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탄생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은 크리스마스에 흔히 등장하는, 추운 겨울 아기 예수가 강보에 포근히 싸여 어머니의 보호를 받으며 누워 있고, 흰 눈이 온 누리를 소복이 덮고 있는 장면을 연상한다.
예외없이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면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념한다. 그러나 예수는 결코 겨울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성서의 묘사와 일치하는가?
성서 필자 누가는 예수의 탄생에 대해 누가 2:8-14.에서 매우 상세히 기록하는데 그 기록을 보면 예수 탄생 당시 목자들은 밤에 밖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었음을 묘사한다.
만일 오늘날 이스라엘의 일반인에게 밤에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는 기록을 읽어 주고 나서 이 일이 일어난 때가 연중 어느 때쯤이겠느냐고 물어 본다면, 아마 “4월에서 10월 사이 어느 때이겠죠”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이스라엘에서 11월부터 3월까지는 날씨가 찬 우기이며 12월 25일은 분명히 겨울이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12월 무렵이면 베들레헴에는 밤에 종종 서리가 내린다.
이스라엘에서 목자들은 춥고 비오는 계절인 겨울 장마의 시기에 밤에 들에서 양 떼를 지키면서 노숙할 수 없다.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은 예루살렘보다 더 높은 곳에 있으며 예루살렘에서 겨우 몇 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날씨가 변덕스럽지 않은 해에도 베들레헴의 겨울철 밤은 몹시 춥다.
* 이스라엘의 겨울은 한국만큼 추워서 밤에 목자들이 밖에서 잘 수 없다.
기자가 조사한 현지 기사를 참조해 보라.
1992년에 「예루살렘 포스트」지에 실린 “폭설로 마비된 예루살렘”, “눈이 내려 북부 지방 고립”.
이런 표제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 익은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금세기 들어 손꼽을 정도로 혹독한 겨울을 겪었던 것이다.
1월에 헤르몬 산의 정상은 7~12미터나 되는 눈으로 덮였으며, 겨울은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골란 고원과 상부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을 지나 베들레헴 부근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남쪽의 네게브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인들은 우아하고 섬세하지만 강력한 방문객으로 인해 일상 생활과 일과가 번번이 마비되곤 하였다.
「예루살렘 포스트」지에 실린 또다른 기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모진 겨울이 도회지 거주자에게만 해를 입힌 것은 아니다.
밤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져 수백 마리의 암소와 송아지, 수천 마리의 닭이 얼어 죽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눈이 많이 오지 않을 때에도 몹시 찬 폭우가 쏟아져 인명 피해를 냈다. 하루는 두 명의 목동이 아마도 돌발 홍수에 휩쓸린 양 떼를 살리려고 기를 쓰다가 급류에 휩쓸려 빠져 죽고 말았다.”
중동의 전형적인 겨울에 대해 라엘의 「에레츠」지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지난 130년 동안 이스라엘 땅에서 수집되고 기록이 보존된 기상 자료에 따르면, 예루살렘에 눈이 내리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흔한 현상이다. 1949년부터 1980년까지, 겨울에 예루살렘 시에 눈이 많이 내린 햇수는 24년이나 되었다.”
* 왜 마리아는 만삭의 몸으로 여행하였는가?
예수께서 탄생하신 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그분이 12월 눈 내리는 계절에 태어나지 않으셨다는 사실에 확신을 더해 준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만삭이 되었는데도 나사렛에 있는 집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해야 하였다. 이유는 마리아와 요셉은 로마 통치자 가이사 아구스도(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칙령을 내린 인구 조사의 요구 조건에 응하기 위해 그렇게 여행하였던 것이다. 유대인 대중은 로마의 통치와 과중한 세금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터라 이미 여차하면 반란을 일으킬 기세였다.
매우 험하고 변덕스러운 겨울 날씨에 많은 사람에게 호적 등록하러 여행하라고 요구함으로써, 로마가 왜 공연히 유대인의 노를 사려 했겠는가? 이런 칙령이 봄이나 가을같이 여행하기에 알맞은 계절에 내려졌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이치적이 아닌가?
* 왜 12월 25일이 예수 탄생일이 되었는가?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은 12월 25일을 기념하는 것이 예수가 탄생하고 나서 여러 세기 뒤에 받아들여진 것임을 이렇게 알려 준다.
“4세기에 대부분의 동방 교회는 12월 25일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관습을 점차 받아들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좀더 오래 크리스마스를 배척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그리스도께서 사망하시고 나서 여러 세기 뒤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 관습을 그토록 쉽게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은 그 문제에 대해 이렇게 빛을 더 던져 준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전통적인 관습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관습과 동지 무렵 이교도들이 지킨 농경·태양 축하 행사가 우연히 일치한 결과, 몇 가지 근원으로부터 발전하였다. 로마 세계에서 농신제(12월 17일)는 흥청망청 놀고 선물을 주고받는 때였다. 12월 25일은 또한 의의 태양이라고 하는, 이란의 신비스런 신 미트라의 탄생일로 여겨졌다.”
이 모든 일이 정말로 ‘우연의 일치’였는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기원 4세기에 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아래 그리스도교 박해자에서 “그리스도교”를 공인된 종교로 삼은 후원자로 돌변하였다.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예비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이 점차 이 새로운 믿음을 받아들임에 따라, 그들은 새로 발견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붙여서 자기들에게 친숙한 이교 축제를 기념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의의 태양”의 탄생일로 정해져 있던 12월 25일보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기에 더 적합한 날짜가 어디 있었겠는가?
이처럼 지리적, 환경적 요인과 성서적 기록을 역사적 기록과 비교해보면 예수는 12월 25일에 태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날짜는 이교 관습인 태양신의 탄생일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나온다.