 庶物失之者死, 得之者生, 爲事逆之則敗, 順之則成. 故道之所在, 聖人尊之. 今漁父之於道, 可謂有矣, 吾敢不敬乎!」
326`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잡편:32.열어구,1) 처신` 체세술` 인과응보` 업`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1]- 열자가 제나라로 가다말고 돌아오는 길에 백혼무인을 만났다. 백혼무인이 말했다. “어째서 되돌아왔느냐?” “놀랐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놀랐느냐?” “제가 가는 길에 열 집 정도의 주막에서 식사를 했는데, 다섯 집이 제가 돈을 주기도 전에 먼저 식사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의 일로 네가 어찌 놀랐단 말이냐?” “그것은 저의 속마음의 정성됨이 아직 덜 풀려 외형으로 그것이 드러나 빛을 이룸으로써 밖으로 사람들의 마음의 위압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저보다도 노인은 가볍게 여기게 하고 공경하지 않게 한 것이니, 제 자신의 환난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특히 주막의 주인이란 다만 음식을 팔아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들이며, 그 이익 또한 보잘 것 없고 권한도 작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그처럼 대했으니 하물며 만승의 군주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의 몸은 나라를 위해 애쓰고 있고, 그의 정신은 정사를 처리하는 데 다 쓰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가면, 그는 제게 나라 일을 맡기어 공을 세우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놀랐다는 것입니다.” “네 생각이 참 훌륭하구나. 그러나 네가 그처럼 처신하면, 사람들이 너를 따르게 될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1]- 列禦寇之齊, 中道而反. 遇伯昏?人. 伯昏?人曰:「奚方而反?」 曰:「吾驚焉.」 曰:「惡乎驚?」 曰:「吾嘗食於十[將+食], 而五장[將+食]先饋.」 伯昏?人曰:「若是, 則汝何爲驚已?」 曰:「夫內誠不解, 形諜成光, 以外鎭人心, 使人輕乎貴老, 而[?+?]其所患. 夫[將+食]人特爲食羹之貨, 無多餘之?, 其爲利也薄, 其爲權也輕, 而猶若是, 而況於萬乘之主乎! 身勞於國而知盡於事, 彼將任我以事而效我以功, 吾是以驚.」 伯昏?人曰:「善哉觀乎! 汝處已, 人將保女矣!」
327` 사람들이 따르도록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잡편:32.열어구,2)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2]- 얼마 뒤에 백혼무인이 열자에게 가보니 과연 문밖에 신이 가득했다. 백혼무인은 북쪽을 향해 서서 지팡이에 턱을 괴고 한참을 서 있다가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 문지기가 그 사실을 열자에게 전하자, 열자는 신을 든 채 맨발로 문간까지 뛰어나왔다. “선생님께서는 모처럼 만에 오셔서는 도움이 될 만한 가르침도 주지 않으시고 가시려하십니까?” “그만두거라. 내가 이미 네게 세상사람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건만, 역시 너를 따르고 있구나. 네가 사람들로 하여금 따르게 한 것이 아니라, 네가 사람들로 하여금 따르지 않도록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가르칠 필요가 있겠느냐? 남을 감동시키고 기쁘게 만드는 것은 뭔가 남과 다른 특이한 점을 겉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즉 꼭 남을 감동시키려면 자기의 본성을 뒤흔들어야 할 것이니, 그것 또한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너와 어울리는 자들은 네게 아무것도 얘기해 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내뱉는 쓸모 없는 말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해독을 끼칠 뿐이다. 남을 깨우쳐 주지도 못하고 스스로가 깨닫지도 못하는 자들과 어찌 터놓고 사귀겠느냐? 기교가 많은 자는 수고로울 것이며, 아는 것이 많은 자는 걱정이 많은 법이다. 능력이 없는 자는 오히려 추구하는 것이 없을 것이니, 배불리 먹고 유유히 노닐다가 매어있지 않은 배처럼 두둥실 떠다니고 마음을 텅 비워 무심히 소요하게 될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2]- 無幾何而往, 則戶外之?滿矣. 伯昏?人北面而立, 敦杖蹙之乎?, 立有間, 不言而出. 賓者以告列子, 列子提?, 跣而走, ?乎門, 曰:「先生旣來, 曾不發藥乎?」 曰: 「已矣, 吾固告汝曰人將保汝, 果保汝矣. 非汝能使人保汝, 而汝不能使人无保汝也, 而焉用之感豫出異也! 必且有感搖而本才, 又无謂也. 與汝遊者又莫汝告也, 彼所小言, 盡人毒也. 莫覺莫悟, 何相孰也! 巧者勞而知者憂, 无能者无所求, 飽食而敖遊, 汎若不繫之舟, 虛而敖遊者也.」
328` 우물을 파서 마시는 것도 자연의 힘이다 (잡편:32.열어구,3)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3]- 정나라 사람 완이 구씨라는 고장에서 책을 읽어 삼 년이 지나자 유자(儒者)가 되었다. 황하가 물가 구리의 땅을 적셔 주듯 그의 공부한 덕택에 삼족에 영향이 미쳤다. 그리고 그의 아우를 묵자(墨者)로 만들어 유가와 묵가가 서로 토론을 벌였다. 그의 아버지가 묵가의 편을 들자 십 년 만에 완은 자살하고 말았다. 그의 아버지 꿈에 그가 나타나서 말했다. “아버님 자식을 묵자로 만든 것은 저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미 제 무덤 가 잣나무의 열매가 익도록 한번 찾아 주시지도 않으십니까?” 조물주가 사람들에게 보답할 때엔 그 사람에게 보답하지 않고, 그 사람의 천성에 보답하는 것이다. 그는 그 때문에 유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유자가 됨으로써 남과는 특이한 존재라 생각하고, 자기 부모까지 업신여기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우물을 파고 물을 마시면 그것은 자연의 힘이 아니라 그것은 자기의 힘이라 생각하고 서로 싸운다. 그러므로 지금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이 완과 같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덕을 지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물며 도를 터득한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옛날에는 자연의 공로는 잊고 자기 능력만을 믿는 것을 자연으로부터 도망쳐 형벌을 받는 자라 말했다. 성인은 그가 편안히 지낼 곳에 편안히 지내며, 편안치 않은 곳에는 편안치 않게 지내는 법이다. 여러 사람들은 편안치 않은 곳에 편안히 지내고, 편안한 곳에서는 편안치 않게 지내려 하고 있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3]- 鄭人緩也呻吟於?氏之地. 祇三年而緩爲儒, 河潤九里, 澤及三族, 使其弟墨. 儒墨相與辯, 其父助翟. 十年而緩自殺. 其父夢之曰:「使而子爲墨者予也. 闔嘗視其良, 旣爲秋柏之實矣?」 夫造物者之報人也, 不報其人而報其人之天. 彼故使彼. 夫人以己爲有以異於人以賤其親, 齊人之井飮者相?也. 故曰今之世皆緩也. 自是, 有德者以不知也, 而況有道者乎! 古者謂之遁天之刑. 聖人安其所安, 不安其所不安. 衆人安其所不安. 不安其所安.
329` 알기는 쉽지만 말하지 않기는 어렵다 (잡편:32.열어구,4)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4]- 장자가 말했다. “도를 알기는 쉽지만, 그것을 말하지 않기는 어렵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이 자연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인위로 나아가는 근거가 된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스러웠지 인위적은 아니었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4]- 莊子曰:「知道易, 勿言難. 知而不言, 所以之天也. 知而言之, 所以之人也. 古之至人, 天而不人.」
330` 기술이란 쓸모가 있어야 한다 (잡편:32.열어구,5)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5]- 주평만은 용 잡는 방법을 지리익에게 배웠는데, 수업료로 천금이 나가는 집을 세 채나 팔아 바쳤다. 그러나 기술을 습득한 다음에는 그 기술을 쓸 곳이 없었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5]- 朱?漫學屠龍於支離益, 單千金之家, 三年技成而无所用其巧.
331` 고집하면 적개심이 생기고 그로 인해 멸망한다 (잡편:32.열어구,6) 중용` 고집` 과격` 강경`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6]- 성인은 꼭 그런 것도 꼭 그렇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에 투기가 없다. 보통 사람들은 꼭 그렇지 않은 것도 꼭 그렇다고 고집한다. 그래서 마음에 살기가 많은 것이다. 마음의 살기를 따르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에는 추구하는 것이 있게 된다. 이러한 살기에 의지하여 행동하면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6]- 聖人以必不必, 故无兵. 衆人以不必必之, 故多兵. 順於兵, 故行有求. 兵, 恃之則亡.
332` 소인과 지인의 정신자세의 차이 (잡편:32.열어구,7)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7]- 소인의 지혜란 선물을 주고받고, 편지를 주고받고 하는 범위를 떠나지 못하는 것인데도, 정신을 천박한 일들을 위해 피폐하게 한다. 그런데도 도와 물건에 대하여 아울러 터득을 해 가지고 도와 물건을 합치시키려 하고 있다. 이러한 자들은 우주 속에서 미혹되어 물건에 마음이 장애를 받아 태초의 묘한 이치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지인(至人)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정신을 시작도 없는 허무한 상태로 귀착시키고, 아무것도 없는 자유로운 고장에서 단잠을 자며, 아무런 물건에도 구애됨이 없이 물처럼 흐르며, 태청의 텅 비고 밝은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슬프다, 그대들은 터럭 끝 만한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크게 안정된 경지는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7]- 小夫之知, 不離苞?竿牘, ?精神乎蹇淺, 而欲兼濟道物, 太一形虛. 若是者, 迷惑於宇宙, 形累不知太初. 彼至人者, 歸精神乎无始而甘冥乎无何有之鄕. 水流乎无形, 發泄乎太淸. 悲哉乎! 汝爲知在毫毛, 而不知大寧!
333` 치질을 핥아 수레를 얻는 것 (잡편:32.열어구,8)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8]- 송나라 사람 중에 조상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송나라 임금을 위해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그가 갈 때에는 수레 몇 채가 주어졌었는데, 진나라 임금이 그를 좋아하여 백 채의 수레를 더 보태어 주었다. 그는 송나라로 돌아와서 장자를 만나 말했다. “옹색한 골목의 궁한 집에 살면서, 곤궁하여 짚신이나 신고, 깡마르고 부황난 얼굴을 하고 지내는 것은 저로서는 잘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단번에 만승의 천자를 깨우치고 백 채의 수레를 뒤따르게 하는 일은 제가 잘하는 일입니다.” 장자가 말했다. “진나라 임금이 병이 나서 의원을 불렀습니다. 종기를 째고 고름을 짜 주는 자에게는 수레 한 채를 내렸습니다. 고름을 빠는 자에게는 수레 다섯 채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치료하는 방법이 하천 할수록 내려지는 수레는 더욱 많았습니다. 당신은 그의 치질을 핥아 고쳐주었습니까? 어찌 그토록 많은 수레를 받았습니까? 어서 가보십시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8]- 宋人有曹商者, 爲宋王使秦. 其往也, 得車數乘. 王說之, 益車百乘. 反語宋, 見莊子曰:「夫處窮閭陋巷, 困窘織?, 槁項黃?者, 商之所短也. 一悟萬乘之主而從車百乘者, 商之所長也.」 莊子曰:「秦王有病召醫, 破癰潰?者得車一乘, ?痔者得車五乘, 所治愈下, 得車愈多. 子豈治其痔邪, 何得車之多也? 子行矣!」
334` 형식만을 꾸미는 자에게 정치를 맏길 수 없다 (잡편:32.열어구,9)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9]- 노나라 애공이 안합에게 물었다. “나는 공자를 나라의 대신으로 삼고자 하는데 그러면 나라가 다스려지겠습니까?” 안합이 말했다. “위태롭고 위험한 일입니다. 공자는 지금 새의 깃으로 장식을 하고도 채색을 더 하는 짓을 하고 있고, 화려한 말을 늘어놓는 일에 종사하고 있으며, 지엽적인 것들로 주지를 삼고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을 삐뚤게 해서 백성들에게 가르치면서도 백성들의 마음에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들의 정신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백성들의 위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백 성들이란 피차가 서로 어울려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면 그 뿐인 것입니다. 지금 백성들로 하여금 사실을 떠나 거짓됨을 배우게 한다면, 백성들을 가르치는 방법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후세를 위해 생각하신다면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를 써서 나라를 다스리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9]- 魯哀公問乎顔闔曰:「吾以仲尼爲貞幹, 國其有?乎?」 曰:「殆哉急乎! 仲尼方且飾羽而畵, 從事華辭, 以支爲旨, 忍性以視民而不知不信, 受乎心, 宰乎神, 夫何足以上民! 彼且女與? 予?與? 誤而可矣. 今使民離實學僞, 非所以視民也, 爲後世慮, 不若休之. 難治也.」
335` 이익을 전제로 하면 도와는 멀어진다 (잡편:32.열어구,10)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10]-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면 잊지 않는다. 하늘이 은택을 베푸는 것은 이와 다르다. 장사꾼은 도를 얘기할 자격이 없다. 비록 일 때문에 도에 대하여 관여한다 하더라도 정신은 도와 함께 있지 않은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10]- 施于人而不忘, 非天布也. 商賈不齒, 雖以事齒之, 神者弗齒.
336` 진인만이 안팎의 고통에서 벗어난다 (잡편:32.열어구,11)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11]- 사람이 밖으로부터 받는 형벌이란 쇠와 나무로 만든 형구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안으로부터 받는 형벌이란 마음의 동요와 지나침 때문이다. 소인으로서 밖으로부터 형벌을 받는 자는 쇠와 나무로 만든 형구에 의하여 신문을 당하지만, 안으로부터의 형벌을 받는 사람은 음양의 두 기운의 부조화에 의하여 잠식을 당한다. 이러한 안팎으로부터의 형벌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인(眞人)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11]- 爲外刑者, 金與木也. 爲內刑者, 動與過也. 宵人之離外刑者, 金木訊之. 離內刑者, 陰陽食之. 夫免乎外內之刑者, 唯眞人能之. 337` 공자의 사람 보는 법 아홉 가지 (잡편:32.열어구,12)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12]- 공자가 말했다. “사람들의 마음이란 산천보다도 험난한 것이어서 자연에 대하여 알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자연에는 봄, 가을과 겨울, 여름 및 아침, 저녁의 일정한 시간의 변화가 있다. 사람이란 두툼한 외모 속에 감정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러므로 외모는 성실한 듯 하면서도 마음은 교만한 자가 있고, 외모는 잘난 듯 하면서도 사실은 못난 자가 있고, 외모는 신중한 듯 하면서도 마음은 경박한 자가 있고, 외모는 견실한 듯 하면서도 속은 유약한 자가 있고, 외모는 느린 듯 하면서도 마음은 성급한 자가 있다. 그러므로 목마른 듯이 의로움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뜨거운 것을 피하듯 의로움을 떠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멀리 놓고 부리면서 그의 충성됨을 살피고, 가까이 놓고 부리면서 그의 공경함을 살피는 것이다. 그에게 번거로운 일을 시키고서 그의 능력을 살피고, 갑자기 질문함으로써 그의 지혜를 살피는 것이다. 급작스럽게 그와 약속을 함으로써 그의 신용을 살피고, 재물을 그에게 맡겨봄으로써 그의 어짊을 살피는 것이다. 그에게 위태로움을 얘기해줌으로써 그의 절의를 살피고, 그를 술로 취하게 함으로써 그의 법도를 살피는 것이다. 남녀가 섞여 지내게 함으로써 그의 호색함의 정도를 살피는 것이다. 이 아홉 가지 시험을 다 마치면 못난 자를 가려낼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12]- 孔子曰:「凡人心險於山川, 難於知天. 川猶有春秋冬夏旦暮之期, 人者厚貌深情. 故有貌愿而益, 有長若不肖, 有順?而達, 有堅而?, 有緩而?. 故其就義若渴者, 其去義若熱. 故君子遠使之而觀其忠, 近使之而觀其敬, 煩使之而觀其能, 卒然問焉而觀其知, 急與之期而觀其信, 委之以財而觀其仁, 告之以危而觀其節, 醉之以酒而觀其則, 雜之以處而觀其色. 九徵至, 不肖人得矣.」
338` 지위가 높아질수록 겸손해져야 한다 (잡편:32.열어구,13)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13]- 정고부는 사(士)에 임명되자 허리를 굽히고, 대부에 임명되자 온몸을 굽히고, 경으로 임명되자 몸을 굽히고 담장 아래로 붙어 걸어다녔다. 이런 태도는 누구나 모범으로 삼아야할 일이다. 보통 사람들을 보면 사에 임명되면 몸을 뻣뻣이 거만한 태도를 지니고, 대부에 임명되면 수레 위에서 춤이라도 출 듯 멋대로 행동하고, 경에 임명되기만 하면 자기 아저씨들까지 이름을 부를 정도가 된다. 이들은 요임금이나 허유의 겸손한 태도에 합치될 수가 없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13]- 正考父, 一命而?, 再命而?, 三命而俯, 循牆而走, 孰敢不軌! 如而夫者, 一命而呂鉅, 再命而於車上?, 三命而名諸父, 孰協唐許! 339` 사람이 궁해지는 여덟 가지 법칙 (잡편:32.열어구,14)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14]- 사람을 해치는 일 중에서 덕에 대하여 유위(有爲)한 마음을 갖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그 마음이 눈썹처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이 눈썹처럼 움직이게 되면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보고 판단한다. 자기 마음대로 보고 판단을 하면 실패를 하게 된다. 흉한 덕에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중덕(中德)이 그 중에서도 첫째가는 것이다. 무엇을 중덕이라 하는가? 중덕이란 것은 자기 마음으로만 판단을 하여 무엇을 좋아하고 한편으로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욕하는 것이다. 궁하여 지는 데는 여덟 가지 법칙이 있고, 뜻대로 통하게 되는 데에는 꼭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이 있으며, 육체에 화를 부르는 데에는 여섯 가지 조건이 있다. 아름답고, 멋진 수염이 났고, 키가 크고, 몸집이 크고, 힘이 세고, 멋이 있고, 용기가 있고, 과감한 이 여덟 가지가 모두 남보다 뛰어나면, 이것 때문에 궁해지는 것이다. 밖의 물건에 순응하고, 남을 따라 행동하고, 곤경에 빠져 남만 못한 듯 두려워하는 것, 이 세 가지 것은 모두 사람을 통달하게 하는 것이다. 지혜는 밖의 물건에만 통용되는 것이며, 용기 있게 행동하는 것은 많은 원망을 사게 되며, 어짊과 의로움을 내세우는 것은 많은 책망을 듣게 된다. 삶의 실정에 통달해 있는 사람은 위대하다. 지식에 통달해 있는 사람은 작아 보인다. 위대한 천명에 통달해 있는 사람은 자연을 따라 자유롭다. 자기의 작은 운명에만 통달해 있는 사람은 운명에 기대를 건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14]- 賊莫大乎德有心而心有睫, 及其有睫也而內視, 內視而敗矣, 凶德有五, 中德爲首. 何謂中德? 中德也者, 有以自好也而?其所不爲者也. 窮有八極, 達有三必, 形有六府. 美髥長大壯麗勇敢, 八者俱過人也, 因以是窮. 緣循偃?, 困畏不若人, 三者俱通達. 智慧外通, 勇動多怨, 仁義多責. 達生之情者傀, 達於知者肖. 達大命者隨, 達小命者遭.
340` 아첨으로 이익을 얻는 것은 위험하다 (잡편:32.열어구,15)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15]- 어떤 사람이 송나라 임금을 만났는데 수레 열 채를 받았다. 그는 수레 열 채를 받았다고 장자에게 자랑을 했다. 장자가 말했다. “황하가에 가난하게 사는 집이 있는데, 싸리로 삼태기를 짜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집 아들이 하루는 깊은 물에 잠수를 하여 천금의 진주를 얻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돌을 가져다 깨뜨려버려라. 천금의 진주란 반드시 깊은 물 속 검은 용의 턱 밑에 있는 것이다. 네가 그 진주를 주울 수 있었던 것은 마침 용이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검은 용이 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면 네가 어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 나올 수 있었겠느냐?」 지금 송나라의 알 수 없기는 깊은 물에 그치는 정도가 아니고, 송나라 임금의 사나움은 검은 용에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당신이 수레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송나라 임금이 깨어 있었다면 당신은 가루가 되었을 것입니다.”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15]- 人有見宋王者, 錫車十乘, 以其十乘驕穉莊子. 莊子曰:「河上有家貧恃緯蕭而食者, 其子沒於淵, 得千金之珠. 其父謂其子曰:‘取石來鍛之! 夫千金之珠, 必在九重之淵而驪龍?下, 子能得珠者, 必遭其睡也. 使驪龍而寤, 子尙奚微之有哉!’ 今宋國之深, 非直九重之淵也. 宋王之猛, 非直驪龍也. 子能得車者, 必遭其睡也. 使宋王而寤, 子爲[勅+?]粉矣!」
341` 높은 관직이란 재물로 쓰이는 소와 같다 (잡편:32.열어구,16)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16]- 어떤 사람이 장자를 초빙하려 하자, 장자가 그의 사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제물로 쓰이는 소를 본 일이 있습니까? 무늬가 수놓인 옷을 입고, 좋은 풀과 콩을 먹으며 지내지만, 일단 그 소가 끌려서 태묘로 들어갈 때가 되면 비록 외로운 송아지가 되려 한다 해도 될 수가 있겠습니까?”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16]- 或聘於莊子. 莊子應其使曰:「子見夫犧牛乎? 衣以文繡, 食以芻菽, 及其牽而入於大廟, 雖欲爲孤犢, 其可得乎!」
342` 하늘과 땅을 관으로 삼고 (잡편:32.열어구,17)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17]- 장자가 죽으려 할 때, 제자들이 그를 성대히 제사 지내려 했다.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관과 관 뚜껑으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구슬 장식으로 삼고, 별자리들을 진주와 옥 장식으로 삼고, 만물을 부장품으로 삼으려 하니, 나의 장례 용품은 다 갖추어진 것이 아니냐? 여기에 더 무엇을 보태려 하느냐?” 제자들이 말했다. “저희들은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을 뜯어먹을까 두렵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위쪽에 놓아두면 까마귀와 솔개가 먹을 것이고, 아래쪽에 묻으면 개미들이 먹을 것이다. 어느 것들이 먹는다고 그것을 빼앗아 다른 것들에게 주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리 편벽되게 생각을 하는 것이냐?”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17]- 莊子將死, 弟子欲厚葬之. 莊子曰:「吾以天地爲棺槨, 以日月爲連璧, 星辰爲珠璣, 萬物爲齎送. 吾葬具豈不備邪? 何以加此!」 弟子曰:「吾恐烏鳶之食夫子也.」 莊子曰:「在上爲烏鳶食, 在下爲?蟻食, 奪彼與此, 何其偏也!」
343` 사물에 무심히 감응할 줄 알아야 한다 (잡편:32.열어구,18) - 장자(잡편) ; 제32편 열어구[18]- 공평치 못한 척도로써 공평하게 하려 한다면 공평한 것조차도 공평하지 못하게 된다. 올바로 감응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사물에 감응하려 한다면, 올바로 감응 할 것조차도 제대로 감응하지 않게 된다. 명철한 사람이란 오직 외물을 따라 부림을 당하는 것이며, 신령스러운 사람이란 외물을 따라 감응하여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명철한 것이 신령스러운 것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오래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은 그들이 본 것에 의지하고서 인위적인 일에 빠져들어 간다. 그들의 공로란 모두 외부적인 것들이니 또한 슬프지 않은가? - 莊子(雜篇) ; 第32篇 列禦寇[18]- 以不平平, 其平也不平. 以不徵徵, 其徵也不徵. 明者唯爲之使, 神者徵之. 夫明之不勝神也久矣, 而愚者恃其所見入於人, 其功外也, 不亦悲乎!
344` 도는 원래 하나이다 (잡편:33.천하,1)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1]- 천 하에는 도술을 닦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자기가 닦은 것으로 그 위에 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옛날의 이른바 도술이라 하는 것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이었는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없었다. 그러면 신령함은 어디로부터 내려왔으며, 명철함은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가? 성인도 생겨난 근원이 있고, 왕도도 이루어진 근원이 있는데, 모두가 한 가지 도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1]- 天下之治方術者多矣, 皆以其有爲不可加矣. 古之所謂道術者, 果惡乎在? 曰:「无乎不在.」 曰:「神何由降? 明何由出?」 「聖有所生, 王有所成, 皆原於一.」
345` 천인, 신인, 지인, 성인, 군자, 관리, 백성 (잡편:33.천하,2)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2]- 대종(大宗)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은 것을 천인(天人)이라 말한다. 깨끗하고 순수함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은 것을 신인(神人)이라 말한다. 참된 것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은 것을 지인(至人)이라 말한다. 하늘을 대종으로 삼고, 덕을 근본으로 삼고, 도를 드나드는 문으로 삼고, 모든 변화를 초월하는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말한다. 어짊을 은혜로운 것으로 삼고, 의로움을 원리로 삼고, 예의를 행동기준으로 삼고, 음악을 조화의 방법으로 삼고, 훈훈하게 자애로운 사람을 군자(君子)라 말한다. 법 으로 분계(分界)를 삼고 명분으로 의표(儀表)를 삼고, 여러 가지 일을 참고하는 것으로 징험을 삼고, 고찰하는 것으로 시비의 판단을 내려 그 방법이 숫자를 하나, 둘, 셋, 넷 하고 세는 것처럼 분명한 것으로서 여러 관리들은 서로 어울려 나라를 위해 일한다. 여러 가지 일에 평상적으로 종사하고, 먹고 입는 것을 위주로 삼으며, 가축을 늘이고 재물을 모으며, 노인과 어린아이와 외로운 사람과 과부들을 마음에 두고 모두를 양육해 주는 것이 백성들의 원리인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2]- 不離於宗, 謂之天人. 不離於精, 謂之神人. 不離於眞, 謂之至人, 以天爲宗, 以德爲本, 以道爲門, 兆於變化, 謂之聖人. 以仁爲恩, 以義爲理, 以禮爲行, 以樂爲和, 薰然慈仁, 謂之君子. 以法爲分, 以名爲表, 以參爲驗, 以稽爲決, 其數一二三四是也, 百官以此相齒, 以事爲常, 以衣食爲主, 以蕃息畜藏爲意, 老弱孤寡皆有以養, 民之理也.
346` 육경에 대하여 (잡편:33.천하,3)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3]- 옛날 사람들은 본성을 완비하고 있어서, 그들은 신명(神明)에 합치되고, 하늘과 땅에 어울리어 만물을 생육시키고, 천하 사람들을 화합하게 하여 은택이 온 백성들에게 미치었다. 그들은 근본적인 원리에도 밝았지만, 말단적인 법도에도 잘 적용시켰다. 그리하여 그들의 도는 천지사방으로 통하여 크고 작고 가늘고 굵은 모든 사물의 운행에 도가 적용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것이 분명히 원리와 법도로서 나타나 있는 것으로는 옛날의 법이나 세상에 전하여지는 역사서 들에 아직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시경, 서경, 예경, 악경 등에 기록되어 있는 것들은 추땅과 노나라의 선비들과 유학자들이 대부분 밝혀 놓고 있다. 시경은 뜻을 서술한 것이고, 서경은 사건들을 서술한 것이며, 예경은 행동에 대하여 서술한 것이고, 악경은 조화에 대하여 서술한 것이다. 역경은 음양의 변화에 대하여 서술한 것이고, 춘추는 명분에 대하여 서술한 것이다. 그들의 법도는 온 천하에 퍼져서 유행하게 된 것을 보면, 백가(백가)들의 학문 중에서 간혹 그들을 칭찬하고 따르기도 한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3]- 古之人其備乎! 配神明, 醇天地, 育萬物, 和天下, 澤及百姓, 明於本數, 係於末度, 六通四?, 小大精粗, 其運无乎不在. 其明而在數度者, 舊法世傳之史, 尙多有之. 其在於詩書禮樂者, 鄒魯之士搢紳先生, 多能明之. 其數散於天下而設於中國者, 百家之學時或稱而道之.
347` 한 곳에 치우친 학문들 (잡편:33.천하,4)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4]-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성현들이 밝게 드러나지 않고 도덕이 통일되지 않게 되었다. 세상사람들은 한가지 견해를 더 많이 터득한 것을 가지고 스스로를 뽐내게 된 것이다. 비유를 들것 같으면 귀와 눈과 코와 입은 모두 제각기 분명한 기능이 있지만 그것이 서로 통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마치 백가들의 여러 가지 재주와 같은 것이다. 모두가 특징이 있어서 때로 쓰이는 데가 있는 것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모든 일에 적용될 수 없는 한 쪽 모퉁이로 치우쳐진 학문을 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하늘과 땅의 아름다운 기능을 애써 분별하고, 만물의 이치를 일부러 분석하여, 옛사람들의 완전함을 흐트러지게 해놓고 있다. 따라서 하늘과 땅의 아름다움을 완비하고 신명스런 모습에 어울리기는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내성(內聖)과 외왕(外王)이 캄캄하게 밝혀지지 않고 엉키어서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제각기 자기가 바라는 것을 닦아서 스스로 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슬 프다! 백가의 여러 학자들은 자기들 생각대로만 달려나가면서 근본으로 되돌아올 줄 모르고 있으니, 절대로 그들은 도에 합치되지 못할 것이다. 후세의 학자들은 불행히도 하늘과 땅의 순수함이나 옛사람들의 전체적인 모습은 보지 못하고 있으니, 올바른 도술은 세상의 학자들에 의하여 갈기갈기 찢기게 되어 있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4]- 天下大亂, 賢聖不明, 道德不一, 天下多得一察焉以自好. 譬如耳目口鼻, 皆有所明, 不能相通. 猶百家衆技也, 皆有所長, 時有所用. 雖然, 不該不?, 一曲之士也. 判天地之美. 析萬物之理, 察古人之全, 寡能備於天地之美, 稱神明之容. 是故內聖外王之道, 闇而不明, 鬱而不發, 天下之人各爲其所欲焉以自爲方. 悲夫, 百家往而不反, 必不合矣! 後世之學者, 不幸不見天地之純, 古人之大體, 道術將爲天下裂.
348` 세상과 먼 것은 왕도가 아니다 (잡편:33.천하,5)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5]- 후세에 사치하지 않게 하고, 만물을 꾸며대지 않게 하고, 법도를 밝히지 아니하고, 어짊과 의로움의 제도로 스스로를 격려하며, 재물을 처축하여 세상의 환란에 대비한다. 옛날의 도술을 닦은 사람들 중에도 이러한 경향을 띤 사람들이 있었다. 묵적과 금활리는 그런 가르침을 듣고서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함에 있어서 너무나 지나쳤고, 자기 위주로 지나치게 행동했다. 그는 음악을 부정하는 이론을 세우고, 거기에 절용(節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살아서는 노래하지 않고, 죽어도 상복도 입지 않았다. 묵자는 널리 사람들을 평등하게 사랑하고 다 같이 이롭게 해주어야 하며, 싸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도는 노여워하지 않고, 또 널리 배우기를 좋아하며, 남과의 구별을 부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옛 임금들의 법도와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옛날의 예의와 음악을 파괴하는 것이다. 황 제에게는 함지라 하는 음악이 있었고, 요임금에게는 대장이라는 음악이 있었고, 순임금에게는 대소라는 음악이 있었고, 우임금에게는 대하라는 음악이 있었고, 탕임금에게는 대호라는 음악이 있었고, 문왕에게는 벽옹이라는 음악이 있었고, 무왕과 주공은 무라는 음악을 만들었다. 옛날의 상례는 귀천에 따른 의식이 달리 있었고, 위아래 신분에 따른 등급이 있었다. 천자는 관을 일곱 겹으로 하였고, 제후는 다섯 겹, 대부는 세 겹, 사는 두 겹이었다. 지금 묵자 만이 살아서는 노래하지 않고, 죽어도 상복을 입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삼촌 두께의 오동나무 관에 겉 관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법식으로 삼는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다 보면 아마도 사람들은 남을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며,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가 행동을 하다보면 틀림없이 자기 스스로도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묵자의 도를 일부러 파괴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노래를 해야 할 때도 노래하지 않고, 곡을 해야 할 때도 곡을 하지 않고, 즐겨야 할 때도 즐기지 않는다면 이것을 과연 인정에 가까운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살아서는 열심히 일만 하고, 죽어서는 박대를 받게 되니, 그들의 도란 너무 각박한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근심이나 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슬프게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행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성인의 도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세 상 사람들의 마음을 배반하는 것이므로 세상 사람들은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묵자가 비록 홀로 그것을 실행할 수 있다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어찌 할 것인가? 온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왕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5]- 不侈於後世, 不靡於萬物, 不暉於數度, 以繩墨自矯, 而備世之急. 古之道術有在於是者. 墨翟禽滑釐聞其風而說之. 爲之大過, 已之大循. 作爲非樂, 命之曰節用. 生不歌, 死无服. 墨者氾愛兼利而非鬪, 其道不怒. 又好學而博, 不異, 不與先王同, 毁古之禮樂. 黃 帝有咸池, 堯有大章, 舜有大韶, 禹有大夏, 湯有大濩, 文王有?雍之樂, 武王周公作武. 古之喪禮, 貴賤有儀, 上下有等, 天子棺槨七重, 諸侯五重, 大夫三重, 士再重. 今墨子獨生不歌, 死不服, 桐棺三寸而无槨, 以爲法式. 以此敎人, 恐不愛人. 以此自行, 固不愛己. 未敗墨子道, 雖然, 歌而非歌, 哭而非哭, 樂而非樂, 是果類乎? 其生也勤, 其死也薄, 其道大?, 使人憂, 使人悲, 其行難爲也, 恐其不可以爲聖人之?道, 反天下之心, 天下不堪. 墨子雖獨能任, 奈天下何! 離於天下, 其去王也遠矣.
349` 묵자는 근검이 도라 말하였다 (잡편:33.천하,6)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6]- 묵자는 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옛날 우임금은 홍수를 막고, 장강과 황하의 물을 터 흐르게 하고, 사방의 오랑캐 땅과 온 중국 땅에 교통이 서로 통하게 했다. 그 때 다스린 명산이 삼백 개였고, 지류는 삼천 갈래였으니, 그밖에 작은 것들은 무수하다. 우임금은 친히 삼태기와 가래를 들고서 천하의 강물을 모아 바다로 흐르게 했다. 그 때문에 장딴지에는 살이 없었고, 정강이에는 털이 없었다. 소낙비에 목욕을 하고 거센 바람으로 머리를 빗으면서, 모든 나라들을 안정시켰던 것이다. 우임금은 위대한 성인이었는데도, 천하를 위해 이처럼 몸을 고단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후세의 묵가들에게 털가죽옷과 칡베옷을 입고 나막신이나 짚신을 신고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법도로 삼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임금의 도가 아니니 묵가가 되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6]- 墨 子稱道曰:「昔者禹之湮洪水, 決江河而通四夷九州也, 名川三百, 支川三千, 小者无數. 禹親自操??而九雜天下之川, ?无?, 脛无毛, 沐甚雨, 櫛疾風, 置萬國. 禹大聖也, 而形勞天下也如此.」 使後世之墨子, 多以?褐爲衣, 以??爲服, 日夜不休, 以自苦爲極, 曰:「不能如此. 非禹之道也, 不足謂墨.」
350` 묵자의 제자들 (잡편:33.천하,7)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7]- 상리근의 제자들과 오후의 무리들 및 남방의 묵가인 고획, 기치, 등릉자의 무리들은 다 같이 묵자의 경전을 잃고 외웠지만, 서로 어긋나 주장이 같지 않게 되어 서로 묵자와 다르다고 공격을 했다. 견백동이(堅白同異)의 궤변으로 서로 욕하고, 혹은 남과 어울리기도 하고, 혹은 자기 홀로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말로써 서로 대응했다. 그리고 자기 파벌의 스승을 성인이라 하며, 모두가 묵자의 종주가 되어 후세에 묵가의 후계자가 되기를 바라는 상태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묵적과 금활리의 생각은 옳은지 모르지만 그들의 행동은 옳지 못하다. 후세의 묵가들로 하여금 반드시 스스로를 괴롭힘으로써 넓적다리에는 살이 없고 정강이에는 털이 없도록 만들어 주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이것은 천하를 어지럽게는 해도 다스려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묵자는 진실로 천하를 사랑하기는 했다. 올바른 도를 구하여 얻지 못한다면 비록 몸이 깡마르게 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그만두지 않을 사람이다. 그가 재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7]- 相里勤之弟子, 五侯之徒, 南方之墨子苦獲, 己齒, 鄧陵子之屬, 俱誦墨經, 而倍譎不同, 相謂別墨. 以堅白同異之辯相?, 以?偶, 不?之辭相應, 以巨子爲聖人, 皆願爲之尸, 冀得爲其後世, 至今不決. 墨翟.禽滑釐之意則是, 其行則非也. 將使後世之墨者, 必自苦以?无?脛无毛, 相進而已矣. 亂之上也, 治之下也. 雖然, 墨子眞天下之好也, 將求之不得也, 雖枯槁不舍也, 才士也夫!
351` 명가(名家)의 사상 (잡편:33.천하,8)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8]- 세속적인 일에 방해받지 않고, 물건을 장식하지 아니하고, 남에게 가혹하게 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에게 거스르지 않는다. 천하가 안락하여 백성들이 잘 생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와 모든 사람들의 의식이 풍족해져야만 만족한다. 이러한 생각으로 자기의 마음을 깨끗이 하려는 것이다. 옛날 도술을 닦은 사람들 중에 이러한 경향을 지녔던 사람들이 있었다. 송견과 윤문이 이러한 학설을 듣고 좋아했다. 그들은 위아래가 평평한 화산의 관을 만들어 씀으로써 자기들의 마음이 균등히 고름을 표시했다. 그들은 만물을 놓고서 그것들의 한계를 구별하는 데서 학문을 출발했다. 그리고 마음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이름을 붙여 마음의 덕이라 했다. 서로 친숙함으로써, 다 같이 기쁘게 함으로써 온 세상을 조화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정욕을 적게 갖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삼았다. 모욕을 당하여도 치욕으로 생각하지 않고 백성들 사이의 싸움을 없애려 했다. 공격을 금하고 무기를 없앰으로써 세상의 전쟁을 없애려 했다. 이러한 주장을 온 천하에 두루 유행시키려고 위로는 설교하고 아래로는 가르쳤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쉬지 않고 억지로 시끄럽게 떠들어댔던 것이다. 그러므로 위아래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는데도 억지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운다고 말하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8]- 不累於俗, 不飾於物, 不苛於人, 不?於衆, 願天下之安寧以活民命, 人我之養畢足而止, 以此白心, 古之道術有在於是者. 宋?尹文聞其風而悅之. 作爲華山之冠以自表, 接萬物以別宥, 爲始. 語心之容, 命之曰心之行, 以?合驩, 以調海內, 請欲置之以爲主. 見侮不辱, 救民之鬪, 禁攻寢兵, 救世之戰. 以此周行天下, 上說下敎, 雖天下不取, 强?而不舍者也, 故曰上下見厭而强見也.
352` 명가 사상의 장단점 (잡편:33.천하,9)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9]-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남을 위하며, 자신을 위하려는 생각은 극히 적다. 그들은 말한다. “사람의 정욕이 적어지기만 한다면 하루에 다섯 되의 밥만 먹으면 만족할 것이다. 우리가 선생으로 받드는 온 세상 사람들이 배불리 먹지 못할까봐 두렵기만 하다. 제자나 마찬가지인 나 자신은 비록 굶주리는 한이 있더라도 천하를 잊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노력하며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세상을 제대로 살리려 한다. 세상을 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오만하게 대하기야 하겠는가?”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군자는 사물을 자세히 살피어 따져서는 안되며, 자신이 물건에 이끌려서도 안 된다.” 그들은 천하에 이롭지도 않은 것을 자세히 밝히는 것은 그대로 두는 것보다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공격을 금하고 전쟁을 없애는 것으로써 외면을 삼고, 정욕을 적게 줄인다는 것으로써 내면을 삼고 있다. 그들 주장에는 작고 큰 것과 가늘고 굵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결국 여기에서 끝나게 되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9]- 雖然, 其爲人太多, 其自爲太少. 曰:「請欲固置五升之飯足矣.」 先生恐不得飽, 弟子雖飢, 不忘天下. 日夜不休, 曰:「我必得活哉!」 圖傲乎救世之士哉! 曰:「君子不爲苛察, 不以身假物,」 以爲无益於天下者, 明之不如己也. 以禁攻寢兵爲外, 以情欲寡淺爲內, 其小 大精粗, 紀行適至是而止.
353` 법가(法家)의 사상 (잡편:33.천하,10)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10]- 공정하여 편벽 되지 않고 평이하므로 사심을 갖지 않고, 모든 관계를 끊고 주로 내세우는 것이 없으며, 사물을 따르고 자기와 남의 구별을 세우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일에 대하여 생각하고 근심하려 하지 않고, 지혜로써 계책을 쓰지 않는다. 외물에 대하여 자기 위주로 가리는 것이 없으며, 외물과 어울려 함께 행동한다. 옛날의 도술을 닦은 사람들 중에 이러한 입장을 견지한 사람이 있었다. 팽몽과 전변과 신도가 그런 학설을 듣고 좋아했다. 그들은 만물은 모두 평등한 것임을 첫째로 내세우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하늘이 사람을 덮어주기는 하지만 위에 실어주지는 못한다. 땅은 사람을 위에 실어주기는 하지만 덮어주지는 못한다. 위대한 도는 모든 것을 포용하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만물에는 가능한 것도 있지만 불가능한 것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자기 생각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되면 모든 물건에 공평할 수 없고, 말로써는 도를 다 표현할 수 없다. 도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포용하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10]- 公而不黨, 易而无私, 決然无主, 趣物而不兩, 不顧於慮, 不謀於知, 於物无擇, 與之俱往, 古之道術有在於是者. 彭蒙田騈愼到聞其風而悅之. 齊萬物以爲首, 曰:「天能覆之而不能載之, 地能載之而不能覆之, 大道能包之而不能辯之.」 知萬物皆有所可, 有所不可, 故曰:「選則不?, 敎則不至, 道則无遺者矣.」
354` 죽은 사람에게나 적용될 원리 (잡편:33.천하,11)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11]- 신도는 지혜를 버리고 자기 자신도 떠나서 자연의 부득이한 결과를 따라 행동했다. 사물에 대하여 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 는「안다는 것은 사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지식을 박대하고 있는데, 결국은 지식을 손상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는 치욕을 참으며 홀로 생각하되 하는 일이 없으며, 세상 사람들이 현명한 사람을 숭상하는 것을 비웃었다. 제멋대로 기준 없이 행동하면서 천하의 위대한 성인을 부정했다. 망치로 치고 깎고 자르듯이 물건을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옳고 그르다는 생각을 버리고 구차하게 따지지 않는다. 지혜와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앞뒤를 따지지 않으며, 자기 홀로 지낼 따름이다. 밀려진 다음에야 나가고, 끌린 다음에야 가게 된다. 회오리바람이 돌아가듯, 새의 깃이 바람에 날리며 돌 듯, 맷돌이 돌아가듯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그래서 완전히 그른 데가 없으며, 움직이건 고요히 있건 잘못이 없어서, 죄를 짓는 일이 없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지각이 없는 물건은 자기 환란을 스스로 만들지 않는다. 그는 지혜를 사용하는 번거로움이 없었고, 움직이건 고요히 있건 이치를 떠나는 일이 없다. 평생 칭찬 같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지각이 없는 물건과 같이 되려고 노력할 따름이다. 현인이나 성인과 같은 지혜도 쓸 필요가 없다. 흙덩이는 지각이 없어 오히려 도를 잃지 않는 것이다.” 라고 했다. 천하의 호걸들이 서로 비웃으면서 “신도가 주장하는 도는 산 사람이 행할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 적용될 원리이다.” 라고 비평했다. 그의 학설은 세상에서 괴상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전변도 역시 그랬다. 팽몽에게 배워 가르치지 않는 학문을 체득했다. 팽몽의 스승이 말했다. “옛날의 도를 닦은 사람은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는 경지에 도달했을 따름이었다. 그 학설은 종잡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 어찌 말로써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그는 언제나 사람들의 생각에 반대하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래서 깎고 자른 것처럼 외물에 적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말하는 도란 진실한 도가 아니며, 그가 말하는 옳은 것이란 그른 것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팽몽, 전변, 신도는 진실한 도를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개략적으로는 모두 도에 대하여 들은 일이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11]- 是故愼到棄知去己, 而緣不得已, 冷汰於物, 以爲道理, 曰:「知不知, 將薄知而後隣傷之者也.」 ??无任, 而笑天下之尙賢也. 縱脫无行, 而非天下之大聖. 椎拍?斷, 與物宛轉, 舍是與非, 苟可以免. 不師知慮, 不知前後, 魏然而已矣. 推而後行, 曳而後往, 若飄風之還, 若落羽之旋, 若磨石之隧, 全而无非, 動靜无過, 未詳有罪. 是何故? 夫无知之物, 无建己之患. 无用知之累, 動靜不離於理, 是以終身无譽. 故曰:「至於若无知之物而已, 无用賢聖, 夫塊不失道.」 豪桀相與笑之曰:「愼到之道, 非生人之行而至死人之理, 適得怪焉.」 田騈亦然, 學於彭蒙, 得不敎焉. 彭蒙之師曰:「古之道人, 至於莫之是莫之非而已矣. 其風?然, 惡可而言?」 常反人, 不見觀, 而不免於[魚+元]斷. 其所謂道非道, 而所言之?不免於非. 彭蒙田騈愼到不知道. 雖然, 槪乎皆嘗有聞者也.
355` 도가(道家)의 사상 (잡편:33.천하,12)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12]- 만물의 근원을 정순한 것으로 보고, 형체 있는 물건은 조잡한 것으로 보며, 부가 쌓여 있는 것을 부족한 것으로 보고, 담담히 홀로 신명과 더불어 생활한다. 옛날의 도술에도 이러한 경향의 학파가 있었다. 관윤과 노담이 이러한 학설을 듣고 좋아했던 것이다. 그들은 영원하고도 아무것도 없는 허무(虛無)의 경지를 세워 놓고 태일(太一)의 절대적인 도를 중심 사상으로 삼았다. 연약하고 겸손한 것으로 외표(外表)를 삼고, 공허함으로서 만물을 손상치 않는다는 것을 내용으로 삼았다. 관윤이 말했다. “자기에게는 일정한 입장이 없고, 외물의 형편에 따라 자기의 행동을 드러낸다. 그 움직임은 물과 같고, 고요함은 거울과 같으며, 옹호하는 것은 울림과 같다. 황홀히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적막하기가 맑은 물과 같다. 이런 경지에 동화시키는 사람은 자연과 조화가 되지만, 의식적으로 이런 경지를 추구하는 사람은 이런 경지를 잃을 것이다.” 그는 절대로 남을 앞서지 않고 언제나 남을 따랐던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12]- 以本爲精, 以物爲粗, 以有積爲不足, 澹然獨與神明居, 古之道術有在於是者. 關尹老聃聞其風而悅之. 建之以常无有, 主之以太一, 以濡弱謙下爲表, 以空虛不毁萬物爲實. 關尹曰:「在己无居, 形物自著. 其動若水, 其靜若鏡, 其應若響, ?乎若亡, 寂乎若淸. 同焉者和, 得焉者失. 未嘗先人而常隨人.」
356` 노자의 사상, 도의 극치 (잡편:33.천하,13)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13]-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약한 것 같은 입장을 지키면 세상 사람들이 계곡에 물이 모이듯 몰려든다. 그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된 것 같은 입장을 지키면 세상 사람들이 계곡에 물이 모이듯 돌아와 복종하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남의 앞에 서려 하는데, 그 홀로 남보다 뒤지려 했던 것이다. 그는 또 말했다. “세상의 모든 치욕을 자신이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모두 실속 있는 것을 추구하는데 그 홀로 텅 빈 것을 추구했다. 그는 저장하는 것이 없으므로 언제나 남음이 있었다. 홀로 자립하여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행동함에 있어서 더디고도 힘을 낭비하지 않게 했다. 무위하면서 사람들의 기교를 비웃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추구하였는데, 그는 홀로 자연스러움에 빈틈없이 완전하기를 추구했다. 그는 말했다. “구차히 재앙을 면하기만 하면 된다.” 그는 심원함을 근본으로 삼고 간략함을 대강으로 삼았다. 그는 또 말했다. “굳은 것은 깨어지게 되고, 예리한 것은 꺾어지게 되어 있다.” 그는 언제나 외물을 너그럽게 포용하였고, 남을 깎아 내리지 않았다. 그러니 도의 극치에 이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관윤과 노담은 옛날의 위대한 진인(眞人)이었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13]- 老聃曰:「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知其白, 守其辱, 爲天下谷.」 人皆取先, 己獨取後, 曰受天下之垢. 人皆取實, 己獨取虛, 无藏也故有餘. 其行身也, 徐而不費, 无爲也而笑巧. 人皆求福, 己獨曲全, 曰苟免於咎. 以深爲根, 以約爲紀, 曰堅則毁矣, 銳則挫矣. 常觀於物, 不削於人, 可謂至極. 關尹老聃乎! 古之博大眞人哉!
357` 장자의 도는 어떠한 것인가 (잡편:33.천하,14)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14]- 황홀하고 적막하여 아무 형체도 없고, 변화는 일정치 않다.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하늘과 땅과 나란히 존재하고 신명에 따라 움직여간다. 망연한데 어디로 가는 것인가? 황홀한데 어디로 변화하여 가는가? 만물을 다 망라하고 있지만 귀착될 만한 것이 없다. 옛날의 도술에도 이러한 경향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장주가 그런 학설을 듣고서 좋아했다. 그는 아득한 이론에 황당무계한 말과 종잡을 데 없는 말로 이를 논했다. 때때로 자기 멋대로 논하였지만 치우치는 일이 없었고, 한 가지에만 적용된 견해를 가지고 주장하지 않았다. 지금 세상은 침체하고 혼탁하여 올바른 이론을 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에 따르기만 한 치언(?言)들을 끝없이 늘어놓고, 사람들이 중히 여기는 옛사람들에 관한 중언(重言)을 진실한 것으로 믿게 하고, 우언(寓言)을 널리 적용했다. 홀로 하늘과 땅의 정순함과 신명과 더불어 왕래하며, 만물을 내려다보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않았으며, 세속에 순응하여 살아갔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14]- ?漠无形, 變化无常, 死與生與, 天地竝與, 神明往與! 芒乎何之, 忽乎何適, 萬物畢羅, 莫足以歸, 古之道術有在於是者. 莊周聞其風而悅之. 以謬悠之說, 荒唐之言, 无端崖之辭, 時恣縱而不?, 不以?見之也. 以天下爲沈濁, 不可與莊語, 以?言爲曼衍, 以重言爲眞, 以寓言爲廣. 獨與天地精神往來而不敖倪於萬物, 不譴是非, 以與世俗處.
358` 장자의 무궁함과 위대함 (잡편:33.천하,15)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15]- 그의 책은 굉장하기는 하지만 부드러워 사람의 마음을 손상시키지는 않는다. 그의 말은 복잡하기는 하지만 재미가 있어 읽어 볼 만하다. 그는 자기 마음 속이 충실함으로써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써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위로는 조물주와 더불어 노닐고, 아래로는 죽음과 삶을 도외시하여 처음도 끝도 없는 자와 벗하고 지낸다. 그의 근본인 도에 있어서는 광대하고 트였으며, 심원하고도 자유롭다. 그의 대종(大宗)에 있어서는 조화되고 적합하게 되어 있어 위로 현묘한 도에 도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그는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여 외물에 대한 집착을 풀어버려서 그 이치는 다 풀이할 수가 없다. 그것은 장래에 있어서도 잘못될 수 없는 것이며, 망연하고 아득하여 철저히 추궁할 수가 없는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15]- 其書雖?瑋而連?无傷也. 其辭雖參差而?詭可觀. 彼其充實不可以已, 上與造物者遊, 而下與外死生无終始者爲友. 其於本也, 弘大而?, 深?而肆, 其於宗也, 可謂稠適而上遂矣. 雖然, 其應於化而解於物也, 其理不竭, 其來不?, 芒乎昧乎, 未之盡者.
359` 혜시의 사상 (잡편:33.천하,16)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16]- 혜시의 학설은 다방면에 걸쳐 있고, 그의 저서는 다섯 채의 수레에 실어야 할 정도이다. 그의 도는 복잡하고 그의 이론은 이치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 그는 만물에 대한 생각을 나열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극히 커서 한계가 없는 것을 대일(大一)이라 하고, 지극히 작아서 부피가 없는 것을 소일(小一)이라 한다. 쌓을 수도 없이 두께가 없는 것도 소일의 입장에서는 크기가 천리나 되는 것이다. 대일의 입장에서 보면 하늘과 땅이 다 같이 낮고, 산과 못이 다같이 평평하다. 해는 금방 하늘 한가운데 있다가도 금방 기울어진다. 만물은 금방 생겨났다가 금방 죽어버린다. 큰 견지에서 보면 모두가 같지만, 작은 견지에서 보면 모두가 다르다. 이것을 소동이(小同異)라 말한다. 만물은 모두가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모두가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을 대동이(大同異)라 말한다. 남쪽은 무한하지만 북쪽과의 한계를 생각하면 유한한 것이 된다. 오늘 월나라로 출발하여도 옛날에 도착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이어진 고리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고리의 입장에서 보면 풀 수가 있다. 나는 천하의 중앙을 알고 있다. 그것은 연나라의 북쪽이라 할 수도 있고, 연나라의 남쪽이라 할 수도 있다. 널리 만물을 아울러 사랑하면 하늘과 땅도 차별 없이 일체가 된다.” 혜시는 이것을 위대한 것이라 생각하고 천하에 제시하며 변사(辯士)들을 가르쳤다. 천하의 변사들은 그래서 즐거워했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16]- 惠施多方, 其書五車, 其道舛駁, 其言也不中. ?物之意, 曰:「至大无外, 謂之大一, 至小无內, 謂之小一. 无厚, 不可積也, 其大千里. 天與地卑, 山與澤平. 日方中方?, 物方生方死. 大同而與小同異, 此之謂小同異, 萬物畢同畢異, 此之謂大同異. 南方无窮而有窮, 今日適越而昔來. 連環可解也. 我知天下之中央, 燕之北越之南是也. 氾愛萬物, 天地一體也.」 惠施以此爲大, 觀於天下而曉辯者, 天下之辯者相與樂之.
360` 혜시는 궤변론자이다 (잡편:33.천하,17)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17]- 「계란에도 털이 있고, 닭에는 세 개의 다리가 있다. 영땅에도 천하가 있다. 개는 양이 될 수 있다. 말에도 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두꺼비에도 꼬리가 있다. 불은 뜨겁지 않다. 산에도 입이 있다. 수레바퀴는 땅을 밟지 않는다. 눈은 물건을 보지 못한다. 특정한 물건의 지적은 모든 것을 표현하지 못한다. 물건은 없어지지 않는다. 거북이가 뱀보다 길다. 굽은 자는 네모꼴을 만들지 못한다. 그림쇠로 원을 만들지 못한다. 구멍에 넣는 쐐기는 구멍이 포위하지 못한다. 나는 새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화살에도 나아가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는 순간이 있다. 보통 개는 멍멍 짖는 개가 아니다. 누런 말과 검은 말은 세 마리이다. 흰개도 검은 것과 같다. 외로운 망아지에게는 어미가 없었다. 한자 길이의 회초리를 매일 부러뜨려도 만년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는다.」 변사들은 이런 것으로써 혜시와 응답하며 평생토록 그침이 없었다. 환단, 공손룡이 바로 이러한 변사의 무리들이다. 그들은 사람의 마음을 꾸미기도 하고, 사람의 뜻을 바꾸기도 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이론은 이겨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이것이 변사들의 한계인 것이다. 혜시는 매일처럼 그의 지혜를 사용하여 사람들과 변론함으로써 천하의 변사들과 함께 괴이한 이론을 이룩했다. 이것이 그의 학설의 근본이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17]- 卵有毛, 鷄三足, ?有天下, 犬可以爲羊, 馬有卵, 丁子有尾, 火不熱, 山出口, 輸不?地, 目不見, 指不至, 至不絶, 龜長於蛇, 矩不方, 規不可以爲圓, 鑿不圍?, 飛鳥之景未嘗動也, 鏃矢之疾而有不行不止之時, 狗非犬, 黃馬驪牛三. 白狗黑, 孤駒未嘗有母, 一尺之?, 日取其半, 萬世不竭. 辯者以此與惠施相應, 終身无窮. 桓團公孫龍辯者之徒, 飾人之心, 易人之意, 能勝人之口, 不能服人之心, 辯者之?也. 惠施日以其知與人之辯, 特與天下之辯者爲怪, 此其?也.
361` 논리가 논리를 위해 흐르면 무가치한 이론이다 (잡편:33.천하,18) - 장자(잡편) ; 제33편 천하 [18] - 혜시는 자기의 구변을 스스로 가장 현명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하늘과 땅만이 자신의 이론보다 위대하다고 했다. 혜시는 천하에 자신을 드러내려고만 하였지 아무런 도술도 없었다. 남방에 황료라 부르는 기인이 있었다. 그가 하늘과 땅이 떨어지지도 않고 꺼지지도 않는 이유나,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벼락이 치고 번개가 치는 까닭을 묻자, 혜시는 조금도 사양하지도 생각해보지도 않고 즉시 대답했다. 두루 만물에 대하여 이론을 세웠다. 그런 것들을 쉬지 않고 논하여, 한없이 많은 말을 하였는데도 아직도 모자란다고 생각하고 더욱 괴상한 학설을 보태어 갔다. 그는 사람들에 반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남을 이겨내는 것으로 명성을 쌓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덕을 닦는 일에는 빈약하면서도 물건에의 집착은 강하여, 그의 도는 비뚤어져 있다. 하늘과 땅의 도로부터 혜시의 능력을 본다면 그것은 마치 한 마리의 모기나 한 마리의 등에가 수고하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 그가 물건에 집착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가 도의 일단(一端)을 충당할 수 있다 해도 괜찮겠는데, 그 변론이 도보다 귀하다고 하니 위태로운 일이다. 혜시는 이것으로써 스스로를 편안케 하지 못하고 만물에 대하여 관심을 분산시켜 만족할 줄 모르면서도, 마침내는 변론을 잘한다는 것으로서 명성을 얻은 것이다. 아깝다! 혜시는 그런 재능을 가지고도 방탕하게 행동하여 참된 도를 터득치 못하였고, 만물을 뒤쫓음으로서 자기 본성으로 되돌아갈 줄을 모르고 있다. 이것은 울림이 나오는 곳을 찾으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나, 자기 몸과 그림자를 경주시키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 - 莊子(雜篇) ; 第33篇 天下[18]- 然惠施之口談, 自以爲最賢, 曰天地其壯乎! 施存雄而无術. 南方有倚人焉曰黃?, 問天地所以不墜不陷, 風雨雷霆之故. 惠施不辭而應, 不慮而對, ?爲萬物說, 說而不休, 多而无已, 猶以爲寡, 益之以怪. 以反人爲實, 而欲以勝人爲名, 是以與衆不適也. 弱於德, 强於物, 其塗?矣. 由天地之道觀惠施之能, 其猶一蚊一?之勞者也. 其於物也何庸! 夫充一尙可, 曰愈貴道, 幾矣! 惠施不能以此自寧, 散於萬物而不厭, 卒以善辯爲名. 惜乎! 惠施之才, ?蕩而不得, 逐萬物而不反, 是窮響以聲, 形與影競走也. 悲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